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섹시하기

   
김희재
ǻ
시공사
   
12000
2009�� 08��



■ 책 소개
인생을 멋스럽게 사는 섹시한인생을 위한 인생 교과서! 

 


행복하고 매력적인 인생을 만들어가는 법을 알려주는 인생 지침서. 준비와연습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가꿔가는 방법들을 담아낸 이 책은 세월의 속도를 절실하게 느끼는 세대들을 위한 인생 교과서이다. 저자인 김희재는 영화<실미도&&, <한반도&&, <공공의 적2&& 등의 시나리오작가답게 진한 삶의 체취와 위트을 담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담론과 부드러운 질책, 다양한 노하우를 알려준다. 


현대시대는 단순히 오래 사는 삶을 넘어서 매력적인 중년을 살아가는 삶을요구하고 있다. 저자인 김희재는 왕성한 사회활동과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긍정적인 의미의 섹시함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지침을 전한다.또한 부모와 자식, 구세대와 신세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나의 삶을 돋보이게 만들고,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저자 김희재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와동 대학교 연극영화과 대학원, 추계예술대학교 영상문예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영상문화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나리오창작회사인 <올댓스토리&&의 대표이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4년에는 영화 <실미도&&로 제41회 대종상영화제각색상을 수상했으며, 대표작으로는 <국화꽃 향기&&, <실미도&&, <누구나 비밀은 있다&&, <공공의 적2&&, <한반도&&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당신은 이미 충분히섹시합니다 


1. 행동에 대한 안내 
듣고, 듣고,듣고 그리고 말하기 
세 종류의 거울을 세 곳에 걸어두기 
일 주일에 한 번의 정장은 인생에 대한 예절이다 
포커페이스를벗어버리고 화려한 가면을 쓰자 
젊음을 유지시켜 주는 명약, 욕망 
공익요원으로 사는 게 행복한 이유 
날마다 새로운 설정으로,날마다 활기차게 
주고, 주고 또 주기 
지루한 일상에 단비가 되는 이벤트의 마술 


2. 언어에 대한 안내 
긍정의 언어로예언하기 
유머는 선택이 아닌 필수 
장문(長文)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비유와 은유로 맛깔 나게 말하기
‘Thank you’의 또 다른 의미 


3. 학습에 대한 안내 
아마추어지만전문가처럼 
기록하자. 내가 기억될 수 있도록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4. 감정에 대한 안내 
누구나 젊은시절이 있었듯, 누구나 늙는다 
이성(異性)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세상의 절반을 버리는 것 
속은 것이 아니라 속기로 마음먹은 것
감사와 즐거움은 쌍둥이다 


5. 건강에 대한 안내 
병과 싸우지말고 친구가 되자 
스트레칭으로 확인하는 나의 넷째 발가락 
만지고, 느끼고, 나누는 스킨십의 힘 
인생엔 언제나 놀이터가필요하다 


에필로그 - 죽을 때까지섹시하기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

1. 행동에 대한 안내
젊음을 유지시켜 주는 명약, 욕망

청춘의 시기에 느끼는 욕구는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격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격한 느낌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욕구 그 자체가 없어지는 듯합니다. 인생에서 느낌표가 사라지고 말줄임표가 그 자리를 대신해가면서 생기를 잃고, 웃음을 잃고, 그렇게 젊음을 잃어갑니다.


느낌표로 욕망했던 것이, 그 느낌표가 진하고 강하고 여러 개였을수록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맛보는 절망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혹은 죽자고 달려들어 얻은 것이 너무 별것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허탈감이 얼마나 기운 빠지게 하는 것인지, 경험을 통해 성숙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정 부분 정말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매번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고, 매번 사랑하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퍼주고, 매번 똑같은 이유로(질리게 한다거나, 집착이 심하다거나) 차이는 여자들을 볼 때 속상하고 미련 맞아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만이 먹고, 자고, 배설하는 기본적인 욕구 이상의 ‘욕망’이라는 것을 지닐 수 있는 생명체이기에 욕망은 사람임을 증명해 주는, 펄떡거리는 생명력을 입증해주는 부분입니다. 또한 열망과 욕망은 훌륭한 에너지원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것을 목표로 삼으면, 그리고 그 목표에 대해 강력한 욕망을 가질 수 있다면 사람은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영혼과 구원에 관해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것이 욕망을 끊어내는 일임을 생각할 때, 나이 들어 욕심 부리면 추하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입니다. 먹는 것, 성(性), 명예, 부(富)…… 사람이 평생을 들여 쫓아가는 가치를 버리고 의(義)와 도(道), 선(善), 희생 등을 생각하는 것은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그들처럼 곡기를 끊어가며 기도하고 명상하는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욕망을 초월한 노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훌륭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안해본 게 없다는 말, 직접 해보지 않아도 다 안다는 것, 그러므로 욕망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절대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욕망하고 좌절하는 반복을 통해 학습했으므로 다시 아프지 않기 위해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입니다. 누구도 세상의 모든 곳을 가보지 못했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으며,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고,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근사한 비밀을 품고 있는지, 사람들은 다 알 수 없습니다. 매일 운전하고 오가던 길을 조수석에 누워서 보면 그것이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운전하고 다닐 때는 신호등과 횡단보도와 아스팔트와 가로등의 기둥이 보입니다. 하지만 조수석에서 의자를 한껏 눕히고 드러누워 보노라면 그 길엔 굉장히 근사한 불빛을 내뿜는 가로등 불빛과 울창한 가로수 잎과 그 잎사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있습니다. 시선 높이만 조금 바꾸어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어떻게 감히 다 아노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YOUNG @ HEART’는 평균연령 81세의 합창단입니다. 73세부터 93세까지의 노인으로만 구성된 이 합창단은 로큰롤을 부릅니다. 청바지를 입고 몸을 흔들며 교도소를 찾아가 노래하고 극장에서 돈을 받고 공연을 올립니다. 산소 줄을 코에 꽂은 채로, 산소 통을 들고 무대에 나와 솔로를 합니다. 연습  기간 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서는 사흘 동안의 의식 불명 상태로 계속 노래를 부르고 깨어나 다시 무대에 선 사람도 있습니다. ‘무대에 서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들의 이 욕망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고, 삶을 즐겁게 하고,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무대에 선 그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매력적인 가수들이고, 그들이 공연을 한다면 언제라도 다시 찾아가 보고 싶어지도록 만듭니다.


소풍날 아침, 소풍 가서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욕망으로 용수철처럼 튕겨져 일어났던 아홉 살 어느 봄날 마음 같은 욕망을 지펴 올린다면 그 누구라도 그 소풍에 참여하고 싶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욕망을 품은 가슴이 만들어낸 섹시함으로 세상을 유혹하십시오.


2. 언어에 대한 안내
긍정의 언어로 예언하기

“너 시집가서 꼭 너 닮은 새끼 낳아봐라.” “그래 갖구 니가 사람 구실하겠니?” “니 동생 반만 닮으라구. 내가 뭐 많이 바래?” 한 번쯤 해봤거나 들어봤거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 곁에 있어 봤거나, 어쨌거나 우리 인생을 스쳐가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도 제법 익숙합니다. “아유, 우리 애가 원래 좀 둔해서…….” “쟤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야?” “본 데 없이 자라갖구……버르장머리는 약으로 쓸라구 해도 찾아볼 수가 없어.” ”내가 아예 바라지를 말아야지.“ ”어쩌면 그렇게 늬 아버지랑 한 치두 다른 게 없니?“ 눈으로 글을 읽고 있는데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쟁쟁한 사운드로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 내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그러라구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어쩌면 그렇게 모진 말을 하느냐고 비난받을 때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변명입니다. 이 변명은 일정 부분 맞고, 일정 부분 틀립니다. 자식을 향해서, 친구를 향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저주를 퍼붓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정말 저주를 퍼붓겠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저주를 공표하기 위해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진심이 담겼건, 그냥 말뿐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같다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말 속의 진심을 볼까요? 긴 시간이 진심을 생각하겠지만 듣는 순간엔 저주와 똑같이 들릴 뿐입니다.


“너무 흥분해서 그런 거야. 잊어버려, 응? 내가 미안하다구 그러잖아.” 사과하고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해결된 듯합니다. 그런데 날카로운 칼처럼 말에 베인 상처는 의외로 깊고 진하게 남아 때때로 덧나고 새로운 통증으로 살아나기도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관계와 의지와 영감을 담아 눈빛과 표정과 목소리를 총동원하여 우주를 향해 내는 것이기에 사람의 말은 다른 소리와 달리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 갖구 뭘 그리 유난을 떨구 그러나. 시간 지나면 다 잊혀지구 그러는 거지.” 이것도 일부분 맞고 일부분 틀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기억, 그러니까 꺼내서 되새김질할 수 있는 기억에서는 듣기 싫었던 그 말을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입력된 정보를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저장해 놓습니다. 그리고 저장된 줄도 몰랐던 그 기억들이 저희끼리 연락하고 연합해서 깊고 시커먼 상처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트라우마’라거나 ‘콤플렉스’라거나 ‘자격지심’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런 말을 스스로 창조해낸 것은 아니니 말하는 사람들도 누군가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듣고 상처를 입었으니 다른 이에게 내뱉으며 살지 말아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라 등껍데기처럼 딱딱하게 굳은 내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닌 듯하여, 마치 상처 같은 것 받아본 적도 없는 것처럼 다른 이들의 가슴을 베고 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것이 정말 슬퍼지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름이 늘고, 신체 활동이 원활하기 않고, 아픈 곳이 늘어가는 건,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상처에 무심해져 가는 것, 그것은 내 안에 쌓아온 시간에 대한 오만함이요, 그 오만함에 대한 선택이기에 슬픈 것입니다.


‘저 아이가 또 실패를 했구나. 작년부터 너무 게으르게 산다 싶었지. 누굴 닮았을까? 하긴 나도 젊었을 땐 매일매일 준비한다는 게 귀찮기는 했어. 그래도 좀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걸. 다음번에는 될까? 돼야 하는데. 여기서 더 실패하면 다음을 기대하기 어려울 거야.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데. 머리가 좀 나빠도 엉덩이 질긴 놈이 장땡이지. 이번 일로 좀 깨달은 바가 있겠지? 그럴 거야. 이번에도 정신 못 차리면 지가…….’


책망하고 싶은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과 위로하고픈 마음이 갈팡질팡 오갑니다. 그 생각들을 곱씹고, 그렇게 잘 다듬어진 생각 위에 수십 년 축적해온 우주의 에너지를 골고루 섞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음성에 실어 말합니다. “잘될 거야. 진짜, 다음번에는 잘될 거다. 난 알겠거든. 니가 잘될 거라는 거.” 이것이 예언입니다. 예언이 틀리면 어떻게 할까요? 아니요. 긍정의 예언은 틀리지 않습니다. 단지 그 성취가 조금 뒤로 미뤄지는 것뿐입니다. 또 실패하면 또 예언하는 것입니다. 진심을 모두어, 세월의 지혜를 담아, 인생의 요령을 슬쩍 끼워넣어 더 그럴 듯하게 예언하는 것입니다.


3. 학습에 대한 안내
기록하자. 내가 기억될 수 있도록

회사에서 한창 열정적으로 일할 나이에는 참 부지런히도 메모를 합니다. 새로운 정보, 멋진 말, 새로 만난 사람에 대한 정보…… 적어야 할 것도 많고 기록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학생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루 여덟 시간 수업이라면 여덟 시간 꼬박 필기만 하며 살아야 하기도 하니까요. 수업 필기뿐 아니라 친구들끼리 쪽지도 돌리고, 교환일기 같은 것도 주고받고……청춘의 시기에는 보다 다양하게, 뭔가를 적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위가 높아지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뭔가를 기록해야 할 일이 줄어듭니다. 특히나 손으로 뭔가를 써야 할 일은 절대적으로 없어져 갑니다. 전화번호조차 핸드폰에 직접 입력을 하는 시대가 되고 보니 정말 단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점점 늘어갑니다.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잊혀지면 안타깝고, 되새길 수 없으며, 누군가로 하여금 ‘나’를 기억하게끔 만들 수 있는 기록은 아마 그 순간 마음을 스쳐가는 ‘단상’일 것입니다.


‘5월의 마지막이다.
어버이날 다녀가지 못했다며 뒤늦게 찾아온 네가 너무 미안해하여
내가 도리어 민망했단다.
네가 사들고 온 철 이른 수박이 참 달았다.
고맙다.’


다섯 줄의 이 메모는 아들에 대한 고마움과 달달했던 수박에 대한 기억, 부모 자식간에 오가던 그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특정한 어느 노트에 잘 정돈된 글씨로 적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약봉지의 뒷면도 좋고, 식당에서 사용하는 종이 패드나 누런 냅킨도 좋을 것입니다. 또한 기록은 스스로를 현재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이 있습니다. 너무 슬프고, 기운 빠지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것을 그저 차분히 적으면, 그 동안에 그것이 생각보다 사소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지나갈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제 신랑이 암이라며 울먹였다. 담배를 너무 피워서 그랬다고, 아니면 자기랑 너무 다퉈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며 또 울었다.

제 아빠가 한 번, 내가 이미 두 번 암 수술을 했건만…… 마흔 초입에 선고를 받았으니 무서운 모양이다.
병원을 알아봐야겠다.
폐라면…… 최 박사께 여쭤보는 게 좋겠다.
버섯도 사야지.
수술 후 요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다.
병원 들락거리는 동안 아이들을 어떻게 할 건지도 미리 챙겨둬야겠다.
1기에서 2기 넘어갈 때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의료기술이 발달한 시대라 다행이다.
차라리 젊을 때 한 번 크게 당하고
이후로 건강을 지키며 살게 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그 얘기를 해봐야 들리지도 않겠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지만 쓰는 동안 정리가 됩니다. 그리고 해야 할 말과 기다려야 할 말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당장 해야 할 일과 중요한 일의 순서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믿을만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기록의 습관은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있는 부족한 부분을 차분하게 한 글자 한 글자, 한 장 한 장으로 채워 넣는 작업입니다. 언젠가 온전하고 완성된 사람이 되도록. 그러므로 기록하고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후패함과 상관없이, 그래서 기록하는 사람은 더할 수 없이 섹시한 사람입니다.


4. 감정에 대한 안내
감사와 즐거움은 쌍둥이다

있는 곳에서 불만거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세상은 온전할 수 없고, 사람은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아직 발생하지 않은, 너무 감사하게도 내게는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에 대해 굉장히 감사할 수밖에 없겠지요.


“한국에 가서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 게 평생의 소원입니다!” 동남아에 사는 A씨의 말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가서 공부해야죠.” 한국에 사는 B씨의 말입니다.
“발리나 세부, 동남아 해변 별장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있겠어요?” 유럽에 사는 C씨의 말입니다.


동남아에 사는 A씨는 한국에 가서 살고 싶어 하는데 한국에 사는 B씨는 미국이나 유럽에 가고 싶어 하고 유럽이나 미국에 사는 C씨는 동남아에 가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동남아에 사는 A씨가 한국으로 건너와 열심히 일해서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돈을 번다면, 한국의 B씨가 미국 아이비리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공했다면, 유럽의 C씨가 동남아에 가서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을 도우며, 본인들도 풍족한 삶을 산다면 아주 행복한 결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이런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이 지긋지긋한 땅을 떠나버릴 거야. 무조건 한국으로 가서 성공해야지 여기를 벗어날 수 있어.”
“미국이나 유럽 가서 공부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1등 하는 게 무슨 소용 있나? 여기선 비전 없어.”
“여기는 춥고 물가도 비싸고 쓸데없는 규제도 많아. 자연이 살아있는 곳에서 사는 게 최고지!”


이렇게 된다면 그들이 한국으로 가건, 유럽으로 가건, 동남아에 집을 짓건 그곳에서 다시 불평거리를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듭니다. 가진 것을 손에서 놓아야 하고, 지닌 것을 잃어가면서 감사보다는 불안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잃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감사할 수 있는 ‘꺼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불평할 수도 있고, 죽기 직전까지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불평을 늘어놓아 상황이 달라진다면 천 번이라도 불평을 하고 만 번이라도 그 불평을 들어주겠지만 불평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아니 불평은 아주 부정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불평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가 힘이 쭉쭉 빠지도록 만드는 놀랍도록 부정적인 힘. 감사는 정확하게 반대 기능을 합니다.


인생의 질곡을 지나온 노년의 감사는 여섯 살짜리가 4천원짜리 장난감을 받았을 때 큰 소리로 외치는 감사와 다릅니다. 더할 수 없는 영광의 순간을 지나왔고, 인생의 찬란한 시간을 지나왔지만 이제는 즐거움보다 후회와 슬픔이 더 많을 것 같은 존재. 훨씬 더 큰 상을 받아봤고, 훨씬 건강한 신체로 엄청난 것을 누려봤던 존재. 하지만 이제는 백발과 굽은 등과 흐릿한 눈을 가지고, 굵은 주름이 겹겹이 앉은 손을 꼭 모아 쥐고 말합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고맙구나. 고맙습니다.”
“뭐가요? 뭐가 그렇게 감사하세요? 이것보다는 더 누리셨어야 돼요.”
“아니. 이것도 못 누릴 수 있었어.. 감사한 일이다.”


수천 마디의 훈계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각인될 것입니다. 더 가지지 못해 화를 내는 후배에게 덜 가지지 않았음을 감사했던 선배는 매력적인 그 모습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5. 건강에 대한 안내
병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자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발생한 욕망이니 개인에 따라 덜하고 더할 뿐 누가 누구를 욕심 많다 탓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욕망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누구나 병에 걸리고 누구나 죽습니다. 완벽한 건강체로 살다가 쾅! 하고 교통 사고로 단번에 가지 않는 이상 노화는 신체에 기능 약화를 가져오고, 기능 약화는 병을 불러옵니다. 병을 불러오는 노화라는 것은 23세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어른이 되었다 생각한 순간부터 사람은 노화와 병과 죽음을 향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어차피 당할 일이라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태도뿐입니다. 그렇다면 병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이 매력적일까요?


첫째는 오지 않은 병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방을 위해 자주 검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전문가의 진단을 받기도 전에 어설픈 지식으로 자가 진단을 하고 그걸로 염려하는 것은 ‘찌질한 인간’으로 보이는 최고의 지름길입니다.


두 번째는 병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꿈 많은 젊은이에게 느닷없이 불치병이 찾아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병이 찾아온 ‘시기’가 부당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노화와 더불어 찾아오는 병은 대부분 그냥, 그렇게, 그럴 수 있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병에 대해 염려를 하는 것도,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도 옳은 방법은 아닙니다.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났으니 인정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얻은 병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파 죽을 것 같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밤에는 열이 펄펄 끓고…… 자기 증상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묘사해도 그 병을 앓아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아기를 낳아 본 사람만이 ‘산통(産痛)’이 얼마나 극심한 통증인지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증상에 대한 호소’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자기에게 찾아온 병에 대해 할 수 있는 데까지 정보를 모으고, 앞으로 내 몸에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알고, 준비하고, 나를 간호하거나 도와줄 사람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은 아주, 아주 성숙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태도일 것입니다.


네 번째는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즐기는 것입니다. 노화와 병은 때론 천천히 때론 느닷없이 신체의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분노하고 절망해도 변화는 진행됩니다. 그리고 아주 큰 불편을 끼치게 됩니다. 그런데 병 때문에 불편해진 사람이 신체 변화에 대해 화를 내거나 절망하면 주변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할 뿐 아니라 ‘화’와 ‘짜증’, ‘분노’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될 수 있으면, 아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기 십상입니다.


젊은 시절에 발생한 암은 그 활발한 신체 순환 속도에 따라 급속하게 퍼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발생한 암은 아주 천천히 전이된다고 합니다. 혹자는 아흔이 넘으면 몸에 더 이상 새로운 ‘병’이 생기지는 않는다고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벌어지는 일, 그리고 벌어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일. 그 노화와 병을 당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미리 준비하고, 연습하고, 그리고 준비한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데까지 즐기고, 나를 위해 애 쓰는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배려하는 환자라면 빌고 펑퍼짐한 환자복을 입고 있다 해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눈 맞추며 웃어주고픈 상대가 되지 않을까요?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