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간이 다하더라도

   
김유민
ǻ
쌤앤파커스
   
13000
2018�� 06��




■ 책 소개

열일곱 해를 함께한 반려견 ‘복실이’와의 이별 준비로 수많은 반려견 가족들의 마음을 울린 ‘김유민의 노견일기’(<서울신문> 연재). 저자 김유민은 복실이와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둘만의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고자 펜을 들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에 수많은 반려견 가족들이 공감해주었고 복실이와의 남은 시간을 기꺼이 함께해주었다.

책에는 연재 당시에는 차마 쓰지 못했던 저자와 복실이의 아스라한 일상, 이별을 준비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곤 했던 감정들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따스하고 정감 어린 그림들로 수많은 에세이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그림 작가 김소라가 저자와 복실이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감동을 더한다.

 

■ 저자 김유민
늙고 몸이 아픈 강아지 복실이의 누나.

초등학생 때 만난 복실이와 열일곱 해 동안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추억을 쌓았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살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복실이와의 일상을 기록하고 노견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려 <서울신문> 온라인판에 ‘김유민의 노견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얼마 전, 버려진 기억에 마음이 아픈 유기 강아지 행복이를 새 가족으로 맞이했다.

 

■ 그림 김소라
대학원에서 그림책 만들기를 배웠다.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그림 그리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린 책으로 《지느러미 달린 책》, 《코끼리의 마음》, 《고슴도치의 소원》, 《있잖아, 누구씨》가 있다.

 

■ 차례
프롤로그_ 이별 준비

너의 빈자리
너는 알까?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사랑한다는 것은
첫 만남
세상의 전부
너를 돌보며 나를 돌본다
기억하고 있어
힘내!
복실이와 유모차
기다림
언제나 오늘 같았으면

# 친구들의 편지_ 함께 걸어줄게

첫눈
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
우리라는 기쁨
단호박 소고기 완자
가족사진
내 마음속 비밀번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복돌이와의 짧은 추억
다행이다
살아 있음에
잊지 않으면 잃지 않아

# 친구들의 편지_ 눈빛이 맑았던 너

오늘도, 오늘 더
만질 수 있음의 소중함
고구마 소동
늘 곁에서 지켜주고 싶지만
가려지지 않는 세월의 흔적
늙은 개는 눈으로 말한다
발맞춰 걷기
산악견 복실이
우리, 제주도 가야지
난 괜찮은데
그렇게 오늘이 왔다

# 친구들의 편지_ 다시 주어진 기회

늙음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
어느 금요일
미안해, 많이 외로웠지
한밤중 동물병원
벼랑 끝에도 꽃은 피더라
치매라니
공명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하기 좋은 날
내 안의 감정

# 친구들의 편지_ 휠체어를 탄 개

너의 의미
최선의 한계
같은 시간 다른 속도
다들 어디로 갔을까?
늙은 개와 버려진 개
너의 이름은.
다시 아기가 되다
즐거운 포기
작아지지 마
네가 가르쳐준 것
예쁘지 않아도 돼
행복을 줍다
괜찮아?

에필로그_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너의 시간이 다하더라도


프롤로그_ 이별 준비

복실이의 오른쪽 목에 난 종기는 한참이 되었는데도 좀처럼 아물 줄 모른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보기 싫게 나와 있는 피고름을 물티슈로 꾹꾹 눌러 닦아준다. 그럴 때마다 퍼지는 비릿한 냄새.


그렇게 상처가 나면 이제는 털도 잘 나지 않는다. 건강했을 때는 이름처럼 복슬복슬한 털로 제법 큰 상처도 잘 가려졌는데.


이제는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상처들을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는 게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옷을 입히게 된다.


녀석의 눈은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산책을 나가서도 늘 지그시 감고 있다.


하루 종일 졸음이 떠나지 않는 눈.


그래도 마치 현자 같은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에게 상처받고 일에 치여 복잡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뿌옇게 변해 잘 보이지도 않는 눈동자에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서도 우리 가족만은 용케 알아보곤 곁을 찾아 자리를 잡고 머문다.


늙은 개와 함께한다는 것.

미처 준비하지 못했고,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좋은 것을 주진 못했지만, 언제나 마음만큼은 그 무엇보다 최고의 것만 주었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이렇게까지 온종일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다니.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사실에 놀라곤 했다.


너의 사랑스러움에 웃음이 끊이지 않던 수많은 날들. 이제는 한 통을 다 쓴 필름처럼 스르륵 감겨버렸다.


그렇게 지나간 날들이 기쁘고 즐거웠던 만큼 앞으로 다가올 남은 시간은 분명 슬프고 힘이 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녀석이 사라져 아파할 나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복실이가 나에게 평생 그러했듯, 이제는 나도 녀석을 먼저 생각하려고 한다. 의젓하고 아름답게, 너의 시간이 다하더라도.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 깊이 와닿는 걸 보면 경험만큼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슬프겠다는 친구의 위로가 고맙지만 그럴수록 진정 이해받을 수 없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같아 더 외로워졌다. 그래서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위로가 절실했다.


나처럼 새천년 시작과 함께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집이 많았다. 그 녀석들의 지금 모습은 어떤지 궁금했다. 인형같이 귀여운 어린 강아지 사진은 많은데, 늙고 아픈 개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많던 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내일 당장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 늦기 전에 어느새 늙어버린 복실이와의 시간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푸들.

열일곱 해를 살아낸 복실이의

마지막 순간들을 함께하고 있어요.

마지막 순간들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조금씩 그렇게 견뎌내고 있어요.


마음속 담아둔 감정을 표현하니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힘이 솟았다. 받아들일 수 없어 당황스럽고 슬프기만 했던 마음도 진정이 됐다.


하나둘씩, 그들도 복실이처럼 늙은 개가 있다고, 그리고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으면서 따스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어딘가에 있을, 나처럼 홀로 외로울 누군가에게 내가 받았던 따스한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첫 만남

복실이는 아빠 지인이 키우던 강아지의 새끼 중 하나였고 분양을 받아 우리에게 오게 되었다. 복실이가 우리 집으로 오던 날 지하철의 소음 속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처음 보았을 텐데도 얌전하게 품에 안겨 있었다고 한다.


강아지는 절대 안 된다던 아빠가 복실이를 데려왔다는 것이 지금도 신기할 뿐이다.


복실이는 아빠가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세상의 전부

부러운 게 많았던 어린 시절, 복실이는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던 그 시절 우리 집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괜히 으쓱했다.


학교 가는 아침에는 거실 저편에 있는 복실이가 아른거려 몇 번이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엄마에게 한소리 듣기 일쑤였다.


학교가 끝나면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가방이 열린 줄도 모르고 우다다 뛰어가 복실이를 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매일같이 나를 기다리고 반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기쁘고 든든했다. 어떤 조건도 없이 와락 안기고 뽀뽀해주는 녀석 때문에 매일 미소가 나왔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 함께 공유할 주제가 없어 고요하기만 했던 집안의 공기도 복실이의 몸짓과 재롱에 대한 대화로 물꼬가 트여 조금씩 채워졌다.


초롱초롱 그 자체로 윤기가 나는 시절이었다.


처음이라 이것저것 서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사료나 영양제 없이도 아픈 데 없이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복실이는 우리 가족을 세상의 전부로 믿고 의지했다.

나 또한 복실이가 세상의 전부였다.


그렇게 늘어가던 복실이의 무게만큼

사랑도, 책임감도 커져갔다.



너를 돌보며 나를 돌본다

개는 

일곱 살까지는 함께 즐거워하는 존재고

그 후부터는 반려하는 존재가 되고

열 살이 넘으면 봉양해야 하는 존재가 된단다.


보살피는 시간이 훨씬 많아진 지금,

돌아보면 지나간 시간들이 정말 그러했다.

우리의 시작에는 즐거움만 가득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더해졌다.


복실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갑자기 찾아온 노화는 한없이 안쓰럽고 미안했다.


어쩔 줄 모르는 채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무력해지는 마음을 힘겹게 부여잡고

시간과 마음은 물론이고 돈도 적잖이 써야만 했다.


그런데,

복실이가 나에게 곁을 내어준

열일곱 해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고 너무나도 작은 것이었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네가 좋으면 나도 좋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아니길.


그 마음 더 표현하고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좀 더 남아 있길.


다행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하루의 대부분을 몰두하던 학창 시절, 엄마는 나가서 돈도 벌고, 살림도 하고, 우리들 학원도 보내야 했고, 짜내고 아껴서 저축은 물론이고, 집안의 크고 작은 경조사를 챙기느라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었다. 돌아보면 당연하지 않은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당연한 듯 감당하느라 엄마는 늘 외로웠다.


그랬던 엄마가

우리 집의 새로운 막내,

복실이를 만났다.


엄마는 기운 넘치던 복실이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매일같이 앞산을 올라야 했다. 그 산책이 엄마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했던 우울한 감정을 씻어주었다. 일과가 된 녀석과의 산책 덕분에 엄마는 눈에 띄게 건강하고 밝아졌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관계가 질투도 나고 서운하지만, 많이 외로웠을 엄마에게 복실이 같은 막내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늙은 개와 함께하는 하루는 지치고 외롭다. 예쁜 옷을 입고 주인과 뛰어노는 수많은 개들 사이 어기적어기적 걷는 개와 보조를 맞추다 집에 들어오면 뛰어다니던 때보다 더 힘이 든다.


제자리걸음 같은 산책은 “어디 아파요?” 또는 “저 강아지는 많이 늙었나봐” 같은 유쾌하지 않은 소리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는 그래서 잘 이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 시골집에 보냈다거나 형편이 되지 않아 누군가에게 주기도 한다.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 나를 세상의 전부로 아는 작고 힘없는 생명이 주어진 생만큼 살다 갈 수 있는 것이 당연했으면 좋겠다. 짧은 생일지라도 따뜻함을 주고받기를, 버리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싶다. 그런 우리라면 나의 늙음 또한 두렵지 않고, 타인의 늙음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므로.



같은 시간 다른 속도

너와 나는 같은 시간들을 공유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속도로 살고 있었다.


저만치 멀어져만 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만큼일까.

그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괜찮아.


지금, 여기에서 함께 있으니까.



다시 아기가 되다

언제 그랬냐는 듯 흘러가버린 시간. 초등학생이던 누나가 서른이 됐으니 녀석도 내가 기특할까. 꼬꼬마가 커서는 나를 보살펴준다며 흐뭇해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녀석이 집에서조차 길을 잃었다.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니 긴 다리가 이젠 불안해 보인다. 누워 있다 일어나면 몇 초는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헛발질을 하는데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고 일으켜 주면 그때서야 첫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엉금엉금 거북이 같은 걸음에 사랑한다 속삭이고 쓰다듬어준다.


기우뚱기우뚱 몇 발자국 걷다가 발을 헛디뎌 물통에 빠져 억울한 눈빛으로 올려다본다. 괜히 멋쩍은지 두리번거리다 우연히 코에 닿은 물의 촉감을 느끼고 한참 목을 축인다. 별거 없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이 하나하나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다.


복실이는 다시 아기가 되었다. 작고 꼬물거리던, 만지기조차 겁났던 새끼는 일어서고 눕고 먹고 쌀 때조차 가족의 손길이 필요한 할아버지가 됐다.


한창 젊고 바쁠 때는 몰랐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이제야 알 것 같은데,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천천히 안녕하고 싶은데.


최대한 함께, 남은 시간들을 진하게 소중히 보내기.

늙은 개, 아니 여전히 사랑스러운 강아지와의 이별 준비.



에필로그_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저녁약속도 실컷 잡고, 여행도 마음 편히 떠났을 텐데.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병원비도, 네가 먹을 음식도, 그 음식에 넣을 약도 필요 없었을 텐데.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똥오줌이 마려울 때마다 안아서 베란다에 내려놓고 기다리고, 밟지 않게 다시 안고, 뒤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이별을 걱정하며 흐르는 시간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말이야, 정말 다행이야. 네가 가족이 된 이후로 모두가 집에 가는 길을 기다려. 꼬리를 왼쪽 오른쪽 사정없이 흔들며 반가워하는 너의 몸짓 한 번에 하루의 피로가 날아가거든. 꼭 안고 있으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따뜻해져서 위로가 되거든.


네가 주는 위로에 비하면 먹을 것을 만들고, 약을 타오는 정성은 얼마나 작은 것인지 몰라.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나만 아는 어른으로 살아갔을지 몰라. 작고 연약한 생명을 하찮게 여겼을지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꺼이 베풀 수 있는 마음이라는 걸 몰랐을 거야. 받기만 하는 사랑에도 불평만 했을지 몰라.


우리가 함께했음에, 지금도 함께하므로 감사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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