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김여환
ǻ
쌤앤파커스
   
14000
2015�� 09��



■ 책 소개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생의 빛나는 순간들
조금 먼저 세상에 작별 인사를 건넨 사람들이 남긴 보석같이 아름다운 이야기들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을 가슴으로 울린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따스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천 명에 달하는 환자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가 발견한 우리 삶의 맨살.

 

알 수 없는 앞날 때문에 늘 불안해하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당신에게, 보장되지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한사코 미루려고 하는 당신에게. 이 책은 지금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강력한 힌트가 되어줄 것이다. 처음도 마지막도 모두가 당신의 인생이기에.

 

■ 저자 김여환
저자 김여환은 8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마음으로 돌보고, 900명이 넘는 환자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호스피스 의사. 1991년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졸업 후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 서른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 중 암성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환자들을 보며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후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고위과정을 수료하고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으로 일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환한 웃음을 짓는 호스피스 환자들의 모습을 담아 사진 전시회를 열고, 항암 요리를 만들어 환자의 가족들에게 선사하는 등 호스피스 병동을 ‘엄숙한 죽음을 맞이하러 오는 무채색의 장소’에서 ‘아프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환한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이런 노력이 알려지면서 2009년 국가암관리사업평가대회 호스피스부문 보건복지부장관상을, 2011년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사연 공모전 우수상을 받았다. 기나긴 고통과 이별의 시간, 그녀는 “죽음은 더 이상 일상생활에서 구겨서 저 깊숙이 처박아버려야 할 무거운 이야기도, 그저 스쳐 지나가도 되는 가벼운 이야기도 아니다.”라는 삶의 진실을 깨달았다.

 

다시 평범한 아내, 사랑하는 두 아이의 엄마로 돌아온 지금도 그녀는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KBS 《아침마당》, 《강연 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을 울게 만들었고, 《프리미엄조선》에 연재한 칼럼 “‘쥑’이는 여의사 김여환의 행복처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지은 책으로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가 있다.

 

■ 그림 박지운
그린이 박지운은 공주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졸업한 뒤 특수학교에서 도예과 교사로 재직했다. 프랑스로 건너가 예술학교 발렁시엔 보자르(Ecole Superieure d’art et de design de Valenciennes)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기발함과 신비로움, 절제된 색감과 환상적인 멜랑콜리가 조화를 이룬 작품들로 유럽 등지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개인 작업과 병행하여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jiwoonpak.com

 

차례
머리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가 당신 것입니다

 

1. 우리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인생의 비밀이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
나란히 놓인 침대에서 꾸는 꿈
기적을 선물해준 소녀와 함께 보낸 나날
처음도 마지막도 모두가 내 인생입니다
당신이 남긴 아름다운 이야기들
삶과 죽음이 걷잡을 수 없이 뒤엉킬 때
이제는 당신을 용서하려고 해요
더 멀리 가지 못해도 괜찮아요

 

2. 껴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
인생 질량 보존의 법칙
마음의 창문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세요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는 연습
껴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
눈을 떠보니 오늘도 살아 있어요
먼저 죽음을 찾아가지는 마세요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마지막을 위하여
배내옷과 수의

 

3. 그러니까 오늘 더 사랑하세요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세상에 머물 수 있는 날이 하루밖에 없다면
이 소식을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까요?
오늘의 행복을 내일에 양보하지 마세요
인생이란 큰 꿈속에서 작은 꿈을 꾸는 것
엄마의 마지막 주치의
나보다 당신이 먼저 행복하기를
그날 이후의 삶을 위한 감정 정리법

 

4. 안타깝지만, 이 또한 인생이다
삶의 마지막에 누릴 수 있는 축복
불량 유전자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내가 죽음의 여의사로 살아야 하는 이유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
사느냐 죽느냐보다 중요한 것
삶의 속살이 낱낱이 벗겨지는 순간
나를 엄마로 만나서 행복했니?
안타깝지만, 이 또한 인생이다

 

맺음말. 나에게 쓴 편지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우리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처음도 마지막도 모두가 내 인생입니다

불치의 병에 걸려 호스피스 병동에 오게 되면 두 번을 슬피 운다. 입원하는 날과 임종실로 옮기는 날이다. 입원하는 날에 환자는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서글피 울고, 임종실로 옮기는 날에 가족들은 ‘이제 진짜 가는구나’라고 생각하여 구슬피 운다. 12살짜리 달아이를 떠나보내며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살 만큼 산 92살에도 떠나는 것이 아쉬워 역정만 내다가 임종에 이르는 환자도 있다.


죽음이란 항상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며, 난생 처음 겪어보는 불안이 엄습해오기 때문에 상상하지 못한 반응을 한다. 그럼에도 덜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하고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 잊어버린 채 최선을 다하는 가족들이었다.


75살 비호지킨스 림프암 환자였다. 소장에서부터 시작한 림프암이 위장을 꽉 채웠다. 레빈 튜브(코에서 위까지 이어지는 가느다란 호스)를 넣어 인위적으로 위액을 배출시켜야 했다. 이제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튜브 끝에 음압 흡입기가 연결돼서 바짝 마른입을 축일 물 정도는 마실 수 있었다. 목구멍은 아직도 레빈 튜브에 적응하지 못해서 간질간질 불편했다. 숨이 차서 산소까지 주입하려다 보니 오른쪽 콧구멍에는 레빈 튜브와 산소 호스 두 개가 꽂혔다. 환자의 목숨은 큰 비닐 팩에 든 우윳빛 수액제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처음 인사하던 날 들었던 환자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서울에서 오시느라 힘드셨죠.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이래 사는 기 사는 기가?”라고 답했다.


재순 할머니는 치매에다 말기 위암이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중이고, 할아버지는 후두암을 2년째 앓고 있다. 올해가 결혼 60주년이다. 아침 9시가 되면 할아버지는 양복 차림에 면도를 말끔히 하고 재순 할머니를 찾아온다. 겉으로 봐서 할아버지는 암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 어제는 대학 병원에 치료하러 가시느라 못 오신 거죠? 할아버지의 암은 괜찮으신 거죠?”라고 물으니, “내가 암은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어. 근데 이겨서 뭐 하겠노?”라고 하신다.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 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70살 창수 할아버지는 황달 때문에 눈이 노랗게 변한 간암 환자였다. 창수 할아버지가 입원하는 날, 나를 살짝 불렀다. “얼마나 남은 것 같소?”


이렇게 처음부터 대 놓고 묻는 환자는 처음이었다. 모른다고 하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어긋나버릴 것 같고, 그렇다고 다짜고짜 “비슷한 경우에 평균 한 달쯤 사시다가 가시곤 했어요”라고 솔직히 말하기도 껄끄러웠다.


“글쎄요. 앞에 계시는 어르신이 어르신과 비슷한 부위에 생기는 쓸개암 환자이신데, 오신지 두 달쯤 되셨어요. 지금은 기운이 없으셔서 식사를 잘 못하십니다. 그래도 두 달 동안 저희 병동에서 백내장 수술도 하셨어요.” “백내장 수술을?” “앞에 계신 어르신은 눈이 밝아지는 것이 소원이셨거든요. 저희 병동에서는 암은 고칠 수 없지만 다른 모든 것은 평소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두 달. 그렇게나 오래...... 우리 집사람한테는 비밀로 해 주게.”


노래진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창수 할아버지는 직접 다운받은 수백 곡의 노래르 들었고, 최신형 스마트폰도 샀다. 창수 할아버지는 막내딸이 아빠 드린다고 한 300만 원짜리 시계 대문에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가늘어진 팔에 도통 어울리지 않는 그 큼직한 시계를 차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평화롭게 지냈다.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껴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

껴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

젊은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이 위암에 걸렸다. 의사가 암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나이 지긋한 김 목 사님도 전립선암으로 호스피스에 입원했을 때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잠시 들렀소”라고 편하게 말했다. 농부였던 오갑 할아버지는 말기 위암에 걸렸을 때 “이제 살 만큼 살았어. 마지막으로 우리 며느리 소원 하나 들어주고 가려 하오”라며 호스피스 병동에서 기독교인이 됐다. 예의 바르던 며느리가 예전부터 오갑 할아버지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요추로 전이된 암 때문에 하반신 마비가 왔지만 그리 슬퍼하지는 않았다. 멀리 있는 아들과 매일 영상 통화로 했고, 6살 먹은 손자가 침상 옆에서 장난감 레고를 맞추고 있으면 따뜻한 눈길로 바라봤다.


나는 죽음의 맨얼굴이 이런 줄로만 알았다. 비록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오갑 할아버지처럼 마지막에 와서는 다 내려놓고 삶의 갈등에서 헤어나는 편안함을 기대했다. 그러나 마지막이라고 해서 버리는 것이 다 녹록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식 씨의 어머니는 말기 폐암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절대로 죽으면 안 돼”라고 절규했다. 그래서 호스피스로 오지 않고 내과로 입원했다. 그러나 대식 씨의 이모는 이왕 안 될 것 같으면 시설도 좋고 통증 치료도 잘 되는 호스피스로 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환자가 그렇게 싫어하는데 굳이 호스피스로 오실 이유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사연을 듣고 나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선생님, 반대만 하지 말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언니한테는 눈 먼 아들이 있어요. 그 아이 때문에 언니가 한이 맺혀서 그래요. 아직 장가를 못 보냈거든요.” 하나뿐인 아들 대식 씨는 3살 때 사고로 눈이 멀었다. 그럼에도 환자가 호스피스에 입원하길 극구 싫어했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아들 대식 씨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대식 씨는 건장한 청년으로 D대학 점자 도 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었다.


“저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더 못 받아들이시는 거 같아서 어머니한테 정말 죄송해요. 평생 저 때문에 고생만 하셨는데...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편해지실까요?”


그는 허공을 응시하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진료실 탁자 위에 있던 티슈를 한 움큼 뽑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가기 전에 다 버리고 가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환상일 수 있어요. 정신없이 살다 보면 안고 가는 사람도 있고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어머님께서는 몸이 불편한 대식 씨를 걱정하면서 살아오셨어요. 그러니까 마지막에 이러시는 것이 꼭 응어리진 마음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대식 씨는 어머니가 죽음을 한사코 부정하는 반응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말에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러니까 오늘 더 사랑하세요

오늘의 행복을 내일에 양보하지 마세요

“공부에 익숙해질 만하니까 졸업이네요.” 한 대학생이 졸업식에서 말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분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들은 인생의 졸업식을 앞두고 말한다. “이제 먹고 살 만하니까 병에 걸렸네요.”


조실부모한 형제가 있었다. 형은 15살이나 어린 동생을 아들처럼 애틋하게 끼고 살아왔다. 애지중지하던 동생이 간암에 걸려 환갑도 못 채우고 먼저 떠나자, 형은 먼발치에서 소리 없이 흐느꼈다. 열심히 사는 법만 배우다 보면, 이미 때가 늦어버리기도 한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지만, 죽음의 시간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대충 얼마나 남았나요?” 어김없이 사람들은 묻는다. 아직 환자를 보지도 못했는데, 전에 있던 병원에서 치료받았던 오래된 의사 소견서만 한 장 달랑 들고 와서 사망 예정일을 알려달라니. 사망 예정일이란 것은 산부인과 의사가 출산 예정일을 말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분명 아니다. 아직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사망할 날짜를 불쑥 말해버린다는 것이 낯 뜨겁기도 하고, 송이버섯처럼 울룩불룩 불거진 암 덩어리를 가지고, 또 배꼽이 불룩 튀어나올 정도로 부풀어 오른 배를 가지고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거란 사실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자꾸 물어오면 왠지 화가 난다.


대신 나는 이런 질문을 기대한다. “이럴 때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해줄 것은 없나요?” 이런 거 많이 해보셨으니까, 죽음을 앞둔 환자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 하던가요?


하지만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접어두고 나는 대답한다. “여명(餘命)이란 것이 의사 소견하고 꼭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더라고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시면 평균 27일을 계셨어요. 그것도 마지막에는 하루 종일 거의 잠만 주무시니까,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하시고 지금처럼 죽이라도 드시는 날은 정말 며칠 안 남으신 거죠.” “아직 그 정도는 아니신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평균이 그렇다는 거예요.” “실은 아버지 칠순이 다음 달인데, 편찮으실 때는 생신상을 안 차린다고 해서 어떡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들과 며느리가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질문을 한다. 아픈 사람의 생일상은 안 차린다고들 하지만 그건 죽음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일이 없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내년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오늘이 남은 내 생애 중에서 최고로 건강한 날이다.


결국 우리는 병원에서 환자의 칠순 잔치를 치렀다. 병풍을 두르고 알록달록한 꽃 사탕도 보기 좋게 높이 쌓았다. 봉사자들은 꽹과리를 치고 북도 두드렸다. 일가친척들이 도착하자, 아들과 며느리가 쑥스러워하면서 다소곳이 큰절을 올렸다. 입원 내내 기운 없이 축 처져만 있던 환자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정말 고맙구나...” 울면서 웃으면서 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지났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가는 과정이 좋다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도 죽어감, 즉 죽어가는 과정이 좋아야 한다. 금방이라도 밀어닥칠 죽음의 공포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져서 우왕좌왕하다 보면, 안타깝게도 인생의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리고 만다. 아무 스스럼없이 “내일 또 뵙겠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좋은 시절이다.


권투 선수가 케이오 패를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링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환자들은 화려하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와 호스피스 병동으로 속속 들어온다.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말이다. 더 이상 휘황찬란한 미래는 없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적게 남은 삶의 양에 그리 집착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차가운 임종실에서조차 아름다운 ‘오늘’을 만들어놓고 떠나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남은 시간을 위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거창한 버킷리스트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저 살아온 그 모습 그대로 평범하고 따뜻한 오늘을 보내고 싶어 했다. 흰머리가 보이면 염색을 하고 싶어 했고, 어느 정도 통증이 조절되어 식욕이 당기면 갓 튀겨서 낸 쫄깃쫄깃한 탕수육을 먹고 싶어 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남아 있을 삶의 양’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마냥 행복해했다.


기껏 해야 한 달밖에 살 수 없는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이 내일이 보장되어 있는 병동 밖의 사람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고 하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하지만 그러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지낼 수 있는 용기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밤을 홀로 하얗게 지새운 뒤에애 평화는 찾아온다.


등 뒤에 찾아온 죽음을 두려우하지 않고 살아가는 호스피스 환자들은 오늘만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삶의 진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오늘을 오롯이 살아내려면 호스피스 환자처럼 억지로라도 한 번쯤은 미래의 죽음으로 찾아가서 ‘남겨진 시간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삶과 죽음’은 물과 기름 같은 거다. 그렇지만 이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것들을 조화롭게 아울러 포용한다면, 내일의 죽음이 아닌 오늘의 삶이 달라진다.


인생은 여행이다. 호스피스 의사로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 여행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뚝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마지막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면 한 번뿐인 내 인생이 내가 원하지도 않는 자리에서 영원히 멈추어버릴 수 있다.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



안타깝지만, 이 또한 인생이다

삶의 마지막에 누릴 수 있는 축복

그 일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위암 환자였던 김윤섭 할아버지는 내과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왔고, 전립선암 환자였던 이길용 할아버지는 비뇨기과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왔다. 동시에 온 두 사람은 302호 같은 병실에 나란히 눕게 되었다.


윤섭 할아버지는 전직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애꿎게도 중년기에 시작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인생은 그때부터였다. 지팡이를 짚고 전국을 누비면서 장애인의 ‘희망 신협’을 만들었고, 무료 개안 수술도 추진했다. 그의 활약은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알았다. 나는 하루아침에 할아버지의 팬이 되어버렸다. 회신 왔다고 알리고자 두 손을 곱게 잡으면 기다렸다는 듯 손 마사지를 해주었다. 잘 먹지 못해서 힘도 없을텐데, 능숙하게 주무르는 솜씨가 시원하기까지 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대하니 병동 식구들은 그를 ‘천사’라고 불렀다.


길용 아저씨에겐 피붙이가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는 있어야 하겠기에 가장 친한 사람을 알려달라고 했다. 적어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한 여인이 모르는 사람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다음 날, 친구라고 찾아온 삐쩍 마른 사람도 하는 말마다 몽땅 거짓말이었다. 어쩐 일인지 형사 2명도 찾아와서 그의 상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돌아갔다. 수중에 한 푼도 없어서 의료비와 간병비 후원자도 찾아야 했고, 처음엔 퉁증이 잘 조절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부쩍 통증 주사를 많이 요구했다.


그래도 운은 있었다. 퉁퉁한 아주머니 한 분이 길용 아저씨의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면서 병문안을 온 것이다. 진실을 말해줄 거 같아 다짜고짜 붙잡고 물었다. 나는 그제야 길용 아저씨에 대해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길용 아저씨는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나 대학까지 잘 나왔다. 하지만 그 후 하는 사업마다 망하고, 마약까지 손을 대어 얼마 전까지도 감옥에 있었다. 입원하자마자 아저씨가 알려준 전화번호의 주인은 전 부인이었다. 그녀는 자기더러 입원비를 내라고 할까 봐 길용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시치미를 뗀 모양이다. 그의 인생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61살의 배광환 씨는 K대학 병원에서 말기 대장암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 나이의 환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 역시 호스피스 입원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는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는 지난 2년 동안 ‘죽음’이라는 말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을 만큼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이제는 손쓸 방법이 없으니 호스피스로 가야 한다는 말을 그 누구도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원인 불명의 파종성 혈관 내 응고증이라는 심각한 병에 걸렸다. 최소한 6개월은 남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사나흘도 못 버틸 정도로 위독해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배광환 씨는 막무가내로 K대학 병원을 떠나 내가 근무하는 대구 의료원 호스피스로 옮겨달라고 했다.


임종실을 사용하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고도 싶었다. 다시 한 번 여쭤보시고 그래도 굳이 오시겠다고 고집하시면 주저 말고 빨리 오시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 TV에 소개되었던 대구 의료원 호스피스가 하도 인상 깊어 마지막은 이곳으로 오리라고 혼자서만 염두에 두고 있었단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한 것은 처음이라며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예상대로 입원 다음 날 임종실로 옮겨 가야만 했다. 부인은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이제 죽어도 좋으니까 제발 적당한 약을 써서 죽여달라고만 했는데 여기 와서는 그런 소리가 없었어요. 잠깐이었지만 참 고마웠어요”라며 울컥해져 있는 나를 도리어 위로해주기도 했다. 긴 인생에서 불과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 공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들의 등 뒤에 서서 죽음을 앞두고 편안해진 가족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웰다잉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복인 것이다.


석양이 붉게 물들 무렵, 느지막이 회진을 마치고 복도 끝에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생의 시작과 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면,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누리고 있는 절대적인 자유를 얼마만큼 예쁘게 잘 쓰고 있을까?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그 누구도 환자가 살아온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어떤 인생을 살아왔던 간에 격려해주고 편안하게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따뜻함이 필요한 공간이다. 그래도 솔직히 고백하건데, 내심 부러운 인생은 항상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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