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그대로

   
윤성희
ǻ
네시간
   
15000
2013�� 09��



■ 책 소개
예능, 사람을말하다!

경력 15년 차의 예능 작가로서 ‘섭신(섭외의 신)’이라고 불리울 만큼 베테랑이지만 여느 작가들처럼 많은실수가 있었고 굴욕에 눈물을 흘렸고 수많은 실패를 맛본 저자가 격렬한 방송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첨예한 관계를 맺으며 터득해온 사람 관계에대한 책이다. 

대본 쓰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데 더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살아온 작가는 사람 관계를 한 편의 예능 프로그램에 비유한다. 흥미로운 방송 에피소드와 관계에 대한 작가만의 유쾌한 해법은사람 관계에 지친 우리에게 마치 한 편의 예능을 보고 난 것처럼 재미와 위로와 공감을 안겨줄 것이다. 저자는 살벌한 방송 바닥에서 그래도 얻은것이 있다면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상처받고 치유되고 잊혀지고 또 만나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치유법 역시 사람인 것이다.

■ 저자윤성희&nbsp& 
예능 작가 15년 차다. 스스로 일복은 타고났다 할 정도로 소위 빡센(?) 프로그램은 거의 거쳐갔다.유재석의 ‘진실게임’, ‘일요일 일요일 밤에’,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등 예능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거미줄 인맥을 형성했다. 유재석,신동엽, 김용만, 김원희, 이휘재, 김구라, 하하 등 예능의 고수들과 작품을 함께했다. 가끔은 출연자로 인해 속 끓이는 날도 많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오직 타인 바라기에 빠져 사는 인간 중독자. 예능이 지긋지긋하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는 예능앓이 중.현재는 MBN 리얼 관찰 ‘아내가 사라졌다’와 투니버스 어린이 드라마 ‘벼락맞은 문방구’를 집필하며, 픽션과 논픽션의 세계를 왔다 갔다 살고있는 아수라 백작 같은 작가.

■차례
prologue 사람 관계, 한 편의 예능 같은 

channel 1 재미, 가공되지 않은 
사람이 재미있다 | 관계의 밑천, 배워서 남주자 | 관계의 거미줄 비법, 오지랖이 마당발을 만든다 | 통쾌한 복수의 순간은 자연히 온다 | 마음을 얻는 방법, 공통점 찾기 | 불편한관계를 이겨내는 방법, 궁금증 |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 | 인칠기삼, 사람이 7 재능이 3이다 | 나는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

channel 2 다큐, 진짜 사람사이 
그와 나는 친한 걸까? 그냥 아는 사이인 걸까? | 부러우면 진다고? 부러워야 얻는다! | 적은 때때로 나를 빛나게한다 | 사람을 대하는 태도, 쿨해야 할 때와 핫해야 할 때 | 스킨십, 백마디 말보다 더 따뜻하고 감사한 위로 | 모드 전환, 내 안에 또다른 나 있다 | 굴욕이 포기보다 아름답다 | 나는 나를 자기 편이라 믿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의 편이다 | 왜 그들은 신뢰받는가? | 지금 보고있는 건 그 사람의 1%에도 못 미친다 | 당신은 꿈이 뭐예요? 

channel 3 감동, 관계의 시작과 끝 
다가올 수 있는 마음의 자리는 얼마나비워두었는가? | 원칙보다 마음, 이유보다 감정 | 관심, 너의 모습이 보여 | 당신은 고수인가? |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면 관계는 쿨해진다?| 답이 아닌 것만 지워나가면 된다 | 인정해줄 것에 인색하지 않고, 틀린 것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 평가는 남이 한다 | 칭찬의 진정한 맛은뒷담화에 있다 | 진실된 인라인은 남의 속사정을 챙겨주는 것이다 | 관계의 시작과 끝은 가족이다 
channel 4 리얼, 날것, 살아 있다는 것
관계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 모든 것은 돌아오기 위해 굴러간다 | 색안경, 그 편견의 진실 | 한순간의 감정이 관계를좌우한다 | 믿음은 상처를 동반한다, 기대를 버려라 | 나의 사생활을 공개하지 마라 | 사람 안에서 살고 사람 밖에서 쉰다 | 세상에 물 좋고정자 좋은 놈이 어딨어! | Yes, and | 어떤 것도 강요되지 않은 편안함, 날것 그대로 
channel 5 위로,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쳐라
결정은 타인으로 인해 내려지지 않는다 | 이별은 시간이 한다 | 많이 까여본 사람이 아는 진리 | 모두가 나를 좋아할거라 생각하는가? | 사람이 준 상처, 사람으로 치유한다 | 대인관계의 편식은 대용이 없다 | 포기는 빠른 선택이다 | 타인의 시선에서자유로워지기 | 사람 사이에도 공백이 필요하다 | 날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epilogue 매일 미워하고 매일 사랑하고





날것 그대로


재미, 가공되지 않은

사람이 재미있다

아빠! 어디가?, 나 혼자 산다, 정글의 법칙 등의 관찰 프로그램은 사람의 이야기다. 아이가 뭘 대단히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이들을 통해 웃는다. 아이들의 세계 안에도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고작 10년 남짓 살아온 아이들에게도 이토록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데, 하물며 어른들은 어떻겠는가? 둘만 만나도 수다로 반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셋이 만나면, 하루를 까먹는 건 일도 아니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사람의 이야기에 의존한다. 평범한 사람의 별난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공감하고, 이 시대의 화성인들에게서 사람의 재미를 느낀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방송계는 사람 안에 내재된 관계 찾기에 경쟁적으로 매달릴 것이다. 또한 모든 장르를 막론하고 인간이 가진 스토리텔링이 가장 가치 있는 주제가 되리라고 전문가들은 예언한다. 최근 대다수의 광고나 아이디어 상품들, 그리고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게 이를 반증해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숨겨진 금광과 같다. 금광이 발견되었다면, 우리의 할 일은 정해져 있다. 그 안의 금을 발굴하기만 하면 된다. 사람 재미는 찾는 자의 몫이다. 그리고 사람이 주는 놀라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새로운 영감이 되어 돌아오리란 걸 난 확신한다.


인칠기삼, 사람이 7 재능이 3이다

현장에서 예측 못한 문제가 생기면, 의지하는 건 진행자뿐이다. 그의 노련함에 맡기는 수밖에. 사실 대본이 프린트되는 순간부터는 공이 진행자에게로 넘어간다. 그가 조리하는 방법에 따라 밋밋한 소면도 비빔국수가 되고 잔치국수가 되는 법이니, MC 복만큼 중요한 복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몸값 비싼 MC를 만나는 게 상책인가? 결코! 물론 그들의 인지도가 프로그램에 플러스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인정!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프로그램과 MC, 제작진의 호흡! 쉽게 말해 궁합이다.


하지만 우리가 족집게 도사가 아닌 이상에야 어찌 모든 인간관계가 100% 찰떡궁합만 있겠는가? 가끔은 심각하게 이별을 고민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얼마 전, 한 퀴즈 쇼의 작가 선배가 프로그램의 MC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토로해왔다. "변했어, 변했어!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젠 결단을 내려야겠어. 달래도 보고 설득도 해봤지. 근데, 안 맞나봐. 안 고쳐지더라고." 주어만 빼고 들으면 영락없는 이혼 위기의 부부 멘트다. 이들의 이별이 머지않았음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방송 역시, 인생과 비슷해서 함께 가는 반려자가 바뀌는 것은 적잖은 파장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모든 제작진들이 처음부터 스펙 좋고, 조건도 맞고, 성격 착하고, 게다가 궁합까지 딱딱 맞는 MC 고르기에 사활을 건다.


이런 현실에도 참으로 다행스러운 건,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MC들은 프로그램과의 궁합이 꽤나 좋은 편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되돌아보면 나의 실력은 30밖에 안 되는데, 그들이 70을 채워줘서 나의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숨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30밖에 안 되는 나를 100으로 보이게 해주는 조력자들의 힘.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인복인가보다. 그렇게 보면 저 혼자 잘해 이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에 새삼 공감이 된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사람을 위한 일이다. 사람과 하는 일이다. 그만큼 중요한 게 우린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인 것이다.



다큐, 진짜 사람 사이

적은 때때로 나를 빛나게 한다

박명수는 내가 아는 연예인 중 착한 심성, 의리로 넘버 3 안에 드는 인물이다. 호통개그 창시 이전의 그는 연예계에서도 후배 잘 챙기는 형님으로 통하던 사람이었다. 마음이 약해서인지 피디에게 지적을 받고 나면, 무대 위에서 달달 떠느라 몇 마디 대사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늘 어리숙하게 서 있다가 봉변당하는 캐릭터를 도맡아야 했다.


그런 그에게 무한도전은 새로운 옷이 되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기, 제멋대로 화내기, 시도 때도 없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럭버럭 질러대기, 단지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인해서 표출되지 못했던 솔직한 감정을 꺼내주었던 것이다. 처음엔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그의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그렇다고 의리 있는 그의 심성이 변한 건 아니다. 할 말 다한 덕에, 인기를 얻게 된 것뿐이지.


김구라의 독설도 마찬가지다. 사석에서 그는 정말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다. 한번은 오랜만에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갑작스레 나의 이름을 잊었는지 "어? 어? 어?"하다가는 금세 "미안, 이름을 깜빡 했어"하고는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다. 보통은 "잘 지내지?"하고 지나가도 될 법한 상황이건만,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그런 그가, 카메라 앞에만 서면 최고의 독설가가 된다. 우린 눈치 보느라 감히 못할 말들을 서슴없이 뱉어 게스트를 당황시킨다. 그런 모습에 우린 열광한다. 안티들이 쏘아대는 수백 개의 악플을 리스크로 끌어안았지만, 더 큰 천군만마를 얻었다. 솔직하면 할수록, 그 인기는 더 수직상승하리라 난 확신한다.


적은 때로는 나를 빛나게 한다. 그들의 쓸데없는 지적질은 나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들이 주는 상처? 그것 역시 완벽한 대처법이 있지 않은가. 철저한 무시. 백만 안티가 온라인 상에서 활개를 친다 해도, 안 보면 모를 일이요 듣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난이야 바로잡고 고쳐 마땅하다. 하지만 남이 잘 되는 걸 보기 싫어 헐뜯는 이들에겐 소위 생까주는 게 직효란 뜻이다.


자고로 마가렛 대처에게도 적은 있었고, 제아무리 뛰어난 에디슨이라 해도 안티는 있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가치는 상대방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상대의 비난 어린 시선이 나를 실패자로 만드는 건 아닐까?라는 조바심이 실패의 원인은 될지언정.


왜 굳이 인간관계를 넓히려고만 하는가? 허울뿐이고, 껍데기만 있는 숫자 경쟁은 결국 남는 게 없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존재의 이유를 갖고 있어야만 관계는 살아나는 것이다. 욕심 부린 사업의 확장은 부도를 가져오고, 부질없는 관계 넓히기는 불신을 가져온다. 숫자보다는 질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진짜 사람 사이다. 남을 위해서, 허허실실 맞춰주고 눈감아줌으로써 맺어진 관계는 썩은 동아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나를 자기 편이라 믿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의 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편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편인가? 나는 나를 자기 편이라 믿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의 편이다. 그가 누구건,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면 나는 순식간에 클라크가 슈퍼맨으로 변신하듯, 바람의 속도로 상대방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함께 분노하고 욕하고 위로하고 칭찬한다.


좋게 말해 남의 얘길 잘 들어주는 사람. 냉정하게 보자면 참 속없고 오지랖만 넓은 여자다. 도대체 왜 스스로 이 피곤함을 자처하고 사는 것일까? 정답은 없다. 굳이 이유를 찾으라면, 천성이라 해두자. 인간이란 게 제 마음에 병을 쌓아두면 화병이 되는 것이고, 누구라도 잡고 하소연하면 그 뜨거운 것이 조금은 식기 마련 아닌가?


난 그저, 내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돈 안 드는 배려로 30분이란 시간을 선택한 것뿐이다. 즉 타고난 봉사정신?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여기까진 아주 선량하고 배려심 많은 척하는 모드. 사실, 속내는 어쩔 수 없는 비상사태를 막고자 죄 없는 내 귀를 희생시키는 것뿐이다. 그게 방송 사고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니까.


사고는 언제든 발생한다. 무방비 상태의 내 뒤통수를 보란 듯이 가격하며, 녹화 당장 하루 이틀 전에 발생하는 섭외 펑크! 그때부턴 모든 작가, 피디들의 인맥이 동원된다. 모두가 벽을 향해 돌아앉아서 수년간 친분을 쌓아왔던 연예인에게 통사정을 한다.


나 역시도 그럴 때마다 SOS를 청할, 몇몇 지인들이 있다. 평소에는 연락도 자주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전화를 걸면 열이면 아홉은 눈치챈다. 그러나 일보다는 사적인 관계 때문인지 섭외 이야기는 뒷전이고 그동안 쌓아둔 수다거리들이 먼저 대방출된다.


한참 동안의 가정사, 개인사가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마지막 인사는 "그래, 녹화가 언제라고? 낼 모레? 알았어. 출연료나 많이 챙겨줘!"하며 시원하게 질러주시는 나의 소중한 연예인님! 출연료가 문제입니까? 제 작가료라도 다 털어드리죠!


사람이란 게 이런 속내를 한두 번은 터놓아야 저 사람과 내가 친해졌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 관계에 대한 마음도 생긴다. 가끔은 타인의 속내를 들어주는 것이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걸 난 작가가 되어 깨달았다.



감동, 관계의 시작과 끝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면 관계는 쿨해진다?

전쟁보다 더 공포스러운 게 신경전이다. 최근 북한의 감정선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를 보면, 사람의 감정 싸움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알 것이다.


도무지 상대가 무엇을 바라는 건지, 누굴 위해서 소모전을 하고 있는지, 답답함에 약도 없다. 툭 터놓고 대답해주면 좋으련만 자존심 때문인지 돌아오는 답은 늘 "괜찮아." 누가 봐도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인데 말이다. 그러면 더 미치고 팔짝 뛰겠다. 결국은 혼자 속앓이하는 날만 늘어간다. 그러고 나서, 이런 불필요한 신경전이 가져온 결과는? "내가 오해했었네." 고작 원점이면서. 그토록 사람을 힘들게 만들다니!


그렇다고 해서 타인 간에 지켜야 할 의리가 또 대단한 것도 아니다. 손가락을 자를 수 있을 정도의 용기를 요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범위의 의리는 진실함이면 충분하다.


서로의 감정을 쓸데없이 소모하지 않고, 간 보기, 의중 떠보기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는 것. "그 정도야" 하겠지만, 우린 누구도 쉽게 타인에게 그 솔직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살지 않는가?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면 관계는 쿨해진다. 타인의 마음을 인정함으로써 내 마음의 욕심은 비워가는 것이다. 그 관계만 인정하면 의리는 자연히 따라오는 보너스다. 욕심이 없어야 쌓여질 것도 많다. 비운 마음 안에는 타인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많은 법이니까.


서로의 상황을 인정하고, 나의 마음을 비워야 비로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나와 우리의 관계다.


진실된 인라인은 남의 속사정을 챙겨주는 것이다

"녹화 전에 밥 한번 같이 먹었음 좋겠다!"


나의 절친한 배우 김나운 언니와 통화를 하다, 마지막에 예의 평범한 인사를 건넸다. 언니를 매우 좋아하고 인연도 깊은 만큼, 남들처럼 밥을 빙자해 마음을 대신한 것뿐인데.


"그래, 밥 한번 먹자, 녹화 날." 언니의 대답.


녹화 날, 시간이 되면 점심이라도 같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곤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녹화 당일! 도대체 이게 무슨 냄새지? 모두의 코를 의심케 하는 이 묘한 기운. 시간상 구내식당에서 풍겨오는 냄새일 리는 없고. 옆 스튜디오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녹화하나? 냄새로 보건데, 제육볶음에, 구수한 된장국, 갓 구운 생선의 바싹한 향 그리고 무엇보다 갓 뜸이 들기 시작한 흰 쌀밥까지. 발달한 코를 벌름거리며 찾아들어간 대기실에서, 나는 희한한 광경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게 다 뭐예요?"

"녹화 날은 밥 먹을 시간도 없잖아. 어차피 녹화 길어지면 다 배고플 것 같아서 집에서 아예 해왔어."


무지막지하게 손이 크고, 퍼주기 좋아하는 그녀는 무려 50인분의 식사를 혼자서 밤을 새 준비해왔다. 자고로 밥심이 최고라며. 그날 우리 팀 모두는 간만에 소풍 나온 사람들 마냥, 배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아 대기실 바닥에 눌러앉아 배불리 흰 쌀밥을 먹었다.


그녀의 집엔 냉장고가 한두 개가 아니라고 한다. 남편과 단둘이 사는 조촐한 살림에, 그녀는 무엇이든 박스로 주문하고 냉장고를 그득그득 채워놓는다. 그런데 두 부부의 입으로 들어가는 건 그중 1∼2%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 살면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자기 손으로 밥 한 끼는 먹여야 마음의 신세를 갚는 것 같다는 그녀의 철학에 난 혀를 내둘렀다. 굳이? 그 힘든 일을 자처해서? 도대체 왜? 하지만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심플하다.


"그게 다 살아가는 맛이야."


내 주변에 나의 든든한 밥 한 끼를 고민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때 광고 카피로도 유명했지만 밥이 갖는 묘한 따뜻함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그녀에겐 속속들이 모든 걸 내보여도 좋을 것 같다는 신뢰마저 생기니 이게 바로 진실된 인라인이 아닌가? 남의 속사정을 챙겨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그녀에게서 배운, 사람을 진짜 사랑하는 방법이다.



리얼, 날것, 살아 있다는 것

어떤 것도 강요되지 않은 편안함, 날것 그대로

내가 아닌 모습은 결국 들통난다. 자연스럽지 않음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것이 나에 대한 포장이라 믿는다. 마치 새 상품을 샀을 때, 화려한 포장이 물건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것마냥. 화려한 포장이 내가 아니라 할지라도, 기꺼이 벗지 않으려 한다.


왠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촌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밋밋하고 매력이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길들여져 있었다. 정작 진실은 외면한 채 말이다.


예능계의 선배님들은 농담처럼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연출이 왜 연출이야? 상황을 만들어내니까 연출이지. 그럼 작가는? 지어내니까 작가야."


맞는 말이다. 연출은 상황을 어떻게든 재밌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도 서슴지 않는다. 작가는 웃음을 위해 숱한 이야기들을 지어낸다. 그게 당연한 역할이라 생각했다. 웃음과 재미를 위한 희생? 그건 제작진으로서 출연진으로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누군가 내게 "왜?"라고 묻는다면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재밌게 하기 위해서? 웃기려고?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조작을 노력의 일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눈속임에 시청자는 분노한다. 그게 누굴 위한 것이었든, 가짜에 대한 판단은 냉혹해졌다. 그건 시청자들이 똑똑해져서거나 눈높이가 높아져서가 아니다. 가장 진실한 것이 최고의 즐거움임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1차원적이지만, 열정이 넘치는 샘 해밍턴은 <진짜 사나이>를 통해 비로소 진짜 그의 모습을 대중에게 알리게 되었다. 과거에도 그는 예능 프로그램 안에 있었고 지금까지도 기억되지 못한 많은 채널 안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대중이 그를 발견한 건 가장 샘 해밍턴다운 모습인 지금이다.


이 시대는 내숭이 통하지 않는다. 쌩얼을 100% 커버한 화장발도 먹히지 않는다. 성형발? 똑같은 성형인들 덕에 발각되는 건 시간 문제다. 답은, 관찰 안에 있다. 우리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건 그가 가장 그다울 때다.


다른 이들도 우리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냥 너답게 살아, 라고.



위로,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쳐라

날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배우들과 친분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소위 연기 몰입도. 촬영을 시작하기 전, 많은 배우들이 준비 과정에 들어간다.


그들은 캐릭터가 정해지면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산다. 그래서 캐릭터가 강한 인물일수록 배우의 이중생활은 힘들어지는 것이다. 드라마 <무사 백동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민수 씨의 작업실에 놀러간 적이 있다. 드라마에서 그는 천이라는 고수의 역할을 맡았었다. 평소 그의 강렬한 인상과도 잘 어울리는 강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고 그는 한동안 몸져누웠다고 한다. 육체적인 고단함이 아니라, 1명의 또 다른 인물에서 벗어나는 고통 때문이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도저히 몰입했던 그 인물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천을 떠나 보내기 위해 산에도 다니고, 수작업에도 몰두했다. 그렇게 오롯이 명상과 다스림을 통해 그는 자신을 되찾아간 것이다.


그 과정을 듣는 동안, 내 삶이 겹쳐 보였다. 일에 몰입해서 워커홀릭으로 사는 과정이 있었다면 벗어날 시간도 필요했을 텐데 나에겐 그런 과정이 없었다. 항상 몰입, 몰입, 몰입, 그 연속뿐이었다. 그 기간 동안은 즐기면서 쉽게 가는 방법조차도, 잔꾀이고 나태라 여겼던 것이다. 만약 내 삶이 한 편의 드라마였다면 아마도 온전히 나를 되찾는 데 적어도 몇 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꿈, 타인의 바람만큼 나의 마음도 중요하다. 타인을 위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의 자리만큼 나를 위해 내어줄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주일을 온전히 타인을 배려하며 살았던 내가, 단 한 번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에 갔다 해서 이기적이라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나를 포기하고 사니 내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늘 남들이 만든 관계의 틀 속에서 질질 끌려다니는 꼴만 된다.


세상의 중심, 관계의 중심에 서고 싶다면 나를 찾는 게 우선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추구해갈 때, 타인의 마음은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왜 세상은, 저들은 내가 바라는 대로 끌려오지 않느냐고? 이런 질문들로 고뇌하고 있다면! 비로소 진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이 아닌, 나를 외쳐야 할 그 순간이 온 것이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