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박제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19세를 전후하여박지원(朴趾源) 등 북학파와 교류하였고 1776년에는 이덕무(李德懋) 등과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내어청(淸)나라까지 이름을 떨쳤다. 정조에 의해 검서관으로 임명된 박제가는 이후 13년간 규장각 내 • 외직에 근무하였고, 신분적인 차별 타파와상공업 장려를 주장하였다. 1801년 네번째 연행길에서 돌아오자마자 동남성문의 흉서사건에 혐의가 있다 하여 유배되었다가 1805년 풀려났으나 곧죽었다. 저서로는 『북학의(北學議)』 『정유집』 『정유시고』 『명농초고(明農草藁)』 등이 있다.
■ 역자 안대회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연세대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문학박사이며,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를 거쳐, 2006년 현재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조선후기 시화사 연구』와 『18세기 한국한시사 연구』,『7일간의 한자여행』 등이, 옮긴 책으로 『역주균여전』(공역)『소화시평』 『선집 한서열전』 『궁핍한 날의 벗』 『조선시대의 한시』 1•2•3(공역) 『단원 풍속도첩』 등이있다.
■ 차례
001. 어린 날의 『맹자』
002.백탑에서의 맑은 인연
003. 절제의 미덕
004. 꽃에 미친 김군
005. 이덕무의 초상을 보고
006. 박제가소전
007. 장환 묘지명
008. 고중암의 변
009. 칭찬도 걱정도 하지 말라
010. 인보를 읽는 법
011.음중팔선도
012. 그림을 읽는 법
013. 이사경을 애도하며
014. 시의 맛
015. 빼어난 시인은 나쁜 시도배운다
016. 소리와 글자는 하나다
017. 시는 무엇을 쓰나
018. 동해에서
019. 조선인의 편견
020.망상
021. 회우기
022. 궁핍한 날의 벗
023. 서울과의 결별
024. 낙향하는 어른을 보내며
025.이무관을 배웅하며
026. 발해고서
027. 북학의를 탈고하고
028. 북학의를 임금님께 올리며
029. 기술자의대우
030. 개혁의 방안
031. 묘양산 기행
032. 원문
궁핍한 날의 벗
이덕무의 초상을 보고
신체는 허약하나 정신이 견고함은
지키는 바가 내부에 있기 때문이요,
외모는 냉랭하나 마음은 따뜻하니
몸가짐이 독실하기 때문이다.
현세에 살면서 숨어사는 분이여!
먼 옛날 고사高士의 풍모로다!
그가 쓴 글을 보고 세설신어世說新語를 느끼는 이들도
그의 가슴에 이소離騷가 가득 차 있는 것은 모르리!
초상화를 보고 그 위에 쓴 글이다. 문학의 형식은 찬贊으로 인물을 찬미하는 내용을 담는다. 박제가가 한평생 지기知己로 흠모했던 친우, 친구가 아니고 스승으로 모셨다고 박제가가 고백한 고매한 학자 이덕무의 초상에 글을 얹었다. 약한 듯 강인한 내면, 냉랭한 듯 따뜻한 외모, 현세를 숨듯이 살아온 진정한 고사高士! 그의 초상에서 느껴지는 모습이다. 그런 이덕무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필文筆을 본다면 누구나 고매한 인물의 풍모를 담고 있는 세설신어의 격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박제가는 남들이 느끼지 못한 한 가지를 그 글에서 찾아낸다. 그의 글 도처에서 저 굴원의 이소가 스며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이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혼탁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순백의 고결함을 지키는 학자의 삶이 그 하나이고, 박학함과 능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서자라는 굴레를 쓴 채 백안시당하는 신세를 감내하는 울분이 그것이리라! 짧은 글이지만 이덕무와 박제가의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울분이 형상화되고 있다.
박제가 소전
조선이 개국한 지 384년, 압록강에서 동쪽으로 1천여 리 떨어진 곳에 그가 살고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신라의 옛 땅이요, 그의 관향貫鄕은 밀양密陽이다. 대학大學에서 뜻을 취하여 제가齊家라고 이름하였고, 이소의 노래에 뜻을 붙여 초정楚亭이라는 호를 지었다.
그의 사람됨을 보자. 물소 이마에 칼날 같은 눈썹을 하고, 눈동자는 검고 귀는 하얗다. 고독하고 고매한 사람만을 골라서 남달리 친하게 사귀고, 권세 많고 부유한 사람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사이가 멀어진다. 그러니 뜻에 맞는 이가 없이 늘 가난하게 산다.
어려서는 문장가의 글을 배우더니 장성해서는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제도할 학문을 좋아하였다. 수개월을 귀가하지 않고 노력하지만 지금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는 이제 한참 고명한 자와 마음을 나누고, 세상에서 힘써야 할 것은 버리고 하지 않는다. 명리名理를 따져서 종합하고, 심오한 것에 침잠하여 사유한다. 백 세대 이전 인물에게나 흉금을 터놓고, 만리 밖 먼 땅에나 가서 활개치고 다닌다.
구름과 안개의 색다른 모습을 관찰하고 갖가지 새의 신기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원대한 산천과 일월성신, 미미한 초목과 벌레물고기서리이슬은 날마다 변화하지만 왜 그러한지 알지 못하는데 그 현상의 이치를 가슴속에서 또렷하게 터득하였다. 언어로서 그 실상을 다 표현할 수 없고, 입으로 그 맛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혼자서 터득한 것임을 자부하지만 그 누구도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아아! 몸뚱어리는 남을지라도 떠나가는 것은 정신이고, 뼈는 썩을지라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그의 말을 알아듣는 분은 생사와 성명姓名을 초월한 그를 발견하기 바라노라!
그를 예찬하여 쓴다.
책을 지어 기록하고 초상화로 그려놓아도
도도한 세월 앞에선 잊혀지는 법!
더욱이 자연스런 정화精華를 버리고
남과 같이 진부한 말로 추켜세운다면
불후의 인물이 될 수 있으랴?
전傳이란 전해주는 것.
그의 조예와 인품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해도
완연히 그 사람이라서 천만 명의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한 다음이라야
천애天涯의 타지에서나 오랜 세월 흐른 뒤에 만나는 사람마다 분명히 그인 줄 알 것이다.
1776년에 쓴 소전小傳이란 이름의 자전自傳이다. 명말 소품가들은 자기들의 독특한 삶을 소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려냈다. 세속적 명리名利를 추구하지 못하는 기벽奇癖을 가진 문인들의 자화상이 소전에서 드러난다. 박제가의 이 소전 역시 세상의 도도한 흐름과 배치되게 살아가는 삶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 인간을 규정하는 상식적이고 상투적 내용을 말하지 않고, 남과는 다른 그만의 개성을 드러내었다. 찬하는 글에서는 천명 만명과 다른 한 사람의 개성적 상을 그리는 것이 전傳의 사명이라고 천명하였다.
칭찬도 걱정도 하지 말라
세시명절에 답장을 받아보고 상중에 큰 탈이 없이 지내심을 멀리서나마 확인하였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 병은 나이가 먹을수록 더하고, 학문은 날이 갈수록 퇴보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제가 처남의 가문에 사위로 들어간 지 무릇 몇 해입니까? 날마다 제 말을 듣고 날마다 제 행동을 보아왔으면서 아직도 저를 의심하다니?
평소의 제 주제를 말해 볼까요. 말은 서툴러 남과 더불어 시원스럽게 대화를 나눌 주변도 없고, 천성은 게을러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진력할 푼수도 못됩니다. 제가 남들로부터 용납되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간혹 찾아가는 데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저같이 외롭고 한미하며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 한둘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아는 사람이 많다느니 집밖에 나가 사람 사귀기를 좋아한다느니 말한다면 너무 과한 것이 아닐까요?
족하足下가 시험삼아 사람 열 명을 모아 놓고 물어보십시오. 아는 사람 하나가 없겠습니까? 또 시험삼아 한 달 동안 살펴보십시오. 하루쯤 집에 머물지 못할 연고가 없겠습니까?
저는 친구에게 "후세 사람들이 나를 문인에 불과하다고 지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의도는 글솜씨나 뽐내는 경박한 행위를 차마 못하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족하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요? 지금 족하가 저를 책망하는 이유는 저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족하는 저에 대한 비방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는 사연을 아시는지요?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친구가 오자 그에게 먼저 묻기를 "아무개가 나를 비방한다고 하던데 자네는 들은 적이 있소?"라고 물어 보십시오. 그 친구가 만약 비방하는 말을 이미 들었다면 반드시 "들었다네. 정말 그러한가?" 하고 되물을 것입니다. 이는 그 친구로 하여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 됩니다.
그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했다면 반드시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고 되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득불 그에게 저간의 사정을 자초지종 다 설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또 한 사람의 입을 더하게 되는 것이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방이 세상에 두루 퍼지지 않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렇습니다. 족하가 친구가 있으면 반드시 저를 아껴서 그들보다 먼저 저를 자랑하고, 자랑하는 중에 또 걱정거리를 털어놓아 "이 사람이 신기한 것을 좋아하여 이렇고 저렇고 하다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족하의 친구는 제가 신기함을 좋아하는 줄로 알게 됩니다.
그 친구는 듣고 또 자기의 친구에게 말할 것입니다. "아무개가 자기 매부인 아무개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신기한 것을 좋아한다고 걱정하였다네." 그러면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맞장구를 치면서 "그래. 그가 한 말이 옳아. 신기함을 좋아하는 것은 이런 말세에 이로울 게 없지"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족하의 친구의 친구가 제가 신기함을 좋아하는 줄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몇 개월이 지나면 제가 신기함을 좋아하는 사실을 모르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제가 신기한 것을 좋아한 적이 있던가요? 실은 족하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저를 신기한 자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신기함을 좋아한다는 평을 듣는 이유가 시문과 서찰이 남과 조금 달라서인지요? 족하가 제가 하는 말과 서찰을 보았거니와, 상대가 누군가를 물을 것도 없이 제가 색다르게 쓰던가요? 제 한두 친구가 색다르게 쓰는 것을 허용하고, 또 족하가 색다르게 써도 좋다고 허용합니다. 만약 족하가 색다르게 써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제가 어디라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족하가 제 글을 보고 숨겨둔채 처음부터 남들에게 자랑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또 제게 허물이 있음을 걱정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제게 말씀하셨다면 저는 마땅히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아끼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지금 족하는 제가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 혼자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는 저를 버리는 것입니다. 제 마음속에서 그렇게 생각할 리가 있겠습니까?
비방이란 자기의 입을 통해 불어나고, 사랑이란 쉽게 자랑하는 데서 오히려 잘못됩니다. 저를 비난하는 자는 저와 친한 자가 아닙니다. 친함이 지나치면 소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변론을 하다 보니 제 생각만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것은 족하가 스스로 알기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환히 알게 되었는지요? 글로는 제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군요. 두서없는 언사를 쓴 것을 용서하십시오.
한 살 위의 처남 이몽직李夢直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로 절도사를 지낸 이관상李觀祥의 아들이며, 설계신은雪溪新隱이라는 시고를 가진 무인이었다. 박제가와 묘향산을 함께 유람하고 늘 그를 격려하던 지기였다. 이 편지는 1712년 어름에 쓰여진 것으로, 20대 초반의 솔직함과 울울함이 스며있다.
내용은 처남에 대한 불만과 당부이다. 기이한 것을 좋아한다고 걱정하는 말을 멋모르는 남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남에게 박제가를 칭찬도 하고 걱정도 하는 말이 박제가를 신기함을 추구하는 자로 낙인찍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함의 추구, 그것은 상서롭지 못한 짓이다! 습속과 상식에 반하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사안시하는 세상에서 시문이나 서찰을 남과 다르게 쓴다고 구설수에 자꾸만 오르는 것은 처남과 박제가 모두 거북할 수밖에 없다.
박제가는 젊어서부터 기성의 관념과 체재에 거부감을 갖고 늘 변혁을 꿈꾸었다. 그런 취향을 주변의 지기에게 드러냈고 자연히 그를 비방하는 자들이 형성되자 박제가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러한 부탁을 처남에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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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제가를 걱정해주던 이몽직은 얼마 후에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요절하였다. 박제가는 그로부터 평생 남들로부터 기이함을 좋아하는 자, 북학의 병에 걸린 자로 낙인찍혀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았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