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샹보 거리

   
가브리엘 루아(역자: 이세진)
ǻ
이상북스
   
12000
2009�� 10��



■ 책 소개
『내 생애의 아이들』로 널리알려진 캐나다의 대표 작가, 가브리엘 루아의 소설로, 캐나다 매니토바 주 위니펙 근교의 작은 거리에서 지낸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내 쓴18편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저자인 가브리엘 루아가 그랬듯이, 캐나다 매니토바 주 위니펙 근교의 작은 거리에서 식민청 관리인 아버지와감성적이고 자유를 갈구하는 어머니의 아홉 남매 중 막내딸로 자란 소설 속 화자 크리스틴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기억을 풀어놓는다. 크리스틴은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생 보니파스의 작은 거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조금씩 현실을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과,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제법 복잡다단한가족사가 펼쳐지는 책으로,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잔잔한 유머가 담겨 있다. 캐나다 총독상,뒤베르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 서평
스케치, 개인적 단상,레미니상스(Reminiscence)의 책. 하나하나 아름다운 조각처럼 구성된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조망 안에서 아귀가 맞아떨어지며 통찰력, 자각,계시의 작품이 된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름답게 그려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회상은 잊을 수 없는 한 쌍이다. 물론 그 밖의 인물들도다정하지만 정확한 투명성으로 그려진다. - 「뉴욕타임즈」


작가가 대단한 역량으로 써낸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책이다. 이야기들은 분위기와의도, 분량 또한 제각각이지만 섬세한 감성으로 따지자면 우열이 없다. 어떤 이야기들은 아주 웃기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미묘한유머감각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전반적으로는 슬픔, 잃어버린 꿈, 착각과 현실 사이의 조율…… 이라는 정서를 깔고 있다. - 「커커스리뷰」


■ 저자 가브리엘 루아
매니토바 주 생보니파스에서 태어나 1937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뒤 유럽에 두 차례 체류한 다음 퀘벡에 정착했다. 열두 권의 소설과 다수의 에세이, 어린이책을 포함하는 그의 전작은 20세기 캐나다 문학의 가장 중요한 수확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 『데샹보 거리』는 자전적이지만 보편적 호소력을 발휘하는 책으로,캐나다 매니토바 주 위니펙 근교에서 자라는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다. 훗날 작가의 다른 작품 『알타몽의 길』에서 다시 한 번 화자로 등장하게될 이 소녀 크리스틴은 때로는 자연스럽고 때로는 경악할 만한 아름다움, 가족사, 미묘한 사회생활의 문제들, 성(性), 자아에 차츰 눈떠 나간다.자유를 향한 엄마의 낭만적인 갈망, 식민청 관리로서 경력을 쌓아온 아빠의 인생, 아름다운 언니의 때 이른 죽음 등 저마다 참으로 인간적인 상황과처지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크리스틴이 장차 작가로서 품게 될 세계관에 일조한다. 가브리엘 루아는 이 책에 수록된 18편의 이야기들을통해 매니토바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작가가 되기까지의 수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생 보니파스의 작은거리, 아주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는 그곳의 현실 친숙하지만 아무리 끌어다 써도 마르지 않는 샘 같은 현실 을 조금씩 깨닫는다. 하지만무엇보다도 크리스틴은 자신의 꿈을 발견하게 된다. 그를 남들과 가깝게 이어주는 동시에 남들과 괴리되게 만드는 꿈, 사람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게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을 영원히 떠나게 하는 꿈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 『데샹보 거리』는 캐나다 총독상과 뒤베르네상을 모두 받았다.


■ 역자 이세진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공부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문번역가로 일하면서 『회색 영혼』『돌아온 꼬마 니콜라』『유혹의 심리학』 등 다수의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두 흑인 |프티트 미제르 |분홍 모자 | 결혼 방해작전 | 노란 리본 자락 | 백일해 |타이타닉 호 |집 나온 여자들 | 던리 우물 | 알리시아 | 테레지나 베이외 숙모| 이탈리아 여자 | 빌헬름 | 장신구 |연못의 목소리 | 폭풍우 | 낮과 밤 | 밥벌이란 | 부록 - 가브리엘 루아 연표 | 역자 후기




데샹보 거리

두 흑인
아버지는 우리 집을 지으면서 이 작은 데샹보 거리의 한 채뿐인 다른 집을 모델로 삼았다. 엄마는 이 거리가 조용하고 공기도 맑아서 애들 키우기 좋다고 만족스러워했지만 이웃집을 굴욕적으로 빼다 박은 집을 짓는 데에는 반대했다. 더구나 그 이웃인 길베르 씨는 아버지의 식민청 동료였지만 정치적 입장은 상극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로리어(1896년 캐나다 자치령의 총리가 된 프랑스계 캐나다인 윌프리드 로리어 경을 가리킨다. 보수당 정부에 맞서 자유당의 당수로서 총선을 승리로 이끈 바 있다.)를 열렬하고 충실하게 따랐던 반면 길베르 씨는 보수당이 정권을 잡자 손바닥을 뒤집었다. 아버지와 아저씨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말꼬리를 잡고 생떼를 부리기 일쑤였다.


아버지와 길베르 아저씨만 티격태격하는 게 아니라 엄마도 길베르 아줌마만 만났다 하면 입씨름을 벌였다. 길베르 아줌마는 퀘벡 주 생 티아생트 출신이었고, 그것을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아줌마는 무엇보다 주책없을 정도로 자식 자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제 새끼들 신통한 것만 아는 나머지 우리 엄마의 자식들은 고깝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정에도 불구하고-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두 집안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그러던 우리네 삶에 낯선 이가 좀더 수월찮지만 한결 흥미진진한 인간관계를 기상천외하게 몰고 왔다!


그 시절에는 어느 집도 풍요롭지 않았다. 가난은 이따금 우리를 호되게 할퀴고 지나갔고 엄마는 습관처럼 이렇게 말했다. “방을 하나 세놓아서 어떻게 수를 내봐야겠어. 집만 휑하니 크면 뭐하냐고.” 그러나 엄마는 우리 집에 수상쩍은 사람이나 딱한 막일꾼이 시커먼 흙투성이 몰골로 매일 저녁 들어오는 꼴을 봐야 한다는 것이 못내 두려웠다. 엄마가 바라는 세입자의 이상은 점점 더 높아졌다. 세입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술을 많이 마셔서도 안 되며, 성품이 차분하고, 너무 젊어서도 안 되고 너무 늙어서도 안 되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집안도 좋은 사람이라야 했다.


그렇지만 방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우리 식구를 조금도 방해하지 않을 그 귀하신 몸을 어디서 찾겠는가! 엄마가 바라는 대로 기품이 남다르지만 투명인간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세입자는 누가 될런가!


그때 로베르 큰오빠가 열에 들떠서 돌아왔다. “어머니가 구하던 세입자를 찾았어요, 완벽한 조건이에요!” 큰오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더 좋은 점이 있어요. 그 사람은 방세는 다 지불하지만 방은 일주일에 하루이틀밖에 쓰지 않을 거예요.” “그럼 방을 안 쓸 때는…… 어디서 지내겠다는 거냐?” “여기저기요.” “어떤 때는 밴쿠버에 가 있고요……어떨 때는 에드먼턴에서 지내고요. 하지만 염려 마세요. 캐나다태평양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우수한 일꾼이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아주 살짝 걸리는 점이 하나 있다면요, 잭슨은 흑인이에요.”


"흑인이라니! 아, 아니야! 말도 안 돼. 절대로 안 돼!" 엄마는 옆집으로 시선을 던졌다. 길베르 부인이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모두 한참이나 심각한 얼굴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곧 평정을 찾았다. 내 생각에는 엄마의 호기심이 여타의 감정들을 모두 눌렀던 것 같다. 이런 감사할 데가! 엄마는 길베르 아줌마 못지않게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6월의 눈부신 어느 날에 우리 식구들이 모두 창문에 매달려-나는 제일 높은 다락방 창문을 차지했다-우리의 흑인 세입자가 들어오는 광경을 지켜본 기억이 난다. 흑인 아저씨! 아저씨는 세상에서 제일 너그러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바로 그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무덥고 죽죽 늘어지던 그해 여름, 무사태평한 진짜 여름을 끔찍한 궁핍 속에서도 너무 힘들지 않게 넘겼다.


흑인 아저씨! 아저씨는 세상에서 제일 너그러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바로 그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무덥고 죽죽 늘어지던 그해 여름, 무사태평한 진짜 여름을 끔찍한 궁핍 속에서도 너무 힘들지 않게 넘겼다.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와 지내던 중 저녁에 방에서 내려왔다. 계단 끝까지 내려온 아저씨는 문에 친 모기장에 얼굴을 대고 우리에게 물었다. 그때 우리는 모두 회랑에 나와 바람을 쐬는 중이었다. 아저씨는 깊게 울리는 목소리로 우리 곁에 같이 앉아도 괜찮을지 물었다. 밴쿠버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더워서 죽을 뻔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자기는 그냥 현관 아래 계단에나 앉으면 된다고 했다. 엄마는 아저씨에게 의자를 하나 내주었다. 그러자 흑인 아저씨는 우리에게 주었던 수많은 선물 중 첫 번째를 그때 꺼냈다. 하얀 장갑 한 켤레였다. 아저씨는 우리 자매 중에서 제일 수줍음 많고 마음씨 따뜻한 아녜스 언니에게 그 장갑을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모두 꽤 난처했다. 그렇지만 이 흑인 아저씨의 첫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아저씨는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녜스 언니는 그 장갑을 굉장히 갖고 싶어했다.


이런 일은 계속되었다. 흑인 아저씨는 매번 우리 집에 체류할 때마다 어김없이 회랑에 나와 앉곤 했다. 엄마가 사방으로 꽃무를 심어놓았기 때문에 밤이면 그 향기가 진동했다. 흑인 아저씨는 오드콜로뉴와 싸구려 분 냄새 너머로 살아 있는 꽃 가운데 가장 섬세한 그 향기를 몇 모금이고 들이마셨을 것이다. 그런 저녁에 아저씨는 엄지손가락을 조끼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그 큰 눈알을 굴리면서 행복에 겨워 감탄했다. "냄새가 정말 좋군요!"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캐나다 땅덩어리를 누비고 다니지 않으니 참 좋네요."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우리 엄마에게 줄 하얀 비단스카프를 꺼냈다. 이어서 아녜스 언니에게 줄 하얀 비단양말이 또 나왔다…… 선물은 거의 매번 하얀색이었다. 한편 나는 흑인 아저씨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손가락으로 나무, 집, 의자 따위의 물건을 가리켜 보였다. 나는 나무 집 의자라고 말했다. 그러면 아저씨는 10센트짜리 동전을 꺼내어 내 저금통 구멍에 밀어 넣었다. 나는 단어 세 개를 가르쳐줄 때마다 10센트를 받았다. 프랑스어 선생으로 떼돈을 벌 생각도 슬쩍 해보았다.


그러나 길베르 아저씨네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아저씨가 퇴직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만큼 널찍한 그 집은 저당 잡혀 있었다. 아이들 학비도 많이 들었다. 엄마는 아줌마가 곤경에 빠진 걸 알고는 무척 조심스럽게 배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엄마는 아줌마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길베르 부인, 그 집도 방을 세주면 어때요? 그게 뭐 부끄러운 일도 아니잖아요.” “그래요, 나도 생각해봤답니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다 큰 아들들이 있고 어린 딸들이 있는 집에 모르는 사람을 들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잘 알다시피…….” 아줌마는 넋두리했다.


“그럼요,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낯선 사람이 우리들 생각처럼 그렇게 이질적인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그러자 아줌마도 솔직하게 까놓고 말했다. “실은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아무도 보러 오지 않네요. 아시다시피 세월은 모질고 세입자는 찾기 힘들고…… 우리가 사는 이 작은 거리는 잘 알려진 동네도 아니잖아요.”


그러고는 아줌마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그 집에 세든 흑인 말이에요, 그 사람 괜찮아요?” “괜찮다마다요. 더 이상 만족스러울 수 없을 정도죠! 길베르 부인,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은 침대도 자기가 직접 정리한답니다.”


그러자 아줌마는 조금 뾰족해져서 이렇게 대꾸했다. “그건 이해가 가네요. 그 사람은 ‘포터’잖아요. 남들 침대도 정리해주는 사람 아닌가요. 그런데 자기 침대를 정리하는 게 뭐 그리 대수겠어요!” “그래요. 하지만 정리라도 해줄 게 있나 싶어 방을 들여다보면 무엇 하나 손댈 게 없어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넥타이 한 장, 양말 한 켤레가 없다니까요. 길베르 부인,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흑인들이 세상에서 제일 청결하고 꼼꼼한 사람이지 싶어요.”


“몸뚱이도 그렇던가요?” 길베르 부인은 코를 살짝 쥐면서 물었다. 엄마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게 그 사람의 유일한 결점이지 싶네요. 목욕탕에 살림이라도 차리는지 우리 집 더운 물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에요.”


“그래도 자기 처지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죠?” “처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 사람은 자기 처지에 맞게 행동하죠…… 길베르 부인, 모두들 살아가면서 각자 자기 입장이란 게 있잖아요? 어떤 사람들에 비하면 가난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형편이 나을 수 있는 거죠.”


그 시절에 데샹보 거리 사람들은 촌사람들처럼 살았다. 하지만 우리 거리와 이어지는 데뫼롱 거리 역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는데도 15분마다 노란 전차가 지나갔다. 데샹보 거리에 내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보통 오후 6시쯤이면 아버지가 직장에서 돌아왔다. 혹은 오라스 오빠나 로베르 큰오빠가 목요일마다 외출허가를 받아서 함께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물론 우리의 흑인 아저씨도 금요일이면 항상 데샹보 거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금요일에는 전차에서 내린 흑인이 아저씨 혼자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비슷한 검은 옷을 입었고 각자 작은 트렁크를 들고 있었다. 두 흑인 중 한 사람-우리 아저씨-은 우리집 가로대 문 앞에 멈춰 섰다. 다른 흑인은 아저씨에게 가벼운 손짓을 해 보이며 “또 보세, 친구!”라고 하더니 그대로 휘파람을 불며 길베르 아저씨네로 들어갔다.


이제 우리 엄마가 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를 차례였다. 길베르 아줌마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결국 정보를 캐러 그 집으로 걸음 해야 했다. "아, 그래요. 우리 큰애 오라스가 같은 열차를 타는 사이라서 그 사람을 오래 알고 지냈답니다. 건실하고, 품성 좋고, 아주 잘 자란 흑인이에요."


"꼭 우리 집에 세든 사람 같군요." "어쨌거나 우리 아들들처럼 캐나다태평양철도회사 사람이죠." 길베르 부인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너무 빨리 승리에 쐐기를 박고 싶어하자 길베르 부인은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동네에 흑인이 이미 한 명 들어와 있으니까…… 한 명이 더 늘어난다 해서 뭐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되겠어요. 일단 선례가 있으니까요!"


엄마는 약간 심기가 상해서 돌아왔다. 엄마는 우리 앞에서 장담했다. "어쨌든 우리 집 흑인은 길베르 부인네 세든 흑인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나아. 그 사람은 우리 집 사람처럼 날씬하지도 않고 어딘가 좀 구부정해 보이더라고." 그리고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의 못된 심보를 분명히 밝히겠다는 듯 이렇게 예견했다. "두고 봐. 길베르 부인이 이제 우리 집 세입자보다 자기네 세입자가 더 낫다고 떠들고 다닐 테니까. 안 봐도 뻔하지!"


과연 엄마의 말대로 되었다. 그렇지만 길베르 아저씨네 세든 흑인이 좀 덜 검다는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이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길베르 아줌마는 의기양양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난요, 사실 그 사람은 혼혈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언니는 나중에 수녀가 될 사람이었다. 언니는 남자들을 싫어했고, 세상과 자기 자신을 체념하기 전까지만 해도 혁명정신의 소유자였다. 세상이 부당하다는 생각에 언니의 입술은 빈정대듯 비틀려 있었다. 기어이 ‘태팅’ 레이스 뜨기도 집어치운 언니는 늘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을 피아노로 두들겨댔다. 그 곡에는 화성이 매우 격정적인 대목이 있는데, 언니는 그 부분이 시베리아의 비참한 영혼들이 느끼는 반항을 표현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흑인 아저씨도 이 음악에 마음이 끌렸던 게 틀림없다. 아저씨는 조용히 아주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왔다. 아저씨는 계단이 구부러지는 여덟 번째 단에 멈춰 섰다. 아저씨는 그 계단에 앉았다. 어느 날 저녁, 오데트 언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난간 창살 사이에서 흑인 아저씨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다. 언니는 그 음악의 주인공, 그러니까 차르의 왕국에서 쫓겨난 유형수들처럼 흑인 아저씨가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는 것에서조차 배척당했음을 아프게 깨달았다. 언니는 아저씨에게 안락의자를 권하며 응접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그러고는 아저씨를 위해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을 처음부터 다시 연주했다.


우리 식구들은 오데트 언니가 젊은 남자들에게 도통 흥미가 없고 그들과 맞지도 않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간주했기 때문에 언니가 흑인 아저씨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도 눈곱만치도 놀라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언니와 흑인 아저씨는 집 앞을 함께 거닐었다.


흑인 아저씨와 함께 산책하는 오데트 언니를 본 엄마는 속이 상했다. 그래서 오데트 언니를 좀 따끔하게 혼내려고 부리나케 산책에서 돌아왔다. “회랑이나 응접실에서 흑인과 이야기하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웃들이 버젓이 보는 데서까지 꼭 그래야 하냐고!” “이웃이라니, 무슨 이웃이오?” 오데트 언니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베르 아저씨네 흑인은 동행 없이 우리집 응접실로 우리 흑인 아저씨를 만나러 왔다. 우리 아저씨는 오데트 언니의 피아노 화음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뒤따라 온 지젤 언니도 우리 언니의 피아노의자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두 처녀가 네 손으로 반주하는 동안 두 흑인은 근사한 변주로 내달았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밤처럼 그윽했고 다른 쪽 목소리는 고작해야 황혼녘에 비할 만했다. 두 목소리는 활짝 열린 우리 집 창문으로 빠져나가 바르르 떠는 우리 집 잔디에 비친 달빛과 함께 굴렀다. 회랑에서 엄마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생활이 한결 흥미진진해지려는 바로 그 시점에 두 흑인 아저씨는 침대차 근무로 이동해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몇 년이 지나도록-데샹보 거리는 흑인이 없어서 쓸쓸했다.


프티트 미제르 
당시 아버지는 내가 병약했던 탓에 혹은 당신 자신이 이미 늙고 병들었던 탓에 생에 대한 연민이 남달랐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프티트 미제르라는 애칭을 내게 붙여주었다. 아버지 딴에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애정을 담아 그렇게 불렀다지만, 나는 그 이름이 못 견디게 싫었고 꼭 아버지 때문에 박복한 팔자를 타고 난 듯 속이 뒤집혔다. 나는 발끈해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싫어! 내가 왜 불행이냐고. 난 절대 아빠처럼 안 될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불같이 화를 내며 심한 말을 뱉고 말았다.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길길이 화를 내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도 잘 안 난다. 틀림없이 별 것도 아닌 일이었으리라. 아버지는 아주 우울한 시기를 오랫동안 보내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참을성을 잃었고 후회에 찌들어 살았다. 지나치게 과중한 책임감 또한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음울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이따금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가 하면 짜증을 바가지로 퍼붓기도 했다. 먼 훗날에야 나는 이해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사소한 불행, 최악의 불행이 닥치지 않을까 끊임없이 두려워하면서 일찌감치 행복에 대한 너무 큰 열망을 경계하라고 가르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날 아버지의 화난 얼굴은 무서워 보였다. 아버지는 야단을 치면서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나 차마 나를 때리지는 못하고 으레 하는 꾸중처럼 이런 말을 내던졌다. "아! 자식새끼들은 도대체 왜 낳았담!"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이 제대로 알아들을 뿐 아니라 딱히 아이들에게 해될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 말의 의미를 반쯤밖에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을 깊이 파고들며 괴로움을 자초하게 된다.


나는 도망쳤다.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바닥에 엎드려 우둘투둘한 마루를 손톱으로 긁으며 그 안에 들어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마룻바닥에 붙이고 숨을 멈춰보려고도 했다. 나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숨을 안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고통이 싫으면 자기 마음대로 가뿐하게 떠나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 자세가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결국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때 내 얼굴 위로 난 천창(天窓)으로 하늘이 보였다. 6월의 바람 많은 날…… 예쁘고 하얀 구름이 내 눈앞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이 오직 나에게만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바로 앞에 있는 지붕 위로 바람이 쉭쉭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벌써부터 나는 높은 바람을 좋아했다. 사람도 나무도 해치지 않는 바람, 못된 짓 하지 않고 그냥 휘파람 불며 노니는 여행자 같은 그 바람이 좋았다. 아버지가 심은 거대한 느릅나무 두 그루는 천창 가두리까지 가장귀를 뻗고 있었다. 나는 목을 조금 내밀어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구경했다. 그 광경도 오직 나만을 위한 것 같았다. 이렇게 높은 데 올라와서 우리 집 느릅나무 꼭대기의 가장귀를 구경할 사람은 나 외에 없었으니까.


그러자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죽고 싶었다. 한 그루 나무가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그 감흥 때문에…… 나를 속였구나, 요 달콤한 감정 같으니! 슬픔은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더 똑똑히 알려준다는 사실을 이렇게 일깨우기냐!


한순간 비단으로 짠 길에 매달려 천장 대들보에서 나를 향해 내려오던 거미에 정신이 팔리며…… 나는 우는 것도 잊었다. 나를 잠시 붙잡아놓는 것 이상으로 강력했던 슬픔은 다시금 내 마음을 온통 차지했다. 그러나 나는 눈물 너머로도 손가락 하나로 짓이길 수도 있는 그 작은 벌레의 가엾고 덧없는 생명을 지켜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어. 아무도 나를 바라지 않았어.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가끔 엄마가 어느 불쌍한 아줌마가 이미 병든 몸으로 수발할 자식이 여럿인데 또 아기를 낳았다면서 이렇게 탄식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너무해, 그래도 어쩌겠어. 뭘 어쩌겠냐고! 그 엄마가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할밖에.") 바로 그날 갑자기 기억난 엄마의 말을 그대로 따와서 나는 그 무시무시한 뜻도 모른 채 이 말을 되풀이했다. "의무감으로 낳은 자식! 나는 어쩔 수 없어서 낳은 애야!" 단지 그 말만으로 나는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슬픔에 겨워 다시 한 번 눈물을 짜기에 충분했다.


조금 있다가 나는 다시 천창 위로 지나가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 오후따라 하늘은 왜 그렇게 예뻐 보이고 세상 어디에서도 못볼 것 같은 풍경인지! 나는 목을 빼고 쳐다보건만 하늘은 그런 나에게 무심해서였을까? 또 한 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찰나에 내 다락방 바로 밑에서 복도를 따라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다음에 계단 아래 문이 벌컥 열렸다. 엄마 목소리였다. "상 다 차려놨다. 밥 다 됐어. 그 정도로 해둬. 와서 밥 먹어라."


어쨌거나 나도 배가 고팠다. 하지만 바로 그랬기 때문에 밥 앞에 무릎 꿇는다는 수치심과 설움 때문에 나는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고 밥을 못 먹겠다고, 이제는 영원히 못 먹을 것 같다고 대꾸했다. 계단 아래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삐쳐 있고 싶으면 계속 그래봐…… 하지만 나중엔 먹을 게 없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아직도 기력 넘치는 발걸음으로 가버렸다.


그 다음에는 오빠가 계단 밑에 와서 강으로 낚시를 하러 가자고 소리 질렀다…… 나는 오빠를 따라가고 싶었나 그러고 싶지 않았나? ……오빠 말은 계곡으로 흐르는 큰 루주 강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센 강으로 간다는 뜻이었다. 배배 틀리며 빈약하게 흐르는 물은 산사나무 우거진 작은 숲 사이로 꿈틀대는 물뱀 같았다…… 비밀스럽게 풀밭 사이를 파고드는 작은 흙탕물 강은 우리에게도 위험하지 않았다. 우리는 머리부터 강물에 풍덩 뛰어들곤 했다…… 고양이 눈처럼 초록빛을 띤 예쁜 나의 강!


싫다고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슬픔에 찌든 삶도 다시 한 번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그 반감으로 오빠를 밀어내며 혼자 있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게 됐다. 오빠도 잰걸음으로 가버렸다. 나는 오빠가 복도를 총총히 걷다가 집 아래로 이어지는 큰 계단에서 우당탕탕 뛰어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다음에는 나와 친한 놀이짝꿍 고티에네 꼬맹이 세 명이 우리 집과 그 집을 가르는 나무판자 울타리에 기억을 떠올려보면 두 집 사이에 빈터도 있었던 것 같다. 올라와서 나를 한참이나 찾았다. 꼬맹이들은 늘 하던 대로 프레데-리크-나-봤니? 노래에 맞춰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새도 노래를 불렀다. 장단 맞춰 끊어지는 친구들 노래와 그 새 소리를 구분하려면 바짝 귀를 기울여야 했다. "크리스-틴-같이-놀래? 장사하는-아저씨-같이 놀래요? 조련사-아저씨-같이 놀래요?" 나중에 꼬맹이들은 늘 써먹던 노랫말을 조금 고쳐서 불렀다. 그렇게 노랫말 바꾸기 하는 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이기도 했고, 꼬맹이들은 꼬맹이들 나름대로 그렇게 해서 나를 어떻게든 집 밖으로 꼬여낼 심사였으니까. "장례식에-놀러가자."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선창에 다가가 저 아래 울타리에 올라타 있던 세 녀석들을 굽어보았다. 하지만 갑자기 저 친구들은 부모님 사랑을 담뿍 받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얼른 그 애들이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선창 아래로 숨겼다. 자그마한 세 얼굴이 우리 집 창문을 하나하나 훑으며 내가 어디 있는지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바닥에 벌렁 누워 거무스름한 천정을 바라보았다.


꼬맹이들은 아무데서도 나를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참이나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근사한 여름 저녁을 놀지도 못하고 그냥 보내야 한다는 어린아이다운 좌절감이 어려 있었다. 날이 거의 어두워졌는데도 꼬맹이들은 가지 않았다. 그 집 엄마가 들어와서 자라고 했다. 친구들이 싫다고 대드는 소리, 그 집 엄마가 다시 윽박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울타리에 걸터앉은 세 친구들은 나를 단념하기 전에 아쉬움을 가득 담아 아주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잘-있어-크리스-틴! 너-죽었니-크리스-틴? 내일-보자, 크리스-티-네트!"

이제 선창 속의 하늘은 어두웠다. 나는 다시 슬퍼졌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알 수 없고 낯선 슬픔이었다. 나를 짓누르는 앞날이…… 한 아이의 아주 길고 끔찍한 앞날일 성싶었다. 그래서 나는 훌쩍훌쩍 울었다. 정확히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어쩌면 꽤나 비겁한 어른들처럼 나도 삶을 있는 그대로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쩌면 나 자신이 호기심보다 삶에 더 붙들려 사는 사람 같아서…….


아래층에서 누가 왔다갔다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 회랑에서, 그리고 좁은 시멘트 보도에서 엄마의 새 신발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저녁에 친구 집에 카드놀이를 하러 가기로 했으니, 그건 사실이었다. 엄마는 서두르고 있었다. 뛰어가는 듯한 발소리였다…… 엄마가 오늘 저녁에, 그것도 카드놀이처럼 별것도 아닌 일을 즐기겠다고 그토록 거리낌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나를 더욱 비통하게 만들었다.


밤이 어두운 아래층을 타고 나에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커다란 집은 이제 완전히 고요했다…… 어쩌면 집이 비었는지도…… 나는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나 한 사람, 그 슬픔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연약한 나 한 사람만 주목할 뿐, 모두가 그 슬픔을 저버렸다. 나는 이제 이유고 뭐고 모른 채, 아마도 고독한 한 아이의 그것에 지나지 않을 슬픔 그 자체에 빠져 더 크게 울었다.


그때 마룻바닥에 맞닿아 있던 내 귀가 질질 끌리는 발소리, 우리 아버지의 지친 발걸음을 포착했다. 아버지는 계단 밑 문을 빠끔 열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한참 서 있기만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기가 온 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계단을 한 칸 내딛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고…… 아마 아버지도 내 숨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이에는 확고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프티트! 미제르!" 아! 목이 얼마나 꽉 메었는지! 그 후로 단 한 번도 그렇게 목이 졸려 숨이 막힐 듯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가혹한 슬픔은 아주 어릴 때 겪는 게 좋을지 모른다. 다 자라고 나면 그런 슬픔에도 놀라지 않게 되니까.


늙은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얘야!" 잠시 후, 여전히 내가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가 말했다. "배가 고플 텐데." 그 다음에 또 침묵이 내려앉자 아버지는 서글프게 말했다. 아버지 말투가 어찌나 슬펐는지 지금도 우리 아버지의 그 목소리, 그 정확한 억양이 숲처럼 무성해진 추억의 틈을 가르고 어김없이 되살아나 귓전에 메아리친다. "아빠가 루바브 타르트를 만들었단다…… 아직도 따끈하다…… 먹지 않을래?"


정말 모를 노릇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결코 루바브 타르트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그 일이 있기 전에는 내가 루바브 타르트라면 아주 환장을 했었나보다. 루바브 타르트를 먹을 때마다 배탈이 나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여간해서는 루바브 타르트를 굽지 않았고 어쩌다 만들어도 나에게는 귀퉁이만 조금 잘라주고 더 이상 못 먹게 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그날 저녁에 엄마가 없는 기회를 이용했던 것이다…… 나는 상상해 보았다. 아버지가 밀대로 반죽을 밀고, 밀가루와 돼지기름을 찾고. 하지만 아버지는 집에 뭐가 있는지 절대 못 찾는 사람이었다. 화덕에 불을 넣고, 노릇노릇 익어가는 타르트를 지켜보는 그 모습을.


내가 뭐라고 대꾸할 수 있었겠는가! 오후부터 어린아이답게 까불고 놀 수도 없게 나를 꽉 사로잡았던 슬픔이 지금 나를 감동시키는 이 슬픔에 비하면 대관절 뭐란 말인가! 내가 가진 『천일야화』 책에 나오는 신비로운 길들처럼 갈래갈래 좁은 길들이 대로로 이어지고 점점 더 너른 전망을 보여주듯이, 슬픔도 그렇게 점점 더 폭넓게 나아가는 걸까?


아버지가 내쉬는 한숨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너무 천천히 문을 닫아서 달깍 소리가 들릴까 말까 했다. 아버지는 가버렸다. 그 길게 늘어지는 낙담한 걸음새라니! 그러나 나는 몇 분을 더 기다렸다. 그 잠깐 동안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 다음 구겨진 원피스를 폈다. 눈물자국을 지우려고 손으로 뺨을 톡톡 쳤다. 원피스 치맛단으로 얼굴에 묻은 얼룩도 문질러 닦았다.


나는 계단 한 칸 한 칸에 걸음을 멈추면서 내려갔다. 널찍한 식탁이 잔칫상 같았다…… 하얀 식탁보 한가운데 덩그러니 타르트가 놓여 있고 양쪽 끄트머리에 아버지 접시와 내 접시만 각기 놓인 품이 몹시도 슬픈 잔치 같았지만 말이다.


아버지와 나는 그 길쭉한 식탁 양끝에 앉았지만 아직 서로 얼굴을 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타르트를 아주 큼직한 조각으로 잘라서 내 앞으로 밀어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미 타르트를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민자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식민지를 누비고 다닐 일이 많았기 때문에 종종 평원에서 장작불을 피우고 손수 어설픈 요리를 만들곤 했다. 순수함과 드넓은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아버지는 스스로 요리를 좀 할 줄 안다는 착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만든 타르트가 도저히 못 먹을 납덩이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그 납덩이 같은 타르트를 어떻게든 삼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우리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버지도 한 입을 베어 물었지만 목에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나의 어린애 같은 슬픔 너머로 우리 아버지의 슬픔이 얼마나 무겁고 인생의 무게 또한 얼마나 버거운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아버지가 안겨준 소화불량은 영원히 나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날 밤 나는 결국 배탈이 나서 몹시 괴로웠다. 엄마는 늙은 남편과 어린 딸 프티트 미제르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 채 아버지만 들들 볶았다. "밤 열 시에 쟤한테 타르트를 먹이다니. 제정신이에요?"


아버지는 슬픈 미소를 띠고 변명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중에 나에게 약을 가져다준 아버지의 얼굴에는 고통이 어려 있었다. 지금도 이따금 불멸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고통이.


집 나온 여자들
프로방셰르 다리 한복판에서 갈매기들이 엄마와 나를 에워쌌다. 갈매기들은 루주 강 위를 나지막하게 날고 있었다. 우리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한참동안 갈매기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도 마음이 내키면 언제고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엄마는 아직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가장 마지막에야 사라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를 향한 욕망일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옛날에도 자유롭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자식이 더 늘었고, 바느질감도 늘었고, 일은 해도 해도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매여 살면서 엄마는 왜 끝없이 자유를 갈망했던 것일까?


생각난다. 그날 우리는 모두 햇볕이 잘 드는 널찍한 주방에서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바느질을 했고, 알리시아 언니는 수를 놓았다. 난로 위에서 솥단지가 들썩들썩했다. 나는 고양이랑 놀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입을 열었다.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복 터진 사람들인지 스스로 알고 있나 모르겠어. 머리 위에 번듯한 지붕이 없나, 먹을 게 없나, 화목하기는 또 얼마나 화목해. 자기들이 팔자 좋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난 정말 궁금해.”


엄마는 얼핏 도전적인 자세를 취했다. “물론이죠.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한답니다. 하지만요, 그래도 가끔은 집 밖에 나가봤으면 좋겠네요.” 엄마는 좀더 풀어서 말했다. “에두아르, 가끔은 당신과 내가 바꿔 살았으면 싶은 때가 있다고요. 여행도 가고, 새로운 것도 보고,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고…….”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흥분해 있었다. 엄마 눈이 생기를 띠고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왜 아빠가 그렇게 길길이 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아빠는 엄마를 내놓은 여자, 밖으로 싸도는 인간, 역마살을 주체 못하는 사람이라고 흉보기에 이르렀다.


아빠 엄마는 그 문제로 좀더 옥신각신했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이해 못했고…… 아마 엄마도 아빠를 그리 잘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빠는 떠돌아다니는 게 일인지라 가정에서 확고한 안정을, 말하자면 세월에도 끄떡없는 불변성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훌훌 떠나기에는 풀고 가야 할 고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엄마는 우울해졌다. 그때 나는 자유도 사람의 마음에 그리 휴식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는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된 제르베 오빠와 이별해야 했다. 수녀원에 가서는 에두아르 수녀를 면회실에서 만났다. 우리들의 오데트 언니가 이제는 그 이름으로 통했다. 엄마는 언니에게 중대한 계획이 있는데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엄마가 각별히 마음을 쏟고 있으니 그 계획이 잘 성사되도록 기도해달라고 했다. ‘무모한 계획이야. 하느님이 그다지 곱게 보시지 않을 것 같구나’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오데트 언니는 꼭 기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엄마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때의 우리 집보다 더 쓸쓸한 집은 세상에 없었다. 엄마는 자리에 앉아 아빠에게 편지를 한 통 썼다. “사랑하는 에두아르. 내가 번 돈으로 여행을 떠나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사치들에게 줄 돈이 충분하지 않아요…….”


엄마는 이렇게 편지를 썼다. “에두아르, 내가 당신 허락을 받았어야 했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허락하지 않을 게 너무 뻔해서요…… 그렇지만 지금 나는 행여나 당신이 허락해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고마운 의구심만은 품고 떠날 수 있어요…….”


나는 광활한 캐나다를 발견했고, 대략 전 국토의 3분의 1은 지나갔지 싶다. 엄마도 캐나다가 아주  큰 나라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엄마가 여행을 통해 얼마나 다시 젊어졌는지는 내 눈에도 보였다. 우리가 무엇을 보든,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엄마의 눈빛은 섬광처럼 탁탁 튀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젊게 살 기회를 좀더 자주 허락하지 않은 아빠에게 약간의 앙심마저 생겼다. 나이든 여자가 꽃띠 아가씨로 돌아간 듯한 모습은 정말로 보기 좋았다. 내가 만약 남편이라면 아내의 그런 모습이 가장 보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는 위니펙으로 돌아오면서 늙어버렸다. 엄마는 말하자면 양심의 가책에 내처 시달리는 중이었다. 나는 ‘그렇게 걱정을 달고 다닐 거면 여행은 뭐하러 떠났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알베르타 주 에스클라브 호수까지 다녀왔다는 어떤 아줌마와 몇 마디를 나눴다. “우리 남편 에두아르는 속이 안 좋아서 고생이에요. 얼마나 피곤하게 사는지…… 정직이 지나쳐 탈인 사람이지요. 내가 없는 동안 손도 쓸 수 없을 지경으로 몸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되는 대로 막 먹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에요.”


그 아줌마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그렇게 걱정이 됐으면 남편 혼자 두고 오지 말았어야죠…… 왜 집을 떠나셨대요?” 엄마는 차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아마 더 나은 아내가 되고 싶어서였을 거예요.” 엄마의 대답이었다. 나는 엄마가 하고 싶었던 말을 금방 알아차렸다. 가족들을 떠나야 바로 그때 그들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그 모습에 만족하고 그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자기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는 나를 잡아끌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엄마 걸음이 너무 빨라서 나는 비틀거렸다. 우리가 집을 나가고 보름 후에 아빠가 집에 돌아왔다는 얘기는 나중에야 들었다. 사실 아빠가 집을 비운 동안 그 긴 여행을 마치고 아빠보다 한 발 앞서 돌아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엄마의 속셈은 그로써 완전히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아빠는 집에 들어오면서 엄마가 남긴 편지를 못 보았다. 아빠는 식구들이 몽땅 병이 나서 입원이라도 한 줄 알고 걱정으로 벌벌 떨며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길베르 아줌마는 거리낌 없이 우리 소식을 전해줬다. “뭐라고요? 에블린이 꼬맹이를 데리고 퀘벡 쪽으로 내려간다고 알리지 않았나요?…… 저는 바깥양반도 당연히 아시는 줄 알았는데…… 게다가 에블린 말로는 무료승차권이 생겼다고 하던데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니, 정말 놀랍군요!”


엄마가 문을 살살 열었을 때 식구들은 바로 그 무시무시한 침묵을 지킨 채 모두 앉아 있었다. 아빠가 눈을 들었다. 우리를 보았다. 아빠는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더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 집 나간 여자들이 드디어 오셨구먼!” 나는 쫓겨날까봐 겁이 났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 앞으로 나아갔다.


“에두아르, 마땅히 들어야 할 꾸지람을 듣기 전에 잠시 내 말 들어요. 당신 누나들과 플라시드 아주버님께서 마음을 담아 인사를 전하셨어요. 모두들 얼마나 끔찍이 당신 생각을 하시는지…….” “뭐? 거기까지 갔었단 말이야……?” “그래요, 에두아르. 당신의 과거, 당신의 어린시절까지 갔다 왔어요…… 에두아르, 과거가 없다면 우리가 도대체 뭔가요? 가다가 뚝 끊어진 평원, 반쪽짜리 인생이겠죠…… 나는 그걸 깨달았어요……”


우리는 모두 엄마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입술이 말하기도 전에 풍경들을 예고하는 듯한 그 눈을 좀더 잘 보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목에 걸린 가짜 진주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추억에서 풍경들을 끌어내기 전에 먼저 눈으로 쓰다듬고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치는 것도 잊었다. 아빠는 넌지시 다른 것들도 물었다. 헛간 바로 옆에 있던 오래된 사과나무가 아직도 있는지? 과수원 같은 것도 남아 있는지? 엄마는 진실하고 마음을 울리는 답변을 주었다. 엄마의 얼굴에서 추억은 날개를 활짝 편 새처럼 훨훨 날아올랐다.


연못의 목소리
4월에 즈음한 어느 날 저녁,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연못에서 날카롭고 떨리는 듯한 음악소리 같은 것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꽤나 애잔하게 들리던 그 소리는 거의 여름이 다 가도록 이어졌고 햇빛과 흙에 연못물이 거의 다 말라버릴 때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작은 소리꾼들, 수백 마리 개구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력한 겨울을 나고 진흙바닥에서 벗어난 개구리들이 이 새되고 가느다란 목소리를 되찾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이 늪 저 늪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것일까? 아니면 한 번쯤 기묘한 음악으로 우리네 가슴을 뒤흔들 속셈으로 끈적끈적한 바닥을 빠져나와 다시금 살아가게 된 것일까? 처음에는 서로 동떨어지고 이리저리 흩어졌던 소리들이 결국은 서로 어우러지고 머지않아 길게 이어지는 부르짖음이 되었다.


아직도 봄밤이면 우리 집에서 들리던 그 소리가 귓전에 쟁쟁하다. 어린 시절을 향한, 그 시절의 조금은 야성적인 기쁨을 향한 부름보다 더 크고 높은 소리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다락방에 자주 올라갔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된 후에도, 나이가 좀 들어서 이른바 청춘의 초입에 들어선 때까지도 그랬다. 거기에는 뭐하러 올라갔을까? 나 자신을 되찾으려는 듯 다락방으로 향하던 그날 저녁에 나는 아마 열여섯 살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될까…… 나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까…… 그래, 바로 그런 물음들을 나는 슬슬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 앞날에 대한 선택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고, 언젠가 나 자신도 낯선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결정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다락방 작은 창문에 다가가 가까운 연못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세월이 우리 앞에 펼치는 어둡고 광막한 땅이 나타났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말이지만 홀연히 나타났다. 그랬다, 내 앞에 드러난 고장은 그랬다. 가없이 넓지만 온전히 내 것이요, 그럼에도 아직 다 발견하지는 못한 고장이었다.


그날 저녁 개구리들은 목청을 돋우어 비탄의 부르짖음, 그와 동시에 승리의 부르짖음을 이루었다…… 그들은 마치 출발을 고지하는 듯했다. 그때 나는 내가 나중에 무엇이 될 것인가는 몰랐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다락방에 처박혀 있는 동시에 머나먼 미래의 고독에 빠진 기분이었다. 저 멀리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를 부르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어서 와. 이리로 지나가야만 해."


그렇게 해서 나는 글을 쓸 생각을 했다. 무엇을 쓸지, 왜 쓰는지, 그런 건 전혀 몰랐다. 벼락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처럼 그렇게 글쓰기는 다가왔다. 실로 사랑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하나의 사태였다. 아직 할 말은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인가 할 말이 생기기를 바랐다.

내가 그 자리에서 뛰어들었던가? 이 바로크적인 명령에 즉각적으로 따랐던가? 부드러운 봄바람이 내 머리칼을 흩트리고 허다한 개굴개굴 소리가 밤을 가득 채우는데,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듯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느꼈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기분 좋고, 조금은 서글프기도 한 마음이었다. 주위에는 온통 어린 시절에 읽던 책들, 바로 이 다락방에서 선창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햇살과 먼지가 춤추는 와중에 읽고 또 읽었던 책들 천지였다. 그 책들이 내게 안겨준 행복을 나 역시 돌려주고 싶었다. 나는 모두의 눈을 피해 숨어서 책을 읽는 아이였고, 이제 나 자신이 소중히 여김 받는 한 권의 책이 되고 싶었다. 익명의 존재, 여자, 아이, 친구의 손에서 넘어가는 몇 장의 삶이 되어 다만 몇 시간만이라도 그들을 내 곁에 붙잡아둘 수 있으리라. 이에 비길 만한 소유가 있을까? 이보다 우애 넘치는 침묵, 이보다 완벽한 이해가 있을까?


그런데 미래에 있는 또 다른 내가 그 경지까지 와보라고 나를 부르지 않는가. 이 또 다른 나 자신 오, 무지의 달콤함이여! 은 그날 저녁 내가 입고 있던 것과 같은 넓은 세일러 칼라의 감청색 블라우스를 입었고, 그 날의 나와 똑같이 생각에 잠긴 누리끼리한 얼굴을 한 손에 괴고 있어서 전혀 늙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천장이 낮은 그 방으로 나를 찾으러 왔다. 나는 차츰 구분하는 법을 배우게 된 수많은 밤의 소리들에 홀려서, 내게 떡하니 주어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한 임무의 미스터리에 압도적으로 매혹되어서 더 이상 어떤 것도 감행하지 못한 채 다락방에서 도무지 내려갈 줄 모르고 있었다. 연못의 노래가 잦아들었다. 이제 작은 소리들은 분리되어 서로를 부르고 대꾸하는 것 같았고, 어쩌면 서로 이별을 고하는 것도 같았다.


엄마가 내게 말했다. "왜 항상 여기에만 처박혀 있니? 네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짓이야. 테니스라도 치든가, 친구들이라도 만나렴. 얼굴이 아주 해쓱하구나. 그래도 지금이 한창 좋은 때란다. 이렇게 좋은 때를 좀더 재미있게 즐기지 그래?"


그래서 나는 심각하게 사실대로 선언했다.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그러자면 다락방에 올라와 서로 엇갈리는 연못의 소리들에 한참동안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나 많고 많은 것들을 풀어헤쳐야 하지 않았겠는가.


엄마는 당혹스러운 듯했다. 그렇지만 내가 일상보다 허구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이미지의 힘, 적확한 단어 하나가 드러내 보이는 사물의 경이로움,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이 담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가르친 장본인이었다.


"글쓰기는 가혹하지. 그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까다롭고 요구가 많은 일일 게다…… 정말로 진실한 글을 쓰려면 말이야. 말하자면, 자기를 두 쪽으로 쪼개는 셈이 아닐까. 한쪽은 아등바등 살아야 하고, 다른 쪽은 응시하고 판단하는 거지……."


엄마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우선 재능이 있어야 해. 재능이 없다면 얼마나 애가 타겠니. 하지만 재능이 있어도 아마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게야…… 말이 좋아 재능이지, 어쩌면 명령이라고 하는 게 마땅할지도 모르거든. 글쓰기의 재능은 아주 기묘하지."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재능이랄까. 엄마는 남들이 그런 재능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단다. 글쓰기의 재능은 남들과 괴리시키는 불운과도 흡사하다고 할까, 거의 모두가 우리를 떠나게 만든달까……."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일러줄 수 있었을까? 엄마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그 말이 이미 체험했던 일처럼 진실하게 다가옴을 느꼈다. 엄마는 먼 곳을 바라보았고, 나를 잘 감싸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절절했던 탓에 두 눈 가득 번민이 깃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빼도 박도 못하게 남들과 멀어지는 것 아니겠니…… 철저히 혼자가 되는 거야, 얘야."


잠시 내리던 비가 그치자 개구리들이 다시 매혹적인 권태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장차 가야 할 먼 길을, 삶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빚어줄 얼굴을 일찌감치 그리워하는가보다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 우리가 앞서 나가도록 가장 잘 끌어주는 힘이 어쩌면 바로 그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가끔은 말이 진실의 경지에 이르기도 해요. 그리고 말이 없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진실이란 과연 그러하다, 사실이다, 이 정도밖에 없겠지요."


그러자 엄마는 참으로 안타깝고 무력한 몸짓을 해 보였다. 엄마는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앞날은 끔찍한 거란다. 미래는 언제나 조금은 실패이게 마련인걸." 엄마는 밤과 고독한 다락방과 어두운 고장의 먹먹한 슬픔 속에 나 혼자 남겨두고 내려갔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을 갖기 바랐다. 안식처처럼 따뜻하고 진실한 삶 이따금 가혹한 진실을 견딜 수 없더라도 과 영혼 깊은 곳의 울림을 포착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바랐다. 걷는 시간과 잠시 멈춰 서서 이해하는 시간이 다 내 것이기를 바랐다. 길에서 조금 비껴나는 때도 있고 남들을 얼른 따라가서 신나게 외치는 때도 있었으면 했다.


"나 여기 있어요, 내가 여러분을 위해 길에서 찾은 것이 바로 여기 있다고요…… 나를 기다렸어요? ……기다리지 않았나요? ……아, 그렇다면 나를 기다려주세요!"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