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사운드

   
차우진
ǻ
책읽는수요일
   
13000
2011�� 11��



■ 책 소개
‘오로지 음악으로만 위안 받던 날들은,
우리 생애 가장 파릇했던 청춘의시기였다.’

2000년대이후 급변해 온 청춘의 삶과 그들에게 위안이 되어준 음악들로부터 다양하고 진솔한 고민과 정서를 길어내는 평론가 차우진의 첫 산문집. 검정치마,얄개들과 같은 인디밴드부터 샤이니, f(x) 등의 아이돌 그룹까지, 저자는 인디와 메이저 전반에 걸친 30여 팀의 앨범과 곡들을 소개하고설명한다. 책은 이 땅의 청춘들 속에 내재한 마음의 단면들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들 곁에 늘 함께 있어 온 음악을 통해 ‘지금, 이곳, 우리’의삶을 돌아본다.

이 책을 통해 현재의 한국 대중음악에대한 이해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좋은 음악은 어떤 점 때문에 끌리며 대중을 감동시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될것이다. 그리고 차우진 음악평론가가 선택한 노래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으며, 저마다 갖고 있는 청춘과 음악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되살려볼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음악과 관련한 즐거운 경험들을 선사해줄 책이다. 

■ 저자 차우진
1999년부터 잡지에 글을 썼고 2001년부터 음악웹진 [weiv]운영에 손을 보태고 있다. 「씨네21」「한겨레21」「GQ」「나일론」 등의 매체에 음악 및 방송에 대한 글을 썼고, 쓴다. 『아이돌』『한국의인디레이블』『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등의 단행본에 참여했다. 여전히 ‘대중음악평론가’라는 말이 어색하지만,비겁해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음악 산업과 온라인 생태계에 특히 관심이 많다.

■ 차례
프롤로그 - 청춘의 사운드, 혹은 당신에게 럭키를

1. 위태롭게, 아름답게 
우리는 모두 그렇게어른이 된다 ⊙ 브로콜리 너마저 《앵콜요청금지》 
젊은 날의 불확실성과 지속가능성 ⊙ 장기하 [싸구려 커피] 
자신의 20대에게보내는 편지 ⊙ 옥상달빛 [28] 
청춘, 허비해도 좋을 시간 ⊙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 《알앤비》 
믿는 것을 계속 지켜나갈 것⊙ 크라잉 넛 [불편한 파티]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 얄개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이 시대의 청춘송가 ⊙ 브로콜리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2. 파도색나날들 
어금니 꽉 깨물고, 행복해지기 ⊙이장혁 《스무살》 외 
불안이 삶을 지탱한다 ⊙ 눈뜨고 코베인 [Murder"s High] 
나를 뚫고 지나간 차가운 서정 ⊙ 미선이[Drifting] 
몸에 새겨진 시대의 감수성 ⊙ 샤이니 《JoJo》 
노스탤지어, 어쩌면 그것은 농담 ⊙ UV [집행유예]
괜찮아, 모든 건 다 변하니까 ⊙ 시와 [시와,] 외 
무얼 해도 슬펐던 시절의 풍경 ⊙ 황보령 [Shine In The Dark]
다른 속도로 살아가기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Infield Fly] 

3. 꽃을 문 토끼들의 초상 
우리는 어쩌면 고아들처럼 ⊙ 에피톤 프로젝트 [유실물보관소] 
적을 만들자, 사랑을 키우듯 ⊙ 검정치마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어른이 부르는 구식의 사랑 노래 ⊙ 양양 《오 사랑이여》 
하여,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 하헌진 《카드빚 블루스》 
당연하게여기던 것들의 멱살을 잡고 ⊙ 노라조 《카레》 
나는 너와 어째서 다른가 ⊙ 칵스 [Access Ok] 
한계를 인정할 것, 부끄럽고힘들어도 ⊙ 브라운 아이드 걸즈 《Abracadabra》 

4. 너와 나의 21세기 
시속 140 km와 어른 되기 ⊙ 메이트 [Play OST]
잔뜩 어깨를 움츠린 수컷의 고백 ⊙ 백현진 [반성의 시간] 
어둠 속에서, 매혹당한 채로 ⊙ 사비나 앤 드론즈 [Gayo]
귀여운 남자의 탄생 ⊙ 10cm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저기와 여기, 말의 거리 ⊙ f(x) [Nu 예삐오] 
그녀만의것이 아닌 그녀의 목소리 ⊙ 가을방학 [가을방학] 
비겁하지 않게 산다는 것 ⊙ 흐른 [흐른] 
에필로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를 악물고 
비평가의 語 - 내 거대하고사랑스런 물음표에 관하여 

* 앨범은 [], 노래는《》로표기하였습니다.





청춘의 사운드


프롤로그 - 청춘의 사운드, 혹은 당신에게 럭키를

내게 20대는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손에 쥔 건 거의 없었다. 걱정도 많았다. 가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자부심과 불안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남들과 달라지겠다고 청바지를 찢기도 하고, 철학책과 잡지에 나온 남의 취향을 내 것인양 포장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20대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자기 멋대로인 채로 남의 말도 듣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경험과 지혜를 갈구하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을 반복한다. 서른이 넘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른의 취향을, 어른의 삶을, 어른의 연애를, 어른의 조건을 막연하게 좇곤 한다.


이건 역설적으로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역할 모델도 없이,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이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아직도 어린애란 생각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 어른 되기의 욕망은 성장에 대한 강박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밑에는 21세기의 화두인 자기 계발 하는 주체와 잉여로서의 주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분열이 있다.


이 책에 쓸 글들을 묶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이런 강박과 분열이 21세기적인 징후라면 대중음악에서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흐릿하게나마 감지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바로 그러한 관점과 태도의 결과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우리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그만두기 전엔 어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상관인가. 어른 따위 안 되면 그만이다. 잉여라면 또 어떤가. 자학만 안 하면 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다. 그저 지금을 응시하면서 좋았던 혹은 나빴던 과거는 서랍 안에 고이 처박아두고, 향수 따위에 발목 잡히거나 강박 같은 것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나도 21세기의 위대한 음악 비평집을 쓰겠다는 강박을 버리겠다. (야호!)


무엇보다, 음악이란 그저 인생의 사소한 엔터테인먼트이고 삶에는 음악보다 좋은 게 100만 개쯤은 더 있다. 그러니 어쨌든 살아남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자.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또한 우리 모두에게 럭키를.



위태롭게, 아름답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된다 ⊙ 브로콜리 너마저 《앵콜요청금지》

사운드는 말랑하고, 노랫말은 서정적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감기는 멜로디도 있다. 전반적으로 톤 다운(tone down)된 전기 기타의 뭉툭한 소리가 얇고 연한 고막을 지나 마음의 어떤 지점을 자극한다. 좋은 팝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그리고 이러한 결실의 8할은, 담담하게 흐르는 여성 보컬리스트 계피의 공이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첫 히트곡 <앵콜요청금지>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막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 뻔한 노래를 듣고 듣고 또 들으면서, 가슴 깊은 곳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헤어졌고 그 모든 것이 후회가 되었다. 아니, 그것이 후회인지 아닌지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다만 이 노래는, 언젠가 당신의 영혼을 가득 채웠지만 결국 잊어버리게 된 바로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비유적인 가사를 지탱하고 있는 소박한 멜로디와 휑한 느낌의 로파이(lo-fi) 사운드는, 쓸쓸함과 애틋함이라는 감정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기교 없이 담담하게 흐르는 계피의 목소리는 두말할 것도 없다. 아마도 그 덕분에 연애라는 어떤 과정에서 있어서의 가장 진솔한 순간이, 이 노래에 자연스럽게 담길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연애라는 건, 아니 딱히 연애가 아니어도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이렇다. 만남과 헤어짐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저 좋을 대로 기억할 뿐이다.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미련과 추억의 양면을 오가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다 그를 다시 만났다. 아득하고 막연한 기억이 현실로 비집고 들어와 다 꺼진 불씨를 지핀다. 물론 그게 잘 될 리 없다.


그래서 앵콜은 반칙이다. 노래는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고, 우리는 머뭇거리길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룰이다. 추운 골목을 지나 따뜻한 방으로 돌아가 몸을 눕혀야 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된다.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참으로 지랄 맞은 시간을 지난다. 이 노래는 그 한때를 환기시킨다. 등신 같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찌질하고 한심하다. 그런데 따뜻하다. 이상하지만, 따뜻하다. 그렇게 납득된다. 21세기든 20세기든, 누구나 청춘의 일방통행로를 비틀거리며 주행해야 한다는 사실만 남는다.


이 정도의 위로를 누가 해줄 수 있었을까. 그해 겨울에는 그 누구도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애썼다, 고생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 더 열심히 뛰라고 했을 뿐이다. 그래야 대기업에 들어가고 대통령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때 <앵콜요청금지>는 차라리 위로였다. 우리는 온통 지랄 맞은 시간들을 비켜갈 수 없다. 그대로 관통해야 한다. 그러니 모두에게 럭키를. 21세기의 청춘송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젊은 날의 불확실성과 지속가능성 ⊙ 장기하 [싸구려 커피]

장기하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참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슬퍼졌는데, 그 감정의 기복이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요컨대 나는 <싸구려 커피>를 듣자마자 반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브로콜리 너마저가 고운 서정을 무기로 삼았다면, 장기하는 나른한 무기력함을 손에 쥐고 있었다. 최근의 <TV를 봤네>를 포함해 장기하의 노래들이 의미심장한 건, 흔히 열정과 에너지로 소환되는 청춘이라는 시간을 보란 듯이 맥빠지게 노래하기 때문이다.


사실, 청춘은 애당초 그런 시간이다. 오랜 경제 불황과 고용 불안이 청년들을 비정규직과 장기 실업 상태로 내몰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래 그렇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이것저것 도와주는 게 없으니 그럴 수밖에. 손에 쥔 것도 없고 경험도 일천하니 모든 게 서툴 수밖에.


연애도 공부도 사회생활도 통장 잔고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데 정신 못 차리면 휙, 나가떨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게 있기나 한지 아무것도 모른 채 졸업장 하나 달랑 들고 내동댕이쳐진다.


좁고 눅눅한 자취방의 일상을 노래하는 장기하의 목소리가 우습다가 섬뜩해지는 건 바로 그때다. <싸구려 커피>는 홍대 쪽 근사한 카페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가 아니라 발바닥에 쩍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장판을 딛고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자를 위한 노래였다.


새삼 상기하자면, 젊음은 열정도 뭣도 아니다. 그저 어떤 시간일 뿐이다. 그 시간은 때론 고통스럽지만 때론 환희에 차 있으며 또한 무기력하다. 결국 그걸 어떻게 지내느냐가 관건이다.


장기하는 다른 쪽을 선택했음에도 성공했다. 괴짜 인디 싱어송라이터였던 그는 이제 선망하는 롤 모델이 되었다. 따라서 그의 등장과 대중적 호응은 이 시대 자기 계발의 이데올로기를 소환한다. 불확실성과 지속가능성이 내내 위태롭게 이어지는 지금의 삶을 주목하게 만든다.


이때 중요한 건 중심이다. 장기하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음악가라면, 그것은 그가 찌질한 청춘 찬가를 불러서가 아니라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파도색 나날들

나를 뚫고 지나간 차가운 서정 ⊙ 미선이 [Drifting]

군대에서 돌아온 1998년 겨울, 학교 정문 앞의 논이 사라진 자리엔 잘 닦인 도로가 생겼다. 학교 건물이 늘었고, 등록금이 더 올랐다. 그리고 세기말이었다. 이 공업형 위성 도시에서 나는, 이젠 공장 아르바이트 말고 되도록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선이의 첫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Drifting]을 들었던 게 그 때다. 깨질 듯 여리고 소박한 목소리로 나직이 노래하는 이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두 달간 일한 뒤 월급 80만 원을 들고 지금은 없어진 종로3가 음반 도매점으로 달려가 몽땅 CD를 샀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선이가 좋았고, 특히 <시간>이 좋았다. 남들이 다 좋다던 <송시>보다도 좋았다. 물론 <송시>는 특별했다. 전과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노래, 요컨대 어떤 라벨이 붙은 자, 자기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되어 전과자로 불리게 된 사람에 대한 노래였다. 외부에 있는 자, 결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자에 대한 노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 노래가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부산에서 태어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인천에 올라와 거기서 10대를 보냈고, 안산으로 넘어가 20대를 통째로 보냈다. 한국의 중심이 서울이라는 건 영화 개봉일만 봐도 알 수 있던 때였다. 하지만 서울은 늘 가깝고도 멀었다. 거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고, 그럼에도 너무나 절실하게 그 안에 있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송시>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지만, <시간>이란 곡에 대해서는 갈수록 애정이 깊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노래는 기타 아르페지오가 투명하게 울리는 곡이다. 기타와 보컬에 더해진 리버브가 휑한 공간감을 선사하는데, 한편 추운 겨울의 쨍한 공기가 전해오는 것 같다.


가사는 한없이 감상적이다 "계절은 항상 이렇게 아픔 속에 오는가", "이젠 헤어졌으니 나를 이해해줄까, 사랑 없이 미움 없이" 같은 구절은 지금 들어도 마음 한쪽이 스르르 기운다. 이 감상의 정체가 무엇이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미선이 혹은 조윤석의 음악에서 무엇보다 특별한 건 서정이었다. 그래서 그가 루시드 폴로 음악 경력을 지속했을 때, <시간>보다 <송시>를 선택했다는 인상도 받았다. <국경의 밤> <고등어> <레미제라블> 같은 노래는 그의 연장이었으리라는 짐작도 한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남는 건, 적어도 내게는 <시간>이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세기말 겨울의 배경 음악. 20세기와 21세기가 시끌벅적하게 포개지던 순간으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들을 그리워하게 만들던 노래.


"나를 좋아했다면 나를 용서하겠지, 미련 없이 의미 없이." 어쩌면 나는 이 아름다운 노래를 지배하는 막연한 죄의식이야말로 21세기의 감수성이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꽃을 문 토끼들의 초상

하여,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 하헌진 《카드빚 블루스》

지금의 나는 먹고살 생각을 한시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일과는 무관한 일들이 많다(회사까지 그만뒀는데!). 밥벌이의 지겨움이 아니라 밥벌이에 필수불가결한 어떤 위악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루함이 아니라 고단함, 반어가 아니라 직설.


하헌진은 그야말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음악가다. 2011년에 [개]와 [지난여름], 단 두 장의 EP를 발표했지만 독보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슬라이드 기타(와 하모니카 정도)로 연주되는 곡은 길어야 3분 분량인데, 짧은 곡은 1분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연주는 복잡하고 화려하다.


싱커페이션(syncopation)과 도미넌트(dominant)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주법은 리듬을 가지고 논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델타 블루스의 주자들, 이를테면 로버트 존슨이나 엘모어 제임스 같은 이름이 떠오른다.


이때 두 가지 질문. 이 음악(가)의 뿌리는 도대체 어디인가. 또, 이 매혹적인 클래식 스타일이 21세기 한국에서 어떻게 동시대성을 획득하는가. 인터뷰를 참고하자면, 그는 소리바다와 유튜브를 통해 델타 블루스에 매료되었다. 테크놀로지가 그의 음악적 방향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첫 번째 EP인 [개]는 아이폰으로 녹음되었다. 그럼에도 하헌진 자신은 LP로만 음악을 듣는다고 고백한다.


그가 밝히는바, 중요한 것은 결국 오리지널리티다. 음악적 행방 역시 거기서 정해진다. 테크놀로지는 진짜를 습득하고 실현하는 수단에 불과한 셈이다.


가사는 더욱 중요하다 [지난여름]에 수록된 일곱 곡, [개]에 수록된 여섯 곡은 기껏해야 두세 문장인데 크게 고민, 고난, 기쁨 등의 테마로 구분된다. 여기에 바이브레이션이 거의 없는, 담백한 쌩(raw) 톤의 보컬이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카드빚 블루스>에서 처량하고 처연하게 연주되는 슬라이드 기타와 보컬은 "난생처음 빚을 졌네, 혼자는 어찌할 수 없네"라는 노랫말을 강조한다. 카드빚을 진 화자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지만 "친구의 전화는 수신이 끊겨 있었지"라고 문득 끝나는 구성이 블랙코미디 같은 여운을 남긴다. 카드빚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생의 고단함을 피력한다. 이 곡이야말로 하헌진의 블루스를 가장 적절히 설명할 것이다.


사실, 12마디 블루스의 탄생은 내러티브에 의한 형식적 변화였다. 무언가를 호소하거나 고발하고 그것을 거듭 강조하다가 후렴구에 결론을 짓는 구조 덕분에, 블루스는 내용이 중요해졌고 그것은 태도로 이어졌다. 요컨대 블루스의 진정성은 삶과 음악의 동일시 위에 형성된다. 그러므로 하헌진의 블루스 역시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곳에서 그의 오리지널리티가 발생한다. 한 세기 전의 스타일을 재현하는 데 따르는 한계를 가사와 태도로 돌파한다. 그래서 하헌진의 블루스는 한국에서 뿌리가 부재한, 에미 애비 없는 천애고아의 블루스다.


그럼에도 그의 등장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새삼 환기시킨다. 21세기의 극적인 풍경이다. 그는 고집 센 창작자다. 그의 음악에서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밀고 나가는 힘이 전해진다. 물론 그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겠지만, 적어도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단서는 제공할 것이다. 그건 중요한 차이다.



너와 나의 21세기

비겁하지 않게 산다는 것 ⊙ 흐른 [흐른]

흐른은 2006년에 데뷔 EP [몽유병]을 발표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흐른이란 이름을 쓰기 전에 그녀는 나의처절한앙뜨와넷이란 듀오로도 활동했다. 밀림닷컴과 미니홈피를 통해 자작곡을 공개하던 그녀가 흐른이란 이름으로 [몽유병]을 정식으로 발표했을 때, 그건 어떤 기점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의처절한앙뜨와넷과 흐른의 거리는 어쿠스틱을 타고 침잠하는 정서와 멜로디를 타고 상승하는 정서의 거리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방향과 밀도의 차이였다. 그런데 EP [몽유병]과 정규앨범 [흐른]의 차이는 명백하게 사운드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술적인 디테일이 아니라 그게 환기시키는 정서다. 한국어 노래임에도 발라드 가요가 아니라 외국 팝에 가깝다. 이를테면 모던하다.


그런데 내용적으로 이 앨범은 기존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내적 고백이나 자의식의 발현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사적인 경험을 진술하는 데 머물거나 그를 통해 일상의 안락함에 머물기보다는, 그 경험을 통한 성찰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관계, 소통, 일상에 대한 단상들은 잘 다듬은 비유로 언어화되고, 듣는 사람에게 끝없이 너는 어떠냐고 되묻는다.


"누가 내 빵을 뜯었나, 누가 내 눈을 먹었나, 누가 내 손을 가졌나, 누가 내 뺨을 때렸나"로 시작되는 <누가 내 빵을 뜯었나>가 겨냥하는 건 자기 몸(경험)에 대한 통제권의 상실과 그로 인한 정체성의 뒤틀림을 지목하고, "국제 뉴스 면에선 온통 만물이 죽어가, 나는 대한민국에서 케냐산 커피를 마셔" 같은 < Global Citizen >의 가사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자본의 지배 구조에서 개인의 취향이 어디까지 정치적이고 탈정치적일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특히 이 곡 < Global Citizen >은 동시대 청춘의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언급하면서도 그를 비난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자칫 머뭇거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던 얘기의 결말을 열어둠으로써, 흐른은 질문 자체의 중요성을 살려낸다.


동시대의 청춘들은 끊임없이 다른 고민과 선택을 요구받는다. 경험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계도할 지위를 얻지 못한다. 동시대의 청년들은 계속해서 머뭇거리고 또 방황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대답을 구하지 못한 채, 무언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갈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리라. 흐른의 노래는 그것조차 경험적으로 공유한다. 동시대의 수많은 음악가들 속에서 그녀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태도다.


에필로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를 악물고

언젠가 우리 모두 나이를 먹고, 나는 늙고 당신은 성숙해졌을 때, 부디 자신에게 머리가 띵할 정도로 이름을 외치던 오빠가 있었음을, 냄새나고 공기 나쁜 지하 클럽에서 어그러지는 기타 연주를 집중해서 듣던 밴드가 있었음을, 앨범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지방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거나 해외 배송도 마다하지 않던 때가 있었음을, 인터넷의 검색 사이트를 몇 시간이고 헤매던 때가 있었음을, 다시 한 번 부디, 깨끗하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이 책을 쓰면서, 그게 비록 잠시일지라도, 소중하게 읽어나갈 누군가가 있으리라 믿은 시간을 잊지 않겠다. 바로 그것이, 음악이 우리를 잠시나마 나란히 앉히고서 이야기하도록 만들어준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좋은 한때를 보냈다. 앞으로도 각자의 삶에서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대체로 불안과 좌절이 매복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다시 이를 악물고, 행복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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