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딴생각

   
정철
ǻ
인플루엔셜
   
13800
2018�� 03��



■ 책 소개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되게 만드는 “딴생각의 힘”-카피라이터 정철의 크리에이티브 신공!

 

지나가는 길에 본 참새 한 마리를 두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은 무슨. 대부분 바쁘니까 그냥 지나간다. 그러나 여기, 짹짹거리는 참새에 빙의해서 연설문을 써내려가는 사람이 있다. 잡채로 시를 쓰라면 쓰고, 키보드를 두드리다 난 오타를 가지고 광고 카피를 쓰고,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을 가져다줘도 기발한 글을 써내려가는 고수 중의 고수. 바로 ‘사람이 먼저다’, ‘나라는 나라답게’ 등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캠페인 카피를 쓴 대한민국 대표 카피라이터 정철이다. 30년간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며 일상의 단어 하나, 발상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고 울리는 수천 개의 말과 글로 바꿔낸 정철, 그가 어떻게 하면 생각이 줄줄 나오게 되는지를 12가지 방법으로 보여주는 본격 ‘브레인스토밍 에세이’ 《틈만 나면 딴생각》이 출간되었다.

 

《틈만 나면 딴생각》은 그가 어떻게 하면 생각이 줄줄 나오게 되는지를 12가지 방법으로 보여주는 본격 ‘브레인스토밍 에세이’다. 시선 옮기기, 국어사전 펼치기, 발걸음 옮기기, 온도 높이기 등 12가지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딴생각들이 무려 184개나 담겨 있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되는 생각, 이제 딴생각을 따라 머리를 실컷 놀게 해보자.

 

■ 저자 정철
‘사람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
단어 하나, 발상 하나만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대한민국 대표 파워라이터

 

정철카피 대표,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초빙교수. 유명 브랜드의 광고부터 대통령 선거 캠페인 카피에 이르기까지 30년째 수천 개의 카피를 써온 대한민국 대표 카피라이터다.

 

그는 대통령 후보 문재인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했다. 한 번은 졌고 한 번은 이겼다. ‘후보 문재인’이 ‘대통령 문재인’으로 바뀌던 날 뜨겁게 울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답게’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 슬로건이 ‘나라를 나라답게’였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다른 시선, 기발한 아이디어로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그려내는 그는, 평소에도 수다 떨 듯 쉼 없이 떠들고 연필로 그림 그리듯 글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끝없이 딴생각에 빠진다. 그게 바로 30년을 쓰고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다.

지은 책으로 《카피책》, 《내 머리 사용법》, 《한 글자》, 《불법사전》, 《머리를 9하라》, 《인생의 목적어》, 《노무현입니다》, 《꼰대 김철수》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꼬리 1.
늦가을 풍경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 시선 옮기기

 
하나를 본다. 전후좌우로 시선을 조금씩 옮기며
그 하나 곁에 어떤 녀석들이 꿈틀대는지 살핀다.
눈에 걸려든 모든 것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낙엽의 추락 - 안개의 방해 - 노을의 승리 - 바람의 개입 - 가을비의 기도 - 구름의 증언
- 태양의 후회 -연기의 연기 - 벌레의 변신 - 달팽이의 관심사 - 뉴턴의 사과 - 연아의 충고 - 뿌리의 힘

 

꼬리 2.
인간이 발명한 위대한 혹은 위험한 녀석들 - 시선 비틀기

 
사물 하나에 능력 하나만 심어져 있는 건 아니다.
시선을 비틀면 처음 눈에 보이는 능력과 모순된 또 다른 능력이 보인다.
둘을 나란히 놓아본다.

시계의 초능력 - 소주의 초능력 - 화장지의 핵심 - 연필깎이의 일생 - 손톱깎이의 일생 - 양말과 모자 - 안경의 자기반성 - 안경의 변호인 - 보다 - 칼의 발견 - 총의 발끈 - 활의 늙음 - 자동차의 한계 - 비행기의 착륙 - 이런 발명품이 있을까 - 가족의 동의어

 

꼬리 3.
자신을 백설공주로 착각한 토끼가 있었다는데 - 파고들기

 
목에 깁스를 한다. 하나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그 하나 속으로 조금씩 깊숙이 파고든다.
줄줄이 엉킨 이야기들을 고구마 뽑듯 차례로 뽑아낸다.

토끼의 첫 데이트 - 쿵 - 눈 내리는 소리 -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 - 찾아볼까, 내 매력 - 무대와 상대 - 풀리지 않는 궁금증 - 패배 후유증 - 승리 후유증 - 금토끼 은토끼 - 관전평 - 경주 다음은 경주 - 바보 첨성대 - 존경, 포석정 - 하지만 포석정 - 다보탑 유감 - 두 번째 데이트

 

꼬리 4.
그땐 그랬다지만 지금도 꼭 그럴까 - 도둑질하기

 
격언, 명언, 속담 뭐든 닥치는 대로 훔쳐온다.
훔쳐와 비틀고 흔들고 뒤집는다. 패러디하고 재해석한다.
경찰을 두려워하면 손에 쥘 수 있는 건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 친구를 알려면 사흘만 함께 여행하라 -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펜은 칼보다 강하다 - 주사위는 던져졌다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 강물도 쓰면 준다 - 먼저 핀 꽃이 먼저 진다 - 웃으면 복이 와요 -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

 

꼬리 5.
‘잡’이라는 글자 하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방법 - 국어사전 펼치기

 
국어사전은 꼬리 물기 교과서. 단어 하나를 찍은 다음 위아래 단어를 노려본다.
단어 꼬리만 살짝살짝 바꾸면 뱀보다 길게 생각을 연장할 수 있다.

잡 - 잡념 - 잡곡 - 잡음 - 잡상인 - 잡담 - 잡다 - 잡범 - 잡식 - 잡채 - 잡티 - 잡문 - 잡스 - 잡기 - 잡탕

 

꼬리 6.
한 사람에겐 몇 가지 이야기가 살고 있을까 - 잘라 보기
 
하나를 하나로 보지 않는다. 토막토막 잘라 열을 본다.
그러니까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면
열 가지 이야기가 이미 찾아온 것이다. 먼저 우리 몸부터.

발 - 등 - 귀 - 눈 - 손 - 입 - 목 - 코 - 뺨 - 뼈 - 뇌 - 혀 - 이 - 맘 - 위 - 몸

 

꼬리 7.
도시의 오후를 풍경화 몇 장으로 그린다면 - 그림 그리기

 
글자로 그림을 그린다. 귀에 대고 말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려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다.

받들어 휴대폰 - 건널목 현수막 - 할머니의 전단지 - 엄마의 유모차 - 노점상의 꿈 - 축구공의 잘못
- 낮술의 위력 - 신호등의 색깔 - 아파트의 표정 - 놀이터엔 노인 - 하늘을 보는 사람 - 카페의 자유 - 잠긴 화장실 앞에서 - 미세먼지가 아니라

 

꼬리 8.
참새 이야기도 듣고 매미 이야기도 듣고 - 입장 들어보기

 
동물도 말을 한다. 짹짹 말을 하고 맴맴 말을 한다.
그런 소리 하나하나에 자기 입장이 있다.
일리 있는지 없는지 판단은 나중에. 무조건 듣는다.

참새의 호소 - 독수리의 굴욕 - 갈매기의 진심 - 기린의 배려 - 사슴의 항의 - 들개의 항복 - 개의 변론 - 소의 반론 - 쥐의 참견 - 고양이의 등장 - 하마의 하마 - 코끼리의 소신 - 원숭이의 슬픔 - 앵무새의 죄 - 매미의 큰일 - 귀뚜라미의 질문 - 호랑이의 포효 - 사자의 위엄 - 바람 가라사대

 

꼬리 9.
커피에게 마이크를, 가위에게도 마이크를 - 가까이에서 찾기
 
생각보다 많은 녀석들이 지금 내 손이 닿는 곳에 웅크리고 있다.
멀리서 생각을 찾지 말고 손을 뻗어 그들을 만난다.
그들 이야기를 듣는다.

커피, 걱정하다 - 설탕, 혼자 놀다 - PC, 한가하다 - 옷걸이, 의자를 보다 - 손수건, 조언하다
- 키보드, 한숨 쉬다 - 오타의 순기능 - 가위, 반론하다 - 연필, 고요하다 - 지우개, 으쓱하다
- 도자기, 실패하다 - 젓가락, 찾다 - 만년필, 반격하다

 

꼬리 10.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한 글자는, 왜 - 질문하기

 
엉뚱한 질문, 괴팍한 질문,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질문,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일수록 좋다.
물음표를 자꾸 던져야 느낌표를 건질 수 있다.

포유동물 고래가 왜 바다에서 살까 - 멸치는 왜 몸집이 작을까 - 고래와 멸치에게 공통점이 있을까
- 슬픈 질문 하나 하고 지나갈게 - 까치는 정말 좋은 새일까 - 누구의 유언일까 - 도마뱀은 왜 멸종하지 않았을까 - 바퀴벌레에게도 미덕이 있을까 - 삼각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 고슴도치는 왜 고슴도치일까 - 새는 왜 하늘을 날까 - 우리가 생선회 맛을 알까

 

꼬리 11.
연필 내려놓고 뚜벅뚜벅 거리로 나가면 - 발걸음 옮기기
 
앉아서는 잡히지 않는 생각, 발이 잡아준다. 책상을 떠나 거리로 나간다.
발이 데려다주는 모든 곳 이야기를 듣는다. 발로 듣고 발로 생각하고 발로 쓴다.

편의점이 보였어 - 세탁소도 보였어 - 은행도 보였어 -로또 판매점도 보였어 - 당구장도 보였어 - 꽃집도 보였어 - 밥집도 보였어 - 빵집도 보였어 - 앗, 반찬가게 - 버스정류장도 보였어 - 화장실도 보였어 - 택배 오토바이도 보였어 - 육교도 보였어 - 동냥그릇도 보였어 - 서점은 보이지 않았어

 

꼬리 12.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온도 높이기

 

생각에도 온도가 있다. 사랑 긍정 희망 위로 감사 믿음 배려 같은 성분 위에
앉아 생각을 하면 글 온도가 올라간다. 읽는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고맙습니다 연습 - 박카스 한 병, 고맙습니다 - 형광등, 고맙습니다 - 천장, 고맙습니다 - 종이, 고맙습니다 - 종이컵, 고맙습니다 - 어둠, 고맙습니다 - 국어사전 마지막 페이지, 고맙습니다 - 꽃님, 고맙습니다 - 나, 고맙습니다 - 가로등의 준비 - 분수의 기다림 - 자전거의 견딤 - 도를 아십니까 - 담벼락 낙서 1 - 담벼락 낙서 2 - 담벼락 낙서 3

 

안녕

 




틈만 나면 딴생각


늦가을 풍경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 시선 옮기기

낙엽의 추락

낙엽은 땅에 떨어지며 무슨 생각을 할까. 지난여름 그 싱그러웠던 초록빛을 그리워할까. 이제 어디로 굴러가 새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할까. 아니야. 아닐 거야.



오로지 착지. 매끄럽고 아름다운 착지. 10점 만점에 9.99를 받을 만한 황홀한 착지. 그래, 어제는 어제. 내일은 내일. 오늘에 집중. 지금 이 순간 가장 집중해야 할 일에 집중적으로 집중.


안개의 방해

내가 생각해도 정말 황홀한 착지였어. 내가 나에게 반할 뻔했으니까. 그런데 운이 없었어. 안개가 너무 짙었어. 누구도 내 착지를 보지 못했어. 억울해. 안개가 미워.


안개가 봤잖아


안개는 지금쯤 강 건너 대나무 숲으로 갔을 거야. 그곳에서 자신이 본 지상 최고의 착지를 실감나게 전파하고 있을 거야. 소문은 곧 네 귀에도 닿겠지. 최선을 다해 집중한 시간은 결코 너를 배신하지 않아.


연기의 연기

모두가 땅을 향하는데 연기는 달랐어. 녀석은 중력에 저항하며 하늘을 향했어. 하늘은 멀었어. 과연 끝이 있는 건지 확신도 없었어. 지루했고 힘들었고 외로웠지. 그러다 땅을 향해 부지런히 내려오는 햇빛을 만났어. 반가웠어. 안녕!


하지만 햇빛은 뭐가 그리 바쁜지 눈길도 주지 않고 스쳐 지나가버렸어. 연기도 반가운 표정을 얼른 거둬들였어. 처음부터 반가운 마음이 없었던 것 같은 표정을 지었어. 괜히 더 외로워졌어. 조금 더 올라가다 비를 만났지. 하지만 비 역시 무관심 무반응 무표정.


연기는 뒤늦게 알았어. 세상은 더 이상 반가움 따위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를 만나도 먼저 반가운 표정 짓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대 표정을 빠르게 살피며 그에 걸맞은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했어.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것도 자꾸 하니 늘더래. 마음과 다르게 짓는 표정이 차츰 자연스러워지더래. 이제 알겠지? 꾸며서 하는 표정이나 동작을 왜 연기라 부리게 되었는지.


그렇게 연기는 어른이 되고 말았어.



인간이 발명한 위대한 혹은 위험한 녀석들 - 시선 비틀기

시계의 초능력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능력. 과학과 의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인간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능력. 오로지 예수만이 가능했던 초능력.


죽었다 살아난다.


이런 울트라 초능력을 가진 녀석이 하루 종일 벽에 달라붙어 하는 일은 고작 내 점심시간 알려주는 일. 내 퇴근시간 챙겨주는 일. 일에는 귀하고 천한 게 없다지만 이건 아니지. 그만한 능력이면 종료 하나쯤은 가볍게 만들었어야지. 아무리 못해도 <죽었다 살아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나 <죽은 자들을 위한 넓고 얇은 지식> 같은 베스트셀러 몇 권쯤은 써 냈어야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자신의 능력을 자신이 모르는 것.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며 움츠러드는 것.


소주의 초능력

너를 만나면 나는, 죽었다 살아난다.


안경의 자기반성

코와 귀에 기대어 살면서 눈을 위해 일하는 나. 인생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안경의 변호인

안경닦이가 안경알을 정성스레 닦으며 말했어.


안경, 네가 눈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생각해봐. 작가는 네 덕에 세상을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지. 섬세한 관찰은 빛나는 발견을 낳지. 빛나는 발견은 싱싱한 글을 낳지. 싱싱한 글은 뜨거운 반응을 낳지. 그 뜨거운 반응을 듣는 건 누가지? 귀찮아. 네가 귀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야. 때론 반응이 너무 과분해 코가 시큰해질 때도 있지. 그래. 네가 코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야.


괜찮아. 너 잘 살고 있어.


비행기의 착륙

비행기는 아무 곳에나 착륙할 수 없어. 울퉁불퉁한 곳, 질퍽질퍽한 곳에는 착륙할 수 없어. 넓고 평평한 곳, 환하게 불을 밝힌 곳에만 착륙할 수 있지. 우리 인생도 늘 그런 안전한 곳에 착륙하고 싶어 하지. 울퉁불퉁 피하고 질퍽질퍽 피하고 넓고 환한 곳에 착륙하고 싶어 하지. 우린 그런 바람을 꿈이라고 하지. 그런데 착륙하기 전 꼭 취해야 할 행동이 뭔지 알아?


이륙.


바퀴 여러 개를 전속력으로 움직여 그 무거운 몸을 허공에 띄우는, 이륙이라는 행동을 한 비행기에게만 착륙이 허락되지. 화려한 착륙을 꿈꾸는 우리. 과연 이륙은 했을까. 바닥을 기며 현실을 박차고 뛰어 오르려는 노력은 했을까. 이륙도 하지 않았다면 착륙은 없어. 꿈에 닿는 일은 없어.



그땐 그랬다지만 지금도 꼭 그럴까 - 도둑질하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길을 따라 걸으면 고립될 위험이 없지. 안전하지. 편안하지. 평화롭지. 그래서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하지. 아주 귀하고 현명한 충고지. 그러나 길을 따라 걸으면 내 앞 사람이 본 것과 똑같은 풍경만 봐야 하지. 늘 재방송만 봐야 하지. 새로움을 만날 수 없지. 어쩌면 그건 고립보다 훨씬 안타까운 여정일 수도 있어. 길이 없다는 건 오히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길은 안전한 위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답은, 죽는다.


너무 쉬운 문제지. 누구나 죽지. 우리 모두는 결국 죽지. 그런데 햄릿은 왜 이런 쉬운 문제를 출제했을까.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시켜 왜 이런 쉬운 문제를 우리에게 던졌을까.


자꾸 까먹으니까.


지금 내가 안절부절 하는 일, 죽는 그날엔 이 일의 무게가 티끌만큼도 안 된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기 때문이야. 인생시험에서 가장 쉬운 문제지만 가장 틀리기 쉬운 문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풀기로 약속.


펜은 칼보다 강하다

말이 길면 힘이 약해져. 그래서 우리는 늘 짧은 말 한 마디를 원해. 이 명언 역시 짧아야 한다는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 물론 짧아지려고 문장 앞에 붙는 단어 하나를 잘라냈지만, 원래는 이런 말이지.


일부 펜은 칼보다 강하다.


일부는 누구일까. 칼이 되려는 욕심이 없는 펜. 펜이 칼이 되려 할 때 펜은 칼 눈치를 보게 되지. 쓸 것을 쓰지 않게 되지. 쓰지 않아야 할 것을 쓰게 되지. 실망스럽게도 우리 곁엔 칼보다 강한 펜이 몇 자루 없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병원으로 가겠지. 엑스레이 찍고 뼈에 금갔다는 것을 확인하고 깁스를 하겠지. 한동안 목발 짚고 다니겠지. 불편하겠지. 답답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가면 깁스 풀고 목발 던지고 다시 내 걸음을 걷겠지.


도끼를 믿은 대가가 이 정도라면 그냥 믿는 게 어떨까. 그냥 발등 찍히는 게 어떨까. 내 손에 쥔 도끼를 내가 믿지 못한다면, 행여 발등 찍힐까 의심하며 엉거주춤 나무를 찍는다면 과연 나무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발등을 찍은 도끼도 그를 다시 손에 쥐는 주인 믿음에 보답하려고 애를 쓸 거야. 더 열심히 더 힘차게 나무와 부딪칠 거야.

믿음. 길 게 보 면 웃음.



참새 이야기도 듣고 매미 이야기도 듣고 - 입장 들어보기

갈매기의 진심

내가 새우와 새우깡을 정말 구별 못한다고 믿니?


순진하긴. 나는 내게 새우깡을 들이대는 너희 손이 부끄러울까봐 일을 벌려주는 거야. 기억을 잘 더듬어봐. 내가 새우깡을 입에 물면 그 다음은 어떻게 했니? 너희로부터 멀리 날아갔지. 왜 그랬을까? 너희가 나를 볼 수 없는 곳, 그곳에 새우깡을 버리기 위해서였어. 새우깡은 새우가 아니니까. 지급을 열어 내 배고픔을 달래주려는 너희 배려가 너희 손을 부끄럽지 않게 하려는 내 배려로 이어진 거야.


염려가 가면 염려가 오지. 배려가 가면 배려가 오지.


사슴의 항의

모가지가 긴 짐승은 저 높은 곳 열매만 먹는 기린인데 왜 어느 시인은 나를 지목했을까. 왜 발랄하고 씩씩한 나를 슬픈 짐승으로 만들어버렸을까. 그래, 인간은 남을 올려다보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 그러니 기린 머리끝을 본 적도 없겠지.


시선의 한계.

시력의 한계.

시야의 한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양, 그것이 진리인 양 주장하는 인간의 그 참을 수 없는 좁음에 이 글을 빌려 정식으로 항의함.


하마의 하마

과도체중 인정하마. 운동부족 실토하마. 십삼겹살 반성하마. 십두박근 해체하마. 야식폭식 자제하마. 다이어트 결행하마. 사슴몸매 따라하마. 코끼리도 함께하마.


결심은 고독한 것. 혼자 하는 것. 조건을 내걸지 않는 것. 코끼리가 하면 나도 할래. 이런 건 결심이 아니지. 결심에 핑계 사절. 동반자 사절.


코끼리의 소신

하마야, 나는 살 배고 싶지 않아. 지금 내 몸매에 불만 없어. 공룡이 무거운 몸 때문에 멸종했다고? 아니, 공룡은 다이어트 하려다 멸종했는지도 몰라.


모든 동물은 자신만의 무게가 있어. 각자 자기 무게로 살면 돼. 왜 우리가 날씬해져야 하지? 왜 우리가 날렵해져야 하지? 날씬한 건 사슴과 기린에게 맡겨. 날렵한 건 치타나 표범에게 맡겨. 사슴을 닮은 코끼리, 이상하잖아.


난 더 먹을래.



커피에게 마이크를, 가위에게도 마이크를 - 가까이에서 찾기

커피, 걱정하

나 요즘 완전 뜬 것 같아. 길에 나가봐. 모두가 나를 들고 다니잖아. 점심을 굶었으면 굶었지 나를 굶지는 않아. 그래서 자랑이냐고? 아니, 걱정이야. 너무 떠서 그런지 발밑이 허전해. 이러다 한순간에 내동댕이쳐질 것 같은 불편. 길바닥에 흩뿌려질 것 같은 불길. 한때 유행으로 금세 잊힐 것 같은 불안.


나 어떡해? 지금 높이 괜찮아?


대신 깊어져야겠지. 더 깊은 맛과 더 깊은 향과 더 깊은 색을 찾아내야겠지. 높이를 목에 힘주는 데 사용하지 않고 깊이를 다지는 데 사용한다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문제는 늘 깊이 없는 높이. 깊이가 네 허전한 발밑을 채워줄 거야.


옷걸이, 의자를 보다

그가 외투를 벗었어. 벗은 외투를 의자 등판에 걸쳐 놓았어. 옷을 받지 못한 나는 할 일이 없어. 그래서 놀아. 무거운 짐 들지 않았으니 가볍게 몸을 흔들며 놀아. 놀면서 힐끔힐끔 의자 쪽을 봐. 자꾸 봐.


외로움이 뭘까.


내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삶 아닐까. 옷을 받지 못하는 옷걸이 아닐까. 옷걸이는 오로지 옷의 안녕을 위해 태어난 물건이니 옷이 옷걸이에게 다가가 안겼어야 했어. 내 무관심과 게으름이 누군가를 한없이 외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저금통 두고 빈 커피 병에 동전 모으는 습관 버려야겠어. 숟가락 두고 젓가락으로 밥알 깨지락거리는 습관도 버려야겠어.


당신을 곁에 두고 오늘은 누구를 만나 한잔할까 하는 생각도.


가위, 반론하다

내가 자르는 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 가위 하면 분리, 분단, 분열만 떠올리는데 결코 그렇지 않아. 내가 하는 일 절반은 오히려 붙이는 일이야. 접속, 접목, 접함 같은 일. 그러니까 본드나 딱풀 같은 역할.


내가 벽지를 자르는 건 사방 벽에 빈틈없이 벽지를 붙이기 위함이지. 수술한 몸에서 실을 자르는 건 꿰맨 곳을 흔적 없이 붙이기 위함이지. 불판에 누운 고기를 자르는 건 딱 알맞은 크기로 입에 붙이기 위함이지. 헴번처럼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는 건 예쁘게 사진 찍어 이력서에 붙이기 위함이지.


붙이려면 잘라야 해.


짝사랑하는 그 사람을 내 곁에 딱 붙이고 싶다면 가위를 들어. 허접한 연애론 찾아 듣지 말고 가위부터 들어. 그리고 잘라. 얼굴에 붙은 가면, 머리에 붙은 계산, 발끝에 붙은 망설임까지 모두 싹둑!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한 글자는, 왜 - 질문하기

포유동물 고래가 왜 바다에서 살까

바다에서 태어났잖아.


태어난 곳에서 사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지? 태어난 곳을 떠나 산다면 그때 이유를 물어야 하는 거 아냐? 고래는 그냥 바다에서 사는 거야.


호기심, 좋지. 뜨거운 탐구정신, 좋지.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분명한 이유와 그 이유가 초래한 납득할 만한 결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야. 그냥이라는 말이 그 어떤 이유보다 설득력을 지닐 때도 있지. 우리 곁엔 이유를 위한 이유, 이유가 필요해 태어난 이유가 너무 많아.


그냥 좋아. 그냥 만나. 그냥 놀아.


이유를 놓아버린 이런 말과 조금 더 친해지면 안 될까. 조금 더 헐렁하게 조금 더 느슨하게 살면 안 될까. 이유에서 한 뼘 비켜서면 이유의 반대말이 보일 거야.


누구의 유언일까

한때는 내가 동물의 왕이었는데.


그래, 공룡의 유언이야.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짧은 유언에서 가장 뼈아픈 말은 무엇일까. 첫 세 음절. 공룡뿐 아니라 사람도 그래. ‘한때는’이라는 말을 꽉 붙들고 사는 사람이 가장 먼저 멸종하지. ‘한때는’의 절친은 ‘왕년에’.


고슴도치는 왜 고슴도치일까

고슴도치를 만났어. 물었어. 너 안중근 아니? 잘 모른다고? 안중근 같은 훌륭한 분을 어떻게 모를 수 있니? 제발 책 좀 읽어. 위인전을 읽든 독립운동사를 읽든.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것도 당연히 모르겠구나. 너 같은 녀석이 깊이 새겨야 할 말인데.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온몸에 가시가 돋는다.


성게야 너도 듣고 있니? 장미 너도 듣고 있니?


새는 왜 하늘을 날까

땅에도 좋은 길, 넓은 길, 예쁜 길 많고 많은데 왜 힘들게 하늘을 날까. 새는 정해진 길을 따라 걷기 싫어 하늘을 선택했을 거야. 자유본능.


새에게도 있고 당신에게도 있는 자유본능. 새는 행동으로 옮겼고 당신은 생동으로 옮길까 말까 자꾸 망설이는 자유본능.



연필 내려놓고 뚜벅뚜벅 거리로 나가면 - 발걸음 옮기기

편의점이 보였어

스물네 시간 문을 열어둘게. 네가 찾는 물건 다 갖다놓을게. 유통기한 지난 건 바로바로 치울게. 현금도 받고 수표도 받고 카드도 받을게. 컵라면을 위해 뜨거운 물도 준비할게. 햄버거를 위해 전자레인지도 준비할게. 가게 앞에 맥주 한잔 할 테이블도 마련할게. 행여 있을지 모르는 위험한 침입자를 고발할 씨씨티비도 달아놓을게. 네가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 절대로 관심 갖지 않을게. 네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을게. 하여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편의를 갖춰놓을게.


친구 하나만 주세요. / 그런 건 없어.


은행도 보였어

번호표를 뽑아야 해. 번호표를 뽑지 않으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이곳에서 네 이름은 23번이거나 74번이거나 112번. 누구나 숫자 이름을 가지. 돈 많은 고객도 가난한 고객도 먼저 온 순서대로. 번호표대로. 정말 정의롭지 않니?


뭐 그렇긴 한데, 진짜 부자는 번호표 뽑지 않는대. 은행에 가지 않는대. 은행이 그에게 간대. 그가 은행을 일렬로 세우고 번호표 뽑으라고 한 대.


로또 판매점도 보였어

너, 느닷없이 네 인생을 침범하는 칠십억 원을 감당할 수 있겠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지나쳤어.


버스정류장도 보였어

정류장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셋 있었어.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있었고 한 사람은 서 있었어. 버스가 왔고 그들은 한 버스에 올랐어. 서 있던 한 사람은 앉았고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섰어. 그들 모두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표정에 별 변화가 없었어.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 가는 인생은 없어. 있다면 운전기사뿐. 우리 모두는 버스 타고 인생길 여행하는 승객. 누구나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지. 지금 서 있다면 곧 앉게 될 거야. 지금 울고 있다면 곧 울게 될 거야. 지금 많이 아프다면 곧 ‘아프다’가 ‘아팠다’로 바뀔 거야.


버스가 다름 정류장에 섰어. 빈 좌석은 없었어.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 모두 버스에 올랐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어. 다음 버스엔 빈 좌석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다음 버스니까. 우리 모두는 지금을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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