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일기

   
홍순범
ǻ
글항아리
   
12000
2008�� 12��



■ 책 소개
새내기 의사가 대학병원의 각 과를 두루거치며 틈틈이 기록한 15권의 수첩을 바탕으로 한 1년간의 인턴 수련기록을 책으로 엮어냈다. 질병과 생명, 의사와 환자, 병원과 간호사와환자가족에 이르기까지 의사의 길을 시작하는 인턴이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아가는 현장기록을 담았다. 

 


의사고시를 치렀던 날부터 인턴시험과 의사고시의 관계, 인턴 오리엔테이션의 경과, 인턴일정추첨의 긴장감, 안과•흉부외과•소아과•마취과•타 병원 파견 등 매달 근무지를 옮겨 다닐 때마다 이뤄지는 업무인수인계와 일과, 적응의 어려움과업무의 보람, 각과 의사들의 특징, 인턴이 맞닥뜨리는 힘든 과제 등을 이야기한다.


기증받은 시신에서 안구를 떼어내며 시체도굴꾼을 상상하는 장면, 애매한 환자를 두고 자신의담당이 아니라고 미루는 의사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온 환자가 아니면 돌려보내는 어떤 레지던트, 큰 병원에 병상이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환자를 밀어내는 일부 지방병원의 행태 등 내부자의 시선으로 본 의료 현실을 담았다.

■ 저자 홍순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프랑스에서 뛰놀며 프랑스, 스페인, 모로코, 알제리, 모리셔스, 사모아, 이란, 중국등지 출신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행운을 누렸다. 당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빵 광주리 나르며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동분서주하는모습을 보다가, 귀국해 학교에 처음 간 날 교장 선생님 앞에서 잔뜩 긴장하며 조아리는 선생님들을 목격하곤 인간과 환경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또 프랑스에선 줄곧 아이디어 좋다는 칭찬을 듣다가 우리 교실에선 너는 왜 교과서에 없는 질문을 하냐며 교과서나 열심히 보라는 핀잔만 듣게 되자몹시 당황한다. 교실 밖에선 국적, 인종, 종교, 성별, 나이, 진로에 상관없이 잘 어울려 놀았는데, 돌아와선 학교 운동장에서 선배들에게순진하게도 같이 놀자고 했다가 에워싸여 두들겨 맞자 충격을 먹는다. 그래도 곧 학교생활에 적응했고, 언제부턴가 ‘고통’이라는 화두에 심취해의과대학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전문의가 된 지금 인턴 시절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어렵사리 출판을 결심했다. 바야흐로 책을 내면서 저자는 살짝조마조마하다고 한다. 왜 교과서에 없는 문제제기를 하냐고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독자님들께 에워싸여 꿀밤 맞을까 봐.


■ 차례
여는 글


제1부 인턴, 잔치는 시작이다 _ 의사 시험
의사국가고시 | 인턴이라는 이름의 유래 | ‘애니’부터 ‘콧줄’까지 | 왠지 우울한 출근 전야


제2부 흡혈귀의 본능 _ 안과
퐁당퐁당과 풀당 | “저환자 눈썹 왜 깎았어?”  | 정맥주사  | 주문의 불문율 | 의사는 케토톱이 아니다 | 호두껍질의 미소 | 직업병증상 & | 전화통에 불나다 | 휠체어 체험기 | “안구 떼러 가” 


제3부 초심자의 마음 단련 _ 소아흉부외과(중환자실)
수요일을 줍다 | 자신감 완전 상실 | 긴급 상황 | 아이의 눈 | ‘지겨워’에 대한 납득 | 굶주린도적 떼 | 거미 모양의 냉기 | 중국집의 논리 | 어설프나마 사랑일까? 


제4부 무협선수의 탄생 _ 내과(중환자실)
조용한전쟁, 잊혀진 장군 | 무협선수의 탄생 | 피투성이 오후 


제5부 비몽사몽 클럽 _ 일반외과
공간 건축학적 접근| 침대쟁탈전 | 폭포수에 대한 추억 | 불편한 적자 공식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기도 | 딜레마 


제6부 월든에서 명상하기 _ 제주의료원 파견
여기가낙원인가 | 스타카토식 보고 | 정신과와의 만남 | 아픈 기억 |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 | 가운에 대한 변명 | 운명의 여신이여 | 저 구름들위에서…


제7부 남자상, 여자상 차려라 _ 마취과
다시 서울로| 마취와 철판요리 | 수비수도 격려가 필요해 | 조금 더 안다는 것 | 여의사는 원더우먼이 아니다 | 소리와 맛의 향연 | 진로에 대한 고민


제8부 갈등의 순간들 _ 응급의학과
가위 바위 보 |유비무환 | 응급실 교통 정체 | 돌이킬 수 없는 | 마음의 박수 | 거울의 메시지 |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 반전 드라마 | 우리에게도예외는 없다 | 쯔쯔가무시병 | “신환이요!” | VIP 증후군


제9부 환자와 시험의 갈림길 _ 신경외과
신경외과가정주부 | 대리 출석 | 24시간의 기적 | 누구는 새벽에 피 뽑고 싶은 줄 알아요? | 심란한 메뚜기 | “저 아뻬인데요” | 씁쓸한 무용담| 운명의 사다리 


제10부 한밤의 환자들 _ 보라매(응급실)
불리한 입장| 장갑은 두겹으로 | 소통의 실패 | 도망간 감기 | 보람 있어서 보라매 | 레지던트 선발시험 | 문이 열리다 | 곤혹스러운 복창 | 어떤레지던트 | 크리스마스의 환자들 |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 중년 여인의 발길질 | 씁쓸한 기대 


제11부 인턴의 영겁회귀 _ 보라매(소아과)
정맥주사의새로운 경지 | 내공 불변의 법칙 | 녹초가 된 아기 앞에서 | 봉창 두드리지 마세요 | 불쌍한 방법도 가지가지 | 마법의 야자수 열매 |역지사지 | 묘한 인연 | 너무 잘하지 마라 | 되살아난 악몽 | 1년간 수고했다 


닫는 글 
부록 _ 의사들이 과학으로 생각하는것




인턴일기


인턴, 잔치는 시작이다 _ 의사 시험
인턴이라는 이름의 유래

인턴 선발 경과가 오전 10시에 발표될 예정이었다. 어제까지 이틀에 걸쳐 본 시험은 의사 국가고시였다.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의사 면허를 취득하게 된다.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며칠 더 있어야 나온다. 오늘 결과가 발표되는 것은 서울대학교 병원 인턴 선발 시험이었다. 병원에 가서 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대학로로 향했다. 원내 게시판 앞에 이르니 친구 둘이 서 있었다. 합격자 명단을 쳐다보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나는 인사를 건네기에 앞서 명단부터 슬쩍 확인했다. 내 이름을 발견했다. 눈빛으로 도장이라도 찍듯 내 이름 석자를 한동안 힘주어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른 친구들의 이름도 살펴보았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 때 어깨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핵의학과 레지던트인 친한 형이었다.


“축하한다.”


그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아니, 인턴 되는 일이 축하할 일 맞나?”


인턴은 1년 동안, 보통 한 달을 단위로 소속된 과를 바꿔 다니며 일한다. 그래서 인턴(intern)이라는 이름 자체가 병원 안에서(in) 뱅뱅 돌며(turn) 일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와 반대로 레지던트(resident)란 이름은 각 과에 거주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비롯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인턴마다 1년 동안 돌아야 하는 과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1년 내내 누구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과만 경험할 수도 있고, 누구는 죽도록 고생하는 과만 경험할 수도 있었다. 인턴을 수료하면 그 다음에는 레지던트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레지던트가 되기 위해선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한다. 따라서 인턴 일정의 강도는 레지던트 선발 시험 준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시험을 바로 앞둔 10~11월 무렵에 상대적으로 얼마나 여유 있는 일정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 운명은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


교수님 지휘 아래 우리는 한 사람씩 칠판 앞을 지나갔다. 먼저 추첨을 끝낸 친구들이 자신이 고른 종이 막대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 표정들이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대개는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내 차례는 거의 맨 마지막이었다. 내가 칠판 앞에 섰을 때에는 종이 막대기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때 하나가 특별히 크게 보이는 것 같았다.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칠판에서 떼어냈다. 그리곤 안쪽 면을 보았다.


안과, 소아흉부외과, 내과, 일반외과, 제주, 제주, 마취과, 응급실, 신경외과, 보라매, 보라매


올 3월부터 내년 1월까지의 일정이 적혀 있었다. 추첨이 끝나자 서로 일정을 비교해보고 마음이 맞으면 교환할 수 있도록 별도의 시간이 마련되었지만 내 일정에 흥미를 보이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흡혈귀의 본능 _ 안과
퐁당퐁당과 풀당

샤워 후 출근 준비물들을 챙겼다. 가운과 청진기를 비롯해 진료에 필요한 장비들은 물론이고 비누, 치약, 칫솔, 수건 등등 병원 안에서 사람답게 살아 내기 위한 소소한 도구들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안과학 책을 포함해 몇 권의 크고 작은 책들도 담았다. 과연 책 볼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아무튼 쑤셔 넣었다. 마음만큼 무거워진 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는데 현관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구나!”


도살장에 당도해 옷부터 갈아입었다. 수술실 안에서는 환자를 제외한 모두가 수술실 복장을 입어야 한다. 안과 수술실에 들어섰는데 아직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전임 인턴 선생님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소아 안과 환자들에게 정맥 주사를 놓느라고 늦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수술실로 와야 한단다. 아이들에게 주사 놓는 것은 초보 인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 중 하나다. 당장 할 일들을 인계받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설명을 듣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를까 조마조마했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니 전임 인턴 선생님과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잘해낼 수 있었다. 의과대학을 괜히 다니진 않은 모양이었다.


아침에 배운 내용을 네 번 반복하자 오늘 수술이 모두 끝났다.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모여들고, 한가해 보이던 병동 분위기가 금방 분주해졌다. 오후 5시를 기점으로 신입 인턴들이 업무를 물려받았다. 전임 인턴들은 이제 각자 합격한 과의 레지던트 1년차가 되었다. 수술실에서 이미 꽉 차 버린 뇌에 또다시 인계해주는 내용을 쑤셔 넣었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이어서 인턴 당직 일정을 짜야 했다. 사실 이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인턴이 둘뿐이니 서로 번갈아 이틀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면 됐다. 일명 ‘퐁당퐁당’이다. ‘퐁’은 당직이 아닌 날, ‘당’은 당직인 날. 그래서 ‘퐁당퐁당’이면 이틀에 한 번 당직, ‘퐁퐁당’이면 3일에 한번 당직이다. 만약 ‘풀(full)당’이면 매일 당직이다.



초심자의 마음 단련 _ 소아 흉부외과(중환자실)
긴급 상황

슬슬 환자들 혈액 검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3년차 선생님이 당직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 못 들었어?” 그렇게 외치며 눈 깜짝할 새 중환자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때 중환자실 안쪽에서 근무하던 소아과(현 소아청소년과) 선생님도 쏜살같이 내 앞을 지나 달려 나갔다. 그때서야 감이 잡혔다. 병동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방송이 난 것이 분명했다. 심폐소생술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일단 가서 무어라도 도와야 할 것 같았다.


저만치 어느 병실 앞에 젊은 엄마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들 놀라서 망연자실 병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더 이상 다가가기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무어라도 도와야 할 것 같아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막상 긴급한 상황에 닥쳐 내가 과연 능숙하게 도울 수 있을까? 성인 환자라면 몰라도 소아 환자의 심폐소생술은 가물가물했다. 그래도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병실 앞으로 나아갔다. 그동안 두려움이 점점 더 고조되었다. 마침내 문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금방이라도 급박한 지시 사항들이 병실 안에서 나를 향해 쏟아져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병실 안은 이미 많은 의사, 간호사들로 붐비고 있었다. 환자는 침대를 둘러싼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도 내게 관심 갖는 이는 없었다. 조금 안심이 되어 병실 안으로 몇 발자국 더 들어갔다. 솔직히 그 환자를 도울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 내 곁에 그런 환자가 다시 생기면, 그 때에는 내가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때를 위해 무엇이라도 보고 배우려고 더 가까이 다가가 ‘구경’하고 싶었다. 환자야말로 가장 고마운 스승이라는 말뜻을 정녕 실감했다. 그때 심폐소생술을 지휘하던 선생님이 소아 중환자실에 있는 혈액 검사 기계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소리가 내 귓구멍으로 쏙 들어왔다. 내가 끼고 살다시피 하는 바로 그 녀석 아닌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기계로 혈액 검사를 했다. 그 기계라면 자신 있었다. 드디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재빨리 중환자실로 내달렸다. 나란히 놓인 두 대의 검사 기계 중에서 손잡이가 달린 놈을 골라, 전선을 뽑기 위해 뒤쪽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본 간호사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기계를 병동으로 가져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베테랑 간호사 여럿이 합창했다. “그거 못 갖고 가요!”


알고 보니 다른 장소로 옮기면 복잡한 설치 과정을 다시 처음부터 밟아야 했다. 때문에 응급 상황에는 가져가보아야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헤파린 처리된 주사기들만 한 움큼 집었다. 그 기계를 이용해 혈액 검사를 하기 위해선 주사기에서 피가 굳지 않게 안쪽에 헤파린을 묻혀야 했다. 물론 그런 주사기가 없더라도 일반 주사기에 필요할 때마다 직접 헤파린 처리를 해서 사용할 수 있었고 병동에선 보통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헤파린 처리된 주사기들을 한 움큼 쥐고 다시 달렸다. 계단을 몇 개씩 나는 듯이 뛰어올라갔다. 병실 안으로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곳에선 이미 일반 주사기로 혈액을 뽑아 중환자실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나는 가져온 주사기들을 머쓱히 내려놓았다. 혼자서 무슨 쇼를 한 것 같아 민망했다.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소아 중환자실에선 3년차 선생님이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방금 검사 기계를 통째로 옮기려 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얼마 후 다시 그 환자의 혈액을 갖고 인턴이 내려왔다. 그런데 기계 사용법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내가 재빨리 다가가 가르쳐주었다. 그 순간 그 친구 손에 든 주사기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갖다 놓고 온 주사기였다. 적어도 백지장 한 장만큼은 도움이 되었구나. 말도 안 되는 쇼를 벌였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어렴풋하게 위로와 격려의 박수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비몽사몽 클럽 _ 일반외과
공간 건축학적 접근

일반외과 인턴의 하루를 병동, 수술장, 다시 병동, 대학로 순서로 이동하며 엿보자.


1. 병동
아침 6시 30분까지 병동에 출근한다. 옷걸이 모양의 기다란 금속 막대기들이 서 있다. 야자수 열매 같은 약병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인턴이 정맥 주사를 놓아 투약할 약들이다. 그러나 먼저 해야할 일들이 있다. 콧줄을 삽입하고 관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수술을 시작할 수 있다. 간혹 콧줄이 잘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다. 금방 애가 탄다. 제한된 시간 내에 마치고 수술장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관장은 보통 수술 전날 저녁과 수술 당일 아침에 한다. 이렇게 환자를 위아래로 괴롭힌 다음 나머지 시간 동안 야자나무들을 처리한다. 정맥 주사를 놓고 야자수 열매를 연결한다. 그리곤 아침 7시 30분쯤 첫 수술에 참여하기 위해 수술장으로 내려간다. 


2. 수술장
수술 중에 인턴은 주걱이나 효자손 비슷한 연장들을 힘껏 당기고 있다. 환자의 복벽이나 장기에 이런 연장들을 걸어 당김으로써,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께 수술 시야를 확보해 드린다. 의과대학 수업 시간에 팔 힘을 길러 놓으란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는데, 꽤 힘들다. 개복수술 때 환자는 보통 양팔을 벌리고 누워 있다. 그러면 환자의 오른쪽 겨드랑이에 제 3조수인 인턴이, 왼쪽 겨드랑이에 제 2조수인 주치의가 서서 서로 마주한다. 주치의와 인턴 옆에 각각 제 2조수인 병동 수석의 선생님과 집도의인 담당 교수님이 서서 역시 마주한다. 환자의 머리 위쪽에 마취과 선생님, 허리 아래쪽에 수술실 간호사가 자리한다.


3. 다시 병동
하루의 수술이 다 끝날 무렵 일반외과 병동에선 다양한 일들이 인턴을 기다리고 있다. 진단방사선 필름 찾아오기, 심전도 결과지 찾아오기, 정맥 주사 놓기, 채혈하기 등등. 필름들을 찾았으면 판독을 받아야 한다. 판독 분야별로 진단방사선과 선생님들을 일일이 찾아간다. 1층에서 필름 일을 해결하면 3층으로 올라간다. 심전도 결과지들을 찾는다. 이렇게 1층과 3층에서 검사 결과들을 수집해 5층 병동으로 올라오는 것이 일이었다.


4. 대학로
회진을 돌고 대강의 일을 마치면 병원 밖으로 나간다. 병동 단위로 팀이 있는데, 외과계열은 대개 팀워크를 중시한다. 또 일반외과는 소화기계를 주로 다루기 때문인지 전통적으로 먹는 일을 무척 중시한다. 그래서 저녁 식사만큼은 별일이 없는 한 함께 나가 먹곤 했다. 이는 개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따라서 급한 업무는 식사 나가기 전에 필사적으로 끝내야 했고, 나머지 업무는 식사 마치고 돌아와서 해야 한다.



남자상, 여자상 차려라 _ 마취과
마취와 철판요리

밤에 응급 수술이 생기면 마취과 당직 인턴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받는다. “남자상 차려라.” “여자상 차려라.” 야식 밥상을 차리라는 뜻이 아니다. 수술 받을 환자의 성별에 따라 마취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마취 준비실로 향한다. 그곳에 네모반듯한 쟁반들이 출전을 기다리는 병정들처럼 가지런히 정렬해 있다. 각각의 쟁반 위에는 물결 모양의 주름이 잡힌 호흡 튜브, 마스크, 손으로 짜면 다시 부푸는 주머니, 칼날과 손잡이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후두경, 기관 내에 삽입하는 튜브 및 튜브 내에 꽂아서 사용하는 금속 탐침 등 갖가지 마취 준비물들이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으며, 남자용과 여자용이 구별되어 있다. 환자가 남자면 남자용, 여자면 여자용 쟁반을 챙겨 수술실로 향한다. 따라서 쟁반이 나가는 마취 준비실은 주방에, 환자를 맞이하는 수술실은 식당에 비유할 법하다.


쟁반을 갖고 식당에 가서는 마취기계를 켜고, 호흡 튜브, 마스크, 주머니를 연결하고, 누출 검사를 하고, 모니터를 점검하고, 혈압, 심전도, 산소포화도 측정 선들을 환자에게 연결하기 좋게 해놓고, 기관 내에 삽입하는 튜브의 풍선 검사를 하고, 후두경에 불이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기관 내 삽관 후 튜브를 고정하기 위한 테이프를 뜯어놓는 것 잊지 말고, 필요한 약들을 주사기에 재어놓는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 정도가 대략 기본적인 준비에 해당하고 그 밖에 환자 상태, 수술 종류 등에 따라 추가하거나 변경할 것들이 있다. 그것까지 완료하여 마취 준비를 모두 마치고 나면 비로소 환자 한 사람의 마취 상차림이 된다.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오면 마취과 선생님이 요리를 시작한다. 요리치곤 섬뜩하다. 주문이 아니라 동의를 받았으니까. 주방에선 재료만 내오고 손님 앞에서 본격적으로 솜씨를 뽐내는 점에선 고급 철판요리 음식점과 비슷하다. 손님은 곧 잠이 들어 요리사의 솜씨를 보지 못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갈등의 순간들 _ 응급의학과
가위 바위 보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함께 일할 열 한 명이 인턴 당직실에 모였다. 오리엔테이션을 막 받으려는데 연락이 왔다. “오늘 근무할 인턴 선생님들은 빨리 응급실로 와 주세요.”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내뱉었다. “이제 10월이니 알아서들 잘하겠지.”


이 한 마디로 오리엔테이션을 건너뛰었다. 즉시 근무 순서를 정했다. 톱니바퀴 같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낮 근무를 나흘간 하고, 48시간 휴식. 다시 오후 8시부터 오전 8시까지 밤 근무를 나흘간 하고, 24시간 휴식. 이런 톱니바퀴 열 하나가 한 달 동안 잘 맞물려 굴러가야 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했다. 오늘부터 나흘간이 추석 연휴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휴식이 오는 톱니바퀴가 인기였다. 친구들이 가위 바위 보로 결정을 보는 동안 나는 멋모르고 조용히 있었다. 그러자 당장 일을 시작해서 연휴 내내 출근하게 되었다. 달력에서 빨간 날엔 환자들이 모두 응급실로 온다. 응급실은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


응급실로 나가보니 떠나야 하는 인턴들이 두세 권씩 차트를 들고 후임 인턴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친구에게 인계를 받았다. 그 친구 손에 있던 세 권의 차트가 고스란히 내 손에 떨어졌다. 동시에 새로운 환자들이 응급실에 밀려들었다. 그리고 죽 이어졌다.


본원 응급실에는 어려운 환자들이 많았다. 그만큼 인턴의 권한은 적었다. ‘응급실 교통정리’가 인턴의 일이었다. 어느 환자가 무슨 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판단하고, 기본 처치를 한 뒤 해당 과 선생님께 연락하는 일이었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환자들로 힘들었다. 정신 차리고 옆을 바라보았다. 여자 인턴 둘과 눈길이 마주쳤다. 그런데 놀라웠다. 한 친구는 보라매 병원 응급실에 비하면 일도 아니라며 느긋해했다. 또 한 친구는 한라 병원 응급실에서 두 달 근무했더니 응급실 근무에는 자신 있다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였다! 사실 바쁘기는 셋 다 비슷했다. 내가 더 느린 것도 아니었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몇 리터씩 피를 토하는 환자가 압권이었다. 그 고비를 넘기자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밤 근무 인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응급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다. 학생 때부터 겪지 않았던가? 이 친구들이 어떤 친구들인데. 걱정되어 곁눈질해보면 어느새 나보다 더 잘하고 있던 친구들 아닌가!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다들 미소를 머금고 내 손에 차트 더미를 안겨줄 테지.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했다.



한밤의 환자들 _ 보라매(응급실)
도망간 감기

엊저녁부터 몸이 찌뿌드드하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 뒤와 허리가 쑤시고 목구멍이 깔깔하여 침을 삼킬 때마다 쓰렸다. 머리도 욱신거렸고 미열이 느껴졌다. 출근하면서 어떻게 근무하나 몹시 걱정되었다. 길고도 힘겨운 24시간이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저녁때까지 그리 바쁘지 않아서 걱정했던 것보다 덜 힘들었다. 30분 정도 짬을 내어 눈을 붙이기까지 했으니 이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밤에는 중환자들이 태풍처럼 밀려들었다. 한결같이 다들 생명이 위독했다. 응급처치 후 해당하는 과에 연락했더니, 결국 내과, 신경과, 신경외과, 일반외과 선생님들이 동시에 내려와 각자의 중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기관 내 삽관이 되지 않는 환자가 있어서 마취과 선생님도 불려 왔다. 여기에 일반외과 선생님들은 보라매 병원으로 실습하러 온 학생까지 데리고 내려왔다. 신경과 환자는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신경과 당직 인턴이 구급차에 동행하기 위해 응급실로 내려왔다. 결국 응급실이 온통 흰 가운으로 북적이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만큼 바빴던 시간도 어느새 지나갔다. 새벽이 되어 한숨 돌리고 보니 내 몸 아프던 것도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 하루 만에 나을 몸이 아니었고 며칠은 가지 싶었는데 신기했다.


보람 있어서 보라매
레지던트 선발 시험이 그야말로 코앞에 닥쳤다. 그러나 도무지 공부할 수가 없었다.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면 아침을 먹은 뒤 쓰러져 자야 했다. 공부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시도해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이상 지속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내용이 기억에 남지도 않았다. 그냥 자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해버렸기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레지던트 선발 시험에 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보라매 병원 응급실 근무에 대하여 익히 들어온 악명은 대개 사실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즐거운 점도 있었다. 인턴 수련을 마칠 무렵에 여기에서 일하게 되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보람 있었다. 보람 있어서 보라매. 그래서 나는 시험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응급실 근무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현재의 보람을 계속 즐기는 방법일 것 같았다.


문이 열리다
합격했음을 확인하는 순간 대박을 터뜨렸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감사하다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내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 아니라 대박이 나를 찾아와 어루만져 주었다 싶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났다. 올해 신경정신과 레지던트 선발 인원은 여섯, 지원자는 나를 포함해 아홉. 불합격한 셋 대신 내가 합격해야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때문에 이는 행운이자 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졌다. 다른 과 합격자 명단도 살펴보았다.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동료들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새삼 내가 운이 좋은 것 같았고 자꾸만 더 감사했다.



인턴의 종착역 _ 보라매(소아과)
마법의 야자수 열매

여섯 살 남자 아이의 정맥 주사 맞은 부위가 부어서 다시 놓게 되었다. 그런데 어이쿠! 며칠 전 처음 입원해 정맥 주사 놓을 때 하도 소리 지르고 발버둥치며 안 맞겠다고 겁을 내서 참 애먹었던 바로 그 아이가 아닌가! 아이 아빠까지 합세하여 붙잡았지만 당해낼 수 없었고, 나도 처음에는 어르다가 소용없어 야단치게 되었고, 밖에 있던 간호사도 들어와 야단치고, 결국 모두 달려들어 붙잡고 겨우 주사를 놓았던, 난리법석 그 주인공이었다. 정작 주사를 맞고 나서는 생각만큼 아프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던 웃기는 녀석이기도 했다.


‘오늘도 한바탕하는 날이로구나.’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아이는 순순히 치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주사 맞는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어찌 된 영문이지?’ 워낙 얌전해서 침대 위에 눕힐 필요도 없었고, 그냥 선 채로 지난번과 반대쪽 손등에 주사를 놓았다. 주사바늘을 보면 한바탕 시작하지 않을까 잠깐 걱정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살갗이 주사바늘에 찔릴 때 조금 아파했을 뿐인데, 그 정도야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지난번에 난리쳤던 사람이 아닌가보다고 내가 놀라움을 표시하니 아이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은 완전히 어른처럼 맞았는데!” 내가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칭찬하니 아이는 뿌듯한 눈치였다. 그때 같은 병동에 입원한 일곱 살 남자 아이가 치료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수액을 달고 있었는데, 며칠 전 주사 맞을 때 한 살 위의 형답게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입원한 환자들이 대부분 한두 살 아기들인 병동에서 두 아이는 형과 아우 사이로 친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은 아우도 형에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란히 걸어 나가는 두 아이의 의젓한 뒷모습을 보면서 웬일인지 내 마음이 뿌듯해졌다. 마치 내가 놓은 수액 주사가 마법의 야자수 열매라도 되어서 이 아이들이 쑥쑥 성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1년간 수고했다
인턴 생활이 아직 한 달 남아 있었다. 애초에 인턴 일정을 정할 때 마지막 2월은 공란으로 비어 있었다. 레지던트 합격 상황을 보고 정하는 편이 좋기 때문이었다. 각 과에선 가능하면 그 과에 선발된 사람들 위주로 인턴을 데려갔다. 결국 내가 신경정신과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자신이 합격한 과에서 마지막 달에 일하면 통상적인 인턴 생활과는 좀 달라진다. 따라서 보라매 병원 소아과를 끝으로 이야기를 맺으련다.

?

보라매 병원 당직실에서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조금 걸어가서 길을 건너 버스 정류장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1월 말의 차가운 공기가 나를 에워싸고 있었을 테지만 추웠던 기억은 없다. 그 대신 햇살이 참 화창했다. 마지막 날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면 그 순간이 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방을 뒤적여 수첩을 꺼내 글을 쓰느라 그 순간의 감상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년간 수고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