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

   
탁경국
ǻ
이상북스
   
12000
2015�� 07��



■ 책 소개

 

‘전쟁 같은 삶’에서 ‘저녁이 있는 삶’으로! 

 

쉴 새 없이 일하지만 시간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다. 늘 어느 정도의 결핍 상태에서 욕망에 괴로워하며 산다. 행복할 시간적?정신적 틈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하려고 사는가, 소비하려고 하는가, 그저 욕망을 채우려고 사는가…… 우.리.가.행.복.할.수.있.을.까?

 

굳이 OECD 국가 행복지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좀더 열심히 일해 좀더 많은 돈을 벌어서 조금 더 좋은 집에 살며 아이들을 위해서는 더 많은 학원비를 지출하면 ‘나중에’는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저자 탁경국은 은근하게 먼저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보라고 권유한다. 우리는 ‘거품’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그 거품을 깨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거품’은 비단 부동산만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까지 포함한다. 미친 듯한 대한민국의 ‘사교육열’도 교육 거품이다. 이런 일상적 삶의 거품이 빠져야 중산층과 서민이 살 길이 보이고, 그래야 ‘전쟁 같은 삶’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 저자 탁경국
저자 탁경국은 어떤 견해를 피력해도 탁견(卓見)이 되는 변호사. 경국지색(炅國之色)인 아내와 함께 경국대전(炅國大殿)에서 사는 ‘탁’월하고 ‘경’이로운 ‘국’보급 아빠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다.

 

단기사병 시절 취사병으로 근무한 경험을 밑천 삼아 주부 9단의 경지에까지 올라선 부지런한 남편이자 두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행복한 아빠다.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웃는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들고, 행복한 아이가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이치를 몸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웃는 엄마’가 많아지려면 국민 대다수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삶부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으며, 말 따로 행동 따로 지식인이라는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한다.

 

198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1995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해 경영기획실에서 2년간 근무했다.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법무법인 공존에서 일하고 있으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원이다. 2007년에는 마포구 공동육아 참나무어린이집의 이사장을 하며 ‘공동육아’에 즐겁게 참여했고, 2015년에는 얼떨결에 관악구 인헌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_ 변함없는 ‘진실함’으로 일하고 꿈꾸고 생활하는 ‘경국이 형’ _김진(변호사)
들어가며

 

1장 꼬막 남편의 부부간 협업 이야기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
가랑비에 옷 젖듯 10년 걸린 일
육아와 가사로 좌충우돌 10년
‘내’가 포기한 것
‘우리’가 얻은 것
최고의 노후 자산, 다정한 배우자

 

2장 계란찜 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만들기
먼저 욕심 내려놓기
가족 친화 프로그램은 선택이 아닌 필수
나의 일상부터 바꿔 나가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

 

3장 ‘사교육 걱정 없는’ 우리 집
적기교육이 어려운 시대
입시지옥 해소, 그 가능성을 향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만세!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교육 시스템
교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교육 걱정 없는’ 우리 집

 

4장 학교폭력 걱정 없는 우리 사회
교사와 학교가 가장 유능한 해결자
제도정비에 무책임하거나 게으른 정부
갈등을 조장하고 방관하는 정부
‘회복적’ 학생생활지도
‘감시의 렌즈’가 아닌 ‘따뜻한 사람’이 필요
교사들을 응원하며
‘버럭’ 하는 부모, 따라하는 아이들
처벌의 부족일까, 애정의 부족일까

 

5장 탁 변호사의 내곡동 특검 이야기
특검 무용론 vs 특검 만능론
내곡동 사저 특검의 출발
특검팀의 구성
수사 과정
불신이 낳은 비효율
대통령 부부 조사 여부에 관한 논쟁
증여세 추징 통보 및 기소
공판 과정
특검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검과의 관계
몇 가지 에피소드

 

6장 소소한 생각들
사람이 중요하다
키 작은 남자도 살 길이 있다
노력하면 누구나 야한 남편이 될 수 있다
‘중박’ 시대에는 건강이 최고다

 

나가며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

현재 우리 집 구성원은 나와 아내,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둘 도합 네 명이다. 우리 집에서의 내 역할은 평일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과 이틀의 주말 중 하루의 가사 일체를 책임지는 것이다. 내가 저녁 약속이 많다보니 저녁은 아내가, 아침은 내가 챙기는 방향으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평일 아침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 함께 집을 나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아이들이 선호하면서도 조리하고 뒷정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 반찬을 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뚝배기 계란찜이다. 1년에 최소 200일 이상은 계란찜을 준비해 냈으니, 지금까지 내가 밥상에 차려 낸 계란찜은 대략 1500개쯤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는 사람들은 나를 계란찜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꼬막 남편

나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다. 남편의 입맛이 까다로운 것은 아내에게 불행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내 아내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아내에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해야만 하는 대표적 음식이 꼬막이다. 꼬막은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졌던 나는 2005년 겨울, 꼬막에 대한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전남 광주의 재판에 갔다가 저녁을 먹으러 어느 횟집에 들어가 회를 주문했는데, 주인이 밑반찬으로 삶은 참꼬막 한 접시를 내왔다. 양념장도 달라고 했더니 양념장 없이 먹어야 맛있단다. 나는 그제야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에서 꼬막 맛을 그렇게 묘사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꼬막 맛에 반해 서울로 올라와 한 고수로부터 꼬막을 맛있게 삶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비싼 참꼬막이 아니라 시중에서 파는 세꼬막도 잘만 삶으면 대충 삶은 참꼬막보다 더 맛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잘 삶은 세꼬막 하나 열 참꼬막 안 부럽다!는 표어를 주위에 보급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집에서 꼬막 대접할 일이 있으면 내가 전 과정을 직접 담당했는데, 그렇게 해서 내가 삶은 꼬막을 먹어보고 감탄한 이가 최소 50명은 된다. 물론 내가 정작 하려는 이야기는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아내에게 해달라고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적어도 맞벌이라면 말이다.


육아와 가사로 좌충우돌 10년

둘째의 출생

사람이 변하는 데는 여러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처럼 변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둘째의 출생이었다. 첫째 아이 하나 키울 때만 해도 나는 육아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 월급을 받는 초보 변호사였던 나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했다. 아이는 정시 퇴근하는 아내가 키웠다. 잠자다가 아이 울음소리에 잠을 깰 때면 속에서 짜증이 올라오던 아빠였다.


첫째와 둘째는 23개월 차이가 난다. 고로 23개월 된 첫째 아이가 엄마를 배려하거나 젖먹이 동생을 배려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첫째는 엄마가 무엇을 하고 있던 무작정 안겨 붙고 때로는 보챘다. 일하랴 애들 보랴 아내는 녹초가 되었다.


여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인가 싶어 아내에게 동정심이 들던 차에 내 눈에 들어온 건 기저귀였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와 보면 아내는 아이들을 양 옆에 끼고 곯아 떨어져 있었고, 욕실에는 똥 기저귀가 널브러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천 기저귀를 고집하는 아내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그냥 잘 수는 없어 아이고, 내 팔자야 신세타령을 하며 똥 기저귀를 빨고 잤다. 그런데 정작 아내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 것은 다른 일이었다. 아내는 내가 똥 기저귀 빨래를 하는 것보다 첫째는 엄마 품에서 떼어내 데리고 놀아주는 것을 원했다. 둘째에게 집중하기 위해!


이렇게 시작된 육아 참여는 고역이었다. 나 스스로도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첫째를 돌보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첫째는 나를 잘 따르지 않았다. 엄마만 찾았다. 그렇게 길들여졌으니까.


돌이켜보면 이때만큼 힘들었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연령대의 아들 둘을 맞벌이 부부가 키운다는 것은 부부간 역할 분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되지 않으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은 주장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시기이기도 하다. 역시 중요한 것은 주둥아리가 아니라 몸뚱아리다.



계란찜 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만들기

내 일상부터 바꿔 나가기

제도와 현실의 괴리

사실 우리 사회도 법과 제도는 가족 친화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좋은 제도가 많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당연히 보장되고,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부모가 주당 15~3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낮출 수 있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와 임신 초기 직장 여성의 유산 고민을 줄이기 위한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도 도입되었다. 그러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와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는 고사하고 육아휴직조차 맘 편히 쓰는 직장맘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이용하겠다는 근로자의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제제가 너무 약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이용해도 불이익을 보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나는 주위에서 여성 직장 동료와 일하는 것을 꺼리는 남자들을 많이 접한다. 그런데 적어도 맞벌이 부부인 남자는 그러면 안 된다. 자기 아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꺼려할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더 나아가 맞벌이 부부인 남자가 아니더라도 좀 더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어떨까. 여성 직장 동료의 출산과 육아로 인해 생긴 공백을 메꿔야 하는 처지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모성보호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유지해 주는 가치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한다면 불만이 조금 누그러질 것이다.


유네스코가 주는 제11회 여성생명과학상 학술진흥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공주 이화여대 약대 교수는 "아이에 대한 애정은 많이 들여다 보기 때문에 생긴다. 남성에게도 생명, 아이를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면 남성이 변하고 사회가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는데, 백 번 옳은 말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우리 집

사교육 걱정 없는 우리 집

초등학교 선택하기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첫째를 일반 초등학교에 보낼지 대안학교에 보낼지 고민을 했다(사립 초등학교는 처음부터 제쳐놓았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형제가 구김살 없이 행복하게 자라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마침 근처에 위치해 있던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가 주는 매력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데다가, 주위에서 하도 일반 초등학교에 대해 좋지 않은 말들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당장 첫째가 한글을 깨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에 대해서부터 걱정해 주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부모의 심지만 굳건하다면 일반 초등학교에서도 사교육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데 부부간 합의가 이루어져 첫째는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는 내 경험이 많이 반영되었다. 나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비슷한 계층의 아이들 소수가 모인 학교보다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 다수가 모인 학교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가졌다(물론 학교 밖에서 배울 것도 많다). 내가 철들고 나서 경험한 대학 생활과 군대 생활, 회사 생활, 그리고 지금의 변호사 생활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생각이 비슷한 소수가 모인 집단에 속해 있으면 생각이 편협하고 경직되게 흐를 위험성이 있다. 보수, 진보, 부유층, 서민층을 막론하고 자기와 다른 부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이를 입증한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진보적 지식인들이 가끔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주장을 한다거나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생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이 틀렸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일반 유치원에 비해 장점이 있는 부분이 있듯이, 대안학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대안학교를 선택했다면 나름대로 거기에 맞추어 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과정

주위의 걱정처럼 첫째가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함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 다른 학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한글 수업부터 했다. 학교의 방과후 프로그램도 다양해서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었고, 하다가 싫증이 나는 과목은 그만둘 수 있었다.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과목은 수학이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제법 잘한다. 100점은 못 받지만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면서 왜 틀렸는지 안다. 가끔씩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도 있는데, 그런 건 틀린 게 잘한 거라고, 나중에 저절로 풀 수 있게 될 거라고, 그 문제를 푼 아이는 학원에서 배웠기 때문일 거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러면서 슬쩍 묻는다. "너도 학원 보내줄까?"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놀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첫째가 좀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첫째에게 좀 준비를 해서 수학경시대회에 나가라고 권유해 본 적이 있는데 실패했다. 물론 억지로 경시대회 준미를 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무엇일까? 하기 싫다는 아이를 붙잡아 꾸역꾸역 밀어 넣은 수학 지식으로 어린 나이부터 좀더 수학을 잘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인가? 내적 동기 없이 하게 되는 공부는 효율적이지도 않고 오래 가지도 않는다. 그렇게 두었더니 4학년 때는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둔다며 수학경시대회에 도전해 꼭 그만큼의 점수를 받아왔다. 그 다음해에는 스스로 목표를 정해 참가하더니 턱걸이로 넘기고는 좋아했다. 첫째는 친구들에 비해 계산 속도가 느린 것을 자신의 단점으로 인식하면서도 수학적 사고를 즐기곤 하는데, 적기 교육의 즐거움을 누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영어. 글로벌 시대에 누구나 일찍부터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영어 역시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e-교과서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학교 수업에 대비하게 하는 정도고,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어 최근에는 영화를 활용한 영어 듣기를 시작했지만 영어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어차피 고급 영어 실력은 독해 실력인데, 독해 실력이라는 것이 어려서부터 원어민 수준의 발음을 한다고 해서 습득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렇게 수학이든 영어든 별 공부를 안하는 우리 아이들은 그냥 놀고먹으면서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남들 영어, 수학 공부할 때 우리 아이들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싶은 놀이기구를 만들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뒤엉켜 재미있게 논다. 물론 놀다가 싸우다가 놀다가 싸우다가……. 요약하면, 우리 아이들의 일상생활에는 여백이 있다. 여백이 있는 동안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라고 스스로의 꿈이 생긴다. 정서적 안정감이 형성된다. 인생은 100미터 경주가 아니다. 장기 레이스다. 나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과도하게 힘을 쓰면 나중에 지치는 게 세상 이치라고 본다.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또 스스로의 꿈이 있는 사람과 누군가가 꿈을 만들어준 사람, 심지어 꿈이 없는 사람은 나중에 성취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선행학습에 대한 생각

다산 정약용이 네 살 때부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니, 천재가 선행학습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산이 네 살 때부터 천자문을 배웠다고 해서 당시 서당에서 4세 아동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지는 않았을 테니 다산의 사례를 들어 작금의 선행학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 세대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선행학습은 있었다.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성문 종합 영어》나 《수학의 정석 실력》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많은 학생들이 일찍부터 이 책으로 공부했다. 일종의 자기주도적 심화형 선행학습이 유행했던 셈이다, 이 정도 수준의 선행학습은 애교 수준에서 봐줄 만한데, 문제는 이것이 과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내가 살펴본 바로는 그 책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1등짜리가 보니까 따라서 보기는 하는데,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책을 붙들고 씨름하느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간 낭비, 체력 낭비를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에 관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교과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고, 수업에 집중하고 복습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는 결코 가식에서 온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이 만든 교과서를 붙잡고 씨름하면서 교과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선에서 참고서적을 활용해야 하는데, 참고서적 그것도 자기가 충분히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수준의 참고서적을 붙잡고 씨름하면 기분상으로는 뿌듯할지 몰라도 실력이 쌓이지는 않는다.


이런 이치를 선행학습에 적용하면, 극소수의 천재적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현재 배우는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앞선 내용을 배우면 기분상으로는 뿌듯함이 밀려올지 몰라도 자기 실력이 쌓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부작용도 있다. 선행학습을 하고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수업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왠지 자기가 아는 내용인 것 같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기 때문이다.


선행학습 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공교육 촉진 및 선행 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학교에서의 선행교육을 금지하자 선행교육을 받기 위해 학원으로 몰려가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다시 학교에서 선행교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역주행이다. 일정한 선행학습 없이는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는 수학 과목의 수능 시험 범위를 조정하는 등 선행학습 없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다.



학교폭력 걱정 없는 우리 사회

회복적 학생생활지도

잘못한 사람들 바로잡기 위한 처벌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정의를 응보적 정의로 본다면,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회복하고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의를 회복적 정의라고 한다.


하워드 제어가 쓴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원제목이 Changing Lenzes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의미에서 도입된 새로운 개념이다. 그 골자를 쉽게 말하면, 그동안 우리가 어떤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떤 법을 위반했으며, 어떤 형벌을 주어야 하는가?를 먼저 떠올랐다면, 이제는 누가 상처를 입었고, 그들의 요구는 무엇이며, 그것은 누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가?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피해자의 요구와 권리를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의 등장 원인

우선 기존의 주류적 사법절차였던 응보형 사법절차는 피해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해자는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고 판사에게 처벌을 받는데, 심하게 표현하면 판사와 검사는 피해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도 없으면서 범죄자에게 각종 제재를 가하기 위해 피해자의 이름을 빌린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위 피해자학이 발전하면서 피해자의 복수감정을 존중하고 금전적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제도들이 도입되었으나, 이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례들이 있었다.


또 가해자에 대한 응보적 처벌은 긍정적 효과만이 아니라 부정적 효과까지 초래했다. 처벌로 인해 고통을 느낀 가해자는 처벌권자에게 원망과 분노를 느끼고 동료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이것이 총체적 저항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즉, 많은 경우 처벌이 가해자로 하여금 정당한 처벌을 받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억울하거나 과도하게 처벌받았다는 분노를 갖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책임감 있는 사람에게 처벌을 하면 책임감 있게 대응하지만 무책임한 사람에게 처벌을 하면 더더욱 무책임하게 될 수 있음은 우리가 현실에서 종종 목도하는 바다.


특히 부모와의 애착 결여 등으로 인해 친구나 교사 등의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규범을 냉소하는 지식구조가 형성될수록 학교폭력 가해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이런 가해학생의 범죄유발형 지식구조가 형성되는 주관적 사고과정을 이해하면 응보적 정의에 입각한 대응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더 친구나 교사 등의 상대방을 적대시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필요한 정의의 내용은 ①가해자에게 자기의 행위 자체를 대면할 기회 및 피해자를 대면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자기 행위가 다른 사람의 삶에 미치는 결과를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②가해자가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③최종적으로 피해자 및 둘러싼 환경과 화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회복적 학생생활지도를 바란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진정으로 화해하도록 하려면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진정한 속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물질적‧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인정받고 사과받기를 원하는 피해학생의 진정한 속내는 무엇일까?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받은 고통을 가해학생에게 직접 알리고 싶은 마음, 가해학생의 동기에 대해 직접 들어보고 재방방지의 약속과 손해배상을 받고 싶은 마음, 가해자가 뉘우치고 새롭게 되기를 바라며 가능한 한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가해학생의 진정한 속내는 무엇일까?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되 피해자에게 직접 상황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 할 수 있으면 고통을 받은 사람들 모두에게 용서를 구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싶은 마음, 자신의 동기를 설명함으로써 사람들이 비난보다는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은 마음, 피해학생뿐만 아니라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상으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미 해결방안도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피해학생이 입은 피해를 온전히 인식할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가해학생의 입장에 대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문제해결 과정에 가해학생 피해학생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해 책임과 의무감을 갖게 하며, 당사자들이 가정 및 학교 공동체에 다시 결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갈등은 공동체성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전문 상담 교사의 확충, 담임교사의 상담 능력 배양과 더불어 충분한 경청의 시간이다. 전문 상담 교사의 확충, 담임교사의 상담 능력 배양도 중요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위와 같은 방식의 문제 해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녀가 학교폭력에서 안전하기를 원하는 학부모라면 학교가 회복적 학생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도록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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