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ǻ
푸른숲
   
13000
2009�� 06��



■ 책 소개
사람들은 누구나 "나만의공간"을 꿈꾼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옷을 사고, 자동차를 사고, 집을 사는 데에는 전력 질주하면서도 나만의 공간을 갖는 일에는 언제나소극적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나만의 공간"은 영원히 도달하기 불가능한 로망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방송 진행과 강의, 원고 집필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는김갑수의 작업실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저자가 「경향신문」과 「신동아」에 연재했던 글로, 숨 가쁜 현대인의 로망을 일상으로 포섭한 한 남자의일상, 오로지 작업실에서만 벌어지는 일상을 보여준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의 추구에 있다는 ‘행복 담론’에 휩쓸려 ‘공인된’재미와 의미와 가치에 매진하지만, 무언가 공허함을 느끼는 이들. 너무나 ‘멀쩡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의 다른 가능성을 꿈꾸라고, 조금씩은미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작업실이다. 작업실이 어디에 있든 간에, 그곳에서 무슨 작업을 벌이든 간에 중요하지 않다.결재서류나 상사의 질책, 잔소리하는 아내, 소파에 벌렁 누워 있는 남편 등등 나를 둘러싼 외부가 모두 배제된 오로지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공간에서, 사사롭고 비본질적인 행위에 몰두하며 되찾게 되는 어린 시절 놀이의 순수한 즐거움과 ‘나’라는 존재와의 맞대면은 현대인들에게 마지막이자유일한 해방구라고 말한다.


■ 저자 김갑수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동대학원을 수료했다. 「실천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 『세월의 거지』를 출간한 바 있다. 주로 방송 진행과 강의,원고 집필로 살아가는 프리랜서로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SBS <책하고 놀자>, KBS <문화읽기>,CBS<아름다운 당신에게&& 등의 진행자와 KBS , <열린 토론>, MBC<문화매거진21>의 고정패널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거쳤다. 현재는 TBS DMB <아름다운 오늘&&, K-TV <인문학열전>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의 <시가 있는 쉼터> 강의를 3년째 진행 중이며 각급 아카데미와 대학특강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회평론집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서평집 『나의 레종 데트르』, 음악칼럼집 『텔레만을 듣는새벽에』『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가 있고 그 밖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대한민국 출판문화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 사진 김선규
1987년한겨레신문사에서 언론사 생활을 시작했다. "탈영병의 최후", "가평 UFO 포착", "목마른 참새" 등의 수많은 특종으로 보도사진전 금상,삼성언론인상, 언론인 홈페이지 대상 등을 수상했고, 2005년 12월에는 환경재단이 주관한 "세상을 밝게 하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현재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김선규의 우리고향산책』『까만 산의 꿈』『살아 있음이행복해지는 희망 편지』 등이 있다. 
* ufokim.com


■ 그림 김상민
홍익대학교에서 광고디자인을 공부했다. 2002년 한국 편집 기자 협회에서 한국편집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경향 신문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일하고 있다. 
* yellowbag.pe.kr


■ 차례
프롤로그


지구 위의 작업실, 줄라이홀
"THE"와"나"의 작업실 이야기
작업실이 지하로 피신해 들어가야 할 이유, 마흔아홉 가지
"줄리아홀"을 짓다
3만 장, 늙어도 늙지 않는징글징글한 질병
유령과 키치, 작업실의 동거인들


작업실의 커피, 일상의 "리추얼"
커피,자신에 대한 예의
작업실에서의 일과가 곧 리추얼이다
C8H1ON402 중독증, 우아하게 자기를 파괴하는 권리
쓸쓸한 날에도그렇지 않은 날에도 나는 커피를 볶는다
낭만아, 우리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자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그립다


작업실에 가득한 소리, 아날로그의공감
호모 히스테리쿠스들은 모두 외롭다
차이코프스키, 나를 스치는 몽상
아날로그로 가는 길
소소하고,사사롭고, 비본질적인


오디오,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오디오,거기에 생의 "저쪽" 이 있다
음악이 다가오지 않을 때 오디오 놀음에 빠져보라
내 이름은 "톤팔이" 실은 나 불안하다
스피커,오래된 것들의 오래된 이야기들


에필로그 -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싶다




지구 위의 작업실

프롤로그
첫 번째 계단을 내려와 철창문의 자물쇠를 열고, 다시 또 계단을 내려와 두 번째 문을 열고 마침내 세 번째 문을 열면 캄캄한 어둠의 난바다가 펼쳐진다. 불을 켜려는 손이 멈칫해지고는 한다. 여기는 대체 어떤 인생의 거주지인가. 아주 잠깐, 계속되던 생의 시간이 끊어진 순간과 마주치곤 한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지하 작업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가 뚜벅뚜벅 걸어나와 악수를 청한다. 나는 ‘나’의 어깨를 툭 치며 “헤이” 인사를 건넨다. 존재와 존재 간의 임무 교대 시간이다.


도대체 왜 사는지, 무얼 하며 살아야 하는지, 이런 사춘기적 질문들과 마주하느라 작업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행동은 커피 볶아 마시고, 오디오 건사하고, LP 닦아 트는 일인데 그걸로도 한 생애가 흘러간다. 이 책에 담긴 작업실의 일과는 일테면 어쩔 수 없이 현실 세계에 속해 있으나 현실을 멀리멀리 떠나가고 싶은 사람의 생활 보고서라고나 할까.


지금 나는 제법 널찍한 건물 지하실 전체를 세내어 작업실로 쓴다. 지상의 소음이 전혀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전등만 끄면 완벽한 캄캄 세상이다. 빛과 소리가 사라진 세상이 참세상이야, 라고 말하려다 참는다. 어떤 과잉이 느껴지는 탓이다. 하지만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명명백백한 이 세상에 이것이거나 저것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이 가능하다는 꿈을 말하고 싶다.


문화 취향이 한량의 여유로 취급되던 시절은 지났다. 옹색하고 큼큼한 고린내 나던 지난 세월이 살가운 그리움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이제 나는 너른 작업실 별유천지에서의 빛깔과 향기와 음향을 만끽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 존재의 다른 생애, 다른 국면에 해당한다. 숨 막히는 일상에 쩔쩔매는 세상의 동류들이여, 페이지를 넘겨 이곳 줄라이홀에 잠시 들르시게나.


지구 위의 작업실, 줄라이홀
THE와 나의 작업실 이야기

세상의 회사원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아니 나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쪼글쪼글하고 누글누글하고 나른한 게 회사원 생활이었다. 일과는 꽤나 바빴는데도 존재는 나른했다. 익명인 탓이기도 했다. 조그만 회사라 김갑수 씨는 금방 지나가고 과장이어서 김 과장으로 불렸고 차장이어서 김 차장으로 불렸다. 부장쯤이 되고 나니까 이름은 완전히 실종됐다. 이제는 꽤나 거대 회사가 돼버린 웅진출판주식회사. 지금 그곳의 현역들은 학생 운동권 출신만으로 구성되었다던 80년대 편집부를 무슨 출판운동팀쯤으로 환상의 나래를 편다고 들었는데 아서라 회사는 회사, 업무는 업무였다. 그래서 나른했고 존재는 막막 절벽이었다.


몇 가지 홀로 고집은 있었다. 한 번도 저축을 하지 않았다. 돈 모을 여유도 없었지만 어쨌든 매달 완전히 다 썼다. 회사 생활 초창기, 의무적으로 재형저축을 들어야 했던 날 길을 걸으며 눈물을 쏟았다. 그 당시 혐오의 의미로 자주 쓰던 표현인 ‘이스태블리시먼트(기성인)가 결국 되나 보다 하고(그러고 보니 나름 순수의 시대였다). 중도에 깰 수 있다는 걸 알고 그 적금을 곧장 깨서 턴테이블을 바꿨다. 또 하나 중요한 홀로 고집이 있었다. 몇몇 친한 동료가 있기는 했지만 퇴근 후 회사 근처 호프집이나 대폿집에 여럿이 모여 왁자지껄 술 마시고 떠드는 자리를 극력 피했다. 나중에 사진작가 윤광준이 입사하여 둘이 단짝으로 세운대학(세운상가 오디오숍들을 이렇게 불렀다)깨나 어울려 다녔지만 어쨌든 저녁이면 종로통 회사 근처에서 멀리멀리 달아나고 봤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다시 출근을 했다. 아침에 회사로 한 번 출근하고 저녁에 또 한 번 출근하는 이중생활이었다.


지금 나는 현재의 작업실 줄라이홀에서 일주일의 절반쯤을 산다. 대체로 월화수목쯤은 집에서, 금토일 또는 목금토일은 작업실 간이침대에서 꼬부리고 잔다.


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었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로망의 사명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경탄을 위해 얼마나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하는지, 그 일상을 말해야 한다. 실은 나 자신이 언제나 내 작업실의 방문객이다. 문을 열고 발을 디디는 순간 탄성과 탄식, 감동과 회한, 그런 감흥이 일지 않으면 그것은 작업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업실은 추억의 공간이다. 당장의 한순간 한순간이 추억의 시간이다. 작업실에서 살아간다는 건 추억을 생산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작업실의 커피, 일상의 리추얼
커피, 자신에 대한 예의

‘작업실로 10억 버는 비법’을 연구하기는커녕 코쿤 같은 지하 공간에 콕 틀어박혀 있노라면 뭘 제대로 챙겨 먹기조차 힘들다. 아니 귀찮다. 아니 귀찮다. 팔도비빔면, 뚜레주르의 버터 식빵, 햇반, 그리고 가끔씩 인근의 풍년 기사식당 김치찌개 따위가 나의 주식이다. 하지만 라면 먹고 이 쑤시고 그 다음 차례로 차만은 제대로 마시고 싶다. 그 오묘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이자 배려라고 해두자. 하긴 무슨 작업이건 작업하는 와중에 가장 가까이 하게 되는 것이 차 아닌가. 차 중에 나는 커피를 각별히 좋아한다.


예전엔 그냥 멋모르고 원두를 사다 먹었다. 진공 캔에 담겨 수입되는 이탈리아산 몰리나리로 시작해서 일리, 포티올리, 국산 커피명가 등이었다. 그런데 경험해보니 문제는 품질이 아니라 상태였다. 볶은 지 한 달 넘고 두 달 지난 원두는 제아무리 진공 포장에 질소 충전에 별짓을 다해도 이미 김빠진 맥주가 돼버린다. 볶은 지 보름 이내의 싱싱한 원두,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커피 긱(Geek)의 첫걸음이다. 실제로 몇 달 지난 최고급 일리 원두와 초보 솜씨로 갓 볶은 원두의 맛을 비교해보면 바로 답을 알 수 있다. 좋은 차는 곧 볶은 날짜에 좌우된다. 쌀을 사다가 그때그때 밥을 지어 먹지 식당 공기밥을 사서 쟁여놓고 먹지는 않는다. 수고로운 로스팅을 직접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 쓸쓸한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나는 커피를 볶는다
작업실 한가운데 넓은 평상을 펴놓고 흰색 전지를 깐다. 그 위에 생두를 좌르르 쌓아놓고 한옆에는 오늘의 음반을 한 무더기 놓고 일에 들어간다. 늘 느끼지만 나는 머리 쓸 필요 없는 단순 노동에 어울리게 태어난 사람인 것 같다.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이 아주 조금씩 생두 더미를 밀쳐내며 못난이 콩을 골라낸다. 인도네시아산 만델링 같이 생산지에서부터 험하게 관리되어 오는 콩은 그야말로 버릴 것과 건지는 것이 반반인 정도다.


무아지경. 핸드픽 무아지경도 경지라면 경지다. 틀어놓은 LP에서 무슨 음악이 나오는지 귀에 닿지 않는다. 핸드폰이 울려도 스팸으로 간주하고 받지 않는다. 식사는 쉽사리 건너뛰어버린다. 골라야 할 분량이 점점 줄어들어 마무리로 치달아갈 때의 성취감이라니! 원래 등이 조금 굽은 편인데 장시간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다 보면 몸이 마치 쥐며느리처럼 동그랗게 말리는 걸 느낀다. 쥐며느리거나 바퀴벌레거나 혹은 빠삐용인들 어쩌겠는가. 러시아와 그루지아가 전쟁을 벌여도 나는 모른다. 내일 우리나라에 IMF가 찾아와도 나는 오늘 한 줌의 콩을 고르겠다, 라고 말하자니 우, 가슴팍을 뻐근하게 후려치는 양심이…….


콩을 고르거나 커피를 볶거나 드리핑해 내리거나, LP를 닦거나 말리거나 라벨링을 하거나 직접 틀거나 모든 것이 혼자서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다. 정신의 허기로 하루하루가 고달팠던 이십대 시절 백양사 청류암의 상좌승 청호가 도량 뒤켠 하지감자밭의 김을 매면서 내게 가르쳐줬던 비의다. 혼자서 하염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일. 사람 없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서 사람처럼 사는 일.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며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원두를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한다. 좀 웃기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웃기지 않는다.

지금 줄라이홀은 혼자를 견디는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다. 아, 집에 들른 지 너무 오래됐다.


작업실에 가득한 소리, 아날로그의 공감
아날로그로 가는 길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것에 내 윗세대들은 두려움과 생존의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최신 유행가를 배우고 최첨단 개그를 안쓰럽게 구사했다. 과거에 존중받던 가치를 얼른 내다버렸다. 자, 그런데 문제는 이제 다들 너무 오래 살게 됐다는 사실이다. 오십대 육십대가 더 이상 인생 말년이 아니다. 노장의 무게를 잡으려니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고 젊은 세대를 따라잡으려니 볼썽사나운 데다 언제나 뒤처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세대 간에 딴살림을 차리고 각자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딴살림이어도 생산과 소비 인구가 부족하지 않을 만큼 오래들 산다. 지구상에 아날로그의 기억이 영영 사라지는 때가 오기 전까지 재미의 신문명 이전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은 사무치게 진지하고 독자적인 자기 세계를 추구하고 탈속한 품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재미 여부와는 장르가 다른 항목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다 같이 각자의 지하실을 파고 들어가 끝없이 출시되는 신규 버전에 눈 돌리지 말고 무시간적으로 몇십 년 살다 가자는 것이다. 아울러 이 같은 무시간의 영역을 관통하는 공통 체험이자 공감대가 있다. 아날로그의 사람들을 묶어주는 공통항. 그것은 바로 인생이란 고통이며 존재는 무겁다는 인식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자아를 무거워하면서 살았다. 마치 클래식 음악의 구조와 선율처럼.


아침에도 외롭고 점심에도 외롭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외로웠던 체험이 누군들 없었을까. 그 같은 외로움의 고통을 극한적으로 줄여놓은 것이 요즘 세상, 디지털 신문명이다.


‘왜 클래식인가’에 관해 사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다. 애시당초 음악학의 전문 용어는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고 진짜 관심사도 아니다. 삶은 괴롭고 존재는 늘 고달프다는 감회. 생각해보니 그 같은 고전적인 감흥을 잃어가는 것에서 클래식 음악을 찾는 동기가 주어진 게 아닌가 싶다. 괴롭지 않아서 괴롭다는 심정을 설명할 길이 있을까. 괴롭지 않다는 것은 괴로움에서 놓여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종의 마비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자기 정체감이 멸실된 것이다. 게임에 중독되어 먹지도 않고 버티다가 굶어 죽는 것이 살 만한 인생길을 찾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마비 상태를 각성시켜주는 것이 내게는 외로움이다. 얼마나 외로운지 아침에도 외롭고 점심에도 외롭고 자다가도……, 삶이란 고정된 목표를 갖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도 없고……, 그래서 사르트르 선사께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고 일깨운 바 있지만 한세상 살아보니 외로움은 본질에 선행한다가 내 식의 깨달음이다. 그 점이 생의 고통이고 존재의 무게다. 몇십 년 동안 온갖 종류의 음악을 들어왔지만 클래식 음악처럼 이중 삼중의 외로움을 일깨워주는 음악은 다시없다. 하다못해 이해가 쉽지 않다는 사실마저 그렇다.


피아노로 연주한 바흐의 ‘인벤션’을 반복해서 듣는 중. 클라우스 헬비그라는 독일계 피아니스트인데 감흥의 추임새를 싣지 않은 무덤덤하고 교과서적인 연주다. 그것이 좋다.


오디오,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내 이름은 톤팔이 실은 나 불안하다

내 이름은 ‘톤팔이’. 명작의 향연 와중에 친구 윤광준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 ‘톤팔이’다. 보통은 한 개의 턴 테이블을 사용하고 거기에 하나 혹은 두 개의 톤암을 부착한다. 그런데 이 뭔 ‘쥐랄?’ 어쩌다 보니 넉 대의 턴테이블에 여덟 개의 톤암 사용자가 돼버린 것이다. 아홉 켤레의 구두가 아니라 톤암 여덟 개의 사나이, 톤팔이란다.


사방에서 펀드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펀드펀드펀드……. 내게는 ‘펀드펀드’ 하는 소리가 뻐꾹뻐꾹 숲속의 새소리처럼 들려왔다. ‘주식주식주식’ 하는 소리도 만발했는데 내게는 ‘이 자식 저 자식 자식 자식’ 하고 욕하는 소리로 들려왔다. 부동산 ‘땅땅땅’ 하는 소리는 머리를 땅하게 아니, 띵하게 만들곤 했다. 어쨌든 새소리 욕소리 띵소리려니 하면서 흘려듣고 살았다. 그저 나는 오디오만 했다. 언제부터인가 경제가 나빠져서 새소리 욕소리의 가치가 반 토막 났다. 휴지조각이 됐다 하는 소리가 마구 들린다. 아하, 톤팔이 인생이 훨 나은 거로구나.


절대 누구 약 올리려는 건 아니지만, 음반 사들이고 오디오만 했더니 반 토막 사태에 시달릴 일이 전혀 없는 게 아닌가. 그 정도가 아니다. 나는 자동차는커녕 운전면허도 따본 적이 없다. 골프장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고 비싼 음식점 호화로운 술집 출입을 해본 일도 없고 비싼 옷을 입어본 일도 없다. 도대체 음악 놀음 말고는 해본 일도 해보려 시도한 일도 없다. 이것이 목하 톤팔이가 될 수 있었던 내력이다. 재주 치고는 비상한 재주 아니겠는가.


털어놓자면 나이가 끔찍하게 많아지면서 겁이 더럭 나기는 한다. 인생에는 나중이라는 것도 있는데 더 늙어서 마누라 등쳐먹고 살 수도 없고, 그걸 봐줄 마나님도 아니고. 늙고 힘 빠졌을 때 가진 돈 없으면 비참해진다고들 한다. 그래서 한동안 저축이랍시고 통장에 잔고를 남겨놓는 노력을 해왔는데 톤팔이가 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완전 거덜을 내버린 것이다.


실은 나 불안하다. 깊은 한밤중에 빙글빙글 고고하게 돌아가는 넉 대의 턴테이블들을 쳐다보노라면 내 불안도 따라서 빙글빙글 어지럼증을 일으키며 돈다. 이렇게 무대책으로 살아도 되는가. 자책감이 엄습하며 등골이 으스스해진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본다. 이 불안은 현재 닥친 상황 때문이기보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견이 안겨주는 불안이다. 일종의 자기창조적 불안이다. 그게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불안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반델로브의 임상 기록 『불안, 그 두 얼굴의 심리학』을 뒤적거려 보니 지구촌 불안 동지들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대책 없이 오디오를 하지 않았다면 불안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반대가 아닌가 싶다. 불안하기 때문에 미친 듯이 오디오를 한다고 말이다. 그럼 오디오가 먼저인가 불안이 먼저인가. 그게 그러니까 글쎄, 닭과 달걀 같은 관계더라고. 요컨대 지금 올바르게 살고 있지 못해서 나중에 나빠질 거라고 예견하는 것이 내 불안감의 전말인데 어쩔거나. 그냥 불안을 살다, 이렇게 살아가면 안 될까. 꼭 올바르게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초등학교 시절은 이미 지났는데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훈화 말씀을 거역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죽도록 오디오 하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오디오 하다가 죽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래, 불안을 살아가자! 번역하자면 뻔뻔스럽게 오디오를 하자!


에필로그 -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 싶다
나는 작업실에서만 벌어지는 대책 없고 헤아릴 길 없는 해프닝들을 일종의 할로윈데이인 양 여긴다.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조금씩 미쳤지만 멀쩡했고, 멀쩡하지만 멀쩡함의 생채기로 약간씩은 미쳤다. 차라리 유쾌하지 않은가. 이렇게 꼬물꼬물 살아서 중학생 시절의 두려움을 다시 두려워하는 마음이. 결국 아무것도 파멸하지 않았으면서 파멸의 예감으로 진저리치던 시간들이. 어디선가 읽었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그렇다. 여기 이 지하실에서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하루키는 남들에게 굳이 마라톤을 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마라톤은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만 귀속되는 행위다. 그렇지만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 싶다. 미쳐달라고. 텅 빈 우물 속에서 제발 조금씩은 미쳐버려달라고. 다만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