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강상중(역자: 오근영)
ǻ
사계절
   
11000
2011�� 05��



■ 책 소개 
재일 한국인 최초의 도쿄대교수 강상중의 자전 에세이.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 땅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던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1세대인 어머니의 삶과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실제 저자의 어머니와 자신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담겨 있고, 소설적 기법을사용해 어머니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놓았다.

일제강점기에식민지 여성으로 태어나 교육도 받지 못하고 언어도 모르는 일본으로 건너와 태평양전쟁 전후 혼란기를 거치면서 살아남는 데 전력을 다한 어머니,가난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장의 역할을 짊어지고 평생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묵묵히 일만 해왔던 아버지. 그들의 삶의 조건은 당시 재일한국인들의 일반적 처지였다. 일본에서도 철저하게 음력을 지키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하면서, 차별과 생활고 속에서 여성으로 꿋꿋하게살아온 어머니의 인생은 ‘재일’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재일 2세로 차별 당하며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 어두운 사춘기 시절을 보낸살아온 형 마사오와 저자의 일화는 우리에게 ‘재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 저자 강상중
1950년 일본 규슈구마모토현에서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재일교포 1세이다. 일본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다녔던 그는 차별을 겪으면서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와세다대 정치 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숙부의 권유로 처음 한국을찾았고, 나는 해방되었다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이후 일본이름 "나가노 데쓰오"를 버리고 한국이름 "강상중"을 쓰기시작했고, 한국사회의 문제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다.

현재 도쿄대 정보학연구소 교수로 재직중이며 도쿄대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재일강상중』『내셔널리즘』『세계화의 원근법』『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두 개의 전후와 일본』『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고민하는 힘』,『청춘을읽는다』『반걸음만 앞서가라』등이 있다.

■역자 오근영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소설가들을 발굴해소개해왔다. 옮긴 책으로『소문』『유리정원』『여섯 번째 사요코』『굽이치는 강가에서』『이상한 나라의 토토』『소년H』『왜 지구촌 곳곳을돕는가』『반걸음만 앞서가라』『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2』『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명탐정 마사의 사건 일지』등 다수가있다.

■차례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봄 바다에 이별을 고하며 
구마모토에 도착하여 
옥음방송이 있던 날 
전후 혼란 속에서 
뜻밖의 만남
서로 몸을 기대며 
새로운 이별 
새 생명의 탄생 
데쓰오, 태어나다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어머니의탄식 
나가노 상점 
제사 
사춘기의 방황 
한 통의 편지 
추억은 멀리 
재회 
숙부의 비애
강상중을 되찾다 
가슴속 응어리 
세월은 흘러가고 
이와모토 아저씨 
아버지의 죽음 
다시 고향의 바다
두 개의 목소리 

에필로그





도道로써 예술세계를 품다

어머니


프롤로그

어머니. 어떤 세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 단어는 자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린 시절, 한 여자의 자식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비록 그 안에 치열한 애증을 품고 있더라도.


특히 세상의 아들들에게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어머니일 뿐이다. 아들에서 남자가 되고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자신이 아버지가 된 후에도 아들들은 어머니가 여자였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어머니라는 단어는 아들들의 마음에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어머니(母)가 단순한 모친에 머물지 않고 나의 어머니라면 아들들은 미치도록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 마음이 사무칠 것이다.


나 역시 이처럼 평범하고도 특별한 아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 우순남(禹順南)에게는 아들에 의한 윤색이나 기억의 미화만으로는 미처 다하지 못할 뭔가가 사무치게 깃들어 있었다. 모든 것을 날려버릴 정도로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던 어머니. 그리고 마치 젖먹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차따기 노래를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르던 어머니.


내 딸 리카의 기억에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망망한 벌판에 혼자 서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내는 억척스러운 여성으로서의 할머니의 모습은 없었다. 그 아이의 기억에는 감사와 원망을 한몸에 끌어안고 마치 자신을 타이르듯 혼잣말을 읊조리는 쓸쓸한 노파의 모습만이 있었다.


"나는 행복한 걸까. 그래. 행복하지. 그럼, 행복하고말고."그렇게 혼잣말을 되뇌는 어머니는 쓸쓸하면서도 흡족해 보였다. 그 어머니도 2005년 4월 3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잃었듯이 그 아들 역시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것을 잃었다. 그래도 운명으로서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끝없는 위안이 되어줄 것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와의 기억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살아갈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내가 글을 알았다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써서 남길 수 있었을 텐데."어머니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글을 아는 내게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위탁하는 유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물에 녹아 사라질 것 같은 글자들을 간신히 원래 모습으로 되살려 놓듯이, 아련한 기억의 단편들을 끌어모아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면……. 그러다 보면 거기서 나의 반생 역시 투영되어 보일 것이다. 어머니를 통해 나 역시 내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 계셨다면, 어머니는 분명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기쁜 얼굴로 어머니에 대한 나의 추모를 읽어 달라고 재촉하실 것이다. "어떻게, 뭐라고 쓴 거냐?"어머니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구마모토에 도착하여

구마모토로 길을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곳까지 가는 동안의 과정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철도는 목숨을 걸고 피난하는 승객으로 넘쳐 차량 밖에도 구름떼 같은 사람들 무리가 끝이 없었다. 열차는 비틀비틀 걷듯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뿐, 힘차게 매연을 내뿜으며 질주하는 기관차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도중에 간신히 허기만 면할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가는 곳마다 잠 잘 곳을 찾다가 들에서 밤을 보내고 열차를 갈아타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고야, 기후, 오사카, 고베, 오카야마,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하카타 그리고 구마모토.


구마모토 역의 플랫폼에 내려섰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초췌하기 이를 데 없었고, 마치 넋이 나간 듯 말 한 마디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폐허로 변한 시가지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겐군 방면을 향해 걸었다. 다행히 겐군 신사 본채도 주위의 건물도 공습을 면하고 있었다. 신사 사무실에 들러 대성의 집 주소를 묻고 드디어 두 사람은 그와 다시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운좋게 파괴를 면한 대성의 집은 작은 대문을 가진 단층가옥이었지만 주위의 폐허와는 묘한 대조를 이루며 짐짓 위용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가장은 부재중이었지만 대성의 아내, 나의 숙모가 아이를 어르면서 안에서 나왔다. 울며 보채는 아기 때문에 애를 먹으면서도 대성의 아내는 반갑게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끊임없이 미안한 얼굴을 했다. 어머니는 딸인 듯 보이는 아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반가운 듯한, 서글픈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밖에서 저벅저벅, 가죽장화를 신은 발소리가 들렸다. 현관 유리문 밖에서 훤칠한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전후 혼란 속에서

구마모토와 조선인 노동자와의 관계는 한국병합보다 이른, 19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첫 번째 루프선(root線, 철도나 도로에서 산간부에 터널과 교량을 건설하여 나선 모양으로 선로 혹은 도로를 부설함으로써 급경사를 줄여 루트를 형성하는 수법 혹은 그 선로) 공사가 진행되었던 히토요시와 요시마쓰 간의 철도부설 난공사에 수백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부역했다는 말이 나돌아, 기획원에 의한 노무동원 계획을 토대로 1939년 이후 조선인 노동자들은 미쓰이 계열의 미이케 탄광과 아소 광산, 미쓰이 미이케 염료, 그리고 겐군의 미쓰비시 중공 구마모토 항공기제작소 같은 곳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겐군비행장과 종업원의 주택건설, 겐군천 개수공사, 구마모토 시전의 스이젠지-겐군초 간의 연장공사 등 조선인 노동자의 수는 그것만으로도 2000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었다.


일본의 패전을 선포하던 날, 조국이 해방되던 날, 어디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숨어 있었는지 만세!를 외친 조선인들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이윽고 공공연하게 잇따라 모여들어 환희에 찬 목소리로 해방을 맞이했다.


이윽고 조국으로의 귀환을 하루가 천년인 듯 기다려온 사람들이 하카타와 시모노세키를 향해 구마모토 역으로 쇄도하여 역 주변과 그 광장은 술렁거리는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 환희의 소용돌이에 빠져 나의 조부모들과의 재회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대성과 그 가족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전쟁은 메마른 대지에 갑자기 쏟아진 단비와도 같았다.


바닥으로 떨어진 불황에 허덕이던 경기는 갑자기 호흡을 되찾았고 그것은 서민의 생활까지 윤택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 집도 그 덕을 보게 되었다. 현관에는 구리 전선과 알루미늄, 놋쇠 등의 폐품이 빼곡하게 쌓이게 되었다. 어머니가 부업으로 고물상 같은 일을 시작한 것이다.


"여보, 정말 나쁜 사람들이 있어요. 이것 좀 봐요. 이렇게 알루미늄을 뭉쳐놓은 속에다가 돌덩이를 넣어 사람을 속였다니까요. 무게를 잴 때 왜 이렇게 무거운가 싶었는데 대저울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에요. 어쩔 수 없이 눈금대로 사들였다니까요. 그런데 궁금해서 안을 열어보니까 이렇게 돌덩이들이 나오잖아요.”


어머니는 이때의 억울함을 평생 잊지 않았다. 돌을 채워넣은 폐품을 사들였을 뿐 아니라 거기다가 계산까지 속아 한 자리 수가 많은 금액을 줘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어깨너머로 주산을 배우고, 폐품 종류도 자신만이 아는 기호로 바꿔서 표기해놓아 두 번 다시 얕잡아 보이는 일이 없도록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억울한 일을 몇 번은 더 당했다.


"글자도 모르니 정말이지 바보나 진배없어. 글을 모른다는 게 얼마나 불쌍한지. 나처럼 글자를 모르면 매일 속기만 할 테니까 말이다.”


사람을 잘 믿는 순박한 새색시 같았던 어머니가 때로 사람의 뒤를 캐보는 듯한 의심에 찬 표정으로 변모하는 것도 갈기갈기 찢긴 자존심을 더 이상 다치고 싶지 않은 어머니 나름대로의 필사적인 저항이었다. 그래도 어머니의 부업 덕에 우리 집 생활은 날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었다.


제사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시모노세키 아주머니가 찾아올 때마다 마사오와 나는 지금부터 시작될 미친 듯한 어른들의 특별행사에 몸이 오그라들 것만 같았다.


치마저고리에 고무신을 신고 게걸음으로 의젓하게 걷는 시모노세키 아주머니의 모습은 주위의 공기를 단번에 바꿔놓을 정도로 눈에 확 띄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오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징과 북이 쿵쿵 온 집 안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하얀 치마저고리로 몸을 감싸고 격렬하게 울부짖으면서 온 사방을 배회하는 것이었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아이고오……."어머니의 곡소리는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처럼 긴 박자로 끝없이 계속되었고 목을 떨면서 작렬하는 소시로 변해갔다. "하루오야! 하루오야! 하루오! 밥 먹어라.”


시모노세키에서 온 아주머니는 규슈 근방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무당이었다. 어려서 죽은 하루오의 기일에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시모노세키의 아주머니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망자를 부르는 무당의 구슬픈 노랫소리와 함께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한 오구굿이 시작되고 무당의 수차례에 걸친 푸념소리(혼잣말)에 어머니는 몇 번이고 곡소리로 응답하여 하루오와 둘만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어머니와 무당들의 세계, 그것은 재일교포들 사이에서 특히 굴종을 강요당한 여자들에게만 허용된 토속적인 성역이었다. 그 세계 안에서 어머니와 무당들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영혼의 교류를 도모하고 자신들의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려 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벗어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체념과 비애가 있었다.


액막이 의식이 끝난 후의 어머니는 모든 사악함을 물리친 것처럼 개운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우울함이 사라지고, 영세한 가업을 억척스럽게 해내는 오기로, 때로는 계산에 밝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지만 악귀 같은 형상으로 미친 듯이 춤을 추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이웃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남의 험담 좋아하는 어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순식간에 아이들에게도 전해져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형 마사오를 어둡게 했다. 얌전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어머니에 대한 소문에 몇 배나 더 민감했다. 우리 집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주위로부터 도드라진 특별한 존재라는 자각이 마사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다. 나 역시 이제 겨우 친해진 친구가 무슨 말 끝에 어머니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는 게 싫었다. 그리고 조센징이라는 말의 울림이 그 무렵 내게는 추잡한 은어처럼 들려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마사오와 나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억척스럽고 의지가 되는 동시에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쉴 줄을 모르는 믿음직한 존재였다. 그러나 어린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가슴에 품고 있는 번민이나 갈등이 얼마나 치열하고 절실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들을 에워싼 세상의 편견에 가득 찬 시선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머니에게는 황천과 같은 다른 세계의 의식(儀式)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상을 공경하는 제사가 어머니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일은 이 세상의 행복과 불행, 가족의 안녕과 재난에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의무였다. 어머니는 그 일에 무서울 정도로 집착했다.


두 개의 목소리

형수 순자가 보낸 소포가 우리 집에 배달된 것은 어머니의 1주기 제사를 마치고 난 얼마 후였다. 생전에 어머니가 나한테 목소리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형수에게 부탁하여 녹음을 해둔 카세트테이프가 있다는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형수가 어머니의 1주기를 맞아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우연히 발견한 모양이었다.


테이프를 돌리자 잡음인지 숨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한동안 방 안에 울려퍼졌다. 얼른 음량을 줄이자 이윽고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되었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되었다.


-데쓰오. 날씨가 춥겠구나, 독일의 겨울은……. 네가 독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이 어머닌 조금 놀랐다. 하지만 옛날부터 귀한 자식에게는 여행을 시키라고 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구나. 하지만 이 어미는 너한테 편지 한 장을 쓸 수가 없다. 정말이지 글을 쓸 줄 모르고 배운 것도 없다는 게 서글프다. 게다가 너도 나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도 내가 읽지를 못하니 말이다.


이 어미는 말이다, 옛날부터 너랑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좀처럼 없었지. 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도쿄로 가버렸지 않느냐.


너는 항상 먼 앞날의 일만 내다보는 것 같더라. 하지만 바로 코앞도 살펴야 한다. 그 두 가지를 잘하면 범에 날개를 단 거나 매한가지다……. 이런 때는 범에 날개를 달았다고 하지.


그리고 마리코 말이다만, 너를 위해 정말 여러 가지로 잘해 주고 있는 것 같더구나. 1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변함없이 너를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좋은 여자다, 마리코는……. 난 사실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버지나 나나, 우리 시대 사람들은 아직 응어리가 남아 있지.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앞으로는 없어질 거라 생각한다.


차분한, 그러나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너무 생생하여 이것이 20여 년 전에 녹음된 거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20년 후의 어머니 메시지가 담긴 또 하나의 테이프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카세트에 넣었다.


- 데쓰오, 이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을 떠나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이와모토 아저씨도, 너의 숙부도, 그리고 아버지까지……. 쓸쓸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아직 의식이 있을 때 나한테 고맙다고, 오래오래 건강하라고 말했다. 그런 말이 나는 기뻐서……. 나는 아버지가 없어도, 아버지한테 갈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새삼 생각했다.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지. 그래서 너한테 한 마디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데쓰오, 이 어미는 참 행복했다. 고생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더러 미쳤다고 했을 때도 서글펐다. 그래도 내가 조상을 소중하게 받들지 않으면 누가 할까 싶어 여러 가지 제사도 지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앞으로 없어지는 시대가 되겠지. 우리 세대는 예로부터의 법도를 지켜나가면서 그 힘으로 어떻게든 일본에서도 살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일본도 조선도 없는 시대가 오겠지.


데쓰오, 너는 아버지나 내가 모르는 세상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자세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글을 모르는 나한테는 즐거웠다. 데쓰오, 고맙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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