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를테면 자르시오

   
한유(역자 : 고광태)
ǻ
태학사
   
8000
2005�� 10��



■ 책 소개
중국 당나라의 문인 한유의산문들을 엮은 책.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자 고문체의 전형적인 학자 한유의 글 중에서, 그의 사유와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글들을 선별하였다.문제를 꿰뚫는 통찰력, 핵심을 파헤치는 집요함, 숨김없는 감정표현을 강렬히 드러낸 한유의 산문들을 만나볼 수있다.

 


■ &>저자 한유韓愈 (768-824)
중국 당唐나라의 문인으로 자字는 퇴지退之다. 3세 때 부모를 잃은 후 궁핍한 성장기를 보냈다. 무려10년 동안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지방의 말단 관리부터 시작, 국자박사 등의 관직을 거쳐 이부시랑까지 올랐다.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특히 문장에 뛰어나 기존의 글쓰기 틀을 변형하여 중국고전 산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한유가 죽은 후,조정에서는 그에게 ‘문文’ 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려, 후대에는 그를 ‘한문공韓文公’이라 불렀다..


■ 역자 고광태(高光敏)
한양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대만사범대학에서「북송시기 한유 수용연구北宋時期對韓愈接受之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당송산문唐宋散文을 연구하고 있으며, 중국고전 번역을평생의 과제로 삼고 있다. 혼재된 가치 속에서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선생이 되길 꿈꾸며, 나눌수록 부유해짐을 믿고 있다. 현재 한양대, 강릉대에출강하고 있다.


차례
제1부 할 말은 한다
 
누가 내 다리를 자른다 말이오 
근무시간을 줄여주세요 
맹자도 쫓아가지 못할
한해만 멈추어 주소서 
자를 테면 자르시오 
목숨걸고 올리는 글 
흔들리지 않기 


제2부 어깨를 펴고 
운명 
그 소리못들었소? 
몸값을 올리려면 
상생 


제3부 무거운 삶 가벼운 이야기 
가난 귀신떠나보내며 
공부나 해 
놀고 먹는 관리 
밀어넣고 돌 던지기 
사기결혼 


제4부 슬픔 그리고 이별 
믿을 수 없는이별 
슬럼프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무리 조심해도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라 


제5부 세상아 들어라 
공평을 위한 공평
사라진 선생님 
내가 우는 이유 
어서 가시게나 
같아야 사는 것 
미장이 이야기 
용과 구름 
정치인과의사 
백락과 천리마 
죽어서 후회하는 사람들 


*1~4부 원문 수록 





자를테면 자르시오


누가 내 다리를 자른단 말이오 
答崔立之書

사립斯立 족하足下.
나는 험한 길을 보고도 멈춰 서지 못하고, 하는 일마다 때를 얻지 못하니, 넘어지고 거꾸러져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놓쳐 버렸소. 또 궁핍하게 되어도 변할 줄 몰라 두번 세번 곤욕을 당하오. 내 사정이 이러하니 군자君子 소인小人할 것 없이 모두 나를 측은히 여기고 비웃으며, 천하의 사람들이 등지고 떠나갔소.


하지만 그대 나를 가르칠 수 있다 여겨, 자신의 수준을 낮추어 친히 글을 써서 서신을 전해 주었소. 고아高雅한 문사文辭로 고금古今의 예를 들어가며, 나를 이끌어 주고 깨우쳐 주니 그대는 친구의 도리를 다했다 하겠소. 이제 나는 그대에게 바랄 뿐이며 다른 이에게 기대하지 않겠소.


하지만 보내준 편지에서 나를 이해하지 못한 듯이 말하였는데, 이는 고의로 나를 진작振作하려 함은 아니오?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그대는 사내대장부의 모습을 나에게서 기대하지 않는거요? 침묵할 수 없어 밝히고자 하오.


열예닐곱 세상일을 아직 모르던 시절, 나는 성인聖人의 책을 읽고 벼슬살이는 오직 남을 위해 하는 것이지 자신의 이득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여겼소. 스무 살이 되어 가난한 살림에 입고 먹을 것이 없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 받아 생활한 후에야, 비로소 벼슬살이는 남을 위해서 하는 것만은 아님을 알았소.


장안長安에 와서, 진사과進士科 시험에 응시한 자들이 남들에게 존숭尊崇되는 것을 보고 진정 나도 그렇게 되기를 원했소. 그리하여 시험 보는 방법을 알아보던 중에, 어떤 이가 예부禮部에서 본 부賦, 시詩, 책문策文 등의 문제들을 보여 주었소. 그것을 보고 이 정도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주州와 현縣에 가서 예비시험에 통과하였소. 하지만 시험관試驗官들은 제 마음대로 점수를 매겨 나는 네 번째 시험에서야 겨우 급제했지만, 아직 벼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소.


들리는 말에, 이부吏部에 박학굉사博學宏辭라는 시험이 있는데 여기에 합격한 자들은 더욱 뛰어난 인재로 인정받고 좋은 관직도 얻는다 하더이다. 그리하여 시험 보는 방법을 알아보던 중에, 어떤 이가 시험 본 문장을 보여 주었는데 예부禮部의 것과 비슷하였소. 내심 왜 그런지 이상하다 여겼지만 그래도 합격하면 명성을 얻을 수 있다 기대하며, 또 주州와 부府에 가서 예비시험에 통과하였소.


이부吏部에서 두 번 시험을 보았는데, 한 번은 합격했지만 중서성中書省의 심사에서 탈락하였소. 그때는 비록 관직을 얻지 못했어도 남들이 내 재능을 인정해 주더이다. 그런데 물러나 내 시험답안을 읽어보니, 그것이 남들 흉내나 내는 광대들의 문사와 다를 바 없어 몇 달 동안 얼굴이 창피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소.


그렇지만 이미 한 번 시작한 것이니 결실을 맺고 싶었소. 이것은 결국 ??상서尙書??에서 말한 ‘잘못을 창피하게 여겨 고치지 않아, 결국 큰 과오를 저지른다’는 격이 되었소. 나는 다시 예비시험에 통과했지만, 최종 시험에서는 행운이 따르지 않더이다. 때문에 내 자신을 의심하며, 내 답안이 합격한 이들의 것과 수준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소. 나중에 그들의 답안을 보았는데, 내가 창피할 정도는 아니었소.


원래 박학博學이라는 것이 어찌 오늘날 말하는 박학博學이란 말이오! 소위 굉사宏辭라는 말이 어찌 지금의 굉사宏辭의 수준이란 말이오! 만약 굴원屈原?맹자孟子?사마천司馬遷?사마상여司馬相如?양웅揚雄과 같은 옛날의 걸출한 선비들로 하여금 이 시험에 응시하게 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수치스러워 하며 응시하지 않을 것이오. 설사 그들이 시험을 치른다 해도 지금 같은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상황 속에서는 분명 떨어질 것이오.


그러나 저 다섯 사람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자신들의 문장文章과 학술學術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스스로를 얼마나 자부하겠소. 어찌 그들이 시험담당관 한 사람의 평가 앞에서 미천한 재주를 가진 이들과 경쟁하며 또 그 결과를 놓고 슬퍼하거나 기뻐하겠소!


내가 관직에 연연해하는 것은, 작게는 여러 옷가지들을 사고 가난하고 외로운 가족들을 봉양하려는 것이며, 크게는 나의 기쁨을 남들과 함께 나누기 위함이오. 이 외에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내 스스로 오랫동안 생각했기에 남들이 일러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소.


그대는 나를 ‘옥석玉石을 헌상獻上하는 사람’에 비유하며, 옥석은 반드시 장인匠人의 가공加工을 거쳐야 천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고 말했소. 또 비록 다리를 두 번이나 잘렸지만 안타까워 말고 권력자들에게 다시 잘리지 않도록 하라 했소. 그대의 격려가 참으로 자상하오. 그러나 관직 하는 것이, 어찌 이 길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단 말이오!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관직 할 수 있다 하니, 이는 더욱 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오. 나는 아직 옥석玉石을 헌상獻上하지 않았으며, 내 다리도 아직 잘리지 않았으니, 그대 나 때문에 너무 근심하지 마시오.


지금의 천하의 풍속은 옛날에 미치지 못하오. 변경邊境에서는 아직도 갑옷을 입고 병기를 잡고 전투 중이며, 주상主上께서는 즐겁지 못하고 재상宰相도 근심뿐이오. 내가 비록 현명하진 못하나 국가정치의 잘잘못을 깊이 연구하였소. 만약 이것을 재상께 올리면 재상은 나를 주상께 추천할 것이니, 나는 위로는 경대부卿大夫의 자리를 기대할 수 있고 아래로는 하나의 변경요새邊境要塞의 수장首長이 될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이 모두를 이룰 수 없다면, 나는 한적한 들판에서 밭을 갈고 적막한 물가에서 고기를 낚으며, 국가의 묻혀진 일들을 찾아 현자賢者와 철인哲人의 삶을 고찰할 것이오. 그리하여 이 시대의 경서經書를 써서 영원토록 전하며, 간신배와 아첨꾼들을 처벌하고, 숨어있는 덕행德行들을 드러낼 것이오.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는 분명 이루어질 것이오.


그대는 내가 옥석玉石을 몇 번이나 헌상했다 생각하시오? 또 내 다리는 몇 번이나 잘렸단 말이오? 또 권력자는 과연 누구란 말이오? 형벌을 받아 두 번 다리 잘린 것이 도대체 어떻다는 말입니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신의를 지키는 것이오.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의 미친 듯한 언사言辭는 격발激發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유가 두 번 절합니다.


한유 나이 28세 때의 글이다. 한유는 19세부터 28세까지 장안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며 보낸다. 당시는 진사과進士科와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라는 시험을 차례로 급제해야 관직 할 수 있었다. 한유는 4년 만에 진사과에 급제했고, 그 후 박학굉사과는 3년 연속 낙방했다. 더 이상 시험에 매달릴 수가 없었다.


이 글은 한유가 최립지崔立之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최립지는 자字가 사립斯立으로, 그는 이미 두 시험에 모두 통과하여 관직을 하고 있었다. 최립지가 보기에 한유는 답답한 구석이 있다.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만 탓하는 것 같았다. 그는 ‘옥을 헌상하는 사람’을 예로 들며, 거친 재능을 갈고 닦아 시대에 부합하라고 한유에게 충고했다. 최립지의 눈에 한유는 옥을 헌상하다 다리를 잘린 사람이었다.

?

한유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시대의 틀에 맞추라는 충고를 단호히 거부한다. 격앙된 어조로 그동안의 울분을 토로하며 다른 방법으로 뜻을 이루겠다 말한다. 그의 젊은 기상이 잘 드러나는 문장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