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허리 통증 때문에 혼자 걷지도 못하게 된 변호사, 경견장에서 쫓겨나 버림받은 그레이하운드. 한때 최고였다가 이제 그들의 운이 다해서 바닥으로 내려온 한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가 감동적으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우정 이야기다.
한때 매우 잘나가던 변호사 스티븐 울프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따뜻한 지역으로 요양을 떠나야만 했다. 행복한 요양은 아니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고, 유일하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내로부터도 떨어져야 했다. 스티븐은 그곳 구조센터에서 경주견이었던 그레이하운드, 카밋을 입양한다.
오로지 경주만을 위해 작은 철장 안에서 길러졌다 버림받은 카밋은 계단을 오르는 법조차 모르는 개였다. 스티븐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카밋을 사회에 어울리는 개로 교육을 시키기 시작한다. 스티븐은 자신이 구해준 개로부터 차츰 구원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카밋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계기가 되어 준다.
■ 저자
스티븐 D. 울프
전직 변호사로서 알 수 없는 후유증 때문에 혼자 걷지도 못하게 된다. 직장도 잃고 가족과도 떨어지게 된 한 마리의 늑대(울프, 저자의 이름)는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그레이하운드를 입양한다. 그리고 우정과 사랑을 쌓으며 자신이 구해준 개에게서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남겨 작가로서도 성공한다. 울프는 2014년 현재 그레이하운드 후원 그룹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오마하, 네브라스카, 애리조나를 옮겨 다니며 활동하고 있다.
리넷 파드와
『아는 척하고 있지만, 누가 물어볼까 봐 조마조마한 것들(Everything You Pretend to Know and Are Afraid Someone Will Ask)』등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그보다 더 많은 책들을 공동 저술했다. 2014년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 역자 이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영어 통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 자신만의 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돌연 영어 분야에 뛰어 들었다. 수년간의 삽질 후 이제 칼질 좀 하고 있는 중이다. 두산중공업, 현대제철 인하우스 및 리비아 현지 프로젝트 통번역, 토익 강사, 『세계경제포럼 2012 글로벌 리스크』, UFC 웹사이트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어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책, 영화, 마케팅, 경제, 이종격투기 등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번역 일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1인 기업가를 꿈꾸며,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진 글쟁이, 말쟁이가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칼을 갈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Part 1. 1998년 가을 - 2000년 8월의 이야기
Part 2. 2000년 9월 - 2001년 12월의 이야기
Part 3. 2005년 겨울 - 2006년 10월의 이야기
감사의 말
이 책을 펴내고 나서
작가 인터뷰
역자의 말
늑대를 구한 개
1998년 가을 - 2000년 8월의 이야기
1998년 가을 - 2000년 겨울, 네브래스카 - 애리조나
"내가 은퇴해야 한단 말이지? 회사를 떠나라니. 농담이라도 하는 건가?"
팀의 폭탄 발언을 천천히 되뇌었다. 다른 임원들은 높은 등받이 의자에 딱딱한 자세로 앉아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나지막이 말했다.
"들쑥날쑥 한 내 일정 때문에 짜증이 났겠지. 그래도 자료들은 항상 업데이트 하고 있어. 맡고 있는 소송이나 수익 면에서 여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그것들과는 아무 상관없어. 더 이상 자네 상태만 걱정할 수는 없잖아.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게다가 자네는 일주일에 잘해야 삼 일밖에 출근을 못 하잖아. 일주일치 일을 그 안에 몰아서 하니까, 자네가 마감을 놓치거나 사고라도 칠까 봐 조마조마해야 해. 만약 자네가 갑자기 못 나오기라도 하면 진행 중이던 소송들은 어떻게 되겠어?"
팀이 맞받아쳤다.
"내가 언제 못 나온다고 했나?"
"울프, 자네한테 무슨 일이 있는진 모르지만, 건강상태가 심각하단 거 하난 분명해. 계속 지금처럼 일할 순 없어. 이건 자살 행위야.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자네 장례식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네."
팀의 시선이 테이블 주변을 훑었고 임원들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할 무렵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비틀거리며 차로 향했다. 마음은 여전히 심란했다. 내 회사에서 날 자르겠다니! 그게 말이 돼? 겨우 차에 몸을 싣고 심란한 마음으로 다지 스트리트에 늘어선 차량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집에 도착해 리모컨으로 차고 문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요?"
입구에 서 있던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나 회사 잘렸어."
"오, 울프, Je suis desole(정말 안 됐어요)."
그녀가 모국어인 불어까지 쓰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예상하지 않았어요?"
"아니야."
"그 사람들도 어쩔 도리가 없잖아요? 당신이 말을 안 하니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알 길이 없고. 그리고 어차피 의사들도 당신이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었잖아요."
그녀의 무릎을 쓰다듬어 주었지만,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며칠 후, 내가 1년 동안이나 거부해왔음에도 아내가 결국엔 불가피한 선택을 두고 고민해 왔음을 알게 됐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추우면 당신 몸이 쉴 수가 없어서 겨울에는 상태가 훨씬 안 좋아진대요. 일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 받는 것도 정신 건강에 안 좋고요. 겨울 동안에는 당신이 다른 데 가 있는 수밖에 없어요. 그럼 마음도 한결 안정이 될 거예요."
유독 우리를 강조하는 아내의 표현이 새삼스러웠다. 척추 질환은 내 문제지 아내의 문제는 아니다. 그간 쉬지 않고 일한 건 내 병 때문에 아내와 딸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애리조나 땅을 팔면 되잖아요. 팔아서 조그만 집 하나 장만하고, 날씨 추울 땐 거기서 지내면 되잖아요. 안 그래도 매일 그랬잖아요. 그곳의 붉은 바위들을 보면 뭔가 건강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아내는 몇 년 전 개업할 때부터 함께 일했던 심장질환전문 클리닉 운영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일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이젠 혼자 가장 역할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들은 나에게 마지막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애리조나로 갈 경우 그들로부터 1930킬로미터나 떨어져 살게 되는 것이다.
무척 많이도 울었다. 마침내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그 주, 두 가지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첫 번째는 바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컸던 부끄러운 마음이다. 두 번째는 개들의 코가 뺨에 닿자 축축한 감촉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던 그것이다.
***
11월의 어느 따스한 날, 세도나로 거처를 옮긴 지 6개월쯤 지났다. 웨버스 IGA 슈퍼마켓의 주차장에 차를 댔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뒤뚱거리며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보도 근처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고통을 참으며 겨우 그쪽을 향해 비뚤게 줄을 지어선 사람들 틈에 낄 수 있었다. 엉거주춤 하던 걸음을 멈추고 무슨 일인지 보려고 몸을 세웠다.
날씬한 금발의 여인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개줄을 잡고 있었다. 결국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개줄에 묶여 있는 개였던 것이다.
키는 1미터쯤 돼 보였다. 작은 이마 위에 양쪽 귀가 모두 같은 옆 방향으로 쫑긋 서 있었다. 커다란 아몬드 모양 눈으로 차분하게 사람들을 살폈다. 매끈한 검은색 털에는 불그스름한 반점들이 섞여 있었다. 긴 가슴이 턱을 향해 솟아 있었고 배는 앙증맞을 정도였다.
"이 개는 무슨 종이죠?"
내가 묻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이름은 랜스예요. 그레이하운드죠. 제 이름은 매기 맥커리구요."
"미안해요, 전 스티브 울프라고 해요. 그냥 울프라고 부르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 손을 내밀었고 개는 내 손 냄새를 맡아댔다.
"항상 이렇게 얌전하고 느긋한가요?"
"보통 그레이하운드는 매우 얌전하고 착해요. 개 세계에서는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 소파에 앉아 TV만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로 통하죠."
궁금한 것들을 몇 개 더 물어보았다. 그런데 매기가 귀찮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제가 바쁜 사람 붙잡고 있었나 봅니다."
"어머,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그레이하운드 구조 일과도 관련돼 있어서 사람들하고 이런 이야기하는 거 좋아해요. 그레이하운드는 참 불쌍한 개들이에요. 태어난 지 넉 달밖에 안 돼서 크레이트에 갇히죠. 그러고 나선 훈련이나 경주할 때 빼곤 전혀 보살핌을 못 받아요."
그녀는 랜스의 귀 사이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그레이하운드나 조련사가 아니면 잘 못 어울려요. 대부분 노는 방법이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요. 계단도 잘 못 올라가요. 크레이트와 경견장 밖은 완전히 낯선 세상인 거죠."
"얼마나 그렇게 지내야 하는 거죠?"
"보통은 일이 년 정도만 경주에 나가죠. 빨리 승수를 올리지 못하면 주인은 더 이상 사료값 등에 한 푼도 쓰려고 하지 않아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리는 거죠. 개들이 도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조 협회와 입양 협회가 설립됐어요. 이런 개들을 입양해 줄 사람들이 절실한 상황이죠."
뭔가에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뺐다. 매기가 눈치를 챈 듯 웃으며 인사했다.
세도나에서 지낸 지 4개월쯤 되니 혼자 지내는 데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뭘 하든지 예전보다 한참이나 더 걸리는 건 전혀 적응이 안 됐다. 혼자서 생활을 해보니 가족에게 얼마나 많이 의지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전화 받는 것조차 힘겨웠다. 아내와 딸들은 보통 밤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2월 어느 이른 아침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니 뭔가 당황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울프 씨, 전 앤이라고 해요. 세도나에서 그레이하운드 구조 및 입양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이런, 맙소사.
몇 주 전에 매기에게 설득당해 그레이하운드 입양 신청서를 작성했던 사실을 거의 잊고 있었다. IGA 슈퍼마켓에서 랜스와 함께 있는 그녀와 한 번 더 마주쳤던 것이다.
매기는 자신의 소형 비행기로 남서부 지역을 활주하며 주인에 의해 도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그레이하운드를 구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구조된 그레이하운드들은 위탁 가정에 맡겨진다. 매기는 최근엔 투손에 있는 경견장에서 유기된 개들 몇 마리를 구해냈다고 말해줬다.
그녀의 이야기에 감동해 입양 신청서를 작성하고 말았지만, 실제 집에 개를 데려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좋은 소식이에요." 들뜬 목소리로 앤이 말했다. "투손에서 구조된 개들이 플래그스태프 외곽에 있는 한 위탁 목장에 맡겨졌어요. 개들이 상태도 좋아지고 적응도 잘 하고 있나 봐요."
할 말이 많은 듯 했지만 내가 말을 끊었다. "저도 무척 기쁩니다. 근데 지금 몸이 좀 별로라서, 제가 나중에 전화 드려도 될까요?"
"아, 미안해요. 그냥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목을 가다듬은 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던 참에 앤이 소리쳤다.
"잠깐만요! 구조된 개들 분양해 주는 사람 연락처도 알려 드릴게요. 처음으로 입양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어요."
굳이 말이 길어지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불러주는 대로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고 전화를 끊었다.
몇 주 동안이나 개 입양을 두고 갈팡질팡했다. 마음을 못 정하는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이었다. 입양한 개가 우리 가족하고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잘 적응을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내가 초조해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겁쟁이같이 구는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이제는 나 자신 외에는 누구도 돌볼 수 없다는 두려움…… 뭔가 복잡한 일은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몸이 아프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개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또 한 번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붙잡는 봄날의 진흙창처럼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그레이하운드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 특히 생명을 이어나가기조차 힘든 그들의 험난한 생이 마음에 걸렸다.
머리에서는 입양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가슴에선 입양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자 더 이상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젠장, 나도 모르겠다.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은 후 삼키려고 물을 마셨다.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미국의 사상자 겸 문학가)의 명언이 떠올랐다.
"깨어 있는 것이 곧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명종 소리가 아닌 새벽에의 무한한 기대감으로 깨어나는 법을 익혀야 하고, 또한 스스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이런 갑작스런 생각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내가 얼마나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며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레이하운드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한 번 봐서 나쁠 건 없잖아."
2000년 4월, 애리조나
사실 처음 카밋을 집에 처음 데려왔을 땐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가 걱정됐다. 그러나 정작 걱정해야 할 건 나 자신이었다. 카밋은 동네의 모든 광경과 소리, 냄새에 끝없는 호기심을 보였다. 지나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요 몇 달 동안 난 자기 연민에 빠져 고독을 키워왔다. 이웃들의 인사에도 퉁명스런 고갯짓으로 응수했을 뿐이다. 하지만 카밋은 달랐다. 사람을 보면 골든리트리버처럼 신나하지는 않았지만 외교관이라도 되는 양 점잖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그냥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세련된 개 한 마리와 그보다 못한 주인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상대방에게 충분히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가선다. 그때에도 그레이하운드 특유의 기품을 풍긴다. 머리는 높게 쳐들고 눈은 크게 떠서 상대방을 그 자리에서 녹여버리기라도 할 기세다. 불과 일주일 만에 그토록 피해왔던 이웃들과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됐다.
카밋이 잘 적응하는 것 같아 기뻤다. 다른 구조된 그레이하운드들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들을 듣고 난 터라 더욱 그랬다. 어떤 그레이하운드들은 바깥세상의 소음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다고 한다. 처음으로 귀가 들리기 시작한 귀머거리처럼 일상의 소음들조차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그레이하운드들은 평범한 일상도 낯설어한다. 극도로 불안해하며 틈만 나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거나 도망치려 든다. 다른 개들이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 장난치며 노는 것에 전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그레이하운드도 있는데 가장 안타까운 경우이다. 원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이다. 그레이하운드는 몇백 미터 먼 곳에서도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해낼 수 있다. 때문에 멀리서 고양이나 다람쥐를 보면 경견장에서 형성된 추격 본능이 즉각 발동하는 것이다. 개줄이나 울타리로 막지 않는 한 그레이하운드는 순식간에 그 물체를 쫓아가 버린다. 그리고 완전히 진이 빠지지 않는 한 멈추지 않는다. 그레이하운드가 더 이상 힘도 없어지고 집에 돌아올 줄도 모르기 때문에, 그대로 잃어버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그레이하운드는 교통에 익숙하지 않아 차나 트럭이 위험하단 사실도 모르고 있다.
다행히 카밋은 이런 문제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도 천천히 평범한 일상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카밋은 목장에서 몇 달 동안 지낸 후 나에게 입양됐다. 나와의 생활은 좀 포장해서 말하자면 매우 느긋하다.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우리의 일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다른 어른이나 애도 없다. 이유가 뭐든 간에, 카밋은 신기할 정도로 이웃들에게 온순하고 상냥했다.
카밋을 데려온 후 2주쯤 된 어느 날, 집 근처 절벽 뒤로 해가 질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무슨 소리예요?"
아내는 질문으로 내 인사를 받았다.
"무슨 소리라니?"
불안하게 대답하며 주방의 미닫이 유리문 쪽을 살폈다.
"이 소리요. 개 짖는 소리 같은 거."
"아, 그거. 옆 집 개가 밖에서 짖는 거 같아. 날씨가 너무 좋아서 문을 열어 놨거든."
"목소리가 왜 그래요?"
그제서야 내 목소리가 너무 높았다는 걸 눈치채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마 초봄이라 꽃가루 때문인가 봐."
"당신하고 애들은 어떻게 지내? 그동안 있었던 일들 좀 얘기해줘."
"멍 멍 멍!" 갑자기 카밋이 세 번 연거푸 짖어댔다. 전혀 카밋답지 않은 돌발 행동이었다.
"지금 어디예요? 짖는 소리 집 안에서 나는 것 같네요."
아내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배어 있었다.
"여보? 울프? 듣고 있어요?"
마침내 고해성사할 시간이 됐다.
"응, 듣고 있어. 사실은 내 개야."
"뭐라고요?"
"새로 개가 생겼어. 그레이하운드 입양 협회가 있는데, 거기에서……."
"잠깐만요! 뭐요? 그레이하운드요? 그 경주견요? 얼마나 된 거예요? 도대체 언제 말 하려고 했는데요?"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아내에게 쉴 틈 없이 카밋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울프, 그레이하운드라고요? 도대체 당신이 경주견을 어떻게 키우겠다는 거예요? 도무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가네요."
"카밋이 날 먼저 찜했어. 어쩔 도리가 없잖아?"
"처음부터 그런 데 가지 않았으면 됐잖아요? Cest vraiment Con!(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식료품 사러 가기도 힘들고 요리도 전혀 해먹지 않는다면서요. 밤새 당신 걱정했어요. 근데 그새 당신은 경주견을 입양해놓다니! 전화 끊어야겠어요.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통화도 못하겠네요."
4월의 어느 따사로운 오후 아내가 세도나에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피닉스 공항에 도착해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뜻밖의 방문이었다. 아내는 집에 들어와 현관문 안쪽에 휴대용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벽난로 옆에서 마치 고대 이집트의 왕 투탕카멘의 무덤에 있는 조각상처럼 앉아 있는 카밋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 잠깐 사이에 다음 며칠 동안의 분위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표정이 미세하게나마 누그러지며 아내가 말했다.
"예쁘게 생겼네요."
뭔가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기도 전에 아내가 입을 맞추며 말했다.
"얘기 좀 해요."
"뭔가 독특하네요. 이제 말해봐요. 왜 저 개를 돌려줄 수 없는지."
이때다 싶어서, 매기와 그레이하운드 구조 센터, 그리고 퇴물이 된 경주견들이 받는 학대 등에 대해 실컷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내 이야기에 아내가 조금이나마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조됐을 당시 카밋의 상태에 대해 듣고선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국 카밋을 분양해준 목장으로 화제를 돌렸다. 아내가 내 얘기를 끊고 말했다.
"결국 그레이하운드들에겐 그 목장이 최고의 집이네요.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거긴 뛰어다닐 데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야. 그 집에서도 입양한 개들을 모두 키우진 못한다고."
아내는 한숨을 지은 후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나도 뒤를 쫓았다. 카밋도 우리 뒤를 쫓아와 순식간에 침대까지 올라온 후 몸을 뻗었다. 그러곤 눈을 감고 몸을 늘어뜨렸다. 새로 온 손님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모습이다. 아내는 침대에 앉아 카밋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맑은 눈이 갑자기 열리더니 뭔가 불쾌하고 당혹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내를 응시한다. 그러더니 저음으로 크게 으르렁댔다.
"안 돼, 카밋!"
"그전에도 이런 적 있어요?"
"아냐. 아마 처음에는 당신이 없었으니까 이러나 봐. 너무 빨리 새 식구를 만난 거지."
고맙게도 아내는 금세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가엾어라. 겁 먹었나 보네. 그렇죠? 혼자 좀 내버려 둬야겠어요. 새 식구에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겠죠."
그날 늦은 오후, 아내와 난 집 뒤편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셨다. 아내의 질문이 이어졌다. 깔끔하지 않은 집 상태, 절뚝거림이 심해진 내 걸음새, 그리고 일어설 때 느끼는 통증 등에 대해 물었다. 날이 어두워지며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안개처럼 엄습해왔다. 건강이 계속해서 악화되는 가운데 어떻게 몸을 돌볼 것이며 하물며 그레이하운드는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런 불안감을 떨쳐주기라도 하려는 듯, 갑자기 테라스에 카밋이 돌아와 우리에게서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섰다. 부드러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선 뭔가 결심한 표정이었다. 그러곤 미끄러지듯 아내 앞으로 다가와 소리 없이 멈춰 섰다. 카밋은 몸을 완전히 세운 후 머리를 앞으로 숙였다. 아내를 응시하고선 뭔가를 기다렸다. 카밋 특유의 인사법은 상대방에게 여유와 안정감을 준다.
"카밋이 절 좋아하나 봐요!"
아내가 외쳤다.
그렇게 정식으로 인사하고 난 후, 아내는 카밋이 우리 가족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은 너무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 행동이 무책임하고 정신 나간 짓에 가까웠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해줘서 다행이었다.
어느새 아내가 오마하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 절친이 된 아내와 카밋은 벌써부터 다음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현관에서 공항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아내가 카밋에게 말했다.
"울프와 지내려면 인내심이 필요할 거야."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내 대신 그이를 돌봐 주려무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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