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 수필, 비판적 수필, 수필에 대한 이론적 수필 등 주제별로 묶어 수필에 대한 이해를높였다. 그리고 독자의 이해와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각 작품마다 지은이 소개와 어려운 어휘 및 어구에 대한 해석도 덧붙였다.
■ 저자 피천득 외
■ 편자 손광성
수필가, 동양화가이며 호는 일현이다.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와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계성여고, 서울고등학교, 동남대학에서 교사를역임하고, 2005년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시민대학 문예창작 강사와 한국수필문학진흥회장을 겸하고 있다. 불교미술대전 현대화부 우수상과 현대 수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은 책으로 『나도 꽃처럼 피어나고 싶다』 『달팽이』 『한 송이 수련 위에 부는 바람처럼』이, 엮은 책으로 『한국의명수필』 『세계의 명수필』 『한국 고전 명수필선』 등이 있다.
■ 차례
머리말
1. 나의 사랑하는 생활
나의 사랑하는 생활 -피천득
나의 단장 - 김동석
손자에게 배운다 - 김정한
작품애 - 이태준
수염 - 공덕룡
자반을 먹으며 -유병석
냉면기 - 차주환
하나의 풍경 - 박연구
짜장면 - 정진권
장서지변 - 김진약
지붕을 고치며 -손광성
2.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피천득
여름밤 - 노천명
권태 - 이 상
양잠설 - 윤오영
노시산방기 - 김용준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
레몬이 있는 방 안 - 이영희
백설부 - 김진섭
초설에 부쳐서 - 유달영
아름다운 소리 -손광성
3. 사랑, 고뇌 그리고 소망
도마뱀의 사랑 -이범선
인연 - 피천득
가난한 날의 행복 - 김소운
도마 소리 - 김소운
외투 - 김소운
움직이는 고향 -허세욱
나의 기쁨 - 박경수
미운 간호부 - 주요섭
청춘 예찬 - 민태원
4. 꽃과 나무와 바람
나비 이야기 -서정범
신록 예찬 - 이양하
나무 - 이양하
병풍 앞에서 - 류혜자
5. 살며, 생각하며, 느끼며
가람 문선 서 -이병기
그믐달 - 나도향
구두 - 계용묵
마고자 - 윤오영
송년 - 피천득
얼굴 - 조경희
경주 -김태길
월부 도둑 - 이응백
신록의 여인 - 박연구
어느 바다의 소년기 - 김열규
비닐 우산 - 정진권
혼자 사는여자 - 허영자
있음의 흔적 - 이정림
회전문 - 염정임
6. 향수와 여정
질화로 - 양주동
나의 고향 -전광용
설 - 전숙희
백자 이제 - 김상옥
옛 절터를 찾아서 - 유병근
하루살이와의 재회 - 김병규
부재깽이 -정재은
노란 종이 우산 - 남미영
7. 삶의 예지와 진리의 샘
생활인의 철학 -김진섭
돌의 미학 - 조지훈
길 - 박이문
현이의 연극 - 이경희
부부 - 강호형
딸깍발이 - 이희승
지조론 -조지훈
사치의 바벨탑 - 전혜린
8. 수필 문학과 글을 쓰는 자세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
수필 - 피천득
한국의 명수필 1
이성간 우정 - 이태준
같은 아는 정도라면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여자를 만나는 것이 우리 남성은 늘 더 신선하다. 왜 그런지 설명을 길게 할 필요는 없지만 얼른 생각나는 것은 동성끼리는 서로 너무나 같기 때문인 듯하다. 다른 데가 너무 없다. 입는 것도 같고, 말소리도 같고, 걸음걸이도 같고, 붙이는 수작도 거의 한 인쇄물이요, 나중에 그의 감정이 은근히 이성을 그리는 것까지 같아버린다. 동일물의 복수, 그것은 늘 단조하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처럼 최대, 그리고 최적의 상이물(相異物)은 없다. 같은 조선 복색이되 우리 남자에게 있어 여자 의복은 완전히 이국복(異國服)이다. 우리가 팔 하나 끼어볼 수 없도록 완전한 이국복이다. 같은 조선어이되 우리 남자에게 있어 여자들의 말소리는 또한 먼 거리의 이국어(異國語)다. 뜻만 서로 통할 뿐, 우리 넥타이를 맨 성대에서는 죽어도 나오지 않는 소리다. 우리가 처음 이성을 알 때, 그 이성에게 같은 농도의 이국감을, 어느 외국인에게서 느꼈을 것인가.
우리에게 여성은 완전한 이국(異國)이다. 사막에 흑인과 사자만이 사는 그런 이국은 아니다. 훨씬 아름다운, 기름진, 향기로운 회원의 절도(絶島)인 것이다. 오롯한 동경의 낙토인 것이다. 이 절도에의 동경을 견디다 못해 서툰 수영법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로빈슨 크루소’들이 시정(市井)엔 얼마나 많은 것인가.
다른 것끼리가 늘 즐겁다. 돌멩이라도 다른 것끼리는 어느 모서리로든지 마찰이 된다. 마찰에서 열이 생기고 불이 일고 타고 하는 것은 물리학으로만 진리가 아니다. 동성끼리는 돌이던 것이 이성끼리는 곧잘 석탄이 될 수 있다. 남자끼리의 십년 정보다 이성끼리의 일 년 정이 더 도수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석탄화 작용에서일 것이다. 타는 것은 맹목적이기 쉽다. 아무리 우정이라 할지라도 불이 일기 전까지이지 한번 한 끝이 타기 시작하면 우정은 그야말로 오유(烏有)가 되고 만다. 그는 내 누이야요, 그는 내 오빠로 정한 이야요 하고 곧잘 우정인 것을 공인을 얻으려고 노력까지 하다가도, 어느 틈에 실화(失火)를 해서 우애(友愛)는 그만 화재를 당하고 보험들었다 타오듯 하는 것은 부부이기가 일수(一手)임을 나는 허다하게 구경한다.
우정이란 정(情)보다도 의리의 것이다. 부자간의 천륜보다도 더 강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다. 인류의 도덕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완고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다. 이런 굉장한 것을 부작용이 그렇게 많은 청춘 남녀끼리 건축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벅찰 것이 사실이다.
한 우정을 구성하기에 남자와 여자는 적당한 대수(對手)들이 아니다. 우정보다는 연정에 천연적으로 적재들이다. 주택을 위해 마련된 재목으로 사원(寺院)을 짓는 것은 곤란일 것이다.
구태여 이성간에 우정을 맺을 필요가 없다. 절로 맺어지면 모르거니와 매력이 있다 해서 우정을 계획할 것은 아니다. 매력이 있는데 우정으로 사귀는 것은 가면이다. 우정은 연정의 유충(幼蟲)은 아니다. 연정 이전 상태가 우정이라면 흔히 그런 경우가 많지만은, 그것은 우정의 유린이다. 우정도 정이요, 연정도 정이다. 종이 한 겹을 나와서는 우정과 연정은 그냥 포옹해버릴 수 있는 동혈형(同血型)이다. 사실 동성간의, 더욱 여성간의 우정이란, 생리적으로 불화일 뿐, 감정적으로는 거의 부부 상태인 것이 많다. 그러기에 특히 정에 예리한 그들은 친하던 동무가 이성과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면 감정상 여간 큰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벌써 우정의 경계선을 돌파한 이후인 증거다. 그러기에 동성 연애란 명사까지 생긴다. 우정에게 있어 연정은 영구한 적이다.
결혼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우정은 여성간의 우정뿐 아니다. 남성 간에는 별무한 편이나 남자와 여자 간에는 더 노골적인 편이다. 여자끼리는 결혼 당시에만 결혼 안 하는 한 편이 슬퍼할 뿐, 교양 정도를 따라서는 이내 그 우정은 부활할 수 있고, 도리어 과거의 우정에서 불순했던 것을 청산해서 우정은 영구히 우정으로 정화되는 좋은 찬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성간의 우정은 한편이 결혼 후에 부활되거나 나아가 정화되는 것이란 극히 희귀하다.
그러니까 이성간에는 애초부터 연정의 혼색이 없이 순백한 우정이란 발생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 상태는 어떤 처소에서나 동성끼리 접촉하기가 더 편리하다. 편리한 데서 굳이 고개를 돌려 불편한 이성 교제를 맺는 것부터 그 불편리에 대가(代價)될 만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성간에 본질적으로 있는 매력이다. 매력은 곧 미(美)다. 인체에서 육체적으로나 심령적으로나 미를 발견함은 우정의 단서가 되기보다는 연정의 단서가 되기에 더 적절하다. 그런데 연애 관계는 우정 관계보다 훨씬 채색적이다. 인기(人氣)와 물론(物論)이 높아진다. 거기서 대담한 사람끼리는 연애라는 최단 거리를 취하고 소심한 사람끼리는 최장 거리의 우정 코스로 몰리는 듯하다.
아무튼 이성간에 평범한 지면(知面) 정도라면 몰라, 우정이라고까지 특히 지목할 만한 관계라면, 그것은 일종 연정의 기형아로밖에는 볼 수 없을 듯하다. 기형아이기 때문에 이성간의 우정은 늘 감상성(感傷性)이 붙는다. 늘 일보 전에 비밀 지대를 바라보는 듯한, 남은 한 페이지를 읽다 그치고 덮어 놓은 듯한, 의부진(意不盡)한 데가 남는다. 우정 건축에 부적한 원료들이기 때문이다. 그 일보 전의 비밀 지대, 못다 읽고 덮는 듯한 최후의 페이지, 그것은 피차의 인격보다도 오히려 환경의 지배를 더 받을 것이다. 한부모를 가진 한 피의 남매간이 아닌 이상, 제삼자의 시력이 불급하는 환경에 단 둘이 오래 있어 보라. 그 우정은 부부 이상엣것에라도, 있기만 한다면 돌진하고 남을 것이다.
현대 생활은 이성간의 교제가 날로 빈번해진다. 부녀자가 동쪽에서 나타난다고 눈을 서쪽으로 돌이킬 수는 없는 시대다. 그 대신 본질적으로 우정 원료가 아닌 남녀끼리 우정을 계획할 필요는 없다. 알게 되면 요즘 문자로 명랑히 사교할 뿐, 특히 우정이라고 지목될 데까지 깊은 인연을 도모할 바 아니요, 또 그다지 서로 매력을 견딜 수 없으면 가장을 할 것 없이 정정당당히 연애를 정당한 방법에 의해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간의 우정을 절대로 부정함은 아니다. 적당한 원료는 아닐망정 집안과 집안 관계로, 혹은 단 두 사람의 사적 관계로도 또는 연령상 서로 현격한 차이로, 수미여일(首尾如一)한 우정이 생존하지 못하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동성 간이라는, 생리적으로 다른, 피차 적응성을 가졌기 때문에 제삼자의 시력 범위 외에 진출하는 찬스는 의식적으로 피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녀 문제에 있어 열 학식이나, 열 인격이 늘 한 찬스보다 약한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더욱 이성간의 우정, 이것은 흥분한 사상 청년(思想 靑年) 이상으로 끝까지 보호 관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질화로 - 양주동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熔爐)이었다. 되는 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그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미덥고 덕성스러운 것이었다. 갑자기 확확 달았다가 이내 식고 마는 요새의 문화 화로와는 무릇 그 본성이 다른 것이다. 이 질화로를 두른 정경은 안방과 사랑이 매우 달랐다.
안방의 질화로는 비록 방 한구석에 있으나, 그 위에 놓인 찌개 그릇은 혹은 ‘에미네’가 ‘남정’을 기다리는 사랑, 혹은 ‘오마니’가 ‘서당아이’를 고대하는 정성과 함께 언제나 따뜻했다. 토장에 무를 썰어서 버무린 찌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있고, 말없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 표현하지 못할, 그윽하고 아름답고 정다운 세계가 있었다. 누가 식전(食前)의 방장(方丈)을 말하는가. 누가 수륙(水陸)의 향연(饗宴)을 이르는가. 진실로 행복된 점에 있어서야, 진실로 참된 정에 있어서야, 우리 옛 마을 집집마다 그 안방에 놓였던 질화로의 찌개만 하랴.
마을에서 소년은 서당아이라 불리었다. 혹은 『사략(史略)』 초권(初券)을 끼고, 혹은 『맹자』를 들고 서당엘 다니기 때문이다. 아잇적, 서당에 다닐 때 붙은 서당아이란 이름은, 장가를 들고 아들을 본 뒤까지도 그냥 남아서, 30이 넘어도 그 부모는 서당아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 이웃의 늙은 부부는 늦게야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자기네가 목불식정(目不識丁)인 것이 철천의 한이 되어서, 아들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시켜 보겠다고,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을 서당에 보내고, 노상 “우리 서당애, 우리 서당애” 하며 아들 이야기를 했었다. 그의 집 단칸방에 있는 다 깨어진 질화로 위에, 점심 먹으러 돌아오는 예의 서당아이를 기다리는 따뜻한 토장 찌개가 놓였음은 물론이다. 그 아들이 『천자문』을 읽는데, ‘질그릇 도(陶), 당국 당(唐)’이라 배운 것을 어찌 된 셈인지 ‘꼬끼요 도, 당국 당’이라는 기상 천외의 오독(誤讀)을 하였다. 이것을 들은 늙은 ‘오마니’가, 알지는 못하나마 하도 괴이하여 의의를 삽(揷)한즉, 늙은 영감이 분연히, “여보 할멈,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 마소, 글에 별소리가 다 있는데, ‘꼬끼요 도’는 없을라고.” 하였다. 이렇게 단연히 서당아이를 변호한 것도 바로 질화로의 찌개 그릇을 둘러앉아서였다. 얼마나 인정미 넘치는 태고연한 풍경이냐.
사랑에 놓인 또 하나의 질화로는 이와는 좀 다른 풍경을 보였다. 머슴, 소배(少輩)들이 모인 곳이면, 신삼기, 둥우리 만들기에 질화로를 에워싸 한창 분주하지마는, 팔씨름이라도 벌어지는 때에는 쌍방이 엎디어 서로 버티는 서슬에 화로를 발로 차 온 방안에 재를 쏟아 놓기가 일쑤요, 노인들이 모인 곳이면, 고담책 보기, 시절 이야기, 동네 젊은 애들 버릇 없어져 간다는 이야기들이 이 질화로를 둘러서 일어나는 일이거니와, 노인들의, 입김이 적어서 꺼지기 쉬운 장죽은 연해 화로의 불돌 밑을 번갈아 찾아갔었다. 그리하여 기나긴 겨울밤은 어느덧 밝을 녘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우리 집은 어떠했던가? 나도 5, 6세 때에는 서당아이였고, 따라서 질화로 위에는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찌개 그릇이 있었고, 사랑에서는 밤마다 아버지의 담뱃대 터시는 소리와 고서(古書)를 읽으시는 소리가 화로를 둘러 끊임없이 들렸었다. 그러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그 소리는 사랑에서 그쳤고, 따라서 바깥 화로는 필요가 없어졌고, 하나 남은 안방의 화로 곁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대학(大學)』을 구수(口授)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 질화로 옆을 길이 떠나가시었다. 그리하여 서당아이는 완전히 고아가 되어, 신식 글을 배우러 옛 마을을 떠나 동서로 표박(漂迫)하게 되었고, 화로는 또다시 찾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질화로의 찌개 그릇과 또 하나 질화로에 깊이 묻히던 장죽, 노변(爐邊)의 추억은 20년 전이 바로 어제와 같다.
글을 쓴다는 것 - 김태길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 무언 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하게 실천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을 어떤 형식으로든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은 우리가 자기의 현재를 살피고 앞으로의 자세를 가다듬는 거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장래를 위하여 인생의 이정표를 세우는 알뜰한 작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엉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을 가라앉힘으로써 다시 고요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묘방(妙方)이기도 하다. 만일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이 있거든 그것을 종이 위에 적어 보라. 다음 순간, 그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 떠오르고, 나는 거기서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돈하기 위하여 쓰는 글은, 쓰고 싶을 때에 쓰고 싶은 말을 쓴다. 아무도 나의 붓대의 길을 가로막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따라서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다.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은 본래 상품이나 매명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읽기 위한 것이요, 간혹 자기와 절친한 가까운 벗을 독자로 예상할 경우도 없지 않으나, 본래 저속한 이해와는 관계가 없는 풍류가들의 예술이다. 따라서 그것은 고상한 취미의 하나로 헤아려진다.
모든 진실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스스로의 내면을 속임 없이 솔직하게 그린 글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이런 글을 혼자 고요히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일일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누구에겐가 읽히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가까운 벗에게 보인다. 벗도 칭찬을 한다. “이만하면 어디다 발표해도 손색이 없겠다”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칭찬과 격려를 듣고도 자기의 글을 ‘발표’하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을 만큼 욕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노트 한 구석에 적었던 글을 원고 용지에 옮기고, 그것을 어느 잡지사에 보내기로 용기를 낸다. 그것이 바로 그릇된 길로의 첫걸음이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면서, 활자의 매력에 휘감기고 마는 것이다.
잡지나 신문은 항상 필자를 구하기에 바쁘다. 한두 번 글을 발표한 사람들의 이름은 곧 기자들의 수첩에 등록된다. 조만간 청탁서가 날아오고, 기자의 방문을 받는다. 자진 투고자로부터 청탁을 받는 신분으로의 변화는 결코 불쾌한 체험이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청탁을 수락하고, 정성을 다하여 원고를 만들어 보낸다. 청탁을 받는 일이 점차로 잦아진다.
이젠 글을 씀으로써 자아가 안으로 정돈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밖으로 흐트러짐을 깨닫는다.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각을 정열에 못 이겨 종이 위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괴지 않은 생각을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눌려 짜낸다. 자연히 글의 질이 떨어진다.
이젠 그만 써야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먼 길을 내 집까지 찾아온 사람에 대한 인사를 생각하고, 내가 과거에 진 신세를 생각하며, 또는 청탁을 전문으로 삼는 기자의 말솜씨에 넘어가다 보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쓰겠다고 한번 말만 떨어지고 나면 곧 채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돈 빚에 몰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글 빚에 몰리는 사람의 괴로운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글을 쓴다는 것이 즐거운 작업이나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하나의 고역으로 전락한다.
글이란,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어야 한다. 그리고 체험과 사색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글은 읽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체험하고 사색할 시간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라. 암탉의 배를 가르고, 생기다 만 알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 두는 것이 때로는 극히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안으로부터 넘쳐 흐를 때, 그때에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
일단 붓을 들면 심혈을 기울여 써야 할 것이다. 거짓없이 성실하게, 그리고 사실에 어긋남이 없도록 써야 한다. 잔재주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고,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속여서도 안 될 것이며, 일부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처럼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글이 가장 저속한 구렁으로 떨어지는 예는, 인기를 노리고 붓대를 놀리는 경우에서 흔히 발견된다. 자극을 갈망하는 독자나 신기한 것을 환영하는 독자의 심리에 영합하는 것은 하나의 타락임을 지나서 이미 죄악이다.
글 쓰는 이가 저지르기 쉬운 또 하나의 잘못은, 현학의 허세로써 자신을 과시하는 일이다. 현학적 표현은 사상의 유치함을 입증할 뿐 아니라, 사람됨의 허영스러움을 증명하는 것이다. 글은 반드시 여러 사람의 칭찬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되도록 여러 사람이 읽고 알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어야 하며, 진실의 표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나의 자아를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시키는 일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