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했어 부담 갖지 않기로

   
이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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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0
2018�� 08��



책 소개

 

오늘 하루도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나요? 가끔은 이렇게 다짐해 보세요.
“결정했어, 부담 갖지 않기로!”

 

우리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떠돌아다니는 숱한 ‘부담감’이 존재한다. 역할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누군가는 우리에게 기대감을 품게 되고, 우리는 그 기대를 애써 외면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요즘 들어, 대가 없이 기대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을 향해 ‘할 말은 해야 한다, 참지 말라’고 조언하는 책들이 많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2년 만에 ‘부담’이라는 주제로 또 한 번 독자들의 일상에 잔잔한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이인석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가끔은 좀 부담스럽지 않으세요?”라고 독자들에게 넌지시 묻는다.

 

우리의 인생에서 주변인에 불과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고, 흔들리고, 애쓰지 말자.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이미 잘하고 있고, 멋진 존재들이다.

 

■ 저자 이인석
브런치 작가이자 로드포토그래퍼로도 활동중이다. 서강대학교에서 광고홍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육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동시에 ‘VIVA 교육 연구소’를 맡고 있다. 집필한 책으로는 『너만 그런 거 아니야』가 있다.

 

■ 차례
# 1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않는다
일 년에 두 번 꼭 엄마, 아빠를 보러 가는 일
목표는 늘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
너를 위해 나를 지키고 싶다
배우는 것이 모든 것의 답이 되진 않는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온전한 아픔
애매한 게 좋다
그리워서 그리는 것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변화를 만들어가길
빨갛다고 모두 맵진 않다.
니들이 있어서 산다
거절은 다음 한 걸음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의 최선과 누군가의 시선
당신만의 사만다, ‘나’
우리 모두는 ‘멜랑꼴리’하다
인생은 좀 밀리고 밀리다 도착하는 법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맞이하는 밤에, 별은 늘 거기에 있다
나는 자주 눈먼 잉어가 되었다
우리 사이나, 남의 사이나
온기가 있는 생명은 우리에게 의지가 되기 마련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쉽다
울타리는 우리가 친다
엄마의 눈물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 2
네가 가장 예쁜 날은 오늘이야
우리는 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비참하거나, 교만하거나
방구석이 최고야!
당신은 정말 ‘잘’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날이 필요하다
지금의 고난이 한때의 로망이었다
급하면 어제 나오지 그랬어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
살아내는 용기는 가볍지 않다
실패를 위한 박수가 필요하다
사람에게 처음은 커다랗게 자리 잡는다
우리는 슈퍼 히어로‘였다’
사람들의 기대를 가슴에 단 사람들
천 원에 우리 목숨 걸지 말자
웬만하면 기억해야 이롭다
자신의 잘못을 상상력으로 채운다
착한 사람 되려다 다 망친다
일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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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했어, 부담 갖지 않기로


목표는 늘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

다음 단계에 돌입한다는 것은 일정한 노력을 요구한다. 목표를 이룬다는 것은 사실 꽤 많은 것을 포기하고, 꽤 많은 것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목표를 이룬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참을성이 대단하다. 한 번씩 언론에 공개되는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의 손과 발에는 쉽게 감당하기 힘든 류의 노력과 실패들이 묻어있다. 한 가지 일을 해서 수준 이상에 도달한 달인들의 마음과 몸에는 셀 수 없는 굳은살이 박혀있다. 가끔 궁금했다. 그들은 무슨 비결로 힘든 고통을 이겨냈을까. 나는 50분을 뛰기로 굳게 결심하고 러닝머신 위에 올라 달려도 40분쯤 뛰면 ‘충분해 충분해’라며 타협하고 내려오는데 그들은 ‘한 번만 더, 1분만 더’를 해내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내가 부담 받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우리는 목표만 있으면 이뤄낼 수 있는 것처럼 여기며 매일, 매주, 매월, 매해 목표를 세운다. 크게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몇 년 안에 무엇을 이뤄내겠다, 이번 달엔 여행을 가겠다, 이번 주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겠다.’ 하지만 어떤 순간이 되면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여 이 ‘하겠다’가 무너진다. 해야 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뤄야 할 것들은 매번 새로 생겨난다.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 툭하고 한계점에 부딪힐 때 우리는 멈춘다.


운동을 같이 하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 아내에게 바람을 넣었다. 요가는 부부가 같이 하기도 좋은 운동이고 별로 힘들지도 않아서 할 만할 거라며 설득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2번으로 시작해도 될 요가를 일주일에 5번을 나가는 걸로 수강했다. ‘운동은 매일매일 해야지’라는 나의 목표였다. 요가를 해보기 전까지는 가벼운 운동,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단순하게 땀을 흘린다는 것을 넘어서서 쓰지 않는 근육들을 자극하고, 이완, 수축되지 않는 몸을 늘였다가 좁히는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2번째 가는 날에는 집밖을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돈을 냈으니 억지로 갔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2번째 수업에서는 강사가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요가를 하다 보면 분명 고통스러운 순간이 와요. 고통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 자세를 하는 데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못하죠. 즉 마음속에 부담감 혹은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아요. ‘요가’라는 것의 기본적인 뜻은 결합인데, 여기서 말하는 결합이란 몸과 마음 그리고 의지의 결합이에요. ‘요가’는 분명 몸을 쓰는 운동이지만 의지를 통해 마음과 결합해가는 과정이죠. 요가 동작을 하다 보면 일정 순간에 고통이 오는데, 바로 그때부터 마음이 작동하기 시작해요. 그전까지는 동작을 따라 운동하는 동안, 마음은 전혀 작동하지 않죠. 바로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 마음이 쿡 하고 치밀어 오르면서 작동해요. 우리의 행동에 제동을 걸기 시작하는 거죠. ‘어? 아픈데, 어? 괴로운데’ 하면서 더 할 수 있는 마음을 내려놓고 거기서 멈추게 돼요. 바로 그때 긍정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아픈 순간 긍정적인 의지를 가지게 되면, 그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알 수 없는 시원함으로 다가와요. 꼭 그 자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아픔을 받아들이는 순간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 미세한 변화가 목표를 위한 한 걸음이에요.”


우리 마음속의 불편함과 부담감이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것이 우리를 포기시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 부담돼서 끝까지 하지 않고 주저앉는 일도 없다. 어렵고 힘겨운 일을 만날 때만 그렇다. 해야 할 일에, 이루고 싶은 일에 마음이 작동한다. ‘지금부터는 좀 더 힘을 써야 할 거야’라고 이야기해준다. 마음이 작용하는 순간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여기서 결정된다. 목표에 대한 나의 애정과 실패를 도전의 과정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의 힘이 만들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이뤄낼 수 없는 것이다.


악! 하고 고통이 느껴진다고 실패한 것이 아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다고 실패한 것이 아니다. 도저히 더 못하겠다고 생각이 들 때도 실패한 것이 아니다. 끝난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면, 한 번 이겨내는 힘을 발휘했다면 그게 딱 한 번이라도 충분하다. 그 부담감을 마주하고도 조금 더 뻗어나갔다면 충분하다. 과정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고 있다. 마음의 작동에 조금씩 부딪히면서, ‘그만두고 싶다,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의 움직임을 조금씩 극복하면서, 부담감을 온몸으로 받아가면서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만들어간다. 긍정적인 의지는 어쩌면 우리 앞에 놓인 그 순간을 인정하는 것이다. 원대한 목표가 아니라 작은 노력의 과정이 만들어가는 순간을.


나는 오랫동안 ‘부담’이라는 감정을 오로지 불편함으로만 느꼈다. 하기 싫고, 귀찮고, 짜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을 인정하면, 아주 조금씩 나를 만들어갈 기회를 얻게 된다. 요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의 부담감은 늘 있어왔다. 얼마만큼 남았는지를 보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오늘 마음이 작동하는 순간을 겪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이뤄내야만 무언가를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다. 포기에도 질이 있다. 다시 일어나면 된다. 오늘이 아닐 뿐이다.


사람들은 마지막 과실로만 그 달콤함을 확인하려 하지만,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바람에 흔들린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 달콤한 순간도 존재한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부담감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날들을 통해 나아가고 있다.


‘아, 뿌듯하다’는 감정은 공짜가 아니다. 멀리 바라보고 달리면 지치고 힘들다. 하지만 오늘 하루 우리에게 오는 수많은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을 인정하고 나면, 어느새 해낸 일들이 내 눈앞에 와있는 순간을 발견한다. 그래서 목표는 늘 목표에 있지 않고 그 과정에 있다.


지금 순간을 인정하면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때 비로소 당신은 업그레이드된다.



인생은 좀 밀리고 밀리다 도착하는 법이다

고속도로 위에 차를 올려놓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다. 그러나 조금씩 주춤거리기 시작하고 결구 고속도로 위에 차가 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꼭 급할 때만 이렇게 막혔다. 시간이 촉박해서 급한 마음에 아무리 손목시계를 쳐다봐도 시간만 흘러갈 뿐, 우리가 타고 있는 차는 흘러가지 못했다. 대형 주차장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브레이크를 발로 눌렀다 뗐다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어떤 날은 사고 때문에 차가 밀렸고, 어떤 날은 타이밍이 좋지 않은 공사 때문에 밀리기도 했지만 이유 없이 막연하게 기다리는 일도 많았다. 온갖 추리를 다 해봐도 대부분 결국 이유를 모른 채 고속도로를 빠져나오곤 했었다.


4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그렇게 보통 80~90분이 걸려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심지어 밀릴 것까지 계산해서 나왔는데도 시종일관 이유 없이 밀렸다. 이상하게 꼭 나에게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일은 도로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생각하던 나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지금쯤이면 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지금쯤이면 ‘이루었겠지’하던 것들이 있었다. 노트 귀퉁이에 끼적거려 놓았던 많은 삶의 목표들이,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소박한 바람들이 내 눈앞에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노트 귀퉁이에 적혀 있던 소망들은 여전히 노트 끝에 존재할 뿐 내 인생에는 없었다.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지만 ‘이번에는 여기까지 하자, 이건 다음에 하자, 이건 내년에 하자’며 조금씩 미뤄두었다. 그렇게 밀리고 밀려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도 많고, 남아있는 것들조차도 여전히 내 인생에서 이루고 싶기만 할 뿐 순간순간 닥쳐오는 현실레 밀려 노트 끝에서 찢겨나갔다.


이제는 그 흔적 정도만 남아 있다. 답답한 건 무엇 때문에 밀렸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지금도 계속해서 밀리고 있다. 1년이면 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어느새 9년이 흘렀다.


새해마다 적는 계획에 자그마치 9년 동안 빠지지 않고 적혀 있던 ‘기타 배우기’는 여전히 맨 앞자리에 적혀 있다. 괜찮은 기타 멜로디가 들려오거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 떨리는 음을 내는 장면을 볼 때면 속으로 ‘이번 해에는 꼭 배워야지’ 다짐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심지어 기타를 괜찮은 가격에 구매를 해두고도 혼자 이상한 음을 내는 정도로 그쳤다. 그냥 긁으면서 혼자 만지작만지작하는 것이 전부였다. 분명 마음속으로 바라는 일이고 꼭 해야지 하는데도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기타는 그렇게 내 방 안에서, 작은방으로, 작은방에서 창고로, 그리고 창고 안에서도 가장 구석에 박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아직도 코드를 모른다. ‘기타를 배워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답답했다. 해결하지 못한 숙제처럼 괜히 마음이 쓰였다. 어쩌다 창고에 들어갔다가 기타를 볼 때면 괜히 내 의지가 약한 것처럼 느껴지고 초라해졌다. 무려 9년 동안 나는 멈춰있었다. 그리고 그 멈춤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들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안에 남아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수학 문제처럼 남아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언젠가’라는 리본을 달아두고서.


사실 의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은 늘 해야 할 일에 치여 멈추었다. 거기다가 하고 싶은 일들은 왜 자꾸 많아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자꾸 밀려 미련으로 남는다. 그렇게 밀리고 밀린 것들이 산처럼 쌓여 내 인생 어딘가에 놓여있다. 마음먹고 딱! 하려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겨난다. 그러면서 또 미루는 나를 보면 조급해진다. 불안해지고 후회한다. ‘그때 할 걸, 5분 일찍 일어날 걸’ 생각한다. 꼭 이유 없이 밀리는 출근길을 만난 때처럼.


고속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다. 차가 멈춰 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밀린다. 이유는 사람들이 순간순간 밟는 브레이크 때문이라고 한다. 잘 인식하지 못하는 짧은 브레이크가 모여 정체를 만든다. 밀리지 않고 잘 가려면 규정 속도에 맞춰 속도를 유지하고 달려야 하는데 속도를 올리거나 내리면서 밟게 되는 잦은 브레이크와 빠른 길을 찾아 차선 변경을 하며 생기는 잦은 브레이크로 인한 결과였다. 이 두 가지 상황이 조금씩 모여 정체를 만들고 급기야 차를 서게 만든다.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그 찰나의 멈춤으로 인해 아예 멈춰버리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뚜렷한 이유 없이 고속도로 위에 밀리다 멈추는 현상, 이를 ‘유령 정체’라고 부른다.


고속도로 위에 놓인 차량들처럼 우리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브레이크를 밟곤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속도로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멈춰 서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우리의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밀림에 우리 스스로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자책을 조금 줄여도 된다. 생각해보면 그냥 조금 겁이 나서 밟은 브레이크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지나가 버린 소망을 내버려 두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다만 부단히 노력하며 기껏 시간을 줄이려고 애써보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도착시간이고 설령 잠시 멈춰 서서 긴 도로가 주차장이 되더라도, 우리는 결국 어느 순간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그 고속도로를 빠져나간다. 다시 올라가긴 하겠지만, 영원히 거기에 있진 않는다.


담아 두기 위한 노력도 우리 인생에 필요하지만 흘려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영원히 밀리는 길은 없으니까. 인생은 좀 밀리고 밀리다 마침내 도착하는 법이다. 나아가지 못한다고 아파할 필요도 없고, 나아간다고 자신할 필요도 없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 브레이크는 우리 자신을 지키는, 또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수단일 테니까.


가끔 우리 삶에도 ‘유령 정체’가 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조금씩 밀렸다는 기분이 든다. 근데 뭐 어떤가! 멈춘 김에 조금 쉬어도 된다. 밀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일을 해야 했다는 의미고 또 분명 해왔을 거다. 단지 삶 속에 작은 브레이크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타를 창고에 좀 더 두기로 했다.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지금의 고난이 한때의 로망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일들이나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결실은 우리의 간절함과 맞닿아 이루어진다. 그 사람과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입맞춤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다. 칼로 시간을 잘라 그것이 이룩되는 시간만 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토록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졌는데, 그것만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좋을 줄 알았는데 한입 베어 문 수박에 뱉어야 할 씨앗들이 한없이 많은 것처럼, 차는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유지하는 게 문제인 것처럼, 행복할 거라 믿은 순간의 이면에서 자꾸만 닥쳐오는 유지의 과정이 생각보다 잔인하거나 힘이 들었다.


‘이룬다’라는 것이 늘 끝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노력의 산물,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보상, 이제부터 누릴 기쁨의 시간들... 하지만 무언가를 이룩하고 나면 그때부터 진짜가 시작되었다. 누릴 시간이 없었다. 이룬 것을 지키는 일은 기본이고, 그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또 갖은 애를 써야 했다. 혹은 그 과정을 지나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또 다른 시작을 맞이했다.


그래도 피식피식 한 번씩 웃음이 나는 건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기쁨은 고난 속에서 묻어나는 향기 같은 것이다. 잠시 그 향기를 맡은 것 같지만 곧 사라져 버리고 만다. 동화 속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낭만적이다. 현실에서의 사랑은 그렇지만은 않다. 행복하게 살기 위한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 결혼 전까진 낭만적이지만, 결혼 후에는 현실적이다. 낭만은 노력해야 지켜진다. 인생이 그렇다.


글을 써서 운 좋게 출판이 되었다. 나는 내 책을 쓰고 싶다는 소망은 언제나 가슴속에 품어왔고 그것을 이룬 셈이다.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 나에게 전달된 초판을 두 손에 든 그때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책이 나왔다. 반응도 좋았고 여기저기에서 축하의 인사도 받았다. 생각보다 많이 팔렸고, 수상도 했고, 시간이 흘러도 조금씩 회자되었다.


첫 번째 책이 그렇게 마무리되어갈 때쯤 나는 두 번째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다시 책을 쓰려고 앉아도 글이 진행되지 않았다.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쓰니 글이 풀리지도 않았다. 한 번 책을 출판해봤으니 과정이 좀 더 쉬워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글을 써놓고 지우고 써놓고 지우고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풀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내게 두 번째 책이 언제 나오냐고 물었지만 나는 시원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책 한 권을 출판하고 나니, 두 번째 책은 더 좋은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한 문장도 쉽게 쓰지 못했다. 나는 헤맸고 그 과정에서 괴로워했다. 아무 부담이 없었던 그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바람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었다. 나는 작가라고 불렸지만, 글을 못 쓰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지금 나의 고난이 한때 내가 그토록 바라던 로망임을 알았다. 그냥 글을 끼적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낸 작가로서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을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힘들고 지칠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일은 내게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때 이뤄내지 못했다면 그 순간의 향기도 지금의 고난도 내겐 현실이 아니라 꿈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바라던 일을 이루고 현실에 부딪혀 허덕이고 있다면, 우리가 생각했던 길이 아니거나 이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면,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고민을 하고 있는 그 순간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로망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고난이 한때 우리의 로망이었다. 그리고 그 로망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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