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ǻ
덴스토리
   
15000
2016�� 07��



■ 책 소개
베스트셀러 『영원과 사랑의 대화』 저자이자,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로 우리를 일깨우는 시대의 지성이며, 97세의 나이에도 왕성한 저작 및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형석 교수가 스스로 살아본 인생을 돌이켜 깨달은 삶의 비밀들을 인생 후배들에게 다정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들려준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물론 사회생활에서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과제들,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관심까지,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지혜롭게 판단하고 처리하는 삶의 지혜를 제시한다.

 

■ 저자 김형석
철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上智)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30여 년간 후학을 길렀고, 미국 시카고대학교, 하버드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철학계 1세대 교육자로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초대 회장을 지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97세의 나이에도 활발한 저서 활동과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 철학계의 거두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 『현대인의 철학』,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예수』 등이 있다. 특히 1960~1970년대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외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는데, 당시 피천득의 뒤를 이은 수필계의 대표적인 저서로 한 해 60만 부 판매를 기록했다.

 

■ 차례
프롤로그

 

1 똑같은 행복은 없다_행복론
성공하면 행복할까 | 인격 수준과 재산의 관계 ·일을 하는 이유 | 오래 살면 좋을까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 다 떠나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2 사랑 있는 고생이 기쁨이었네_결혼과 가정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 세상에서 가장 허무한 고독 | 재혼을 했으면 더 행복했을까 | 황혼기 이혼에 관하여 | 열심히 싸우는 부부는 이혼하지 않는다 | 무엇이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가 | 뜻대로 안 되는 자녀 교육

 

3 운명도 허무도 아닌 그 무엇_우정과 종교

나에게 우정은 섭리였던가 | 내 친구 안병욱 | 현대인에게도 종교는 필요한가 | 흑과 백 사이의 수많은 회색 | 죽음에도 의미가 있는가 | 마지막 선택권은 누구에게나 있다

 

4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_돈과 성공, 명예
그는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 | 경제적으론 중산층, 정신적으론 상위층 | 자서전을 쓴다면 | 세 동상 | 나에게 ‘감투’란 |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5 늙음은 말없이 찾아온다_노년의 삶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 “장수의 비결이 뭔가요?” | 젊어서는 용기, 늙어서는 지혜 | 취미생활의 즐거움 | 늙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 노년기에는 존경스러운 모범을 | 누구 곁으로 가야 하는가 | “오래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백년을 살아보니


똑같은 행복은 없다_행복론

성공하면 행복할까

다른 모든 것은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그러나 행복은 어떤 것인가, 라고 물으면 같은 대답은 없다. 행복은 모든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며, 같은 내용이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행불행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은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돈 때문에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으나 같은 돈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도 있다.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나눈다. 그때의 복은 행운을 뜻하는 말이다. 선택과 노력의 대가로서 복이기보다는 공짜로 주어지는 복운이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통한다. 그러나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다. 공짜로 주어진 복이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시간의 빈 그릇 속에 담아 넣고 싶은 것들

그래서 우리가 행복을 얘기할 때는 삶의 일상적이며 정상적인 내용과 연결되는 행복을 뜻한다.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빈 그릇 속에 담아 넣고 싶은 것들의 대명사와 같은 것이다. 그 대명사의 내용에는 꼭 같은 것은 없어도 서로 비슷한 것들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몇 가지 유형 중의 하나 또는 둘을 택해 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이며 가시적인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주어지는 만족감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욕구에 속하는 것들이다. 어린애들이 마음에 드는 인형을 얻었을 때의 즐거움과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로 대표되는 권력을 소유하기를 원한다. 지배하고 싶은 본능, 강자가 되려는 의욕, 야망을 채우고 싶은 삶의 욕망들이다. 그런 것들을 소유했을 때는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며,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여긴다. 명예욕도 그중의 하나이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으며 자신의 노력에 대한 타인과 사회의 보답을 얻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들을 소유했을 때의 만족을 행복으로 느끼며 상실했을 때는 불행으로 생각한다. 성적 욕망도 또 하나의 소유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소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상실했을 때는 고통과 불행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소유의 노예가 되어 정신적 행복은 누리지 못한다. 또 더 많은 소유의 독점욕에 빠지게 되면 사회적으로 더 큰 고통과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오히려 행복을 찾는 것이 더 큰 불행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진리같이 전해지고 있다.


행복에도 차원이 있다

그런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정신적 가치를 찾아 행복의 차원을 높이려고 한다. 예술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와 비교할 수가 없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가치는 어떤 이탈리아의 기업가나 재벌이 남겨주는 경제적 가치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정신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몇백 년 동안 이어져온 관광 수입만도 막대하다.


1947년은 독일의 자랑스러운 시인 괴테의 탄신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독일은 극심한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기념행사를 개최할 여력이 없었다. 그것을 애석하게 여긴 전쟁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이 세계적인 기념축전을 개최했다. 괴테의 정신적 영향력은 전쟁의 파괴력보다 높이 평가받아 당연한 결과였다. 20세기를 끝내면서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1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선정한 일이 있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선정되었다. 재벌가도 정치가도 아닌 과학자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한때 전 세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역사적 기록에 그쳤다. 반면 대왕의 가정교사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조용히 아테네에서 강의하고 저술했을 뿐인데, 그의 정신적 유산과 혜택은 23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의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정신적 가치는 소유에서 오는 만족이 아니다. 창조자는 사회에 주기 위한 책임을 감당했고, 우리는 그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공간을 넘어서, 시간을 초월해 인류가 공유하는 업적이다.


그래서 정신적 가치를 깨닫는 사람들은 인류가 남긴 업적의 혜택을 누리는 일에 동참함으로써 행복을 누린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도 있어야 하나 음악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필수적이다. 또 이런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창작의 기쁨과 행복은 고급 자가용을 타고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높은 차원의 행복을 갖는다.


인간의 자격

행복으로 가는 또 다른 길도 있다.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에서 주어지는 행복이다. 널리 알려진 숲 지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직장을 구하던 사람이 예상 못했던 취직을 하게 된다. 넓은 숲에서 산불을 예방하거나 서식하는 동물들을 보호해주는 일이다. 그 사람은 숲속에 있는 집에 혼자 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숲을 돌보았다. 몇 해 동안 숲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한 가지 색다른 습관을 찾아냈다.


저녁때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갖추고는 잘 정돈된 거실 식탁위에 준비한 음식물들을 정성껏 차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작업복을 신사복으로 갈아입는다.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 빗질을 한다. 새로운 구두로 바꾸어 신는다. 그러고는 거울 앞에 다가가 스스로 존경받을 만한 신사가 되었는가를 살핀 뒤에 아무도 없는 방을 향해 노크를 한다. 그리고는 마치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를 받기라도 한 듯이 식탁을 향해 점잖게 걸어가 앉아서 조심스럽게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점잖게 배웅을 받고 있는 듯이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다시 신사복을 벗어 걸어놓고는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거실에 들어가 식사를 다 끝낸 식기들을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를 한다. 만일 누군가가 혼자 사는 집인데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불편한 일들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여러 해 동안 숲속에서 혼자 살다가 후일에 인간사회로 나가게 되면 인간의 자격을 상실할 것 같았다. 내가 인간사회에서 살 때 언제 가장 행복했는가 하고 찾아보았더니, 귀한 가정의 손님으로 초대받아 갔던 때였다는 생각이 났다. 저녁시간만이라도 인간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습관을 창안해냈다." 영국작가 키플링의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사회 속에 태어났다가 사회를 떠나가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는 물론 행복과 불행도 내가 소속되어 있는 인간적 공동체 속에서 태어나고 주어지는 것이다. 그 공동체는 이성 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가정이 그 기본 단위가 된다. 후에는 학교생활과 직장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영향력이 적은 것 같아도 지역사회를 외면할 수는 없다. 더 높은 직책과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은 국가사회에까지 인간관계를 넓혀갈 수가 있다.


이런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선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사회에 고통과 불행을 더하게 된다.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선한 가치를 추구해가는 것이 윤리와 도덕의 권고이면서 의무이기도 하다. 아마 동양의 오랜 스승인 공자의 교훈도 한마디로 말하면,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그것을 어진 마음을 갖고 예절을 지키라는 정신으로 압축했다.


선하고 건설적인 인간관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진 특전이다. 닫힌 마음, 즉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정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그것은 후진사회와 선진사회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사회 원칙이기도 하다.


행복과 성공의 함수 관계

많은 사람들은 행복과 성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이 들수록 그런 사실을 인정하게 되며 남성들은 여성들보다도 더 그런 현실을 인정한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행복이 없고 성공한 사람은 행복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성공은 무엇이며 실패는 또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은 남겨두기로 하자. 다른 하나의 행복론과 같은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의 객관적 기준이 있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사람은 행복하며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주어진 유능성과 가능성을 다 발휘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


60의 유능성을 타고난 사람이 65나 70의 결실을 거두었다면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90의 가능성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70의 결과에 머물렀다면 실패한 사람이다. 밖에서 볼 때는 같은 70이지만 그 자신의 삶의 가치를 따진다면 성공과 실패는 달라지는 법이다. 그래서 정성 들여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으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는 법이다. 성공과 행복의 함수 관게도 그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랑 있는 고생이 기쁨이었네_결혼과 가정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내가 잘 아는 여학생 제자가 있었다. 교회에서 거행되는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했다. 진행되는 절차와 선서하는 내용들을 경청하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무서워서 저런 결혼은 못하겠다." 지킬 수 없는 맹세를 너무 쉽게 요구하는 것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래도 나와 우리 세대에만 해도 결혼은 필수조건이었다. 시골마을에 결혼을 못한 노총각이 있든가 노처녀가 있으면 모두가 걱정해주었다. 스무 살만 되어도 부모들은 딸이 시집을 가야 할 텐데, 라고 걱정했다. 내 누나는 17세에 약혼을 했다. 상대방 가정에서 점찍어두었기 때문이다. 다들 적당한 나이에 혼인을 맺는다고 부러워했다. 결혼은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필수가 아니라 선택

생각해보면 내 아들딸들 때에만 해도 결혼은 필수조건이었던 것 같다. 딸들이 외국에 유학을 가게 되면 혼기를 놓칠 것 같아 유학을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했다. 나는 두 아들과 네 딸을 두었는데 모두가 결혼은 해야 하고, 늦기 전에 결혼을 해야 자녀들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딸들은 대학원을 끝내면서 결혼을 했다. 아들들은 학업을 끝내고 직장관계가 있으니까, 좀 늦게 결혼했다. 늦었지만 결혼은 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내 손주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은 필수조건이 아니고 선택조건으로 바뀌었다. 할 수도 있고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남자애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자애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내 아들딸들의 큰 걱정거리는 손녀들의 결혼 문제이다. 늦어지기도 한 데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미국에 사는 셋째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아버지, 우리들 딸 넷이 일찌감치 다 결혼한 것을 큰 효도라고 생각하세요. 그때는 몰랐는데 애들을 키워보니까 속 썩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이 제일 큰 효도던데요?"라는 것이다. 내 외손주인 아들딸이 다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다. 전문의가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린다. 그런데 의과대학 과정을 끝내게 되면 이제는 결혼을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바뀐다. 조건이 맞고 때가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편하게 살자, 하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아들은 결혼을 안 하면 외아들이기 때문에 대가 끊어지고 딸은 혼자 살게 되면 부모들의 마음이 안타까울 정도로 불안해지고.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 같아지니까, 자식들이 다 제때에 결혼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라는 것이다. 역시 인생은 겪어보아야 깨닫게 되어 있다.


5, 6년 전에 우리 대학 경제학과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제자들의 모임에 간 일이 있었다. 모두가 70대 전후였다. 전공과목이 그랬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모두 안정되어 있는 동기들이다. 여기저기 테이블에 5, 6명씩 둘러앉아 나누는 얘기 가운데 걱정거리는 딸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하기는 나와 같이 근무했던 두 교수도 모두 후회하는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비 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막내딸을 결혼시켜야 하겠는데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집의 딸들은 50대가 되었는데도 결혼을 안 하고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어머니들의 마음이야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내 제자들의 얘기는 다 비슷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 철들기 전에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대학원까지 보낸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또 유능한 딸이 더 공부하겠다는데 반대할 수도 없고, 대학원을 끝내고 직장을 갖게 되니까 결혼해서 구속을 받는 것보다는 독립된 자유가 더 좋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사회 문제가 되어버렸다. 일찍이 아들딸들을 결혼시킨 친구들을 보면 잘했다고 축하도 해주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따져보면 서구사회에서는 이런 결혼관의 변화가 생긴 지 오래다. 거기에는 우리와 다른 결혼문화가 먼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부부인 듯 친구인 듯

내가 대학에 있을 때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 두 교수의 경우를 보았다. 훙크라고 하는 물리학 교수는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았기 때문에 신체가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가구공이 되는 것이 젊었을 때 꿈이었는데 신체의 부자유 때문에 학자가 되었다. 그 신체적 허약성으로 독신으로 혼자 사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걱정하다가 지금의 부인과 결혼을 했다. 부인은 그 남편을 돕기 위해 봉사심을 갖고 결혼을 했다. 말하자면 사랑이 있는 선택이었다. 우리사회 같았으면 그 교수는 결혼하기가 참 힘들었을 것이다. 그 교수는 건강 때문에 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부인은 서울에 다녀가기도 했다. 남편의 옛 친구를 만나기 위해.


또 한 교수는 S라는 철학 교수이다. 그 교수는 자유로운 학문생활을 위해 결혼을 생각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문화 사업을 하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 여자는 상당히 자리 잡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끌어갈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일이 더 중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성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했다. 대학과 그 여자가 일하는 뮌헨과는 좀 거리가 있다.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주말이나 휴가에는 서로 방문한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스위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면 미국이나 일본으로 긴 여행을 함께 한다. 보는 사람들은 부부로 생각하지만 자신들은 친구로 통한다. 부부친구인 셈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내연관계라고 색다른 안경을 끼고 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그런 믿음과 생활이 훨씬 더 자유롭게 서로 위해주는 남녀관계라고 여기며, 또 주변에서도 인정해준다.


상위층의 지성인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에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살고 간 어린 여학생이 있다. 그 애도 성년이 된 후에는 남자친구와 동거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나 부모의 생일이 되면 남자친구와 같이 와서 축하도 해주고 일도 돌보아주곤 했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물으면 아기를 갖게 되면 결혼할 생각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양가의 부모들은 애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형식적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다.ㅠ국내에서는 아직 그런 수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성격의 결혼 아닌 동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_돈과 성공, 명예

경제적으론 중산층, 정신적으론 상위층

독일에서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세 사람의 강도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무엇이 있어 찾아가 보았더니 숲속에 황금 덩어리가 있었다. 세 강도 모두가 놀랐다. 이 금덩어리를 팔면 우리 셋이 부자는 못 되지만 한 평생 먹고사는 데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 사람은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렸다.


산 밑에는 넓은 강물이 흐르고 강가에는 작은 나룻배 하나가 있었다. 금을 보자기에 숨겨 싸가지고 세 사람은 배를 저어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때 앉아 있던 한 강도가 옆에 있는 강도에게 눈짓을 했다. 그 뜻은 노를 젓고 있는 저놈을 죽이면 금이 우리 두 사람 몫이 되고 우리는 부자 행세를 하면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암시였다.


한 강도가 슬그머니 일어나 노를 젓고 있는 강도를 강물로 밀어 넣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두 강도는 껄껄 웃으면서 이제는 팔자를 고쳤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가는 길가에서 서로 협의했다. 금괴를 갖고 거리로 들어갔다가는 무슨 변이 생길지 모르니까 한 강도는 나무 그늘 으슥한 곳에서 금괴를 지키기로 하고 다른 한 강도는 거리로 들어가 점심 도시락을 사오기로 했다. 도시락을 준비하던 강도가 생각했다. 내가 저놈을 마저 죽이고 금괴를 가지면 큰 부자가 될 텐데 어떻게 죽일까? 술병에 독약을 넣어 갖고 왔다. 금괴를 지키고 있던 강도도 같은 생각을 했다. 거리로 간 강도가 칼을 놓고 갔는데 그 칼을 갑자기 휘둘러 목을 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갔던 강도가 도시락을 꺼내놓고 술병까지 준비해 꺼내는 것을 본 강도가 칼을 들고 대들었다. 둘은 강도답게 싸움을 벌였으나 무기가 없는 강도가 크게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금괴를 다 줄 테니 목숨은 해치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금괴를 본 강도는 그를 죽여버렸다. 칼을 숲속에 내던지고 숨이 가쁘게 제자리로 돌아온 강도는 다른 강도가 준비해놓은 술병을 기울여 여러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신음하다가 목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세 강도의 욕심스러운 꿈은 사라지고 금괴는 또 어떤 사람에게로 갈지 모르게 그 자리에 남겨지고 말았다.


내가 대학생 때 독일어 교재로 읽었던 이야기다. 돈은 악마와 같이 우리를 유혹한다는 뜻이다. 그 유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과 인격을 잃어가는지 모른다. 우리는 강도니까 그랬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뽑아준 지도자, 정치계에서도 돈의 유혹에 빠져 인생을 그르친 사람들이 많다. 재벌가의 재산 싸움과 가정적 불행은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으나 내가 아는 한 가정에서는 재산과 교육기관의 관리 문제로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한편이 되고 작은아들은 어머니와 합해서 대립과 갈등을 벌였다. 그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문제로 고민과 충격에 빠져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점점 양심과 도덕적 가치와 질서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만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우리 젊은이들과 아들딸들이 그런 사회에 살기를 원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늙음은 말없이 찾아온다_노년의 삶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노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보통 65세부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와 내 가까운 친구들은 그런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 신체가 쇠약해지면 늙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생각은 동물적이거나 생리적 관점이다. 신체적인 성장은 여자가 22세까지이고, 남자는 24세까지라고 한다. 그 후부터는 서서히 하강하는 것이 신체적 과정이다. 그러다가 40대가 되면 성인병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누구나 늙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그런 한계가 없다. 노력만한다면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후배 교수들이 회갑이 되었다고 말하면 저 친구는 철도 들기 전에 회갑부터 맞이하네.라고 생각한다. 나도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내 선배 교수인 정석해 선생이 한번은 나에게 "김 선생은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더라?"고 물었다. 내가 "70대 중반입니다."라고 했더니 "좋은 나이로구먼......" 하면서 부러워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1961년에 처음 미국에 갔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었다. 백인 교수들은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지금 내가 "노년기는 언제부터인가?"라고 물어보는 것은 성장이 끝나기 시작하는 때를 더듬어보자는 뜻이다. 만일 성장이 정지되는 75세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늙기 시작하는 것은 75세부터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가 80세가 되면 노년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 나이가 되면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인생이 정착되거나 평가의 대상이 된다.


내 주변에서도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 동창이나 대학 친구들을 만난다. 그 나이쯤이 되면 모두가 살아온 과거의 결과를 보여준다.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다. 존경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도 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도 드러난다. 때로는 밖에 나갔다가 동료나 후배 교수들을 만난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인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쓸쓸함을 보여준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우리들 각자의 노년기는 어떠할까 반성해본다면, 80쯤의 나이가 평가의 기준이 되면 좋을 것 같다. 흔히 말하는 대로 나는 과연 성공했는가? 지금도 행복하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가? 그래도 존경스러운 삶을 이어왔는가?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97세를 맞고 있다. 그러니까, 80고개를 가고도 17년이 지난 셈이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물어보곤 한다. 내 인생에 후회는 없었던가?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면 언제쯤부터 잃어버린 삶의 결함을 채워갈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삶의 의미를 남겨주었던가?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80에 내 삶을 돌아본다면

나는 가까운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가까운 친구였던 김태길 서울대 교수는 76세 때 한국인의 가치관에 관한 책을 내놓았다. 88세까지는 노쇠 현상을 크게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또 한 친구인 안병욱 교수도 94세에 작고했다. 병중에 있던 4, 5년을 제외한다고 해도 89세까지는 일을 계속한 셈이다. 성결교의 좋은 지도자였던 정진경 목사는 88세까지 정상적으로 일하다가 다음 날 스케줄을 짜놓고 잠든 것이 영면으로 이어졌다. 김수환 추기경은 병으로 불편은 했으나 87세까지 영향력을 보여준 셈이다.


나는 약간 예외인지 모르겠다. 65세가 되면서 연세대를 정년으로 떠났다. 후배들에게 "나도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내일부터 졸업생답게 사회에 나가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농담 섞어 말했다. 그리고 만 31년간 또 일을 했다. 교육계에서 40년, 사회 교육에 동참하고 31년을 보냈다. 71년 동안을 일한 셈이다. 앞으로 몇 해나 더 지금 생활이 연장될지 모르겠다. 매일 원고도 써야 하고, 1주간에 한두 번쯤은 강연에도 나가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는 이도 있다. 해오던 일이니까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일하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아직은 사회가 요청해 오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다.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적합할지 모르겠다. 75세까지는 나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일했으니까, 어느 정도는 창의적인 성장을 해왔다. 그 후부터는 창조적인 노력이나 성장은 불가능하더라도 그 성장해 놓은 수준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평균 성장 수준은 그보다 훨씬 낮은 실정이다. 나의 성장이 80이었다면 사회적 성장은 70 정도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갖고 있는 10 정도의 도움은 줄 수도 있고 또 사회가 요청하기도 한다.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어떤 분야의 수준은 90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배워서 자라야 한다. 그러나 70 정도의 성장에 머무는 분야가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도 건강만 허락한다면 그들을 돕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요사이는 60분 정도까지의 강연은 서서 한다. 그보다 긴 강연을 맡았을 때는 앉아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원고를 쓰는 일은 자유로운 시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다.


왜 이런 부끄러운 얘기까지 하는가? 지금도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40대라고 해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와 같아서 노쇠하게 되다. 차라리 60대가 되어서도 진지하게 공부하며 일하는 사람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과 도전을 포기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된다.


80쯤 되면 모든 사람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스스로 나는 행복했다고 인정하며, 주변 사람들이 존경스러운 일생을 살았다고 평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론, 스스로 쓸모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부끄러움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 사회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는 자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도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뒤늦게 발견한 인생의 교훈이 있다. 인생에서 50대에서 80까지는 단절되지 않은 한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50부터는 80이 되었을 때 나는 적어도 이러한 삶의 조각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준비와 계획과 신념과 꾸준한 용기를 갖고, 제2의 마라톤을 달리는 각오로 재출발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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