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곽재구 외
곽재구는 1954년 광주에서태어났다. 1981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시 「사평역에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신동엽 창작기금과 1996년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시집으로 『사평역에서』『전장포 아리랑』『서울 세노야』『참 맑은 물살』등과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세상』장편동화 『아기 참새 찌꾸』 등이 있다.
■ 차례
별 하나의 위안
가족사진
소풍,두 알의 감자가 있는
뒷모습
주소유감
가장 삶의 모습에 가까운 하루
진홍색 입술 연지
일 포스티노
내 삶의출구
그를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어머니
나무 심는 사람 곽탁타 이야기
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분노의눈물
왼쪽 여자
그대는 지금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
J는 누구인가
내 마음의 고향
큰정(情)보다 잔 정이
내일의 집
고독을 위한 의자
마음이 예뻐지는 수필
가족사진
“어디 가시껴?” 나는 서툰 강화도 사투리로 말을 건넨다. “얘!” 담비 아빠는 막내 딸을 쳐다보며 씩 웃는다. “아하, 소라가 오늘 초등학교 입학하는구나!” 담비 엄마를 태우자 봉고차가 떠나고 집이 빈다. 담비 할머니는 벌써 어디 마실 가셨나 보다. 발바리 개와 놀고 있던 진도 강아지가 버섯장 쪽에서 달려온다. 강아지를 좀 쓰다듬어 주고 버섯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논농사를 많이 짓지 않는 담비 아빠는 버섯 기르기를 부업으로 한다. 버섯 판 돈으로 아이들 학원도 보내고 책도 사 준다. 버섯 농사에 제일 큰 적은 곰팡이다. 버섯과 성장조건이 비슷한 곰팡이를 잡는 게 버섯 재배의 주요 관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섯이 잘 나지 않을 때는 충격을 준다. 한겨울에 온도를 낮춘다거나 찬바람을 쐬기도 하고 또 놀랍게도 햇살로 충격을 주기도 한다. 햇살이 충격이라니! 나는 하얀 맨살 부끄럽다고 갓으로 얼굴 가린 버섯들을 등뒤로 하고 버섯장을 나선다.
바다 쪽으로 내뻗은 산자락 길을 타고 걷는다. 툭, 나뭇가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참나무 가지 위에서 까치가 집을 보수하고 있다. 참나무 쪽으로 다가가보니 너무 삭아 안 되겠다 싶은 가지를 떨어뜨렸던지 발로 살짝 밟아 보니 쉽게 부러진다. 그 순간 새로운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까치는 집 주위에 떨어진 죽은 나뭇가지를 다시 나무 위로 물어 올린다. 어쩌면 살아 몸 부딪치며 감정 상했을 나뭇가지들을 한 곳에 물어 올려 화해를 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 어느 날 아침 나는 놀랐다. 동네 까치들이 평소와 달리 새까맣게 공중에 떠 짖고 있었다. 왜 그러나 관찰하고 있자니까 여덟 팔자 대형을 이루며 수십 마리, 수백 마리씩 무리 지어 기러기가 윗마을로 날아가고 있었다. 까치는 침입자들이 자기 구역을 못 날게 그렇게 높이 떠 있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무슨 대타협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 까치가 새끼 낳기 전 한 해 겨울만 살다가 간다는 기러기 대표와의 단판이 먹혀들었던 같다. 수천 마리 기러기들이 까치가 사는 산을 통과하며 하늘에 살아 움직이는 산수화를 그리며 난다.
다시 산자락 길을 걷는다. 그리고 논두렁을 지나 제방 밑 작은 방죽 앞에 선다. 얼음이 녹았다. 얼음 위에 내린 하얀 눈. 그 솔은 눈 위에 막대기 글씨로 내가 써 놓았던 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 물 속에 내가 쓴 시들이 녹아 있다니. 조정권의 “너 뿌리 어디다 뒀냐”라는 「얼음꽃」이란 한 구절로 된 시와 “자식 새끼들 입 속으로 밥숟가락 들어간다 저기가 극락이다”란 고은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단시와 “도끼로 찍고 향기에 놀라다 겨울 나무숲”이란 일본시 하이쿠 한 편과, 그 외 여러 편의 시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 물로 살아난 시들이여, 메기와 미꾸라지와 붕어들이 먹었을 시들이여! 시가 물이 될 수 있다니.
시가 물이 된 방죽에 갈대들이 얼굴을 디밀고 있다. 아마 가족사진을 찍나 보다. 한 생을 마감하며 모여 물에 찍힌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나 보다. 사진관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면 대개 예쁜 딸은 엄마를 닮았고 잘 생긴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다. 내가 한번이라도 가족사진을 찍어 보았다면 사진 속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이 내게 번져올 수도 있으련만 늘 그렇지 못했다.
아, 오늘 담비 아빠는 늦게 오겠구나. 지난 번 둘째 딸 초롱이가 독후감 쓰기 최우수상을 받아 읍내 사진관에 액자를 만들어 달라고 맡긴 상장을 찾아오려면. 세 딸과 부인을 태우고 오는 담비 아빠 마음속에 오늘 가족사진이 또 한 장 찍히리라. 제방을 올라선다. 바다다. 이 바닷물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한강이 나오고 다시 양수리를 거쳐 남한강까지 가 달래강 지류로 접어들면 나처럼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고향 그곳에 있으리라. 진달래 꽃피면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와 난생 처음으로 사진 한 장 찍어야 할 텐데. 그때 마음씨 좋은 까치 한 마리 슬쩍 내 등 뒤로 날아준다면.
소풍, 두 알의 감자가 있는
높은 산길에 올라갔습니다. 안녕! 나는 길의 초입에 잠시 뭠춰 서서 초면례를 합니다. 길은 금세 내 인사에 대한 대꾸를 해옵니다. 토끼풀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산괴불주머니와 씀바귀꽃, 현호색들이 어지럽습니다. 저기 좀 봐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싸리나무 꽃들이 옅은 보라색의 구름들을 산기슭에 드리우고 있군요. 오래 전부터 나는 길 위에 핀 꽃들을 길의 신이 내게 건네주는 꽃다발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꽃다발을 넙죽 받아든 나는 한없이 행복해져서 죽은 다음 세상에서는 길귀신이나 되어 쓸쓸한 날 길의 신의 말동무나 되리라 생각했지요. 길의 신이라 해서 왜 쓸쓸한 시간들이 없겠는지요? 지상 위에 삶의 숨결들을 부려 놓고 살아가는 뭇 생령들의 꿈, 사랑, 욕망, 좌절, 병, 고통, 죽음... 신의 위치에서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들이 마냥 행복할 수만 있겠는지요?
그러다가 어는 날엔 나처럼 느릿느릿 산길을 걸어가는 누군가를 발견하곤 그의 옷자락에 선뜻 매달리기도 할 것입니다. 이봐, 이 수수꽃다리 꽃 내음을 맡아봐. 저기 저 산딸나무 꽃 빛깔은 어때? 저런 한 사흘 쯤 굶은 얼굴이군. 핏기라곤 없어. 괜찮은 일이지. 이승에 머물 때 나도 경험해 본 적이 있어. 한 일주일 쯤 물만 마시며 견뎌 봐. 그럴 때 영혼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시간이 찾아오지. 죽도록 갈망했던 시간들이 은빛 날개를 달고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일 거야. 시. 사랑. 언어. 철학. 부. 이름들... 한때 모두에게 소중한 것들이지. 그냥 한때... 한철...
나는 산의 맨 끝까지 올라갑니다. 그 곳에 바람이 살고 있습니다. 꽃과 꽃 사이를 나무와 나무 사이를 그리움과 그리운 생각 사이를 바람은 아무런 허물없이 불어 갑니다. 꽃과 꽃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곳에 시간들이 살고 있습니다. 바람처럼 그들도 아무런 형체가 없습니다. 바람이 툭툭 꽃향기를 건드리고 산딸나무 꽃 핀 가지에 몇 올의 싱싱한 숨소리를 올려놓을 때에도 시간들은 고즈넉이 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물 무렵 신비한 새소리들이 산아래 마을로 내려갈 때에도 마을의 불빛들이 어둠 속에 힘겹게 반짝거릴 때에도 시간들은 그냥 시간일 뿐입니다. 존재의 흔적이 없이 머무르는 그리움. 종이비행기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나는 또 하나의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립니다. 산뻐꾸기의 울음소릴 뒤에 남겨 두고 그는 또 다른 시간 속으로 흘러갑니다.
나는 가방에서 시집 하나를 꺼냅니다. 그리고는 첫 페이지를 찢어 종이비행길 접습니다. 숲 속에서 신비한 새 울음 소리가 들리고 내 종이비행기는 그 날들처럼 계곡 사이를 흘러갑니다. 나는 두 번째 장을 찢어 종이비행기를 접습니다. 보라색의 꽃들만이 아름답다고 믿었던 시간들이 내게 있었습니다. 나는 세 번째의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립니다. 따스한 온기 부드러운 감촉 빛나는 창을 지닌 존재들만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강요했던 시간들이 내게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종이비행기가 바람 속으로 떠오릅니다. 두 그루의 소나무를 넘지 못하고 비행기는 지상으로 떨어집니다.
꿈도 덩어리가 진다면 욕망에 못지 않는 무게를 지닌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닫는지요. 어두워집니다. 하루 동안 위를 비웠습니다. 아닌 이틀인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가방을 열고 그 속에 머문 검정 비닐 봉지 하나를 꺼냅니다. 봉지 속에는 두 개의 삶은 감자가 들어 있습니다. 나는 천천히 감자의 껍질을 벗깁니다. 그리고는 먼 마을의 불빛들을 소금삼아 한 입 힘껏 감자의 살을 깨뭅니다.
가장 삶의 모습에 가까운 하루
나는 철이 들기 훨씬 전부터도 꽉 짜인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에 상당한 반발심을 느끼는 문제아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성향이 뒤늦게 벌을 받는 것인지 일분 일초를 쪼개 써야 하는 인색한 시간관리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날 때 내가 즐겨 하려는 것은 나의 고향인 서울의 구석구석을 보러 돌아다니는 일이다. 무작정 지하철이 닿는 한 동네를 정해서 되도록 뒷골목을 골라 아무런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는 일. 이것이 가끔 내가 누릴 수 있는 더 할 수 없는 기쁨인 것이다.
아마도 내가 태어난 지 일만 일천몇백일쯤 되었을 어느 가을날도 나는 운동화를 신고 나의 본적지이기는 하지만 마음을 먹고 가본 적은 없는 가회동으로 향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어떤 대도시건 대로변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무한한 위로를 주는 사람의 작은 속삭임들이 있다. 희디 흰 구름덩이가 몇 개 솜사탕처럼 떠 있는 하늘도 가끔 바라다보고 아직까지도 건재하는 족히 일백 년이 넘은 한옥의 독특한 냄새도 맡아보고 때때로 문이 살짝 열려 있는 집 앞에서는 몰래 안도 들여다보고 하노라면 마음에 신선한 구멍이 확 뚫리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 참 살아 볼만한 세상이야!’라는 밑도 끝도 없는 확인.
이런 날이면 나는 수다스러워진다. 동네 시장 골목으로 접어들어 흥정도 해보고 간이음식점에서 주전부리도 맛보면서 동네의 분위기, 그들의 살림살이에 대해 귀찮게 물어 댄다. 때로는 당장이라도 집을 구입할 것처럼 복덕방으로 들어가 그 동네의 집시세도 묻고 소식도 듣는다. 전혀 모르는 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일상을 잊고 그러면서 무한한 안식을 느낀다. 이렇게 말을 붙여보지 않고 어찌 한 동네를 산책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런 행보에 따라 찾아 들어간 동네의 허름한 분식집이 있었다. 떡뽂이를 떡뽀기라고 써붙인 중고생들의 새참 장소. 한가한 오후 시간이어서 빈 식탁에 등을 돌리고 주인인 듯한 한 남자가 구부정한 자세로 신문을 읽고 있다가 손님의 기척에 뒤를 돌아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 나이쯤 되는 얼굴. 그렇지만 확신이 잡히지 않아 나는 탁자 귀퉁이에 엉거주춤 앉아 그 얼굴의 주인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린다. 오차잔을 가져다 놓으면서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보아서 그 남자 또한 나를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이었다. 잠시 후 우리들의 입에서는 동시에 상대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삼십대 중반의 남녀가 분식집의 한 귀퉁이에서 내지르는 딱 부러지는 반말. 그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와 한 동네에 살던 쌍둥이집의 쌍둥이 형제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 만난 여학생과 연애하다가 결혼하게 된 이야기며 학업을 포기하고 분식집을 차리게 된 경위를 말했다.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 풀리지 않는지 그는 부지런하게 부엌으로 가서 손수 찐 고기만두를 한 접시 담아 내왔다. 이상한 감동으로 목이 메어서 천천히 만두를 저작하고 있는 동안 그저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쑥스러웠는지 그는 그의 직업상의 중대 비밀을 내게 털어놓았다. 어떻게 가짜고기로 진짜 고기만두를 만드는가? 물론 이런 수수께끼에 나는 빵점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서 설명했다. 말린 무로부터 진짜 고기 맛이 나는 가짜 고기를 만드는 과정을 나는 감탄을 하며 들었다. 우연히 겹치는 이런 산책을 한 날은 더더욱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렇게 아무 동네나 걷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어찌 내가 말린 무로부터 고기만두 속을 만들어내는 그 최대의 전문적인 직업 비밀을 터득했겠는가. 어느 책에도 쓰여 있지 않은 그 생생한 지식을.
고독을 위한 의자
꼭 시간이 없어서도 아닐 텐데 우리는 어느새 번잡한 삶에 중독이 되어 진정 홀로 있음의 고독을 갈망하거나 맛들일 겨를도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홀로 있는 시간을 우리는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자유롭고도 창조적인 쉼의 시간을 통해서만 인간의 타성의 늪에서 빠져나와 새로워질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우리 수녀원의 넓은 정원과 동산을 자주 산책하는데, 둘이나 셋이 다닐 때도 있지만 혼자 다니는 때도 많다. 평소엔 그저 무심히 듣던 새소리나 종소리도 더 의미 있게 들리고, 산책길에서 발견한 나뭇잎의 무늬, 꽃잎과 꽃술의 모양도 더 자세히 보이고, 심지어 내 옷에 묻은 얼룩, 마음의 얼룩도 혼자 있을 때는 더 잘 보인다.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고독한 산책은 얼마나 즐거운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빈 방에서 홀로 나를 만나는 시간 또한 행복하다. 김현승 시인의 표현대로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인 고독의 얼굴도 빈 방에선 더 가까이 보이고, 마음 자리가 한결 밝고 투명해진다.
처음엔 듣기 거북했던 동료의 충고가 새삼 고맙게 생각되는 것도, 감정에 탐닉되지 않고 좀더 냉정한 눈으로 나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것도 혼자 있을 때이다. 일을 위한 쉼이 필요하고, 말을 위한 침묵이 필요하듯 여럿이 함께하는 삶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겐 혼자 있는 고독한 시간, 고독한 자리가 꼭 필요하다.
일상생활의 분주함과 잡다한 취미 생활의 즐거움에서조차 가끔 물러나 참으로 침묵과 고독이 가능한 ‘외딴 곳’, ‘한적한 곳’으로 피해갈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의 노력이 있을 때에야 우리는 내면의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피상적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던 삶과 이웃과의 관계를 좀더 새로운 깊이와 높이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숲속의 생활』을 쓴 헨리 D. 소로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나는 고독보다 더 사귀기 좋은 친구를 발견한 적이 없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방에 파묻혀 있을 때보다도 밖에 나가 사람들 틈에 묻혀 있을 때 더 고독해진다. … 우리는 서로 자주 만나기 때문에 서로에게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만난다. …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고, 셋째 것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늘상 고독을 첫 자리에 두고 고독을 위해 비워 놓은 의자에 그를 자주 초대해서 깊이 사귀고 길들일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며 한걸음 더 삶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