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가 더 존중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쩌면 생애 가장 빛나는보물은 잃어버린 채 엉뚱한 보물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어느 날 죽음에 직면하고서야 비로소 생애 가장 빛나는 보물은친구였음을 깨닫는 주인공 스노키를 통해 친구의 의미를 잃어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느낄 수 있다.
■ 저자 황명화
나와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끊임없이찾아내는 작가. &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만남들. 그 만남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교류하며 살아야 하는가. 존재의 의미조차 잊기 쉬운건조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또 어떤 특별함을 만들어낼 것인가. 쉽게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우리시대 관계의 밀도를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녀는오늘도 낯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뒤져 작은 것에서부터 아름다움과 나눔의 행복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 넣는것이 글쟁이의 사명이라고 믿으며, 커피 한 잔을 기울이고 밤을 지새운다. 안내견 출신 큰별이와 열두 살 조카의 엄마 노릇을 병행하고 있으며,저서로 『사랑해 큰별아』 『위풍당당 그녀의 맛있는 하루』가 있다.
■ 차례
1. 난바비큐가 되고 싶지 않아!
2. 얼마면 되겠니?
3. 이건 진짜 너에게만 말하는 비밀이라고!
4. 똑똑하게 사는 법을알려줄까?
5. 너 때문에 우린 친구가 되지 못한 거야
6. 나눌 수 있는 슬픔은 아프지 않아
7. 힘 빼지마! 넌원래부터 그런 놈이라고
8. 배신자는 용서 못해!
9. 우정은 믿는 만큼 자라는 것
10. 함께 한다면 두렵지 않아!
11. 가슴속에 꽉 차오르는 이 느낌이 뭐지?
12. 따스한 봄처럼, 나에게 친구란….
친구를 찾다
난 바비큐가 되고 싶지 않아!
“스노키, 오늘 널 바비큐해 먹기로 했다.”
“네? 저를? 어, 어째서인가요, 대왕님?”
“네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대, 대왕님!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대체 왜 저를 바비큐로 만들려는 건가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는 걸요.”
“스노키, 정말 네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냐?”
“네, 정말 모릅니다. 글쎄, 제가 뭘 잘못했느냐고요? 죽을 때 죽더라도 뭘 잘못했는지는 알아야 죽죠!”
사자 대왕 리온은 차가운 눈빛으로 스노키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어리석은 놈이었다. 그러나 스노키는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스스로 목소리를 높여 죄가 없음을 호소해야 한다고 믿었다.
“대왕님, 세상이 변했다고요! 아무리 대왕님이 무시무시한 분이라 해도 아무 잘못도 없는 동물을 마구 잡아먹을 순 없지요!”
“이 녀석! 듣자 하니 정말 막돼먹은 놈이로구나! 이 나라의 동물들이 너로 말미암아 큰 피해를 입고 괴로워하며 살고 있다기에, 네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 했건만….”
“누가요? 누가 저 때문에 괴롭게 살고 있대요? 대왕님, 이거나 좀 풀어주고 말씀하시라고요.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증인도 없고요! 전 잠자다 붙잡혀 와서 영문도 모르는데 이건 너무 억울하다고요!”
“못된 돼지 놈! 저놈이 괴롭혀서 울면서 고향을 떠난 동물도 있어!”
“떠나기만 하면 다행이지. 저놈 때문에 평화롭게 살던 어떤 짐승은 순식간에 집을 잃기도 했대!”
“아, 저 돼지 놈 이야기를 더 들을 필요가 뭐 있어? 그냥 당장 불붙여 구워버리자고!”
“무조건 불 붙여! 얼른 불에 구워버리자고! 뼈는 발라서 들판에 던져 독수리 먹이나 되라 해! 그래야 두 번 다시 저런 놈이 나타나지 않을 거야!”
“스노키, 어떠냐? 네 편은 아무도 없구나. 하다못해 넌 친구도 한 명 없구나. 넌 네가 지금 죽을 신세라는 걸 알고 있느냐? 죽음 앞에서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다면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삶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겠느냐?”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 미칠 것 같아요.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이렇게 꽁꽁 묶여서 바비큐가 될 신세가 되다니…. 저 조그만 다람쥐 녀석들까지도 날 놀려대고 있잖아요. 여긴 내 편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힘도 세고 부자로 잘먹고 잘사니까…. 그래서 부러워한 나머지 시샘하는 게 틀림없어요! 너무 억울해요.”
“억울하다고? 반성이나 후회 따위는 전혀 하지 않고 억울할 뿐이라고? 모두 널 시샘하고 있어 따돌리는 것이라고? 어허… 이런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라고!”
그때였다. 느릿느릿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산양인 하얀수염이 리온 대왕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대왕니히히히히히힘, 죄소오오호흥. 제가 잠시 스노오호호키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아하하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네. 보아허니이이히히힝, 저 녀석은 아무래도 너무 아둔한지라아아아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모오호호호를 겁니다. 그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아아아아하하하?”
“스노키야, 이 불쌍한 녀석… 많이 억울한 게냐?”
스노키는 입을 열면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아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이곳에 모인 동물 중에 하얀수염만이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네 편이 되어주지 않아 서운할 게다. 그렇지? 스노키야, 네가 어릴 때 난 네 어미와 아비를 만난 적이 있었단다. 네 형제들이 아직 어려서 어미젖을 먹고 있을 때였지. 그때의 넌 참으로 작고 귀엽고 똘똘해 보였는데, 많이 컸구나.”
“절 아세요? 제가 어렸을 때 절 보신 적이 있어요? 전 잘 기억나지 않아요.”
스노키는 문득 서러웠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형제들 중에 가장 덩치도 작고 힘도 약했던 스노키는 독립하기 전까지는 마음 편히 엄마의 젖을 실컷 먹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늘 형과 누나들이 먼저였다. 형과 누나들 그리고 또래의 친구들로부터 늘 괴롭힘을 당하는 신세였고, 몸은 언제나 상처투성이였다. 그때 스노키의 꿈은 아무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는 강한 돼지가 되는 것이었다. 남보다 더 힘센 어른이 되려고 애썼고, 어른이 되어서는 실컷 먹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했다.
“스노키, 알겠느냐? 지금 너에겐 남들에게는 있는 무언가가,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인가가 없다는 것을?”
“알 것 같아요. 내 편이 없어요. 여기에는 내 편이 아무도 없어요.”
“네 편이라는 것, 그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느냐?”
“친구… 내 친구들요. 나를 이 위기에서 구해주고 살려줄 친구요.”
지켜보던 동물들이 다시 술렁거렸다. 거위는 꽥꽥대며 빨리 바비큐나 만들어버리라고 비아냥거렸고, 덩치가 산만 한 붉은 곰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툴툴거렸다. 나뭇가지 위에서 여전히 알밤을 까먹으며 껍질을 흘려대는 쥐방울 같은 다람쥐들마저 쫑알거렸다. 그들은 모두 스노키에게 친구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전 친구가 아주 많아요! 단지 지금 여기에 없을 뿐이에요! 내가 이런 꼴로 잡혀 있는 걸 알게 되면 많은 친구들이 달려와줄 거예요!”
“스노키, 친구란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란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무조건 친구 편을 들어주고 도와주는 게 친구 아닌가요?”
“아니다, 스노키. 친구는 그런 것이 아니야. 친구란 친구의 잘못을 지적할 줄 알아야 하고 친구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아주며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줄 줄도 알아야 한단다. 너에게 그런 진실한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럼요. 당연히 있죠. 그것도 아주 많이! 정말 많이요!”
“리온 대왕님, 잠시 저와 이야기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십니까?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얀수염과 리온 대왕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물들은 조금이라도 엿들으려 귀를 쫑긋 세워봤지만 누구 하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스노키, 리온님과 나는 몹시 어려운 결정을 했단다.”
“하얀수염님….”
“스노키, 넌 하얀수염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난 지금 당장 너를 바비큐로 만드는 것에 찬성이다만, 하얀수염님께서 너에게 기회를 주자고 하셨다.”
“기회요?”
“그렇다. 너에게 살 기회를 주겠다.”
“스노키, 너는 네 입으로 네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와줄 친구들이 많다고 했느니라.”
“네! 하얀수염님! 제 친구들은 제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놈들이에요!”
“그렇구나. 그래서 리온님과 나는 네가 그 말을 증명할 기회를 주기로 했느니라. 너는 곧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네가 말하는 그 친구들을 찾아 이리로 데려오너라. 모두 모인 자리에서 리온님과 내게 너의 진실한 친구라고 말하게 해라. 그러면 네게도 정말 소중하고 진실한 친구가 있음을 믿어줄 것이고, 바비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고, 고맙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하면 내일 아침이면 친구 녀석들을 데려올 수 있어요! 그럼 그 녀석들이 분명히 말해줄 겁니다. 모두 제 진실한 친구라고 크게 소리쳐 줄 거예요!”
“스노키, 명심해라! 기간은 한 달이다. 한 달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난 하얀수염님과 함께 여기서 너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네가 도망을 치거나 거짓으로 친구를 데려올 수는 없을 것이다. 너를 감시할 동행자 또한 함께 보낼 것이니.”
“네? 혼, 혼자 가도 되는데….”
“프린세스와 빅스타 나오너라.”
하얀수염이 둘을 불러내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프린세스가 어기적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고, 빅스타는 모든 것을 짐작했으면서도 조금은 불만스러운 듯이 걸어 나왔다.
너 때문에 우린 친구가 되지 못한 거야
“나와 같이 리온 대왕님께 가주면 안 되겠니? 대왕님께 네가 진심으로 날 위하는 좋은 친구라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럼 앞으로 네 충고대로 착하게 살게. 응?”
“그건 못할 것 같아.”
“왜? 왜 안 되는 거야? 네가 나에게 한 충고들이 날 진심으로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고 했잖아?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친구이기 때문이잖아.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서 하는 말 아니었어?”
“스노키, 친구가 뭔지 알아?”
“알아, 진심으로 위하고 아껴주는 게 친구 아냐?”
“그 말도 맞아.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게 있어.”
“뭔데?”
“친구는 말이야. 진심으로 서로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해줄 줄 알아야 해.”
“그래. 네가 날 위해 그렇게 해줬잖아. 그러니까 넌 내 친구라고 생각해.”
“그건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기도 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
“어째서?”
“친구는 진심으로 서로 잘못을 지적해주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언짢은 말들도 귀담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 거야. 우리에겐 말할 수 있는 입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는 귀도 있잖니? 말을 하는 쪽만 있고 듣는 쪽이 없다면 어떻게 대화가 되고 마음을 나누겠어? 친구라면 말이야. 진심을 담은 충고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또 그런 충고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그래야만 서로 진실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쳇! 결국 너도 거절하는구나?”
스노키는 실망했다.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에 충고한다는 녀석도 별 수 없다는 실망감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라지는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스노키를 내려다보았다. 라지의 눈에는 친구가 아닌,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못난 돼지로만 보였다.
“거절이 아니야. 스노키, 난 네 친구 맞아. 너에게 묻고 싶어. 넌 네가 나의 친구였다고 생각하니? 나는 너에게 친구였는데 너도 나에게 친구였다고 생각해? 혹시 말이야, 너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줄 생각도,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았으면서, 지금 바비큐가 될 지경에 처하니까 이제라도 친구가 되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야?”
스노키는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스노키는 바비큐가 되지 않으려 라지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했을 뿐이다. 그런 마음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봐,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적당히 해둬, 네 말도 일리는 있어. 그래도 스노키가 조금이나마 널 믿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먼 길을 올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지 너의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스노키도 네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친구다운 행동을 못했을 뿐이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니? 정말 말이 심하다.”
지금까지 지켜만 보고 있던 빅스타와 프린세스가 한마디씩 거들었다. 친구로서 진심으로 충고했다는 라지가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풀이 죽은 스노키를 또다시 지켜보는 것이 웬일인지 마음이 아팠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래도 리온 대왕님께 가서 스노키의 친구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스노키에게 나는 그저 잔소리쟁이에 되새김질이나 하는 덩치 큰 소였을 뿐, 친구는 아니었어. 친구는 손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해. 서로 내민 손을 마주 잡는 것 말이야. 나는 손을 내밀었지만 스노키는 잡지 않았어. 근데 이제 와서 손을 내민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니? 친구로서가 아니라 살려고 도움을 구한 것뿐이라 생각해. 미안하지만, 난 그런 수고는 하기 싫어. 지금까지 충고를 아끼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라지의 냉정한 대답을 들은 빅스타가 매서운 눈빛을 하고는 라지 앞으로 다가갔다. 덩치는 라지보다 작았지만 그 강인한 표정과 차가운 눈빛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우리가 가고 나면 잘 생각해봐. 과연 누가 이기적인지. 네가 말하는 건 분명히 다 옳은 이야기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행동은 결코 친구다운 행동이 아니야. 스노키가 널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스노키를 친구라고 생각해서 좋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너의 지금 그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인지 잘 생각해봐야 할 거야.”
“가자, 스노키!”
다시 빅스타가 앞장섰다. 스노키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었던 라지한테조차 거절당한 스노키는 이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바비큐가 돼버릴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이런 고생을 하고서도 바비큐가 될 운명이라면, 고생 없이 바비큐가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잠깐! 라지에게 할 말이 있어.”
스노키가 라지 앞에 우뚝 섰다. 입을 굳게 닫은 스노키의 표정은 무엇인가 대단한 결심을 한 듯 보였다.
“라지! 너 말이야! 너는 말이 너무 많아!”
“뭐?”
“말했잖아! 말이 너무 많다고! 네 말대로 난 지금까지 네 친구가 아니었어. 그렇지만 앞으로는 친구가 될래. 그러니까 친구가 친구에게 하는 충고를 잘 들어! 딱 한 번만 말할 거야. 너, 정말 말이 너무 많아!”
말을 마친 스노키는 돌아서서 빅스타와 프린세스의 곁으로 갔다. 라지가 다시금 말을 하려 했지만, 스노키는 듣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함께 한다면 두렵지 않아!
“빅스타, 친구라는 거 말이야. 사람도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야?”
문득 스노키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프린세스와 빅스타는 당연하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고양이나 개처럼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는 스노키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는 예뻐하고 곁에 두지만, 나 같은 돼지들은 그저 베이컨이나 소시지를 만들기 위해 키울 뿐이야. 나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내가 예전에 알았던 어떤 사람들은 모든 동물은 사람의 친구라고 했어.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 함부로 죽이고 먹을 수 없댔어. 그들은 고기를 절대 먹지 않아.”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어?”
스노키는 농장의 주인 영감에게서 귀여움과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미우와 가스가 부러웠다. 빅스타나 프린세스 같은 개와 고양이는 원한다면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람의 친구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돼지를 먹기 때문에 자신은 사람과 친구가 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우와 가스가 더욱 부러웠다.
“스노키, 세상의 모든 존재와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렵겠지만 원한다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원한다면?”
“응. 물론 어느 한쪽만 원해서는 쉽지 않겠지만… 친구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고 믿는 마음이 생긴다면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음…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농장에서 팔려가기 싫어 숲으로 도망쳐 자유롭게 산 건데, 미우랑 가스처럼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함께 친구가 되면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또 위험에서 보호받기도 하고… 너무 멋진 것 같아.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
주인 영감님이 스노키 일행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었던 스노키 일행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양탄자 위에 엎드려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이 녀석들아, 또 어딜 가려는 게냐? 밖은 위험하단다. 가지 말고 여기서 지내거라. 내가 너희를 돌봐줄게. 우리 미우랑 함께 여기서 편히 지내면 좋잖니? 그렇게 다친 몸으로 또 어딜 가려고…?”
실컷 잠을 잔 스노키 일행이 다시 여행길에 오르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주인 영감님이 앞을 막아서며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렸다. 스노키 일행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미우와 가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스노키 일행이 들개떼를 만나 다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빅스타, 가지마. 주인 영감님 말대로 여기서 같이 살자. 응?”
“형아, 가지 마요. 들개떼에 잡혀가면 어떡해요? 죽는다고요. 그러니까 가지 마요.”
미우와 가스의 말처럼 스노키 일행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지켜야 할 약속이 있으니 꼭 떠나야만 했다.
“미우, 다시 만나서 반가웠어. 우리는 리온 대왕께 일단 돌아갈게. 가서 보고하고 다시 올게. 그때는 여기서 살 수 있을 거야. 주인 영감님이 그때도 우릴 원하신다면 말이야.”
“빅스타, 그럼 좀 더 머물다가 나중에 출발하면 안 돼? 곧 들개떼를 잡으러 주인 영감님과 마을 사람들이 숲으로 사냥을 나갈 거야. 한바탕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거랬어. 사람들이 아주 많이 화가 났거든. 그럼 그때 떠나, 응?”
“아니야. 우린 지금 떠나야 해. 스노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 그렇지, 스노키?”
“미, 미안해. 역시 나 때문에….”
“아냐, 스노키, 나 역시 리온 대왕님과 너와 함께 돌아가기로 약속 했어. 내게 내려진 임무를 완수해야 할 의무가 있어. 미안해하지마. 너야말로 돌아가지 않으면 바비큐가 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텐데, 괜찮겠어?”
“응, 괜찮아. 무섭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
“빅스타, 꼭 돌아와야 해!”
“형아, 기다릴게요. 형아가 오길 여기서 꼬오오옥 기다릴게요!”
다시 한 번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눈 스노키 일행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맨 앞에서 빅스타가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스노키와 프린세스도 그를 따라 힘차게 달렸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미우와 가스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뒤를 돌아보고 눈이 마주치면 정말로 발걸음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스노키! 전속력으로 달려서 지름길로 가자! 여기서부터는 내가 길을 알아.”
“그래!”
선두에 나선 빅스타가 자신 있게 큰 소리로 외쳤다.
“스노키! 빅스타! 약속한 날까지 이제 3일밖에 남지 않았어. 제때 도착할 수 있을까?”
프린세스가 바람처럼 달리며 숨가쁜 목소리로 물었다.
“가능해! 걱정하지 말고 날 따라와. 알았지?”
자신감이 넘치는 빅스타의 말에 스노키와 프린세스는 걱정했던 마음을 놓았다. 비가 그치고 하얀 구름이 하늘을 수놓으며 흘러갔다. 바람처럼 달리는 빅스타와 날랜 몸으로 가볍게 점프하며 달리는 프린세스….
스노키는 빅스타와 프린세스와 함께 이 여행을 하게 된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