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이철환
쌍문동에 있는 풀무야학에서 오랫동안학생들을 가르쳤고,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온 연탄길나눔터 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저서로는『연탄길 1ㆍ2ㆍ3ㆍ4』 『어린이를 위한 연탄길 1ㆍ2ㆍ3』『만화 연탄길1ㆍ2ㆍ3』 『행복한 붕어빵』등이 있으며, 가장 최근에 『행복한고물상』이 출간되었다.
■ 차례
추천의 글
책을펴내며
축의금 만 삼천 원
곰보빵
첫사랑
착한 여자
한낮에도 반짝이는별빛
아가야, 어서 집으로 가
아버지의 생일
쌍둥이 눈사람
달팽이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왕잠자리를잡아라
아무도 모르게, 너를 위하여…
민들레의 노래
할머니의 리어카
행복한 하루
춤추는 해오라기
단풍나무사다리
잠자는 아가에게
엄마의 뒷모습
어느 외국인 근로자
너를 위해서
사랑아… 너는 얼마나 아팠니…
사랑의기쁨
학교 종이 땡땡땡
만복이 아저씨
봄날은 간다
나는 미술부니까…
엄마 친구
육상 선수 병덕이
빨간나비
치킨 아저씨
사랑의 발자국
제 등을 밟고 가세요
우리 아버지는 엄마 얼굴도 모르신다
아픔, 별이되다
그린이의 글
곰보빵
축의금 만 삼천 원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 장수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 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 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 봐
엄마 등 뒤에서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 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 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곰보빵
곰보빵 너는 아니?
너의 이름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가 있다는 거…….
못된 사람들이 아이의 아빠를 곰보라고 불렀어.
아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곰보빵, 너를 먹지 않았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은 너에게
곰보빵이라는 이름 대신
소보로빵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지.
아이는 그때부터
곰보빵, 너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어.
사랑이란 거, 어려운 게 아냐.
예쁘다고 말해 주는 거
잘했다고 말해 주는 거
함께 가자고 손을 잡아 주는 거, 그게 사랑이야.
활짝 핀 꽃처럼 그냥 한번 웃어 주는 거
그게 바로 사랑이야.
달팽이
태어날 때부터 집이 있어서
달팽이는 정말 좋겠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돌아갈 집이 바로 등 뒤에 있어서
달팽이가 느린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집이 너무 무거워서
달팽이가 느리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삶이 너무 무거워서
달팽이가 느리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달팽이 친구들은 하나같이 느리다.
등이 너무 무겁다.
소라
전복
다슬기
자라
거북이
아버지…….
아아, 우리들의 아버지…….
할머니의 리어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차들이 정체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차들이 꿈쩍을 않네요.”
푼더분하게 생긴 택시 기사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자꾸만 앞쪽을 살폈다.
“틀림없이 사고가 난 거예요.
이 시간에 이렇게 막힐 리가 없거든요.“
택시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방송 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때문에 나도 따라 내렸다.
리어카 한 대가 가파른 언덕을 곰실곰실 오르고 있었다.
리어카 위에는 펼쳐진 종이 박스가 산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휘청휘청 리어카를 끌며 언덕을 오르는 사람은
깡마른 백발의 할머니였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혼자가 아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뒤에서 리어카를 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개나리색 상의를 입은 모범택시 기사였다.
그는 자신의 차를 차도 한가운데 세워 두고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 주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 햇살이 너울너울 내려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싱겁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를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의 무거운 삶을 밀어 주던 택시 기사를 바라보며
오래 전, 선생님이 해 주셨던 말이 생각났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고,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고,
사랑은 가슴으로…… 가슴으로 하는 거라고
선생님은 말하셨다.
행복한 하루
5학년 딸아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재연아, 어제는 정말 마음 아픈 일이 있었어.
네 살짜리 내 동생이 다쳤거든…….
오른쪽 눈 위를 많이 다쳐서 엄마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어.
동생이 내 발에 걸려서 넘어진 거야.
마음이 아파서, 어제는 하루 종일 울었어.
동생이 다쳤을 때 깨달았어.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하루라는 걸…….“
딸아이의 편지를 읽고 나니,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 왔다.
이만큼 커 준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가장 평범한 하루는 가장 행복한 하루다.
찬란한 시간도 아프게 추억될 수 있다.
아픔도 비껴가기를…….
기쁨도 번개처럼 비껴가기를…….
오늘도 평범한 하루이기를…….
어느 외국인 근로자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양말 공장이 하나 있다.
그 양말 공장은 지하에 있다.
양말 공장에는 대낮에도 형광등이 환하게 켜져 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짜르짜르짜르짜르짜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매미 우는 소리 같다.
양말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외국인 근로자가 있었다.
그는 아주 착해 보였다.
양말 공장 앞을 지나는데
양말 공장 입구에 트럭이 하나 서 있었다.
양말 박스를 실어 나르는 트럭이었다.
외국인 근로자가 보였다.
뼈만 남은 앙상한 어깨로 그는 양말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양말 박스는 작은 송아지만했다.
양말 박스를 어깨에 이고,
외국인 근로자는 비좁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 가득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트럭 옆에 앉아 있던 양말 공장 주인은
박스 하나도 나르지 않았다.
안반짝 같은 궁둥이를 땅에 뭉개고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다.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는 걸 감시하는 것 같았다.
외국인 근로자가
땀에 젖은 얼굴을 숙이고 잠시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까지 후들후들 떨고 있는 그를,
양말 공장 주인은 곱지 않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주인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쌍심지가 활활 당겨져 있었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외국인 근로자가
날렵한 동작으로 양말 박스를 트럭 위에 실었다.
양말 공장 가까운 곳에 조그만 슈퍼가 있다.
어린 딸아이 손을 잡고 나는 슈퍼에 자주 간다.
아이스크림 냉장고 바로 옆에 공중전화 박스가 하나 있다.
저녁 무렵 슈퍼에 갔을 때,
양말 박스를 나르던 외국인 근로자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 수화기를 손에 들고 그는 울고 있었다.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는 손등으로 닦아 내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의 엄마였을까…….
형이나 동생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아내였을까…….
아니, 어쩌면…… 어쩌면…….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어린 딸이었을지도 모른다.
꽃봉오리 같은 입술로
“아빠, 사랑해……”라고 말하는,
그의 어린 딸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친구
저녁 무렵,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초라한 차림의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저씨, 자장면 두 개만 주세요.”
“언니는 왜 안 먹어?”
“응,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봐. 아무것도 못 먹겠어.”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말했다.
“인혜 누나, 그래도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누나는 지금 배 아파서 못 먹어.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맛있게 먹어.“
큰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남동생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이의 여동생은
건너편 테이블에서 엄마, 아빠랑 저녁을 먹고 있는
제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영선이 주방에서 급히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 동안 아이들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인혜 맞지?”
“네, 맞는데요…….”
영선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이는 어리둥절해했다.
“엄마 친구야,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
개나리같이 노란 얼굴을 서로 바라볼 뿐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한 동네에 살았었는데, 네가 어릴 때라서
기억이 잘 안 나는 모양이구나.
그나저나 엄마, 아빠 없이 어떻게들 사니?“
그녀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었다.
그제야 기억이 난 듯 굳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다 줄게.”
영선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왔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내내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라. 차 조심하구…….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영선은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저만큼 걸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두운 길을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등 뒤로
흰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영선의 남편이 영선에게 물었다.
“누구 집 애들이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은, 저도 모르는 애들이에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르잖아요.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그랬군. 그런데 아이들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주방 바로 앞이라
안에까지 다 들리더라구요.“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나는 진짜로 아는 줄 알았지.”
“오늘이 남동생 생일이었나 봐요.
자기는 먹고 싶어도 참으면서 동생들만 시켜 주는 모습이
어찌나 안 돼 보이던지…….“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 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