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밭 별자리

   
김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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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랩
   
14000
2015�� 03��





■ 책 소개


낯선 하늘 아래 만들어진 별자리의 꿈


자신과 같은 모습, 같은 생각을 지닌 어떤 이가, 또 다른 세상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면?


소설 『옥수수밭 별자리』는 이런 상상과 꿈이 모티브(motive)가 되었다.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자신의 존재를 찾아본다는 것은 꿈을 다시 회상하는 것과 같다. 만약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같은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또 다른 자신의 삶은 이미 정해진 운명의 항로를 따라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은 자신의 현재, 과거, 미래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애틋한 사랑이야기이자 상상을 통한 꿈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복은 친구 아버지 소유의 별장을 보수하기 위해 낯선 시골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 여울가에 홀로 앉아 이런 상상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운다. 그런데 우연히 길 잃고 찾아온 한 여인과 함께 밤을 지새우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을 예감한다. 영복은 그녀와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같은 운명을 지닌 또 다른 자신의 모습도 밤하늘 속 어느 공간에선가 같은 모습으로 밤하늘을 응시한다고 여겨버린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 모습이 그 누군가의 과거에 모습이 되고, 또 과거에 내 모습은 그 누군가의 미래의 모습이 된다.”


■ 저자 김형식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어느 날 훌쩍 서울을 떠나 몇 년 동안 전국을 여행했다. 고정관념에 구애받기보다는 자신 안에서 자유롭게 느끼고 상상하는 삶을 추구하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이번 첫 창작집은 자전적 성장 과정을 그렸다. 벤처 투자 회사에서 근무했고 26년간 취미 삼아 온 프라모델을 직업으로 전환, 프라모델 수입판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스스로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라 여기지만, 주변의 사람들과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타협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제1장 지나간 추억
제2장 우연한 만남
제3장 떠오르는 그리움
제4장 사랑
제5장 다시 찾은 북삼리
제6장 찾아온 불행
제7장 슬픈 방관자
제8장 옥수수밭 별자리


에필로그


 




옥수수밭 별자리


지나간 추억

세상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공기 중에 먼지처럼 떠다닌다. 또 그 가능성 속에서 삶은 변하기도 하고 희박한 확률이지만 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나기도 한다.


나의 젊은 날,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어느 낯선 곳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여인에 의해 삶은 변화했다.


내가 지금도 지난 과거를 돌이켜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은 지나간 추억이 언제나 아름답게 기억돼서가 아니다. 지나간 추억이란 해질녘 잠깐 동안 세상을 아름답게 환히 밝히다가 사라져가는 태양의 뒷모습처럼 쓸쓸함으로 기억되는 그리움이었다.


언젠가 내가 어릴 적에 나이 많으신 사촌 형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네가 미래를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너에게도 미래의 모습보다 과거의 모습이 더욱 소중하게 기억될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 그 형님께서는 내게 이런 당부도 하셨다. 살아갈 날들을 결코 소홀히 보내지 않으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따뜻한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 가라고.


나는 그 당시 나이 많으신 사촌 형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흘러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이 내게도 행운처럼 또는 불행처럼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과거의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아 가는 나이가 되었다.


젊은 날의 기억들은 평생 동안 그림자처럼 내 뒤를 쫓아다닐 것이다. 십여 년이 지난 그때의 기억들도 마찬가지이다. 일찍이 하늘 속에서 만들어진 바람은 소망을 담기도 하고 꿈을 만들기도 한다. 바람이 불 때면 나는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생각한다. 쓸쓸한 하늘 위, 어둠 속엔 수많은 추억들이 방울방울 떠다닌다.



우연한 만남

그녀 자신은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왔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다만 이 지역 중면에 살고 계신 삼촌 집을 방문했다가 다시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저물어가는 태양이 들판의 갈대 숲과 여울의 자갈밭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게 하는 풍경을 보았다고 한다. 거대한 구름도 힘 센 바람도 잠시 이동을 멈췄다. 아마도 그녀가 발견한 풍경은 하루 중에서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곳 북삼리를 흐르는 임진강은 얕은 수심 탓에 강바닥을 훑고 흐르는 빠른 물살에 떠밀린 모래가 곳곳에 쌓여 여러 개의 작은 모래섬을 만들었다.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여러 개의 쓸쓸한 섬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승용차를 운전하여 임진교 아래 들판의 비포장 길을 따라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곳까지 한참을 달려왔다고 한다.


차에서 내린 그녀는 인적 없는 고요한 풍경 속에 흐르는 물줄기를 보았고,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보았을 것이다.


강변 위에 일찍 피어버린 코스모스는 실바람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옆으로 잠시 기우뚱거리며 기울어졌다가 다시 그리운 제자릴 찾아왔다. 늦여름의 고추잠자리 떼들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간의 허전함을 메우고 있었고, 흐르는 임진강의 넓은 강폭 사이사이에는 얕은 바닥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여울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평화로운 고요 속에서 자연의 풍경을 감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환한 낮의 세상에서 어스름한 저녁의 기운이 느껴지는 또 다른 세상은 금세 찾아온다.


아름다운 풍경은 고요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되지만, 분명 그녀가 느껴야 할 시간의 흐름은 시각 안에 붙잡혀 정지되어 버렸다. 그녀의 본능이 어스름한 기운을 감지하고 집으로 귀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날은 황혼 빛에 휩싸여 잠시 밝아졌다가 순식간에 어둠의 그림자가 깔렸을 것이다.


당황한 그녀는 시간을 많이 지체한 것을 후회하며, 인적 없는 이곳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급히 운전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달 장마철에 만들어진 진창구덩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만 차의 앞 바퀴가 진창에 빠진 것이다.


지나간 태풍과 장마로 인해 비포장 길 곳곳이 울퉁불퉁했고, 땅이 꺼져있었기 때문에 주위를 더욱더 신중히 살피면서 운전해야 했지만, 서둘러 낯선 길을 벗어나야겠다는 조급함 때문에 그만 실수를 범한 것이라고 했다.


구덩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더욱 힘껏 밟아 보았지만 차의 앞 바퀴는 계속 헛돌았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부모님, 친구, 삼촌 등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지역이탈이라는 메시지가 휴대폰 액정에 선명히 찍혀 있었다고 한다.


큰 도로까지만 걸어가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 ‘걸어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자동차로 달려온 거리가 만만치 않은 상태여서 혼자 낯선 길을 걸어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고 했다. 또한 이제 곧 날이 어두워질 것 같아 걸어가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북삼교와 임진교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군부대 군사작전 지역이면서 휴가철을 제외하고는 외부 일반인들과 지역주민의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아주 깊은 오지는 아니지만, 어둠의 두려움을 경험하지 못한 그녀에겐 껌껌한 저녁의 그림자가, 곧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둠은 방심하는 순간에 찾아오며, 자연 속에서 조난을 당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어둠을 인식하지 못해 고립되는 것이다.


어스름한 어둠이 깔릴 무렵, 아무리 주위를 둘려 보아도 온통 자갈밭뿐이며,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낙담하고 있었을 때, 자신의 위치에서 그 나마 멀지 않은 곳에 불빛이 보여 마을이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것이다.


날이 완전히 저물면 홀로 밤을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과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한 그녀는 용기를 내서 들판의 자갈길을 따라 이곳까지 걸어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갈길을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해 걸어왔지만 그녀의 희망과는 달리 어떤 낯선 남자가 홀로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있어 절망적인 심정이 들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그녀는 내가 밤을 지새우기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 불빛을 멀리서 발견하고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곳까지 걸어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까지 걸어 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나에게 모두 설명하고는 다시 모닥불과 하늘을 번갈아 응시하며, 자신의 심정을 어색한 침묵으로 대신했다.


나는 결코 그녀의 마음에 동요되지 않고, 밤하늘의 자비로운 정령들처럼 온화하고도 차분한 마음으로 그녀가 말하는 얘기를 모두 경청했다. 마음 한편으론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는 동안 조금이라도 그녀의 불안을 덜어주고 싶었던 생각으로 그녀의 말에 동조하기도 했고, 탄성을 내기도 했다. 또한 나는 당신의 모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녀가 길을 잃게 된 사연을 내게 모두 설명하는 동안, 이제 그녀와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빛은 모닥불과 하늘 속에 하나둘씩 나타나는 별빛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버렸다.(33쪽)


그녀는 나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움찔했으며, 주위의 암흑 같은 어둠과 식물들이 자라면서 들려주는 성장의 소리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곤, 불쾌한 표정으로 뒤돌아보기도 했다.


귓가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틱틱’ 소리의 정체는 수많은 식물들의 마디나 줄기가 경쟁하듯 한꺼번에 커가는 소리다. 바람이 그 미세한 소리를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번민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불편한 처지가 돼버렸지만, 나는 결코 이 아름다운 밤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안에 휩싸인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온화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말했다. 자연 속에 홀로 놓이게 되면 아무리 침착한 사람도 당황하게 마련이며 어둠은 온통 세상을 정적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아가씨는 스스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뿐이라고. 또한 나는 충분히 아가씨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난 도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결코 아가씨께 나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부디 편한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는 부탁의 말도 했다.

물론 아가씨에 대한 약간의 설렘과 뜻하지 않은 말동무가 생겨 밤을 지새우는데 무료하지 않고,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제 밤에만 나타나는 하늘 속의 사물(事物)들이 쓸쓸한 섬이 되어 하늘의 푸른 바다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푸른 바다 속에 떠있는 수많은 빛나는 섬들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상념으로 하늘 속에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면 나쁜 생각이나 이기적인 마음은 사라진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을 신뢰한다면, 상대방도 신뢰해 달라고 말했다.


그녀와 내가 마주앉아 있는 곳은 얕은 물줄기가 흐르는 모래섬이다.


밤의 한가운데에 놓인 그녀와 나는 고요함 속에 스스로의 생각들을 하늘 속 도화지 안에 그려놓고 있었다. 수많은 그리운 사람들과 자연의 사물들이 하늘 속 도화지 안에 그려졌다가 다시 지워졌다. 생각이 많아진 것만큼 새로운 별들도 끊임없이 나타났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궁금했다. 그녀의 고개는 한곳에 고정되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하늘 속에 스스로 간직할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이때 그녀의 등 뒤 쪽, 아득히 먼 하늘에서 유성 하나가 유령처럼 미세한 휘바람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는 떨어지는 유성을 그녀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마치 하늘 속에 별들은 끝없이 펼쳐진 공간 속에서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하늘이 옥수수밭으로 보이고, 별들은 옥수수처럼 결실을 소망하며 한알 한알 영글어 가는 세상. 나는 하늘 속에 펼쳐진 옥수수밭을 멀리서 바라보는 파수꾼처럼, 느긋하기도 하고 게으름 피우는 오만한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밤이 깊어갈수록, 피로가 누적된 그녀는 졸린 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다가 눈빛이라도 마주치면 그녀는 고단함을 숨기려고 하는 듯, 밝은 표정을 애써 내가 보여주려 했다. 또 잠을 쫓기 위한 행동인지 고개를 높이 치켜 들고 새벽하늘을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어린아이처럼 산만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의 착각인지 그녀의 시선이 밤하늘의 어느 곳을 응시하면 모닥불 속의 작은 불씨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희망을 품고 하늘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 밤, 코스모스를 닮은 여인은 나와 함께 있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피로에 지친 그녀가 어느새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무릎과 무릎 사이에 고개를 떨군 채, 약간의 코골이를 하며 잠들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던 나는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사래를 치며 밤이슬의 축축한 공기 속에서 계속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도데의 소설 속 목동이 되었고, 그녀는 주인 아가씨인 스테파네트가 되었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우리 둘만의 세상을 얘기한다면, 사람들은 선뜻 나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행운이나 불행이 자신에게 찾아오면 그때서야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가능성이란 꼭 객관적인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공기 중에 먼지처럼 떠다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반짝이는 이마, 살짝 감은 눈망울, 작은 언덕 같은 콧대, 코스모스 잎 같은 여린 입술, 나는 잠이든 그녀를 관찰할 수 있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고귀한 존재처럼 보였다.


그동안 수많은 밤을 홀로 지새웠지만, 지금처럼 많은 별들이 선명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하나하나의 선명한 별빛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이 새벽이 다 지나면 그녀와 나는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저 하늘 어딘가에 그녀의 모습을 새겨둔다면, 나는 다음 날도, 또 다음날에도, 같은 마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정의 별’ 나는 그녀의 별을 이 새벽 어느 공간에 새겨두었다.


모닥불의 불씨가 모두 태워져 없어질 때까지 그녀의 고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가끔씩 자세가 불편해지면 몸을 뒤척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밤하늘 속의 아기 곰처럼 제 자리에서 가늘게 숨 쉬며 잠들어 있었다. 나는 잠들어있는 그녀와 마주앉아 샛별이 사라질 때까지 상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랑

요정 씨, 보세요.


우린 비록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일상의 반복적인 생활과 무료함으로 잠시 동안 지쳐있을 수도 있겠지만 침묵 속에서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며 깊은 생각으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대방을 배려하고, 즐거운 느낌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타협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밤하늘의 자비로운 정령들처럼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정 씨의 글은 제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상념으로 다가설 수 있는 날은 멀지 않았으며, 모든 사물들은 자연에 순종하듯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확신과 신뢰는 더욱 쌓여만 갈 것이며, 언제나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저는 현재, 현실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나의 성급한 마음과 미흡한 생각이 요정 씨께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부디 제 자신이 편견이나 선례에 얽매이지 않길 기원할 뿐입니다.


또한 저는 선의의 마음이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새로운 상념으로 다가서길 바랍니다.


비록 성급하고 미흡한 나의 생각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고민하겠지만 마음의 균형 잡힌 생각은 그녀에게 신뢰와 믿음을 준다. 이제 용기를 내 말하고 싶다. 나의 꿈을 말하고, 미래를 말하고 나와 함께 평생을 같이하자고 말하고 싶다. 비록 현실은 경쟁적이고 치열하지만 꿈과 희망이 자라나는 것은 아직도 젊음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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