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림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역:이수정)
ǻ
에피파니
   
19800
2018�� 07��



■ 책 소개
독일 서정시를 완성시킨 위대한 시인이자 완벽한 시를 쓰기 위해 스스로 고독의 길을 선택한 예술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의 시는 끝없는 존재 탐구를 기반으로 인간의 내면 속으로 파고드는 고독, 그 자체였다. 릴케의 시들은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며 입에서 입으로 애송되어지는 ‘언어 예술의 한 극치’이다. 때로는 섬세하고도 다정하게 시어에 숨을 불어넣고, 때로는 자유롭게 방랑하며 망망대해의 외로움을 선사하는 릴케의 시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 저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하사관에서 장교로 입신하는 게 꿈이었던 아버지와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소녀 취향을 갖고 있던 어머니 사이에서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로 길러졌다가 1886년 아버지에 의해 육군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참담한 시련의 시기로 묘사되고 있는 이 시절에 릴케는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들은 주로 감상적이고 미숙한 연애시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이러한 경향은 1896년 살로메와의 만남을 통해 크게 선회하게 된다. 특히 두 번에 걸친 러시아 여행과 스위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면서 얻은 깊은 정신적 영감을 바탕으로 초기시의 대표작 기도시집이 완성되었다. 그 밖에도 브릅스베데의 화가촌에서 하인리히 포겔러와의 만남, 1902년 파리 방문을 통한 로댕과의 만남은 형상시집, 말테의 수기의 집필 동기가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신시집은 사물시의 결정으로서 로댕과의 만남에서 얻은 조형 예술 세계 체험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스위스 체류와 제1차 세계대전의 체험, 아프리카와 에스파냐 등지의 여행은 릴케 말년의 역작인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이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녹아들어 죽음으로써 삶을 완성하는 존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사람과 사물, 풍경과 만남에서 그 내면을 응시하여 본질을 이끌어내고자 한 그의 글쓰기는 20세기 독일 현대 작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1926년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 역자 이수정
일본 도쿄대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철학전문과정 수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하이데거에서의 존재와 시간>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 일본 도쿄대학 연구원, 규슈대학 강사,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 객원교수, 미국 하버드대학 방문학자 및 한인연구자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월간 <순수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현재 창원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림 시집


초대의 말<
/P>시인 중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특히 여기 소개된 그의 시들을

추천합니다

강추합니다


정원보다 더 정원같은

장미보다 더 장미같은

숲보다 더 숲 같고

별보다 더 별 같은

그의 언어세계는 꿈의 푸른 원경입니다


고백하지만 

고등학교 때 읽었던 그의 시 ‘사랑’은

사랑보다 더 사랑이었고

마법이었고

경이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게 있을 수있나...’

그는 아름다운 언어의 한 극치를 보여줍니다.


호수의 백조보다 더 아름다운

생상스의 백조 같은


하늘의 별밤보다 더 아름다운

고흐의 별밤 같은

그런 시들을 릴케는 들려줍니다


모든 인간은

릴케를 읽은 이와 안 읽은 이로 나뉘어지고

모든 인생은

릴케를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뉘어집니다


릴케의 이 시집을 선물로 보냅니다

감탄사가 준비된 당신께

-2018년 초하(初夏) 이수정



저녁

쓸쓸히 마지막 집 뒤편으로

붉은 태양은 잠자러 가고,

그리고 진지한 마무리 곡조 속으로

한낮의 환호는 잦아든다.


분방한 빛들은 늦도록 아직

지붕 모서리들 위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논다.

밤은 벌써 푸른 원경 속으로

점점이 다이아몬드를 뿌리고 있는데.



나의 생가

어린 시절의 정든 그 집은

기억에서 한시도 떠난 적이 없네.

그 집 푸른 실크의 응접실에서

난 그림첩의 그림들을 보고는 했지.


거기에선 촘촘한 은실 가닥으로

잔뜩 치장을 한 인형의 옷이,

내겐 참 행복이었지; 거기에선 또 “계산”이

뜨거운 눈물을 내게서 자아내기도 했네.


거기에서 난, 알 듯 모를 듯한 부름에 따르면서,

시들을 손에 거머쥐곤 했고,

그리고 창 쪽 계단 위에서

전차나 배를 갖고 놀기도 했지.


거기에선 저 위 백작의 저택에서

한 소녀가 언제나 내게 윙크를 하곤 했는데...

그 당시 으리으리했던 그 저택도

이젠 깊이 잠이 든 모양새.


그리고 소년이 손으로 키스를 던졌을 때,

웃어주던 그 금발 소녀는,

아, 이제는 없네; 그녀는 조용히 쉬고 있다지,

더 이상 미소 지을 수 없는 먼 곳에서.



사랑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왔는가,

혹은 기도처럼 왔는가? - 얘기해보렴:


행복이 반짝거리며 하늘에서 풀려와

날개를 접고 커다랗게 걸쳐졌었지

꽃피는 나의 가슴에...


그건 하이얀 국화가 피어 있던 날이었다, -

그 짙은 화사함 앞에서 난 거의 불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때 네가 나에게로 와 마음을 앗아버렸다.

깊은 밤이었다.


나는 몹시 불안하였고, 그리고 네가 왔다 사랑스럽게 그리고

조용히, - 나는 막 꿈에서 너를 생각했었다.

네가 왔고, 그리고 은은히 동화에서처럼

밤이 울려퍼졌다...


어느 오월에 너와 함께 있다

그리고 둘이서 묵묵히 걷는다

향기 자욱이 번지는 꽃들의 불타는 대열을 가로질러

하이얀 자스민의 정자 쪽으로.


그리고 거기 그 바깥 오월이 만발한 속으로

가슴속 모든 소망들이 아주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행복 하나가 오월의 기쁨 한복판에서 피어난다

커다란 행복, - 바로 이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나는 모르겠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무슨 환희를 내가 엿보는 건지.

나의 가슴은 설레임 속에서인 듯 두근거리고

그리고 그리움은 마치 노래와도 같다.


그리고 나의 소녀에겐 명랑한 피가 흐르고

그리고 햇빛 가득한 머리카락이 있고

그리고 성모의 두 눈을 갖고 있다

오늘 아직도 기적을 행하는.


나는 포도덩굴 속에서 깊이 꿈을 꾼다

내 금발의 소녀와 함께.

그녀의 귀여운 손이 떨고 있다, 요정처럼 가냘프게,

뜨겁게 잡은 내 손 안에서.


마치 노란 다람쥐가 휙 달아나듯이

반사된 빛이 반짝 스치고

보랏빛 그림자는 하얀 옷에다가

자기의 얼룩을 그려넣는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행복이 내려 쌓인 듯

금빛 햇살의 침묵이 자리하고 있다.

거기에 빌로도 옷을 입고서 온다

꿀벌 한 마리가 축복을 윙윙거리며...


ⅩⅥ

나의 영혼은 행복을 탐낸다.

짧고, 어리석은 기적의 미망을...

샘물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소나무들의 속삭임 속에서

나는 그것이 다가오는 걸 듣는다...


그리고 보랏빛으로 꾸물대는 언덕으로부터

창백한 푸름 속으로 은빛 거룻배가 떠갈 때, -

그때 그림자 짙은 꽃나무들 아래서

나는 그것이 다가오는 걸 본다.


하얀 옷을 입고, 일요일에 나와 함께

먼지와 덤불을 가로질러 걸었던,

가슴엔 빨간 저 꽃만을 달았던, 없어진 그 사랑처럼,

그 행복도 꽃을 달고 있었던가?


ⅩⅥⅡ

어느 봄날인가 혹은 꿈에선가

나는 너를 만났었다, 그 언젠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함께 이 가을날을 걷고 있다.

그리고 너는 내 손을 잡고서 흐느끼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 때문에 우는가?

핏빛으로 붉은 나뭇잎 때문인가? 그럴 리야.

나는 느낀다, 네가 한 번은 행복하였다는 걸

어느 봄날엔가 혹은 꿈에선가...



발견

조용히 날개를 펼친 것처럼

저녁 바람 속으로 몸이 일렁일 때, -

나는 하염없이 걷고 싶다

계속 속으로까지. 거기엔 포근히

저녁놀의 고독에

그리움이 마치 정원처럼 놓여 있다.


아마도 거기서 난 너를 찾아도 좋으리,

그러면 조심스럽게 너의 첫 수고는

고통스런 소망들을 나에게 묶으리.

너는 나를 초원 속으로 깊숙이 이끌어가리-

그러면 남모르게 하이얀 메꽃들이

나의 먼지투성이 지팡이에서 꽃을 피우리

(중략)



숲 위에서 귀 기울이는

숲 위에서 귀 기울이는 구름들.

그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어떻게 우리는 배웠던가,

얼마나 재빨리 그것들이

꿈꾸는 곡식들을 잠깨우는 비가 되어

후드득 내리쏟아지는지를 우리가 알고서부터.


내가 믿는 건 정원들이다:

화단의 꽃들이 창백해질 때,

불 꺼지는 정자 아래 자갈밭에

보리수 사이로 걸러진 침묵이 흘러나간다.


둘레가 반짝이고 있는 연못 위에는

백조 한 마리가 물가에서 물가로 헤엄치고 있다.

그리고 백조는 은빛 반짝이는 날개 위에다

부드러운 첫 달빛을 싣고 가리라

이미 희미해진 물가로다가.


이따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 깊은 밤중에,

바람이 아이처럼 깨어나

가로수길을 따라 혼자서

살며시, 살며시 마을로 불어온다.


그리고 바람은 어루만지며 연못에까지 이르고

그리고 가만히 주변을 엿듣는다:

집들은 모두 창백한 빛이고,

참나무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서시(제1권 제2부)

무한한 그리움들로부터 유한한 행위들은 솟아오른다,

때가 되면 떨면서 기울고 마는

유약한 저 분수들처럼.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침묵하였을 것들,

그래, 우리의 즐거운 힘들이 – 모습을 드러낸다,

이 춤추고 있는 눈물들 바로 그 속에서.



가을

잎이 떨어진다, 멀리에선 듯 떨어진다.

하늘의 먼 정원들에서 시든 것처럼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지구가 가라앉는다

모든 별들에서 떨어져 나와 고독 속으로.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이 떨구어진다.

그리고 보라 다른 것들을. 모든 것 속에 그게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있어, 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그의 양손에 받아준다.



서시(제2권 제1부)

너의 아름다움을 언제든 내어줘라

계산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네가 침묵해도, 너의 아름다움이 말해준다: ‘나는 있다’고.

그러면 그 아름다움은 수천 겹의 의미로 오게 된다,

마침내는 모든 이들 위로 오게 된다.



사랑노래

나, 어떻게 내 마음을 가누어야 할까요?

내 마음이 그대에게 닿지 않게 하려면.

나, 어떻게 내 마음이 그대 너머에 있는 다른 사물들에게 닿게 해야 할까요? 아, 이 마음을 나는 무언가

어둠 속에 있는 분실물에게다 맡겨놓고 싶군요.

그대의 깊은 내면이 흔들리더라고, 흔들리지 않는

어떤 낯설고 조용한 장소에다가,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와닿는 모든 것이, 그대와 나,

우리를 함께 묶어버리는군요, 두 줄의 현에서

하나의 소리를 끌어내는 현악기의 활처럼.

어떤 악기 위에 걸쳐진 현일까요. 우리는?

어떤 악사가 켜고 있는 걸까요, 우리를?

오, 달콤한 노래여.



파란빛 수국

물감통 속에 마지막 남은 초록색처럼

이 잎들은, 꽃송이 뒤에서,

물기도 없고, 빛바래고, 그리고 거칠다, 꽃송이는

파란빛을 자기가 띠고 있다기보단, 그저 먼 데서 비쳐지는 느낌.


꽃송이는 그 파란빛을 눈물 번진 듯이 그리고 어렴풋하게 비춰준다,

다시금 그 파란빛을 잃어버리려는 듯이.

그리고 오래된 파란빛 편지지에서처럼

그 안에 노랑도 있고, 보라도 그리고 회색도 있다;


아이들 턱받이처럼 빨아서 빛바랜 걸,

더 이상 찾을 일 없는, 못 입게 된 헌 옷:

한 소소한 삶의 짧음을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가.



장미의 내부

어디에 이런 내부에 대한

외부가 있을까? 어떤 상처 위에다

사람들은 이런 아마포를 덮어줄까?

이 활짝 핀 장미의

이 근심 없는 장미의

안에 있는 호수에는

어떤 하늘이 비쳐질까, 보라:

어떻게 장미가 한 잎 한 잎 포개져 있는지를,

마치 어떤 떨리는 손도

그것을 흩트릴 수 없을 것이.

장미는 자기 자신을 거의

가눌 수가 없다; 수많은 꽃들이 너무 가득 차

내부로부터 위로 넘쳐흐른다,

나날들 속으로,

그 나날들은

점점 더 충실하게 자기를 완성해간다,

온 여름이 하나의 방이 되도록까지,

어느 꿈속에 있는 방이 되도록까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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