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서툴고 고단한 아빠에게 말을 걸다

   
신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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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9��



■ 책 소개
‘엄마에게 나는 한 번도 좋은 딸인 적없었다…’
더는 후회하며 살지 않기 위해, 아버지에게 말을 걸다

엄마를 잃고 나서 3년, 다시는 볼 수 없는엄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후회를 담아 2011년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을 쓴 시인 신현림이 ‘세상 모든 아빠들은 어떻게살아가실까?’ 안부를 묻는 책.

가족 안에서 흔들리는아버지의 자리를 되짚어보고,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도 찾아본다. 모녀가장으로서 아빠 엄마 두 역할을 다하는 그녀는 아빠의입장을 헤아리며 서로를 위해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무얼까를 고민했다. 신현림은 책을 통해 더없이 깊고 강한 사랑을 아빠와 함께나누어보라고 말하며 아빠의 자리를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아들 입장에서 보는 아빠의 관점은 아들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시인의 남동생이자정신과 전문의 신동환 원장의 ‘칼럼’ 형식의 글로 마무리했다. 아무리 급속도로 바뀌는 세상이라도 여전히 그리운 건 그립고, 중요한 건 중요하다.상식과 원칙이 무너지는 이 시대에 아버지의 자리를 되짚어본다.

■ 저자 신현림
신선하고 파격적인 상상력과 독특하고 매혹적인 시와 사진으로 장르의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작가로 다양한 연령대의 마니아 독자층이 있다. 경기도 의왕 출생으로 아주대에서 문학을,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비주얼아트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아주대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세기말 블루스』『해질녁에 아픈사람』『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냈다. 영상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 미술』과 힐링에세이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없다』『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서른, 나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동시집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놀이터』『세계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 초등 교과서에 실린 『초코파이 자전거』 등을 냈다. 세계시 모음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읽으렴』1,2, 『아가야, 엄마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가 있다. 역서로는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Love ThatDog』 등이 있다. 사진작가로 세 번째 사진전 ‘사과밭 사진관’으로 2012년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작가로 선정되었다. 여전히 로댕의“감동하고 사랑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상상의 들녘 저 멀리까지 날아가게 하는 만화, 영화, 재즈, 클래식, 팝송등을 가리지 않고 누리며 또한 여행을 즐긴다. 젠틀하고 착하고 솔직 소탈한 사람들, 생태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을 사랑한다. 풍요로운 우정과사랑을 꿈꾸며 잠을 잘 자고 났을 때 뭐든 잘 해낼 것 같은 기분, 그것을 늘 맛보며 살고 싶다고 전한다.
■ 차례
프롤로그 - 더 늦기 전에 좋은 딸이되고 싶다 

첫 번째 이야기 - 아빠는괜찮아? 
1 어디든 함께라면 안심이야 - 아빠의 자리 찾아 드리기 
2 아빠도 쉬는 시간이 필요해 - 아빠와 여행가기 
3 지금이 아니면 안돼 -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 만들기 
4 은은하게 향기 나는 아빠 - 아빠 향수 사 드리기 
5아빠의 기분을 이야기해줘요 - 아빠와 수족관 가기 
6 문틈에 끼여 사는 아빠 - 아빠 모습 재정립하기 
7 함께 산다고 다 가족일까- 아빠만의 공간 만들어 드리기 
8 있을 때 잘해 - 아빠의 진심 헤아리기 
칼럼 - 아빠, 그 이름의 생소함 


두 번째 이야기 - 시간은 빠르고 아빠는 늘 늦다 
9 역시, 웰빙아버지 - 아빠와 함께 요리하기 
10 음악이 무언가족을 뭉치게 해 - 아빠와 함께 음악 듣기 
11 술로 말 못한 마음을 말해봐요- 아빠와 둘이서 술 한잔하기 
12 나무는 그냥 자란 게 아니었어 - 아빠와 나무 심기 
13 끝까지 사랑을 주는 수건처럼 - 자식된 기본 도리 지키기 
14 너는 안 늙을 줄 아니? - 아빠의 상실감 그리고 죽음을 생각해보기 
15 성당, 교회 가요. 절도괜찮고요 - 아빠와 함께 감사기도 드리기 
16 가르마 같은 오솔길을 함께 달려요 - 아빠와 함께 자전거 타기 
칼럼 - 아빠는 지금어디에 계실까? 


세 번째 이야기 - 더 늦기 전에, 또 후회하지 않기 위해 
17 그냥보고 싶어서 왔어요 - 아빠의 일터 찾아가기 
18 이런 세상도 있어요 - 아빠에게 새로운 세상 알려 드리기 
19 스크린처럼 점점얇아지고 있어 - 전자기기 끄고 아빠와 삶의 의미 찾기 
20 걸을수록 몸이 가벼워져요 - 아빠와 산책하고 등산 가기 
21 나이렇게 힘들어 - 아빠의 속마음에 귀 기울이기 
22 배우고 즐기는 데는 늙음과 젊음이 따로 없네 - 아빠에게 시 읽어 드리기 
23아빠 시절의 지혜와 향기를 느껴봐 - 아빠와 추억의 박물관 찾기 
24 새 가방으로 뽐내보세요 - 아빠 멋지게 나이 들게 돕기 
칼럼- 아빠는 내일 무엇을 하실까? 


네 번째 이야기: 아빠도 실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25 글도쓰고, 앨범 정리도 하고 - 아빠의 자서전 써 드리기 
26 먼저 착한 아빠가 되어주세요 - 아빠 손잡아 드리기 
27 오늘은 죽은자가 갈망하던 내일이에요 - 아빠와 문화유산답사 가기 
28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인생길이 정해져 - 아빠와 노래방 가기 
29 잘살고 잘 죽어야 해 - 아빠 건강검진 해 드리기 
30 말로 표현해야 사랑이지 - 아빠와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31 저부터 좋은사람이 될게요 - 아빠와 우정 쌓기 
칼럼 - 아빠들도 변해야 한다 


에필로그 - 아버지가 내 아빠라서좋다





외롭고 서툴고 고단한 아빠에게 말을 걸다


더 늦기 전에 좋은 딸이 되고 싶다

아침 일찍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셨다.


"엄마 산소 벌초를 하러 왔어. 장미꽃 심은 걸 옮겨야겠다. 볕이 잘 드는 곳으로."

"네, 주일에 옮길게요. 아버지 넘 수고가 많으세요."


잠이 덜 깬 채로 통화를 마치면서도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푸근한 성품이 그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모녀가장으로서 아빠 엄마 두 역할을 모두 하는 삶을 산다. 그러다 보니 살림보다 더 힘든 게 밥벌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성실한 가장들의 고단함과 애환이 가슴깊이 와 닿고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


아버지는 열심히 온몸 바쳐 가정을 지키고 생계를 위해 평생 일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빠를,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집에 두고 나오면 근심덩어리, 밖에 데리고 나오면 짐덩어리, 집에 혼자 두고 나오면 골칫덩어리, 같이 앉아 있으면 웬수덩어리, 심지어 젖은 낙엽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쓸쓸한 아빠의 또 다른 이름들이 있다니 그저 놀랍고 슬플 뿐이다.


이렇게 유행하는 말과 농담에는 그 시대의 가장 아프거나 서글픈 사회문제와 문화가 녹아 있다. 그것은 아빠가 아내와 자식에게서 너무 멀리 있으며, 아빠에게 속깊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산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홀로 새 삶을 일구며 분투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딸로서 아버지를 돕고 싶다. 그리고 남은 가족이 어떻게 함께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공부해서 알아야 함을 깨달았다. 뭐든 그냥 얻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급속도로 바뀌는 세상이라도 여전히 그리운 건 그립고, 중요한 건 중요하다. 상식과 원칙이 무너지는 이 시대에 아버지의 자리를 되짚어보고,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서로를 위해 살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무얼까. 이 책으로 저마다 자신의 죽음, 육체의 한계를 성찰하고, 보다 가치로운 생에 대한 고뇌를 나눌 기회가 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사람이 얼마나 커지게 되는가도 느낄 기회가 되면 기쁘겠다. 이 속에서 더없이 강하고 더없이 깊은 사랑을 자신의 가슴속에서 캐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아빠는 괜찮아?

함께 산다고 다 가족일까 - 아빠만의 공간 만들어 드리기

항상 소파가 당신의 자리라는 내 후배의 아버지가 있다. 가정에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조명하는 연속기획 프로그램에서 본 것과 똑같은 경우였다. 그만큼 혼자가 아니기에 부딪히고, 혼자가 아니기에 참아야 하고, 혼자가 아니기에 투명인간이 되면서까지 잊혀져간 40대 가장의 이야기가 이리도 많을 줄을 몰랐다.


힘도 없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조용한 성격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한다. 그는 낡아서 쿠션 없는 매트리스처럼 누워 있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스르르 소파에서 잠이 든다. 그 집에서 소파는 유일한 아버지의 공간이다. 그는 소파가 좋다고 말한다. 또한 의지할 곳은 소파밖에 없는 듯 보인다.


아내는 남편이 진짜 소파를 좋아하는지, 있을 데가 없어서 좋아하게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가 남남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된 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서로가 속옷처럼 익숙해져버린 것과는 다르다.


서로 티는 내지 않고 대화 없이 조용조용 하숙생처럼 생활하니 싸울 일도 없다. 그러면서 서로 멀어진 걸 절실히 느낀다.


모여 산다고 다 가족일까. 같은 공간에 산다고 진정 함께 사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을까. 온갖 물음이 내 안에서 잡초처럼 쑥쑥 자란다. 또 다른 소파 위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불 꺼진 소파에 누워 있다 보면 정말 참담합니다. 많이 억울했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요."


우리 집에 아버지만의 공간이 있을까. 눈물을 들이키며, 홀로 슬픔을 달래는 극도로 고독해지는 아빠들이다. 당신의 집에는 아버지의 공간이 있나요? 아버지만의 공간이 있는 집은 축복이다. 하지만 여느 가정에서 그것은 여전히 꿈이다. 하지만 소박하게나마 아버지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 드릴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커진 존재감을 기뻐하실 것이다. 콧노래라도 흥얼댈 한 평 구석방이라도 있다면 아버지들은 덜 외로울 것이다.



시간은 빠르고 아빠는 늘 늦다

너는 안 늙을 줄 아니? - 아빠의 상실감 그리고 죽음을 생각해보기

우리는 누구나 늙고, 언젠가 사라진다. 상실감은 관계의 상실과 소유의 상실도 있고, 바뀌고 떠나고 놓아주고 잊히는 것들로부터도 찾아온다.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큰 상실감은 혈육의 죽음이다. 특히 엄마나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을 묶던 끈의 상실이다. 이는 자식들을 묶고 끌어안았던 엄마와 아버지의 노력을 과소평가하였음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어느 집이나 부모는 자녀의 사이를 지키게 해준다. 그래서 부모의 죽음은 형제자매 간의 사이마저도 벌어지게 한다. 특히 엄마의 죽음으로 형제간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멀어진 경우를 나는 더러 보았다.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고 접촉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신 할아버지를 위해 행복한 죽음을 위한 기도를 해 드린다는 후배의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이제 갓 30대에 접어든 그 친구는 처음엔 죽음을 위한 기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할아버지에게 아버님, 주무시다가 편안하게 하느님 곁으로 가실 거예요.라고 말씀하시는데, 멀쩡히 건강하게 살아계신 분께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을 듣는 할아버지 표정이 그렇게 평온해 보이실 수가 없더라구요. 그때 알았어요. 할아버지는 죽음과 친해지는 연습을 하고 계시는 구나……."


부모님은 자식이 다 커서까지도 자식들을 보호하고, 안정감을 주신다. 이제 자식들이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죽음과 사라짐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으로부터 평화를 찾게 도와드리는 일이다.


자식은 자식들대로 부모님과의 이별을 생각하며 부모님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나는 엄마와의 이별을 통해 내 인생이 상당히 변했음을 느낀다. 나의 창작만큼이나 힘들 때 지인들과 식구들에게 어떻게 처신하여 도움을 주고받는가를 많이 생각하고 배우려고 애쓴다. 무엇보다 사랑의 표현을 미루지 않고 바로 전하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다. 너무나 큰 상실을 통해 배운 성장이었다.



더 늦기 전에, 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요 - 아빠의 일터 찾아가기

어느 날 B는 무작정 아버지의 일터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회사 로비에서 아버지를 찾았다. 마침 직장동료 분들과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아버지를 발견한 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때 뒤를 돌아보시며 깜짝 놀라시던 아버지. 이내 환하게 웃으시며 동료 분들에게 B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내 아들일세."

"아들이 잘 생겼네. 자네 좋겠어. 나는 딸만 셋인데, 아들이 있으니 듬직하겠구먼."


아버지는 친구 분들에게 식사하라고 하시고는 회사 밖 식당으로 B를 데려가셨다. 설렁탕 두 그릇을 주문하며 아버지는 물으셨다.


"웬일로 회사까지 찾아왔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냥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고 하실 때의 아버지 얼굴에 스쳐간 환한 미소를 B는 분명히 보았다.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요란 말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아무 욕심 없는 순수한 말. 우리가 점차 잊어가고 있는 향기로운 말.


현대인들은 이유가 있어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바쁘다. 가족 간이라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라 그냥 보고 싶었다는 말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감동은 의외로 작고 일상적인 것에서 피어난다. 무심코 아버지 일터를 찾아가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해보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회사를 다닌다면 점심시간에 맞춰 아버지 일터로 가보는 것도 좋다. 파릇파릇한 4월의 들판을 보는 것 같은 새로운 신선함에 즐거울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터 앞에서 전화를 거는 것이다.


"아버지, 저 아버지 회사 근처인데요. 점심 같이 먹고 싶어서 왔어요."


새 가방으로 뽐내보세요 - 아빠 멋지게 나이 들게 돕기

어떻게 하면 멋지게 나이 드시도록 아버지를 도울 수 있을까. 자식된 도리로서 당연히 도와 드려야 한다. 이것에 대해 나는 참 많이 생각했다.


나는 딸과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 일주를 위해 비행기를 오를 때 길에 아버지의 낡은 가방을 보고 슬펐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의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몇 달 동안 돈을 모아 가죽가방을 사 드렸을 때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시며 활짝 웃으셨다.


"돈이 있어도 아까워서 못 샀지."


그래, 맞다 맞아. 돈이 있어도 아까워서 못 사신 것들이 무척 많으실 거다.


어떤 사이든 주는 사랑으로 인해 관계는 더 깊어지고 빛나는 법이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그 사랑의 방법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칼럼 - 아빠는 내일 무엇을 하실까?

20년 이상 함께 살았던 남편이 외도를 해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간 일로 외래를 찾아오는 중년의 여성들을 자주 본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그분들을 볼 때마다 나도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오래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았던 남편이 어느 날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리고 자녀들은 또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가정을 버리고 간 아빠들의 이야기를 그들에게서 직접 들을 수 없다. 가정을 버린 아빠는 부끄러운 법이다. 대화의 장으로 나올 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다른 중년 남자 환자들의 면담에서,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듣는다. 가정에 자신의 공간이 없다고, 그들의 아버지처럼 책임감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만, 재미가 없고 신나지 않다고 그들은 말한다. 사람은 인정받는 공간을 찾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달래고,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줄 사람을 찾는 법이다. 그래서 스스로 인정받을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열정을 쏟고, 그 공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설령 그것이 가정을 버리게 되는 불륜의 길이라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가정을 버린 후 아빠들의 삶은 어떨까? 행복할까? 가족들에게 실망해서 떠나든, 삶의 무게가 버거워 떠나든, 외도를 이유로 떠나든, 가족을 잃은 사람은 중요한 무언가 한 가지를 잃은 채 살아가게 된다. 가족은 중요한 삶의 흔적이다. 가족을 잃는 것은 인생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가족을 잃고 슬프게 살아가는 많은 아빠들을 술집에서 보고, 마찬가지로 아빠를 잃고 헤매는 많은 가족들을 길에서 자주 만난다.


오늘날의 아빠들은 권위가 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권위의 이유조차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빠가 떠난 뒤, 회환과 죄책감이 얼룩진 표정으로 길거리를 헤매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 시작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아빠들의 권위를 세워 드려야 한다. 아빠들의 권위는 가정 내에 존재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아빠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빠! 하루 종일 고생하셨어요.", "아빠, 먼저 드세요." 내가 알기로 모든 아빠들은 이런 말만으로도 큰 기쁨을 느낀다. 더욱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줘야겠다고 결심한다. 지금부터 시작해보라. "아빠! 늘 감사해요!"



아빠도 실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글도 쓰고, 앨범 정리도 하고 - 아빠의 자서전 써 드리기

장마가 걷히고 고향집을 가보니 거실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부모님의 사진 몇 장이 새 액자에 담겨 깨끗이 닦여 있었다. 또 아차 싶었다. 지난봄에 함께 간 이탈리아 여행사진들을 인화해 드렸을 때 즐거워하셨지. 이번에도 내가 먼저 알아서 해 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진을 과감히 잘 버리게 되는 만큼 소중한 사진들은 더 잘 챙기게 된다. 사진은 자신이 그곳에, 행복한 시간 속에 존재했었다는 증거다. 또한 사진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기억 저장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예전 사진들을 보면서 추억을 되새기는 즐거움과 안도감을 누리게 된다.


찬찬히 액자 속 사진을 보았다. 그 시대에 서양식 결혼을 하신 부모님 사진과 신혼 초의 사진을 보며 마치 처음 본 듯이 감탄했다. 어쩌면 영화배우처럼 멋질까…….


이미 지나간 시절, 가장 행복한 삶이 시작되는 순간의 모습이란 이토록 젊고 빛나는구나 싶어서 다시 감탄했다. 부모님의 젊은 날의 예쁜 결혼식 사진이 남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저마다의 추억은 장롱에 한복을 개켜 넣어두듯이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그 추억을 꺼내어 앨범으로 정리해 드리고 아빠 엄마 일대기를 써 드리기. 결국 이것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지나간 인생의 장면들을 함께 공유하고, 기분과 느낌이 어떤지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경우는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세월을 메모해둔 적이 있다. 보는 이미지 사진만이 아니라 글로 써서 남겨두는 일도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표현하기도 어렵고 이해받기도 쉽지 않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상처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약해져버렸다. 젊은 친구들에게도 이런 감정이 깊다. 그러니 일만 하고 속울음을 터놓기 힘든 아버지들은 어떻겠는가.


칼럼 - 아빠들도 변해야 한다

아빠들이 자식들과 친해지는 법은 그리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다. 함께 캠핑을 가든, 함께 독서를 하든, 함께 축구클럽 회원이 되든, 그보다 더 사소한 무엇이든 공통의 관심을 공유하는 것이 가정을 튼튼하게 한다. 그리고 아빠가 자녀들을 데리고 자주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보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아빠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말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녀들과 함께 나누고, 앞으로 함께해야 할 것을 찾자.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하면 먼 훗날 그 아빠의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아빠의 집에 와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불렀던 노래를 부르고 그때의 추억을 함께 나누며,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리라는 것을.


아버지가 내 아빠라서 좋다

아빠에게 말을 먼저 걸었다.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해서 좋다.

바람 불어 길이 휘청거려도 좋았다.

함께 내디딜 수 있는 내일이 있어 좋다.

아버지가 내 아빠라서 좋다.


이제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