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적이고 고지식한 고전의 이미지를 탈피해 부담감 없이 쉽게 읽을 수 있게 구성된『우리고전 100선』제3권으로, 예술성과 사상적 깊이가 있으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엄선해 담고, 각 작품마다간단한 작품 해설 및 작품평을 수록하였다. 또한, 부록으로 해설, 작품의 원제, 작가 연보를 수록해 작품을 보다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도와준다.
■ 저자 이규보
1168년 태어나서 1241년까지일흔네 해를 살았다. 고려 오백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다. 호탕하고 생기 있는 시 작품으로 당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명문장가며, 몽고가 침입했을 때 예순이 넘은 나이에 전쟁터로 나설 만큼 기개가 높았다. 당나라와 송나라 고문 형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스스로의 체험을 진솔하게 담는 시를 썼다. 8천여 수의 시를 썼는데, 그 가운데 2천여 수가 남아있다. 시 평론 「백운소설」, 가전체 작품「국선생전」, 기행 산문 「남행월일기」 등도 남겼다. 작품은 『동국이상국집』에 잘 갈무리되어 있다.
■ 편저자 김하라
서울대 역사교육과와 국문학과를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6년 현재 동양대에 출강하고 있다.
■ 차례
간행사
책머리에
비 오는 날의 낮잠
맘에 맞는 일
죽부인
비오는 날의 낮잠
우연히 읊조리다
가난하니 빨리 늙는 게 좋고
오늘이 가면
고마운 선물
가죽 옷을 전당포에맡기고
책상 위의 세 친구
알밤 예찬
철쭉 지팡이
어느 날 우리 집
치통
깨진벼루
몽당붓
아이들이 보고 싶어
먼 데 있는 벗에게
술꾼의아내
저문 봄 강가에서
어린 아들이 술을 마시다니
친구의 부채 선물
어린 딸의 죽음 앞에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집생각
눈 위에 쓴 이름
한계사의 노스님에게
오랜만에 만난 벗에게
시 원고를 불태우고
잊혀지는 것
줄 없는거문고
백로 그림을 보고
대지도 내 발을 받칠 수 없고
자조
북악에 올라
거울을 보며
장터의 은자
시(詩)원고를 불태우고
대머리 노인
나의 거문고는 곡조가 없어
조물주에게
시벽
병상의 다섯 노래
바람 빠진공
새해 아침에
우두커니 앉은 내 모습
눈병으로 시를 짓지 못하다
누가 과연 미친 사람인가
백운거사는누구인가
백운거사 어록
누가 과연 미친 사람인가
실속 없는 유명세
과일나무 접붙이기
온실을 반대한다
집을수리하고 나서
조그만 정원을 손질하며
정직한 노극청
시루가 깨진다고 사람이 죽으랴
아버지를 그리며
아들의 관에 넣은글
바위와의 대화
두려움에 관하여
꿈에서 본슬픔
시의 귀신아, 떠나 다오
귀찮음 병
땅의 정령에게 묻다
조물주에게 묻다
봄의 단상
이상한관상쟁이
뇌물 권하는 사회
바위와의 대화
매미를 놓아주다
이와 개에 관한 명상
매미를놓아주다
바둑이는 들어라
쥐를 저주한다
거북 선생의 일생
누룩 선생의 행복하고 괴로웠던 삶
질항아리에게배운다
술병에 남긴 말
책상과 나
조그만 벼루
해설
이규보 연보
작품원제
찾아보기
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비 오는 날의 낮잠
주룩주룩 낙숫물 소리
낮잠을 방해할 것도 같은데
어째서 빗소리 들릴 땐
유독 잠이 달콤한 걸까?
맑은 날엔 문 닫고 있으려 해도
나가고 싶은 생각 끊이지 않지.
그러니 잠도 깊이 들기 어렵고
언뜻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깨지.
그런데 지금은 장마철이라
길이 온통 물바다 됐네.
아무리 친구를 찾아가려 한들
코앞도 천 리처럼 멀기만 한걸.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지 않고
뜰엔 발소리도 나지 않누나.
그러나 잠을 잘 수가 있어
드렁드렁 천둥 치듯 코를 곤다네.
이 맛을 말로 하긴 정말 어렵지
임금인들 어찌 쉽게 알겠나?
임금이 잠 못 자는 건 아니지만
아침마다 신하들과 회의가 있으니.
* 시인의 낙천적인 태도가 잘 표현된 시이다. 그침없이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가 시인에게 반가울 리 만무하다. 맑은 날에는 바깥을 돌아다니고 싶어 마음이 분주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날의 맑고 궂음은 하늘의 일이므로 사람이 조바심 낸다 하여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를 잘 아는 시인은 불행한 상황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집 생각
편지는 이제 세 번 왔는데
달은 벌써 다섯 번이나 기울었네.
쓸쓸한 울타리엔 국화 몇 송이 이슬에 젖고
싸늘한 나무엔 배가 서리 맞아 익어 가리.
새까만 머리칼의 딸아이 제일 생각나고
이마 훤한 아들놈도 그립구나.
성 동쪽 모퉁이 우리 집
누가 즐겨 이엉을 이어 주려나.
* 두고 온 집의 쓸쓸한 풍경에는 집을 떠난 이규보의 걱정 섞인 그리움이 배어 있다. 이엉이란 초가집의 지붕이나 담을 이기 위하여 엮은 짚이다. 해마다 추수를 하고 나면 볏짚을 모아 지붕을 새로 이어 주어야 했는데, 지금 자신이 집에 가서 해 줄 수 없으니 걱정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잊혀지는 것
세상 사람 모두 나를 잊어버리니
세상 속 이 한 몸 덩그러니.
어찌 남들만 나를 잊겠나
형제도 나를 잊는 것을.
오늘은 아내가 나를 잊고
내일은 내가 나를 잊을 테지.
이런 뒤엔 온 천지 안에
친한 이도 서먹한 이도 없으리.
* ‘잊혀짐’은 나를 옥죄는 조그만 ‘나’의 경계를 허물고 우주와 한 몸이 되어 지극히 자유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일 터이다.
우두커니 앉은 내 모습
하얀 수염의 왜소한 늙은이가
언제나 두건(頭巾)은 비스듬히 쓰네.
말없이 앉아 말갛게 바라보니
남들이 모두 괴물로 보네.
이 보잘것없고 조그만 몸속에
천지를 품을 수 있단 걸 알지 못하지.
때때로 시(詩) 구절을 생각하느라
온종일 읊조림을 그치지 않네.
남들은 늙은 여우 소리로 여겨
저마다 귀를 막고 피해 달아나네.
이런 나의 노래에서
아름다운 음악 소리 나는 줄 알지 못하지.
너희가 지금 나를 여우로 여기고
또 괴물로 만들려 하고
말이나 소라 부른다고 하면
너희들이 부르는 대로 되는 수밖에.
* 이해받지 못한 고독한 예술가의 광활하고 풍요로운 내면이 보이는 시이다.
백운거사 어록
나는 이름을 감추고 싶어 내 이름을 대신할 만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옛날 사람 중에는 호(號)를 지어 이름을 대신한 이가 많았다. 자기가 사는 곳의 이름을 따와서 호를 지은 이도 있고, 자기가 아끼는 소유물로 호를 삼은 이도 있으며, 인생에서 깨달은 것을 가져와 호를 지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부평초럼 사방으로 떠돌아 다니니 사는 곳이 일정치 않고 휑뎅그렁하니 가진 것 하나 없으며, 겸연쩍은 말이지만 살다가 깨달은 것도 없다. 세 가지 모두 이렇게 옛사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니 호를 어떻게 지어야 한단 말인가?
누군가는 초당선생(草堂先生, 두보는 사천성 성도의 교외에 초당을 지어 전란으로 인한 긴 유랑 생활을 접고 모처럼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때 두보가 스스로를 초당선생이라 일컬었다.)이 어떠냐고 했지만 두보의 호(號)인지라 사양했다. 더구나 나는 초당에 잠깐 머물러 지냈을 뿐 내내 산 것도 아니다. 잠깐 머물렀던 곳마다 모두 이름을 따와 호를 짓는다면 내 호는 퍽이나 많을 것이다.
나는 원래 거문고와 술, 시, 이 셋을 몹시 좋아하여 처음에는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세 가지를 몹시 좋아하는 선생)이라는 호를 지었다. 그러나 거문고도 잘 못 타고 시도 잘 짓지 못하며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면서 이런 호를 갖고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듣고 껄껄 웃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제 백운거사(白雲居士: 흰구름 은둔자)라고 호를 바꿨더니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자네, 속세(俗世)를 벗어나 푸른 산에 들어가 흰구름 속에 누우려는 건가? 어째서 이런 호를 지었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닐세. 흰 구름을 흠모해서네. 어떤 것을 흠모하여 배우면 비록 그 본질을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그와 비슷하게는 되지 않겠나.”
대개 구름이란 것은 뭉게뭉게 피어나 한가롭게 떠다니지. 산에도 머물지 않고 하늘에도 매이지 않으며, 동쪽이든 서쪽이든 훨훨 날아다녀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네. 잠깐 사이에 변화하니 처음도 끝도 헤아릴 수 없지.“
뭉게뭉게 성대하게 펼쳐지는 모양은 군자(君子)가 세상에 나서는 것 같고, 스르르 걷히는 모습은 고매한 선비가 은둔하는 것 같네. 비를 내려 메마른 초목을 살리니 어질다 하겠으며, 왔다가도 정착하지 않고 떠날 때도 미련을 남기지 않으니 화통하다 하겠네. 그리고 구름의 원래 빛깔은 푸르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검은 것이 아니라네. 오직 아무런 빛깔 없이 희디흰 것이 구름의 본질적인 색깔이지. 구름은 저렇게 좋은 덕(德)이 있기에 이처럼 순수한 빛을 갖게 된 거라네.
만약 저 구름을 흠모하여 배운다면, 세상에 나가서는 만물에 은택을 주고,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엔 허심(虛心)으로 새하얀 깨끗함을 지키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낼 수 있겠지. 그리하여 아무런 소리도 빛깔도 없는 드넓고 텅 빈 자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면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알 수도 없겠지. 이 정도면 옛사람들이 인생에서 깨달은 것과 비슷하지 않겠나?“
그러자 어떤 사람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 “거사(居士)라고 한 건 어째서인가?”
“속세를 벗어나 산에 살건 속세에 머물러 집에 살건, 도(道)를 즐기는 사람이라야 거사라 부를 수 있는 거라네. 나는 집에 살고 있지만 도를 즐거워하는 사람이거든.”
이렇게 대답했더니 그 어떤 사람은 말했다. “이렇게 잘 알고 보니 자네 말이 이치를 꿰뚫고 있네그려. 기록해 둬야겠네.”
그래서 적어 둔다.
* 이규보에게 흰구름은 그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떠다니는 자유로운 마음의 표상만은 아니다. 비를 내려 메마른 초목을 살리는 데서 알 수 있듯 만물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는 존재이며, 흰 빛깔에서 나타나듯 변함없는 순수함을 간직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를 그리며
옛날에 아버지가 남쪽에 살고 계시고 제가 개경(開京)에서 공부할 적엔, 삼백 리 길이 비록 힘들어도 가기만 하면 뵈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 계시는 북산(北山) 기슭은 개경의 성곽과 채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아 잠깐이면 갈 수 있는 곳이건만 간다고 한들 어떻게 뵈올 수 있겠습니까. 저의 일생이 끝나도록 다시는 뵈올 길이 없다니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넘쳐나는데 목이 메어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이 술 한 잔을 올려 저의 속정을 보여 드리려고 하오니, 서럽기만 합니다.
*이 글은 남을 대신해 써 준 아버지의 제문(祭文: 제사 지낼 때 죽은 사람을 추모하여 읽는 글)이다. 그렇긴 해도 진정이 배어나 마음이 슬퍼진다.
뇌물 권하는 사회
내가 배를 타고 어떤 강을 건너 남쪽으로 갈 때의 일이다. 그때 바로 곁에서 나란히 가는 배 하나가 있었는데, 그 배는 내가 탄 배와 크기도 같고 뱃사공의 수도 같았으며 배에 탄 사람이나 말의 수도 거의 비슷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보니 그 배는 나는 듯이 달려 벌써 건너편 언덕에 닿았는데 내가 탄 배는 머뭇거리기만 하고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같은 배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저 배는 사공에게 술을 먹여서 사공이 힘을 다해 노를 저었기 때문이라오.”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없을 수 없어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 참! 이렇게 조그만 배가 갈 때에도 뇌물을 주어야 빨리 앞서가고 뇌물이 없으면 미적미적 뒤처지는데, 하물며 벼슬자리를 다투는 마당에서야 어떻겠는가! 내 수중에 돈이 없으니 지금껏 작은 벼슬자리 하나 맡지 못한 것도 당연한 거지.”
훗날 보려고 이렇게 적어 둔다.
?
* 세태에 대한 풍자가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 대한 탄식과 닿아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