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극 - 송남(松南), 춘몽(春夢), 춘몽자(春夢子) 등의 필명으로 1908년부터 태극학보, 서북학회원보에 한시와산문을 게재하였으며, 1908년부터는 태극학보의 주필로 활동한 적이 있다.
현상윤 - 평북 정주 출신으로, 와세다대학 사학과와사회학과를 졸업, 귀국하여 중앙학교 교사를 거쳐, 경성대학 예과부장,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거쳐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을지냈다.
노정일 - 해도 진남포 출생으로, 일본 청산학원 중학부를졸업한 후 미국의 웨슬리언대학을 졸업, 이어 뉴욕으로 가 콜럼비아대학 문과에 들어가 문학학사를 받았다. 이 밖에도 유니언대학과 드루신학교에서신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네브라스카주립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1931년 중앙일보의 사장에 취임.
박승철 - 서울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학지광에 추봉(秋峰)이라는 필명으로, 논문과 평론을 집필, 1921년 독일 유학, 베를린대학에서 사학과 사회학을 공부 유럽 전역을여행.
■ 편자
서경석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음. 저서에 한국근대문학사연구, 한국근대 리얼리즘문학사연구 등이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교수로 있다.
김진량 - 한양대학교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받았으며, 저서로 인터넷, 게시판 그리고 판타지 소설이 등이 있으며, 현재 한양대와 계명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 차례
태학산문선을발간하며
일러두기
개화, 유학 그리고 기행문
제1부 일본편(김원극·현상윤)
우에노공원유람
동물원을 구경하고
아사쿠사공원 유람기
히비야공원 유람기
도쿄 유학생 생활
제2부미국편(노정일)
제1장 권두의 사
제2장 분투 무대의 제1막
제3장 분투 무대의 제2막
제4장 분투 무대의제3막
제3부 유럽편(박승철)
독일 가는 길에 1
독일 가는 길에 2
독일 가는길에 3
베를린에서
파리와 베를린
독일 지방의 2주간
예전부터 동경하던 라인강
고 라테나우 국장 당일의독일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를 여행하고서
전 독일 황제의 거소 도른을 찾고
북유럽의 여관에서
북유럽 열국견문기
그림을 보는 듯 싶은 북유럽의 풍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남유럽, 발칸반도, 기타 열국을 둘러보고
그리스 터키오스트리아를 보던 실기
런던 구경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독일 포츠담에서
부록 - 한자식 지명, 인명 및 외래어 표기일람
식민지 지식인의 개화세상 유학기
아사쿠사공원 유람기
오늘은 융희 2년(1908년) 7월 9일이다. 장맛비는 깨끗이 개어 바람과 볕이 좋다. 하숙에 함께 들어있는 학우들은 시험 때문에 다들 등교했고 나만 혼자 무료히 앉아 있다. 그때 마침 친구 김지간(金志侃)이 내 방문을 두드려 인사를 해왔다. 그는 나더러 오래 전부터 한번 함께 나가 놀고 싶었는데 날씨가 안 좋아 여태 이 모양으로 미적거리고 있어 안타까웠다며, 오늘 날씨가 아주 화창하니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실 나도 처음 객지에 나와 마음이 울적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밖에 나가 구경도 하고 놀았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었으나 말은 안 통하고 길도 생소하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늘 집 안에만 계속 틀어박혀 있었지만, 그게 나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행히 김지간 씨가 나의 이런 사정을 알고 함께 갈 것을 청하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기쁘게 일어나 신을 신고 한참 나가 전차를 타고 긴자(銀坐) 거리와 신바시(新橋)를 차례로 지나간다. 김지간 씨가 상세히 가리키고 설명해 처음 가보는 나로서도 환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가까이 있으며 친절히 대해주는 정이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길을 나선 지 한 시간여 만에 차에서 내려 아사쿠사공원(淺草公園)에 들어갔다. 전각 지붕은 하늘에 닿고 뜰과 난간은 넓은데 물어보니 간논지(觀音寺)라 한다. 인산인해 모인 사람들 틈으로 어깨를 비집고 들어가니 연통제도(?桶制度)는 우리 나라 궁실과 아주 비슷하고 너비와 길이를 비교하면 사방으로 100여 보는 충분해 보인다. 집을 지은 규모가 크고 굉장한 것으로 보아 일본(和國) 제일의 명찰이라 부를 만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 절 뒤로 돌아가니 분수관(噴水管)이라는 게 있다. 둥근 연못에 돌로 만든 난간이 있고, 여기서 큰 고래가 물을 뿜듯 수십 가지 물줄기를 내뿜어 순식간에 시원한 기운이 옷에 젖어든다. 물을 뿜는 분수관 위에 세운 돌인형은 불상과 한 가지다. 그 곁에는 신마(神馬) 목축장이 있다. 귀신을 떠받드는 괴상한 악습은 우리보다 더 심한 듯하다. 또 몇 무(武)를 차례로 들어가니 협률사(協律社)라 하는 게 있다. 종이며 북?피리소리가 사람의 귀를 유혹하고 집 처마며 주렴은 감히 쳐다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여기서 표를 사 들어가니 관객이 빙 둘러앉았는데, 그 앉는 자리가 계단으로 차츰 높아져 많은 남녀가 서로 보는 데 방해되지 않는다. 이러한 제도와 규범의 발달을 여기서 경험할 수 있다. 그 유희를 관람하고 보니 배우와 창기가 앞뒤로 섞여 나와 기괴한 온갖 연극은 일일이 말하기 어렵다.
몇 시간을 보낸 뒤 그 자리에서 나와 또 어떤 곳에 이르니 수중세계(水中世界라 커다랗게 써놓았다. 그 안에 들어가보니 돌과 유리로 만든 수족관에 갖가지 물고기를 그 성질에 따라 기르고 있었다. 김지간 씨가 가리키며, 이렇게 물이 새로 들어오고 오래된 것이 나가니 산소를 공급하게 되어 물고기들이 살아있게 된다고 말했다. 갈수록 신기한 볼거리가 있어 또 들어가니 낙귀여종(洛龜餘種)이라 하는 게 있다. 갇힌 거북이를 보니 탄식이 절로 났다. 아! 네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느냐? 신령한 영물로서 사람의 우리에 갇혔으니 이 또한 상서롭지 않은 일이로다. 네가 정녕 거북인지 알 수가 없구나! 그밖에 해려수호(海驢水虎) 등등 각종 물고기를 따로 분별해 모아놓은 것이 일일이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드디어 문을 나와 이번에는 활동사진관에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불빛이 밝았다 어두웠다 하며 종소리가 요란하다. 한쪽 벽의 장막이 수십 수백으로 변환하며 형형색색의 사람이 잠깐잠깐 나타났다 들어갔다 한다. 노랫소리는 잇달아 일어나고 춤이 연이어 벌어지니 이것이 고금천하에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일이다. 김지간 씨가 가리키며 이것은 전기로 일으킨 바라 일러준다.
다시 나와 높다란 누각 하나를 보니 바로 일로전쟁기념각(日露戰爭紀念閣)이이라 한다. 해군대장 도고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와 육군대장 오오야마이와오(大山巖)의 위대한 공적이 사람의 눈길에 훤히 비친다. 한 곳에 이르니 바로 일본 고래 풍속을 설명해주는 건물이다. 남녀가 서로 다투는 모습과 의복?음식?거처의 도구를 구식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매우 질박하면서도 고루해 보였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미처 다 둘러보지도 못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김지간 씨와 함께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는 길에 우리는 서로 탄식하며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삼대성시(三代盛時)에 누대와 연못에 종과 북을 걸고 백성과 더불어 두루 화락했다는 바로 그것 아닌가. 예부터 우리 나라에 입으로는 이 책을 외웠으되 이를 실행한 자가 있었던가? 이 나라에서는 대개 이런 공원을 세워 절을 구경하는 청정함을 보여주니 그 종교의 요지를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인민에게 음률의 조화로움을 보여주어 무상히 뜻을 잃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또 인민에게 수륙 동물들의 즐거움을 보여주어 그 동물의 성질을 밝혀준다. 아울러 그림을 움직이는 법을 보여주어 기술의 교묘함을 가르쳐준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에게 충성을 드러내는 뜻을 보여주어 그 용맹한 사상을 장려하고, 고금의 풍속을 높이 보여 그 수준과 정도가 발전 진행함을 살펴 깨닫게 한다.
지금까지 살핀 이 수많은 것 가운데 단 하나도 평범한 유희가 없고 국민들로 진화하지 않게 하는 것이 없다. 아! 우리 동포여! 이를 보면 혹시 마음을 일으킬까 해서 김지간 씨와 헤어져 돌아온 뒤 지금까지 본 것을 간단히 적어본다. 고국에 있는 동포들께서 앉은 채로나마 이를 함께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파리와 베를린
2월 8일 코베를 출항해서 38일 만에 프랑스 마르세유 항에 도착, 비로소 유럽 대도시를 보게 되었다. 이 항구는 프랑스 제1의 무역항이라 한다. 높고 큰 건물(高廈巨樓)이 구름을 뚫고 솟았다. 시가는 즐비하나 개항지의 색채가 농후하다. 해안 근처에는 예수교 성모의 동상이 중천에 높이 솟았고, 그곳을 올라가는 데는 홍콩서 보던 것과 비슷한 등산철도라 할까, 절벽을 올라가는 전차가 있다. 그곳까지 올라가 보면 마리아의 동상은 금색이 찬연하며 시가와 항구, 소설 『암굴왕(巖窟王)』으로 유명한 ‘샤토 디브’ 뇌옥이 눈 아래 보인다. 하룻밤을 지내고 파리로 가게 되었다.
마르세유에 상륙할 때 자기 처자를 맞으러 나온 동양인 모씨를 만나 동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매사가 아주 편리하게 되었으며 모든 것을 그이의 지도에 따랐다. 일행이 그럭저럭 오륙 명이 되었다. 차를 탄 지 두 시간 만에 아비뇽이라는 곳을 지난다. 이곳은 서기 14세기경에 기독교도의 분쟁으로 일시 교황이 분립하던 곳이다. 지금 보면 일개 한산한 촌락에 불과하며 성당은 고색이 창연할 뿐이다. 여기서 여섯 시간이나 가면 프랑스의 상업지로 유명할 뿐 아니라 견포(絹布)의 산지로서 세계에 이름이 높은 리옹이라는 곳이다. 그곳에서 내려서 하룻밤 지내기로 하였다. 밤중에 내려 그날 밤은 아무 구경도 아니하고 취침하였다. 이튿날 아침부터 구경하려고 나섰으나, 별로 볼 것은 없고 한적해 보이는 것이 공부하는 데 가장 적당한 것 같다. 법학과에 좋은 교수가 많다는 리옹대학이 있어 법학을 공부하려면 파리보다 낫단다. 정거장 앞 공원에는 자유의 여신이 월계수를 들고 서 있는 혁명기념 동상이 있다. 모든 것이 분망해 보이지 않아 독서하며 산책하기에 대단히 좋아보인다. 이곳에서 기차로 여덟 시간 만에 파리에 도착하였다.
파리는 세인이 세계 도시 중의 도시라 하여 가장 화려한 곳이라 한다. 과연 와서 보니 모든 것이 이목을 놀라게 한다. 인가의 미려함과 도로의 정연함과 그 위에 무수한 자동차가 이상한 소리도 내지 않고 질주하는 것이 자동차 행렬을 보는 것 같다. 야경으로 말해도 불야성을 이루어 원광을 보면 화재가 나 있는 것 같다. 그 평활하게 만들어놓은 통로에 전깃불을 비춰 번쩍거리는 것은 흡사 거울을 보는 듯하다. 누구든지 파리의 화려함과 파리인의 사치로운 생활을 볼 때에는 그 국가와 국민을 가리켜 대전을 치른 국가라든지 국민이라고는 아니할 것이다. 물론 전승국이지만 조금도 피폐한 곳이 보이지 않고 언제 전쟁하였던가 의아할 지경이다. 그 중에도 파리의 야경을 보든지 극장에 가보든지 하면 환락에 취한 국민이라 하겠다.
가극장에 가서 ?파우스트?를 보았다. 이 극장은 파리에서 제일 크다는 곳인데 모두 5층에 3천 명은 수용할 수 있다. 악대가 백삼사십 명이나 되고 배경과 기예의 교묘함은 참으로 한 폭의 그림 같다. 더욱이 음률이 조화로와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하는 것은 동양 천지에서 보지 못하던 것이다. 미술품을 집대성한 루브르박물관도 보았다. 이 박물관에 들어가서 그림을 볼 때에는 명화를 많이 보겠지만, 모든 것이 예수교와 관계없는 것이 없으며 조각도 다소간 그런 경향이 있다. 그 외에 이집트의 미라(木乃伊)도 있고 피라미드(金子塔)도 있으며 여러 가지 모형이 많다. 이런 고귀한 실물을 둔 박물관을 무료로 보이는 것은 학술 진보에 가장 효력이 있는 줄 알겠다. 이것뿐 아니라 모든 것을 무료로 보여준다.
조국을 위한 위인관을 보았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자유가 없거든 죽으라” 하였고, 좌우 벽에는 역대의 위인들이 조국을 위해서 분골쇄신하던 화폭이 붙었다. 그 중에도 프랑스 백년전쟁 기간에 양 치던 처녀로서 분기하여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던 잔다르크의 그림 앞에는 남녀 관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서 본다. 로댕미술관을 보았는데, 로댕과 위고의 작품만 모아 놓은 곳이다. 군사박물관에 가보면 일세의 풍운아 나폴레옹의 분묘도 있고 이번 세계대전에 사용하던 무기도 진열하였다.
뤽상부르공원에 가 보았다. 설비도 잘했거니와 무수한 남녀 나체상이 있는 것이 동양인으로서는 이상하게 보인다. 노트르담에 있는 대성당을 보았다. 이곳은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일시 예수교와 예수 기원을 폐지하고 이성의 신을 예배하던 곳이다. 좌우의 탑이 있는데 그 탑 위에는 무엇이 얹혀 있어야 될 것같이 보여 누가 보든지 미완성품 같이 보인다. 세계 건축물로서는 제일 높다는 탑에 올라가 보니 파리 전시가지가 눈 아래 보이고 흉금이 상쾌하다.
마침 미술전람회가 시작된 때라 현대 작품을 보러 갔다. 대단히 넓은 곳이 회화와 조각으로 가득 찼다. 미술을 모르는 나는 감식력이 없으나, 그 중 이상한 것은 남녀간 비밀히 하는 그 부분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동양천지에서는 또한 보기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중세박물관에 가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루이 14세의 사치로운 생활 유물이다. 비루합(飛陋盒) 한 개라도 범연한 것이 없고 모두 보석으로 장식해 눈을 놀라게 한다. 우리가 역사상으로는 다소 지식이 있지만 실물을 보게 되니 상상 이상이다.
누가 파리를 가든지 개선문을 아니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가서는 나폴레옹을 생각하여야 하겠고 나폴레옹을 생각하고 개선문을 아니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개선문 위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그 문을 중심으로 하고 도로가 사통팔달하였으며 가로수가 열을 지어 있다.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나폴레옹 대제가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위의당당하게 돌아와서 그 공명을 만세에 기념하려 만들었고, 근년에는 연합군이 개선가를 부르며 보무를 맞춰 들어오던 광경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 근세 문화인의 관점으로는 이것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자동차를 타고 개선문을 내달려 유명한 베르사유에 간다. 이곳에서 약 70마일이나 된다. 탄탄대로. 자동차는 한숨에 베르사유에 닿았다. 오면서 지난날을 회상했다. 대혁명 때에 열광한 군중은 베르사유! 베르사유에! 하고 길이 메이게 몰려 나아갔다. 베르사유에 와서 그 궁전을 보니 한 번 더 루이 14세 개인으로서는 영화를 다 누렸던 것을 절실히 알겠다. 지난해 강화회의 당시 연합국 사절들이 머물던 호텔에서 커피와 과자를 먹은 뒤 파리로 돌아왔다. 어쨌든 베르사유는 근대사상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곳이다.
프랑스는 바야흐로 자동차 시대다. 어디를 가든지 자동차를 불러 타면 충실히 데려다 주고 요금도 일정해 투정하는 법이 없다. 도착 이튿날에 길 잃은 아이 신세가 되어 자동차를 타고 왔지만 도로에 나서서 가장 주의할 것도 자동차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려면 중간에서 한두 차례씩은 쉬어야 되고, 더구나 개선문 앞에서는 자동차가 조금도 쉴 새 없이 오는 고로 서너 차례는 쉬어야 된다. 만약 이 점에 주의를 안 했다가는 파리 혼백이 되고 말 것이다. 지하철도가 있어 얼마쯤 편하기는 하나 여름에는 대단히 더울 것 같이 생각된다.
프랑스인은 외국인을 봐도 웃지 않는다. 최근 강화회의 때 각국 사람을 많이 보아 그런지 모르겠으나 요리점에 가서 식사를 할 때라도 쳐다보는 법이 없다. 웃지도 않고 더욱이 서투른 불어 단어를 한 자씩 말하건만 조금도 이상히 여기는 기색이 없다. 파리 경시청을 가보았다. 그 컴컴한 것이라든가 모든 게 음울해 보이는 것이 어떠한 나라든지 대개 비슷한 것 같이 생각된다.
파리에 그럭저럭 9일간이나 머물다 밤 7시 50분 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향하였다.
이튿날 오후 6시나 되어 베를린에 왔다. 중도에 국경을 지날 적마다 대여섯 차례 여행권 조사가 있었다. 마르세유에서 파리까지는 론 강을 끼고 가나 산야가 볼 것이 없다. 그러나 독일은 프랑스와 다르다. 독일은 산야에 나무 심기를 가장 유의하였고 전토를 잘 다루어 모두 옥토같이 보인다. 산에는 수목이 무성하고 들에는 전토가 윤택하여 이것이 곳 옥야천리일 것이다. 다른 곳은 모르겠으나 연로에 평원이 많다. 그러므로 이 (옥야천리라는) 문자는 가장 적당한 줄 안다.
파리를 보던 안목으로 베를린을 보면 그리 번화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차가 이곳저곳 있어 파리같이 자동차 시대는 되지 못한다. 숙소를 베를린에서 급행차로 40분이나 가는 포츠담이라는 곳에 정하였다. 이곳은 옛 독일 황실의 궁실도 있고 풍광도 좋으며 한산해서 나에게는 최적일 듯하다. 이곳에는 본국 학생이 여섯 명 있고 베를린에 열네 명, 남독일 지방에 열세 명이 있다. 독일은 오래 있을 곳이라 급히 명소를 구경하지는 않은 고로 대강 학생 생활을 적으려 한다.
물론 본국서 듣기에도 그러하지만 독일은 모든 물가가 저렴하다. 그러나 이것이 몇 년이고 계속 가겠는가 하면 타국의 예를 보아서 그렇지는 않을 줄 안다. 내가 보는 것으로만 말해도 물가가 점점 올라가지 저렴해지지는 않는다. 지금 같아서는 매월 60원이면 충족히 지낸다고 하겠으나 장래 일을 모르므로 100원을 예산하여야 할 것이다. 지방으로 가면 3~40원으로도 지낸다 하나 연구하는 학과에 따라 다르겠으므로 어쨌든 100원은 예산하여야 하겠다. 설령 독일 마르크(馬克)가 털썩 떨어져 1원에 300마르크까지 된다 하더라도 물가가 올라갈 것이니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일의 물가 저렴한 것을 몇 가지 말하자면 대개 짐작이 될 줄 안다. 먼저 독일 1마르크는 1전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침실과 객실 두 방을 얻으면 문방구를 전부 넣어서 매월 300마르크 가량이고 전등, 조반, 석탄, 세탁 기타를 합해서 600마르크 내외일 것이니 주인에게 매월 900마르크 가량만 주면 된다. 식사는 요리점에 가서 한 번에 20마르크로부터 50마르크까지가 보통이다. 그밖에 양복 같은 것도 1천 마르크로부터 4천 마르크면 보통이며 양화는 400마르크로부터 700마르크면 상당하다. 가극은 6~7마르크에서 30마르크가 보통이고 일류 극장에 가려면 6~70마르크에서 120마르크면 구경하게 된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책값도 대단히 저렴해서 보통 100마르크 내외면 상당한 책을 사게 된다. 차비는 이곳에서 베를린까지 2등에 6마르크, 3등에 4마르크다. 이상 모든 것이 현재의 시세이니까는 장래 어찌 될는지 모른다.
베를린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되어 루터 종교개혁 400년 기념식을 구경하려고 비텐베르크에 가보았다. 가서 보니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 같이 대성황은 아니어서 루터가 살던 집과 기타 유적만 보고 돌아왔다. 모든 것이 독일인에게는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일반적으로 독일인에게 흥미가 있는 것은 이번에 제노바에서 열리는 국제경제회의다. 현재 연합국뿐 아니라 세계 열국이 힘을 모아 구조할 것은 러시아와 독일의 경제적 궁핍이다. 즉 경제적 침입을 정지하여야 하겠다. 만약 경제적 침입을 정지치 않으면 자기네들이 무서워하는 그 사상은 점점 공고해갈 줄 안다. 그뿐 아니라 자기네들이 떠드는 예수교는 허언이 되고 말 것이다.
러시아의 기근은 참으로 대단하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잡아먹으며, 우마가 죽기도 전에 군중이 칼을 가지고 덤벼 뜯어먹으며 심지어 부모의 시체를 먹는 사실이 있었다고 베를린 신문은 보도한다. 독일은 그와 같이는 되지 않았어도 사람마다 물가가 올라 살 수 없다는 말뿐이다. 연합국은 러-독 양국민이 신조로 삼는 그 주의의 호불호를 불문하고 다만 지상에 공존하는 인류의 곤경을 구조하는 대관심으로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여야 비로소 세계에 인류애가 있는 줄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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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의에 전용하려고 4천 리나 되는 제노바와 베를린, 제노바와 런던 간에 직통전화를 가설하였다. 일전에 러시아 위원은 베를린에 도착하였는데 며칠 뒤 제노바로 간다고 한다. 최근 미국 통신이라는 것을 보면 올 여름에 독일에 오려고 뉴욕(紐育) 시청에 여행권 청원서를 제출한 사람이 30만 명이라 한다. 또 비싼 돈 가진 미국인이라고 호텔이라든가 각 상점에서 물가를 더 받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30만 명이 한 사람 당 5~6천 원씩만 쓰고 가도 독일 경제계에는 다소간 영향이 있을 줄 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