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

   
이승수
ǻ
태학사
   
7000
2001�� 05��



■ 책 소개
제문은 고인에게 제사를 지낼 때 낭독되는글로 유세차維歲次로 시작해서 상향尙饗으로 마무리되는 격식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 길을 떠나는데 어찌 술 한 잔 따라주지 않을 것이며, 한마디 말이 없을 것인가? 또 육신이 멀어졌다고 어찌 그를 잊을 수 있는가? 그래서 분향하여 신을 부르고 한 잔 술을 권한 뒤 제문을 읽는다.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말하기도 하고, 그간의 경위를 알려주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고인을 부르며 직접 말을 건넨다. 그래서 분위기가 자연격절激切해지기 쉽다. 이렇게 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계속 공존하는 것이다.

 


묘지명과 묘비명은 후세에 전할 목적으로 고인의 출신 내력과 생시의 행적을 돌에 새기는글로, 묘지명은 장례식 때 광중에 넣고 묘비명은 비석에 새겨 무덤 앞에 세운다. 이 중에서 묘지명은 죽음의 시점과 멀지 않기 때문에 묘비명에비해 내용이 상대적으로 애절하다. 광지壙誌나 광명壙銘이라 하기도 한다. 제문이 죽은 자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 죽은 자와 공존한다면, 묘지명과묘비명은 기억을 통한 영속을 꾀한다. 과거는 지속적으로 환기되어 나오고 현재에 함께 있다. 제문과 묘지명은 모두 제의祭儀와 불가분의 관계에있으며, 사라진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과거와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책은 이러한 제문과 묘지명·묘비명의 글들 가운데서 한양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승수가 가려 뽑아 옮긴 글들을 묶어 낸 것이다. 


죽음은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상처를 입힌다. 밤, 상처, 모든 분리, 절망은 언제나 죽음의그림자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온다. 삶은 본질적으로 고苦이고 죄罪라고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 말한다면 삶은 생래적으로 죽음의 그림자이고, 죽음이준 상처이고, 결국은 죽음이다. 삶에는 필연적으로 누적되어 전해진, 죽음이 가한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고 거두어지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 모든존재는 사라지며, 그래서 허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고 아름답다. 죽음은 삶을 불안과 공포의 격랑에 휩싸이게 했지만, 아름다움과 행복을낳기도 했다. 틈과 균열이 오히려 존재 사이의 일체감을 회복시켜 준다. 남은 자와 사라진 자 사이의 일체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끊임없이 죽은 자를 불러내어 괴리감을 확인하고, 이어 생전에도 이루지 못했던 대화와 합일을 시도한다. 그러니 삶은죽음이고, 죽음은 그리움이고, 그리움은 아름다움이며, 아름다움은 다시 삶인 셈이다. & & & 


■ 편자 이승수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06년현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연구(硏究)』『조선의 지식인들과 함께 문명의 연행길을가다』 등이, 옮긴 책으로 『국역 졸수재집』『옥 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 등이 있다.


■ 차례
태학산문선을 발간하며
살아남은 자의슬픔


제1부 한 가지에 나서
아비는 부를 줄 모릅니다 -김일손
다시는 너를 볼 수 없겠지 - 김창협
한잔 술에 정을 담아 - 조귀명
국의의 처방 - 박지원
새벽달은 누이의 눈썹같았네 - 박지원
...


제2부 고락을 함께 해왔건만
우리 딸이 시집갈 땐 -김종직
가난했던 시절의 한 장면 - 허균
이제 편히 쉬시오 - 김창흡
이 아픔 당신도 알게 하리다 - 김정희


제3부 나는 누가 묻어주나
나무에 글을 새기는 까닭 -이규보
이 마음은 네가 알 것이다 - 상진
두려워하지 말거라 - 송준길
아아, 우리 며느리 - 조성기
여기는 모두 네가오가던 길인데 - 김창협
...


제4부 죽음을 맞으며
나의 일생 - 상진
땅속개미들 내 입에 들어오고 - 남효온
내 마음 얻을 이 있으리 - 이황
재주 있음과 재주 없음의 사이 - 남유용
뒷사람을 경계한다- 허목
...


제5부 사우의 의
나옹의 뜻 - 이색
천도는옳은가 그른가 - 정몽주
추강과 시를 주고받고 있겠지요 - 홍유손
아직도 자네 생각에 눈물짓네 - 송한필
이젠 저를 알아줄 이없나이다 - 임제
...


제6부 무명소객의 죽음
무주고혼들을 위로함 -이원록
사람들을 해치지 마시길 - 이광덕
성현의 도와 유씨 노인의 도 - 이건창





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


파리야 북쪽으로 날아가거라
弔蠅文
정약용(1762~1836)

가경 경오년(순조 10, 1810) 여름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자꾸 번식하여 산골짝까지 만연하였다. 고루거각에서도 얼어죽지 않더니 술집 떡 가게에 구름처럼 몰려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발분하여 소멸하려고 하였다. 혹은 통을 설치하여 걸려 죽게 하고 혹은 약을 놓아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뒤 없앴다.


아아! 이는 죽여서는 안 된다. 이는 주려 죽은 자의 몸에서 나온 것으로 기구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지난해 큰 기근에 혹한이 겹쳐 전염병이 돌았고 가혹한 징수까지 당했으니, 시체는 길에 널렸고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따스한 바람이 불자 살이 썩은 물이 흘러 고였는데, 여기서 황하의 모래보다 많은 구더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것들이 날개가 돋아 인가로 날아온 것이다. 아아, 그러니 어찌 이 파리들이 우리들의 무리가 아니겠는가? 너의 생애를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너희들을 청하노니 서로 알려주어 와서 먹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이들을 위로하였다.


파리들은 날아와서 이 음식 소반에 모여라. 수북히 담은 쌀밥에 간 맞춘 국도 있으며, 술에 국수도 마련해 놓았으니 마른 목과 타는 창자를 축여라.


파리들아 날아와라. 훌쩍거리지 말고 부모처자와 함께 실컷 먹어라. 너희 옛집에는 쑥대만이 무성하고 처마와 벽은 다 무너지고 문도 기울었으니,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우는구나. 너의 옛 전답에는 가라지만 자라는구나. 올해엔 비가 많이 내려 흙에 윤기가 흐르지만 마을엔 사람이 없어 갈아엎을 이가 없구나.


파리들아 날아와라. 이 기름진 고기에 앉아라. 소 다리는 살졌고 잘 담근 장에 생선회도 있으니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펴라. 도마에 남은 고기는 그대의 무리에게 먹여라. 그대의 시체들은 아무렇게나 몸도 가리지 못한 채 거적에 쌓여 있는데, 장마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이물로 변하여 꿈틀 꿈틀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들이 놀라곤 하네. 그래도 어린것은 어미 가슴에 파고들어 젖을 빨고 있네. 마을에서도 썩은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구덩이를 메워 그곳에는 잡초만 무성하네. 이리들은 파헤쳐 뜯어먹으며 좋아라 날뛰는데, 구멍 숭숭한 해골만 나뒹구네. 그대는 이미 날아다니니 번데기만 남은 셈이네.


파리들아 날아와라. 현청엔 들지 마라. 굶주려 얼굴이 누렇게 뜨고 뼈만 남은 이들만을 엄하게 가려내어 아전들이 붓을 들고 그 얼굴을 자세히 살피네. 대나무처럼 늘어선 사람들 중에서 다행히 선택되어 봐야 물 같은 멀건 죽을 얻는데 마시자마자 날벌레들이 위아래로 아른거리네. 돼지처럼 살찐 이들은 호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입 모아 아부하면 그나마 가상하게 여겨 견책하지 않네. 보리가 익으면 진장賑場을 거두고 잔치를 벌리는데, 북소리 피리 소리에 아리따운 기생들은 너울너울 춤을 추네. 교태를 지어내며 부채로 얼굴을 가리네. 음식이 넘쳐도 그대는 먹을 수가 없네.


파리들아 날아와라. 관청에는 들지 마라. 깃대가 벌려 있고 창대가 도열해 있네. 돼지고기 소고기국이 푹 물렀고 메추리구이와 붕어지짐에 오리탕, 그리고 꽃무늬 아름다운 중배끼 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며 어루만지고 구경하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다네. 장리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살피는데, 냄비에 고기를 지지며 입으로 불을 부네. 계피물 설탕물에 칭찬도 자자하나, 범 같은 문지기가 철통같이 막아 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야단친다. 안에서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 놈은 주막에 앉아 멋대로 판결하여, 역마를 달려 마을은 모두 편안하고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으니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하네.


파리야 날아가거라. 혼이라도 돌아오지 마라. 그대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영원히 어둠 속에 있는 것을 축하하네. 죽어서도 앙화가 남아 형제에게 미치니, 6월에는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호령 소리 산악을 뒤흔드네. 가마와 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가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어다가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고기 물크러지듯 죽어가지만 만민의 원망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네. 어진 이는 움츠려 있고 아전들만 날뛰니 봉황은 입 다물고 있는데 까마귀떼가 짖어대는 격이네.


파리야 날아와라. 다시 북쪽으로 날아가라. 북쪽으로 천 리를 날아 궁궐에 들거든 그대의 충정을 호소하고 깊은 슬픔을 낱낱이 펼쳐라. 말하지 않고 억지로 참으면 시비를 가릴 수가 없을 것, 해와 달이 밝아 그 빛이 환하니 어진 정치를 베푸시사 하늘에 고하라. 하늘의 위엄이 우레처럼 격발하면 풍년이 들어 주리는 일이 없을 것이니, 파리야 그때는 남쪽으로 오거라.

?

격분을 풍자 속에 담은 글이다. 분을 못 이겨 터져 나올 듯한 괴성과 욕설, 그리고 깊은 체념의 탄식을 겨우 참고 서슬 퍼런 비수 한 자루를, 아무리 감싸도 정신을 빼앗는 그 퍼런 빛을 감추지 못하는 한 자루 비수를 담았다. 다산은 남도에서 백성들의 참상을 보아 끝없는 슬픔에 잠겼고, 조정에서는 이러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세태에 분노했고, 그럼에도 지식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했다. 이러한 슬픔과 분노와 절망은 비단 다산 시대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