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윤오영은 우리나라의 연암 박지원과 중국의 張岱와 金聖嘆을 사숙, 동양 고전 수필의깊고 아름다운 세계를 열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 바탕에서 우러나온 한국적 수필의 진수를 실제 작품을 통해 선보였다. 그러나 그의 수필은자유로운 산문이다. 자유롭다는 말은 고전문장의 일체의 규격과 제한된 사상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과거의 문장을 모르고 전통을 계승한 바가 없으며대가에게 사숙한 바가 없으면 탈피할 그 무엇도 없다.
그는 옛것에서 배워왔으되 시대에 맞게 변화시켰고, 전에 없던 새것을 만들어냈지만 능히법도에서 벗어남이 없었다. 이것이 그의 글쓰기 정신의 바탕이 된 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으로 연암의 말이다. 때문에 저자의 수필에는 그만의 독특한체취가 서려 있다. 그것은 서양의 수필과 계선을 달리하는 전통적 글쓰기에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필을 곶감에 비유했다. 곶감을 만들려면 먼저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좋은글이 되려면 먼저 文章氣를 벗겨야 하는 것과도 한가지 이치다. 그 다음엔 시득시득하게 말린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드러나 하얀 雪이 앉는다. 만일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놓는다. 글쓰는 이의 개성을 말한다. 감은 오래 가지 못하지만 곶감은 오래 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수필을 한국수필이 거둔 가장 빛저운수확의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 저자 윤오영
서울 출생으로 호는치옹(痴翁)·동매실주인(桐梅實主人). 보성고등학교에서 20년간 교편을 잡았다. 「현대문학」에 「측상락」을 발표한 이래 수많은 수필과 새로운문학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고독의 반추』『방망이 깎던 노인』『수필문학입문』이 있다.
■ 편역자 정민
1960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미쳐야 미친다』『한시미학산책』『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한서이불과 논어병풍』『어린이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등이있다.
■차례
달밤
소녀
붕어
사발시계
농촌
조약돌
인시
백사장의하루
유한한시간
염소
온돌의 정
행화
비원의 가을
하정소화
참새
봄
내 고향
소창
촌가의사랑방
오동나무 연상
목중노인
촌부
방망이 깎던 노인
치아
밀물
측상락
미제 껌
씀바귀맛
조매
넥타이
다연 속에서
애연의 변
석류장
엽차와 인생과 수필
생활과 행복
동소문턱
송석정의 바람 소리
와루간산기
향연
처빈난
명분
수혼비
마고자
백의와 청송의변
수금아회갑서
글을 쓰는 마음
나의 독서론
깍두기설
양잠설
곶감과 수필
연암의문장
곶감과 수필
달밤
내가 잠시 낙향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웃마을 김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는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소녀
고개 마루턱에 방석소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예까지 오면 거진 다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 마루턱에서 보면 야트막한 산 밑에 올망졸망 초가집들이 들어선 마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넓은 마당 집이 내 진외가로 아저씨뻘 되는 분의 집이다.
나는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오면 한 번씩은 이 집을 찾는다. 이 집에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열세 살 되는 누이뻘 되는 소녀가 있었다. 실상 촌수를 따져가며 통내외까지 할 절척도 아니지만 서로 가깝게 지내는 터수라, 내가 가면 여간 반가워하지 아니했고, 으레 그 소녀를 오빠가 왔다고 불러내어 인사를 시키곤 했다. 소녀의 몸매며 옷매무새는 제법 색시꼴이 백이어 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서 좀 범절 있다는 가정에서는 열 살만 되면 벌써 처녀로서의 예모를 갖추었고 침선이나 음식 솜씨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집 문앞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 있었고, 한편 들에서는 일꾼들이 보리를 베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에 들어가 어른들을 뵙고 수인사 겸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얼마 지체한 뒤에 안 건넌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려는 것이다. 사랑방은 머슴이며, 일꾼들이 드나들고 어수선했으나, 건넌방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방도 말짱히 치워져 있고, 돗자리도 깔려 있었다. 아주머니는 오빠에게 나와 인사하라고 소녀를 불러냈다. 소녀는 미리 준비를 차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곱게 매만져 있었다. 나도 옷고름을 다시 매만지며 대청으로 마주나와 인사를 했다. 작년보다도 훨씬 성숙해 보였다. 반쯤 닫힌 안방 문 사이로 경대 반짇고리들이 한편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막 건넌방에서 옮겨간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 일꾼들을 보살피러 나가면서 오빠 점심 대접하라고 딸에게 일렀다. 조금 있다가 딸은 노파에게 상을 들려 가지고 왔다. 닭국에 말은 밀국수다. 오이소박이와 호박눈썹나물이 놓여 있었다. 상차림은 간소하나 정결하고 깔밋했다. 소녀는 촌이라 변변치는 못하지만 많이 들어 달라고 친숙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곱게 문을 닫고 나갔다. 남창으로 등을 두고 앉았던 나는 상을 받느라고 돗자리 길이대로 자리를 옮겨 앉아야 했다. 맞은편 벽 모서리에 걸린 분홍 적삼이 비로소 눈에 띄었다. 곤때가 약간 묻은 소녀의 분홍 적삼이. 나는 야릇한 호기심으로 자꾸 쳐다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밖에서 무엇인가 수런수런하는 기색이 들렸다. 노파의 은근한 웃음 섞인 소리도 들렸다. 괜찮다고 염려 말라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러더니 노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밀국수도 촌에서는 별식이니 맛없어도 많이 먹으라느니 너스레를 놓더니, 슬쩍 적삼을 떼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상을 내어갈 때는 노파 혼자 들어오고, 으레 따라올 소녀는 나타나지 아니했다. 적삼 들킨 것이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가 올 때 아주머니는 오빠가 떠난다고 소녀를 불렀다. 그러나 소녀는 안방에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했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수줍어졌니? 얘도 새롭기는” 하며 미안한 듯 머뭇머뭇 기다렸으나 이내 소녀는 나오지 아니했다. 나올 때 뒤를 흘낏 훔쳐본 나는 숨어서 반쯤 내다보는 소녀의 뺨이 확실히 붉어 있음을 알았다. 그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비원의 가을
구름다리를 향해 걸어가던 나는 맞은 편에서 오는 금아琴兒(피천득의 호)와 만났다.
“마침 잘 만났군!”
“혼자서 비원엘 가던 길이야?”
금아의 말이다. 두 그림자는 드디어 비원으로 옮겨졌다. 각기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다. 석양은 한 자쯤 남아 있었다.
낙엽을 밟으며 누릇누릇한 수림 사이로, 약간 남아서 선연한 단풍을 본다. 만추의 빛이다. 저물어 가는 가을. 비원 안에는 사람이 적었다. 낙엽을 깔고 앉으니 푹신하고 들어간다. 한 움큼 쥐어 보며,
“이효석의 산이란 참 좋은 작품이었군!”
금아도 말없이 낙엽을 쥐어 본다.
언덕길을 내려갈 때 앞서 가는 남녀 두 학생이 있었다. 우리를 돌아다보며 “할아버지 이 꽃 좀 보세요. 봄날 같지요” 하기에 옆을 보니 양지편으로 뻗친 가지에 개나리꽃이 노랗게 맺혀 있었다. 손바닥을 꽃 밑에 대고 들여다본다. 갑자기 풀린 날씨에 잠시 핀 철 아닌 꽃이다. 초승달 같은 이 꽃, 보는 사람은 극히 적다.
다시 숲 속에 앉았다. 둘의 이야기는 지나간 옛날을 더듬었다. 창범이, 남이, 상빈이, 영범이, 지금은 다 어디들 있는고, 둘은 죽고 하나는 병들고 하나는 알 길이 없다. 어렸을 때 어두운 거리, 비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울분을 터뜨리고 포부와 재주를 다투던 그리운 얼굴들이다.
금아는 깨끗하고 고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항상 고독을 느끼는 다감한 사람이다.
“이렇게 느끼다가 가는 것이 인생인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대답 대신 호탕하게 웃었다.
「서상기서西廂記序」에 김성탄金聖嘆의 말이 걸작이다.
“내가 언제 이 세상에 태어나지라고 청했기에 무단히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며, 이왕 태어났으면 길이 머물러나 두거나, 왜 또 잠시도 못 머무르게 그렇게 빨리 가게 하며, 또 오래 머무르지도 못하게 하면서 그 동안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들은 왜 또 이렇게 다감하게 했느냐고 조물주에게 따졌더니, 그 대답이 난들 어찌하리오, 그렇게 아니할 수가 있다면 조물주가 아닌 걸, 당신들이 제각각 나라고 하면, 어느 것이 진짜 나요.”
하더라는 것이다. 이 또한 성탄대로의 실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옥류천玉流泉의 물소리는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는 서울이 아니다. 고궁도 아니다. 두 사람을 위해서 잠시 베푼 만추의 한 폭이다. 이윽고 금아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가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 그리 길지 못한 가을이나마 또 몇 번이나 이렇게 둘이 한가하게 즐길 수 있겠소.”
하고 웃었다. 그리고 소동파의 글을 외었다.
“밤에 달이 밝기에 뒷산 절에 올라갔다. 상인上人(僧)도 마침 마루에서 달을 보고 있다가 반가워한다. 뜰 앞에 달빛이 고여 바다 같다. 마당가의 대나무 그림자가 어른어른 물에 뜬 마름 같다. 달빛은 어느 때나 있고 대나무 그림자도 어디나 있지만, 이 밤에 우리 둘같이 한가한 사람이 있기가 적다.”
이 전편 몇 줄 안되는 글이지만 나는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적벽부」보다 높이 평가한다.
“백년 인생 한가한 날은 많지가 않다百年閒日不多時!” 인생 백년을 짧다 하지만 그 사이에 한가한 시간이란 다시 짧다. 깊은 산 고요한 절에 숨어 살아도 우수와 번뇌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가한 것이 아니요, 밝은 창 고요한 책상머리에 단정히 앉았어도 명리와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한가한 것이 아니다. 심심해서 신문광고를 들고 누웠어도 시비와 울화를 안고 있으면 분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요, 피로와 권태가 이미 한가한 것이 아니다. 하물며 생활에 쫓기고 세태에 휩쓸려 한가할 겨를이 없음에서랴.
세월의 빠른 것을 한탄하고 슬퍼함은 인간 통유의 정이지만 기다림이 있으면 일각이 삼추 같고, 괴로움이 있으면 하루가 십 년이다. 옥중에서 지리한 세월을 저주하는 사람, 월급날을 손꼽아 재촉하며 초조한 사람도 있다. 진실로 한가한 사람이란 몇이나 되는가.
도연명 같은 전원 시인을 한일閒逸이라 하지만,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캐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를 읊어 본 시간은 그의 일생에서도 반드시 많지는 못했을 것이다.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 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 간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이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