우울해도 괜찮아

   
문성철
ǻ
책읽는귀족
   
12000
2019�� 02��



■ 책 소개

 

‘내 삶의 불청객’ 우울증을 친구로 만드는 방법

 

저자는 어머니가 마음이 아픈 걸 옆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스스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을 곱씹으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인생을 산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하는 후회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쓰기로 했다.

 

이 책 『우울해도 괜찮아』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가족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면서 우리가 삶에서 어떤 마음의 자세로 그들을 바라볼 때, 자기를 억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감이 달라질 수 있는지도 되돌아보게 한다.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 그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작용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우리 삶은 다른 곡을 연주할 것이다.

 

당신의 인생에선 어떤 곡이 연주되길 바라는가. 이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삶의 연주곡은 어떤 색깔일까. 지금 우울한가. 혹은 우울했던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라.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우울감의 실체를 만나보기 바란다.

 

■ 저자 문성철
사춘기 시절, 엄마가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힘들어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계속 방황하다 25살이 돼서야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아등바등하며 삼성전자에 ‘고령’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도 했지만, 적응 못 하고 그만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행복을 좇았다.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며 마침내 자신을 옭아매던 생각에서 자유로워졌다. 작가가 되어 기쁨과 슬픔으로 곱게 물든 사람 이야기를 수집하며, 아름답게 삶을 꾸려가고 있다.

 

■ 차례
작가의 말 우울증에 접속되셨습니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출구는 없지만 그래도 달릴 거야
터미테이터 2의 명령
알쏭달쏭한 자가진단법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감정 카드
우울증이 보내는 신호
세상에서 유일한 만병통치약
자살한 사람의 심리적 부검

 

지옥에서 즐기는 카라멜 마끼아또 한잔
z 코드(일반상담)로 부탁드려요
시간의 늪, 우울증으로 가는 길
24시간 연중무류
상황이 아닌 사람을 믿어봐
누구나 잊힐 권리는 있어
힘내라는 개소리는 이제 그만
망가진 후에야 사용설명서를 펼쳐보다

 

그래도 약이 예뻐서 다행이야
여성, 남성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
내 마음에 꼭꼭 숨겨둔 아이
복에 겨워야 마땅한 시간에
우울증 진통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
이제 더 늦기 전에
성묘 가기 딱 좋은 날씨

 

내 인생의 흑역사도 사랑해
50분 상담에 10만 원
자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
MBTI 검사 결과가 변하다
인간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존재
조금 우울해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울증을 읽어내는 법

 

마무리하며 삶을 완주해냈다면 그걸로 충분해

 




우울해도 괜찮아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출구는 없지만 그래도 달릴 거야

우울증의 칼끝은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한다

최근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가 우울증 진단서를 사법부에 제출했다. 이를 계기로 매스컴은 물 만난 고기처럼 정신질환자들을 신나게 두들겨 패고 있다. 범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았건만, 정신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을 위험한 사람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피의자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는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다. 설사 우울증이라고 해도 이러한 특징이 범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규명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중매체는 우울증 환자가 마치 잠재적 살인마인 것처럼 프레임을 생산해내고 있다.


물론 정신질환으로 현실적인 판단이 흐려져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다. 그리고 이들이 위험한 건지, 일반 범죄자가 위험한 건지는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검찰청이 2017년에 공개한 범죄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0.08%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비정신질환자 범죄율이 1.2%인 것에 비하면 월등하게 낮은 수치다. 쉽게 말해 정신건강으로 고통 받는 사람보다 평범한 우리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더 높다는 거다. 평상시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다.


우울증 환자를 온전히 이해하기만 해도 이러한 생각들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인과는 거리가 멀다. 3층 계단에 올라가는 게 힘들어 중간중간 한참을 쉬었다가 올라간다. 밥을 먹을 의욕도, 힘도 없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침대에서 겨우 기어 나와 약을 먹었다가 토하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다. 칼은커녕 숟가락조차 들 힘도 없다.


중증 우울증 환자의 경우 정말로 죽을 힘도 없다. 농담이 아니다. 육체적인 힘을 사용할 수가 없는 거다.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더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길 에너지조차 없다는 말이다. 약을 먹거나 상태가 호전되어야 겨우 극단적인 행동을 시도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의사도 항우울제를 복용한 후 기운은 나지만, 우울한 생각이 좋아지지 않는 때를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처참하지 못해 참담하지 않은가. 약의 기운을 빌리지 않고는 자살조차 할 수 없다니.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해할 수 있단 말인가. 우울증 환자의 절대다수는 지금도 여전히 침대 밖으로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이 보내는 신호

‘서울대 법대 OO입학, 의대 OO입학’


교문에 들어서며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모두 전국 상위 1%에 들어야만 입학할 수 있는 학과다. 눈 씻고 찾아봐도 미대나 음대는 없었다. 저건 분명 협박이다. 여기에 못 들어가면 너희들 인생 끝난다는 으름장이다. 특정 대학과 특정 학과를 찬양하는 듯한 플래카드는 ‘주 예수를 믿어라’는 종교적 메시지만큼이나 일방적이었고 부담스러웠다.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법학과나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걸 목표로 했다. 선생님들도 은연중에 판검사 같은 법조인이 되거나 의사가 되는 것을 마치 최고의 인생인 것처럼 가르쳤다.


루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전력 질주했다. 그들이 말하는 ‘좁은 문’에 들어가는 일이 나에게도 간절했다. 그곳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엄마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공부만 잘하면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 시험 기간이 되면 박카스를 먹어가며 문제집을 풀었다. 등교하는 시간도 아끼려고, 모의고사 시험을 볼 때면 한 문제라도 놓치지 않으려 손을 벌벌 떨었다. 시험지에 구멍이 날 만큼 초 집중해서 시험문제를 풀었다.


그런데 공부한 만큼 성적이 비례해서 오르지 않았다. 남들 하는 만큼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잠도 줄였고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했다. 그래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오른다고 배웠는데 초조했다. 성적이 떨어지는 만큼 내 기분도 계속 떨어졌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도 또 다른 긴장감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는 엄마 눈치를 봐야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방문을 닫아 두고 있으면 어김없이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깐 정도는 인내심을 가지고 엄마 얘기를 들어줬지만, 대화가 길어지면 나도 지쳤다. 게다가 시험까지 코앞으로 다가오면 나도 예민해졌다. 답답한 마음에 문을 쾅 닫아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더 큰 전쟁만 벌어졌다. TV소리가 시끄러워도, 엄마가 책상 의자 뒤에서 계속 구시렁거려도 듣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엄마의 감정을 받아내는 일은 버거웠다.


어디 한 군데 마땅히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우울감과 우울증을 구분하는 일은 누구나 어렵지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우울증임을 깨닫고 전문가를 찾아 진료를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84주라고 한다. 어림잡아 2년이다. 아니, 어떤 환자가 아픈 지 2년 만에 병원을 찾아간단 말인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거나 개인 가치관 등의 이유로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병에 걸리자마자 병원으로 가는 게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매년 예방접종을 하거나 감기 기운이 감지되면 병원으로 달려가 센 놈으로 주사 한 방 놔달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사회적 자살을 선고받는 게 두려워서 병원을 못 찾아가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 이전에 자신이 우울증 환자라는 걸 인지하지 못해서 못 가는 경우도 많은 거다.


통상 우울한 기분이 2주일 이상 계속되어 개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면 우울증으로 본다. 특별한 이유 없이 며칠 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주변 사람과 대화가 힘들어졌다면 합리적으로 의심해봐야 한다. 친구 대부분이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상황인데 혼자만 웃지 못하거나 별로 슬프지도 않은 상황에서 눈물이 흐르는 상황도 매한가지다.


어떤 형태로든 우울감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면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 몸이 으슬으슬하면 가정의학과를 찾듯이, 정신이 으슬으슬하면 정신건강의학과로 가봐야 한다. 병을 묵힐 필요는 없다.



지옥에서 즐기는 카라멜 마끼아또 한잔

24시간 연중무휴

엄마와 함께 살던 시절, 잠을 깊게 자지 못했다. 혹시나 엄마가 위험한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달래거나, 돌발 행동을 할 경우 제지하기 위해서였다. 자다가도 엄마가 자는 거실에서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나가보는 게 습관이 됐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잠에서 깨면 순찰하듯이 엄마에게 별일 없는지 살펴보곤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다 보니 완전히 소진됐다.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엄마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건 알지만, 이러다간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우리 가족 모두는 엄마 감정에 안테나를 세워야만 했다. 엄마가 내던져버리는 감정을 쓰레기통처럼 차곡차곡 받아내야만 했다. 그런데 불편한 감정이 계속 쌓이다 보니 넘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감정을 비워내지 못하면 엄마보다 내가 먼저 쓰러질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내 주변에는 속을 터놓고 얘기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내 곁에는 친구도 있었고 마음씨 좋은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적당히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가벼운 대화 정도만 나눌 수 있는 사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수한 상황을 이해시키기도 어려웠다. 엄마가 아프게 된 배경 및 이유,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상황이 아닌 사람을 믿어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때 죄와 사람을 분리한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죄를 짓는 건 사람인데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니.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인가. 흉악 범죄의 피해자들은 얼마나 속이 상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죄와 사람을 동일시해서 바라봤다. 죄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문제라고 판단했다.


엄마를 바라보는 관점도 매한가지였다. 엄마가 극단적인 감정의 늪에 빠져 날 힘들게 하는 행동을 하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난 엄마를 몹시 미워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엄마였기 때문이다. 특정 행위들과 엄마를 동일시해 엄마란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엄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엄마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갑자기 거실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뛰쳐나가 보니 엄마가 이불에 불을 붙이고 거기에 누워있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불은 껐지만, 하마터면 우리 가족 모두 크게 다칠 뻔했다. 속상하고 슬픈 마음도 잠시, 이내 화가 났다. 아니,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우리까지 위험하게 하는 거야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한 변호사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라는 사설에서 형법 10조에 관한 내용을 설명해놓은 부분을 읽었다. 눈을 의심하며 재차 읽어봤다. 인류 사회가 법으로 이러한 조항을 만들어놓았다니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인간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끔찍한 범죄와 계속 싸워왔다. 강간, 살인은 기본이고 전쟁, 민족 학살까지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똑똑히 지켜봐 왔다. 그런데도 인류는 증오와 분노를 억누르고 죄와 인간을 분리해, 한 사람의 귀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결단을 내렸다. 혐오 대신 사랑을 택한 거다. 순간의 어려움과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엄마를 ‘행위’로만 평가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법대로’ 생각해보니 엄마는 단지 아파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뿐이었다. 자해를 시도하여 본인과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행위는 아주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건이었다. 그러한 행동 하나로 엄마의 본질을 정의할 수는 없는 거다.


정신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의 가족들은 하루가 멀다고 평소 모습과는 180도 다른 환자의 특수한 행동들과 마주하게 된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며 폭력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가족들을 원망하여 입에 담기 어려운 험담이나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예수님이라면 모를까, 이런 순간에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환자의 감정 폭풍에 휘말려 주변 사람도 격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순간의 폭풍이 지나가면 반드시 기억해내야 한다. 특이한 행위 또는 예외적인 행동이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누구나 잊힐 권리는 있어

묘비명에 아무것도 적지 말아다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나에게 전화하지 않던 둘째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상시에 전화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불길한 느낌이었다. 전화를 받으니 누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지만, 이미 난 직감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거였다. 곧장 갈 테니 조금만 진정하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택시에 올라탔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오는 동안 침착하게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던 건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뒀기 때문이다. 아빠 장례식 때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정신을 못 차렸는데, 상주로서 두 번째 장례식에 임하다 보니 그래도 예전만큼 당황하지는 않았다.


영전 사진 앞에 서서 조문객을 맞이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침묵으로 무거웠지만, 문상객들이 식사하는 장소는 시끌벅적했다. 기분이 묘했다. 밤이 깊어가자 손님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장례식장이 한산해졌다. 새벽에 잠시 찬 바람을 쐬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막판까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있어 서였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발인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직도 어머니 묘미명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죽어서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었어

한글 열 자 정도 적을 수 있는 공간에 새겨 넣을 묘비명을 결정해야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기억될 마지막 메시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어머니는 이름조차 적지 말아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는 거다. 자기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그랬다. 누군가에게 눈에 띄는 걸 유독 싫어했다. 아픈 이후로는 더 그랬던 거 같다. 죽어서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의 바람을 깊이 알고 있었다. 긴가민가한 내용도 아니었다. 살아계실 때 수십 번도 넘게 말했기 때문이다. 고인의 뜻이 확실한 만큼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냥 묘비명에 아무것도 안 새기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내 욕심이 다시 꿈틀댔다. 나에게도 기억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상주로서, 아들로서 말이다.


난 엄마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묘비명에 아버지 이름만 있으면 쓸쓸해 보일 것 같았다. 설날이나 추석 때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딸을 데려와 엄마에게 소개도 해주고 싶었다. 엄마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묘비에 아무것도 적지 말라니.


한참을 망설이다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기로 했다. 묘비명을 새기지 않기로. 잊힐 권리를 존중해드리고 싶었다.


힘내라는 개소리는 이제 그만

장례식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잠들었다. 푹 잤다. 잠깐 눈만 감았다가 뜬 거 같은데 12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며칠 밤을 새워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긴장이 풀어진 이유가 더 컸던 거 같다. 이제 내 주변에 밤새 아픈 사람은 없었다. 평소에는 혹시나 엄마나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긴장감을 유지하고 잠들었다. 자면서도 주변의 소리는 들을 수 있게 깊이 잠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장례식 다음 날은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만큼 개운하게 잤다.


잠에서 깨어 몸을 뒤척여 거실을 바라봤다. 문틈 사이로 늘 보였던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있던 자리에 엄마가 없었다. 장례식을 치렀지만, 아직도 엄마가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따사로운 햇볕만이 엄마가 평소 즐겨 누워 있던 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엄마라고 부를 사람이 없어졌다. 앞으로 내 인생에 ‘엄마’란 단어를 쓸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정신 차리자,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연차가 끝나기 전에 사망신고도 해야 하고, 유품들도 정리해야만 한다. 커피믹스 두 봉지를 뜯어 진하게 커피를 타 마셨다. 그러고 보니 몸에 좋지도 않은 커피를 왜 그렇게 마시냐는 잔소리도 엄마와 함께 사라졌다. 그래도 5분 정도는 좀 여유를 부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엄마를 다시 추억해봤다.


엄마의 빈자리에서 그제야

엄마는 소위 말하는 ‘웰다잉’의 선구자였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마지막을 담담하게 준비했다. 하고 싶은 말이나 미리 해둬야 할 말을 틈틈이 하기도 했고, 장례 방법까지도 상세하게 얘기해줬다. 그리고 심지어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내가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말해줬다. 그때는 뭐야, 하고 흘려들었는데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철학자 못지않은 주옥같은 명언을 수두룩하게 남겨주고 가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중 하나는 살다 보면 문득 부모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후회될 때가 있는데, 그런 마음이 들면 미안해하지 말고 내 자식한테 잘해주면 된다는 말이었다. 엄마도 그랬으니 나도 그러라고 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내리사랑’이 자연의 섭리라고 했다. 부모한테 빚진 마음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했다.


성묘 올 때 주의사항도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산 사람이 먼저이니, 명절 때 비나 눈이 많이 오면 억지로 오지 말라고 했다. 괜히 성묘 오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 다음에 오란 거였다. 별의별 걸 다 미주알고주알 얘기해놓고 갔다.


어머니가 했던 말을 하나둘 떠올리면서 유품 정리를 하던 중, 불현듯 엄마가 궁극적으로 남겨준 메시지를 알게 됐다. 눈이 풀리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일어날 힘도 없을 만큼 대성통곡했다.


어머니께서는 자살하지 않으셨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몰랐다니, 엄마는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사시면서도 끝까지 삶을 완주해냈다. 자살이라는 길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만의 십자가를 묵묵히 감당해냈다. 병간호하는 아들, 딸들을 보며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견뎌냈고 극한의 통증도 이를 꽉 깨물고 이겨냈다. 삶을 포기하는 모습만큼은 절대로 자식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기에, 나를 위해서 버티고 또 버텨주신 거였다.


엄마를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됐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경외감이 들 만큼 존경하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마가 만약 자살했다면 난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만 했을 거다.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내가 잘하지 못해서 엄마가 자살했다고 자책하며 살았을 거다. 당연히 내 삶은 고통으로 점철되었을 거다.


그뿐인가, 살다가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 역시 먼저 자살부터 생각했을 거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가장 큰 위로는 ‘경청’이다

어리석게도 너무 뒤늦게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엄마한테 미안했다. 엄마한테 말도 안 되는 얘기만 계속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후회가 됐던 말은 ‘힘내’라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니 엄마의 처절한 분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언사였다.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하다니.


사실 힘내라는 말 자체는 나쁜 뜻이 아니다. 좋은 의미다. 위로와 응원이 함께 담겨 있는 메시지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는 이런 말은 되도록 안 하는 게 좋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이미 힘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의 동력을 100% 소진한 상태다. 자기 의지로 힘을 낼 수 있었다면 벌써 기운을 차렸을 거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하는 건 전혀 힘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생각해서 힘내’라는 말은 더욱더 조심하는 게 좋다. 이건 정말이지 원 펀치, 투 터치다. 화자는 좋은 의도로 환자에게 본인을 아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상기해주기 위해서 한 말이겠지만,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책망하는 말로 들을지도 모른다. 본인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을 보며 죄책감에 짓눌리게 된다.


말을 가려서 하고 조심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상담 훈련을 수년 동안 전문적으로 받고, 많은 환자를 상대한 전문가도 실수하는 게 ‘말’이다. 하물며 정신건강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난생처음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잘할 수 있겠는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우리는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어설프게 공감해주려고 할 필요도 없다. 일반인이 정신건강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건 우울증뿐만이 아니라 다른 병도 마찬가지다. 아픔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섣불리 잘 알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환자 마음만 더 불편해진다.


그냥 옆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적극적인 추임새만 넣어줘도 환자는 후련해한다. 나 같은 경우는 중요한 감정 단어들에 강조 부사를 붙여가며 추임새를 넣어줬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수천 번을 들어도 까먹는다.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필요할 때는 꺼내 쓰지 못한다. 그래도 계속 되새김질해서 기억해내는 수밖에 없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겠지만, 한 번만 더 말해보려 한다.



내 인생의 흑역사도 사랑해

우울증을 읽어내는 법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정

우연히 《탈무드》 원본을 보게 됐는데 충격이었다.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탈무드는 천 년에 걸쳐 쓰인 책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화 중이다. ‘진화’라는 단어를 굳이 쓴 이유는 내용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탈무드》를 펼쳐보면 정중앙에 핵심 내용이 적혀 있고, 주변에 다양한 해석이 적혀 있다. 정답이 딱 정해져 있는 일반적인 종교 경전과는 딴판이다. 주요 메시지도 원론적이고 매우 난해하게 서술돼 있다.


이걸 해석해나가는 게 탈무드 공부의 핵심이다. 정해진 대로, 적혀진 대로 외우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원본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더 중요한 포인트다. 어떤 주제라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뒤집어 보면서 자신만의 의견을 덧붙여나간다. 그래서 탈무드 공부방은 항상 시끄럽다. 토론과 논쟁을 수시로 벌여서다.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치열하게 사유한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독서 노트 형태를 업그레이드 했다. 요약문을 한가운데 써두고, 생각이 바뀌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날짜와 함께 추가로 기록했다. 그러다 불현 듯 깨달았다. 내가 만든 지식에서조차 여전히 내가 중심이 아니었다는 걸. 타인의 생각을 중심에 놓고 자꾸 겉돌고 있었다. 독서 노트가 타인의 생각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로 전락해버렸다.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데, 세상을 중심에 놓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부터 습득한 지식을 시작점에 놓고, 궁극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방향으로 독서 노트를 다시 써나가고 있다.


내 세계관이 마침내 중심에 자리 잡았다.


우울증을 읽어내는 여정도 똑같았다. 넘쳐나는 지식만 삼키려다, 정답만을 찾으려다 날 잃어버렸다. 이제야 겨우 정신 차리고 생각의 근육을 다시 키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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