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글쓰기가 깃들어 있다. 시인, 소설가, 언론인, 음악가,화가, 평론가 등 다양한 필자들이 저마다의 개성 있는 글쓰기로 미문(美文)을 창출한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황동규, 정호승, 안도현, 김 훈, 장영희, 법 정,손광성, 맹난자, 목성균 등의 문장가들이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사소한 것들, 그 안에서 발견한 인생의 의미를 담아 내었다.
■ 저자 법정 외 57명
■ 차례
1. 나의 사랑하는 생활
약속 - 장영희
겨울 나무 - 황동규
거리의 악사 - 권지예
감탄과 연민 - 고재종
놓치고 사는 기쁨 - 백임현
가을 바람소리 - 김 훈
쑥 뜯는 날의 행복 - 반숙자
뽕 짝 - 이혜연
2. 꿈 그리고 소망
무엇이 세상을아름답게 하는가 - 김용택
명태에 관한 추억 - 목성균
봄빛 속으로 - 김종완
산책길에서 - 한계주
망치를 든 남자- 윤온강
말 위에서 죽다 - 김점선
라지스탄 사막의 밤하늘 - 정 경
3. 존재의 흔들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황동규
푸른 텐트 - 정영숙
현대의 섬 - 정호경
몸 이야기 - 김 현
영정사진 - 정호승
탱고, 그관능의 쓸쓸함에 대하여 - 맹난자
숫 돌 - 송연희
난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 - 이혜숙
4. 그런 일이 있었지
세한도歲寒圖 -목성균
바람 부는 날의 산조 - 최 운
정미소 풍경 - 구 활
폐교에 뜨는 별 - 정목일
버드나무 - 정성화
어린 날의 초상 - 문혜영
한 장의 흑백사진 - 박영자
5. 너와 나 그리고 우리
각 서 -한승헌
벌의 언어와 나비의 언어 - 이어령
맥박의 음악과 호흡의 음악 - 한명희
무서운 년 - 김점선
두드러기 -최민자
나와 구두의 관계 - 안도현
옛글 외우기 - 이일헌
6. 사랑과 고뇌
늦어도 11월 하순에는- 김광일
7월을 닮은 남자 - 김유진
내 삶의 위기, 그 실존 - 박범신
아프게 짝사랑하라 - 장영희
눈 길 -김애자
고려장 - 김국자
이 가난한 11월을 - 손광성
7. 살며 생각하며 느끼며
노 출 - 김훈
빵과 밥 - 이어령
산 책 - 맹난자
달리는 지하공간에서 - 염정임
피혁삼우皮革三友 - 오병훈
짐승에관한 세 가지 이야기 - 이희자
삶의 비밀 - 안도현
8. 생활의 예지
초가을 산정에서 - 법 정
해가 뜰 적에는- 정진홍
어물전에서 - 손광성
묵언의 바다 - 곽재구
약을 팔지 않는 약사 - 김소경
뒤를 돌아보며 - 황소지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 - 최재천
한국의 명수필 2
꿈 그리고 소망
무엇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가 - 김용택
아이들이 다 돌아간 운동장은 적막하다. 텅 빈 운동장에는 햇살들이 정직하게 내리쪼이고 한쪽은 벌써 산그늘이 내렸다. 아, 저 적막한 산그늘, 운동장 끝에 걸린 호수의 물이 깊어졌다. 농사철이라 물을 배고 있는 모양이다. 운동장 가의 언덕에는 진보라색 꿀풀꽃들이 한창 피어난다. 꽃송이를 쏙 뽑아서 꽃끝을 쪽 빨면 꿀같이 단물이 나온 데서 이 풀꽃 이름은 꿀풀꽃이다. 산그늘에 덮인 꿀풀꽃은 참으로 서늘하다. 꿀풀꽃뿐이 아니다. 산그늘에 덮인 토끼풀꽃은 얼마나 깨끗하게 희고, 늦게 핀 씀바귀꽃은 얼마나 샛노랗게 그 자태가 아련한가. 이렇게 산그늘이 내린 운동장을 나는 어슬렁거린다.
학교 뒷밭에 언제 심었는지 옥수수가 나박나박 자라서 제법 잎이 휘어졌다. 나무막대기에 기댄 고추 땅맛을 알았는지 몸을 비틀며 추스른다. 그밭 아래 하지감자꽃이 하얗게 피었다. 그 밭 가운데에 있는, 잎이 다 우거진 감나무를 나는 오래오래 바라본다. 나는 잎이 피어나는 모든 나무를 좋아하지만 감나무 잎이 필 때를 가장 좋아한다. 역광을 받은 작은 감잎은 황금색으로 현란하게 빛난다. 나무들이 잎을 새로 피우는 것은 시인이 한 편을 새로 쓰는 것과 같고, 역사를 새로 쓰고 나라를 새로 세우며 정부를 새로 다듬는 것과 같다. 지는 해 아래 눈부시게 반짝이던 감잎이 이제 짙은 녹색으로 완전하게 제 모습을 갖추고 의연하게 서 있다. 감나무에 곧 감꽃이 피겠지?
제 모습을 맘껏 그린 나무들이 이룬 6월의 산은 또 얼마나 장엄하게 저녁을 맞고 있는가. 그 산자락 마을에 나이 드신 농부들이 흙을 뒤집어쓰고 들판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다. 길을 가다가 나이 드신 농부의 부부가 경운기 가득 파란 모를 싣고 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난다. 어렵고 힘겹게 길을 비켜 가는 농부들의 흙 묻은 얼굴과 햇볕에 까맣게 그을려 바스라질 것 같은 모습들을 보면 나는 정말 목이 멘다. 나도, 세상을 알 만큼은 안다. 오,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저 힘겨운 수고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날이면 날마다 터지는 저 부끄러운 정치권력들의 추태가 저 산천의 아름다움과 우리들의 늙으신 어버이들에게 무엇인가. 허리 굽혀 땅을 파고 농사짓는 사람들을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타락하고 더러워졌으며, 인간들은 부끄러움을 잃었다.
해지는 산 아래 감나무의 옷을 보지 않으니, 옷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고 들과 산과 언덕에 피는 작은 풀꽃들의 어여쁨과 빛나는 아름다운을 보지 않으니, 손과 얼굴과 몸에 추한 것들을 치렁치렁 달고 다니며 뻔뻔스럽게 으스댄다. 저 우거진 산밑들에 나가, 뜨는 해와 지는 해 아래의 아름다운 나뭇잎들과 풀꽃들을 보라. 옮겨 앉은 땅에 뿌리를 내리며 푸르러지는 저문 논의 벼들을 보라. 저 산의 나무와 저 언덕의 풀꽃과 저 들판의 곡식은 무엇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용택 - 순창농림고를 졸업하고 섬진강변 고향마을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1982년 창비 21인 신작시집『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시「섬진강1」외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에『섬진강』『맑은 날』『누이야 날이 저문다』『강 같은 세월』『그 여자네 집』『나무』등이, 산문집에 『그리운 것들은 상 뒤에 있다.』『섬진강 이야기』등이, 장편 동화에 『옥이야 진메야』, 동시집에 『콩, 너는 죽었다』가 있다. 1986년 제 6회 김수영문학상과 1997년 제 12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존재의 흔들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 황동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 비슷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버릇이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자기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는 노력을 사람들은 흔히 사랑 혹은 애정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애착의 도(度)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착각의 도도 높아진다. 그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 ‘애정을 쏟았으나 상대방이 몰라주었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유정이든 성정(性情)이든 진정한 애정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데서 비롯된다. 있는 그대로의 한사람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해주려는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생각하면 자명해진다. 우리가 색감과 형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고, 이중섭(李仲燮)이 그린 황소나 닭을 사랑할 때 일 잘 하는 소나 알 잘 낳는 닭을 연두에 두고 애착을 느끼는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사람을 촛대와 같이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촛대 이하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마 성숙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실패의 축적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족감과 가장 큰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成人)의 만족감은 두 개의 뿌리를 지닌다. 하나는 자기가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행복감이다. 작곡에 정열을 가지고 있으면서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이유로 다른 일을 하며 일생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철저한 체념이 올 때까지 그에게 만족감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 동등한 인격으로 같이 살며 늙어가고 싶은 사람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기야 어떻든 일단 있는 그대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그 사랑은 다른 사람, 다른 사물에도 확대된다. 어두운 건물들 뒤로 희끗희끗 눈을 쓴 채 석양빛을 받고 있는 북악(北岳)의 아름다움이 새로 마음에 안겨온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주위의 풍경을 어두운 마음의 풍경과 비슷하게 만들어 왔던 것이다. 까치가 그저 하나의 새가 아니라 귀족적인 옷을 입고 있는 새라는 것도 발견하게도 되고, 늘 무심히 지나치던 여자가 화장이나 옷차림에 과장이 없는, 다시 말해 낭비가 없는 여자라는 사실도 새로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사는 일이 바빠진다. 바빠짐이야말로 살맛 있는 삶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황동규 - 서울대 영문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애든버러 대학, 미국 아이오와 대학, 뉴욕 대학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했다. 『어떤 개인 날』『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풍장』『외계인』『버클리풍의 사랑 노래』『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등 12권의 시집과 산문집 『겨울노래』『젖은 손으로 돌아보라』등이 있다. 1998년 『황동규 시전집ⅠⅡ』를 펴냈다. 현대문학상?연암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무서운 년 - 김점선
마흔을 훌쩍 넘겼던 해의 어느 날, 부모님이 우리집에 왔다. 구석방에서 남편을 앉혀 놓고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관심도 없었다. 부모님이 가고 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자기는 무서운 년이래.”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내게 한푼의 돈도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더없이 완강했다. 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포기하겠나.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다 학교를 자퇴해라. 너희들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 너희들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수한 놈도 없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 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들은 어정쩡한 놈들이다. 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 너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 너희들은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 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 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더 이상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
동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 광경을 부모님이 보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등록금을 줬다. 그 날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부모님이 그렇게 선선히 등록금을 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동생들에게 한 일장 연설을 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부모님은 남편에게 “쟤는 무서운 년이니까 너도 조심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편이 나처럼 무서운 년과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과 연민을 표했다. 백수였음에도 남편은 평생 내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받았다. 오로지 나와 살아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김점선 - 이화여대에서 공부했으며 1972년 홍익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 해 여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앙데팡당 전에서 제8회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되어 화단에 데뷔했다. 1983년 이후 2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5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1987~1988년 2년 연속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에 선정되었다. 산문집에 『나, 김점선』『10Cm 예술1?2』『나는 성인용이야』 등이 있으며, 박완서, 황석영, 최인호, 정민 등의 책에 그림을 싣기도 했다.
살며 생각하며 느끼며
삶의 비밀 - 안도현
삶이란 무엇인가?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 더 힘을 주는 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 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우편함을 열어보는 것. 무심코 손에 들고 온 섬진강 작은 돌멩이 하나한테 용서를 빌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짝 가져다 놓는 것. 온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텃밭에 심어 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마는 것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는 것. 꼬리 한쪽을 떼어 주고도 나뒹굴지 않는 도마뱀과 집게발을 잃고도 울지 않고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바닷게를 보며 언젠가 돋아날 희망의 새 살을 떠올리는 것.
지푸라기에 닿았다 하면 금세 물처럼 몸이 흐물흐물해지는 해삼을 보며, 나는 누구에게 지푸라기이고 해삼인지 반성해 보는 것. 넥타이 하나 제대로 맬 줄 몰라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풀었다가 다시 매면서 아내에게 수업이 눈총을 받으면서 넥타이를 맬 때마다 번번이 쩔쩔매는 것.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도 음식을 날라다 주는 아주머니한테 택시비 하시라고 5,000원을 주어야 할지, 만 원을 주어야 할지 망설이다가 한 번도 은근하고 멋있게 주지 못해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술값 계산을 하고 나서도 소주 한 병 값을 더 내지 않았나 싶어 이리저리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 공중전화기에 50원이 남으면 괜히 알고 있는 전화번호 하나를 일없이 누르는 것. 공중전화 부스에 말끔한 전화카드 한 장이 놓여 있으면 혹시라도 새 것인가 싶어 카드 투입구에 속는 셈치고 한번 밀어넣어 보는 것.
평생 시내버스만 타던 사람은 택시 기본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택시 한번 타기가 머뭇거려지고, 평생 택시만 타던 사람은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시내버스 한번 타기가 머뭇거려지는 것. 날마다 물을 주고 보살피며 들여다보던 꽃나무가 꽃을 화들짝 피워 올렸을 때 마치 자신이 꽃을 피운 것처럼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초등학교 앞을 지나갈 때 운동장에서 체육복을 입고 정구공처럼 통통 튀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통통 뛰는 것.
할머니가 IMF를 ‘아임프’라고 발음하는 것을 듣고 빙그레 웃다가, 어쩌다가 늙으신 할머니가 IMF를! 하고 생각하면서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 쓰레기 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시원한 물 한 동이 퍼 담을 수 없는 몸뚱어리 하나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개고기를 뜯는 것.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 놓았을 때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 내가 한 바가지의 물을 쓰면 나 아닌 남이 그 한 바가지의 물을 쓰지 못하게 됨을 아는 것. 여름날 저녁에 온 식구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 뒤에 첫눈이 오는 겨울 저녁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
겨울 밤, 가끔씩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 주는 것. 가끔씩은 서로 싸리나무 회초리가 되어 차륵차륵 소리가 나도록 때리기도 하는 것.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바깥으로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것.
단칸방에 살다가, 아파트 12평에 살다가, 24평에 살다가, 32평에 살다가, 39평에 살다가, 45평에 살다가, 51평에 살다가, 63평에 살다가 82평에 살다가… 문득 단칸방을 그리워하다가, 결국은 한 평도 안 되는 무덤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
안도현 - 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1998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주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시집에『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외롭고 높고 쓸쓸한』『바닷가 우체국』『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등이, 산문집에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등이, 어른을 위한 동화에 『연어』『관계』『사진첩』등이 있다.
생활의 예지
묵언의 바다 - 곽재구
저문 시간이라면 순천만에 나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너른 개펄이 좋고 개펄 냄새를 이리저리 싣고 다니는 바람의 흔적이 좋다. 키 넘게 훌쩍 자란 갈대숲, 갈대들의 목은 꺾여져 있다. 모두 같은 방향이다. 바람은 가끔씩 갈대숲 사이로 들어온다. 그럴 때 갈대들은 자신의 내면 안에 숨긴 낡고 오래된 악기의 소리를 낸다.
어디로 갈까…. 고개 숙이고 끝없이 걸어가는 갈대들의 행렬은 순례자의 그것을 닮아 있다. 바람은 순례자의 옷깃을 흔들고, 일찍 도착한 철새 몇 마리가 순례자의 이마 위를 선회한다. 시베리아로부터의 먼 비행을 거친 그들의 날갯짓은 은빛으로 빛난다. 조류학자들이 먹이를 위해 혹은 번식을 위해 새들은 먼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얘기할 때, 나는 고개를 젓는다. 어쩌면 그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당신 같으면 단지 부족한 식량 때문에 먼 산과 강을 넘어 수천 수만 리의 여행을 하겠는가. 그것도 눈앞에 닥친 기아가 아닌 얼마 후의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를 위한 시간, 미래를 위한 비행. 거기에는 일정 부분 짙은 꿈의 냄새가 배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새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맞바꿀 만한 가혹한 비행을 통해 스스로의 유전자 내부에 꿈에 대한 기록들을 저장하고, 그 추억들은 쌓이고 쌓여 설령 지금보다 가혹한 삶의 현실이 지상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낼, 힘을 갖추는 것이다. 가혹한 자연의 재앙에 부딪쳤을 때 인간이 저 새들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순간, 새 한 마리가 ‘끼룩’하는 울음소리 하나를 떨군다. 그 울음소리로 사방은 더욱 고요해진다. 나는 갈대밭과 개펄이 만나는 맨 끝 지점까지 걸어 들어간다. 해는 다 졌지만 해의 숨결은 여전히 같다. 하늘에는 노을이 장관이다. 모르는 사람은 서편 하늘에만 노을이 빚어질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동쪽과 남쪽, 북쪽 하늘 모두 노을이 진다. 형형색색의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섭리의 이면이 문득 궁금해진다. 그러나 순천만의 노을이 하늘만 다 채운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단견이다. 노을은 땅 위에도 진다. 땅, 정확히 표현하자면 개펄이다. 개펄 위에는 썰물들이 남기고 간 작은 웅덩이들이 남아 있다. 그 웅덩이 위에 노을이 살아 뜨는 것이다.
처음 그 노을을 보았을 때 나는 개펄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손 가득 웅덩이의 물을 담았다. 함께 모은 내 두 손바닥 안에서도 노을이 떴다. 세상의 모든 보석들의 광휘를 용해한 것 같은 그 빛…. 나는 그 빛의 섭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노을 빛이 다 스러지고 난 뒤 갈대밭은 어둠에 잠긴다.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진 뒤의 저녁 어둠은 부드럽다. 자세히 보면 푸르스름한 쪽빛의 기운이 펼쳐진 뒤의 저녁 어둠은 부드럽다. 자세히 보면 푸르스름한 쪽빛의 기운이 어둠 속을 흐른다. 작은 파도도, 새들의 날개짓도, 갈대들의 꺾인 목도 다 보이지. 이 신비하고 고요한 어둠의 시간이 나는 좋다. 단순한 어둠이 아닌 낮 동안 이 개펄과 바다 위에 꿈을 부린 많은 생명체들의 영상이 그 어둠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멍하니 어둠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가 나는 피식 웃는다. 몇 줄의 시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시를 쓰는 일 한 가지뿐이었다. 남들이 다들 감동하는 좋은 시들을 쓴 것도 아니지만 못생기고 허름한 그 시들을 쓰는 시간들이 내겐 행복의 시간이었다. 이곳 바다에서 만난 철새들의 먼 비행. 내 시쓰기가 그런 비행의 흔적을 조금쯤 닮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 나는 부끄러워진다.
요즘 나는 시를 쓰지 못한다. 어디선가 날개가 꺾였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어디선가…. 나는 그 장소를 알고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날개는 내 숨은 의지에 의해서 꺾여진 것이다. 삶을 위해 삶의 가장 소중한 빛을 지워 버린 것이다. 바라볼수록 쓸쓸한 그 빛…. 이럴 때 순천만의 하늘 위에는 무수한 별빛이 빛난다. 과거를 회상하는 버릇은 가슴 안에 깊은 말뚝을 지닌 모든 슬픈 짐승들의 운명 같은 것이다. 줄에 매달린 염소처럼 그들은 말뚝에 매인 밧줄 바깥의 세상으로는 나갈 수 없다.
시 쓰기에 빠져들던 문학청년 시절,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름씩, 한 달씩 지낸 시간들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석 달쯤 말을 잃고 지낸 적이 있다. 내 몸 안의 가장 든든한 기둥 위에 ‘묵언’이라는 패찰을 드리워놓고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들.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해서만 열려져 있던 시간들. 타인의 꿈과 욕망에 아무런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나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던 시간들.
한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나의 시들이 천천히 날갯짓하는 것을 보았고 가능한 그 날개짓이 더욱 격렬해지기를,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연민과 지혜와 열정을 지니기를 나는 바랐다. 그리하여 내 시가 어떤 사랑스럽고 순정한 광기의 언덕에 이르러 고단한 날갯짓을 멈추기를, 그곳에서 여유롭게 비행하며 새로운 언덕을 다시 꿈꾸길 바랐던 것이다. 그 무렵의 내게 침묵은 날개의 다른 이름이었다.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 불빛은 화포의 불빛이고, 저 불빛은 거차의 불빛이며, 저 불빛은 와온 마을의 불빛이다. 하늘의 별과 순천만 갯마을의 불빛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나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싱거운 생각에도 잠겨본다. 당신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 불빛들은 갓 핀 다알리아 꽃송이처럼 싱싱하다. 세 칸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의, 꿈과 노동과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의 은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움보다는 쓸쓸함이, 기쁨보다는 아쉬움의 시간들이 훨씬 많았을 텐데도 그들은 말없이 불을 켜고 지상의 시간들을 지킨다. 어떤 불빛들은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럴 때 마을의 집들은 자신의 내면 안에 형형색색의 등을 켜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샤갈의 그림에 나오는 꿈, 염소와 새들과 초승달과 어린 남매와 할머니가 함께 날개를 달고 초록빛 어둠 속으로 날아오르는 꿈. 운동회날 풍선처럼 두둥실 날아오르는 그 집들을 보며 나는 박수를 친다. 그리고 날이 선 낫으로 그 집들에 매달린 끈을 하나씩 끊어 버린다.
훨훨 날아가렴. 또 다른 어딘가에 마을을 이루고 새로운 꿈을 꾸렴. 그래, 나도 언제가 그 마을에 이르러 새로운 날들의 시를 쓸 테니….
사방은 고요하다. 나는 갈대숲 사이를 걸어 내가 사는 도시 속으로 돌아온다. 그럴 때 나는 종종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듣는다. 아무것도 볼 수 없음으로써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 침묵함으로써 모든 욕망과 영혼의 본질 속으로 여행할 수 있는 시간들. 나는 꺾인 날개를 소중하게 바라본다. 고요하게 살아 있는 순천만의 모든 생물들, 그들의 꿈, 삶의 지혜들……. 스무 살 적, 시에 젖어들던 그 침묵의 시간들 속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곽재구 -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2년 신동엽 창작기금, 1996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에 『사평역에서』『전장포아리랑』『서울 세노야』『참 맑은 물살』『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등이 있으며, 기행 산문집에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포구기행』등이, 장편동화에 『아기 참새 찌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