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시계 애호가들도 미처 알지 못한 시계 속의 비밀들!!
‘시계 독립군’이 알려주는 ‘40밀리미터의 과학’
시계 독립군이자 대한민국 1호 시계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경이 그간 모은 자료들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기계식 시계의 모든 것을 알기 쉽고 생생하게 정리한 책『시계 남자를 말하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싶고, 우리가 모르고 있는 시계의 모든 것을 담았다. 그리고 이 책은 패션기자에서 시작해 시계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저자가 경험한 시계 이야기이기도 하다.
2007년부터 세계 최고의 시계 박람회인 바젤월드와 SIHH를 취재해 온 저자는 시계 관련 지식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시계 독립군"으로 활동한, 국내 유일한 시계 컨설턴트다. 롯데백화점 명품관 멤버십 매거진인 "에비뉴엘"에서 패션 디렉터로 근무하며 기계식 시계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이후 전 세계 유명 시계 매장과 박물관, 시계 제작 공방을 수없이 찾아다녔고, 시계 제작 장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시계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그녀가 "시계를 찾아다닌" 8년간의 결실이자, 시계에 관심 없는 이들이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시계 이야기다. 시계 애호가들이 미처 알지 못한, 직경 40밀리미터의 시계 속에 숨어 있는 비밀들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또한 역사와 흐름, 경향, 시계 속의 각종 무브먼트들 외에도 우리가 알고 싶은 브랜드 시계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페이지마다 눈을 즐겁게 하는 각종 브랜드 시계 사진들은 시계에 대한 관심을 한층 높여준다.
■ 저자 이은경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수원대학교 의류직물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서울문화사, 중앙 M&B 등에서 패션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2006년부터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의 멤버십 매거진 "에비뉴엘"에서 패션 디렉터로 시계와 주얼리 기사를 주로 담당했다. 특히 아날로그 시계의 매력에 빠져, 시계 독립군으로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의 시계 박람회와 명품관들을 찾아다녔다.
2011년부터는 ‘주간조선’ ‘신동아’ 등 시사지, ‘에스콰이어’ ‘노블레스’ ‘로피시엘 옴므’를 비롯한 남성잡지와 멤버십 매거진 등에 시계 칼럼을 썼다. 2014년 현재 시계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시계 칼럼을 쓰고 관련 방송 등에 출연하는 한편 네이버에 시계 전문 블로그
■ 차례
Part 1 ‘스몰 럭셔리 시계’, 남자를 말하다
왜 ‘아날로그 시계’에 열광하는가 | 시계를 알려면 무브먼트를 보라 | 그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 시계 애호가들이 꿈꾸는 박람회 | 남자만의 이야기, 그들만의 품격
Part 2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시계, 인류의 역사를 바꾸다 | 왜 스위스 시계를 고집할까 | ‘공장도시’, 세계유산에 오르다 | 내 시계는 정말 ‘스위스 메이드’일까 | ‘스위스 메이드’라면 ‘팅 하오!’ | ‘Swiss Made’ vs ‘Made in Germany’ | 패션 브랜드, 시계로 승부하다
Part 3 그의 손목에서 ‘남자’를 읽는다
슈트가 어울리는 신사를 위한 드레스 워치 | 자동차와 시계, 하나가 되다 | 하늘 위의 진정한 승자 | 바다를 꿈꾸는 남자들의 다이버 워치 | 요트의 도전정신과 어울리는 시계 | 세계를 누비며 남자에게 바친다 | 당신은 ‘착한 시계’를 차고 있는가
Part 4 시계는 시각에 머물지 않는다
인류를 움직이는 위대한 부품들 | 중력을 이기는 몸값, 투르비용 | 시각을 말한다, 미닛 리피터 | 평생을 함께하는 퍼페츄얼 캘린더 |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아무나 가질 수 없는 | 다이얼 위의 예술, 에나멜링
Part 5 시계와 살고, 시계에 잠들다
사라진 ‘앙투아네트’를 복원하라 | 시계와 함께한 ‘마지막 황제’의 꿈 | 1932년 4월 29일, 그날과 만나다 | 파텍필립,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 ‘백악관’이 끝내 차지 못한 롤렉스 | 시계왕국의 황제, 니콜라스 하이에크
Part 6 그들의 역사, 그들의 시계
달라이 라마의 ‘시계사랑’ | 시계, 인류의 꿈을 담아 우주로 | 진정한 시계 마니아, ‘제임스 본드’ | 람보가 사랑한 마초 시계, 파네라이 | ‘독재자’는 오메가를 좋아해
Part 7 평생 함께할 시계를 만난다
소수만을 위한 선택, 리미티드 에디션 | “품질은 이 마크가 책임집니다.” | 혁신은 소재에서 시작 된다 | 예물시계, 어떤 것이 좋을까 | 좋은 시계 고르는 좋은 습관 | 내 시계, 팔면 얼마나 받을까 | 관리만 잘 해도 시계 값 번다
그래서 나는 시계가 좋다
시계, 남자를 말하다
스몰 럭셔리 시계, 남자를 말하다
왜 아날로그 시계에 열광하는가
기계식 시계, 인간의 향기를 품다
시계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아날로그다. 인간의 향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디지털이 더 이상 새롭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의 집약체인 시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좇으며 그에 큰돈을 기꺼이 쓰는 이들조차 유독 시계에서만은 트렌디(trendy)가 아닌 타임리스(timeless)에 지갑을 열고 있다.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과 갈망은 디지털 시대를 거스르는 아이러니한 트렌드다.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기계식 시계의 열풍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생활 속에서 기계식 시계는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마저 선사한다. 더구나 수백 년을 이어온 기술력, 장인정신, 주인의 품격이 담겨 있는 기계식 시계를 향한 마법 같은 열정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자만의 이야기, 그들만의 품격
오트 오롤로지, 그 이상은 없다
오트 오롤로지는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시계로, 자동차와 비교하면 주문을 받아 숙련된 장인이 제작하는 롤스로이스나 마이바흐와 비슷하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파텍필립․바쉐론 콘스탄틴․브레게․랑에 운트 죄네․파르미지아니 등이 있다. 이들 브랜드는 장인이 시계의 세밀한 부분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완성하기 때문에 연간 생산량도 매우 적다.
프레스티지, 특별하지만 합리적인
프레스티지 브랜드는 일반적으로 비싼 시계, 좋은 시계라 불리는 고급 시계 브랜드 대부분이 포함된다. 예거 르쿨트르․피아제․오데마 피게․자케 드로․블랑팡․위불로․제니스․파네라이․몽블랑․롤렉스 등이 이에 속하며, 정통 스위스 메이드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 때문에 손목에 차는 순간 자부심이 생긴다. 프레스티지 브랜드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수백만 원대부터 수억 원 이상의 최고급 시계를 동시에 선보이는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만약 브랜드가 아닌 각 시계 컬렉션으로 오드 오롤로지와 프레스티지를 분류한다면 앞서 언급한 브랜드의 일부 컬렉션은 충분히 오트 오롤로지에 포함될 것이다. 프레스티지 브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시계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생산량을 늘려 합리적인 가격대의 시계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프레스티지 브랜드는 고도의 기술력과 우수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시계 애호가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왜 스위스 시계를 고집할까
박해 속에서 일어서 시계나라
스위스는 언제부터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스위스 시계를 최고로 꼽았을까? 16세기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운동이 한창이었다. 이 전쟁으로 존 칼뱅이 이끈 위그노라고 불린 신교도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했다. 그들 대부분은 시계 제조, 염색, 인쇄 등에 능한 수공업자였다. 스위스 시계가 명성을 떨치기 이전에 시계 기술을 발달시킨 시계장인들 대부분은 영국이나 프랑스 사람이었다. 제네바 사람들은 화려한 장신구를 만들어 영국과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 성직자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제네바로 이주한 신교도들은 이들과 함께 시계를 만들어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40년 동안 이어진 프랑스 종교전쟁 후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대중의 생활과 행동을 규제하는 칙령이 내려졌다. 장식품이나 사치품을 엄격히 제한한 이 칙령으로 제네바 금세공업자들은 생계가 어려워졌다. 이때 프랑스에서 이주한 신교도들이 그들에게 본격적으로 시계 제조 기술을 전수하면서 제네바를 중심으로 스위스 시계의 화려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16세기 말, 뛰어난 금세공술을 지닌 스위스인과 시계 제조 기술을 지닌 신교도들이 만나 완성한 시계는 품질 면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쥐라가 멈추면 지구도 멈춘다
18세기, 시계 장인들은 제네바 인근에 있는 쥐라(Jura)산맥으로 옮겨 그들만의 공방을 설립했고, 가족 단위 혹은 대규모로 더 많은 시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시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작은 부품들은 큰 기계 장치로는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작다. 그래서 손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작업이 절실했다. 그들에게는 섬세한 세공 기술이 있었고, 함께하는 가족도 많았다.
그들은 한 사람이 만드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 단위의 분업으로 시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겨울 내내 그들은 밖에 나오기보다는 집 안에서 시계 부품 제작에 몰두했다. 이렇게 완성된 시계들은 가까운 프랑스부터 영국, 인도, 멀리는 중국에까지 팔려나갔다. 그들의 고객 명단에는 프랑스의 황제인 나폴레옹은 물론 청나라의 동치제까지 올라 있었다. 알프스산맥의 유명세에 가려 있던 쥐라산맥은 기계식 시계를 향한 장인들의 열정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기계식 시계의 성지다.
그의 손목에서 남자를 읽는다
슈트가 어울리는 남자를 위한 드레스 워치
슈트를 입을 때 차는 시계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일반적인 셔츠 대신 포멀한 슈트에 입는 셔츠를 드레스 셔츠라고 부르듯 이때 차는 시계도 드레스 워치라고 부른다. 드레스 워치는 크게 네 가지 조건이 붙는다. 우선, 드레스 워치는 품격을 상징하므로 금 혹은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 소재로 된 것이어야 한다. 스트랩은 가죽 스트랩이어야 한다. 디자인은 투 핸즈 혹은 스몰 세컨즈 모델의 심플한 스타일이 좋다. 시계의 직경은 41밀리미터 이하로, 드레스 셔츠 소매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부담스럽지 않은 사이즈가 좋다. 마지막으로 기계식 무브먼트를 장착한 것이어야 한다.
바다를 꿈꾸는 남자들의 다이버 워치
다이버들에게 시계는 단지 시각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잠수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에 생명과 직결된 장비다. 완벽한 방수에서 더 나아가 수압, 해저의 어두운 환경에서 견뎌야 하는 것이 다이버 워치의 첫째 조건이다. 다이버 워치는 최고 300미터, 30ATM(기압)이상 방수할 수 있어야 한다. 스크류를 통해 물이 스며들 수 있으므로 크라운을 돌려 빼는 스크류-인 스크류-다운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헬륨 방출 밸브도 필수다. 단방향으로만 돌아가는 회전 베젤도 다이버 워치의 필수적이다. 잠수 중 잘못 건드려 세팅이 바뀌면 다이버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물속에서도 시각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덱스와 핸즈에 야광처리도 해야 한다. 염도가 높은 바닷물 속에서도 녹슬지 않고 잘 견딜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고, 두꺼운 다이버 슈트에도 찰 수 있는 밴드 등도 다이버 워치의 필수 조건이다.
세계를 누리는 남자들에게 바친다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 주의를 공전하기 때문에 서울과 도쿄에 밤이 오면 뉴욕이나 토론토는 해가 떠오른다. 출장 중 곤히 잠든 가족을 깨우고 싶지 않거나, 외국에 있는 바이어의 개인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다면 월드 타임 시계는 필수품이다. 1930년대 비행기 조종사나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시각을 동시에 보여주는 시계가 필요했다. 이에 제네바의 시계 제작자인 루이 코티에가 1931년 현대 월드타임 시계의 시초인 월드타임 포켓 워치를 선보였다. 그가 발명한 일명 코티에 시스템은 다이얼 바깥 부분에 세계 주요 도시 이름이 표시되어 있고, 1부터 24의 숫자가 적힌 디스크가 중앙다이얼 주변으로 회전하며 세계 시각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당시 코티에 시스템을 사용한 브랜드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브랜드는 바쉐론 콘스탄틴과 파텍필립이다.
시계와 살고, 시계에 잠들다
사라진 앙투아네트를 복원하라
"그녀를 위한 작품을 만들어주시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의 여동생인 카롤린 뮤라.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시계 브랜드 브레게의 고객들 중에는 프랑스 왕족이 많다. 그중 브레게를 가장 사랑한 사람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1783년, 그녀가 브레게 시계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녀를 숭배하는 한 사람이 파리 오를르 주 강변의 케드로흘로지(Quai de LHorloge)에 있는 브레게의 부티크에 찾아 왔다. 그 사람은 브레게에게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 왕비를 위한 가장 화려하고 다양한 기능을 지닌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최고의 시계 장인인 브레게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한 시계를 금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이 특별한 시계를 위한 다양한 기능도 개발했다. 브레게는 시계를 의뢰한 사람의 요청에 따라 시간과 비용에 제약받지 않고 왕비를 위한 최고의 시계를 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토록 좋아하는 브레게의 작품을 만져볼 수 없었다. 시계가 완성된 것은 그녀가 죽은 지 34년, 시계를 주문한 지 44년이 되던 해였다. 브레게도 그가 평생을 들여 만든 시계의 완성품을 보지 못했다. 시계가 완성된 것은 그가 죽은 지 4년 후인 1827년이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갇힌 브레게
프랑스 혁명 때문에 스위스로 피신했던 브레게가 파리로 다시 돌아와서도 제작을 멈추지 않았던 작품이 마리 앙투아네트 회중시계였다.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알려진 브레게 N.160은 시계 역사의 전설로 남아 있는 걸작이다. 그러나 이 걸작의 운명은 원래 주인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순탄하지 못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사용해보지도 못한 채, 브레게가 완성품을 보지도 못한 채 세상에 나온 이 시계는 1983년 도난당한 후 어디에서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진정한 마리 앙투아네트다"
1999년 시계 브랜드 브레게를 인수한 스와치그룹의 회장 니콜라스 G. 하이에크는 2005년, 마리 앙투아네트 시계를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브랜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 원본 드로잉은 물론 파리 국립 기술공예 박물관에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사라진 시계들이 돌아왔다"라고 박물관 측이 공식 발표한 것은 2007년 11월이었다. 시계 브랜드인 브레게가 2008년 3월에 열린 바젤월드에서 복원한 마리 앙투아네트 시계를 공개하기 불과 5개월 전의 일이기도 했다.
박물관은 다시 나타난 시계가 19세기 초 제작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맞는다고 확인했지만 브레게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이에크 회장은 복원한 마리 앙투아네트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오늘날 새롭게 만들어진 마리 앙투아네트 시계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진정한 마리 앙투아네트 시계의 진품이다"라고 말하며 완성된 시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백악관이 끝내 차지 못한 롤렉스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존경하는 케네티 대통령은 유독 시계와 관련된 일화가 많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활발한 정치활동과 선거유세를 하던 1960년까지 그가 차던 시계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인 제니스였다. 1960년 11월, 43세로 최연소 미국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취임식에서 스톡데일이 선물한 오메가 시계를 착용했고, 그 모습이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제니스와 오메가를 즐겨 차던 케네디가 차지도 않고 버린 시계가 있다. 바로 롤렉스 데이데이트로, 당시 케네디와 염문설의 주인공이었던 마릴린 먼로가 1962년 케네디의 생일에 선물한 것이다.
잭, 한결같은 사랑을 담아 1962년 5월 29일, 마릴린이라는 글을 뒷면에 새긴 롤렉스 금시계를 케네디의 최측근에게 전달한 것이다. 시계는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문구로 마무리된 축하 편지와 함께 황금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이 시계를 차지 않았고, 오히려 즉시 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미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1958년 케네디의 여동생 패트의 남편인 배우 피터 로포드의 소개로 만난 케네디와 먼로는 처음 보는 순간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밀애를 즐기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하는 것까지 꿈꾸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케네디의 생일 파티가 있은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1962년 8월 5일, 그녀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63년 11월, 케네디 역시 46세의 나이에 총격으로 사망했다.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차량 유세 도중 사망한 케네디의 손목에는 결혼 4주년을 기념해 1957년 재클린 케네디가 선물한 까르띠에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이 시계의 백 케이스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첫 글자인 J,F,K와 선물한 날짜인 9.12.57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역사, 그들의 시계
진정한 시계 마니아, 제임스 본드
시계를 차지 않으면 본드가 아니다
007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제임스 본드는 남자의 유일한 액세서리는 시계뿐이라고 강조하려는 듯 항상 시계를 착용한다. 그리고 그 시계는 단지 시각을 알려주는 기능뿐만 아니라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나 임무를 수행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초기 007 시리즈 속 제임스 본드의 시계는 롤렉스 서브마리너였다. 영국 작가 이안 플레밍이 만들어낸 가공인물인 제임스 본드는 작가의 실제 캐릭터와 많이 닮았다. 평소 롤렉스를 즐겨 차던 이안 플레밍은 소설 속 주인공에게도 롤렉스를 채웠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본드가 롤렉스를 찬 것도 소설에 나온 브랜드를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 기계식에서 쿼츠로
<죽느냐 사느냐>에서 해밀턴 펄사 디지털 LED 시계를 찼던 제임스 본드는 1977년 열 번째 작품 <나를 사랑한 스파이>부터 4회 동안 일본 브랜드 세이코를 찼다. 해밀턴 펄사와 세이코 모두 쿼츠 시계를 주도적으로 선보인 브랜드다. 디지털 디스플레이 방식과 다양한 기능이 내장된, 당시로서는 미래적인 디자인의 시계가 스파이인 제임스 본드에게 더 잘 어울렸다. 1987년 티모시 달튼이 4대 제임스 본드가 되었을 때 롤렉스 서브마리너가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티모시 달튼을 끝으로 롤렉스를 착용한 제임스 본드는 더 이상 없었다. 1995년 <골드아이>부터 지금까지 제임스 본드는 오메가를 차고 있기 때문이다.
오메가, 제임스 본드의 대명사가 되다
롤렉스와 세이코가 단순히 시계를 제공하는 것에만 그친 것에 반해 오메가는 제임스 본드 시계가 되기 위해 영화 제작을 후원하거나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시계를 별도로 제작하는 등 엄청난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오메가의 제임스 본드 시계는 브랜드 주력 상품 중 하나로 다이버 워치 컬렉션인 씨 마스터다. 그러나 영화 속 시계는 씨 마스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실제 판매용이 아닌 고도의 과학기슬이 접목된 특별한 제품이다. 오메가는 매번 007 시리즈 개봉에 맞춰 007로고나 시리즈 제목을 시계에 새긴 판매용 제임스 본드 시계를 한정판으로 출시한다.
롤렉스 익스플로러 1을 착용한 작가 이안 플레밍의 영향으로 롤렉스로 시작한 제임스 본드의 시계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쿼츠 시계, 1990년대 이후 오메가 시계로 변화했다. 그리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계속되는 한 제임스 본드의 시계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007의 시계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 시대의 시계 유행과 함께할 것이다.
독재자는 오메가를 좋아해
빨간 글씨로 새긴 오메가 시계
롤렉스와 오메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중 오메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회로 알려진 북한의 주민들도 알고 있는 브랜드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이어진 3대 세습 과정에서 독재자의 이름이 적힌 오메가 시계를 체제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빨간 글씨로 김일성이라고 새긴 오메가 시계는 북한에서는 훈장보다 더 인기 높은 김일성 명함시계다. 보통사람은 구경하기도 힘든 오메가, 티고, 랑코 등 스위스제 최고급 손목시계로 만들어지는 명함시계는 1972년 김정일의 제의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일무장투쟁 시기 김일성이 동료였던 안길에게 자신의 손목시계를 변치 않는 의리의 상징으로 준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명함시계에도 등급이 있다.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 간부와 영웅메달을 수여받은 공로자 및 김정일의 측근들에게는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순금 오메가 시계가 하사된다.
주민은 굶어도 특별 선물은 여전
1994년 북한의 제1대 독재자 김일성의 사망 후에도 북한은 꾸준히 스위스에서 시계를 수입했다. 스위스 연방경제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모두 2,400만 달러 상당의 시계를 스위스에서 수입했다. 북한이 스위스 시계를 수입하는 이유는 당 간부들이나 국가 공로자들에게 특별선물로 지급하기 위해서다. 북한에서 김일성 시계와 김정일 시계는 특권층의 상징으로 이 시계를 받으면 죽을 때까지 배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김정일 사망 이후인 2011년과 2012년에도 북한은 스위스로부터 천 개 이상의 시계를 수입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국가유공자나 사회적 활동이 많은 인사들에게 나누어주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평생 함께할 시계를 만난다
예물시계, 어떤 것이 좋을까
결혼을 빛내주는 시계의 가치
시계 컨설턴트인 필자에게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가 "결혼 예물로 시계를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옛날이야기 같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예물시계는 결혼반지와 함께 꼭 해야 하는 결혼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결혼반지는 여전히 하면서도 시계는 하지 않는 커플이 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1990년대 들어 시계가 흔해졌고, 1990년대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시계의 가치는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기계식 시계의 인기와 함께 예물시계를 구입하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스위스에서 열리는 바젤월드에 참석하는 한국 바이어들의 시선은 예물시계를 빠트리지 않는다. 예물로 시계를 주고받는 한국과 일본의 결혼문화를 생소해 하던 스위스의 본사 담당자들도 예물시계 판매가 늘어나자 한국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대해주고 있다. 시계브랜드 입장에서 예물시계 문화는 한 번에 두 개의 시계를 판매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예물시계, 반려자를 고르듯 하라
예물시계는 보통 부모님과 함께 동행 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구입 시 당사자보다 부모님의 의견에 치우치다보면 비싼 돈을 들이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시계를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브랜드는 부모님이 원하는 브랜드로 하고 모델은 당사자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반대로 유행에만 치우쳐 디자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나치게 트렌디한 디자인은 금방 질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시계 고르는 좋은 습관
시계의 가격은 몇 천 원대에서 시작해 수억, 수십억 원 이상이다. 어떤 시계는 구입 후 몇 번 차다가 버려지거나 서랍 속에 처박히기도 하지만 어떤 시계는 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주는 소중한 유산이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부모가 선물한 시계, 입사 기념으로 직접 장만한 시계 등 시계는 기념할 만한 순간에 함께하는 물건이며, 이 때문에 가격만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시계를 고르기 위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단계를 염두에 두면 좋다.
Step 1 예산, 규모와 가치를 따져 브랜드를 결정해야
Step 2 무브먼트, 관리와 취향을 고려하자
Step 3 기능과 소재, 정말 내 몸에 맞는가
Step 4 디자인과 스타일, 내가 찾는 것이어야
Step 5 디테일, 꼼꼼해야 실속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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