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람들은 옛사람이 남긴 이러한 "와유"의 자료를 통하여 지금은 훼손되어 황량하고인파로 붐벼 번잡한 산과 강을 찾아보되, 그래도 남아 있는 운치 있고 한적한 곳에서 이 책을 펴고 옛 모습을 아스라이 떠올리고 마음으로 노니는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새롭게 단청이 이루어진 절 한 구석 바위 위에서, 밤이 되어 사람들이 돌아가고 달이 풍월 주인을기다릴 무렵 이 책 속에 그려진 옛 흥취를 누워서 그려본다든지, 지금은 오염되어 거울같이 맑지 않은 강에서도, 옛사람의 글을 포개어 옛사람의맑은 마음을 바라본다거나, 지금은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회색 생채기로 덮인 산이지만, 옛사람의 글을 읽고 그 앞에서 눈을 감고 누워 옛사람의높은 기상을 떠올리는 것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벌이는 쓰잘 데 없는 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도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청량산淸凉山을 오르내리며, 오르막길의어려움은 선을 행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고 내리막길의 쉬움은 나태와 안일에 빠지기 쉬움과 같다고 생각한 것처럼, 남명 조식이 지리산을오르내리면서 한 번 흘러간 물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고, 굼실굼실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생각하라. 이것이 산과 물을 찾는 뜻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만 이들은 말없는 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산과 물을 찾는 또 다른 뜻은 속세와 떨어진 산 속이나 물가에서 세사를 잊고마음에 맞는 벗들과 한때의 풍류를 즐기는 데 있다. 풍류의 중심은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데 있다. 흥이 더욱 높아지면 산중의 풍류는 춤과노래로 이어진다. 관광을 떠나는 이들이 찻간이든 산 속이든 강가든, 음주가무는 동이족의 오랜 전통이었다. 옛 사람들이 멀고 가까운 산행에 기생과악공을 불러서 데리고 간 것은 산중의 풍류를 위한 것이었다. 남명 같은 근엄한 학자도 지리산을 등반하면서 기생을 시켜 노래를 부르게 하고 그에맞추어 자신도 일어나 춤을 추었을 정도다.
■ 편자 이종묵
경북 청도 출생으로 서울대 국문학과를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에 조선 전기 한시의 큰 흐름이었던 해동강서시파를 다룬 『해동강서시파연구』가 있고, 한국한시의 작법과 미학을 연구한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를 내었다. 여러 연구진과 함께 서거정의 문학을 총체적으로 연구한 『서거정 문학의종합적 검토』, 조식의 생애와 학문을 연구한 『칼을 찬 유학자-남명 조식』 등이 있다. 여러 해 동학들과 『국조시산』, 두보의 한시와 그 언해를강독하여 역주서 『조선시대의 한시』 『두시와 두시언해』 등을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하고있다.
■ 차례
제1부 산중의 즐거움
풍악이 있는 삼각산 단풍놀이
인왕산에서 본 서울도성
달밤의 도봉산 영국동 계곡
운악산에서의 꿩사냥
달밤에 찾은 운주사
폭설 속에 찾은 천방사
문석이 아름다운수정사
제2부 산사에서의 단상
예순 일곱에 오른 관악산연주대
도봉산 회룡사 폭포에 담긴 뜻
미지산 윤필암에서 기른 높은 안목
유년 시절의 수종사를 다시 찾은 즐거움
책 읽는 데좋은 치악산 대승암
사람으로 인하여 이름난 법천사
퇴계의 덕을 닮은 청량산
제3부 강물에 배를 띄우고
월파정의 달구경
소동파를 넘어선 위항인의 서호 뱃놀이
노량강에서의 눈썰매
달밤에 배를 타고 노닌 우협
낙동강에서 밤배를타고서
제4부 개울가에 집을 짓고
위항인의 시회가 열리던인왕산의 일섭원
이계 개울가에 지은 집
사계절 경치를 모아놓은 수락산 취승대
창옥병에 서린 맑은 절조
은둔의 땅 청계산아래의 둔촌
누워서 노니는 산수
누워서 노니는 산수
산과 물에서 보는 사람과 세상
왜 산과 물을 찾는가? 아름다운 산과 물은 그 자체로 심미의 대상이기에 이러한 물음이 헛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산과 물에 사람이 없다면 산과 물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절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시골 노인들을 관광버스에 태워 명승지에 내려놓으면 그들은 한 바퀴 돌고 와서 시큰둥하게 말한다. “물하고 바위밖에 없구만.” 그리고 돌아와서는 자랑한다. “좋은 데 갔다 왔어. 바위가 신기하게 생겼고 물이 맑더구만.” 그러나 시골 노인은 어디를 가보았다는 경력을 하나 더하였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명승지나 관광지를 찾을 때 누구나 시골 노인이 된다.
시골 노인의 티를 벗기 위해 옛사람이 산과 물을 찾은 뜻을 알아야 한다. 조선의 가장 실천적인 유학자였던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지리산을 내려오면서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看山看水看人看世)” 하였다. 평소 가고 싶어하던 산의 정상에 올라 가슴을 한 번 활짝 펴고, 강물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 가득히 안는다. 그리고 앉을 만한 바위에 앉아 스스로를 생각하고 세상사를 생각한다. 이것이 옛사람이 산과 물을 찾은 뜻이요, 지금 사람들이 산과 물을 찾아 구해야 할 뜻이다.
지금 사람들이 산과 물에 임할 때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김밥, 음료수, 술, 과일, 초콜릿 등등. 물론 옛사람들도 먹거리를 들고 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지만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있다. 바로 책이다. 옛사람들은 산과 물을 보고 사람과 세상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고 물가에 임할 때 책을 가지고 갔다. 이름난 산을 가면 앞사람이 유람하면서 쓴 기행문이나 시집을 들고 갔다. 『대학大學』이나 『소학小學』과 같은 골치 아픈 책도 빠뜨리지 않는다. 산과 물을 즐기고, 술과 시, 음악을 즐기다가, 다시 큰 소리로 책을 읽었던 것이다. 우리도 산과 물을 찾을 때 책을 가지고 가자.
산에 올라, 물가에 임하여 책을 읽다가 사색을 하자. 산과 물은 사색의 화두를 제시한다. 흘러가는 물을 보고 세상 이치를 생각하고 산길을 오르면서 인생을 생각하라. 오르막길의 힘겨움은 어려운 책을 읽을 때의 고통과 같지만 정상에 섰을 때의 통쾌함은 한 권의 책을 독파했을 때의 즐거움과 같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청량산淸凉山을 오르내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오르막길의 어려움은 선을 행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고 내리막길의 쉬움은 나태와 안일에 빠지기 쉬움과 같다. 남명 조식이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한 번 흘러간 물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고, 굼실굼실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생각하라. 이것이 산과 물을 찾는 뜻이다.
물가의 풍류와 산사의 즐거움
사람들이 산과 물을 찾는 또다른 뜻은 속세와 떨어진 산 속이나 물가에서 세사를 잊고 마음에 맞는 벗들과 한때의 풍류를 즐기는 데 있다. 풍류의 중심은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데 있다. 물가나 산 속에서 마음에 맞는 벗과 시주를 즐기기 위하여 옛사람들은 주령酒令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주령이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시를 짓되 제한된 시간에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는 것이다. 굽은 물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돌아올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가 내려진다. 흥이 겨워 놀이가 밤까지 이어질 때에는 촛불에 금을 그어놓고 그때까지 시를 짓지 못해도 벌주가 내려졌다.
흥이 더욱 높아지면 산중의 풍류는 춤과 노래로 이어진다. 관광을 떠나는 이들이 찻간이든 산 속이든 강가든, 음주가무는 동이족의 오랜 전통이었다. 옛 사람들이 멀고 가까운 산행에 기생과 악공을 불러서 데리고 간 것은 산중의 풍류를 위한 것이었다. 남명 같은 근엄한 학자도 지리산을 등반하면서 기생을 시켜 노래를 부르게 하고 그에 맞추어 자신도 일어나 춤을 추었을 정도다.
인적이 드문 강가나 산 속에도 볼 만한 것이 있어 찾는 이들의 흥을 도왔다. 물 좋은 계곡에는 다이빙이나 물썰매를 구경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양경우梁慶遇가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에 갔을 때다. 4~5길이나 되는 폭포가 있었는데 예쁘장한 젊은 스님 7~8인이 벌거벗고 벼랑 위에 서서 양손으로 그 음부를 가리고 다리를 합치더니 몸을 솟구쳐 못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금강산 발연사鉢淵寺 근처의 발연폭포에서 승려들이 물썰매를 타는 것도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100미터가 넘는 비스듬한 폭포에서 승려들이 발가벗고 소리를 지르면서 물썰매를 타고, 양반 사족들은 이를 즐겼다. 비가 오고 나면 물이 불어 물썰매를 타는 것이 위험했지만 불쌍한 승려들은 목숨을 걸고 뛰어내려야 하는 살풍경을 연출하여야 했다. 위험하지 않을 때에는 양반들이 직접 물썰매를 탔다. 겨울에는 점잖은 문인들도 얼음이 깡깡 언 한강에 썰매를 탔다.
산과 물을 찾는 즐거움은 이러한 떠들썩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봄이면 꽃을 보고 가을이면 단풍을 보러 가는 것이야 흔한 일이지만, 아름다운 수석을 채취하러 다닌다거나, 하얀 달밤 강물에 배를 띄우고 뜻이 맞는 벗들과 시와 술을 즐긴다거나, 매를 놓아 겨울 사냥을 떠나는 것이나, 폭설이 쏟아진 산사를 찾아간다거나, 어느 하나 즐겁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누워서 노니는 산수, 눈을 감고 노니는 산수
빼어난 산과 물은 절로 이름이 나지만, 학덕과 풍류를 자랑하던 옛사람들의 자취가 서리면 더욱 이름이 높아진다. 지리산은 남명으로 인하여 더욱 이름이 났고 퇴계가 있었기에 청량산의 존재가 더욱 높아졌다. 후대 남명과 퇴계의 제자들은 스승이 즐겨 찾던 산을 찾아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남명을 추종한 사람들이 지리산에서 남명의 천 길 우뚝 솟은 ‘벽립천인壁立千?’의 기상을 배우고자 하였다면, 퇴계를 존숭한 사람들은 청량산에서 퇴계의 ‘온유돈후溫柔敦厚’ 정신을 배우고자 하였다.
어느 산 어느 물이든 옛사람의 자취가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있는가? 산과 물을 휑하게 둘러보고 발길을 돌리면 시골 노인처럼 경력만 하나 더할 뿐이다. 그러나 안동의 청량산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서, 거의 500년 전, 퇴계가 이 길을 거닐었다는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마음으로 고인과의 대화가 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름다운 산과 물에 어울려 서 있던 아담한 집과 누정, 그리고 사찰, 옛사람이 보았던 땅은 대부분 지금 사라져버렸다. 그렇다고 옛사람과의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비록 더럽혀지고 사라진 곳이라도 옛사람의 자취는 그들이 남긴 글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늙어서 다시 보기 위하여 산수를 찾은 흥을 시문으로 제작해 두고 훗날 ‘와유臥遊’의 자료로 삼았다. 지금 사람들은 옛사람이 남긴 ‘와유’의 자료를 보고 ‘와유’를 하면 된다. 훼손되어 황량하고 인파로 붐벼 번잡한 산과 강을 찾아보되, 그래도 남아 있는 운치 있고 한적한 곳에서 이 책을 펴고 옛 모습을 아스라이 떠올리고 마음으로 노닐면 된다. 새롭게 단청이 이루어진 절 한 구석 바위 위에서, 밤이 되어 사람들이 돌아가고 달이 풍월 주인을 기다릴 무렵 이 책 속에 그려진 옛 흥취를 누워서 그려보면 된다. 지금은 오염되어 거울같이 맑지 않은 강에서도, 옛사람의 글을 포개어 옛사람의 맑은 마음을 바라볼 수 있으면 된다. 지금은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회색 생채기로 덮인 산이지만, 옛사람의 글을 읽고 그 앞에서 눈을 감고 누워 옛사람의 높은 기상을 떠올리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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