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보통명사

   
조소담
ǻ
21세기북스
   
14000
2018�� 03��



■ 책 소개

20대 여성 CEO,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 유리천장을 깬 여성,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닷페이스 대표 조소담이 브런치에서 ‘썸머’라는 필명으로 써내려간 한 편 한 편을 모아 내놓은 첫 산문집 『당신이라는 보통명사』.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며, 우리가 왜 사소하고 서툴렀던 순간을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의 연애담에는 ‘나’의 다양한 형상이 등장한다. ‘도구적 존재로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에서 ‘영리하게 욕망을 교환할 줄 아는 나’를 지나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모름을 연출하며 즐기는 노련한 나르시스트’까지. 저자는 욕망을 말할 수 있는 주체이자 타인의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나’를 재료로 세상에 대한 잔잔하면서도 예리한 사유를 펼쳐놓는다. 감성적인 단어나 기교를 뽐내는 문장 대신 뚝뚝 끊기는 단순한 문장들 사이로 꾹 참고 있는 울음이 보이고, 푹 배인 진심이 묻어난다.

 

■ 저자 조소담
저자 조소담은 인생 목표는 2050년50에 태어난 꼬마에게 ‘내가 세상이 바뀌는 순간에 이런 역할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큰 욕심 없이 자기 주변 3미터 이내의 세계부터 좋아지길 바라며, 꼭 마주해야 할 장면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닷페이스>를 통해 전하고 있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 대표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내는 동시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내밀한 속내를 ‘썸머’라는 필명으로 일기처럼 써왔다. 스스로를 잘 돌보는 일과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거쳐 깨달았다. 그리하여 아주 오랫동안 상실과 사랑에 대해 쓰고자 한다.

 

포보스가 선정한 ‘유리천장을 깬 아시아 여성 20인’,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등 해가 갈수록 이름 앞에 기다란 수식어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길거리에서 사먹는 타코야키 한입에 금세 행복해지는 일상을 살아간다.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더 자주 느끼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 차례
프롤로그 옛날 일기를 읽다가 느낀 것

 

1부
낭만이란 무엇인가
상견례
대청소
새벽에 깨다
치매
화초가 죽어가고 있다
청첩장 모임에 다녀오다
번아웃
고양이, 멀리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시답잖은 생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혼자 밥 먹는 것에 대하여
불면증
아버지

 

2부
팝콘꽃 : 2월 어느 날의 일기
사랑에 빠지는 순서
겨울에 사랑하기
중력이 너무 커서 나는 정말 어지러워
바짝 깎은 손톱
열대야
앵무새
변덕
헤어지는 중입니다
외로운 티
지배자
좋은 연애
고요하게 살고 싶다 : 다시 1월 어느 날의 기록

 

3부
당신이라는 보통명사
그때 우린 행복보다 불행을 원했다
인형의 권력
혼잣말 같은 연애
고슴도치의 사랑
나도 오랜 시간 잔잔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지

 

4부
타자기에 손을 얹다
사랑이라는 단어
가을 냄새를 맡다
양갱과 소주 토닉
생리통
외출이 싫은 날들
샤워
명절 일기
애견기1
애견기2
장거리 달리기
외할이버지 댁
괜히 전화했나
자취인의 겨울

 

5부
일상적인 문장이 힘을 잃는다
덜 부끄러우려면 용기를 내야 해
아버지의 이력서
어린이날
학교에서 배운 것
오프라인
비행기 모드
페친 정리
친구의 사랑
상실에 대하여
목숨길
빈둥대는 삶에 대하여
지하철 2호선
9기 대학생
종이접기 아저씨
오늘을 산다
오키나와에서 너에게 쓴 편지

 




당신이라는 보통명사


1부

낭만이란 무엇인가

나는 은근히 운명론자다. 세상엔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존재하고,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꽁무니를 엮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실은 흔한 무명실 같은 것은 아니어서, 갈래갈래 찢어지기도 하고 얇아졌다가도 세월을 돌아 다시 두터워지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상상한다. 운명의 실이 사람에게만 이어져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인연의 우주라는 것이 너무 좁지 않나.


내게 특별히 편안한 장소

나에게만 좋은 풍경

내 손에 착 붙는 물건

내 마음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문장

안 사고는 못 배길 선물 같은 걸.


우리는 스치듯 겪더라도 인연을 만나면 그게 인연인 것을 안다. 인연을 만나면 한순간에 마음의 온도가 달라진다. 그 인연은 붙잡아 온몸을 열면 인연이 존재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 존재가 사는 공간의 온도를 바꾸고 공기를 바꾼다.


낭만이란, 그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되새김하는 것이다.


사진가는 그런 순간을 위해 한쪽 눈을 감고 렌즈를 들여다본다. 방랑자는 바람이 좋아서 길가에 눕고, 사람들은 사랑을 기다리며 창문을 연다. 번잡한 길에서 서로 시선을 던지고, 입술을 깨문다.


아저씨들은 대학가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흘러나오는 노래와 함께 취한다.

정성스레 적은 편지를 봉하며 편지 봉투에 입을 맞추고, 10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

가만히 손끝으로 누군가의 얼굴선을 만져보는 것.


멈추는 시간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낭만의 몸이다.



대청소

가구를 닦거나 책을 정리하다 보면 으레 흔적을 발견한다. 먼지 구덩이 책장 한편에 무슨 글자들이 보였다. 하얗고 비뚜름하게 쓰여진 글씨.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자, 라니.

언제 써놓은 거지?


요즘엔 다르게 생각한다.


‘괜히 너무 최선을 다하진 말자.’


다시 먼지를 쓸었다.

나는 점점 더 내 편이 되어가고 있다.



번아웃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쉽게 흐른다.

너무 쉬워서 살아 있음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나는 오늘도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하루를 살았다.

너도 아마 그럴 테니까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에

실망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는 거다.


아마 우리는 평생토록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간극이 가끔은 마음을 외롭게 하지만,

내 외로움이 깊은 만큼

너도, 우리도 모두 깊게 외롭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싶다.



2부

앵무새

앵무새는 구애할 때 가슴을 한껏 부풀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껏 나를 부풀리는 이유는 실제 내가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게 상처나 열등감을 주는 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연애

옛날 남자 친구의 메모를 보게 됐다. 후회되는 것이 많고, 사과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써놓았다. 연애 후의 자기반성은 언제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사람의 몫이다. 더 사랑한 사람이 더 상처받을 순 있지만 그 상처는 흉이 아니다.


좋은 사람과의 연애는 이별한 후에도 좋은 연애로 남았다. 연애에서 주고받는 상처는 서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서 가장 약한 모습을 내보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헤어짐 뒤의 후회는 사실 ‘왜 좀 더 나는~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거 같다. 자신의 한계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듬어주었으면 좋았을 순간을 놓친 것. 더 솔직할 수 없었던, 더 배려할 수 없었던, 자기 마음을 잘 챙기는 데만 급급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런 후회의 과정 뒤에는 좀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내 한계를 견뎌내는 힘이 생긴다.


나에게 다시금 사과를 하고 싶다는 전 남자친구의 글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이 사람과 한 연애가 이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 되었나 보다.’


그렇다면 참 고마운 일이다. 별 소용은 없지만.


나도 누군가와의 이별에서 큰 상처를 주고 오랜 후 그에게 그 모든 고민의 과정과 사과를 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었다. 그래도 전하지 않았다. 전하지 않고 흉터로 남겨야 더 좋은 것도 있다.



3부

당신이라는 보통명사

사랑에 빠진 기간엔 항상 생각했다. 내가 글로 적지 않는 날에도 나의 하루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내가 지쳐서 기억하지 못할 순간들까지도 당신이 기억해줄 테니까.


그렇게 ‘당신’이라는 보통명사에 의존해온 기억들은 어느 날 한숨에 모두 사라졌다. 나는 나의 인생을 복원하지 못한다. ‘당신’들에게 맡겨둔 어떤 순간들의 의미. 그렇지만 그 기억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가. 기억의 조각들만 가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로 흩어진다.



혼잣말 같은 연애

조문 가던 날을 기억한다. 언니의 검은 원피스를 빌려 입고 고속버스를 탔다. 창에 기대서 핸드폰을 뚫어져라 봤다. 한참 연락이 없기에 그럴 만한 상황이겠거니 짐작했다. 네이버에 ‘조문 예절’을 검색했다. 절은 두 번 반, 오른손을 왼손 위에, 아니 여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절을 하다 넘어지면 어떡하지. 양말에 구멍이 나 있으면 어떡하지. 나는 옆자리가 빈 버스 안에서 조용히 신발을 벗어 발바닥을 확인했다. 다행히 구멍은 없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리고도 한참을 갔다. 택시가 잘 잡히지도 않는 동네였다. 한가로이 달리던 차 하나를 잡았다. 장례식장 이름을 말하니 기사는 대꾸도 없이 엑셀을 밟았다. 동네가 한산하다고 해야 할지, 덜 채워졌다고 해야 할지. 눈높이보다 높이 세운 건물이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장례식장 주변은 휑했다. 그곳은 양옆으로 초라한 슈퍼와 구멍가게를 끼고 있었다. 누가 엎어놓고 떠난 마분지 박스 같았다. 바람에 덜덜 흔들릴 듯했다.


장례식장 입구엔 네온사인으로 상주와 고인의 이름, 배정된 호실이 번갈아 표시됐다. 야구 게임장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다. 빨강에 초록 네온. 그 위에 A의 이름이 있었다. A를 처음 보고 나는 웃었던가, 울었던가. 울다가 눈물을 닦고 웃었던가. 그 애를 먼저 안아주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A는 울지 않았다. 애정 없는 친척의 상이라 말했다. A는 밧줄 둘린 이상한 모자에 토시를 하고 있었다. 본 적 없는 양복 차림에 몸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셔츠가 어색했다. 나는 A를 때리며 좀 웃었다. A는 장례식장에서 급히 빌린 옷이라고 했다.


나는 육개장 그릇을 나르지 못했다. 뭐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방에 갔다가 A의 어머니에게 혼쭐이 났다. 등떠밀려 상에 앉아 편육을 먹었다. 내 생에 가장 맛없는 편육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죽음에 출장을 와서는 누가 버린 재활용 가구처럼 가만 앉아 편육을 씹었다. 속으로 주말이 아깝다 생각했다. A는 나를 신경 썼다. 내 옆에 앉아 있어주었다. 그가 신경을 써주는 게 불편했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나은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달라는 걸 주고, 받고 싶은 걸 받고.


A는 동아리에서 만났다. 나이는 같았지만 행동이 애 같았다.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그날 저녁은 그 메뉴를 먹으러 가야 했다. 내가 종이처럼 밥을 씹고 있어도 별 미안함 없이 계속 같은 식당을 데려갔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게 징그럽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게 편했다. 내가 이기적으로 굴면 이기적이라고 나를 욕해줘서 편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돌리지 않고 ‘떼를 쓰는 모습’이 편했다. 사랑에서 뭘 줘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관계가 있고, 뭘 줘야 할지 분명한 관계가 있다. A는 후자였다. 나는 A를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뭘 달라고 할 때 주는 정도의 관심으로 A를 대했다. 달라는 걸 주고, 나는 받고 싶은 걸 받았다.


A와 있는 시간은 장례식에서 식은 편육을 먹는 것만큼 지루할 때가 많았다. 그는 나를 보고 자주 감탄했다. “대단하다. 너는 정말 대단해.”


이 말은 번역하자면 이랬다. ‘대단하다. 너의 불행은 정말 대단해. 너는 어떻게 그 불행들을 뚫고 살아올 수 있었어? 나는 한 번도 너만큼 불행한 적 없었는데. 네 불행이 참 매력적이야.’


A는 인생에서 겪은 고비라곤 수능밖에 없는 지루한 서사의 인간이었다. 세상에 대해 평론하고 싶은 것이라곤 맛집밖에 없는 인간. 이 가게 점원 태도가 어쩌네 저쩌네, 하며 아르바이트 생의 인성을 운운하는 A를 볼 때는 속으로 그를 멸시했다. 사랑이 도취나 찬양이 아닐 수 있고, 어떤 욕구의 교환일 수 있다는 걸 A는 내게 가르쳐줬다. 내가 그를 멸시했던 것은 그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4부

타자기에 손을 얹다

올빼미형 인간을 탈출하기로 했는데, 작심삼일의 인생을 반복하며 또 지금 이 시각, 새벽 2시. 일기를 써야지. 육필로 쓸까 했는데 손이 느리고 손마디가 아파 결국 타자기에 손을 얹었다.


타자로 글을 쓸 때는 너무 빠르게 쓰게 된다. 숨도 고르지 않고 아무 말이나 털어낸다. 커서를 따라 쉴 틈 없이 문자들이 달려나간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번에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김훈은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쓴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을 쓸 때 그는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두고 고심했다고 한다. 조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은 것이다. 나는 글자 하나도 고심해서 쓰고 지우고, 또 한 번 고심하는 그 숨을 따라 하고 싶었다. 칸과 칸 사이에 끼어드는 한숨, 콧바람, 지우개 가루 같은 것들.


무라카미 하루키도 글을 고칠 때는 김훈처럼 연필을 쓴다고 한다. 하루키의 책상에 놓인 유리컵엔 가지런히 깎아둔 연필이 다발로 꽂혀 있다. 그는 연필로 문장을 고치면서 연필이 짧아지는 걸 보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오늘 들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는 연필에 대한 멋진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나는 연필을 그렇게 멋지게 정의한 글을 본 적이 없다.


“지하에서 자란 광물과 지상에서 자란 식물이 서로 안은 것. 단단하고 외롭게 누워 있는 선. 1킬로미터 길이의 시.”


연필로 무언가를 쓰면서 우리의 존재는 미세하게 바뀌고 있다는 문장도 좋았다.


4B의 연필심을 가진 사람은 물성이 무르고, 관찰한 것의 명암을 더 진하게 그려내고, H의 연필심을 가진 사람은 획이 날카롭다. 생각건대, 나는 아마도 B에 가까운 심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나를 위해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삶에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우리의 존재를 계속 미세하게 바꿔나간다.


오늘의 나를 내일의 자리로 한 눈금 옮겨두기 위해서, 그렇게 계속 쓰고 싶다.



사랑이라는 단어

Urban dictionary(사람들이 단어의 정의를 내려보는 크라우드 소싱 사전 서비스)에서 ‘love’를 검색했다. 강아지 사진이 나왔다. 키스하는 연인도 있었다. 표제어로 등록된 문장은 육체적 사랑을 의미했다. 이 정의를 가진 사람들은 love라는 단어에서 살의 온기를, 부드러움을 느낄 것이다. 두 번째로 등록된 문장은 낭만적 열정을 의미했다. 이 정의를 가진 사람들은 로맨스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의 문장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헌신을, 신성함을 뜻하는 것이다. 파괴를 이야기하는 문장도 있었다. 이런 문장을 올린 이들은 질투와 시기, 초조함을 사랑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밤에 언어에 대해 생각하였다. 사랑이란 단어를 보고 누군가는 섹스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고린도전서를 떠올린다. 헌신이기도 하고 파괴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다른 언어를 쓴다.



5부

목숨길

삶에서 죽음이 이렇게 가까웠다, 한 뼘 손을 뻗어 목덜미께를 짚어본다. 한 뼘 더 아래, 가슴으로 손을 뻗어본다. 숨이 들었다 날 때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어린아이의 숨길은 배꼽에서 시작해 정수리까지 트여 있다고 한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윗집 아랫집까지 닿는 것은 그렇게 숨길이 길기 때문이라고, 나이가 들수록 숨길이 시작되는 곳이 점점 위로 올라가 가슴께까지, 나중에는 목덜미까지 올라온다고 한다. 그렇게 숨길이 짧아지면 ‘흡흡’ 하다가 숨을 잃는다고, 그게 목숨이 끊어지는 거라고 할머니는 설명해주셨더랬다.


길었던 숨길이 한 뼘 한 뼘 줄어드는 시간이, 인생.

오늘을 산다

집에 갈까, 사무실에 갈까.


고민하다 그냥 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 에어컨이 시원해서 좋았고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니 기뻤다.


버스가 서니까 그제야 혼란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주말에도 기어코 사무실에 오고서야 마음이 놓이다니 나는 불행한 사람인가 행복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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