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ǻ
푸른숲
   
12000
2009�� 07��



■ 책 소개
꿈을 향해 도전하는프런티어로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가슴 뛰는 삶에 대한 열망을 되찾게 이끌어주었던 한비야는 세상에는 정글의 법칙 외에도 사랑과은혜의 법칙, 나눔의 법칙이 있다고 말하며 그런 세상에 대한 꿈을 현실로 이뤄가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 책은 이렇듯 늘 새로운 도전으로 감동을 자아내던 한비야가 8년 6개월간활동해온 NGO 월드비전을 그만두며 전하는 가슴 뛰는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만의 공간인 집으로 우리를 초대하여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현장에서의 자신을 돌아본다. 한비야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모르고 세상의 경쟁과 잣대에 재단되어 스스로 위축되어 있는 현실을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다고 한다. "너희는 하나하나 모두 사랑받아 마땅한 이들이야"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 시기를 통과한한비야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저자 한비야
1958년 서울 출생.홍익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학교(University of Utah) 언론홍보대학원(Department ofCommunications)에서 국제홍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홍보회사 버슨-마스텔라에서 근무하다 어린 시절 계획한 ‘걸어서 세계일주’를 실현하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렇게 시작한 7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세계 오지 여행 경험을 담은 『바람의 딸,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 4권),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우리 땅을 걸으며 적어내려 간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중국어 공부를 위해 꼬박 한 해 동안 머물렀던 중국에서 건져올린 쫀득쫀득한 이야기 꾸러미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세계 곳곳의 긴급구호 현장에서숨 가쁘게 뛰며 써내려간 열정 가득한 삶의 보고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을 썼다. 2001년부터 2009년 6월까지 국제 NGO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했으며, 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인 중 한 명, 평화를 만드는 100인등에 선정되었고, 2004년 ‘YWCA 젊은 지도자 상’을 수상했다.


■ 차례
들어가는 글


1장 난 내가 마음에 들어
1. 난 내가마음에 들어
2. 산에서 풍요로워지는 나
3. 120살까지의 인생 설계
4. 두 얼굴의 한비야
5. 첫사랑이야기
6. 지금 ‘당신의 라면 한 봉지’는?


2장 내가 날개를 발견한 순간
1.가끔은 조용한 응원을
2. 사랑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3. 흔들리며 크는 우리들
4.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로살아간다
5.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6. 내 글쓰기의 비밀
7. 구호팀장으로 산다는 것은
8. 왜 이 아이를 죽게두셨나요
9.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라


3장 푯대를 놓치지 않는 법
1. 길을묻는 젊은이에게
2. 당신이 받은 축복을 세어보세요
3. 1년에 100권 읽기 운동 본부
4. 한비야가 권하는 24권의책
5. 단순함의 미덕
6. 좋은 습관, 나쁜 습관, 이상한 습관
7. 이런 성공이라면 꼭 하고 싶다


4장 우리는 모두 같은 아침을 맞고있어
1. 수녀님의 콜택시
2. 파키스탄 리포트
3. 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줄 수만 있다면
4.다히로 이야기
5. 당신은 무엇을 믿는 거죠?
6. 이제 세상으로 나가겠습니다
7. 멋지다, 대한민국!!!


나가는 글 - 다시, 지도밖으로




그건, 사랑이었네

1장 난 내가 마음에 들어
난 내가 마음에 들어

사실 내가 살짝 호들갑에 오버하는 기질이 있긴 하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말로든 표정으로든 좋다는 표현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호들갑과 오버액션은 내 즐거움의 원천이자 정체다. 나는 눈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기쁨, 즐거움만이 아니라 슬픔이나 괴로움도 그렇다.


이런 호들갑스러운 표현의 두드러진 특징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음식이 맛있으면 그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해야지 다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 생각해보니 그 집 밥 맛있었네’라고 한다면 얼마나 김이 빠지는가. 에너지의 양 자체도, 표현의 뜨거움도, 효과도 180도 다르다. 한마디로 카르페 디엠, 그 순간을 느끼고 마음껏 표현하며 즐기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한 삶의 기술이다.


하지만 현재를 즐기면서 살고 싶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으니, 미래의 걱정을 땡겨 하는 것, 소위 ‘걱정 가불’이다. 그것도 인생의 어느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한평생을 통해서 말이다.


나 역시 걱정할 일, 남들만큼 있다. 위험한 재난 현장에서 일하다 풍토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면 어쩌나, 안전한 한국에 있다 해도 내 또래가 잘 걸린다는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에 걸리면 어쩌나, 어느 날 직장을 다닐 수 없거나 글을 쓸 수 없게 되어 수입이 똑 떨어지면 뭘 먹고 사나, 남편도 자식도 없으니 내 노후는 얼마나 쓸쓸할까, 심지어는 우리가 꼭 따낼 거라고 호언장담하면서 2주일 내내 팀원들을 들들 볶으며 야심차게 쓰고 있는 아프리카 관련 대정부 제안서가 채택이 안 되면 그 망신을 어쩌나 등등 걱정할 일이 많고도 많다.


그런데 걱정만으로 이 중에 단 한 가지라도 해결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여러분도 지금 하고 있는 걱정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라. 걱정이 그 일을 막거나 해결할 수 있는지. 십중팔구 아닐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에 지금 무엇이라도 하면서 재미있게 사는 게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일 아닌가.


위대한 성인은 말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성인의 말이니 나 따위 범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분명한 진리일 테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일 수 있는가. 하느님이 혹은 당신이 믿는 신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놓고 우리가 평생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시겠는가? 그걸 보며 즐기시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우리를 지으신 분은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실 거다. 때문에 나는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가 아니라 즐거움의 바다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바다인 이상 365일 내내 잔잔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아직 인생 덜 살았네, 인생의 쓴맛을 덜 보았네, 철이 덜 났네 하는 사람들도 많다. 속으로 미쳤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 해도 할 수 없다. 나는 예의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다면 뭐든 좋아하면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마음에 든다 든다 말하면서 마음껏 내색하면서 살기로 했다. 나는 내게 어떤 선택권도 없이 주어진 성씨, 출생 년도, 집안에서의 출생 서열, 심지어 국적까지도 만족의 차원을 넘어 열광(!)하는 내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이 괴롭다고 몸부림치며 살기보다 재미있다고 호들갑 떨며 살기를 선택한 내가, 나는 제일로 마음에 든다.


2장 내가 날개를 발견한 순간
흔들리며 크는 우리들

“올해 스물아홉, 대학 졸업 후 조그만 회사에 입사해 4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엔 힘든 시기에 직장을 구했다는 자부심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설렘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사치라고 하겠죠? 이 나이에도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는 저 자신이 한심합니다.”


요즘 들어 이런 메일이 부쩍 많아졌다. 이 땅의 젊은이라면 이런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거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도 누구 못지않게 비틀거린다. 사람들은 나를 어떤 선택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거침없이 나아가면서 자유를 한껏 누리는 사람이라고 여기곤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무엇인가를 선택하면 그 후에는 거기에 올인하고 집중하고 끝까지 해보는 성향은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선택하는 순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흔들리고 떨리면서 너무나 괴롭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십대, 이십대에는 안달복달하며 살았다. 가고 싶은 방향만 어렴풋이 알았을 뿐, 매일매일 비틀거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국제 무대에서 인도적 지원에 관한 일을 계속 하겠다는 방향만 갖고 있을 뿐, 향후 10년 내에 어느 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지금처럼 현장에 있을지, 구호 정책을 연구할지,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할지. 그러나 어떤 일을 선택하든 이 방향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지금 이 순간 망설이고 흔들린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그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었느냐가 중요하다. 최종 목적지가 부산이라면 한 번에 부산행 기차를 타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방법만도 수십 가지다. 가는 방법이야 가지가지겠지만 질러가든 돌아가든 여러분의 인생 표지판에 부산이라는 최종 목적지가 늘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거다. 방향이 정해졌다면 가는 길은 아무리 흔들려도 상관없다. 아니, 흔들릴수록 좋다. 비행기 타고 한 번에 가는 사람에 비해 훨씬 좋은 구경, 신기한 구경을 많이 할 테니까.


스물아홉 살에 비틀거리는 자신이 싫다고 했는가? 나는 지금도 비틀거린다. 비틀거리지 않는 젊음은 젊음도 아니다. 그것이 바로 성장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틀거린다고 자책하지 마시길. 누구나 흔들리고 비틀거리면서 큰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이 질문 역시 거의 매일 받는다. 난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내 기회는 아마 지나간 게 아닐까?


당신은 방금 지나간 기회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당신이 지금 막차를 놓쳤다고 그게 마지막이 아니란 말이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려라.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나면 다음 날 새벽 첫차가 온다. 이제 이십대. 일생을 하루 24시간으로 보면 이십대는 인생의 새벽이다. 새벽에 오는 막차도 있다던가. 이십대인 당신에게 시간과 기회는 충분히 있다.


사람의 인생을 90세로 생각하고 축구 경기에 비교해보자. 전반전 45분, 후반전 45분. 그렇다면 29세, 당신은 겨우 전반전 29분을 뛰고 있는 선수다. 그 선수가 전반전의 절반을 겨우 넘은 경기 도중에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거다. 당신 말대로 실책하여 몇 골을 먹었다고 해도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다. 후반전 45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은가? 연장전도 있고, 패자부활전도 있다. 만회할 시간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제발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늦기는 뭐가 늦었다는 말인가? 전반전 29분을 뛰고 있는 선수가 몇 골 들어갔다고, 이건 절대로 만회할 수 없다고, 이미 진 경기라고 짐 싸서 집에 가는 축구 경기를 보았는가? 세상에 그런 경기 보았는가 말이다. 당신의 인생 경기도 마찬가지다. 늘 점검하고 상기하기 바란다. 나는 지금 내 인생 경기에서 몇 분을 뛰고 있는지. 내 시간은 얼마나 충분히 남았는지.


3장 푯대를 놓치지 않는 법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저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그걸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내가 하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내라고 기름도 안 치고 볶아대기 때문인지 십대, 이십대 친구들에게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내게 물었으니 말해보겠다. 그러나 내 말은 세상의 많은 의견 중 하나일 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정답은 아니다. 그러니 이걸 고스란히 따라 하거나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여러분이 혼자 힘으로 치열하게 고민해 마침내 자신의 선택을 내릴 때 내 말이 도움이 되었으면 할 뿐이다.


우선 자기 길을 찾을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게 한 가지 있다.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나는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것이 파악되었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를 묻고 묻고 또 묻는 것이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잡은 걸 절대 놓지 않는 물귀신이 되어야 한다. 희미하던 것이 또렷하게 보일 때까지. 적어도 방향은 맞게 잡았구나 확신이 들 때까지.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이 과정에 들어선 당신은 이제부터 혼자다. 더 이상 부모에게도, 당신의 역할 모델에게도, 세상의 잣대에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전권을 맡겨서는 안 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한다. 그 가능성 중에서 최선의 것을 고르기 위한 조언은 많을수록 좋고 고민은 깊을수록 좋다. 그러나 결정은 혼자서 해야 한다. 그 결정에 따른 책임도 혼자서 져야 한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하고 싶은 일 얘기가 나오면 꼭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돈 안 되는 일이면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일리 있고 현실적인 얘기다. 내 주위에서도 흔히 듣는 얘기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좋아하는 것만 골라 먹을 수 있는 뷔페가 아니라 좋은 것을 먹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디저트가 따라오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세트 메뉴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수업료가 있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 이게 바로 어른의 세계다.


혹자는 말한다.


“꿈을 꾸어본들 무슨 소용인가요? 어차피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는데 괜히 마음만 부푸는 꼴이잖아요. 그저 현실에 충실하는 게 최고 아닌가요?”


그것이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 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현실적인 꿈만 꾸자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바보, 멍청이, 미련 곰탱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굶주리는 아이가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갖는 세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세상이 올까? 청춘과 인생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친다고 한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건 한마디로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이 꿈을 가슴에 가득 안고 바보들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룰 수는 없을지언정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 되는 꿈이기 때문이다.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돈키호테』의 내용이다.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말이지만 나는 이것이 젊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무모하리만치 크고 높은 꿈 그리고 거기에 온몸을 던져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 바로 젊음의 본질이자 특권이다. 이 눈부신 젊음의 특권을 그냥 놓아버리겠다는 말인가, 여러분.


4장 우리는 모두 같은 아침을 맞고 있어
수녀님의 콜택시

후원자들이 자신이 후원하는 해외 아동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으로 아프리카 말라위에 갔을 때다. 우리가 찾아간 열두 살 소년 사무엘은 후원 아동의 형이었는데, 에이즈 고아이자 에이즈 환자였다. 엄마가 에이즈에 걸린 채 사무엘을 낳아 수직 감염된 거란다. 삐쩍 마른 몸은 온통 부스럼투성이에 기침까지 심했다. 안내자의 말로는 6개월 이상 살기가 힘들단다. 이 집 아이의 후원자는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몹시 까탈스럽고 불평불만이 많았던 오십대 남성인데 에이즈에 걸린 사무엘에게 가까이 가는 게 꺼림칙했는지 굳은 얼굴로 먼발치에 서 있었다. 그런데 숨 쉬기도 어려워하는 사무엘에게 이분이 동생의 후원자라고 소개하니까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까지 더듬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이 분이 제 동생 후원자라구요? 고, 고맙습니다. 다, 당신은 제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십니다."


아니, 방금 만난 사람이 어떻게 기도의 응답이란 말인가? 알고 보니 사무엘은 1년 전 엄마마저 잃은 후부터 하느님께 자기는 어찌 되어도 좋으니 열 살, 여섯 살 두 동생만은 굶지 않고 학교에 다니게 해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했단다. 아프면 아플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했는데 마침내 석 달 전 동생들이 한국의 후원자와 결연되었다고 말하면서 그 후원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순간 그가 아이의 손을 뿌리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웬걸, 놀랍게도 그 후원자가 부스럼투성이인 사무엘을 힘껏 껴안아주는 게 아닌가. 여행 중 처음으로 만면에 웃음까지 띠면서 말이다.


어찌 이 사람뿐일까? 월드비전 33만 명의 후원자 한 명, 한 명이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서, 볼리비아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하느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이요, 복의 통로다. 기쁜 일이다. 멋진 일이다. 정말 복 받을 일이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는 수십 년 동안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를 위한 기도’로 미사를 마쳤다. 그때는 늘 하는 여러 기도문 중 하나려니 생각했는데 축복의 통로가 되고 싶어진 요즘 다시 보니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문인지 모르겠다. 이 아름다운 기도문을 여러분께 선물로 드리고 싶다. 부디 소리 내어 읽어보시고 마음으로 받아주시기 바란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각자가 믿는 신에게 드리는 기도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평화를 위한 기도

오,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용서받기보다는 용서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나아감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