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신흠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628)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한문학 작가이자 시조작가이다. 선조대에서 인조대에 걸쳐 주요 관직을 역임하면서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조선의 재건을 위해 힘썼다. 성리학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양명학과 노장 사상(老莊思想) 등 비주류의 학문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사상적 대안을 모색했다. 만물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유연한 관점을 지녀다양한 색깔의 글을 남긴 바, 그의 글은 주제가 호환하면서도 자유롭고 섬세한 감성을 보여준다. 호는 상촌(象村)이며, 문집으로『상촌집(象村集)』이 있다.
■ 편역 김수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로 있다.
■ 차례
간행사
책머리에
난초는 꺾여도 향기를 남길지니
사행길
거지의말을 듣고
나라 위한 마음
오랑캐를 걱정하며
오랑케 침략 소식에
목릉 아래에서
조정 소식을 듣고
송충이
농부의 탄식
김포에서 外
제각각 타고난 대로
거미야, 거미야
제각각타고난 대로
참새
물고기에게
가련한 공작새
까마귀와 까치
금루 천지
인생
소리 높여 부르는노래
가난함과 고귀함 外
한가히, 노곤히, 나지막이
햇나물을 보내와
봄빛을 보며
남산에 올라
한가히 북창에서
박달나무 베개
낮잠
꿈같은 세상
시골 온 후
시골 살이
일군대로 먹고사니 外
홀로 타는 마음
그대 못 보는
떠나보내며
그리움
사랑의 고통
그리운 임 계신 곳
임의 수레바퀴 되어
바람에게 하는 말
홀로 타는 마음
지봉을 보내며 1
지봉을 보내며 2 外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 할샤
산촌에 눈이 오니
초목이 다 매몰한 때
냇가에 해오라기야
서까래 기나 자르나
술 먹고 노는 일을
얼일샤 저 붕새야
아침엔 비 오더니
내 가슴 헤친 피로
한식 비 온 밤에
창 밖의 워석버석 外
나라를 생각한다
왜적과 오랑캐 사이에서
군대와백성에게 고함
왜적을 막는 길
누구에게 잘못이 있나
백성을 다스리는 법
인륜이 무너지면
임금과 권신
소인의 행태
가짜 선비
진정한 유자
세상사 어려움을 겪고 보니
백사에게 보낸 편지 1
청음에게 보낸 편지 1
산 속에서 혼자 하는 말
강가에서 지낸 날들의 기록
백사에게 보낸 편지 2
청음에게보낸 편지 2
춘천에서 지낸 날들의 기록
현옹은 말한다
현옹은 어떤 사람인가?
현(玄)이란 무엇인가?
큰 깨달음
장자의 제물론에 대해
우물 이야기
부쳐 사는 삶
지혜로 빚어낸 아홉 편의 이야기
허물이 없으려면
벗 사귐의 중요성
뛰어난 벗을 사귀고 싶다면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젊은이에게 하고 싶은 말
눈을가리는 것들
마음의 소중함
군자와 소인
내가 닮고픈 사람
달빛·산빛·꽃빛에 젖어
달빛· 산빛· 꽃빛에 젖어
산중 생활의 즐거움
산중 생활의 깨달음
해설
신흠 연보
작품 원제
찾아보기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강물이 되어
난초는 꺾여도 향기는 남길지니
사행 길
구월 구일 요동 땅엔 갈댓잎 가지런한데
돌아갈 기약 또다시 패관(浿關) 서쪽에서 막혔다.
쏴 - 쏴 모래바람은 변방 소리와 하나 되고
어둑어둑 짧은 해에 기러기 날개 나직하다.
고국의 가족 벗들 소식 끊기려 하고
타향에서 꿈을 꾸니 고향 길 아련하다.
* 신흠이 29세 때(1954)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을 사행하면서 쓴 시이다. 2구의 패관(浿關)은 청천강 일대에 있던 관문으로 추정된다.
홀로 하는 다짐
가죽신으로 문밖 나서면
날이 갈수록 쌓이는 허물.
내 가는 길 틀린 게 뭘까
옛 생각 정녕 고치지 않으리.
저기 저 들판에는
참새들 유유히 나는데,
나는야 무슨 일로
세상과 어그러졌나.
영욕이란 환상 같은 것
육신의 얽매임 벗어나야지.
붓 들고 『시경』을 음미하고
점대 잡고 『주역』을 풀이해보네.
하늘 아래 문밖만 안 나서면
갈갈이 어그러짐 슬퍼할 일 없을 터.
평소에 지조를 다짐했거늘
뜰 앞 잣나무를 바라보누나.
* 신흠은 소신을 지키기 위해 은거를 선택했던 도연명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아 많은 양의 화도시(和陶詩 : 도연명의 시에 차운한 시)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이 시는, 외적 어려움 속에서도 뜻을 버리지 않던 작가의 꼿꼿한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각각 타고난 대로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현달한다고 기뻐할 것 없고
가난하다고 걱정할 것 없지.
현실과 가난 그 사이에서
나는야 달라질 것 없네.
산다고 뭘 더 얻는 것 없고
죽는다고 뭘 더 잃는 것 없지.
아득한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나는야 기쁘거나 슬프지 않네.
장작은 타 버려도 불길은 이어지리니
통달한 사람만이 그 이치 알리.
* 빈부와 생사에 초연한 마음을 읊은 시이다. 시의 9구에 나오는 ‘장작은 타 버려도 불길은 이어진다’라는 말은 육신과 형체는 소멸해도 그 정신과 도(道)는 영원히 남는다는 뜻이다.
무능한 나
술은 이미 못 먹거니와
시도 잘 짓지 못하고,
바둑도 둘 줄 모르거니와
거문고 소리도 내지 못하지.
나라에 도움 하나 못 되거니와
이 한 몸 꾸리기도 어렵기만.
여섯 중 하나도 잘 못하니
대체 세상에서 무얼 해내리
오직 잘하는 건 먹고 자는 일
내키는 대로 자다 일어나지.
누가 괜스레 방해하리오
내 마음 본래 태평한 것을.
얻으면 언젠가 잃게 되는 법
잃지 않고서 어이 얻으리.
누구는 귀하고 누군 천하랴
무엇이 욕되고 뭣이 좋으랴.
어지러운 바깥 세상사
귀를 시끄럽게 하나,
빈 배는 뒤집힐 걱정 없으며
쓸모없는 나무는 천수 누리지.
타고난 바탕 본래 무능해
남들과 싸울 일 면했네그려.
* 무능하기에 맛볼 수 있는 여유로움과 행복함에 대해 읊은 시이다. 무능함에 대한 일종의 뒤집어 보기가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작품이다.
나라를 생각한다
인륜이 무너지면
부모에게는 효도할 줄 알고, 형제에게는 우애를 지킬 줄 알고, 부부간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음을 알고, 친구에게는 신의를 지킬 줄 알고, 임금에게는 의리를 지킬 줄 아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당초 멀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부모를 나의 몸과 다르게 생각하고, 형제를 처자식보다 멀게 생각하고, 부부 사이를 원수처럼 생각하고, 친구를 저잣거리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길에서 만난 사이쯤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부모를 나의 몸과 다르게 생각하면, 살아 계실 때는 섬기지 않게 되고 돌아가셨을 때는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된다. 형제를 친자식보다 멀게 생각하면 윤리가 무너져 같은 핏줄끼리 잔인하게 싸우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부부가 서로를 원수처럼 생각하면, 도덕이 깡그리 사라져 금슬이 깨지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친구를 저잣거리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면, 함정에 빠진 벗에게 돌을 던지고 서로가 서로를 해치게 된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길에서 만난 사이쯤으로 생각하면, 종국에는 나라를 팔아 간악한 욕심을 채우는 등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인륜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망하게 되는바, 위에 있는 사람들이 몸소 실천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백성이 무슨 수로 바른 데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 인륜이란 거창하고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임을 말한 글이다. 인간답게 사는 법에 대한 소박한 생각을 담은 글이지만,경제 성장에 몰두한 나머지 도덕 불감증에 걸려 버린 우리 사회에 일깨우는 바가 적지 않다.
지혜로 빚어낸 아홉 편의 이야기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자, 그런 사람이야말로 군자이다.
군자의 침묵은 유원한 하늘 같고 깊은 연못 같고, 흙으로 빚은 소상(塑像) 같다. 군자의 말은 주옥 같고, 난초 같고, 종과 북 같다. 유원한 하늘은 바라보매 그 끝자락을 알 수 없고, 깊은 연못은 굽어보매 그 밑자락을 알 수 없으며, 흙으로 빗은 소상은 마주하매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없다. 주옥은 임금의 관에 구슬 장식으로 쓰일 수 있고, 난초의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데 쓰일 수 있으며, 종과 북은 천지신명에 바칠 수 있다. 그러니 보배스럽고도 귀중하지 않겠는가. 침묵할 때는 문드러진 나무 둥치 같고 말할 때는 꼭두각시 같은 자를 나는 보고 싶지 않다.
* 말해야 할 때를 알아서 적시에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은, 지극히 말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말을 잘 한다 해도, 말로써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아야 할 때를 침묵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말 잘하는 것이다.
달빛? 산빛? 꽃빛에 젖어
산중 생활의 즐거움
뜻 가는 대로 꽃과 대죽을 키우고, 마음 가는 대로 새와 물고기를 기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산중의 소박한 경제이다.
어느 맑은 밤 편안히 앉아 등불을 은은히 하고 차를 끓인다. 세상은 온통 고요한데 시냇물 소리만 졸졸졸 들려와 이부자리도 펴지 않은 채 건듯 책을 읽어본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 빗장 걸고 방을 치우고선 눈앞에 가득한 책을 흥 나는 대로 꺼내서 본다. 사람들의 왕래가 뚝 끊겨 온 세상이 고즈넉하고 온 집안이 조용하다.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텅빈 산에 겨울이 찾아와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싸락눈 날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바람결에 흔들리고, 추위에 떠는 산새가 들판에서 우짖을 때, 방안에서 화를 끼고 앉아 차 끓이고 술 익힌다.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문 닫고 마음에 맞는 책을 읽는 것, 문 열고 마음에 맞는 벗을 맞는 것, 문 나서서 마음에 맞는 경치를 찾는 것. 이것이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산중 생활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얽매이는 마음이 생기면 시정인의 삶과 다를 게 없고, 서화 감상은 아취 있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탐욕이 생기면 장사치와 다를 게 없다. 한 잔 술 기울이는 것이야 즐거운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남의 흥취에 끌려 다닌다면 갑갑하기 그지없고, 즐겨 손님을 맞는 것이야 화통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속된 사람과 엮이게 된다면 괴롭기 그지없다.
손님 가자 빗장 내렸는데 선들바람에 해가 진다. 술동이 건 듯 열어 보니 시 구절 이내 이뤄진다. 이야말로 산속 사람이 고대하던 순간이리.
뽕나무 숲과 보리밭이 위아래에서 경치를 뽐내는데, 따스한 봄날이면 까투리와 장끼 지저귀고, 비 오는 아침이면 비둘기 울음 소리 들려온다. 시골살이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로다.
흡족하게 풍류를 즐겨도 시간이 지나면 서글픈 맘이 생긴다. 하지만 고요하고도 맑은 경지에서 노닐면 시간이 갈수록 깊은 맛이 난다.
* 이 글에서 신흠이 말하고자 한 산중 생활의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나를 속박하는 욕심과 허영에서 벗어나 담박하고 가벼운 나를 찾아가는 즐거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산중 생활이라도 얽매이는 마음이 생긴다면 시정인의 삶과 다를 게 없다는 말에서, 작가가 추구하던 바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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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