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항해 홍길주의 저서 『수여방필』 『수여연필』 『수여난필』 『수여난필속』을 번역한것으로, 654항목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씌어졌다. 『수여방필』 『수여연필』 『수여난필』은 홍길주 자신이 직접 정리한 것이고,『수여난필속』은 아들 홍우건이 1842년 부친의 수고(手藁)를 정리한 것이다. "방필"(放筆)은 말 그대로 공부하는 여가에 생각나는 대로 붓을내달린 비망록이란 뜻이다. 이를 부연한 것이 "연필"(演筆)이고, "난필"(瀾筆)이란 그 나머지 넘쳐흐른 것을 수습했다는 뜻이다. 홍길주는수여방필 4부작에 대해 처음에는 한가로움을 소견하기 위해 적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필묵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가슴속에 대나무가그려져 가득 차 막힌 듯하고, 잠시만 놓아두면 흩어져버리므로, 그때그때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행여 달아날세라 적은 것이라고 술회했다.
책 내용은 직접 견문한 선세(先世) 부형(父兄)의 언행과, 당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일화들, 당대 학계와 문단의 흐름, 문학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 사소한 일상사에서 문장과 학술에 이르기까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옮긴 것이다. 이를 통해 19세기 서울 지식인의 문화적 관심사와 안목의 깊이, 사유의 너비 등을 아주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일상사에 대한관심, 생활문화·소비문화와 관련된 보고, 여가 활동의 구체적 표방과 실천, 지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 등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다양한내용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 저자 홍길주
홍길주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헌중(憲仲), 호는 항해(沆瀣)이다.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문인으로, 형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에게서 많은영향을 받았다. 『현수갑고 峴首甲藁』 『항해병함 沆瀣丙函』 『숙수념 孰遂念』 『서림일위 書林日緯』 등의 저작을 남겼다. 의미의 연쇄적 확산과연역적 사유를 보여주는 ‘수여방필’ 4부작 비망록을 비롯한 그의 저작들은 독특하고도 개성적인 시각으로 19세기 지식인의 사유 특성과 문화사의전망을 열어 보여준다.
■ 역자 정민 외
정민은 1960년 충북 영동에서태어났다.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6년 현재 모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한시미학산책』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 『비슷한 것은 가짜다』 『미쳐야 미친다』 『목릉문단과 석주 권필』 『한서이불과 논어병풍』 『와당의 표정』 『돌 위에 새긴 생각』 외다수가 있다.
■ 차례
책머리에
일러두기
1.수여방필
2. 수여연필
3. 수여난필
4. 수여난필속
원문
인명사전
해제
찾아보기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 창고
1. 수여방필
일없이 지내면서 책을 뽑아들고 베개를 베고 있자니 졸음을 물리칠 방법이 없는 것이 괴로웠다. 문득 벌떡 일어나 붓을 들고 공책에다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19일 만에 124항목을 얻었다. 현묘한 이치를 깨달은 것도 없고 사물을 널리 상고하여 살펴본 것도 없다. 단락은 뒤죽박죽 차례도 없고 문장도 거친 채로 꾸미지 않았다. 하인이 장독 뚜껑을 덮기에나 꼭 알맞지 싶다. 잠시 기록하여 남겨두고 ‘수여방필’이란 제목을 붙인다. 을미년(1835년, 50세) 10월 하순
깨달음이 있어야
사람이 아이 적에 책을 두세 번만 읽고도 곧바로 외우거나, 또 간혹 7, 8세에 능히 시문을 지어 입만 열면 그때마다 남들을 놀라게 하다가도 정작 나이가 들어서는 성취한 바가 남보다 특별히 나은 점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똘똘한 재주가 쉬지 않는 부지런함만 못함을 알게 되었다. 또 불을 밝혀 새벽까지 쉬지 않고 애를 쓰다가 흰머리가 흩날릴 지경이 되었는데도 스스로 일가의 말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그 까닭은 어째서일까? 겨우 백여 권의 책을 읽고도 붓을 내려 종이에 폄에 쟁그랑 소리를 내며 환히 빛나, 만 권을 외운 자가 뒤에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똑같이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사람은 한 글자도 남김없이 외웠는데도 식견은 늘지 않고 저작에 볼 만한 것이 없으며, 한 사람은 반 넘어 잊어버렸으나 그 핵심이 되는 알맹이를 모두 옮겨가 폐부를 적셔 펼쳐 글을 지으면 이따금씩 똑같이 되곤 하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깨달음은 도덕의 으뜸가는 부적이다. 옛사람의 책 가운데 경전과 역사책 같은 것은 한 글자도 허투루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나머지 자질구레한 것들은 하나하나 정밀히 궁구하느라 심력을 나눌 필요가 없다. 가령 한 권의 책이 대략 7, 80면쯤 된다고 해도 그 정화를 추려내면 10여 면에 지나지 않는다. 속된 선비는 처음부터 다 읽지만 그 알맹이의 소재는 알지 못한다. 오직 깨달음이 있는 자는 손가는 대로 뒤적이며 지나쳐도 핵심이 되는 곳에 저절로 눈길이 가 닿는다. 그래서 한 권 안에서 단지 10여 면만 따져보고 멈추어도 전부 다 읽은 사람보다 보람이 두 배나 된다. 이런 까닭에 남들이 바야흐로 두세 권의 책을 읽을 적에 나는 이미 백 권을 읽어치울 수 있고, 보람을 얻는 것도 또한 남보다 배나 된다.
짐작 못할 화와 복
뜻에 맞는 일을 만나게 되더라도 절대로 기뻐해서는 안 되고, 내키지 않는 일이 닥쳐도 절대로 근심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화(禍)와 복(福)이 서로 기대어 엎드리는 것은 사람이 이미 짐작할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산 것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만 해도 이미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매번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을 보면 겨우 한 구절을 읽고는 이미 의심을 일으켜 남에게 물어댄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아래 문장에 풀이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만 머쓱해진다. [게다가 책을 읽다가 한 글자만 막히게 되면 끝내 다시는 그 아래 글을 읽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일을 처리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겨우 그 발단만 보고서 바로 시끌벅적하게 옳으니 그르니 의논을 하고, 혹 한 가지 일의 얻고 잃음에 대해서도 문득 걱정을 하니 모두 조급한 사람이다. 사람이 일을 꾀할 때 대부분 하루아침에 성대하게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란 없다. 모름지기 바뀌는 장면을 마땅히 크게 두려워해야 한다.
자기 보기를 신중히 하라
자기가 자신 보기를 항상 부족한 듯 여기면 남들이 반드시 나를 중히 여김을 알게 될 것이고, 자기가 스스로 자신 보기를 늘 오만하게 하면 남들이 반드시 나를 무시함을 알게 될 것이다.
재주를 펴지 못한 선비에 대한 탄식
평양의 선비 조윤철(曺允喆)이 그 아버지의 묘지(墓誌)를 지었는데, 300여 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구슬프고도 간절하여 정리(情理)를 곡진히 드러냈다. 간결하면서도 편협하지 않았고 고결하면서도 건조하지 않았다. 비록 당송 작가의 문집 가운데 두더라도 분명히 선집에 들 만했다. 하지만 살아서는 당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못했고 죽어서도 집안에 전해지는 저작이 없었다. 이 작품은 그 선인의 묘지인 까닭에 겨우 남을 수 있었다. 아아! 궁벽한 고장에서 기이한 재주를 지니고도 이처럼 스러져버린 자를 또 어찌 이루 헤아릴 수 있으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학사가 이 글을 가지고 와 내게 보여주므로 서로 더불어 오래도록 탄식했다.
나무람의 방법
하인과 하급 관리 가운데 교활하게 법을 범하는 자들도 오히려 불쌍하게 여길 만하거늘, 하물며 어리석고 미련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이겠는가? 매번 아랫사람에게 지시하여 부릴 때에는 마땅히 먼저 찬찬히 조치하여 범할 만한 죄가 없게 해야 한다. 이 같이 했는데도 분명하게 하지 못한 뒤에야 나무라는 것이 옳다. 내가 자세하게 일깨워 인도하지 못하여 저들로 하여금 쉬 죄를 범하게 한다면 죄를 범한 자가 불쌍할 뿐 아니라 일은 이미 어그러지고 만다. 비록 이들을 죄준다 한들 뉘우침에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홀로 옳은 이치는 없다
옛말에 이르기를 천하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르다 하는데 저 홀로 옳은 이치는 없다고 했다. 이 말은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새겨 외워야 한다.
자신을 아는 방법
남에게 놀림을 받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재주와 능력이 부족한 데도 자부심이 너무 지나친 까닭에 놀리는 자가 이를 틈타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방법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식견이나 문장을 살펴보아 모두 나보다 나을 것 같으면 나에게 식견과 문장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식견과 문장을 살펴보아 모두 나만 못할 것 같으면 나에게 식견도 문장도 없음을 알게 된다.
모르려고 『주역』을 읽는다
내가 한번은 『주역』을 읽는데 한 손님이 “주역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주역을 모르려고 읽는다네.” 객이 놀라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책을 많이 읽어 대충 글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 묘한 곳에 나아가지 못한 자를 두고 ‘글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괜찮다네. 배움에 마음을 두고 자못 사물을 궁구했으나 그 미묘하고 깊은 곳에는 이르지 못한 것을 두고 ‘이치를 모른다’고 말해도 상관없겠지. 하지만 이제 나무하는 사내종이나 밥 짓는 계집종을 가리켜 ‘저들은 글도 모르고 이치도 모른다’고 한다면 또한 어리석지 않겠는가? 『주역』을 공부하여 정자나 주자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제야 ‘주역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네. 지금 세상에서는 오직 연천 선생(홍길주의 형)만이 이에 가깝다 할 수 있지. 나나 자네나 어찌 감히 스스로 ‘『주역』을 모르겠다’고 할 수 있는가?” 손님이 크게 웃었다.
뒤에 대비과(大比科)를 마치고 나서 시험에 떨어진 것을 서로 위안했다. 내가 앞서의 이야기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시험에 떨어지는 경지도 도달하기 어려운 법일세. 자네들이 어찌 감히 떨어지겠는가?” 또한 크게 웃었다.
2. 수여연필
내가 ‘수여방필’ 짓기를 열흘 남짓 만에 마쳤다. 수십 일이 지나자 더욱 한가해졌다. 쓰다 만 글자와 남은 말이 마음 속에 오가는 것이 그래도 많았다. 그래서 붓 가는 대로 써서 상자에 넣어 두었다. 153항복을 얻고 이름 하여 ‘수여연필’이라 하였다(실제로는 152항목이다). 다시 살펴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한당(漢唐) 이래로 명유(名儒)와 거공(鉅工)이 지은 것을 읽어보면 마치 앞사람이 미처 궁구하지 못한 바를 편 듯하지만, 그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육경(六經)과 선진(先秦) 시대 글에 주석을 단 것일 뿐이다. 이제 내가 스스로, 혼자만 깨달은 독창적인 논의로 남의 이목을 새롭게 했다고 말하는 것도 모두 한당 이후의 책을 부연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 어찌 남겨둘 만한 것이겠는가? 하지만 세대가 내려올수록 글은 더욱 낮아져서 뒷사람이 지은 바가 또 이 책을 풀이한 것이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지금 사람의 작품은 진실로 옛사람을 능가하여 그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옛사람이 다 하지 못한 남은 뜻을 채워 옛사람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처럼 한다면 또한 좋은 책이라 하겠다. 내가 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 그들이 참되고 간절한 마음을 발휘한다 해도 내가 글 쓸 때에 마음속에 있던 것을 헤아리는 것은 백에 한둘도 안 될 것이니 하물며 후세이겠는가. 이해(1855년, 50세) 동짓달에 또 쓴다.
덕은 쌓아둠이 있을 뿐
어떤 사람이 말했다. “덕으로 사람을 교화시키는 것은 옛날의 도이다. 지금의 풍속은 교활하고 완악해서 비록 성인의 교화라 해도 반드시 어리석어 감화됨을 알지 못한다. 다만 형벌의 위엄으로 이를 구속해야지, 덕정(德政)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내가 대답했다. “자네가 정말로 덕정을 행하고도 사람들을 감복시키지 못한 것을 본 뒤에 이 말을 하는 겐가? 나나 자네는 모두 덕을 닦지도 못했으면서 어떤 일에 당하여 갑자기 작은 은혜를 베풀어놓고는 백성으로 하여금 따르게 하려 들지. 따르지 않으면 바로 ‘비록 성인이라도 교화할 수 없다’고 하니 이야말로 성인을 속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덕이란 그저 쌓아두는 것일 뿐이네. 어찌 갑작스레 취할 수 있겠는가?”
지방관을 시켜서는 안 될 사람 2
고을에는 한가하고 바쁨이 없다. 어떤 고을은 너무 한가해서 낮잠을 잘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지방관을 시켜서는 안 된다. 고을의 한가하고 바쁨은 다만 책상 위의 문서와 장부의 많고 적음이나 관청에 소송이 드물고 잦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지방관의 마음속이야 어찌 일 없는 때가 있을 수 있겠는가. 옛날의 훌륭한 관리는 비록 책 읽고 거문고를 타도 마음은 일찍이 잠시라도 백성에게 있지 않음이 없었다. 만약 일이 적다고 해서 문득 그 마음을 등한하게 갖는다면 반드시 다스림에 해가 되고 백성에게 병통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한가로이 낮잠을 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고을의 한가하고 바쁨을 논하는 자는 좋은 지방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묻기를 좋아하는 사람
배움은 묻기 좋아함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물음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또한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다. 만약 일마다 사물마다 반드시 묻기를 기다린 뒤에야 안다면 장차 알 수 있는 날이 없을 것이다. 묻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이따금 어린아이도 익히 아는, 날마다 하는 다반사나 사물의 이름, 또는 규칙에 대해 흔히 막히곤 한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묻기를 기다린 뒤에 아는 까닭에 미처 묻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어두운 것이다.
앎을 뽐내는 사람
남의 선악을 말하고 일의 득실을 논하면서 신나게 떠들어 스스로 아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은 과연 남들이 자기를 가리켜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아는 것이겠는가?
잘못을 둘러대는 일
일 처리를 잘못해놓고 시끄럽게 그 이면의 곡절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변명하면서 또 스스로 자기가 한 일이 잘못이 아니라고 둘러대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는 이렇게 일깨워줘야 한다. “만약 사필(史筆)을 잡은 사람에게 그대의 일을 기록하게 한다면 다만 아무개가 어떤 일을 이러이러하게 했다고 말할 뿐이다. 어찌 일찍이 역사의 기록 가운데 수많은 자질구레한 곡절을 그대의 말처럼 기록하겠는가. 옛글 가운데서 다소 어리석고 뒤집어진 자취를 당사자에게 스스로 말하라고 한다면, 어찌 모두 그대의 말처럼 스스로 변명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려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역사가 기록한 바는 단지 이와 같아서 지금까지도 천만 사람에게 비웃음당하고 욕을 먹는다. 무릇 몸을 세워 일을 처리함에 단지 생각이 이러한 일에 미친다면 사관은 어떻게 적어야 하겠는가.”[이 또한 연천 선생의 말이다.]
연천 선생의 겸손함
연천 선생께서는 비록 나이가 어리고 신분이 낮은 사람과 말할 때도 그 맺는 말이 이따금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함께할 때와 차이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부탁을 하는데 비록 전혀 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늘 부드러운 말씨로 대답하여, 배척하여 끊어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멍청한 사람들은 혹 승낙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 덕성이 이처럼 겸손하고 온화했다.
천고의 격언
태초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남들이 자기를 어진 사람으로 대해주기만 바라지, 도리어 참으로 어진 사람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야말로 천고의 격언이다.
3. 수여난필
병신년(1836년, 51세) 여름, 생각나는 대로 다시 적었다. 7일 만에 마쳤다. 모두 137항목을 얻고, ‘수여난필’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앞서 쓴 이필(二筆)이 넘쳐 물결이 뒤집히는 듯하다는 말이다.
독서의 다섯 등급
연천 선생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책을 읽는 것에 다섯 가지 등급이 있다. 으뜸은 이치를 밝혀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옛것을 널리 익혀 일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문사를 닦아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다. 그 다음은 기억력이 뛰어나 남에게 뽐내는 것이다. 가장 아랫길은 할 일 없이 시간만 죽이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한 가지인데, 그 읽는 까닭은 이 같은 다섯 가지의 차이가 있다.”
때에 맞는 문장
추위를 막는 옷으로는 면포만 한 것이 없다. 값비싼 비단은 보기에만 아름다울 뿐이다. 쓰기에 편리한 그릇으로는 금석과 대나무만 한 것이 없다. 주옥이나 서패(犀貝)는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창달한 문사는 때에 맞아야 한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화려한 문체는 실용에는 합당함이 없다. 재주와 덕은 풍족하여 정치에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넓은 학문과 유창한 말도 세상일에는 보탬이 없다. 천하에서 기이한 보배라고 일컫는 사람이라 해서 진실로 모두 일을 맡길 만한 그릇은 아니다.
밥 먹은 효과와 책 읽은 보람
옛글을 잘 모방한 글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일러주었다.
“밥을 먹은 효과는 정채(精彩)가 빛나고 피부가 윤기가 나는 데서 드러난다. 이 정채와 피부에 어찌 일찍이 밥알의 형상이 있겠는가? 책 읽은 보람은 일을 행함에서 드러나니 문장 또한 이 같을 뿐이다. 밥알이 변화해도 오히려 지게미와 비슷한 것이 있으니 바로 대변이다. 체해서 소화되지 않고 곧장 내려가면 먹은 것이 그 형상 그대로이다. 만약 반드시 잘 모방하는 것을 잘 읽은 보람으로 여긴다면, 대변과 소화되지 않고 곧장 내려간 음식물을 잘 먹은 효과라 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과감한 것이 낫다
일을 느슨하게 결단하면 문제가 더욱 커진다. 차라리 과감하게 하다가 잘못되는 것이 낫다. 간악함을 막음이 너무 지나치면 속임수가 더욱 심해진다. 차라리 알면서 관대하게 하는 것이 낫다.
경솔한 판단은 금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일 처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나무라곤 한다. 일과 관련 없는 위치에서 다른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게 되면, 이래야 좋고 이렇지 않으면 나쁘다는 두 가지 경우만 있을 뿐이다. 만약 자기가 직접 맡아 찬찬히 그 이면의 사소한 문제까지 살펴보면 좋다고 했던 곳에 오히려 많은 문제가 있고, 나쁘다고 했던 곳에 도리어 많은 좋은 점이 있다. 잘한 것이 모두 잘한 것이 아니요, 못한 것도 완전히 못한 것은 아니다. 일의 곡절과 이런저런 걸림이 천 갈래 만 갈래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맡은 일이 이와 같고 보면 다른 사람의 일도 미루어 알 수 있고, 천하만사도 모두 미루어 알 수가 있다. 남이 한 일을 잘하지 못했다고 경솔하게 나무라서는 안 된다.
겉과 속이 다른 처신
여기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내가 그를 겉으로는 정성스레 대하는 듯이 하면서도 속으로는 범범하게 대한다면 저 사람은 내가 자기와 친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 사람이 진실로 어리석기는 해도 마침내는 내가 덕이 부족한 것이다.
4. 수여난필속
삼필이 완성되자 각각 이름을 붙이셨다. 이후에는 얻은 바가 있으면 그때마다 종이에 기록해 두셨는데, 미처 책으로 묶지 못한 채 아직도 보자기에 싸여 있다. 금년에야 내가 비로소 예전 상자를 뒤져 정유년(1837년)의 45항목과 무술년(1838년)의 39항목, 기해년(1839년)의 56항목, 경자년(1840년)의 7항목, 신축년(1841년)의 22항목을 얻었다. 서둘러 베껴 써서 2권으로 만들고, ‘수여난필’ 뒤에 붙였다. 감히 따로 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앞서 제목을 인하여 제목을 ‘수여난필 속’이라고 했다. 손수 쓰신 글씨가 마치 어제 쓴 것 같은데 은미한 그 말씀을 다시는 받들 수가 없으니, 아아 슬프다! 임인년(1842년) 봄 볼초고(不肖孤) 우건(祐健) - 홍길주의 아들 - 은 삼가 적는다.
군자의 태도
지금 사람들은 문학과 사공(事功)과 기술 등의 방면에서 남을 헐뜯어 비웃지 않으면, 자기가 익히던 것을 버리고 좋아 보이는 것으로 옮겨가곤 한다. 둘 다 잘못이다. 자기에게서는 좋은 것을 가려서 굳게 지키고, 남에게서는 장점을 취해 아울러 받아들이니, 이를 일러 군자라 한다.
기뻐할 만한 사람이 많으면
세상에 기뻐할 만한 사람이 많으면 이는 내 덕이 날로 진보하는 것이고 천하에 미워할 사람이 많으면 이는 내 덕이 날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은 소식의 「강설剛說」에 나오는 격언이다. 내가 일찍이 스스로 내 마음에 시험해보았지만, 끝내 절실하게 깨닫지는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점점 인정함이 많아지고 배척함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어찌 내 문장의 경지가 거칠게나마 예전보다 진보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헤아려보건대, 덕에 나아가는 경계도 대개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내가 덕이 없는 까닭에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잘못은 그 자리에서 지적하라
지금 세상의 선비는 제 뜻에 맞지 않는 사람과 만나더라도 늘 머뭇머뭇 참아 견디며 그 자리에서 꾸짖어 배척하지 못한다. 문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견디기 힘든 사람에 대해서 조롱과 염증이 쌓이는데도 겉으로는 너그러움을 보인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거만하게 같은 무리에 섞이게 한다. 이것이 비록 후덕한 듯해도 실은 크게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또는 벗과 교유하는 즈음에 책선하고 권면하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아는 자가 드물다. 설령 드러내놓고 나쁜 점을 지적하여 그가 언짢아 기분 나쁘도록 할 수는 없다 해도, 마땅히 합당치 않음을 대략 보여야 한다. 그 변론을 빠르게 늘어놓는 것을 막거나, 그 시를 짓고 나서 잰 체하는 것을 꺾거나, 글 짓는 자리에서 내치거나, 묻고 답하는 즈음에 싸늘하게 대하여서 두려워 반성하여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고도 오히려 꾹 참아 고치기를 바라는 것, 이 또한 선을 권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 같은 사람은 깨달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설령 분명하게 일러주더라도 반드시 이를 미루어 넓혀서 반성하여 고치지는 못한다. 오직 잘못이 쌓여 젖어들어 처음에는 의심하다가 중간에는 성을 내고 마침내는 깨닫게 되는 것이 도리어 경솔함을 바로잡고 어리석음을 열어주는 단계가 되니, 널리 벗을 사귀려는 사람은 이것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나은지에 대한 분간
갑에게 돌려서 깨우쳐주었으나 갑이 이를 깨닫지 못했다. 을이 곁에 있다가 이를 듣고 바로 갑을 위해 한 말인 것을 알았다. 을은 과연 갑보다 나은 것일까? 다른 날 을에게 돌려서 깨우쳐주었으나 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갑이 곁에 있다가 이를 듣고 바로 을을 위해 한 말인 것을 알아차렸다. 갑이 과연 을보다 나은 것일까? 자신에게는 어둡고 남에게는 밝은 것이 온 세상이 모두 그렇다. 나는 누가 낫고 누가 못한지 분간하지 못하겠다.
남의 인품과 우열을 논하지 말라
종종 친하게 알고 지내는 여러 사람의 인품의 높고 낮음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그 자신이 여러 사람의 가장 아래에 해당한다. 자주 친하게 알고 지내는 여러 사람의 문사(文詞)의 우열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그 글 수준이 여러 사람 중에 가장 아래에 있다.
며느리의 지혜
시골 사람 갑과 을은 작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평소 가까이 사이좋게 지냈다. 갑은 그 딸을 을의 아들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 날을 받아 예물을 받고, 기일이 되자 일찍부터 집을 쓸고 도구를 갖추어 사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술 취해 욕하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것이다. 놀라서 살펴보니, 을이 크게 취해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자빠지며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욕을 해댔다. 갑의 조상 이름까지 들먹거리고 흉악한 욕까지 해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너와 이웃으로 산 것이 수십 년이나, 네 집안이 이처럼 천하고 못된 줄은 몰랐다. 게다가 혼인을 약속한 것까지 생각해보니 마치 더러운 똥을 온몸에 뒤집어쓴 것만 같다. 다행히 아직 혼사를 치르지는 않았으나 어서 빨리 내 예물을 내놓아라.” 또 연거푸 소리 지르며 계속 욕을 해대더니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형상이 미친 사람 같았다.
갑이 놀라고 또 의심하여, 집의 종을 시켜 뒤따라가게 했다. 돌아와 알리기를 을의 아들이 새벽에 갑자기 죽은지라 을이 갑의 딸이 과부가 될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이렇게 해서 혼인 약속을 끊은 것이라고 하였다. 갑의 딸이 가서 보고싶다고 하자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초례를 치르지 않았다면 부부가 된 것이 아닌데, 어찌 갈 수 있겠느냐?” 딸은 부르짖으며 굳게 청했다. 걸어서라도 가려 하자 아비는 하는 수 없이 가마를 태워서 보냈다. 집에 이르러서는 곧장 시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문을 걸어 잠가 다른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는 벌거벗고 그 시신을 끌어안더니 입에다가 침을 흘려넣고 입김을 불어 숨을 쉬게 하자 한참 만에 소생하였다. 딸은 마침내 옷을 입고서 일어나 문을 열고는 사람들을 불렀다.
온 집안이 크게 놀라 축하하면서 어떻게 살릴 수 있을 줄 알았느냐고 물었다. 딸이 말했다. “젊은 사람이 병 없이 갑자기 죽는 것은 마침내 나쁜 기운에 맞아 숨이 막힌 것이지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도리를 다했을 뿐이요 살아난 것은 하늘이 한 일입니다.” 여기저기서 이 이야기를 들은 자가 그 맵고 지혜로운 것을 기이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었다. 또 을이 권도를 행하여 변괴에 대처한 것을 어질다고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어진 며느리를 얻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이를 위해 전을 짓고자 했으나, 그 성씨와 마을을 자세히 알지 못하므로 잠시 여기에 적어두어 다시 채록할 날을 기다린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