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

   
요조(사진:이종수)
ǻ
북노마드
   
14500
2018�� 06��



■ 책 소개

 

“나는 계속 잘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 내 책방도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뮤지션 요조는 ‘책방 주인’으로 불린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들을 옆에 두고, 하루하루 책을 읽게 되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신이 좋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요조를 기쁘게 하는 것은 ‘책방무사’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스마트폰을 비롯해 책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책이라니, 그것도 작은 서점이라니……. 하지만 요조는 ‘책방무사’를 운영하며 알게 되었다. 아직 생각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책과 작은 서점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얼마 전, 요조는 서울 계동에서 운영하던 ‘책방무사’를 제주의 작은 마을로 옮겼다. 서울 골목 어귀의 책방과 제주의 책방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분명한 건, 서울에서도 제주에서도,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미소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요조는 제주의 작은 책방의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오늘 읽을 책 한 권을 꺼내어 읽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노랫말이 생각나면 가사를 적고, 예쁜 음률이 아른거리면 곡을 적을 것이다.

 

■ 저자 요조
홍대 인디 문화의 아이콘이자 싱어송라이터. 본명은 신수진. 요조(Yozoh)라는 예명은 ‘요조숙녀’가 아니라 일본소설 《인간실격》의 남자 주인공 ‘요조’에서 따온 것. 허밍어반스테레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객원보컬로 활동하다가 2007년 《My Name is Yozoh with 소규모아카시아밴드》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몇 장의 싱글 앨범과 정규 1집 《Traveler》를 발표했다.특유의 속삭이는 듯 감미로운 목소리는 요조만의 트레이드마크. 때문에 광고, 드라마, 영화계의 러브콜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특히 모 통신사 CF의 배경음악이었던 ‘허니허니 베이비’는 광고 당시 크게 히트했고 《커피 프린스 1호점》 OST는 요조의 목소리를 대중과 더욱 밀착시켰다. 다른 가수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다양하게 하고 있으며 사진전을 열기도 하고, 라디오 DJ를 맡기도 하고,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와 《카페 느와르》에 출연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경계 아티스트. 1집 이후 5년 만인 2013년 9월, 2집 《나의 쓸모》를 발표. 말랑말랑하고 달콤했던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층 깊고 새로워진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 차례
추천사
프롤로그

 

무사 일기 1
무사 일기 2
무사 일기 3
무사 일기 4
무사 일기 5
무사 일기 6
무사 일기 7
무사 일기 8

 

모놀로그
에필로그
부록-오늘, 요조의 서가 




오늘도, 무사


무사 일기 1

‘멈출까?’라는 질문 앞에서 다들 무력하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지금 만나는 사람을, 지금 꾸고 있는 꿈을, 지금의 삶을 끝내버릴까 하다가도 ‘말도 안 되지’라고 돌아서게 만드는 질문. 역설적으로 다시 힘을 내게도 하는 질문.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는 강요받는다. 딱 그만큼 우리는 그만두는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끝낼까?

《headache》라는 잡지를 예전부터 좋아했다. 책방을 준비하면서 잡지를 입고하려고 연락했는데, 이제 마지막 발간만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마지막 호라도 입고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매번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콘셉트였던 이 잡지의 마지막 질문은 ‘끝낼까?’였다. 나는 이제 시작하는 것보다는 ‘끝내는’ 것이야말로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오랜 친구인 김상희는 나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음악을 하겠답시고 공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고, 김상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크고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보통 시간을 내서 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시간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정작 시간을 내서 놀아보려고 해도 내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은 죄책감과 불안감 때문에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상희도 그랬고,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상희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몇 년간 우리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가끔씩 김상희는 내게 전화해서 ‘이 짓을 끝낼지 말지’를 물어보곤 했다.


나는 당연히 김상희가 얼른 그만두었으면 했다. 그래서 다시 마음 편하게 만나서 떡볶이를 먹고 놀았으면 했다(우리가 긴 우정을 나누는 동안 거의 한 번도 빠짐없이 만나는 장소는 O 떡볶이집이었다. 일단 떡볶이부터 한 접시 비우고 시작했다. 뭐든지). 그러나 ‘끝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곁에서 지켜본 김상희의 수고와 노력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상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독서실과 집만 오가며 공부만 하며 몇 년을 살았는데, 나 이 짓 끝내고 나면 뭐하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상희의 공포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는 강요받는다. 딱 그만큼 우리는 그만두는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멈출까?’라는 질문 앞에 높인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김상희가 생각났다. 이제 공부를 끝내기로 했다고, 떡볶이를 먹자고 하던 그 용감한 모습이.



무사 일기 2

나는 1월의 사람들이 유독 사랑스럽다. 오래가지 못할 걸 알면서도 이것저것 다짐하고 결심하는 비장하고 달뜬 얼굴들. 그리고 얼마 안 가 한결같이 실패해서 시무룩해질 얼굴들. 바보 같다. 멍청이 같다. 너무 좋다. 오늘 책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올해는 꼭 책을 많이 읽을 거야’라는 다짐이 들어 있을까.


새해 첫날

나는!

나는 오늘부터가 실전이라고 마음먹었다. 이전까지는 워밍업이었다고. 지금까지는 ‘적자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림잡아 계산하고 대충 넘기곤 했지만, 이제부터는 가계부에 정확히 얼마의 손익이 났는지 꼼꼼히 기록할 거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좀처럼 없는 서비스 정신도 더욱 많이 품을 것이다.


어제는 2015년처럼 쓴 커피를 주었으니 오늘은 다른 것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해 첫날을 무사히 맞은 책방 무사에서 오늘은 꿀차를 드립니다. 오소서.


2016년 한 해는 이 꿀차처럼 늘 달콤하기를 기원하면서, 엄마가 나 먹으라고 준 밤꿀단지를 가슴에 안고 출근했다. 뜨거운 물에 소로록 녹인 꿀차를 사람들의 손에 하나씩 쥐어주며 오래 전에 읽은 『작은 아씨들』의 어느 구절을 떠올렸다. 정확하세는 기억나지 않지만 더듬더듬 떠올려보자면 이런 내용.


‘잼은 달콤하기 때문에 잼을 먹으면 마음도 달콤해질 것이다.’


온종일 단내를 맡아 나 역시 내내 달았다. 2016년의 내 작은 세상이 무사히 달게 시작되었다.



무사 일기 3

돈보다도 그 아래에 숨어 있는 나약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비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소비의 시작은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소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무사의 바닥을 지근하게 밟고 지나갔다. 오래오래 따뜻할 것이다.


책방 주인

신수진(36, 책방 무사 주인, 뮤지션)


이렇게 소개되는 거 되게 좋다.



무사 일기 5

정말 오랜만에 이 거리 위에 서 있는 나는 굉장히 쭈뼛거리며 걸었다. 이 거리를 휘감고 있는 기분 좋은 퇴폐감의 리듬을 나는 영 따라 맞추지 못했다. 책방을 하면서 어딜 가도 이렇게 쭈뼛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책방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주 순식간에 딱딱해진 것 같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제 나는 옛날의 나와 너무나 달라져버렸다는 것을 느낀다.


이심전심

이제는 책방 주인으로서 행사에 초대받는 일이 종종 생긴다. 아직도 낯설고 부끄럽지만 기분은 좋다. 언제나 양손에 악기를 들고 어디론가 움직였지만 책방 주인으로서의 양손은 굉장히 홀가분하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이 홀가분함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지갑이나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왔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인천시 도서관발전진흥원이 ‘도서 기증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한 책 <피어라 콘서트>에 초대되어 다녀왔다. 명색이 ‘콘서트’인데 나는 ‘책방 무사’의 대표로 참석하는 것이다. 역시 어색한 기분. 도착하여 무대를 바라보니 무대 옆에 걸린 현수막에 요조라는 이름 대신에 ‘책방 무사 대표 신수진’이라고 적혀 있다. 나 외에도 ‘그림책 공작소’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민찬기 대표님,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헌책방거리』의 저자인 최종규 작가님이 오셨다.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며 그림책 출판을 고수하는 민찬기 대표님의 멋진 고집, 그리고 ‘콘서트’니까 노래도 있어야 하고 춤도 있어야 한다며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고 시도 짓고 춤도 추셨던 아이 같았던 최종규 작가님, 그리고 아직 풋내기인 나.


출판사를 운영하는 일, 작가로서 책을 쓰는 일, 그리고 그 책을 판매하는 일. 모두 책이 좋아서 뛰어들었으면서도 우리 셋의 이야기는 점점 우울한 빛을 띠었다. 민 대표님은 당신의 집이 점점 은행의 소유가 되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매달 말이면 책방의 한 달 매출 정산을 하곤 했는데 보나마나 결과가 뻔할 걸 알기에 이제는 속 편하게 정산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방 주인들끼리 만나도 같은 흐름을 탄다. 예외가 없다. 징징이들이 되고 만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은, 솔직히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한다면 짐작컨대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돈 버는 데 쉬운 일이 어디 있어.

-다들 힘들게 살아.


그러나 적어도 이심전심이 되는 우리 사이에서라면 얼마든지 신세 한탄을 맘껏 할 수 있으니, 그래서 더욱 마음 편하게 힘들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행사를 마치고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민찬기 대표님과 최종규 작가님의 얼굴에서 익숙한 것이 보였다. 나와 같이 틈나는 대로 한숨 쉬는 서점 주인들의 얼굴에서도 보이던 그것. 힘들어요, 하는 그 어두운 얼굴 틈에서 작게 빛나는 ‘단호한 행복’의 빛. 만날 때마다 걱정하고 염려하다가도 헤어질 때는 안심하게 하는 그 빛. 나는 “같이 사진 찍어요”라고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의 ‘단호한 행복’의 빛을 기록해두었다.



무사 일기 6

5년 뒤면 나는 41살이 된다. 어떻게 살고 싶지? 그때도 ‘책방 무사’를 하고 있을까. 아니, 할 수 있을까? 다른 일을 하게 될까? 그때까지 나는 뮤지션으로서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이 징그러운 생각들. 이놈들 간만에 물 만난 듯이 펄떡펄떡거리고, 내 마음은 금세 뭔가로 휘저어서 혼탁해진 음료가 되었다. 그러나 시실 그런 음료는 이렇게 혼탁하게 해서 마시는 게 정상이다.


구린 생각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이 없다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나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책을 읽지 않는 인생을, 스마트폰만 보는 인생을 한심하다고 말할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요즘 사람들 책을 너무 안 읽어서 문제라고, 책을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안 읽느냐고 쯧쯧 하는 사람들. 내가 책방을 한다니까 더 내 앞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정말 아름다운 일도 맞다. 그러나 자신이 책을 많이 읽으므로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서 빨리 그 생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야 한다. 그건 틀렸다. 책은 인생의 유일한 묘약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한심한 바보 멍청이들도 되게 많다(나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책은 좋은 것이다.


독서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 아름답게 한다. 그것만 조용히 혼자 알고 있으면 된다.



무사 일기 7

책방을 하면서는 ‘책’들이 ‘나’라는 사람의 현재를 대변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책방의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책들이다. 가지런히 놓인 내 책방의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다가 책방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곳은 정말로 나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잘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 내 책방도 좋은 곳이 될 것이다.


하하하하

오늘 책방에 와준 단골 두 분. 지웅 씨는 내일이 생일이고, 사랑 관장님은 얼마 전 생일이었다고 한다. 책방을 마치고 같이 조촐한 ‘생파’를 했다. 관장님은 알고 보니 학교 체육선생님이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체육을 정말 좋아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는 분이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본인이 만들었다는 ‘하하 축구.’


축구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못하는 친구에게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데, ‘하하 축구’에서는 짜증을 내면 몇 분간 퇴장하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짜증이 나면 하하하- 웃어야 하는 규칙도 있단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다가 배를 잡고 웃느라 경기를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본인의 태권도장에서도 절대 경쟁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재미 위주로 가르친다. 실력이 좋은 친구들에겐 실력을 더 닦을 수 있는 다른 도장을 소개해준단다.


-애들은 무엇보다 행복을 알아야 해요.


관장님의 교육 철학이 너무 근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지, 관장님은 알까?


홀려서

나는 서울 종로 계동에서 약 1년 반 동안 ‘책방 무사’를 운영했다. 2017년 3월, 서울에서의 영업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로 이사했고, 책방도 제주도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왜 책방을 하기로 결심하셨어요?

왜 제주도로 이전하신 거예요?


나는 ‘왜’라고 시작하는 질문을 유독 어려워한다. 스스로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것에 대한 못마땅함도 크다. 나는 왜 나의 자진된 선택을 분명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좋아서요’라고 대답하는 건 싫어서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대답을 준비했는데 그것도 그냥 멋만 잔뜩 부렸다 싶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오늘 그동안 해왔던 답변의 최신판이자 솔직판을 여기에 수록한다.


나는 잘 홀린다.

대체로 홀려서 여태 살아온 것 같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된 것도, 사랑에 빠지는 것도, 물건 하나 사는 것도 거의 홀려서 했고, 그게 성공하거나 실패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책방을 하게 된 것도, 제주라는 섬으로 집도 책방도 훌쩍 옮겨간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얼마 동안은 그저 홀린 상태(아무 생각 없는 상태)로 지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다음의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여기서 누군가 ‘그냥 좋아서’라는 답변이나 ‘홀려서 그랬다’는 답변이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 ‘그냥 좋아서’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재능교육 학습법으로 공부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사람만 대답할 수 있다. 나처럼 핑계가 생활화되어 있고 언제든 책임을 남에게 미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홀려서 그랬다’가 더 적확한 답변이 된다.


다 ‘홀려서’ 한 것이다.

애초에 책방을 한 것도 그러다가 뜬금없이 제주도로 내려온 것도 제주도에서 책방을 다시 뚝딱 만들고 있는 것도, 모든 게 나 때문이 아닌 것만 같다.


취미는 독서

내 취미는 독서다. ‘취미는 독서’라는 말, 내가 하면서도 따분하다. 취미계의 독보적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저 말을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주 말해왔다. 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정말로 독서 말고는 없다. 실제로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면 철 지난 개그처럼 받아들이는지 피식 웃는 사람도 있고, 그것은 누구나의 대외적 취미가 아니냐는 듯 ‘독서 말곤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좀더 독특한 취미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늘 생각뿐이다.


언젠가 질문하는 사람 중 하나가 ‘왜’라는 말을 붙였더랬다. “왜 독서가 취미예요?”


‘게을러서’라고 대답했다. “게으른 사람에게 적격이에요. 그냥 자기가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한 다음에 책을 펴고 눈알만 굴리면 됩니다.” 간단하게 눈알만 굴리며 영위해온 게으른 사람의 독서라는 취미.

어쩌다 책방 주인이 되었다. 책방 주인이 되면 더 많은 책을 읽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책들이 쌓여갔다. 책들의 병목 현상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나는 나대로 허겁지겁 책들을 과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게을러서 독서를 취미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책방 주인으로 지내면서는 정말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개인의 목적이 아니라, 책방 주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소명 의식 때문에라도 정말 열심히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활을 한 지 이제 1년이 넘었다. 아직도 병목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말 치열한 독서를 했던 1년이었다. 그동안 나는 또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저 독자로 머무는 것에 점점 자족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로 훌륭한 책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다 읽으려면 시간이 많지 않겠다는 것도 알았다. 내 글, 그 속에 담겨 있는 알량한 것들을 정말 아름답고 멋있게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도처에 너무나 많다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나보다 더 잘해주는 사람이 이미 충분해서 나는 옛날처럼 그냥 내 삶의 자존을 위해 독서만을 충실히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을 품고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여러분께서 보는 지금 이 글을 쓰느라고 읽고 싶은 책을 그림의 떡처럼 쳐다보면서 투덜거리는 글을 방금 트위터에 올렸다.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별로 훌륭하지도 않은 글을 머리를 싸매고 쓸 시간에 한 권이라도 더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아무튼 지금은 그냥 이런 상태다. 이제는 글을 그만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이렇게 뭔가를 쓰고 있다. 지금부터 내 취미의 연대기는 또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이 원고를 마치고 책부터 좀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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