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아빠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시작된 저녁식사 초대!
저자인 사라 스마일리에게는 사랑스런 가족이 있다. 남편과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세 아들. 행복했던 때도 잠시, 남편은 아프리카로 1년간 파병을 가버렸다. 사라와 세 아들은 지금이야말로 남편과 아빠가 필요한 시기였다. 요리도 못하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재주도 부족한 사라는, 아빠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52주간 매주 새로운 손님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다.
상원의원, 주지사, 경찰서장, 아이들의 선생님, 사라의 제자들, 그리고 평범한 이웃까지 아빠의 빈 자리를 메꿔주려 사라의 저녁식사 초대에 응한다. 이름하야 ‘스마일리 가족과의 저녁식사’는 마을뿐만 아니라 메인주 전체의 화젯거리가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라의 에세이는 전 미국인의 가슴에 ‘가족’을 선물한 감동 이야기가 되었다.
■ 저자 사라 스마일리
해군 남편을 둔 칼럼니스트로 전국적으로 발행되는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퍼블리셔스위클리로부터 극찬을 받은 저자의 대표작으로는 회고록인 『열광하다: 군인 가족의 작은 사고들(Going Overboard: The Misadventures of a Military Wife)』와 에세이 모음집인 『그냥 단지…(I’m Just Saying…)』가 있다. 사라는 해군 소장 린델 루터포드의 딸이자 2014년 현재는 해군 소령의 아내로 36년간 해군 가족으로 살았다. 알라바마주 버밍햄에 있는 샘포드대학에서 교육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메인대학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다.
■ 역자 조미라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와 호주맥쿼리대학 통번역대학원 졸업 후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적게 일하고도 많이 성취하는 사람의 비밀』 『빅데이터 게임화 전략과 만나다』가 있다.
■ 차례
제 1장 낡은 식탁
제 2장 작별 인사
제 3장 휴일
제 4장 1월
제 5장 2월
제 6장 3월
제 7장 4월
제 8장 5월
제 9장 6월
제 10장 7월
제 11장 8월
제 12장 9월
제 13장 10월
제 14장 11월
제 15장 12월
후기
포드 스마일리의 후기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저녁이 준 선물
낡은 식탁
나는 요리하는 것도 수다 떠는 것도 싫어한다. 저녁식사에 사람을 초대해놓고는, 손님이 오기 직전에 숨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저녁식사가 시작된 후 손님 한두 명이 와서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그 몇 분 동안이 가장 힘들다. 이런 내가 왜 일 년 52주 동안 자처해서 저녁식사에 손님들을 초대하기로 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2011년 어느 따뜻했던 봄날로 돌아가야 한다.
부엌으로 연결된 문을 통해서는 남편과 11살, 9살, 4살인 세 아들들이 말없이 놀고 있었다. 야구공을 주고받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스토브에 올려놓은 스파게티 면이 끓어 보글보글 물방울이 올라왔다. 남편과 아이들을 저녁 먹으라고 부르려 문가로 갔다. 문을 열기 전, 새 잎이 나기 시작한 나무에 앉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전화할 수 있는 거죠, 아빠?"
"아니, 전화는 안 될 거다. 하지만 컴퓨터로 통화할 수 있어. 인터넷이 된다면."
"13개월이면 얼마나 길어요?" 막내 린델이 물었다.
둘째 오웬은 "내년 봄 내가 리틀 리그에 나갈 때쯤이면 돌아오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니. 어려울 것 같구나, 오웬."
"그럼 내가 유치원 갈 때면 돌아올 거예요?" 린델이 물었다.
"그것도 힘들 것 같구나."
오웬은 내가 문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문으로 다가왔다. "엄마, 저녁 다 됐어요?" 나는 "금방 될 거야"라고 말하고 부엌으로 돌아왔다. "근데 엄마, 벌써 한 시간 정도 기다렸어요!" 오웬은 문을 열고 나를 따라 들어왔다. 오웬은 땅콩버터와 빵만 먹었지만 항상 저녁시간을 기다렸다. 어느 날엔가 오웬이 몇 분 동안 쫓아다니며 괴롭혔을 때, 나는 오웬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녁이 다 됐는지 뭐가 그렇게 궁금하니? 넌 아무래도 안 먹을 거잖아!" 오웬은 눈썹 밑까지 자란 길고 곧은 머리카락 사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그냥 같이 저녁식탁에 앉고 싶어요."
언젠가는 막내에게 먹다 남은 걸로 저녁을 때울 건데, 그 대신 시리얼과 구운 치즈를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린델은 "나는 다 같이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게 좋아요, 엄마"라고 말했다. 분명 저녁식사 시간은 단지 먹기 위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다섯 식구가 저녁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이웃 집 아이가 현관에 와서 놀자고 불렀다. 그러자 포드는 "저녁 먹고"라고 말했고, 아이는 유리로 된 현관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모두 접시에 음식을 덜고 먹기 시작하면, 남편은 항상 이렇게 물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뭘 배웠니?"
오웬은 포크로 접시의 스파게티를 긁었다. 그리고 첫째 포드와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아빠,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지구 반대편으로 갈 거란다."
"중국이요?" 린델이 물었다.
"아니. 중국 말고. 아프리카."
몇 분간 침묵이 흘렀고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오웬이 말했다.
"식탁에 아빠가 없으면 이상할 거 같아요."
"그래도 엄마와 형, 동생이 있잖니. 그러니 괜찮을 거다. 나도 너희가 보고 싶을 거야."
남편은 좀 더 그럴 듯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오웬 말이 맞았다. 저녁식사 시간은 남편의 파병으로 가족들이 헤어져 지내야 할 시간 중 가장 힘든 시간이다. 가족의 빈 자리는 그의 부재를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모두에게 익숙한 이 의식, 즉 매일 저녁 아빠가 "학교에서 어땠니?"라고 묻는 것은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 것이다. 떠난 가족이 말을 했어야 할 자리에 침묵이 생길 것이다.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거야."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녁식사에 친구들을 초대하자. 좋아, 원하면 매주 초대할 수 있어."
린델은 흥분해서 의자에 일어나 춤을 췄다.
"대통령도 초대할 수 있어요? 시장님도?"
우리는 모두 웃었다. "글쎄, 왜 안 되겠니?" 내가 말했다.
이웃집 아이가 다시 현관에 나타났다. "금방 나갈게." 포드가 소리쳤다. 큰 아이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자 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포드는 입 한 가득 빵을 씹으며 식탁에서 일어나 말했다. "가자, 오웬." 그리고 어깨 너머로 말했다. "그럼 이따 봐요!" 린델은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있는 퍼즐을 끝내러 거실로 나갔다.
부엌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당신이 가면 나는 여기서 혼자 저녁을 먹게 되겠죠." 남편은 접시 옆에 놓인 내 손을 꽉 잡았다.
작별 인사
남편은 해외 파병 전 훈련을 받기 위해 뱅거국제공항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떠난다. 공항에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우리는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평범하게 행동하려 했다. 아무도 남편이 일 년 동안 우리와 떨어져 지내기 위해 작별인사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휴가를 떠나는 다섯 명의 가족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웃지 않았다.
우리는 당시 저녁식사 아이디어라고 부르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눴다. 몇 달 전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매주 사람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자"고 한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남편이 떠날 날이 다가오면서, 그 아이디어는 점점 구체화되었다. 남편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기를 했다. "난 당신과 아이들이 외롭게 저녁식사를 하는 게 싫어. 물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노력해봐. 그러면 덜 외로울 거야."
남편은 집에 틀어박혀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지내는 내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보내기도 좋겠지. 내가 52주 동안 떠나 있을 테니까, 당신은 52주 동안 사람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할 수 있지." 비행기가 출발하기 30분 전, 남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과 아이들은 잘 지낼 거야. 걱정하지 마."
남편이 검색대에 줄을 서자 공식적으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남편은 짐을 들지 않은 손으로 나를 잡아당겨 이마에 키스했다. 결국 눈물이 나왔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남편은 줄을 서서 나에게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나는 린델을 들어 업었다. 포드는 내 손을 잡았다. 내가 돌아서기 전 더스틴이 말했다. "여보. 저녁식사 아이디어 실천해 봐. 당신과 아이들에게 좋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보면 안 된다. 계속 걸었다. 주차비를 낼 때 눈물이 흘렀다. 주차비 정산소의 주황색 막대기가 올라갔다. 나는 공항 터미널에서 빠져나왔다. 우리 집은 공항에서 멀지 않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정오도 안 됐다. 이 말은 우리가 하루 종일 외롭게 보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아직 젖어 있는 남편의 칫솔이나, 세면대 위에 놓인 물기 묻은 면도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방금 전까지 집에 있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남편이 아침에 샤워를 하고, 면도하고, 이를 닦았던 것이 마치 오래 전 일처럼 느껴졌다.
집을 지나쳐 계속 운전했다.
"엄마 어디 가는 거예요?" 포드가 물었다.
"모르겠다. 어딘가. 아마 교회."
"하지만 교회 갈 복장이 아닌데."
나는 무릎을 내려다 봤다. 트레이닝복과 오래도니 스웨터를 입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린델은 잠옷 위에 코트만 걸치고 있었다. 린델이 신발을 신었나, 아니면 슬리퍼를 신었나? 상관없었다.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엄마, 정말 이렇게 입고 교회에 들어갈 거예요?" 포드가 말했다. 포드는 무릎에 구멍이 난 트레이닝복을 가리켰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 심각해요! 늦었다고요. 예배는 이미 십오 분 전에 시작했어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둥근 모양의 파랑, 초록, 보라색으로 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아래에 있는 아치 모양의 교회 문 밖에서, 나는 포드와 오웬에게 속삭였다. "조용히 걸어. 그리고 가능하면 뒤쪽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아라. 나도 따라 들어갈게."
결국 뒤에 앉을 수 없었다. 이미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포드는 맨 앞 줄, 목사님 바로 앞에 빈 자리를 발견했다. 나는 가능한 몸을 수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포드를 따라갔다. 앉아서도 코트를 벗지 않았다.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기 위해 일어섰다.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였고, 넘기던 얇은 종이에 적힌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몇 페이지를 펼쳐야 되는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휴일
가끔 공항에서 남편이 했던, 저녁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하라는 말이 기억났다. 여전히 매주 손님 한 명을 초대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누군가를 초대할 계획을 짤 만한 여유가 없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매주 지역신문과 전국신문에 실리는 사설을 쓰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들을 하기에도 바빴다. 나는 아이들과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지, 예를 들어 시장님을 초대할지, 선생님, 교장 선생님, 상원의원(왜 안 되겠는가?)을 초대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싱글맘이라는 상황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아무 계획도 할 수 없었다.
"아직 저녁식사에 아무도 초대 안 했어?" 남편은 마침내 스카이프로 통화 되던 날 물었다. 조금 화가 났다. 남편은 내가 매일 아침 아이들을 깨워 아침에 학교에 잘 보내는지 알고는 있을까?
"우선 좀 익숙해진 후에, 그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볼게."
"지난번처럼 외롭게 지내고 싶지는 않잖아. 기억해?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된다고. 나도 어떻게 되어 가는지 듣고 싶고. 당신과 아이들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하는 거야?"
아이들이 아빠에게 인사를 하러 컴퓨터 주변으로 왔다.
"엄마가 매주 한 번 저녁식사에 손님을 초대한다고 하면 누구를 초대하고 싶니?"
더스틴과 스카이프를 한 후, 아이들과 나는 매주 사람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일에 대해 좀 더 자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후 포드는 앉아서 편지를 썼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포드 스마일리입니다. 저는 두 동생과 엄마 아빠와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해군 조종사고, 지금 13개월 동안 파병 중이십니다.
엄마는 아빠가 없는 동안 매주 한 번 저녁식사에 손님을 초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올해 언제 저녁식사에 와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몇 주 후, 나는 포드가 콜린스 상원의원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녀가 초대에 응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손님을 초대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 있다. 손님에게 남편을 대신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와서 저녁식사 시간의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 후 12월 말 어느 날,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마자 전화소리를 듣고 부츠 신은 발로 현관문을 걷어찼다.
"사라 스마일리 씨 댁인가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워싱턴DC에 있는 수잔 콜린스 상원의원실입니다. 잘 지내시죠?"
"큰 아드님, 포드던가요? 보낸 편지 받았습니다."
아빠를 대신해 저녁식사에 참석해 달라는 편지를 봤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모두가 거의 울 뻔했어요."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사라 의원님께서도 꼭 참석하고 싶으시답니다. 1월 3일 어떠세요?"
인사를 하고 전화를 제대로 끊었는지 다시 확인했다. 왜 이게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 거지?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이야기도 잘 이끌어가지 못하고. 게다가 미 상원 의원이라니. 콜린스 상원 의원이 저녁식사 초대에 응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이들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 특히 포드는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자신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에는 기뻐했지만, 상원의원의 답변에 대해 변덕스러운 감정을 내비쳤다. 1월 3일이 가까워 오자, 포드와 나는 매일 싸웠다. 포드는 상원의원에 대해 궁금해하다가도 괜히 초대했다며 후회하는 일을 반복했다.
"상원의원과 저녁식사를 한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말했다. "어떤 음식을 대접할 거예요? 비싼 접시를 쓸 건가요? 근데 비싼 접시가 있기는 한가요? 어떤 옷을 입을 거예요?"
아빠가 파병 나간 동안 아이들을 돕기 위해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다른 것, 즉 뭔가 공식적이고 기대가 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이들은 단지 외롭지 않길 바랐다. 음식 메뉴나 그릇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아이들에겐 수잔 콜린스가 상원의원인 것도 별 상관이 없었다. 단지 아빠 없이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채워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결정했다. 아이들을 위한 아이디어였다면 아이들의 생각을 따르기로. 아이들을 자랑하거나 아이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선물은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저녁식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차에 포드와 단 둘이 있을 때 내가 말했다. "저녁식사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이해한다." 포드는 내가 이해한다는 사실에 흥분해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래요. 다들 식탁 예절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만 얘기하죠. 난 그냥 아빠가 집에 있는 때처럼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아빠랑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제일 좋았던 게 뭐니?"
포드는 창문을 내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아빠가 하는 농담이나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 얘기하는 거."
"그러니까 일상적인 일들이구나? 그럼 저녁식사 초대도 그렇게 하면 되지 뭐. 기대도 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고."
포드는 돌아서 나를 쳐다봤다. "그럼 콜린스 의원님과의 저녁식사 때 코트를 입거나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당연하지. 코트도 넥타이도 없다."
1월
콜린스 의원이 도착하기 몇 분 전, 오웬과 린델은 거실에 앉아 스폰지밥 만화영화를 거꾸로 돌려보고 있었다. 벽 뒤편 부엌에서 나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과 큰일을 앞두고 있는 것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어깨와 귀 사이에 무선전화기를 끼고 친구인 모건이 라자냐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빵은 준비했어?" 모건이 말했다. "샐러드는? 디저트는 만들었니?"
"의원님이 브라우니를 가져온다고 했어. 잠깐, 내가 의원님이라고 했니? 아니면 콜린스 의원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콜린스 씨?"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모건이 말했다. "그냥 평소대로 행동해. 근데 무슨 옷 입을 거니?"
어떤 옷을 입을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새 학기에 강의할 내용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사설을 고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옷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샤워할 시간이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왔어요!" 린델이 소리쳤다.
린델은 반대쪽 소파에서 방방 뛰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에게 짧게나마 식탁 예절을 가르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니면 뭐든 간에 예절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그리고 손가락에 침을 묻혀 아이들의 뻗친 머리를 정리했다. 포드가 달아나고 다음으로 오웬도 달아났다. 린델도 꿈틀거리며 소리를 질렀지만, 관자놀이의 옆쪽에 뻗친 머리를 정리해줄 수 있었다.
그 순간이 그날 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다. 물론 우리가 상원의원을 초대했고, 여러 면에서 수잔 콜린스를 존경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우리 집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녀가 상원의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콜린스 의원과 의원의 시 사무실 대표인 캐롤 우드콕은 마치 저녁을 먹으러 온 친한 이모 같았다. 실제로 콜린스 의원의 사려 깊고 따뜻한 말투는 알라바마에 사는 이모를 생각나게 했다. 마치 자기 집인 양 거실 소파에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겁이 날 법도 했다. 콜린스 의원은 린델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이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밤 초대해 줘서 정말 기쁘구나. 저녁식사 시간에 너희 아빠 자리에 앉게 해 줘서 영광이란다." 콜린스 의원은 린델을 안아주며, 능숙하게 세 아이 모두에게 관심을 보이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내가 샐러드와 라자냐를 만들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의원에게 자신들의 방을 보여주었다. 저녁식사가 준비됐다고 부르러 갔을 때, 콜린스 의원은 포드의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 아빠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의원님도 우리 아빠를 보면 좋아했을 거예요." 포드가 말했다.
의원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한번 뵙고 싶구나."
부엌에서 아이들은 자기 자리로 달려가 예의 없이 식탁 중간에 있는 접시에서 빵을 집어 들었다. 콜린스 의원과 캐롤 대표는 부엌 입구에서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대표는 어느 자리에 앉아야 될지 물었다. 거기서부터가 난관이었다. 어떻게 손님을 접대해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나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고 빵을 집어 들고 싶었다. 아직 손님들에게 음료수도 대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 아빠 자리에 앉으세요." 오웬은 식탁 위쪽에 있는 남편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콜린스 의원에게 말했다.
저녁식사는 원래 하던 방식으로 차렸다. 좁은 부엌에서 어떻게 달리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김 나는 라자냐와 샐러드, 빵은 모두 식탁에 올려놓았고, 처음 몇 분 동안은 그릇과 접시를 나누어 주느라 분주했다.
의원은 아이들에게 군인 가족으로 사는 게 어떤지 물었다. 아빠가 없을 때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고 싶어 했다.
"아빠가 없는 것은 힘들어요." 포드가 말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빠가 없으면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최소한 오웬이 있으니까."
나는 린델을 바라보며 마지막 부분은 듣지 못했기를 바랐다. 린델은 빵의 옆 끄트머리를 잘라내느라 바빴다.
"너랑 동생은 매우 친해 보이는구나, 그렇지?" 콜린스 의원이 말했다.
"아빠가 없지만 동생들이 있어서 괜찮아요. 동생들이 없다면 못 살 것 같아요."
"엄마는 어떻니?" 콜린스 의원이 말했다. "엄마가 없다면 훨씬 더 힘들겠지?"
포드는 손을 셔츠에 문지르고 말했다. "아니요. 엄마가 없어도 괜찮아요."
내 뺨이 차갑게 식었다. 눈가에 느껴지는 갑작스런 긴장감을 떨쳐 내느라 접시를 쳐다봤다. 내가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아니 엄마가 싫다는 건 아니에요." 포드가 말했다. "하지만 아빠만 있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에요. 엄마가 떠나고 아빠가 함께 있다면, 좀 더 쉬울 것 같다는 거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포드에게 그 말을 취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묻고 싶었다. 포드에게 얼마나 많이 안아주고, 잠들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같이 있어 줬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포드에게 소리 지르며 너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대신 시선을 들어 미소를 지으며 오웬에게 샐러드를 건네달라고 말했다.
나머지 저녁식사 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포드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만 생각했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더스틴이 처음 파병 갔을 때 포드와 나 둘만 있던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그런데 이제는 나 없이 살 수 있다고? 포드가 한 말로 받은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 후, 콜린스 의원은 아이들에게 오후에 직접 구워 깡통에 넣어 온 초콜릿 브라우니를 주었다. 아이들이 자신들 앞에 놓인 호두가 가득 든 브라우니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거실로 가서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왔다. 저녁식사 후에 콜린스 의원과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지고 미리 말해뒀다. 남편은 새벽에 알람을 맞춰 일어나 내무실에서 나와 샤워와 면도를 하고 군복을 갖춰 입고 있을 터였다. 콜린스 의원은 따져보면 남편의 상사 중 한 명이었다. 콜린스 의원이 식탁 끝에 놓인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았을 때, 남편은 아직 젖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더스틴 씨. 멋진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어서 아주 영광이었습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식사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됐을 것입니다."
떠나기 전 콜린스 의원이 설거지를 돕겠다고 했다. 물론 평소대로 하는 것이 오늘의 방침이었지만, 그래도 상원의원에게 설거지를 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여러 번 사양하고 현관에서 그녀를 배웅했다.
2월
밸런타인데이 즈음 남편은 깜짝 선물로 나를 놀라게 했다. 남편은 일 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서로 사랑해야 한다며 2월 14일을 특별하게 보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가게에 해놓은 장식들과 세일 물건들을 보고 더스틴도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혼자서 선물을 사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의 주인인 로라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와 내 친구 모건과 쉘리, 앨 리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항상 아이들을 맡기는 코완 씨 집에도 메시지를 보내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뒀다. 아이들은 집에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스마일리 가족과의 저녁식사 자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 생각에 한껏 기대를 했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의 저녁식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쓰는 칼럼을 읽는 독자들이 내게 페이스북에 올린 글도 읽기 때문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사람들이 놀렸다. "오늘이 스마일리 가족과의 저녁식사 날이에요?" 이웃 사람들은 매일 누구를 초대할지 제안하거나 자기네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오라며 초대했다. 우리 가족끼리 정한 프로젝트가 마을 전체로 커져버린 것이다. 더 이상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었다. 마을 전체와 외로움, 저녁식사 식탁으로 가족이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나는 남편과 사별한 사람, 이혼한 사람, 다른 군인 가족들로부터 우리의 저녁식사가 자신들의 함께 했던 저녁식사나 손님들을 초대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독자들과 친구들에게 우리 세대가 항상 "저녁이나 먹자"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실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었다. 마치 복도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진실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니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 마을에만 해도 나와 아이들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웃사람들은 우리의 주간 저녁식사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특히 경찰서장과 같은 공인이 초대되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은행이나 주유소, 시내 빵집 등 어디서든 사람들은 "다음에는 누구를 초대할 거예요?"라고 물었다. 우체국에서 일하던 조지는 누구를 초대하라며 제안하기도 했다. 조지는 특히 린델의 유치원 선생님을 초대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독자는 "저녁식사에 아들의 선생님을 초대한다는 건 생각도 못 해봤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독자는 "우리도 저녁식사에 선생님을 초대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게 가능한가요?"라고 했다.
이런 반응들이 나를 슬프게 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각조각 구분되어 있다. 직장 동료, 학교 친구, 함께 노는 친구가 나뉘어 있고, 각각의 친구가 겹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페이스북에서도 친구를 그룹별로 분류한다. 선생님들은 더 이상 아이들을 안아주지 않는다. 그런 행동이 다른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9월부터 6월까지 주일 내내 여섯 시간씩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것이 의심스럽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좀 편애하는 것 아닌가요?" 누군가가 물었다. "당신네 애들만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아마 선생님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던 사람은 없었겠죠." 내가 말했다.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들은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핵심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아이들이 다른 또래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가득 찬 식당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수업시간에 틀린 답을 말했을 때 혹은 신발을 밟고 넘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집에서 알고 있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과 왜 저녁식사 한 끼 같이 못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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