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이철환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동아일보」,「국민일보」, 월간지 「주변인의 길」 등에 연재를 했다. 이웃들의 실제 이야기를 쓴 책 『연탄길』은 제33회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되었고,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운영해왔다. 2006년 현재 "풀무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연탄길』『반딧불이』『만화 연탄길』『연탄 -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과 함께하는 스물네 개의 훈훈한 이야기』『행복한 붕어빵』『행복한고물상』『곰보빵』 등이 있다.
■ 그림 유기훈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판화과를 졸업했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린 책으로 『춤추는 돼지 호바트』『내 친구 타라』『나는 쇠무릎이야』『상어를 사랑한인어공주』『행복한 고물상』『곰보빵』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 김용택, 정호승,박민규
책을 펴내며
보물찾기
내...발...이...좀...작...잖...아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없이
아름다운 이별
구구야, 싸우지 말고 먹어
송이의 노란 우산
강아지풀
도토리를 땅에 묻는 다람쥐
내 마음의불꽃은 아직 스러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정말로 힘이 셌다
아빠의 장갑
내 안에 메추리알 있다
민들레 자연학교
할머니의뻥과자
풀여치의 노래
항아리 수제비
못난이 삼형제
사나운 송골매
이불 파는 할머니
고물 유모차
자꾸만눈물이 나왔습니다
봄을 배달하는 할아버지
네가 내 손을 잡아준다면
현수막 편지
우리들의 밤
우리 엄마는감자꽃이다
귤을 먹는 할머니
꽃이 피는 날에도, 꽃이 지는 날에도
200만 원짜리 드레스
사랑의 교회
모두 나의선생님이었다
해바라기 아저씨
불을 켜면 별은 멀어진다
보물찾기
보물찾기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미술 시간이 되면
나는 늘 주눅이 들고 말았습니다.
크레파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아신 뒤로
선생님은 나를 혼내지 않으셨습니다.
미술 시간만 되면
짝꿍의 크레파스를 빌려 썼습니다.
눈치가 보이면 다른 친구들의 크레파스도 빌려 썼습니다.
"야! 내 크레파스 그만 써……."
이맛살을 모으며 친구가 쌀쌀맞게 말하면
그 말이 가슴에 꼭 박혀
여러 날 동안 아프기도 했습니다.
미술대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빨간 소방차 한 대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소방차를 그리려면
빨간색 크레파스가 필요했습니다.
소방차를 그리는 친구들에게
빨간색 크레파스를 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운동장 한쪽에 무 밑동처럼 꽂혀 있다가
구름다리 위로 올라갔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꽁지를 까불며
구름다리 위로 짹짹짹 날아왔습니다.
그해 가을, 우리는 정릉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점심밥을 먹은 후 보물찾기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구석구석 감추어 놓은 종이를 찾아 펴 보면,
종이에는 크레파스, 연필, 노트, 스케치북 같은 보물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짝꿍 기종이와 함께 종종걸음을 치며
보물을 찾았습니다.
돌멩이도 들춰 보고, 바위틈도 만져 보고,
구새 먹은 나무의 구멍도
다람쥐처럼 쭈뼛쭈뼛 들여다보았습니다.
키가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나는 보물을 찾았습니다.
아…… 하얀 종이 위에 ‘크레파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꽃송이 같은 번개가 내 마음에 번쩍거렸습니다.
담임선생님은 패랭이꽃처럼 웃으며
큼지막한 크레파스를 내게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친구들 눈치를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 하는 날,
내 짝꿍 기종이 집에 놀러 갔습니다.
기종이가 말했습니다.
“지난번에 우리 가을 소풍 갔을 때 말이야.
철환이 네가 보물을 찾아서 커다란 크레파스 받았잖아.
사실은, 그 크레파스…… 선생님이 주신 거야.
소풍 가던 날, 선생님이 나한테만 말하셨거든.
철환이 너를 데리고 느티나무 아래로 가라고…….
느티나무 아래 있는 돌멩이를
철환이 네가 들춰 보게 하라고…….
너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나는 기종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어둑어둑할 무렵, 기종이 집을 나왔습니다.
들꽃 같은 집들이 줄레줄레 늘어선
산동네 조붓한 골목길을 오르는데,
전근 가시기 전날,
선생님이 해 주셨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철환이 네 꿈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했지?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화가가 될 수도 있고,
글을 잘 쓰니까 시인이나 소설가도 될 수 있을 거야.
철환아, 꽃은 양지에서만 피는 게 아니란다.
달맞이꽃은 햇볕이 없는 음지에서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잘 자라거든.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절대로 기죽지 말아야 한다.
선생님하고 약속할 수 있지?“
골목길을 걷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선생님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상병태 선생님…… 선생님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도토리를 땅에 묻는 다람쥐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뒷동산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호젓한 산길에서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입에 물고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다람쥐는 새까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사방을 살피더니
입에 물고 있던 도토리를 자기가 파 놓은 땅 속에 묻었습니다.
다람쥐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내게 물었습니다.
“철환아…… 다람쥐가 땅 속에 왜 도토리를 묻어 두는 줄 아니?”
“나중에 먹으려고 묻는 거잖아요.”
“맞다, 맞아…….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란다.”
“다른 이유가 또 있나요, 할머니?”
“응…… 있고말고…….
땅에 묻어 두었다가 꺼내서 먹는 도토리도 있지만,
먹지 않고 그대로 두는 도토리도 있단다.
그놈이 다시 싹을 틔우고 자라야, 그 나무에서
자기 새끼의 새끼의 새끼들이 먹을 도토리가 또다시 열리잖아.
그렇지?
말은 못해도, 짐승들도 사람 못지않게 속이 깊단다.
어찌 보면 다람쥐가 사람들보다 낫지.
눈앞에 뵈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다람쥐가 낫고말고. 암, 낫고말고…….“
도토리를 땅에 묻은 다람쥐가
멀뚱한 눈으로 할머니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다람쥐는 나팔꽃씨 같은 두 눈을 또롱또롱 굴리며,
못 본 척해 달라고 킥킥킥 웃고 있었습니다.
이불 파는 할머니
집에 오는 길에,
횡단보도 앞에서 이불을 팔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팔아야 할 이불에 기대어 졸고 계셨다.
무겁고 고단한 머리를 잠시 이불에 기대고 있다가
당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천국 같은 안락함에
겨우 붙잡고 있던 의자를 놓아 버린 것이리라.
야윌 대로 야윈 할머니의 몸은
볏단처럼 가벼워 보였다.
바람은 고요했다.
오고 가는 발걸음도 모두 숨을 죽였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빨간색 크레파스를 꼬리에 매달고
고요한 허공을 날아다녔다.
잠자리가 지나간 자리마다
가을은 뚝뚝 떨어져 눈물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 보이는 이불을 보았다.
커다란 이불 한 채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아픔을 다 덮을 수 있는
아주 커다란 이불 한 채가 있었으면 좋겠다.
귤을 먹는 할머니
<덕성 사랑의 집>은 풀꽃 같은 집들이
줄레줄레 늘어선 골목길에 있다.
<덕성 사랑의 집>에는 무의탁 할머니들이 살고 계신다.
<덕성 사랑의 집>과 7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나는
제자 아이들과 함께 여러 번 그곳을 방문했다.
우리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뒤뜰에 있는
넓은 공터에 텃밭을 만들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쨍쨍한 텃밭에
할머니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시금치, 상추, 열무,
배추를 심어 기르셨다.
상추 잎 같은 푸른 손으로 씨억씨억 텃밭 일을 마치고 나면,
우리들은 할머니들과 함께 뒤뜰 평상에 모여 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제자 아이들 가운데 한 아이가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선생님, 저 할머니 귤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아이가 가리킨 할머니 앞에는 귤껍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러게……. 할머니가 정말로 귤을 좋아하시나 보다.”
혹여 할머니가 들으실까 봐 나는 조심조심 말했다.
“선생님, 근데 저 할머니 너무 귀여운 거 있죠?”
“왜?”
“할머니가 치마폭에다가 벌써 귤을 일곱 개나 감추셨어요.
나중에 드시려나 봐요. 히히.“
“그걸 세고 있었어? 모르는 체 해라.”
“당근이죠. 할머니가 귀여워서 그냥 세어 본 거예요.”
귤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우리는 싱겁게 웃었다.
숭굴숭굴하게 생기신 그 할머니는
뒤가 잔뜩 저린 얼굴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나서
우리들은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가방을 메고 모두 안채로 들어갔다.
할머니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방안에 누워 계신 한 할머니의 해쓱한 얼굴이 보였다.
아파 누워 계신 할머니의 손이라도 잡아 드리고 싶었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많이 편찮으세요?”
“아니, 괜찮아.”
“많이 편찮으신 것 같은데요, 할머니…….”
“아냐, 며칠 이렇게 누워 있으면 낫겄지, 뭐.”
짠한 마음에 할머니 손을 잡아드렸다.
“할머니…… 저희들 다시 올 때까지 꼭 나으셔야 해요.
아셨지요? 할머니…… 저희 그만 가 볼게요.“
“응, 알았어…… 잘들 가.”
할머니는 달맞이꽃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셨다.
할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 맺혀 있었다.
아픈 마음으로 방문을 나왔다.
잿빛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다.
할머니 머리맡에 놓여 있던 것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할머니 머리맡에는 귤 일곱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조금 전, 우리가 귀엽다고 말했던 그 할머니가
갖다 놓으신 귤이었다.
두 눈 부릅뜨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
사랑의 교회
1
사랑의 교회‘는 개사리 산골 마음에 있는 조그만 교회입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
젊은 목사님이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아 직접 반주를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벼농사, 밭농사를 짓는 농부들입니다.
목사님 말씀이 끝나면, 헌금을 하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준비해 온 헌금을 헌금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천 원짜리 종이돈을 넣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만 원짜리 종이돈을 넣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백 원짜리나 백 원짜리 동전을 넣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백 원짜리 동전을 넣을 때도,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을 때도,
헌금 주머니에서는
짤랑짤랑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헌금 주머니 안에는
푹신푹신한 솜뭉치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전을 넣으며 민망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목사님이 몰래 넣어 놓은 솜뭉치였습니다.
2
탈탈탈탈 탈탈탈탈 탈탈탈탈 탈탈탈탈
예배가 끝나면 교회 앞마당에
경운기 시동 소리가 요란합니다.
이웃 마을, 먼 마을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경운기입니다.
아카시아 향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목사님이 경운기 운전대를 잡습니다.
점순이 아줌마 “오라이!”하는 소리에
고물 경운기 탈탈탈탈 털털털털
힘차게 시골 길을 굴러갑니다.
옴죽옴죽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길섶에 핀 들꽃들이 자꾸만 손을 흔듭니다.
까마중 열매 같은 입가의 점을 실룩거리며
점순이 아줌마, 들꽃들을 향해 소리 소리칩니다.
“예쁘다고 너무 뻐기지들 말어라.
나도 너희들처럼 고운 시절이 있었구먼.
세월이 호랑이처럼 다가와
지금이사 요레 쪼글쪼글 해졌지만
한때는 내가 흘린 코웃음 한 번에
동네 총각들 수십 명은 나자빠졌다.
하여간에 나 좋다고 쫓아다니면서
징그리도 속 썩히던 놈이 있었다.
잊혀지지도 않혀. 그 썩을 놈…….“
점순이 아줌마 말에 모두들 배를 잡고 웃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환갑 넘은
새마을상회 아줌마,
얼쑤 꿍짝을 맞춥니다.
“아따, 우리 목사님은 성격두 참 급하셔.
목사님, 천천히 좀 가세유…….
경운기가 월메나 덜컹대는지
시방, 궁뎅이 다 쪼개지겠슈…….“
늘쩡늘쩡 내뱉는 새마을상회 아줌마 말에
모두들 손뼉을 치며 난리가 났습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흐흐흐흐 히히히히
산수유 열매 같은 빠알간 목젖을 보이며
모두들 숨넘어갈 듯 웃어 댑니다.
장난기 발동한 젊은 목사님,
더 빨리 경운기를 몰고 갑니다.
타타타타 탈탈탈탈탈탈탈탈탈탈탈탈탈
웃음소리에 놀란 개구리들,
논도랑으로 퐁당퐁당 곤두박질칩니다.
경운기 소리에 놀란 수꿩 한 마리,
풀썩풀썩 들판을 걷어차고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릅니다.
‘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
까무룩 잠이 들었던 쪽쪽새 한 마리
허공에 부리방아를 찧으며
까마득한 산 그림자 속으로 까불까불 날아갑니다.
불을 켜면 별은 멀어진다
이제, 서울 밤하늘에는
별이 몇 개 남지 않았다.
사람들이 켜 놓은 불빛 때문에
별들은 하나 둘
서울 하늘을 떠나 버렸다.
불을 켜면, 별은 멀어진다.
내 몸에 불을 켰다.
내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내 몸에 불 하나를 켤 때마다
사랑도 하나씩 내 곁을 떠나갔다.
나를 켜면, 사랑도 멀어진다.
?
나는 이제 캄캄한 어둠이 되었다.
불빛 때문에,
내가 켠 불빛 때문에.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