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

   
우연양
ǻ
서사원
   
15000
2019�� 12��



■ 책 소개


가슴 아프지만 오늘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25편

사랑이라는 감정은 수많은 연결고리를 만든다. 사랑으로 가족을 만들고 인연을 만들고 신뢰를 만들고 유대감을 형성시킨다. 하지만 그런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부서지는 순간, 행복했던 만큼 고통도 따르게 된다. 이렇게 괴롭게 만들 거면 사랑이라는 게 가치가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입은 상처 또한 사랑으로 낫곤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사랑을 찾고 타인의 사랑 이야기라도 공감하며 기뻐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당신은 이 책을 선택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뚜렷하게 책정할 수 없는 건,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가늠할 수 없는 형태의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 과연 우리 부모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을지,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을지.

확실한 건, 누구나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왔기 때문에 계속 사랑받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 한다고 느낀다. 당연한 본능처럼 말이다. 분명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그건 그 누구도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서로 똑같은 마음이길 바랄 것이다.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글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이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그건 당신의 이야기였을 수도 있고,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랑을 바라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지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저자 우연양
본명 김동진. 식품공학과 재학 도중 글을 쓰는 데 흥미를 갖다가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자랑이 되고픈 아들이자,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맛보이고 싶어 하는 요리사이며,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투표에는 꼭 참여하는 시민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하면서 틈틈이 써왔던 글들을 카카오 브런치 독자들에게 선보였습니다. 그의 글은 200만 뷰가 넘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카카오 브런치 추천 작품으로도 선정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올린 글 중에서 독자 분들에게 가장 많이 공감 받은 이야기 25편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독자 자신이 어떤 사랑을 바라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지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 그림 유지별이
따뜻한 일상의 추억을 그립니다. 길을 걷다, 아차!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작고 소중한 행복 의 순간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제게 찾아온 작은 휴식이, 보는 이에게 위로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 차례
프롤로그_당신이 받은 사랑은 얼마나 될까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빨리 고백해야 하는 이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나이 차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할까
연락하는 게 귀찮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하기 힘든, 너를 좋아한다는 말
어차피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여자 친구가 성폭행 당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과 자고 싶은 타이밍
아빠가 퇴근길에 치킨을 사오셨던 이유
한눈에 반한 인연이란
사랑이 노력한다고 이루어지진 않는다
이별과 외로움, 그 연애의 끝
사랑은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게 만든다
첫 만남에 내 소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혼전순결과 엄마의 빈소
좋아하는 사람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이기심에서부터
한 번 깨진 믿음은 그 상처가 다시 떠오른다
사랑 싸움도 잘 해야 계속 사랑을 한다
사랑에 능력은 필수조건일까
연상의 여성과 계속 연애할 수 없었던 이유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
장거리 연애를 받아들인다는 것
나는 절친과 전 애인의 연애를 용납할 수 있을까
내 남자 친구의 첫 연애가 늦었던 이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잘해줘도 부족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빨리 고백해야 하는 이유

평소와 다름없이 씻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한다. 출근 전의 이 과정들이 얼마나 귀찮은지, 머리만 감고 말려서 끝낸다는 남자들이 부러울 때가 정말 많았다. 이쯤 되면 긴 머리카락도 단발로 싹둑 잘라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 그건 그것대로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분명 나는 일상의 지루함을 느끼거나 지쳤던 걸지도 모르겠다. 늘 똑같은 일상에 특별함 하나 없다 보니, 지루한 영화를 계속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춘곤증에 시달리는 나날 같았다.


“야, 너 오늘 생일 아니야?”


점심시간이 지나서, 근무를 시작하려는 중에 한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는 무슨, 보란 듯이 적혀 있던데.‘ 그는 메신저 프로필의 생일 알람 서비스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번에 6월 22일이 생일이라고 네가 말했잖아.”


“그게 언제인데 기억해요? 프로필 때문이면서 아는 척하기는.”


생일이 그날이라고 말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정말 기억하고 있었던 건가 싶었다.


“미역국은? 먹었고?”


“안 먹어도 괜찮은데, 그거 먹는다고 뭐 달라지나.”


“서운한 티 팍팍 내고 있으면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래?”


그 사람은 처음 입사할 때 같은 부서에 있었다. 바로 한 기수 위 선배여서 그랬는지 적응이 필요했던 나를 잘 챙겨주었다. 그 과정에서 친해졌지만, 그는 곧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렇게 자주 마주치곤 하지만, 퇴근 이후 따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뭐예요. 지금, 20분이나 늦고.”


“잠깐 뭐 좀 산다고.”


그러면서 그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설마 내 선물인가 싶었지만, 편의점 봉투인 걸 확인하고 바로 기대를 접었다.


“오늘은 중식을 좀 먹고 싶은데요.”


“그거 말고 내가 알아본 대로 갈까?”


“그럴 거면 뭐 먹을지 왜 물어봐요.”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주문받은 사람을 뒤따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는 아까 챙기고 있던 무언가를 주방에서 건네고 있었다.


“뭐 하고 온 거예요?”


“너 먹이려고, 여기 주방에 친한 친구가 있거든. 그래서 좀 부탁을 했어.”


그는 가지고 온 밀폐용기에 편의점에서 산 마른미역을 물에 불려 놓고 있었고, 그것을 친구에게 넘겨준 모양이었다. 미역국을 바로 끓여줄 수 있도록.


그는 하얀 이를 보이면서 웃었다. 뭔가 신기하기도 했다. 나를 이렇게나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내가 미소를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 미역국 한 숟가락을 계속 먹으면서 그를 바라봤다. 내 생에 이토록 재미있고 행복한 미역국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여전히 그 선배와 친하게 지냈고, 마치 학교에서 옆 반으로 놀러 가고 싶어서 매번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 마냥, 그를 찾곤 했다.


그리고 석 달째가 지나가려고 할 즈음. 몇 년 만에 제주도에서 올라 온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월차를 쓰고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유난히 이 친구가 그를 계속 쳐다봤다.


“그래? 그럼 나 소개해줄래?”


그 순간, 나는 괜히 이 친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묻지도 않은 채 소개시켜달라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언제 봤다고 그렇게 관심을 갖는 건지 계속 쳐다보기나 하고, 분명히 그도 시선이 느껴질 텐데, 뭔가 불편했다.


평소와 같지 않은 날이 있다고 한들, 그로 인해 변화가 있다고 한들, 익숙함이라는 건 정말 사람을 방심하게 만든다.


이젠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를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소유욕까지 생겼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뺏긴다는 걸 상상하니 정말 바보 같은 일이 따로 없었다. 그러니 말해야 했다.


빨리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그 날은 유난히 밤이 길었다.



연락하는 게 귀찮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렇게 그와 연락하는 순간은 '항상'이라고 할 정도로 잦았다. 밥을 먹다가 뭘 먹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연락하기도 하고, 오늘은 뭐할 건지 묻기 위해 연락하기도 하고, 만날 수가 없다면 이유가 뭔지 알기 위해서 연락을 하고, 아침에는 잘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연락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연락에 대한 의무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새벽 늦게까지 통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사람은 내가 말하는 도중에 졸곤 했는데, 결국에는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으니 통화를 그만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 사람과 전화 통화를 끊고 누웠는데, ‘내 전화가 잠을 방해할 정도였나?’라는 생각에 잠을 설치고 말았다.


사실 그런 생각은 하면 할수록 괴롭기 마련이었다. 어찌 보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싶었지만, ‘그동안 나와의 대화를 견뎠다’라고 생각하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들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삐쳤다기보다는 좀 편하게 둬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걸 ‘변화’라고 말해도 괜찮은지 잘 모르겠어서 내심 조심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속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서로에게 보내는 톡이나 전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여전히 사랑하는데…. 내가 그 사람을 믿기 때문인지, 그 사람도 나를 믿기 때문인지,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날이 있었음을 자각할 때면, 마음먹고 다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설마, 이틀 동안이나 연락을 안 하지는 않겠지?”라고, 그러곤 먼저 연락하지는 않기로 한다.


근데… 정말 이틀 연속으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순간, ‘미친 거 아냐?’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어쩌면 나는, 사실 연락을 자주 하는 게 귀찮아졌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전에는 연락의 빈도가 애정 표현의 증거라고 칭하며, 그만큼 사랑을 주고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하기에 메시지라도 주고받고 싶은 건 당연한 것이고, 매번 그 사람과 무엇이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가 그런 마음이니 그 사람도 그랬어야 했다.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줄어든다니,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나의 사고방식은 그러했다. 그렇기에 연락이 줄어든다거나, 귀찮아진다는 건 우리 사이에서의 위험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위기감을 느꼈다.


그에게서 연락이 오자마자 안절부절했던 마음이 풀리기는 했지만, 답답한 건 여전했다. 뭔가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안, 연락하지 않아서. 화났어?”


화가 전혀 안 난 것은 아니었다. 분노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그 감정보다는 위기감이 더 앞지르기 때문에 신경이 조금 더 날카로워져서 예민해진 기분이었다. 그만큼 더 신중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봐야 했다.


"아니, 화는 안 났어. 근데 왜 연락 안 했어?"


그 말에 그는 나와 똑같았던 생각을 말했다.


“이틀 동안 연락이 없기에, 정말 안 하나 싶어서….”


이상한 부분에서 통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상황이 맞는 건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안심이 되었지만, 다시 신경이 곤두섰다.


이틀 동안 연락이 없었던 일은, 우리 사이에서 의무적으로 연락하는 것에서 어느 정도 해방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건 우리 둘이서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신뢰가 쌓여 있다는 전제 조건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전제 조건이 있더라도, 애정의 증거라고 생각했던 잦은 연락은 귀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그 사람을 믿지 않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여전히 사랑하는 건 똑같았다. 그저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싫어진 건 그저 일일이 해야 하는 의무적인 연락일 뿐이었다.


“그래도 역시, 하루에 한 번도 연락이 없는 건 좀….”


“그렇지? 정 그러면 일 끝나고 못 만나는 날에는 집 문이랑 같이 셀카 찍어서 보내주는 거로 할까?”


“그게 더 귀찮을 걸? 그냥 전화를 해. 시간 많이 안 잡아먹을게.” 그래도 언제든지 필요하고 원할 때,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믿건 말건,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으니까.



한눈에 반한 인연이란

“한 번도 못 가봤지. 생각해봐. 중고딩 시절부터 학교나 학원에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나는 원하는 대학에 못 가서 2년이나 더 공부 했고, 대학에 들어가니 더 여유가 없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취직은 해야겠고, 도대체 로망이란 걸 느낄 여유가 하나도 없었어.”


“그렇지, 난 네가 여자 친구 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게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는 흔히 말하는 모태솔로였고, 그 상태로 거의 30년을 채워가고 있다. 원했던 대학 캠퍼스의 로맨스는 이뤄본 적도 없고, 소개팅이 나 과팅조차도 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를 위해 소개팅을 주선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편 이성을 보여주면 자기 스타일이 아니니 어쩌니 하면서 거절했고, 누군가와 만나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소개팅을 하는 것도 낯설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거부감마저 드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나, 누군가한테 한눈에 반하는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거든.”


사실 그건 말이 안 되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인연은 포기했으면서, 운명처럼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나길 바라는 모순된 마음이니까. 그러면서 갑자기 안 보던 드라마를 챙겨보고, 로맨스 소설을 찾아 읽었다. 자신이 실제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그렇게라도 대리체험을 해보고 싶은 것 같았다.


“남들 다 하는 연애를 못하고 있다는 게, 내가 정말 어디가 이상해서 그런 건 아닌가 싶고, 어쩌면 꼴에 맞지도 않게 드라마 같은 만남을 꿈꾸고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속 그런 말을 늘어놓는 그가 비운의 주인공마냥 짜증이 났다.


“야. 네 꼴을 봐. 네가 그렇게 잘난 것도 아닌데, 운명적인 인연이 생기길 바라면 최소한 평소에 관리라도 좀 하든가.”


그의 얼굴에는 여기저기 빨간 여드름이 올라오고 있었고 정리되지 못해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언제 산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칙칙한 옷까지. 대체 누가 이렇게 깔끔하지도 않는 사람을 먼저 좋아할 수 있겠냐고 돌직구를 날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랬다.


“야. 보여줄 사람이든 우연히 마주칠 사람이든 아무도 없는데 뭐하러 그렇게까지 관리를 해?”


그는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사람이 시간이 없어서 연애를 못 하거나 못 만날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누군가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데는 분명 문제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녀석의 생각은 운명의 상대가 호박이 넝쿨째로 들어오길 바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어느 날 피자를 사준다며 만나자더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주 가는 카페의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한 번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그저 외모가 이상형이라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날 찾은 단골 카페에서, 그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는 모습에, 자신의 몸이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무척 조급해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은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사랑에 빠져보는 게 뭔지 궁금해서 허덕이던 녀석이.


“나, 그래서 어저께 파마도 했잖아.”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도 없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 줄 일도 없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던 그는, 한순간에 반한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하루아침에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빼앗기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한순간에 반하거나 그런 감정을 받기 위해서는, 사소하더라도 평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준비 자체가 운명적인 만남을 만들고 이어나가게 만든다.


그게 인위적인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런 게 필요하다.



혼전순결과 엄마의 빈소

엄마의 사망 소식은 그다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6개월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던 상황이었고, 이미 친척들과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은 엄마를 괴롭게 하지 말자”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그동안 행복했던 엄마의 모습과 이기적인 마음으로 엄마에게 상처를 줬을 때, 모두 떠올랐다.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아버지에게 연락해 보았다. 아버지는 참으로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마치 신분이 있는 것처럼, 가족들이 자신을 따라야 했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내 가정이 있으니까, 네가 고생 좀 해라.”


그 말을 들으니, ‘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죽으면 그때는 올 거냐’고 내뱉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그런 말조차 아까웠다. 이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엄마가 잘못한 게 하나 있다면, 아버지랑 좀 더 일찍 이혼하지 않은 거였다.


빈소는 나 혼자 지켰다. 친척들은 상주의 이름을 누구로 정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상주 역할을 맡겠다고 했지만, 친척들은 삼촌도 있는데 뭐 하러 여자애가 완장을 차려고 하느냐고 하셨다.


여자라서 상주 역할을 맡길 수 없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어떤 책임감이라도 갖고 있기는 한 건지, 구석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큰 삼촌은 오지 않았다. 멀리 다른 지역에 있다 보니, 하루가 지나거나 새벽쯤이 되어서야 도착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조문객을 맞이했다.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는 장례식을, 장례식 도우미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나마 위안이 된 건, 1년 7개월 동안 연애를 해온 남자 친구가 빈소를 찾아준 것이었다. 그는 내가 혼자 빈소 지키는 것을 보자마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사람은 먼저 엄마에게 인사를 올렸다. 정성스럽게 두 번 절과 반 절을 끝내고 나에게도 한 번 절을 했다. 내가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나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일어나다 말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도 한 달 전에 가족을 잃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건 똑같았다. 그는 혼자서 다른 친척들에게 인사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길어지는 것 같아서 확인해 보려고 하니, 무슨 허락을 구하는 것 같았다.


그 허락이란, 다른 친척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위의 신분으로 상주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친척들은 생각보다 쉽게 허락했고, 그는 삼촌이 입을 상복을 대신 입었다. 그리고 도우미 분들에게 남자 상복을 한 벌 더 준비해달라는 부탁까지 해두었다.


고마웠다. 그러지 말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 주길 바랐으니 그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영정 사진을 두고 그 옆에 나란히 쭈그려 앉아 있는데, 왠지 애인이 있다기보다는 형제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그와 이렇게나 오래 연애 기간을 이어올 줄은 몰랐다. 우리 사이는 스킨십 부분에서는 큰 진전이 없는 편이었다. 연애 기간이 1년 7개월을 넘어가고 있는데도 한 번도 성관계를 가져본 적도 없었고, 농염하다고 할 만한 키스 한번 제대로 한 기억도 없었다.


나는 혼전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의 강요는 아니었다. 일찍 이 가정이 망가지고, 아버지가 다른 살림을 차린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엄마를 버려두고 집을 나갔다.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게 계속 이어지다 보니 내가 미래에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면, 그 아이 또한 나를 닮아 아버지나 그 아이를 떠올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할 때도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각각의 이유로 혼전순결을 유지하지만, 나는 어떠한 의지라기보다는 마음의 병이나 다름없었다.


그와 엄마의 빈소에서 2박을 함께 했다.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조문객마다 그 사람은 엄마의 사위라고 소개하면서 직접 인사를 다 받아냈다. 조문객 중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의 지인들이 조문을 하러 온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나와 엄마의 빈소를 지켰다. 엄마를 뜨거운 불 속에 넣을 때도, 남은 하얀 가루를 유골함에 담을 때도, 그는 엄마의 영정 사진을 들면서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더 괴로워하지 못하도록. 슬픔을 공유하고 나누었다.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몸을 섞어야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법이라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를 지키는 2박은 그런 하룻밤보다 그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해주었다. 분명 친구의 말대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서 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나와 엄마의 빈소를 지켜주는 남자를 믿지 않고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오히려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일방적인 마음이기에 너무 앞서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말을 해주고 싶은 사람은 '내가 좋아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 바람을 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준다면, 연애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사랑받으면서, 상상하는 대로 행복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런 바람은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사랑에 의심은커녕 믿음만이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상대방도 호감을 느껴서 연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물론 있다. 사실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고, 한편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태도가 바뀌는 사람도 있다. 사랑은 언제나 한쪽에서 신호를 보낸다고 이어지지는 않는다. 신호가 닿기를 바라면서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 신호가 닿는지도 잘 모른다. 닿았다고 한들 거부당할지도 모른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만큼, 자신의 마음 때문에 상대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를 때 당연히 무섭기도 하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 사람에게서부터 얻는다는 게 어려운 것 또한 알기에 이런 바람을 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하기를….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