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행복을 부탁해

   
조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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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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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 책 소개
주부는 아내의 또 다른 이름이며, 한집안의 며느리이자, 몇 아이의 어머니이자, 수많은 아줌마의 대표 명사이다. 이 시대의 주부는 누구로부터 일상의 안위를 얻고, 행복을 맛보고,삶의 쾌락을 얻을까? 

 


이 책은 50대의 한 남성이 친구 삼고 지내는 수많은 아줌마들과 나눈 수다를 바탕으로 엮은책이다. 회사의 지시에 따라 "주부 행복 찾기"에 나선 그는, 회사 직원 아내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주부 교육이란 곧 "아내 행복 교육"을의미한다. 그 업무를 수행하면서 만나고 들은 경험을 하나하나 모아, 주부들을 위한 행복 이론을 제시하였다. 


■ 저자 조재권
1959년생. 중앙대학교 경영대학에서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현대중공업 인재교육원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회사의 명을 받아 순전히 회사일로 시작한 가족교육 담당 업무를 통해자연스럽게 ‘주부’와 ‘가족 사랑’에 눈뜨게 되었다. 전작 『대한민국, 행복까지 챙겨라』가 ‘가족이 만드는 행복’을 주제로 한 에세이라면 이책에서는 ‘일상에서 빚어지는 주부들의 고충과 건강한 행복 만들기’를 다룬 좌충우돌 ‘주부 행복 찾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교육생아줌마들이 붙여준 ‘영자’(운영자에서 ‘운’자를 뗀 말)라는 별칭을 훈장처럼 가슴에 품고 살면서 오늘도 ‘주부의 행복이 곧 가정의 행복이자동료의 행복’임을 확신한다. 그의 주부행복론은 이 시대를 우울하게 사는 주부들에게, 그리고 주부들의 우울을 잘 모르는 대한민국 가족에게 꼭필요한 방점일는지도 모른다.


■ 차례
저자의 말 - 어찌 주부가 행복하랴마는,그래도 
프롤로그 - 하와의 넋두리 


벼리 1 - 주부 행복 찾기, 두 배로 어렵다
주부들의 행복 여건 
나는 행복하지 않아 
그녀들의 혼란 
늘 행복이 그립다는 막무가내 아내 
멍에 총정리


벼리 2 - 행복을 그려 보자 
긍정은 행복의 연결고리
현재의 행복, 바라는 행복 
행복 찾아 나서기 


벼리 3 - 주부여! 세상 행복을 부탁해 
무조건행복한 어머니 
최윤희! 배울 만한 200% 행복 
현대주부대학에서 만난 그녀들 


벼리 4 - 세상아! 주부 행복을 부탁해
가족이동참하는 행복한 주부 만들기 
현대주부대학! 그 존재의 의미 
우리 시대가 배려해야 할 주부 행복 
평등한행복


에필로그 - 하나님의 답변 
쓰고 나서 - 해량해 주시기를……
부록 - 행복한주부의 고정관념 깨뜨리기





주부 행복을 부탁해


벼리 1_ 주부 행복 찾기, 두 배로 어렵다
주부들의 행복 여건

- 결혼한 여자의 호칭에 대한 작은 생각
주부들의 행복 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잠깐만 함께 생각해보자. 아내가 누구인지, 주부는 누구인지, 마누라는 누구인지, 여편네는 누구인지……. 우리가 흔히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그 호칭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는지를 말이다. 미리 밝히노니 여기에 언급한 의미는 말 그대로 사전적(辭典的), 대한민국의 나랏말인 국어사전에 언급된 공식적(公式的)인 의미이다. 사실 사전적 정의라는 데 더욱 놀라울 뿐이다. 그러하니 사전적 의미를 읽고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라.


아내부터 들여다보자. 아내는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란다. 주부(主婦)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이자, 한 집안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사람의 아내’를 이른단다. 아이고, 여기서부터 우리 아내들의 역할과 지위가 결정되는 대목이다. ‘제사를 맡아 받드는 사람의 아내’라니! 마누라는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중년이 넘은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여편네는 여편(女便)이라는 한자말에 같은 처지의 사람을 뜻하는 우리말 ‘-네’의 접사를 붙인 명사이다. 그 의미는 ‘결혼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기도 하고, 자기 아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란다. 이뿐만 아니라 여자를, 여성을 지칭하는 많은 의미의 단어가 있다. 그 가운데 결혼한 여인을 이르는 호칭들은 대부분 썩 좋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남성과 함께 사용되는 의미일 경우에는 사전적 정의가 점잖은 편이지만 그렇지 않고 단독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사전적 정의에도 ‘속 되게’, ‘낮잡아’라는 설명이 붙는다. 남성인 내가 보기에도 어딘가 모양새와 의미가 편치 않다. 나조차 집사람에게 주부라는 딱지를 붙여준 장본인이라는 소리이지 않은가. 나와 결혼한 그 순간부터 주부라고 역할 지어진.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은 가장 보편적인 단어가 있다. ‘아?줌?마.’ 아줌마란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고, 여기서 아주머니는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는 말’이다. 주인 아줌마, 강남 아줌마 등의 쓰임새이다. 이미 우리 국어사전을 넘어 먼 나라의 세계대백과사전에까지 오른 이 단어. 그 사전에 의하면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낮추어 이르는 말은 ‘전 세계에서 오로지 대한민국에만 있단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흔하게 쓰는 이 호칭들부터 남녀가 유별하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는지. 이 호칭들이야말로 ‘주부들 행복 여건’의 시발점이 아닌가 말이다.


남편, 그리고 그 사랑의 결실들
주부들의 행복을 응원하고, 격려해야 할 가장 가까운 종족은 남편이다. 그들이야말로 주부들의 행복 요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세상의 모든 남편은 아내를 낮밤(?)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졌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종족은 역시 사랑의 결실인 자녀들이다. 그들도 주부들의 행복을 응원하고 격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자녀들에게 이런 책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우선은 그렇다. 그런데 주부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문득 남편, 그리고 자녀들 덕분에 당신들(주부들)이 행복한지 궁금하다. 남편, 그리고 그 사랑의 결실인 자녀들과의 삶이 짜증나고 힘겨운 경우가 제법 있다는 것을 나는 주위의 주부들에게서 숱하게 보아왔다. 여러분은 그렇지 아니한가? 심지어 남편이나 자녀들이란 존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렇게 주부들을 추궁하기도 한다. “당신은 왜 그렇게 살아?” “엄마, 그렇게 살지 마. 제발!”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벼리 2_ 행복을 그려 보자
현재의 행복, 바라는 행복

- 자기로부터의 혁명
회사 직원들을 교육할 때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말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말이 바로 ‘변화와 혁신’이다. 교육 업체들은 종업원들을 변화시키고, 혁신 마인드를 가지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과정들을 개발하고 열렬히 프레젠테이션한다. 교육 담당자들도 이 말이 빠진 교육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과정을 도입하면서 이 말이 빠지면 마치 직무유기를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은 직원 교육에 있어서 약방의 감초와도 같다. 변화와 혁신! 그런데 이 말만큼 주부들에게 생소한 단어는 없다. 드라마에서도, TV의 아침 교양 프로그램에도 잘 나오지 않는 말이다. 주부는 ‘변화와 혁신’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 취급받는다. 남편이나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변화하고, 혁신하며 사는 것이지 가정주부가 무슨 변화와 혁신?


변화와 혁신에서 주부들이 은연중에 낙후된 결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07년 현대주부대학 입학생 400여 명 가운데 컴맹은 60%를 상회했다. 주부 두 명 중 한 명은 컴퓨터를 사용해 보지 않은 꼴이었다. 그녀들이 무슨 극빈층 주부들도 아니고, 문화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가정의 주부들이었는데도……. 한글을 모르는 주부들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들이 그렇게 낙후된 삶을 산 세월이라야 고작 10년 안팎이었다. 1997년 무렵에는 인터넷을 능수능란하게 다룬 이들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니 주부들 가운데 컴퓨터가 익숙한 이가 적다는 것이 그다지 큰 흉이라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2007년 울산 동구 지역의 가구당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 요즘은 유치원생만 돼도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수준이다 보니 자녀들 가운데 컴맹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들 역시 직장에서 모든 문서를 전자 서식화하다 보니 컴맹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럼 주부들은? 살림에 바쁘고, 남편 뒷바라지에 바쁘고, 하루하루 아이들 챙기기 바빠 컴퓨터를 배울 겨를이 없었다. 대개의 주부들(엄마들)은 컴퓨터 잘 다루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지만 아이의 바쁜 공부를 방해할까 두려워 아이이게 컴퓨터를 배우지 못한다. 그렇다고 일 년 365일 일에 치어 허덕대는 남편에게 기대 컴퓨터를 배우자니 그 또한 못할 노릇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세상 변화와 무관하게 생활하다 보니 자기계발을 도모하거나 생활 혁신을 꿈꾸거나 미래 비전을 세우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못한다. 그렇게 컴맹이라는 수치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사는 인생이 되고 만다. 지난 10년 동안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한 주부들이 잊고 산 세상은 이리도 빨리 변했다.


하지만 그대, 컴맹 주부들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현대주부대학에 입학한 주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컴퓨터를 교육받는데 컴맹으로부터 인터넷, 약간의 워드, 이메일 송수신, 웹 서핑을 익히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일주일 남짓이다. 그 정도만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면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들 컴퓨터 앞에 앉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미디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 일주일 남짓의 노력을 등한시한 것을 주부들도 인정해야 한다. 맨 처음 용기 내기가 어려울 뿐이다. 일단 배움을 시작하면 컴퓨터라는 기계가 아무것도 아님을 금세 깨닫게 된다. 일면 허망하기까지 하다. 고작 이게 두려워 내가 지금까지 피했던가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날 정도이다.


다시 본 줄기로 돌아가야겠다. 변화와 혁신! 주부들에게도 대단히 필요한 과정이다. 언제? 바로 지금! 10년 이상 주부 생활을 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집을 나서야 한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정보도 얻고, 친구들과 교류도 해야 한다. 학습을 시작하고, 학습한 것을 실습하고, 실습을 몸에 익혀 습관화시켜야 한다. 습관화하다보면 태도를 만들게 되고, 태도가 마음을 움직여 신념으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될 때까지 부단히 움직이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로부터의 혁명이다. 자기로부터의 변화이며, 자기로부터의 혁신이다. 주부들이여,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변화와 혁신을 시작하라.



벼리 3_ 주부여! 세상 행복을 부탁해
최윤희! 배울 만한 200% 행복

주부 450명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강의 만족도 100%를 받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강의 만족도는 ‘매우 만족, 만족, 보통, 불만, 매우 불만’의 5단계 중에서 ‘만족, 매우 만족’ 응답자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이다. 주부들은 원래 평가에 후한 편이라서 조금만 열심히 강의해도 90% 이상의 만족도를 받을 수 있지만, 100% 만족은 여간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 강의 만족도는 매우 주관적인 판단인지라 아무리 좋은 강의일지라도 ‘강의가 뭐 그저 그런대로 좋았어’라는 애매모호한 판정으로 ‘보통’이라는 답변을 최선의 응답이라고 생각하는 학습자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무성의나 장난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고, 덮어 놓고 ‘매우 불만’에 동그라미 치는 학습자도 있다. 또, 항상 반대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비토그룹 혹은 안티그룹도 있다.


이런 복합적인 여건 속에서 그야말로 승률 100%를 달성한 이가 있다. 그것도 2년 연속! 현대주부대학 개강 이래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앞으로고 쉽게 깨지기 힘든 이런 기록을 만든 이는 바로 최윤희 선생이다. 숱한 매체를 통해 너무도 잘 알려진 ‘행복디자이너 최윤희’! 그녀는 안티마저도 끌어안는 기막힌 재주를 지녔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200% 강사라고 부른다. ‘무조건 행복’을 ‘무조건’으로 주장하는 최윤희 선생은 하버드대학의 행복학 강의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긍정의 힘을 가졌다. 나는 이 초절정 고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단박에 그녀에게 매료됐고 하릴없이 좋았기에 결심했다. ‘최윤희학파’가 되기로!


최윤희학파의 첫 번째 특징은 ‘행복하려는 신념’이다. 신념이 있으므로 희망을 버리거나 굽히지 않는다. 그녀의 당당함은 이런 신념에서 나온다. 그녀의 신념은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가능성이 있을 때나 언제라도 변함없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는 얼마나 일희일비하는 존재인가? 인생을 비아냥거리고 삶에 조소를 보내는 이들에게 우리는 수없이 많은 회의를 듣곤 한다. ‘사는 것에 지쳤어. 힘들어’ ‘그냥 매일매일 때워.’ ‘앞이 보이지 않아’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세뇌한다. 그러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삶은 얼마나 가혹한 것이냐?’ 우리가 이렇게 맥없이 주저앉을 때 최윤희 선생은 일관되게 행복에 대한 신념을 놓치지 않았다.


최윤희학파의 두 번째 특징은 매일 기쁘게 행복을 챙긴다는 점이다. ‘희망’이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라면 ‘기쁨’은 지금 이대로의 삶을 즐기는 행복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까지 챙기는 삶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최윤희 선생은 하늘이 파란 것도 기쁨이요, 흐린 것도 기쁨이며, 꽃을 보아도 기쁘고, 지하철에 매달려도 기쁘다고 한다. 모든 게 기쁨의 연속일 뿐이다. 삶이 밝고, 여유 있고, 낭만도 있다. 그저 기쁘니까.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기쁨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금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쁘게 정면 돌파하면 된다. 이런 기쁨은 현대인이라면 반드시 학습할 필요가 있다.


최윤희학파의 세 번째 특징은 일관된 추진력이다. 추진력은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여기에서 추진력이란 무식하게 저돌적인 것만이 아니다. 운동선수들의 좌우명 중에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있다. 많은 선수들이 이 글을 자신의 일기장에 무수히 써넣으며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다. 훈련과 학습, 그리고 학습과 훈련은 적절히 서로 보완되어야 효과가 배가된다. 나는 최윤희 선생이 책이나 강의에서 인용하는 수많은 사례와 다양한 정보, 지식과 지혜에 늘 감탄한다. 이는 행복하기 위해, 행복을 전하기 위해 그녀가 한시도 쉴 틈 없이 열정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내가 느낀 것뿐만 아니라 시간을 인색하게 쓴다는 그녀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녀의 강의록을 읽다 보면 그 많은 시간 동안 이야기하면서도 강의를 꿰뚫는 일관성이 보인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의 체계를 만들어 강의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일관성 있는 강의를 하기 위해 그녀가 들인 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행복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야 두 시간에 가까운 강의를 단 한 장의 교안도 들지 않고 어떤 교육 보조 자료도 없이 꿰뚫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것이 일관된 추진력을 가진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행복도 추진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행복이 그냥 주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애써 찾고, 노력하고, 힘써야 얻을 수 있는 것이 그야말로 행복다운 행복이 될 것이다. 주변에 널린 행복을 수집하고, 그 행복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그런 노력에 관한 한 우리는 최윤희 선생에게 한 수 배우지 않을 수 없다.


최윤희학파의 네 번째 특징은 ‘긍정심리학’을 자신의 생활 속에 접목시켜 실험한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심리학의 한 분야인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하게 되면 일상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논리적 근거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들, 이를테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긍정의 힘』, 『해피어』까지 모두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서술한 책이다. 그런데 이런 책들보다도 그녀의 ‘긍정’은 실천적인 면에서 한 수 위로 보인다. 극한적인 상황에서 긍정의 힘을 믿고 적극적인 추진력으로 자신의 생활 속에서 처절하게 실험하고, 또 실천하고 있다. 그녀는 긍정의 힘에 대한 가설을 실천으로 입증해 보이는 전사인 셈이다.


최윤희학파 행복의 마지막 특징은 바로 실증이다. 실제로 실천해 보이는 것이다. 해보니까 된다는 식이다. 해서 됐다는데 설득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나는 그녀의 강의로 인해 무한정 행복해졌다. 그렇기에 최윤희학파 행복 디자인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행복하게 꿈꾼다.



벼리 4_ 세상아! 주부 행복을 부탁해
정부와 사회여! 그대들도 주부를 격려하자

선거철이 되면 여성들을 위한 각종 공약이 만발한다. 이른바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된 이후 여성을 위한 정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그 공약들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과정을 거친다. 담당 부서가 생기고, 담당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고민한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 4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란다. 여성의 일자리 창출, 성차별 해소 등 평등 지향적이던 지금까지의 여성 정책과는 달리 여성의 생활 속 불편?불안 요소를 없앰으로써 교통, 주택, 문화 등 도시생활 전반에 걸쳐 여성들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란다. 여성 친화적인 사회?문화 환경을 조성하여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사항을 개선하자는 취지가 획기적이라면 획기적이다. 그 시도가 가상하다.


서울시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 같은 변화를 공감하고 동참하기를 서두르고 있다. 여성들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정책이라면 앞을 다툴 자세가 되어 있다. 이들이 내어 놓는 여성들을 위한 배려는 그야말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정말 그 모든 것이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여성의 세상은 한결 풍요로워지고, 보다 안락해질 것이다. 이처럼 여성을 위한 수많은 정책이 계속 꽃 피워질 전망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앞장서서 선구자의 역할을 한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이다. 나는 그런 페미니스트들의 공로를, 전형적인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대변인이 되어 여성들의 평등한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열심히 싸운 그녀들의 공로를 사심 없이 인정한다. 진지한 학습을 통한 여성 문제로의 접근과 여성 운동의 전개가 이루어낸 개가라고 본다. 그녀들로 인해 불과 10년 만에 대한민국의 여성들의 지위는 현격히 높아졌다. 나는 여성들의 평등한 행복을 위한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한 가지 다짜고짜 부언하고 싶다. 똑똑한 일부 여성들의 권력 투쟁 도구로서가 아니라, 미혼 여성들의 막연한 기대에 대해 아첨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진정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평범한 주부들을 위한 정책이 만발했으면 하는 바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봐주지도 않는 가정에서 헌신하는 주부들을 위해 그녀들이 가정을 위해 헌신한 시간 동안 얼마나 사회가 변화했는지 알려주고, 그녀들에게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동안 골몰하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정책이 만발하면 좋겠다. 매스컴에 주부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고, 드라마 속 주부들의 역할이 좀 더 멋지도록 작가들을 부추기고, 사회 전반적으로 주부들의 참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펼쳤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부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 주부들이 함께 학습할 수 있는 공간, 주부들이 이웃들과 함께 사회를 위한 일을 도모하고 사랑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본다. 주부들의 아주 사소한 한숨부터 연구하고 그녀들이 바라는 바를 조목조목 파헤친다면 반드시 그 대가가 이 사회로 돌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경험한 바이지만 주부들이 함께 모일 수 있도록 만들기만 해도 어떤 형태일지라도 생산적인 성과가 나오곤 한다. 정보를 공유하거나 함께 일을 도모하는 그런 생산적인 일을 주부들은 척척 해낸다. 주부들 스스로 생산적인 성과에 그만큼 목말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가정주부! 그녀들이 존중받는 정책이 펼쳐져야 그 지역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가 된다.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들이 안고 있는 다양한 가정 문제가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등한 행복
- 여기까지 읽어 준 남편들에게
남편들은 대부분 뒤늦게야 아내의 고마움을 느끼고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된다는데, 최근에는 때가 너무 늦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2008년 4월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이혼 통계 결과에 따르면 2004년부터 이혼율은 소폭의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으나 50세 이상 부부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황혼 이혼’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단다. 특히 55세 이상의 황혼 이혼 증가율은 9.9%에 이르렀다고. 이때의 이혼은 주로 아내 측에서 주도권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녀들이 황혼 이혼을 선택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싱겁게도 ‘아내가 남편과 함께 가정을 꾸리며 산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중?장년의 긴 시간 동안 그 싱거움에 시달리는 아내는 우울증에 걸릴 만큼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내들에게 이혼은 곧 싱겁게 살아온 자신의 평생에 대한 후회이자 반전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남은 삶이라도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는 호소라고나 할까?


이혼하지 않는 경우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정년퇴직 하고 나서 딱 3개월 후면 남편들의 입에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고 한다. 아내의 생활을 바로 곁에서 하루 종일 지켜보면서 막상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루하루 생각하고 살다 보면 슬슬 기가 죽는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자연스레 아내의 목소리가 커진다. 이 지경이 되고 보면 따뜻한 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으려면 온순히 순종하는 편이 낫다. 바야흐로 행복 불평등의 시소가 높낮이를 바꾸는 형국이다.


요즘은 가정도, 가족도 살벌한 사회를 닮아가는 듯하다. 심지어 부부 사이도 냉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다지 먼 과거도 아닌 불과 10년 전보다, 불과 20년 전보다 우리 사회는 왜 이리도 빠르게 각박해지는 걸까? 우리 사회가 가진 아름답고, 순박하고, 어진 기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짐작컨대 그 이유는 요즘 아내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아내들을 ‘아줌마’라고 경멸하고 폄훼한 세월의 결과라고 본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내들의 순박하게 따스하고, 어질게 아름다운 애정이 식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냉담한 사회의 시선에 시달린 아내들의 성정이 차가워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대부분의 책임은 우리 남편들에게 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제도를 점검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평등한 가족 행복에 대해 미래 지향적으로 논할 때가 됐다. 우리들의 가정을 지켜온 정직한 파수꾼인 ‘아내’의 ‘행복’을  챙겨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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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여! 우리들의 아내에게 그윽한 시선을 좀 보내자.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