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키만소리
ǻ
첫눈
   
14000
2017�� 10��



■ 책 소개

 

엄마 현자 씨는 어느 날 배낭여행을 가겠다는 딸을 막아선다. 딸은 갖은 말로 엄마를 설득하지만 엄마는 안 된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대체 왜 안 되는 거냐고 물으니 돌아온 이유가 황당하다. “부러우니까.” 결국 딸은 엄마와 함께 배낭여행을 떠난다.

 

여행이 쉬워진 시대다. 해외로 떠나는 것도 흔하다. 그렇지만 해외로 함께 ‘배낭여행’을 떠난 모녀의 이야기는 흔치 않다. 책의 매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 저자 키만소리
프리랜서 피처 에디터. 니콘코리아, 엘르엣진, 기업은행 등 다수 매체의 기획기사를 담당했고 대학문화 매거진 씽굿에서 2년 가까이 칼럼을 연재했다. 카카오 브런치에 ‘엄마야 마음 단디 먹고 배낭 메라’라는 제목으로 여행 웹툰 에세이를 연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코믹하면서도 재미있는 그녀의 그림은 에세이와 만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엄마와 둘이 한 달 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세계일주 중이다.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짠순이 엄마가 불쑥 내놓은 200만 원

"엄마! 20만 원이 아니고 200만 원이야?"


바늘로 콕 찌르면 피보다 소금이 먼저 나올 것 같은 짠순이 엄마가 거금 200만 원을 내놨다. 그것도 여행 경비로. 배낭여행에 따라오겠다는 엄마의 결심보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200만 원이었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보통 짠순이가 아니었다.


굳게 닫힌 엄마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물건 하나, 옷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리폼하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난다. 외식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자장면, 피자, 햄버거 등 배달 음식은 엄마의 손끝에서 뚝딱 하고 만들어졌다. 하루는 시장 아주머니에게 비법을 전수 받아 집에서 호떡을 만들었는데, 발효 시간 때문에 꼬박 하루를 기다려야 했다. 호떡 반죽이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는 우리 네 식구의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아직도 호떡의 추억이 선명하다. 요즘에는 리폼이나 홈메이드가 더 정성 쏟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그저 짠순이 엄마의 흔적이다. 탕수육이나 피자는 나름 비싼 편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호떡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했다. 그거 직접 만들어먹어서 돈 얼마나 아낀다고.


그런 짠순이 엄마가 여행을 가겠다고 200만 원을 내 앞에 내려놓을 줄이야. 콧노래 부르며 혼자만의 여행을 꿈꿀 시간이 없었다. 엄마의 굳은 결심을 꺾는 일이 급선무였다. 머리를 굴려보자. 분명 엄마가 여행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엄마, 200만 원 다 쓰고 모자랄 수도 있는데 괜찮아?"

1차 공격. 짠순이 엄마의 마음을 공격하라.


"이렇게 쓰려고 그동안 악착같이 모았나 봐."

생각보다 너무 쉽게 실패. 엄마의 결심은 단단했다.


"젊은 나도 배낭 메고 여행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무리하지 마."

2차 공격. 나이 많은 엄마의 약점인 체력을 공략하라.


"산악회 사람들이랑 매주 배낭 메고 등산하러 가잖아. 엄마가 너보다 체력 좋을 걸."

음, 맨날 침대에서 뒹구는 나보다 체력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공격도 실패.


"나는 여행 가서 절대 한식 안 먹어. 엄마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회심의 3차 공격. 김치 없인 하루도 못 사는 신토불이 입맛을 흔들어라.


"어… 그건 좀 힘들지도 모르겠네."

한식 금지 카드에 엄마의 결심이 살짝 흔들렸다. 일주일도 아닌 한 달이라니. 엄마 입장에선 주춤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이, 나의 여행이 되는 줄만 알았다. 엄마의 그 말이 있기 전까지는.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거실에서 엄마와 나란히 앉아 빨래를 개고 있었는데, 몇 해 전부터 버리라고 말했던 엄마의 해진 속옷이 내 손에 걸렸다. 엄마에게 속옷을 보여주며 툴툴댔다. "아, 엄마. 이런 것 좀 버리고 속옷 하나 사라." 조용히 빨래를 개고 있던 엄마가 딱 한마디 했다. "다 니들 키운다고 아끼며 살아서 그래. 엄마도 좋은 거 먹고 싶고, 좋은 데 가고 싶지. 왜 안 그러겠어."


아, 이건 반칙이다. 엄마가 갑자기 효심 찌르기 공격을 할 줄이야. 내 손에 들린 엄마의 해진 속옷 위로 엄마의 지난 시절과 여행 가서 즐거워할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의 여행이, 우리의 여행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엄마, 여행을 간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어. 그래도 진짜 갈래?" 그러자 엄마는 빨래 개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딸, 그거 알아? 엄마는 여행 간다는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빨래 개는 일이 즐거워." 콧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 마음에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저 짠순이가 200만 원이나 꺼냈는데 까짓 것 착한 딸 코스프레 한번 해주지 뭐. 그래, 같이 가보자. 만만치 않겠지만. 엄마야, 마음 단디 먹고 배낭 메라!



저가 항공, 저 가!

드디어 그날이 왔다. 엄마와 나는 오후 비행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다. 출근하는 아빠와 언니에게 미리 작별 인사를 한 우리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당분간 한식을 못 먹는다고 생각한 엄마는 거하게 한 상 차렸다. 나 역시 한식이 그리울 거라는 생각에 정신없이 눈앞의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그런 나를 본 엄마가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본다. "장아찌 좀 챙길까?" "안돼. 기내에서 터지면 어쩌려고.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자."


한 달을 여행할 것 치고 우리의 가방은 단출했다. 식재료를 일절 담지 않았기 때문. 이왕 가는 거 현지를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는 내 강력한 의지로 우리는 정말 몸과 배낭, 딱 이렇게 준비했다. 텅 빈 거실을 쳐다보니, 내가 정말 엄마와 여행을 떠나는구나, 실감이 들었다.


"엄마, 이제 슬슬 출발하자."

"어, 잠깐만."


엄마는 부엌에서 좀처럼 떨어지질 못했다. 아빠와 언니를 위해 냉장고에 차곡차곡 채워둔 반찬들을 연거푸 확인하고, 엄한 밥솥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엄마는 여행 일주일 전부터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여행을 떠나기가 이리도 어려웠던가. 배낭만 싸면 홀연히 떠나는 게 여행인 줄 알았는데, 엄마에겐 이토록 준비할 것이 많았구나. 가족들 끼니 걱정에 계속 주방을 살피던 엄마를 재촉해 집을 나섰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하나 짙은 남색의 차가운 새벽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배낭을 찾고, 환전을 하고, 인포메이션에 가서 말레이시아 시내 지도를 한 장 받았다. 낯선 땅에 떨어져 불안해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우리는 숙소와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렸고,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주머니 딸의 친절한 설명으로 숙소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두웠던 새벽은 물러가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느새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불안과 걱정을 밀어냈다. 하지만 우리의 첫 숙소, 수지 게스트 하우스를 본 엄마의 얼굴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도대체 여기는 뭐 하는 곳이니?!"



저도 게스트입니다

"게스트 하우스가 뭐야?" 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가 물었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야. 가격도 합리적이고, 조식도 제공해 주고, 여행 정보도 공유하지. 여행자라면 당연히 게스트하우스 정도는 가줘야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불편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을 뿐. 말로만 듣던 게스트하우스와 실제로 경험하는 게스트하우스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을 것이다. 진실을 몰랐던 엄마는 대책 없이 게스트하우스 신고식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쾌했던 엄마의 신고식을 뽑아봤다.


1. 첫 비행에 녹초가 되어버린 엄마에게는 뜨거운 물 샤워가 절박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욕실로 향했고, 그 뒷모습을 보는 내 모습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엄마가 밝은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 아닌가.


"샤워실 문 열었는데, 금발 청년이 웃통 벗고 나오더라."

게스트하우스 샤워실은 공용이었다.

"올. 좋았겠는데?"

"그럼, 네 아빠한테는 비밀이다."

어느새 농담할 여유까지 생긴 엄마. 샤워를 하고 온 탓인지 금발의 청년 덕인지 엄마는 처음보다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2. 우리가 머문 숙소 거실에는 게스트들을 위한 다과와 열대 과일이 준비돼 있었고, 과일 좋아하는 엄마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엄마는 숙소에서 잡일을 도맡던 어린 청소부를 불러 파파야와 리치를 나눠 먹고 있었다. 그때, 한 외국인 게스트가 거실로 나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에게 성큼 다가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헤이, 내 방에 수건 좀 갖다 줄래?"


1초의 정적. 이후 우리는 빵 터졌다. 아, 물론 엄마는 빼고. 우리도 게스트라고, 엄마와 여행 중이라고 말해주니 외국인 게스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사과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엄마는 내가 현지인처럼 생겼나…. 하면서 방에 들어가더니 머리를 빗고 립스틱을 바르고 나왔다고 한다.


3. 엄마의 묵언 수행을 깨뜨린 게스트 J언니. 우리를 제외하고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낯도 안 가리는 J언니 덕에 엄마의 게스트하우스 생활이 한결 즐거울 수 있었다. 엄마는 J언니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호구조사를 했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J언니가 동네 주민이었다는 사실. 물개 박수를 치며 세상 좁아, 세상 좁다니까, 외치던 엄마는 이런 기막힌 우연을 가능하게 해준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는 언어 장벽을 넘어 잊지 못할 추억들을 쌓아나갔다. 영어가 안 통해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한국어를 가르치는 당당한 모습이 멋지기까지 했다. 그 순간은 정말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어엿한 여행자로 보였다. 만약 내가 엄마였다면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었을까. 우리 엄마는, 아니 현자 씨는 너무도 멋진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함께 저녁 먹지 않을래?

여행은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선물을 건네준다. 그들을 만난 것은 여행에게 받은 첫 번째 선물이었다.


쁘렌띠안 섬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자림과 롭은 이십대의 열정 넘치는 포토그래퍼였다. 기차를 누비며 여행자들을 촬영했는데, 그중에는 엄마와 내 사진도 있었다. "엄마와 배낭여행 중이라고? 와 정말 멋진데?" 자림이 엄마 칭찬을 하면 신기하게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엄마가 한국말로 답했다. "맘 힘들어, 하지만 너무 행복해. 해피!" 난 그 모습이 너무 웃겼지만 자림과 롭은 엄마를 진지하게 대해 주었다. "맘, 사진 찍어 줄게요. 포즈 취해 봐요."


지루할 뻔 했던 기차 이동 시간은 두 사람과의 수다 덕분에 빠르게 흘러갔다. 한창 이야기하던 중 자연스럽게 말레이시아 음식이 화두에 올랐다. "우리, 말레이시아 음식 기대했는데 대부분 실패했어." "오 맘 헝그리. 맛있는 음식 먹고 싶어." 자림과 롭은 그 말을 듣고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말레이시아 음식은 정말 맛있어! 그 경험을 못하고 돌아간다면 우린 정말 슬플 거야." "괜찮다면 우리 같이 저녁 먹지 않을래?"


그렇게 자림과 롭을 따라 간 식당은, 기사식당 분위기에 가까운 원 플레이트 뷔페였다. 현지인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여행객이라곤 엄마와 나, 단둘이었다.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과연 맛있을까. 하지만 한 입 먹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엄지를 치켜세우며 몇 접시를 싹싹 비웠다. 말레이시아 음식에 대한 편견이 말끔히 사라진 식사였다. 잊지 못할 저녁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이었을까. 자림과 롭을 만난 후로는 찾아가는 식당마다 맛있는 음식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떠나오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인연들,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은 장소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아마 이런 것들 아닐까. 이런 것들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는 거겠지. 낯선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고마운 자림과 롭. 그들은 여행의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선물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다. 그들과의 만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선물, 그 자체였다.



엄마 실종 사건

엄마가 사라졌다. 화장실에도, 숙소에도, 뒷마당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이빙 수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패닉 그 자체였다. 보통 내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숙소에 오면, 숙소나 뒷마당에 기다리고 있던 엄마는 나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내가 다이빙 자격증을 따는 동안 생긴 암묵적인 룰이었다.


사라진 엄마가 나타나지 않자 슬슬 죄책감이 덮쳐왔다. 엄마 혼자 두고 나가는 게 아니었어. 어디든 같이 다녔어야 했는데…. 못되게 굴었던 일만 떠올라 눈물이 맺히려던 그때, 멀리서 아이들과 아줌마 웃음소리가 들렸다. 혹시…소리의 출처를 좇아 정신없이 해변을 걸었다. 도착한 곳에는 모래사장을 스케치북 삼아 그림을 그리는 동네 꼬마들과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시야에 들어오자 걱정은 고함으로 변했다. "엄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숙소에 없어서 걱정했잖아."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태평하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꼬마들을 소개했다. "얜 여기 식당 아들, 저기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꼬마가 얘 동생. 여기 머리 묶은 애는 우리처럼 여행 왔대. 스노클링 하러 엄마랑 아빠랑 같이 왔더라고."


잠깐. 이건 세계 3대 미스터리에 버금가는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영어도 말레이시아어도 못하는 엄마가 어떻게 동네 꼬마들 신상을 다 파악했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긴 알까 싶은 애들이 어떻게 한국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었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모든 게 미스터리였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오늘은 진짜 시간 가는 줄 몰랐네. 벌써 너 밥 때 됐구나."


나랑 있을 때보다 편안해 보이는 모습에 심술이 날 정도로,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이 즐거워 보였다. 어째서 엄마가 오매불망 딸만을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을까.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지. 나 없는 동안 엄마는 혼자만의 여행을 펼치고 있었다.



24시간 기차여행을 하다
배낭여행자라면 한 번쯤 꿈꿔 봤을 시베리아 횡단 열차. 끝없이 펼쳐진 선로를 따라 대륙을 횡단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던 나는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국경에서 그 소망을 풀었다. 비행기를 타면 반나절도 안 돼서 도착할 코스였지만, 오래된 로망을 위해 기꺼이 하루를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말레이시아 국경의 끝이자 태국 국경의 시작인 쏭 아이 콜록에서 방콕까지, 소요 시간은 약 20시간. 설레는 마음으로 표를 예매하고 역으로 향했다.


창 너머 풍경은 바쁘게 옷을 갈아입었다. 열대우림이 지나고, 드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소떼가 보이는가 하면, 빽빽한 산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바깥 풍경이 지루할 때쯤에는 기차 여행의 백미, 군것질 타임을 만끽했다. 워낙 장거리 이동이라 먹는 것도 지루할 때가 오면 탑승객과의 수다 타임이 시작됐다. 영어가 안 통해도 끄덕끄덕, 눈짓만으로 오케이. 카메라를 꺼내면 너도나도 스마일. 자리는 불편하고 날씨는 더웠지만 기차가 여행자의 낭만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역시 이런 재미 때문일 것이다.



혼자서도 잘해요

엄마의 배꼽시계는 울린 지 한참이 지났지만, 잠에 취한 딸은 깨어날 생각이 없었다. 한국 같으면 직접 아침상을 차려 식사를 마쳤겠지만, 태국의 게스트하우스에는 엄마의 공복을 알리는 꼬르륵 소리만이 떠돌았다. 아침마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엄마는 결국 비장한 결단을 내렸다. 혼자 외출을 감행하기로.


배낭 메고 돌아다닌 날이 얼만데 혼자 외출 한번 못할까 싶었던 엄마는 용감하게 지갑과 카메라를 챙겨 문 밖을 나섰다. 동네를 누비며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지나가는 스님들께 공양도 드린 뒤 두 손 가득히 아침 식사거리를 챙겨 돌아왔다.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나는 엄마의 아침 외출을 믿지 않았다.


엄마 혼자 나갔다왔다고? 에이, 말도 안 돼. 그런 나에게 절에서 찍은 탁발 행사 사진을 보여주던 엄마.


"정말 엄마 혼자 갔다 온 거야? 나랑 같이 가지."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너를 어떻게 기다려."


할 말이 없었다. 멋쩍은 마음에 엄마가 들고 온 비닐봉지를 풀었다. 그 안에는 갓 볶은, 갓 삶아진, 따뜻한 음식이 가득했다. 음식들은 윤기마저 흘렀다. 나는 밥 한 톨 안 남기고 싹싹 긁어먹었다.


"내일 아침부터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 챙겨 줄게."

"퍽이나. 아침밥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제발 일찍 좀 일어나라."


엄마의 예언은 적중했다. 다음날이 오고, 또 다음날이 와도 나는 아침밥 대신 잠을 택했고, 엄마의 나 홀로 아침 산책은 계속되었다. 다행히 엄마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꽤나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나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죄책감 없이 푹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을 일주일 정도 남겼을 무렵, 우리는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하며 여행하는 법을 배웠다.


진작 엄마를 믿어줄 걸. 혼자서도 잘하는데 말이지. 엄마를 짐으로 만든 건 나였어.



집에 가기 싫어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날. 엄마 얼굴에 꽃이 피었다. 평소보다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한 엄마가 한국에 돌아가면 찰진 흰 쌀밥에 손으로 쭉 찢은 김치를 올려 먹을 거라며 군침을 삼켰다. 돌아갈 생각에 신난 엄마와 달리 나는 심란했다.


직장도 그만 두고 배낭을 멨던 이유는, 여행이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연 지나버린 여행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기는 할까. 꽃길만 걷는 인생으로 갈아탈 수 있을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긴 여행의 끝에서 초조해졌다. 여행이 끝나가는 데 뭐가 변하긴 한 걸까.


엄마와의 관계도 그랬다. 다른 모녀들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고 돈독해지리라는 생각은 나의 오만이었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까지 고민을 안고 끙끙 앓는 나에게 엄마가 물었다.


"딸, 왜 그래?"

"엄마, 내 인생이 변하기는 할까?"

"엄마가 이 나이에 배낭 메고 여행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비행기 타는 건 딴 세상 사람들 이야기구나 싶었는데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긴 오네."


두 딸의 엄마로 사는 인생이 자신의 인생이구나 싶을 때 나와 여행을 온 거라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잊고 지낸 현자의 삶이 새롭게 시작된 기분이라고, 나이 핑계로 미뤄뒀던 꿈들이 꿈틀대는 기분이 너무 좋다고, 배낭여행 다녀온 뒤로는 심심했던 인생의 스케치북에 다채로운 색깔이 칠해진 것 같아 즐겁다고, 엄마가 말했다.


목석같던 엄마가 변했다. 여전히 표현에 인색하고 좋다는 말도 서툴게 하지만, 확실히 전과는 달라졌다. 엄마도 세월의 고집을 버리고 달라지고 있는데, 나라고 멈춰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더라도 조금씩 달라지는 중일 거라고 믿자. 엄마가 달라진 것처럼, 나도, 내 인생도 달라질 거야.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