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순간들

   
버지니아 울프(역주: 정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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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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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http-equiv=Content-Type>■ 책 소개
불멸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미발표회고록!

버지니아 울프가 1941년 3월코트 주머니에 돌을 채워 넣고 우즈 강을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하고 난 뒤에 발굴된 원고들을 모은 회고록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 레너드울프가 버지니아의 조카, 버지니아의 언니 바네사 벨의 아들 퀜틴 벨(집필 당시 영국 서섹스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였음)에게 전기 집필을 위해넘겨준 자료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퀜틴 벨이 쓴 버지니아 울프의 전기는 1972년에 발표되어 각종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저자 버지니아울프
20세기 문학의 대표적 모더니스트로, 뛰어난 작품 세계를 일군 선구적 페미니스트. 소설 형식에 독창적인 공헌을했으며, 당대의 가장 뛰어난 비평가 중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어려서는 문예비평가이며 철학자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에게 개인 교육을 받고부친의 친구인 브라우닝, 하디, 러스킨, 아놀드, 페이터, 스티븐슨, 브리지스 등의 문필가 틈에서 독서를 즐겼으며, 자라서는 후에 블룸즈버리그룹으로 일컬어지는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문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미술, 문학, 인생, 정치, 경제 등의 문제를 논하고 사상을 연마했다.

1912년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으며, 1917년 그와함께 호가스출판사를 세워 자신의 작품을 출판했다. 
소설 『출항 The Voyage out』(1915), 『밤과 낮 Night andDay』(1919)을 출판한 뒤 실험적인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며, 경험의 끊임없는 흐름,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인물의 성격, 의식을 자극하는외부 환경을 강조했고, 본질적으로 다른 순간순간의 연속인 동시에 몇 년, 몇 세기의 흐름으로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에 흥미를 보였다. 『제이콥의방 Jacob’s Room』(1922) 이후 울프는 개인의 경험 속에서 현재의 시간과 지나가고 있는 시간의 느낌, 역사적 시간에 대한 등장인물의자각의 느낌을 전하려는 시도를 했으며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1925), 『등대로 To theLighthouse』(1927)에서는 더욱 원숙한 기교를 보여주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부터 1928년까지 문학에 비친 영국의 모습을 되살려낸 환상적인 역사물 『올랜도 Orlando』(1928),의식의 흐름을 기록하는 작업에 몰두한 『파도 The Waves』(1931)를 비롯 『세월 The Years』(1937), 『막간 Betweenthe Acts』(1941) 등의 소설과 브라우닝 부부의 가상 전기 『플러시 Flush』(1933), 미술 평론가 로저 프라이의 일생을 그린본격적인 전기(1940), 문예평론집 『일반 독자 The Common Reader』 등의 작품이 있다. 


■ 역자 정명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당신의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상식의 역사』『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팀워크 심리학』 등이 있다.

■ 차례
1부 세여자 줄리아 스티븐, 스텔라 덕워스, 바네사 벨
2부 과거의 스케치
3부 회고록 클럽 원고

옮긴이의말






존재의 순간들


세 여자 줄리아 스티븐, 스텔라 덕워스, 바네사 벨

일부 사람들로부터 인간의 삶을 자기 뜻대로 주무른다는 소리를 듣는 운명의 여신은 아내를 둔 너(버지니아 울프의 언니 바네사 벨의 아이 줄리안 벨을 지칭함)의 할아버지가 너의 할머니(버지니아 울프의 엄마 줄리아 덕워스, 재혼 후에는 줄리아 스티븐)와 같은 거리에 살도록 만들었고, 더 나아가 미니(Minny,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첫 부인의 애칭)가 거기서 죽고, 그 결과 너의 할머니가 하필이면 가장 가슴 아파할 그런 처지에 놓인, 학식이 깊고 또 만만치 않은 친구를 만나도록 정해두었다. 상황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면 달리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그는 대가의 풍모를 지녔고 가벼운 연인이 절대로 아니었으며 피상적인 낙천가도 절대로 아니었다.


그녀는 거의 습관이 되다시피 한, 고통을 인내하는 태도를 쉽게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유가 더 강했고, 그의 필요가 더 컸다. 용감했기에, 분명 자기 남편(버지니아 울프의 어머니의 첫 남편 허버트 덕워스, 직업은 법정 변호사)보다는 더 용감했기에, 그녀는 고통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마침내 진실을 직시하고 또 기쁨도 슬픔만큼 괜찮은 것이라는 점을 여러 면에서 깨달으려고 애를 썼다.


두 번째 결혼은 그녀가 꽃 피워야 했던 모든 것들을 늦게나마 진정으로 성취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혼은 다소 늦었고, 다소 파란만장했고, 다소 불안했다. 이런 환경들이 너의 할머니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녀의 자식들인 우리가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기민하고 실질적이고 활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선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이 풍부한 경험에서 배어나온 것임을 단박에 알게 만드는, 밝고 엄격하고 재빠른 어떤 품성이 느껴졌다.


그녀에게서 4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이 자식들 외에, 이들과는 다른 성격의 보살핌을 요구하는,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아이들이 4명(버지니아의 어머니와 첫 남편 사이에 태어난 자식 조지와 스텔라, 제럴드와 레슬리 스티븐과 그의 첫 부인 사이에 태어난 딸 로라를 말한다) 더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가르쳤고, 아이들의 벗이 되어주었으며, 너의 할아버지를 달래고 기운을 북돋우고 격려하고 보살피고 또 속였다.


도움을 청하러 오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가 시간과 정성과 동정심을 쏟을 준비가 된 상태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만큼 당당한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녀의 인간관계는 평생 동안 정말로 유별났다. 그리고 재혼한 뒤로,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전 어느 때보다 더 자유롭게 자신을 쏟도록 한 것 같았다.


그녀의 세계관은 대단히 포용적인 쪽으로 성숙했다. 그녀는 꽤 슬기로운 운명의 여신처럼 자기 주변의 무수한 생명들의 탄생과 성장, 절정과 죽음을, 그 신비감을 놓지 않는 가운데 각 단계에 어떤 도움이 가능한지를 생각하면서 지켜보았다. 그녀의 지적 재능은 언제나 행동으로 구현되는 그런 재능이었다. 그녀에겐 아주 명쾌한 통찰력과 건전한 판단력, 유머감각, 그리고 자신이 처한 환경의 본질을 재빨리 간파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가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정리하다 보면 무슨 일이든 금방 제자리를 찾으며 해결되었다.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는 이른바 완벽했으며, 나는 시련을 많이 겪고 또 절대로 태평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의 내면에서 자신의 본성이 반응할 수 있는 가장 고매하고 가장 완벽한 조화를 발견했다고 믿으면서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눈에조차도 그들의 몸짓과 서로를 보는 형언하기 어려운 순수한 기쁨의 눈길은 종종 아름다웠다.


그녀는 남편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렸으며 남편의 나이는 예리한 지성 때문에 한층 더 들어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빙산에 갇힌 바다를 언제나 홀로 항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 바다에 대한 그녀의 경지는 별빛과 눈(雪)만 닿을 수 있는 그런 높은 산의 정상에 대해 느끼는 긍지와 비슷했다. 그것은 열중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매우 외로웠다.


그녀는 가장 길고 또 금전적 결실이 없는 과업을 맡으려는 남편의 충동을 언제나 가장 먼저 지지하고 나섰다. 나의 생각에는 그가 돈도 되지 않고 명예에도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을 두꺼운 책 『공리주의자들』을 마지막 필생의 작업으로 시작하게 한 것도 그녀의 응원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책을 집필하는 사이에 그녀가 다른 모든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삶의 정점(頂點)들이다. 세월이 갈수록, 삶의 투쟁 또한 점점 더 예리해지고 젊음의 낙천적 기질도 점점 사라져갔다.


내가 깨닫게 되었듯이, 그녀의 인생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낭비와 무모한 그 용감성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과 그녀의 목적이 서로 잘 부합하도록 만든, 그녀의 정확한 판단력에서 생겨난 그 적절함이었다. 그녀의 삶에는 과잉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 여러 해들이 과거가 되었음에도, 그 세월에 남긴 그녀의 흔적이 마치 예리하고 순수한 강철에 찍힌 낙인처럼 지워질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녀는 마흔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너의 엄마는 열다섯 살의 아이였다. 만일 내가 너의 할머니에 대해 한 말이 조금의 의미라도 지닌다면, 너는 그녀의 죽음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재앙이었다는 사실을 믿게 될 것이다.


밤에 침대에 누워 있거나 아니면 거리를 걷고 있거나 또 아니면 방에 들어갈 때, 이따금 거기에 그녀가 있다. 아름답고, 단호하며, 귀에 익은 말투도 그대로이고 웃음도 그대로이다. 우리의 천박한 삶을 횃불로 비춰주는 그녀는 살아 있는 어떠한 존재보다 더 가까우며, 그것이 그녀의 자식들에게는 무한히 고귀한 위로가 될 것이다.



과거의 스케치

5월 2일. 나는 날짜를 적는다. 이 기록을 위한 형식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즉, 기록이 현재를 포함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 기록이 의지할 기반의 역할을 할 만큼은 현재를 포함시키는 형식이다. 두 사람, 말하자면 지금의 나와 그 시절의 내가 대조를 이루며 드러나도록 한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더욱이 이 과거는 지금 이 순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오늘 내가 적는 것을 나는 1년 이내에는 다시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지금 나는 로저의 전기를 쓰다가 잠시 쉬는 틈을 타 일시적 변덕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는 운에 맡기는 것이 더 낫겠다. 지금 나에겐 조리 있게 표현해야 하는 예술 작품이 요구하는 무시무시한 노동에 쏟을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예술 작품이라면 이것에 이어 저것이 나오고 그러면서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로 딱 들어맞아야 하지 않는가. 아마 언젠가 그것을 시도할 날이 있을 것이다.


많은 밝은 색들, 많은 분명한 소리들, 만화 속 등장인물 같은 사람들, 만화책, 언제나 원 같은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 몇몇 격렬한 존재의 순간들 등. 모두가 거대한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런 것들이 나의 어린 시절을 시각적으로 대충 묘사한 것이다.


1882년부터 1895년까지 이어진 그 시간의 틀 안에서 내가 어린 시절을, 그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아이로서의 나 자신을 보자면 그렇다. 그 시절을 나는 이상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이 있고 또 중얼거림과 깊은 침묵의 공간이 있는 어떤 거대한 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 그림에 움직임과 변화의 느낌을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


어떠한 것도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지 못했다. 모든 것이 다가왔다가 사라지고, 커졌다가 작아지고, 서로 다른 속도로 자그마한 인간 존재를 지나치고 있다는 느낌이 나야 한다. 작은 인간 존재가 팔다리의 성장에 따라 내몰리는 듯한 느낌이, 어떤 식물이 줄기가 자라고 잎이 자라고 꽃봉오리가 터질 때까지 대지 밖으로 자꾸 밀려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나야 한다. 그 느낌은 묘사가 불가능하고, 또 모든 이미지들을 지나치게 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러하다는 식으로 말을 끝내자마자,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어 있고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검정을 배경으로 한 청색과 자주색의 커다란 얼룩을 겨우 분간하던 아기가 13년 뒤인 1895년 5월 5일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44년 전 나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그날에 일어난 일을 모두 느낄 줄 아는 아이로 바꿔놓은 그 생명의 힘이란 분명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나의 스케치에서 빠진 수많은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 이를 테면 의식의 첫 순간부터 나를 다른 사람과 연결시킨 그런 본능과 애착과 열정과 애정 같은 것들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 것들은 날이 다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딱히 한 마디로 묘사할 단어가 없다.


스텔라 덕워스(버지니아 울프의 엄마와 첫 남편 사이에 태어난 딸)의 죽음의 비극은 그것이 이따금 우리를 매우 처절하게 불행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아니었다. 비극은 그녀의 죽음이 그녀를 현실의 존재가 아니게 만들고 우리를 경건하고 자의식 강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는 역할들을 맡아야 했고, 우리가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 더듬어야 했다. 그것이 우리를 어둡게 만들고, 그것이 우리를 무디게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를 위선적이게 만들고 슬픔에 빠뜨렸다. 어리석고 감상적인 생각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거기엔 갈등이 있었다. 왜냐하면 금방 우리가 기운을 다시 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갖춰야 할 모습과 우리의 실제 모습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토비(버지니아 울프의 어머니와 재혼한 레슬리 스티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가 이를 몇 개의 단어로 정리를 했다. 그가 학교로 돌아가기 전 어느 날, 그는 "계속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라고 말했다. 휘장을 내린 채 흐느끼며 앉아 있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의 냉혹함에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가 옳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을까?


저녁 식탁보다 차 탁자가 빅토리아 시대 가족생활의 중심이었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랬다. 둥근 탁자는 우리 집의 신성한 곳이었다. 그것은 가족의 중심점이자 심장이었다. 그것은 아들들이 밤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던 중심점이었다. 벽난로의 불은 우리의 차를 부어주는 어머니가 보살폈다. 마찬가지로 침실은, 더블베드가 놓은 일층의 침실은 그 집의 성적 중심점이었고, 탄생의 중심점이자, 죽음의 중심점이었다. 그 침대에서 4명의 아이가 생겨났고, 그 아이들이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먼저 어머니가 죽었고 그 다음에는 자기 앞에 아내의 사진이 걸린 가운데서 아버지가 죽었다.


열다섯 살이든 아니든, 예민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으로 인해 뭔가를 예리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나의 어머니의 죽음은 잠복된 슬픔이었다. 열세 살의 나이에는 누구든 그 슬픔을 파악하지 못하고 억제하지 못하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2년 후에 있었던 스텔라의 죽음은 다른 바탕을 건드렸다.


터무니없을 만큼 보호받지도 못하고, 형태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불안해하고, 또 미리 예상하길 좋아하는 마음의 한 부분, 말하자면 존재의 한 부분이 그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마음의 그 부분은 열다섯 살의 정신과 육체를 언제나 잘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 특별한 정신과 육체의 표면 아래에 다른 죽음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내가 나의 어머니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완전히 의식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2년 동안 스텔라의 침묵의 비탄을 통해서, 나의 아버지의 노골적인 슬픔을 통해서, 그리고 변화하거나 정지해 버린 많은 것들, 이를 테면 사교와 쾌활한 삶의 종언, 세인트 아이브스의 포기, 검정색 옷들, 억제, 그녀의 침실의 잠긴 문 등을 통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 의미를 흡수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나의 마음이 염려하게 만들고 또 내 짐작엔 스텔라의 행복과 그 행복이 그녀와 우리에게 기약하는, 암흑으로부터의 도피에 부자연스러울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 것 같다. 다시 한 번 정말 믿기지 않게도, 마치 나 자신이 어떤 약속에 속은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잔인하게도 그 따위 약속에 희망을 거는 그런 바보가 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것처럼, 나는 스텔라가 죽은 뒤에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건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강타, 죽음의 두 번째 강타가 나를 세게 쳤다. 아직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흐린 상태에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이제 막 깨고 나온 자신의 껍질 옆에 앉아 파리하게 떨고 있는 나를 한 번 더 죽음이 강하게 내리쳤다.



회고록 클럽 원고

하이드 파크 게이트 22번지에서 살 때 17명 내지 18명이 1개의 욕실과 3개의 화장실을 갖춘 그 집의 작은 침실들에서 살았다. 이곳에서 우리 4명(버지니아의 엄마와 재혼한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버지니아, 바네사, 토비, 애드리안)이 태어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나의 어머니가 세상을 태어났고, 나의 아버지가 죽었다. 거기서 스텔라가 잭 힐스와 약혼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두 집 떨어진 곳에서 살다가 결혼생활 3개월 만에 죽었다. 그 집에는 너무나 많은 추억이 서려 있기 때문에 그 집을 되돌아볼 때면 언제나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


괴기스럽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비극적인 가족생활이, 젊음과 반항과 절망과 행복과 권태의 거친 감정들이, 저명한 사람들과 어리석은 사람들의 파티들이, 격노가, 조지와 제럴드가, 잭 힐스와의 사랑의 장면들이, 그리고 젊음의 얼떨떨함과 호기심 속에서 아버지에게 느낀 애정과 증오가 교차하는 감정이 거기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곳은 감정으로 뒤엉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방에 남은 모든 표시와 긁힌 흔적의 역사를 알고 있었으며, 나중에 그것을 글로 썼다. 우리는 거대한 전체 구조물에 우리 가족의 역사가 스며들게 했다.


훗날 이 주택은 호텔로 개조되었다. 그 집과 그 안에서 산 가족은 매우 많은 죽음과 매우 많은 감정과 매우 많은 전통에 의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영원히 견뎌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별안간 어느 날 밤에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사라져버렸다. 내가 이런 복잡한 사건들과 감정들의 결과로 얻게 되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병에서 회복했을 때, 하이드 파크 게이트 22번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바네사가 하이드 파크 게이트를 영원히 접어버렸다. 그녀는 팔고, 태우고, 추리고, 찢어버렸다. 모든 방들이 텅 비었다. 짐수레가 다양한 소유물들을 싣고 갔다.


가구들만 흩어진 것이 아니었다. 서로 똑같이 맞물려 있을 것으로 보였던 가족들 역시 깨어졌다. 조지는 마가렛과 결혼했다. 제럴드는 버클리 스트리트의 독신자 아파트를 얻었다. 로라는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의사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잭 힐스는 정계로 들어갔다. 따라서 우리 4명만 남게 되었다. 바네사는 런던의 지도를 펼쳐놓고 그들이 있는 곳과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인지를 살피다가 켄싱턴을 떠나 블룸스버리에서 새롭게 삶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리하여 고든 스퀘어 46번지가 우리에게 존재하게 되었다. 고든 스퀘어는 블룸스버리의 광장들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거기엔 피츠로이 스퀘어의 탁월함도 없고, 메클렌버그 스퀘어의 장엄함도 없다. 그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을 구가하는 중산층의 광장이다. 그러나 1904년 10월의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자극적이고, 가장 낭만적인 곳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하이드 파크 게이트의 숨죽인 침묵 뒤에 경험하는, 왁자지껄한 통행은 우리를 아주 불안하게 만들었다. 불길하고 낯설고 이상한 것들이 우리 집의 창들을 지나 배회하거나 살금살금 돌아다녔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의 기분을 돋운 것은 크게 넓어진 공간이었다. 하이드 파크 게이트에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책을 읽거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침실뿐이었다. 그러나 여기선 바네사와 나는 각각 거실을 하나씩 가졌으며, 넓은 응접실도 있었고, 일층에 서재도 있었다. 모든 것이 더 새롭고 신선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 집을 완전히 새롭게 장식했다.


우리는 매우 사교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1904년 1905년에 걸쳐 겨울의 몇 개월 동안에 나는 일기를 썼으며, 이 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밖에서 점심과 저녁을 자주 먹었으며 서점들을 순례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나는 "블룸스버리는 켄싱턴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라고 썼다. 아니면 콘서트에 가거나 화랑을 찾았으며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의 응접실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사촌 헨리 프린셉, 미스 밀레, 오지 디킨슨, 빅터 마셜이 오늘 오후에 와서 늦은 시간까지 머물렀으며, 그래서 우리는 그래프튼 갤러리에서 열리는, 인상파를 주제로 한 러터 씨의 강연에 쫓기듯 달려갔다.……힐튼 부인과 V. 디킨슨과 E. 콜트먼이 차를 마시러 왔다. 우리는 쇼 스튜어트 부부와 점심을 먹고 니콜스라는 미술 평론가를 만났다.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토비와 나는 세실 부부와 저녁을 먹고 세인트 로 스트레이치 부부의 집으로 가서 거기서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일기는 그런 식으로 적혀 있다.


3월 16일엔 미스 파워와 미스 말론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뒤에는 시드니-터너와 제럴드가 왔다. 우리의 목요 모임의 첫 번째 모임이었다. 3월 23일엔 9명이 우리의 저녁 모임에 와서 새벽 1시까지 머물렀다.


며칠 뒤에 나는 스페인으로 갔다. 나 스스로가 나 자신에게 부과한 의무, 즉 모든 풍경과 소리, 파도와 언덕을 샅샅이 기록하는 일 때문에 일기 적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래서 5월 11일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늘 밤은 쾌활한 벨과 데스몬드 맥카시와 제럴드와 함께 했다. 교양인의 세계에 충격을 가한 존재들이다."


따라서 나의 일기는 아주 재미있을 수도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끝난다. 그럼에도 나는 온갖 종류의 일들이 뒤죽박죽으로 나열되어 있는 이 간단한 기록에서조차도 블룸스버리의 몇 번 되지 않은 모임들은 초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들과는 다른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여름날 오후, 바네사가 애드리안과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녀가 내키지 않으면서 양보하는 듯한 몸짓으로 두 팔을 자기 머리 위로 쭉 뻗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물론 우리 모두는 결혼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어떤 무시무시한 운명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운명이 닥쳐와서 우리가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던 때와 똑같이 우리를 낚아채며 서로를 갈라놓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어떤 권리를, 내가 분개하며 무시하려고 노력했던 어떤 필요를 알고 있었다. 그 몇 주 뒤에 정말로 클라이브가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내가 토비에게 클라이브의 프러포즈에 대해 아주 부끄러워하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을 때, 그는 "그래, 그것이 목요일 밤 모임의 최악의 결실이야!"라고 험악하게 말했다.


그리고 1907년 초에 있었던 그녀의 결혼은 사실상 그 모임의 종말이었다. 그것으로 올드 블룸스버리의 첫 장을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은 매우 엄숙했고, 매우 자극적이었으며, 엄청나게 중요했다. 춤과 만찬이 벌어지는 훨씬 더 크고 더 느슨한 세계 안에 응축된 한 작은 세계가 존재했다. 그것은 이미 보다 큰 세계를 색칠하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그 뒤를 이은 훨씬 더 큰 블룸스버리를 채색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었다. 설령 바네사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고 토비가 살아 있다 하더라도, 변화는 불가피했다. 우리는 미의 본질을 영원히 추상적인 형태로 토론을 계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젊은 청년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들은 일반적인 존재에서 구체적인 존재로 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스터 터너, 미스터 스트레이치, 미스터 벨이기를 끝냈다. 그들은 색슨, 리튼, 클라이브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비판하고, 구별하고, 비교하기 시작했다. 현란하던 옛날의 초상화들이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광채와 환상이 전쟁이 발발하기 마지막 몇 년 동안 블룸스버리를 물들였다. 우리는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 또 그렇게 고상하지도 않았다. 거기엔 다툼과 음모도 있었다. 침묵과 토론의 목요일 밤들은 과거의 유물이었다. 그 자리를 매우 다른 종류의 파티들이 대신했다. 후기인상파 운동이 우리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게 아니라 다채로운 빛들을 비춰주었다. 우리는 진홍색 플러시로 만든 포인세티아 조화를 사고, 흑인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염색한 면직물로 옷을 만들고, 고갱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차려입고, 크로스비 홀 주변을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우리가 냉혹하고 부도덕하고 냉소적인 결사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우리는 버림받은 여자들이었고, 우리의 친구들은 가장 가치 없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 블룸스버리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만일 증거를 원한다면, 주위를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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