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란 무엇인가

   
심노숭(역자: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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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사
   
9000
2006�� 05��



 책 소개
심노숭은 자신이 지나온 삶의 자취가 춘몽처럼 스러질까 봐 76년의 인생역정을 집요하리만큼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얽혀져 빚어낸 역사마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그는지나온 역사와 당대의 정치와 인물들에 대해서도 방대한 양의 기록들을 남겨놓았다.

 


그럼에도 삶의 자취를 이토록 절절히 남기고자 했던 그는 『대동패림』의 편자로서 근자에야겨우 이름 석 자만이 알려졌을 뿐, 사후 160여 년이 지나도록 전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에 나온 산문집 『눈물이란 무엇인가』는 이러한그의 모습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리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심노숭이 살았던 18세기 말∼19세기 초는 상품화폐의 발달, 도시의 성장, 성리학 말폐의노정, 실학적 사고의 흥기와 같은 국내적 상황에 명·청의 새로운 사상과 문학, 서학西學의 유입 같은 외적 요인들이 뒤섞여 사회 전반이 급변해가던 시기였다. 문단의 동향 역시 문학 담당층의 광범위한 확대, 성리학적 문학관의 이완 등과 함께 다양한 변모의 양상들이 나타났고, 그 급변의징후가 상층의 사대부 관료·문인에까지 파급되자 정조正祖는 급기야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에 따라 명·청의 각종패사소품서들의 국내 반입이 금지되고, 관각館閣의 공용문과 유생들의 과문科文에 순정醇正한 문체가 요구되었으며, 조정 관료들은 올바른 문체에 대한각자의 의견을 임금에게 개진해야 했다. 하나의 통합적 이념을 필요로 하는 봉건왕조의 시대에 문체의 다양화는 곧 의식의 다양화였기에, 재위자는위기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패사소품가로 매도당하였던 일부 문사들은 자신의 문학에 가해진 각종 제재制裁에대해 강력히 반발하기도 하였다. 심노숭은 이 시기 대표적 패사소품 작가들인 김려·이옥·강이천 같은 문인들과 성균관에서 가까이 교유하고 있었으며,그 문학 성향에서도 일정하게 이들의 문학과 공통되는 면모들이 보이고 있다. 그러한 작품 성향을 오직 "패사소품"만으로 규정할 수는 없겠으나,조선 후기 주요한 산문 작가로 자리매김할 만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만명晩明 소품가들의 글을 두고 후배 문인들은 기쁨과 웃음, 노함과 꾸짖음이 다 훌륭한문장이 되었다라고 평하곤 하였는데, 심노숭의 작품들에는 바로 이 기쁨과 웃음, 노함과 꾸짖음이 모두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저변에는발랄함과 강개함, 유연함이 깔려 그만의 개성적인 문체를 빚어내었다. 이러한 예를 동갑내기 아내 전주이씨를 잃고, 이후 2년여 동안 그녀를애도하는 작품들을 쏟아내었는데, 이때 남긴 도망문悼亡文들에서 먼저 볼 수 있다. 


■ 저자 심노숭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태등(泰登)으로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7대손이다. 부친은 영·정조연간의 문신이며 <정변록(定辨錄)&&이란 당론서를 남긴 심낙수(沈樂洙)다. 1790년 진사가 되었으나 1801년부터 6년간 경상남도기장에 유배되는 등 정치적 격랑 속에 불우한 장년기를 보냈다. 해배된 후 줄곧 포의(布衣)로 지내다가 50대 중반에야 음직(蔭職)으로노성현감(魯城縣監), 천안군수(天安郡守), 광주판관(廣州判官), 임천군수(林川郡守)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효전산고(孝田散稿)』 및58책(유배일기 20책 포함)을 남겼고, 야사총서 『대동패림(大東稗林)』을 편찬했다.


■ 역자 김영진
1968년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논문으로 「효전심노숭 산문연구」「효전 심노숭론」「조선후기 사대부의 야담 창작과 향유의 일양상」 「염승전 연구」「(해설·교주) 염시탁젼」「유만주의 한문단편과기사문에 대한 일고찰」 등이 있다. 현재 고려대, 안동대에 출강하고 있다.


차례
제1부 도망문

베개맡에서 지은 글
아내 영전에
『미안기』 서문
산에 나무를 심는 이유
그대 얼굴 위로 쑥은다시 돋아나고
...


제2부 인물전과 일화
창고지기장복상
보살할멈 박씨
노래기생 계섬
구팔주의 호협
임백호의 호탕
...


제3부 산해필희
기장바둑돌
장인어른
유배객 이광현
시패·벽패
천하의 정치문자
...


제4부 문예론
시는 중정화평의 법도를가져야
훈고가의 문장과 소설가의 문장
염정시는 승려가 잘 지을 수 있다
속될지언정 거짓 문학은 하지 말라
송보다는 명의시가 훌륭하다
...


원문 제1부
원문 제2부
원문 제3부
원문제4부




눈물이란 무엇인가


아내 영전에望奠祭亡室文
유세차 임자 5월 27일 망실亡室 유인孺人 완산이씨가 귀녕歸寧간 삼청동三淸洞 집에서 죽으니 청송 심노숭은 그 목소리와 얼굴이 점점 멀어짐을 슬퍼하고, 이제 꿈속에서조차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을 애도하며 마음에 한을 새기고, 뱃속엔 아픔을 담아둔다. 반생潘生의 부賦는 문사文思가 고단苦短하고, 장자莊子의 노래는 예법에 지킴이 있었네. 번민과 원망을 품으니 궁한 듯하고, 시절을 느끼니 슬픔만 보탤 뿐. 음식을 차려놓고 한 마디 말을 붙여 술을 따르면서 평소 화락했던 것을 추억해 보고 그대 신령이 오기를 바란다. 6월 무진달 15일 임오날에 연궤筵? 앞에서 곡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삶과 죽음에는 다 정해진 명命이 있다고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어떤 이는 혹 횡사하기도 하니 어찌 다만 차꼬와 절벽?함정 등으로 죽을 뿐이리오? 그대 죽음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나로 말미암았네. 불교에 원업寃業이란 말이 있으니 곧 인과因果라. 낙토樂土에는 그대 가고, 악도惡塗에는 나 떨어졌네. 그대는 인자하고 너그러웠으니 내 어찌 차마 슬퍼하지 않으리오? 그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나를 가엾게 여길지니 어찌 죽었다고 아무 것도 모르겠소? 장인?장모 나를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시니 내 마음은 놀라 칼날이 피부에 닿는 듯하오. 그대 품성은 버팀성이 있고, 관상은 박하지 않았으며, 기운은 강함을 받았으니 병과 싸우기를 오래할 것 같았건만, 이에서 그치고 마니 이는 나의 어질지 못함 때문이라. 병의 원인을 말하고자 하나 그대 응당 듣기 역겨워할 것이오. 시래기국조차 배불리 먹지 못했으니 인삼?복령 어찌 써 볼 수 있었으리오! 눈 내리는 겨울, 밤새 굶주림에 아이는 울어대나 나올 젖도 없었지. 강보에 감싸 따뜻하게 해주고 밝게 웃으며 하는 말, “훗날 이런 일 추억으로 함께 얘기할 수 있겠지요?”


업고業苦는 다하지 않아 병이 고질되니 어린 아이를 가장 걱정하여 제수씨께 잘 보살펴 달라 부탁했었지. 그러나 차마 아청阿淸이 그대 앞서 먼저 황천으로 갔다고 말하게 될 줄이야! 고복皐復하던 날 새벽, 처제의 꿈에 그대는 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서 있고 아이는 곁에서 놀고 있는데, 따라가려 하니 뒤돌아보며 전송하더라 하오. 기는 혹 서로 감응이 있을 수 있으나 이치는 상심을 끊네. 내 이 말을 듣고 간장肝腸이 다 타는 듯하였소. 송이는 아직 어려 우매해서 통곡할 줄 모른다오. 그 애가 아는 것도 안쓰럽지만 아직 아무 것도 모름에랴! 아이 넷을 낳아 셋을 일찍 잃었으니 남은 거라곤 이 아이뿐. 당신은 아이가 당신을 빼닮은 걸 기뻐하였고, 아이는 가르쳐주는 대로 다 따라 배웠지. 그러나 당신 또한 먹을 수 없으니 그 보답을 어찌 기약하리오?


이제껏 말한 것은 살아 있는 이의 자위이니 아득한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나는 본디 정에 약한 것이 아녀자 같아서 그대 병 심해진 후로 곁에서 머뭇거렸지. 그대 또한 이런 내 성격 알아서 보고 싶다는 말 자주 안 했네. 죽음을 앞두고 한 말, “공연히 지아비 잠 깨우지 마오.”


예로부터 임종 못함 예의가 아니었네. 26일 저물녘 말하기가 힘에 부치고 혀가 이미 굳어져 갔는데, “가군께 인사를 못 드리니 죽어가면서도 마음 더욱 아프다오.” 죽기 얼마 전 보내온 서찰에, “아청이를 가슴에 묻고 손수 염殮하리다.”라 하니 나는 울며 허락하였지만, 여러 사람들 이견이 분분했네. 예禮에 이미 상고할 바 없고, 일 또한 불경스러웠지. 아청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효심을 보이더니 끝내 유명을 달리하였네. 돌이켜보면 일마다 서글퍼 마음이 아프네. 친정에서 병치레한 것도 본래 그대의 뜻 아니었지. 좁은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초상을 치르고, 장마비에 일이 불편할까 봐 식구들과 떨어져 여기에 머물게 된 것이라네.


파주坡州에 새 집을 꾸리던 그 오랜 계획을 당신 아직 기억하오? 사묘祠廟를 봉안하고 이어 어머니를 모셔 놓고 나서, 나는 남았다가 결국 관 속에 든 그대와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되었구려.


새벽 베개엔 온갖 상념들이 찾아들고, 등불도 없는 가운데 들리는 낙숫물 소리. 지나온 삶을 참회하니 문득 깨달음을 얻은 승려인 듯. 죽음이 진실로 슬퍼할 만하나 살아있은들 또한 무슨 즐거움 있으리오? 유유한 시간 속에 한바탕 꿈일러라. 그대 먼저 그 먼곳을 구경하오.

작년 이날을 추억하니 남산 아래 집에서 쟁반에는 떡이 담기고, 마루 위엔 웃음 소리 넘쳐났지. 아이는 찹쌀떡을 이어 놓고, 당신은 나를 위해 술을 따라 주었네. 나는 취해 시를 읊조리다 보니 밤이 다 되었지. 지금은 혼자 댕그러니 남아 집에 있어도 나그네인 듯. 그대 혼령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다면, 이런 나를 보고 깊이 근심할 것이외다. 남은 꽃들 집을 에워싸고 나무에선 매미 울어대는데 하늘엔 구름 유유히 지나가고 땅에는 강물 흘러가네. 그대여 부디 와서 임하소서. 상향.


이 제문은 전체가 4언의 운문韻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노숭은 이 글을 짓고 9일 후 다시 「발인 전 죽은 아내에게 고함發靷前告亡室文」을 지었는데 이 글은 완전 산체散體로 되어 있어 대조적이다. 심노숭은 제문은 가송歌頌?묘지墓誌?행장行狀 등의 문체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는 뚜렷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제문은 가송歌頌?지장誌狀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세상에선 많이 행록行錄을 써 고하니 그 슬픔이 신을 감동시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는 비유하자면 먼길 떠난 이에게 편지를 부치면서 그 혼자 떨어져 있는 쓸쓸함을 말하지 않고 그 나그네된 고충을 위로하지 않은 채, 평일 언행의 착함과 재덕의 높음만을 장황히 말하면서 ‘이와 같은 까닭에 잊을 수 없다’고 하는 꼴과 같으니 그 사람이 어찌 발끈 노하여 ‘이는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렇지 않다면 과연 나를 잊을 것인가?’라 하지 않겠는가?
- 「서고제문후書告祭文後」


제문은 망자亡者에 대해 살아 있는 이의 진실한 감정의 토로가 중요한 것인데, 제문에다 망자의 언행과 재덕을 찬양만 하고 있을 뿐이니 신령이 무슨 감동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덕을 기술하는 묘지?행장 등에서도 실상을 넘는 과장을 경계하였다.


무릇 사람이 죽으면 친하고 아꼈던 이가 그를 위해 그 덕을 기록한다. 그러나 사사로움에 가려 혹 허여許與가 과하기도 하니 ‘유묘諛墓’(죽은 이에 아첨한다는 뜻)의 기롱을 천고千古로부터 면치 못했던 것이다. 살아서는 일컬어짐이 없다가 죽고나자 볼 만해지니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면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나는 까닭에 ‘덕을 기술함에 죽은 이로 하여금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면 족하다’라고 말하였다.


- 「망실언행기서亡室言行記敍」

이렇듯 심노숭은 ‘진정眞情’이 문학의 생명이란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감정이 절절한 명문들을 많이 남겼던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