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윌리엄 하블리첼(역자: 유영)
ǻ
브리즈
   
9800
2007�� 11��



■ 책 소개
이 책은 세계적인 심장 권위자이자휴머니스트인 윌리엄 하블리체 박사가 임종을 맞이한 환자들을 통해 발견한 삶의 가치와 빛나는 메시지를 전한다. 상처받은 삶을 어떻게 치유하고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얻게 하는 책이다.

 


2차 대전에 참가했던 늙은 군인이 전쟁의 상처와 화해하는 방법을, 백인경찰이 쏜 총에 맞아하반신이 불구가 된 흑인 청년이 분노를 다스리는 용서의 힘을,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왔던 여성의 봉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통해삶의 진실함을 보여준다. 또한 인생 곳곳에 존재하는 생명력들이 전하는 가르침과 인생을 단 하루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죽음 또한두려움이 아니라 축복임을 알게 된다고 전한다.


■ 저자 윌리엄 하블리첼
세계적인 심장의학 권위자이자휴머니스트인 윌리엄 하블리첼 박사는 현재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의과대학의 임상의학과 교수로서 평생 봉사와 헌신의 인술(仁術)을 펼쳐왔다.진정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것이고, 그 치유가 결국 인생을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된 힘이라는 그의 철학과 가치관은많은 젊은 의사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끼쳤다.

■ 역자 유영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불어불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출판 전문 번역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사라』『80일간의 세계일주』『푸른 알약』 등이 있다.


■ 차례
시작하며 - 인생은 단 하루다


1. 인생에 귀 기울이는 법 
2. 인생에서 베풀어야 할 것들 
3. 우리 삶의아름다움은 어떻게 옮겨가는가 
4.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해야 할 마지막 시간 
5. 카르페 디엠! 
6. 생의 이면을들여다보라 
7. 하나님은 내게 늘 선하셨다 
8.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이었다 
9. 행복은 어떻게 옮겨가는가
10. 불확실함이 인생을 아름답게 이끌어 가리라 
11. 섬기는 삶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12. 모든 순간이 기적인것처럼 살라 
13. 우리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들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인생에서 베풀어야 할 것들
누군가 진료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주치의가 이 도시를 떠날 예정이라, 그의 후속 진료를 내게 부탁했던 것이다. 난 그가 총상 후유증에 시달리는 환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이 도시를 뜨겁게 달궜던 슈퍼마켓 절도범이라는 사실은, 차트에 적힌 피터 막스라는 이름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복용하던 진통제가 떨어져 처방전을 받기 위해서였다.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범죄자와 마주하는 건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피터는 작고 단단한 바퀴가 달린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하반신 마비환자들이 애용하는 휠체어였다. 그는 손가락이 달리지 않은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휠체어 바퀴를 좀더 편하게 밀기 위한 목적임에 분명했다. 미소를 지으며 그는 오른손 장갑을 벗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서서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는 키가 백팔십 센티미터를 웃도는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인 듯했다. 상반신은 아주 잘 발달되어 있었고 얇은 셔츠 속으로 근육질 몸이 선명하게 엿보였다. 악수를 하는 손힘은 대단했지만 표정은 온화함 그 자체였다. 부드럽고 진심어린 존경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그는 내게 첫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이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그 범죄자란 말인가? 혹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지만 그의 주치의가 보내온 기록을 훑어보니 의심할 여지없이 그 유명한 피터 막스였다.


그의 총상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총탄은 그의 10번 흉추를 관통하여 망가뜨려 놓은 상태였다. 그는 상처를 안정시키는 수술을 받았지만 그 부위의 척추 손상을 회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남은 생을 휠체어에서 보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배꼽 아래로는 아무 감각이 없기 때문에 감염될 수 있는 모든 다리 부상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배변을 조절하는 기능 또한 상실한 터라 소변을 빼내기 위해 하루 네 차례 방광에 도뇨관을 삽입해야 했고, 대변의 배설은 직장의 기계적인 자극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통증 또한 언제까지나 그를 따라다닐 터였다. 그는 자신의 약이 통증을 줄여주긴 하지만 완전히 없애진 못한다고 호소했다. 통증은 그가 휠체어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일 때 더 심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아파트에 혼자 남아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통증보다 싫어했다. 그렇다고 투약량을 늘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


“통증 없이 죽은 듯 누워 있기보다 고통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져도 움직이는 게 더 나은 인생임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진료를 마친 후 나는 약 처방전을 건넸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진료실을 천천히 빠져나가다가 문득 멈춰 서서 물었다.


“선생님, 제가 누구인지 아시죠?”
“아??? 네.”


겨우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나를 바라보며 그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누군가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친 사람입니다. 절도의 죄를 지은 건 분명하지만 맹세코 경찰관을 해치고자 한 건 아니었어요. 갑자기 제 차에 누군가 뛰어들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뿌리치고 피하고자 한 것이었어요. 이 도시의 뒷골목에서 자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인생의 돌발변수를 만나면 누구나 그렇게 한답니다. 변명이 아닙니다. 믿어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제가 다치게 만든 그 아이는??? 아, 정말이지 전 매일 밤마다 그 아이 꿈을 꾸곤 합니다.”


그가 경찰관을 뿌리친 건, 어쩌면 내가 지금 차트를 떨어뜨릴 뻔한 두려움과 그 맥락이 닿아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왠지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상처 입은 순한 짐승처럼 파득거리고 있었다.


“뭘 훔친 거예요. 피터?”
“에드빌 한 병이요.”


난 말문이 탁 막혔다.


“맙소사??? 겨우 에드빌 한 병 때문에 총격을 당했다는 말이에요?”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젊은 백인 경찰은 제가 뭘 훔쳤는지 몰랐겠죠. 경찰들에게 중요한 건 범법 그 자체이니까요. 분명 단순 절도 용의자에게 총격까지 가한 건 과잉 대응일 거예요. 어쨌든 이제 상관없는 일입니다. 지금 와서 그걸 따져봐야 뭐하겠어요.”
“그래도 최소한 그들은 저를 감옥에까지 보내진 않았잖아요.”
“맞아요. 불행 중 정말 다행입니다.”
“그들이 저를 감옥에 보내지 않은 건 제 치료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종종 세상은 차갑게 얼어붙는다. 피터는 바로 그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목울대를 치밀고 올라왔다. 설명할 수 없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피터는 내게 다시 깊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조용히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 어떤 특정한 이유나 당위성 없이도 봄꽃처럼 우정이 피어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터와 난 자연스럽게 서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관해 조금씩 조금씩 깊게 알게 되었다.
 
피터는 여덟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그의 10번 흉추가 엑스레이에서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부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방치해 두면 피터는 침대로 몸을 옮기거나 휠체어를 밀거나 물건을 들어 올리는 능력을 영원히 상실하고 말 터였다. 수술 담당의들은 그의 척추가 더 이상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등에 지지물을 댔다. 그리고 두 개의 티타늄 봉을 그의 등뼈에 놓은 다음 나사와 볼트로 조였다. 하지만 이 같은 수술 조치는 그에게 휠체어로 다시 돌아갈 능력과 약간의 독립성을 허용해 주는 해결책에 불과했다.


피터의 수술 직후 난 간호사실에 앉아 메모를 적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한 젊은 물리치료사와 그녀의 상사가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었다.


“흥, 그런 흉악한 검둥이의 재활을 도와야 한다니 참 어이가 없어요.”
“그러게 말이야. 난 그 사람과 눈길만 마주쳐도 가슴이 콩닥거려.”
“척추가 망가진 건 당연해요. 죗값을 달게 치러야죠.”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내가 피터에게서 느꼈던 따뜻함과 평온함이 그들에게 닿을 때까지 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날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피터는 물리치료를 성실하게 받았다. 한 단계, 한 단계 치료의 수준을 높여가면서 그는 삶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열망과 집념을 보여주었다. 피터를 흉악한 검둥이라고 불렀던 물리치료사는 감동을 받았다. 피터는 그녀에게 존경과 존중의 마음을 선물했으며, 그녀는 다른 환자들보다 피터의 곁을 더 오랜 시간 지켜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울러 종종 그녀가 병원 음식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피터를 위해 패스트푸드가 담긴 봉지를 들고 물리치료실로 살짝 들어가는 모습이 내 시선에 포착되곤 했다. 몇 주에 걸린 치료 과정에서 치유된 사람은 피터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생에서 우러난 감동이 그 주변을 둘러싼 또 다른 삶들로 옮겨가고 있었다.


카르페 디엠!
54세의 칼 만펠트는 독일 출신으로 탄탄한 중견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였다. 그는 25년 전 같은 고향 출신인 교사 그레타와 결혼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와 지금의 회사를 일구었고 아이들을 낳았다. 약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배려했다. 칼의 행복이 곧 그레타의 행복이었고, 그레타의 슬픔이 곧 칼의 슬픔이었다. 그들은 시민권을 얻어 귀화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깊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동시에 부모님들이 계신 고향을 늘 그리워했다. 칼은 성공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고, 점점 자신의 사업에서 성공을 일구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좇는 성공은 끊임없는 희생을 요구하긴 했지만 그 대신 가정에 풍족한 삶을 제공해 주었다. 아이들은 최고의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생활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재정관리를 잘 해왔고, 바야흐로 지금까지의 희생을 풍성한 수확으로 바꾸기 위한 현명한 계획들을 세웠다. 칼은 57세에 은퇴해 아내와 함께 매년 6개월가량을 여행하며 보낼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은퇴 후 살게 될 집을 함께 설계했고, 이미 조용한 호숫가에 집을 지을 땅을 마련해 둔 터였다. 이처럼 많은 삶을 계획하고 다짐하면서 매일 밤 두 사람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며 맛보게 될 경이로움에 관해 이야기하며 잠이 들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장밋빛 인생이 곧 두 사람 앞에 펼쳐질 터였다.


이들 부부가 처음 날 찾아왔을 때, 난 두 사람이 우애 깊은 오누이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의사를 만나면 서먹서먹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난 먼저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고자 애썼다. 진료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에 얽힌 사연들로 말문을 튼 나는 그들과 함께 평범한 인생에서 얻어지는 즐거움과 기쁨들에 관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점점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카메라 렌즈에 담고 싶었던 세계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내 성(姓)의 기원이 스위스라는 사실을 알고 몹시 기뻐했다. 그들과 나는 어느새 친근한 이웃처럼 서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이 나를 찾아온 목적을 물어볼 차례였다.


“칼은 새로운 주치의를 찾고 있어요.”


그레타가 따뜻한 미소를 내게 지어 보였다. 나는 칼이 복용하고 있는 약품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 목록은 칼이 고혈압, 고지혈증, 통풍, 계절성 알레르기 등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목록의 맨 아래를 들여다보던 내 눈동자가 나도 모르게 커졌다.


“루프론 데포를 투여받고 계시는군요. 칼, 당신은 전립선암 환자이군요.”
“아, 네. 6개월 전쯤에 그 얘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병이 시작된 건 아마 훨씬 더 오래 전이었을 겁니다.”
“칼, 당신이 어떤 자각증상을 느낀 건가요, 아니면 예전 주치의가 발견한 건가요?”


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나이든 임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합니다. 지난 검사 때 결장 내시경을 받았어요. 내시경 결과, 전립선암이 의심된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하면서 명성 높은 비뇨기과 의사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칼의 주치의가 발견하지 못한 전립선암을 신체검사 의료기관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칼은 자신의 몸에서 어떤 이상한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초음파 검사를 예약했고 추천받은 비뇨기과 의사를 찾아갔다. 초음파가 그려내는 예후는 매우 좋지 않았다. 결국 칼은 최종적으로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두 사람은 함께 전립선암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고,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칼의 종양은 매우 공격적으로 확산되는 악성종양이었다. 힘겨운 날들이 지속되었다. 종양의 확산은 수술의 가능성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들에게 남은 희망은 화학요법뿐이었다. 화학요법 치료는 몹시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치료를 받은 지 석 달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 담당의들은 종양의 크기가 커지지 않은 건 화학요법 치료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석 달마다 칼은 몸 안에 테스토테론이 형성되는 걸 막기 위해 약물 주사를 맞았다. 칼이 나를 찾아왔을 때는 두 번째 주사를 맞은 상태였다.


“비뇨기과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이 주사가 혈압을 높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살펴줄 만한 의사를 찾아보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과연 그의 혈압은 높은 상태였다. 난 그에게 약들을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칼은 격주로 날 찾아와 혈압을 확인했고 그때마다 그레타가 늘 곁에 있었다. 두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그들에 관해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두 사람에게 무심코 물었다.


“그런데 두 분 여행 안 가세요?”


그러자 칼과 그레타의 얼굴에 깊은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레타, 뭔가 할 얘기가 많이 쌓여 있는 표정인데??? 제게 편안하게 말씀해 보세요.”


그녀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부드럽게 얼굴을 훔치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젖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칼이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처음 이렇게 눈물을 흘리네요. 너무나 화가 나서 정말이지 울 수도 없었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화가 나고 잠자리에 들 때도 너무나 화가 났어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분노를 가라앉히기가 어려워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칼의 예전 주치의는 그동안 한 번도 그를 정밀하게 진찰하지 않았어요. 간단한 혈액검사조차 한번 해본 적 없었죠. 칼의 암세포들은 좀 더 일찍 발견될 수 있었어요. 치료할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 말이에요. 그는 우리의 모든 계획을 송두리째 빼앗아갔어요. 우리의 미래를 훔쳐간 거죠.”


인생의 가장 큰 적은 분노와 죄책감이다. 나는 이를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분노와 죄책감은 삶을 어둡게 만드는 먹구름이었고, 이는 암세포보다 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나는 문득 칼과 그레타를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어졌다.


“칼, 그레타???. 두 분께 일어난 일은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한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결코 그럴 수 없으니까요. 세상 모든 일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밤 교통사고로 사망할 수도 있는데 여전히 내일 일하러 갈 계획을 세우며 살고 있죠. 혹시 그거 아세요? 전립선암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암 그 자체보다 심장질환으로 사망합니다. 이처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늘 내일만을 기다리느라 오늘을 경험하지 못하죠. 인생은 짧고 내일의 약속 같은 건 없다는 깨달음을 저는 의사 생활을 통해 확신하고 있답니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두 분은 함께 여행을 다니겠노라는 근사한 계획을 갖고 있었고, 매 순간 이를 함께 나누셨죠? 하지만 지금은 어떠세요? 전립선암 진단을 받기 전과 받은 후, 과연 무엇이 변한 걸까요? 미래는 그때나 지금이나 불확실하지 않나요? 단, 그때 두 분께는 부푼 꿈이 있었죠. 꿈은 이루어지지 않으면 깊은 상처로 남습니다. 자, 지금 바로 그 꿈을 실천해 보세요.”


두 사람이 진료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나는 어쩌면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내 이야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급기야 불쾌한 기색마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가 표면으로 끌어낸 문제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공연히 그들의 아픈 곳을 찔렀다는 생각에 난 무척 괴로웠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그레타는 전화를 걸어 향후 진료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좋은 사람들을 잃어버렸다는 상심이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모든 순간이 기적인 것처럼 살라
의사들은 대체로 기적을 잘 믿지 않는다. 물론 예외가 있다. 그런데 난 이 예외에 속하는 이들이 종종 우리들 가운데 가장 좋은 의사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의사들은 기적이라는 발상에 위협을 느끼며, 자신들보다 더 훌륭한 어떤 것이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난색을 표한다. 어떤 일들은 이런 가능성에 너무 위협을 느낀 나머지 기적의 암시만 내비쳐도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곤 한다. 그들의 관점에선 합리적인 정신으로 설명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과학적 원리를 통해 관찰되고 설명될 수 있는 것만이 실재할 뿐이다. 대체로 젊은 의사들이 이 문제를 붙들고 가장 많이 씨름하는 것 같다. 그들은 오랜 수련기간 동안 치유란 의학과 기술을 통해 이뤄진다는 교육을 받아온 터라 새로운 종류의 치유 가능성을 접하면 먼저 위협을 느끼게 마련이다. 특히 대학병원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의사들은 논리와 임상 연구를 통해 자신들의 진리를 입증하고자 애쓴다. 종종 기적이라는 유령에 가장 격렬히 맞서는 건 바로 대학병원의 젊은 의사들이다.


벤 마시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는 막 레지던트를 마치고 대학병원 교수진에 합류한 젊은 의사였다. 그는 전통의학을 고수하는 대가들로부터 성공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아 전통의 틀에서 그대로 찍혀 나온 듯한 인물이었다. 그는 친절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에서는 엄격했다. 그는 의학서적에서 진리를 찾았고 이를 토대로 책에 씌어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그의 의술이었다. 이는 그에게 안정감을 심어주었고 자신이 행하는 의술이 옳다는 걸 확인받음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게 했다.


레지던트들이 지도교수의 뜻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건 이례적이긴 해도 간혹 있는 일이었으나 의대생들이 하늘같은 스승의 의견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었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대사건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대학병원 간호사실에서 그 사건이 벌어졌다.


“자, 거기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자고.”


벤이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어.”


팀원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구경꾼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려 있는 가운데 팀원들 대부분이 불안한 표정이었다. 구경꾼들은 이제 곧 대단한 광경이 펼쳐질 것을 예감했다. 난 벤의 선택이 무척 의아스러웠다. 분명 개인적인 문제가 거론될 텐데 왜 굳이 이곳을 토론 장소로 선택했을까? 난 분명 그가 청중을 원했을 거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벤이 앞에 서 있는 의대생들 중 한 명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가 서튼 부인에게 그렇게 말했다니,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우린 지금 전이암을 가진 한 부인을 맡고 있고,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화학요법뿐이야. 그런데 그녀가 자네한테 이틀 동안 기도를 해보겠다고 말했다지? 그 말에 자넨 좋은 생각 같다며 맞장구를 쳤고 말이야. 그 흰 가운을 입고 있을 땐 자넨 자네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비이성적인 판단들을 지지해선 안 돼. 그건 자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우린 여기서 의술을 행하고 있어. 기적을 기다리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녀의 답은 바로 나에게서 나오게 될 거야, 기도가 아니라고!”


그건 가장 노련한 레지던트들의 반감을 살뿐 아니라 의대생들의 자제력을 잃게 만들 만한 맹공격이었다. 그러나 벤이 분노를 퍼붓고 있는 상대는 말없이 침착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학부생들 중 상급생이었다. 사실 그는 벤보다 5년 내지 10년쯤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체격도 좋았고 키가 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컸다. 그의 얼굴엔 턱수염이 수북이 나 있었는데 그 덕에 꼭 지혜로운 현자처럼 보였다. 그처럼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미소를 지을 듯 더없이 온화해 보였다.


“마시 선생님???. 저는 환자들이든 누구든, 결코 제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또 상대가 틀렸다는 걸 암시함으로써 그의 신념을 경시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종교와는 상관없는 겁니다. 기도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이보게, 우린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야. 우린 환자들에게 우리가 입증할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할 수 있어. 췌장암 환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화학요법이야. 많은 연구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지. 기도는 과학이 아니야. 기도를 정성껏 올린다고  해서 그들의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마시 선생님. 그럼 플라시보 효과는 뭡니까? 우린 모든 약물효과의 30퍼센트 정도가 생화학적 성분과는 관계없이 그 약을 복용하는 환자의 기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생각만으로도 약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 아닌가요? 누군가 레몬 짜는 걸 보면 우리 입엔 침이 고입니다. 이건 생각만으로도 우리 몸에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증거 아닌가요? 왜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생각의 치유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없단 말입니까? 우린 소리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들 그 존재를 인정하잖습니까!”


“자네가 그걸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난 자네한테 화학요법의 가치를 입증하는 수많은 연구들을 보여줄 수 있어. 하지만 자넨 기도로 그걸 입증할 수 없지. 그게 바로 종교의 문제점이야. 종교는 문제 뒤에 숨어 있거든. 신앙이란 뒷받침할 만한 아무 증거도 없이 뭔가를 믿는 행위지. 자넨 결코 이걸 부인하진 못할 거야. 아무튼 최종 결과는 그 불쌍한 부인이 거짓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거야.”


“아뇨,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보는 의학서적이나 학술지에는 신앙과 종교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관해 무수히 많은 사례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 환자들은 대수술을 받을 때 믿지 않는 환자들보다 훨씬 더 잘 견뎌낸다고 하죠. 또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요. 그뿐 아니라 그들은 삶의 질을 높이 고양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쓰는 항우울제들은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킴으로써 효과를 내죠. 그런데 명상이 이 세로토닌의 수치를 증가시킨다는 건 벌써부터 입증된 사실입니다. 명상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도 효과가 난다고 말이죠.”


“말도 안 돼. 난 그런 연구들을 결코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설사 그런 게 있다 해도 엄격한 과학적 연구들과 비교할 게 못 돼.”


“글쎄요, 우린 우리가 찾으려는 것만 발견할 뿐이죠. 전 대부분의 의사들이 결코 그런 답들을 찾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오늘날 많은 의료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전제이지만, 이는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화학요법의 효과를 입증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의 힘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왜 사람들은 신앙을 부인하고 싶어 할까요? 신앙은 결코 위협적인 게 아닙니다. 아마도 우리는 신앙과 의학이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겁니다. 바로 여기에 암의 궁극적인 치유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기도는 엄격한 과학과 대립하지 않습니다. 버드 박사는 이중맹검법으로 중보기도의 효과를 실험한 뒤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무작위로 선택된 환자들을 1년 동안 관상동맥질환 중환자병동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기도의 힘을 믿는 사람들의 중보기도를 받았고,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집단은 똑같은 치료를 받았고 의사들은 자기 환자들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 알지 못했지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기도를 받은 집단은 입원 기간 동안 아주 잘 견뎌냈습니다. 합병증도 거의 없었고 병의 진전속도도 훨씬 더 느렸지요. 이와 유사한 연구 결과는 캔자스시티의 해리스 박사와 캘리포니아의 시쳐 박사에 의해서도 발표되었습니다. 우린 신앙과 과학을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 그 이유를 우리 과학이 아직 덜 발달되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합리적으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시 선생님, 저는 우리 중 누구도 기도의 능력에 회의를 품을 만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 명상, 침묵 훈련, 이 모든 것은 우주에 흐르는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방법들인 거죠. 이런 가능성들에 마음을 연다고 해서 결코 의학의 역할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잠재력을 무한하게 해준다고 볼 수 있죠. 외람된 말씀이지만, 선생님. 그 부인에게 거짓 희망을 심어준 건 기도가 아닙니다. 선생님께선 그녀에게 화학요법에 80퍼센트의 반응률이 있다고 말씀하셨죠. 전 이를 온전하게 신뢰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듣지 않습니다. 우린 완화나 반응률 같은 용어들을 마치 자동차판매원들처럼 너무 부적절하게 사용하곤 하죠. 그렇습니다. 그녀의 종양이 작아지고 혈액화학검사가 나아지거나 또는 다른 변수들이 우리가 반응으로 정의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은 80퍼센트일 겁니다. 그러나 그녀가 들었던 건 그게 아닙니다. 그녀는 치료될 가능성으로 들었죠. 그러나 화학요법을 실시한다 해도 결국 그녀가 1년 내에 사망할 가능성은 80퍼센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3개월 내에 죽겠지요. 게다가 그 1년 중 대부분도 아픈 상태로 보내야 할 겁니다. 전 그 부인이 침묵 속에 자신의 영혼을 접하고 기적을 끌어내고자 애쓴다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난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조용히 팀장 곁으로 가 앉았다.


“저 턱수염난 학생은 누구죠?”
“아, 토머스라고 해요. 예수회에 소속된 사람으로 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죠. 예수회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의사가 되려고 우리 병원에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아주 멋진 사람이죠. 학부 3학년생인데도 난 그가 당황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분명 대단한 설교가가 될 거예요.”


난 대학병원에서 토머스가 이따금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러고 싶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는 내게 큰 감동을 주었고, 난 그의 말 속에서 지혜를 발견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영성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걸! 대체로 과학은 회의론자들이나 또는 자신보다 더 훌륭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주요 무기로 사용되곤 했다. 우리 과학이 최근에 와서야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데 가장 기초적인 걸 충분히 생각할 정도로 발전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난 결코 과학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들은 과학은 주로 비평의 도구였을 뿐이다.


토마스의 지적은 옳았다. 난 그러한 영적인 것들에 회의를 품을 만큼 충분히 알지 못했다. 기도와 명상이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흐르는 에너지에 닿도록 해준다는 건 매우 놀라운 발상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그에 대해 들은 적 있었고, 그동안 내가 접했던 수많은 환자들 가운데서 이를 실감한 사례도 있었다. 내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인상적인 환자들은 하나같이 주위에 특별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난 그 에너지의 정체를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

기적에 관해서도 토머스의 말이 옳았다. 의학에서도 기적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나 종종 미묘하게 가려져 있거나 경이로움이 깃들 수 없는 무심한 마음들 속에 묻혀버리곤 했을 뿐이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우리 중 가장 냉소적인 의사들조차도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치료와 회복을 목격하게 되고, 우리의 기술을 훨씬 능가하는 일들을 수행하게 되거나 우리의 지식 밖에서 어떤 답들을 찾게 된다. 토머스는 바로 이런 기적들을 지적했던 것이리라. 그가 옳았다. 이런 기적들은 내 진료실에도 여러 번 찾아왔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