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자동차로 떠나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저자가 추천하는 북유럽의 특별한 여행코스
안데르센의 나라 덴마크, 아름다운 빙하와 피오르가 가득한 노르웨이, 북유럽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를 여행한 한 가족의 북유럽 자동차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그들이 여행하면서 겪은 생생한 여행기에 알찬 정보까지 갖추었으며 어느 책에도 실리지 않은 저자만의 비밀스러운 명소들도 소개하고 있다.
덴마크에서 시작해 핀란드에서 끝나기까지 동선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본문에서 소개하지 못한 다양한 내용을 팁으로 실었고 북유럽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스페셜 팁으로 넣어 읽을거리를 충만하게 하였으며, 각 나라별 중요한 도시들은 상세 지도를 첨부하여 여행의 편의를 도모했다.
■ 저자
이용옥
부산대학교 사범대를 졸업하고 생물교사로 20년 넘게 학생을 가르치다 명예퇴직 하였다. 직장을 그만둔 대가로 자유로운 시간을 얻었다. 내가 태어난 별 지구의 다른 곳을 보고 싶어 여행을 떠난다. 꿈이 이루어지고 나면 새로운 꿈이 생긴다고. 계속 새로운 여행을 꿈꾸고 있다.
김태한
애경유화, 라이나 생명보험, 한화증권을 거쳐 SK증권 지점장으로 퇴직하기까지 여러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인지 직장도 두루 돌아다닌 셈이다. 가슴 뛰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감동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
작은 감투를 몇 개 쓰고 있다. 유빙(cafe.naver.com/eurodriving)에서 스태프로 있으며 동네 산악회 산행대장, 영어 일어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기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 차례
Prologue
북유럽으로 가는 길목
북유럽 전체지도
Chapter 1. 덴마크
북유럽의 관문 덴마크 |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코펜하겐 | 호수와 정원이 어울려 더 아름다운 프레데릭스보르 성 | 왕들의 영혼이 잠들고 있는 로스킬레 대성당 | 오덴세에서 성냥팔이 소녀를 만나다 | Special TIP 북유럽 국가는 한때 하나의 왕국이었다
Chapter 2. 노르웨이
노르웨이에 첫발을 딛다 | 절벽과 절벽 사이의 바위 시에라볼텐에 올라서다 | 프레케스톨렌에서 뤼세피오르를 내려다보다 | 뵈링폭포와의 숨바꼭질 |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도시 베르겐 | 노르웨이의 인기 관광지 송네피오르 |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우르네스 목조교회 | 시퍼런 빛을 뿜어내는 니가드스 빙하 | 호수에 얼음이 둥둥 브릭스달 빙하 | Special TIP 빙하와 피오르 | 달스니바 전망대와 예이랑에르피오르 |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올레순 | 교량기술에 예술적인 곡선미 아틀란틱 로드 | 네 개의 섬을 이어 놓은 크리스티안순 | 은은한 향기 가득한 트론헤임 |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산악도로 트롤스티겐 | 릴레함메르의 스키 점프대 | 오슬로에서 뭉크와 바이킹을 만나다 | Special TIP 바이킹, 그들은 누구인가?
Chapter 3. 스웨덴
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예테보리 | 말뫼에 가기 전 들른 햄릿의 무대 덴마크의 크론보르 성 | 스웨덴에서 이민자가 가장 많은 말뫼 | 닐스와 함께 칼스크로나 | 북유럽 왕국이 결성된 곳 칼마르 | 멀고 먼 오지에 온 듯한 욀란드 | 북유럽 신들이 최후까지 머물던 곳 웁살라 | 예블레의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염소 |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 스톡홀름 | Special TIP 북유럽은 최고의 복지국가, 선두 주자는 스웨덴
Chapter 4. 핀란드
바이킹 라인 타고 핀란드로 향하다 | 비 맞은 생쥐 꼴로 투르쿠에 도착하다 | 오울루 가는 길에 만난 자작나무 숲 | 로바니에미에서 산타를 만나다 | 호수, 숲, 사우나가 있는 캠핑장 | 사본린나로 가는 길 | 사본린나의 홍보 대사가 되고 싶어 | 독특한 현대 건축물을 자랑하는 디자인 도시 헬싱키 | Special TIP 북유럽 디자인
북유럽 여행 숙소 정하기
자동차 빌리기
북유럽에 반하다
덴마크
북유럽의 관문 덴마크
덴마크로 가기 위해 푸트가르덴(Puttgarden)의 선착장에 가서 배를 타야 한다. 많은 차들이 여러 줄로 길게 서 있는데 우리는 미리 예약한 덕분에 짧은 줄로 들여보내 준다. 배 시간표에는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배가 있고 15분 전에 승선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굳이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었었다.
북유럽 여행에서 처음 타는 배라 잔뜩 호기심을 갖고 둘러보는데 한 젊은이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쾌활한 젊은이 덕분에 덩달아 발랄해져 노래를 흥얼거리며 갑판으로 올라오니 사람들은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바다 구경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 아가씨와 할아버지는 배에서 처음 만난 것 같은데 즐겁게 계속 얘기를 이어간다.
45분쯤 지나자 덴마크 해안이 멀리 보인다. 배는 삼켰던 차들을 하나씩 토해내기 시작한다. 북유럽의 첫 나라 덴마크에 자동차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누런 밀밭, 푸른 숲이 띄엄띄엄, 빨간 양귀비 밭도 나타난다. 평온하고 단정한 첫 느낌이 인구 550만의 행복한 작은 나라 이미지에 꼭 맞다.
덴마크의 전체 크기는 한반도 면적의 5분의 1 정도이고 유틀란트 반도와 500여 개의 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이 별로 없고 평야가 많으며 국토의 약 10%를 차지하는 숲의 대부분은 인공조림지다. 낙농업으로 유명하고 수산업, 식료품, 철강, 화학, 기계공업 등이 발달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 이상이 되는 부자 나라이면서 행복지수도 높은 나라다.
오덴세에서 성냥팔이 소녀를 만나다
오덴세로 향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덴세를 찾는 이유는 이곳이 안데르센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오덴세라는 도시 이름은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최고신 오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와 멀리 돌아가고 있는데 차에서는 "삐삐" 하는 다급한 위험 신호음이 주기적으로 나면서 이번에는 "Fuel level too low"라는 문구가 떠 우리를 긴장시킨다. 앞으로는 차의 기름 상태를 잘 파악하여 미리 채워야겠다. 북유럽은 인구가 적다 보니 마을도 자주 나타나지 않고 주유소도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배를 타고 오덴세에 도착하니 예상시간보다 훨씬 늦어져 7시다.
시청사 가까이 있는 안데르센 집으로 먼저 와 보니 이미 문은 닫혀있다. 시청사 옆에 있는 13세기에 지어진 성 크누드 대성당(St. Canutes Cathedral, 오덴세 대성당)을 구경하고 걸어 나와 안데르센 박물관에 오니 물론 문은 닫혔고 아기자기한 작은 집들이 줄지어 있다. 박물관 안에는 안데르센의 작품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안데르센의 많은 동화를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해냈을까 싶다.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2일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민담을 모티브로 동화를 썼으나 차츰 창작동화가 주를 이루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그의 대표적인 동화는 『성냥팔이 소녀』『엄지 공주』『벌거벗은 임금님』『미운 오리 새끼』 등이 있다.
오덴세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아담하고 예쁜 마을의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너무 조용해 쓸쓸하다. 안데르센도 이 거리를 많이 걸었겠지. 가난한 어린 시절 혹독하게 추운 겨울 밤, 거리로 나섰던 그때 이미 그는 가엾은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르웨이
노르웨이에 첫발을 딛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하에서 가난했던 노르웨이는 1905년에 독립을 이루어 경제 성장을 하고 있던 중 1960년대에 유전을 발견하는 행운이 겹쳐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부유한 나라다. 북유럽 여행의 핵심은 자연경관인데 그중에서도 노르웨이가 으뜸이다. 빙하의 침식, 운반, 퇴적작용에 의해 여러 지형이 만들어지고 간빙기로 접어들어 1만 년 전 쯤 빙하가 녹아 그 자태를 드러내었다.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은 바로 이 빙하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중 걸작품이 노르웨이 경관을 대표하는 피오르다.
드디어 고대하던 노르웨이에 도착했다. 배가 닿은 노르웨이의 첫 도시 크리스티안산은 17세기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하얀 목조 건물과 바위가 많은 작은 섬, 해안 그리고 많은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내일 등반할 예정인 뤼세피오르(Lysefjord)에 있는 시에라(Kjerag) 산을 향해 9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9번 국도에서 에비에(Evje), 뷔글란피오르(Bygland fjord)를 지나는 길은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오르막길이 시작되어 산으로 차츰 높게 오르자 침엽수림과 자작나무들도 점점 사라지고 키 작은 식물들이 나타난다. 양들이 여기저기 풀을 뜯고 있고 작은 호수들도 아름다운 경치에 한몫을 하고 벌거벗은 바위산의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초임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 큰 돌멩이가 올려져 있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빙하에 실려 내려오다 멈춰 선 모양이다.
산들의 넓적한 봉우리는 허연 암석들이 드러나 아름답기보다는 광활하다 못해 황량하다. 지구가 탄생하고 물에 생물체가 나타나고 차츰 육지에 이끼류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그때 그 장소에, 2000년대에 사고 있는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왔노라고 시작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바위 시에라볼텐에 올라서다
뤼세피오르에는 노르웨이 홍보 팸플릿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유명한 시에라볼텐(Kjeragbolten)과 프레케스톨렌(Preikestolen)이 있다. 시에라볼텐이 있는 해발 1,084m의 시에라 산 등반을 위해 뤼세보튼 마을의 숙소에서 등산하는 초입까지 차를 타고 와서 등산화를 갈아 신었다.
빙하의 침식으로 형성된 화강암의 바위산이라 표면이 까칠하기는 해도 미끄럽다. 처음 오르는 구간이 제법 가팔라 옆에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줄이 길게 쳐져 있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있으랴. 차츰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며 성큼성큼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능선 위에서 입을 벌린 채 멈춰 섰다. 가까이 보이는 웅대한 바위산에 압도되어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무서움이 엄습해 온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발걸음을 옮기려니 등산길 안내를 위해 바위에 표시되어 있는 빨간색의 T자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두리번거리다 몇 사람이 아주 좁은 계곡 아래로 가고 있어 따라가는데, "저기 봐." 사진에서 보던 절벽 사이에 낀 바위, 시에라볼텐이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주인공이 나타나 더 놀랍고 신기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바위 아래는 수직 1,000m 낭떠러지다.
빙하가 갈라놓은 거대한 절벽 틈에 끼어 있는 바위 시에라볼텐은 시에라 산의 둥근 바위라는 뜻이다. 시에라 산의 명칭은 노르웨이어로 어린 염소털이라는 뜻으로 산 중턱의 거친 표면을 비유한 말이다. 근처에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빙의 명소도 있다. 깎아지른 듯한 험한 바위 절벽 아래로 뤼세피오르가 내려다보인다. 빙하의 침식으로 깊게 계곡이 파이고, 1만 년 전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밀고 들어와 웅장한 피오르를 만들어 냈다. 노르웨이 남서부의 항구도시 스타방에르의 동쪽에 있는 42km 길이의 이 피오르는 노르웨이 4대 피오르 중 하나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뤼세피오르의 장엄하고 경탄스러움을 시로 칭송했다.
산행 속도가 늦은 나로 인해 산행 시간이 5시간 30분쯤 걸렸다. 평소 2시간 정도 산을 걷는 나로서는 힘들었지만 새롭고 신비로운 광경에 취해서 즐겁게 산행을 마쳤다.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도 좋았지만 산행을 마치고 난 뒤의 뿌듯함과 편안함은 그에 못지않게 행복감을 준다.
내일 등반할 프레케스톨렌(Preikestolen)으로 향한다. 좁은 도로를 타고 가면서 두 갈래 길에서 계속 오른쪽으로 가서 45번 도로, 508번 도로, E13을 달려 페리를 타는 Lauvvik에 도착했다. Lauvvik에서 Oanes로 건너가는 페리에 차를 실었다.
프레케스톨렌에서 뤼세피오르를 내려다보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비가 오기 전에 하산할 수 있도록 아침에 서둘렀다. 숨을 헐떡이며 능선을 올라서자 멀리 가파른 절벽이 툭 튀어나와 보인다. 프레케스톨렌(Preikestolen)은 600m 높이의 바위 절벽으로 뤼세피오르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볼 수 있어 뤼세피오르 지역에서는 제일 인기 있는 곳이다. 멀리 수직의 절벽 위 가장자리에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걸음을 재촉하여 프레케스톨렌에 다가갔다. 뤼세피오르에 우뚝 솟은 깎아지른 높은 절벽 위, 사각형 모양의 넓고 평평한 암반 위에 올라서니 날려갈 듯 바람이 세차게 분다. 멀리 앞을 바라보니 산과 뤼세피오르가 멋진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와! 여기서 보니 경치가 더 좋다. 빨리 올라와 봐." 낭떠러지 바위언덕 위에 올라가기 싫어서 가지 않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빨리 올라오란다. 아들이 먼저 올라가고 마지못해 벌벌 떨면서 기어 올라가 보니 정말 경치가 끝내준다. 프레케스톨렌 절벽과 그 위의 사람들 그리고 피오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뤼세피오르는 땀 흘리고 힘들여 올라온 수고한 자에게 그의 숨겨 두었던 장엄한 실체를 드러내 보여준다.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진수다. 배를 타고, 차를 달리며 바라보던 피오르의 모습과는 또 다른 웅대함이다.
편도 3.8km의 산행을 4시간 30분 만에 마치고 주차장에 내려오자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한다. 돌길이 많아 산행 중에 비가 왔으면 미끄러워 아주 힘들었을 텐데 마치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하산하기를 기다려 준 것처럼 차를 타자 빗줄기가 굵어진다. 히말라야 산행은 산이 인간을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하더니 노르웨이에서는 날씨가 중요한 변수다.
시퍼런 빛을 뿜어내는 니가드스 빙하
니가드스 빙하(Nigardsbreen) 방향인 송달 쪽으로 조금 이어지는 송네 산악도로로 내려가는데 도로변에 호수가 있고 스위스 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요툰헤이멘 국립공원의 서쪽에 있는 송네 산악도로는 55번 The National Tourist Route로 송달(Sogndal)과 롬(Lom) 사이 구간인데 북유럽에서 가장 고지대에 있는 산악도로이며 영국신문 가디언이 세계 10대 자전거 도로 중 하나로 소개했던 곳이다. 요툰헤이멘 국립공원 옆에 있는 요스테달스브리엔(Jostedalsbreen) 국립공원은 노르피오르(Nordfjord)와 송네피오르(Sognefjord) 사이의 고원지대로 유럽대륙에서 가장 큰 빙하인 요스테달 빙하(Jostedalsbreen)를 비롯해 지류빙하인 북쪽의 브릭스달 빙하와 남쪽의 니가드스 빙하가 있는 곳이다.
스키올덴(Skjolden)에서 55번 도로를 달리다 Nigardsbreen 표지판을 보고 길을 꺾어 604번 도로로 들어가니 석회 성분이 섞인 서유럽의 강물처럼 뿌연 계곡물이 흐르고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없다. 전등불이 켜져 있지 않은 깜깜한 작은 터널을 지나고, 산기슭에는 여름휴가용인지 주인이 도시로 떠난 빈집인지 인적 없는 통나무집들이 자주 나타난다. 스위스가 예쁘게 단장한 모습인 데 비해 노르웨이는 야생적이다.
빙하투어를 하면 아이젠을 빌려 배를 타고 건너가 빙하 위를 등반할 수 있다. 꼭 배를 타야 빙하 쪽으로 갈 수 있는 싶어 둘러보니 계곡물 옆 나무 사이로 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들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자 돌길이 나타난다. 커다란 바위에 걸쳐놓은 나무 사다리를 오르고 시냇물의 작은 다리를 건너 마치 빙하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듯 40분쯤 걸어가자 빙하가 보이기 시작한다. 커다란 바위 몇 개를 더 오르자 바로 눈앞에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암석처럼 단단해 보이는 빙하는 시퍼런 빛을 뿜어낸다. 물의 푸른빛이 그대로 얼었나 보다.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 속에 얼어 있던 생물체가 살아나올 것만 같다. 공룡을 전설 속의 생물체로 여기다 화석을 보고서야 실존했던 생물이구나 하고 인정하게 된 것처럼 사진으로 본 빙하는 하얗게 쌓인 눈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아 실감하지 못하다 오늘 실체를 보고서야 확실한 차이를 느끼며 빙하라는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빙하의 밑부분에서는 호수로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고 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이고 인기 있는 코스가 페리를 타고 둘러보는 것이고, 그 외에도 피오르에서 카약이나 보트를 타보고, 자동차나 기차를 달리면서 구경하기도 한다. 등산을 해서 산이나 높은 절벽 위에 올라 내려다보면 더욱 실감나며 훨씬 더 웅대한 모습의 피오르를 볼 수 있다. 또 피오르를 만들어 낸 창조자인 빙하를 찾아가 보고 폭포도 멀리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 보면 다른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올레순
서부의 항구도시 올레순(Alesund)으로 향한다. 60번 도로를 타고 달리자 또 비가 오기 시작한다. 쉬킬벤 선착장에서 10분 정도 페리를 타고 Magerholm에서 내려 60, E39, E136 도로를 달려 올레순에 들어서자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그동안 피오르와 산을 누비다 넓은 바다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 뒤쪽으로는 올레순 중심부가 보이는데 예쁜 색깔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어우러진 바다의 모습이 집모양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통영과 비슷한 느낌이다. 오래간만에 도시에 왔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이 한적하여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다. 건물들은 한결같이 깨끗하다.
1904년 대화재로 다닥다닥 붙은 목조 건물들이 전부 소실되어 3년 동안 노르웨이의 많은 건축가들이 힘을 모아 350개의 아르누보 양식의 석재 건물로 재건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난 올레순의 거리에서 그때 지어진 독특한 아르누보 건축물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도시의 전경을 보기 위해 전망대를 찾아왔는데 생각지 않은 멋진 풍경이다. 도시 안에서 보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도시는 옹기종기 빽빽하게 집들을 싣고 배가 되어 물 위에 떠 있다. 곧 바다 위를 유유히 항해해 갈 것 같은 올레순을 내려다보며 아무도 모르는 보석을 물속에서 건져내어 감상하는 기쁨을 누린다. Fjellstua Utsiktspunkt 전망대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다.
오슬로에서 뭉크와 바이킹을 만나다
오슬로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항구에 요트, 보트가 바닷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정박해 있다. 노르웨이는 5~6인당 1대 정도로 보트 보유율이 아주 높다. 이들이 해양레저를 즐긴다는 의미고 그만큼 경제력이 된다는 말이다.
시청사는 예상과는 달리 높다란 현대식 사각 건물이다. 여기에도 뭉크의 벽화가 있다고 하여 시청사의 큰 홀 안에 들어서면서 살피니 벽면 전체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1층의 벽화는 다른 작가의 그림이고 뭉크의 벽화는 2층에 있는데 지금은 공개하고 있지 않단다. 시청사는 매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곳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다른 모든 노벨상 시상식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루어지는데 평화상만은 오슬로 의회에서 선정 수여하고 있다. 이것은 스웨덴 사람이었던 노벨상 설립자 노벨의 유언에 의한 것인데 그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연합국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양국 간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라 짐작된다.
다음 날, 오슬로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뭉크 미술관과 바이킹 박물관에 갔다. 북유럽 하면 바이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바이킹 하면 해적이 연상된다. 박물관에는 오세베르그호(Oseberg ship)와 고크스타호(Gokstad ship), 투네호(Tune ship) 세척의 바이킹 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 9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오슬로 피오르 지대에 있는 매장지에서 발굴됐다. 투네호는 배의 윗부분이 부패되어 밑바닥만 전시되어 있다. 그동안 여행 중에 북유럽의 선조인 바이킹의 흔적을 특별하게 보지는 못했는데 박물관의 바이킹 배는 전설이 아님을 입증해 준다.
이른 시각이랑 뭉크 미술관은 많이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뭉크는, 누이와 어머니가 결핵으로 빨리 세상을 떠났고 그로 인해 의사였던 아버지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 어린 시절을 우울하게 보냈다. 그의 가족사는 그를 평생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그만의 정서적인 경험과 심리 상태를 뛰어난 표현력으로 그림에 담아내어 그를 표현주의의 대가로 만들었다.
뭉크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열었는데 코펜하겐에 머물 때는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당시 뭉크는 고국에서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더 인정을 받았는데 말년에는 고국에 돌아와 오슬로 근처의 에켈리에서 81세로 생을 마쳤다. 그의 모든 작품은 유언에 의해 시에 기증되었고 1963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뭉크 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스웨덴
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예테보리
스웨덴의 면적은 한반도의 약 두 배로 북유럽에서 가장 영토가 넓다. 중부와 남부 지역은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북쪽의 국경 부근에는 높은 산들이 있다. 삼림이 국토의 54%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 스톡홀름 이북지역에 무성하다. 이런 풍요로운 자연에다 잘 정비된 도시까지 갖춘 스웨덴은 복지수준도 세계 최고다.
스웨덴의 제2 도시 예테보리는 스칸디나비아 최대의 조선업 중심지로 대규모 조선소와 볼보 본사가 이곳에 있다. 도시에 주차할 때는 지하주차장이 안전하나 드나드는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워 도로변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여기저기 많기도 하다. 항구도시는 바다가 있어 더 풍요롭고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멀리 별칭이 립스틱 건물인 빨간색 건물 스칸스카 타워(Skanska Tower)가 보인다. 꼭대기 전망대의 카페에서 도시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옆으로는 커다란 대관람차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어 도시에 아기자기한 멋을 더한다.
다시 쇼핑몰 쪽으로 내려오니 노르드스탄 쇼핑몰에서 가까운 거리에 작은 시청광장이 있고 1619년 이 도시를 설립한 구스타프 아돌프 왕의 동상이 서 있다. 스웨덴을 근대화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여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력으로도 국가를 번영케 했던 왕이다. 남동쪽으로 쭉 뻗은 직선도로, 쿵스포르츠아베뉜 거리(Kungsportsavenyn)를 따라 몇 분 만에 예타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의 중앙에 웬 아저씨, 커다란 물고기를 들고 분수 가운데 서 있다. 예테보리의 상징, 포세이돈 동상이다. 스웨덴의 유명 조각가 카를밀레스의 작품인데 항구도시에 걸맞다. 광장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니 리세베리 놀이공원에 나타나는데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 스톡홀름
스톡홀름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삐죽삐죽 높이 솟은 교회를 비롯해 오래된 건축물들이 현대 건축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저절로 함성이 터지게 하는 풍경이다. 750년의 역사를 지닌 스톡홀름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14개의 섬이 57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1911~1923년에 건축된 시청사의 블루홀에 먼저 들어서니 넓고 천장이 높아 어느 광장에서라도 서있는 것 같다. 이름과는 달리 붉은색이다. 처음에 푸른색으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설계자의 생각이 바뀌어 붉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초안이 워낙 유명해서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황금빛 찬란한 방으로 들어왔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 파티의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는,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황금의 방이다. 방 전체가 번쩍번쩍하여 궁금증을 못 참고 "이거 진짜 금인가요?" 하고 인솔자에 묻자 "진짜 금이에요. 1800만 개의 얇은 금박 모자이크로 만든 거랍니다." 자랑스럽게 말한다.
다음 날, 세르옐 광장(Sergels Square)을 중심으로 스톡홀름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본다. 도시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리를 걸어 보는 것이다. 길을 물으면서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활을 짐작하고, 오래된 건축물들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보고, 거리에서 펼쳐지는 축제를 통해 그들의 문화를 맛본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세르예르가탄(Sergelgatan) 거리로 들어섰다. 현대식 건물이 주를 이루는데 특이한 시계로 장식된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12시 15분에 왕궁 근위병 교대식을 한다고 했지?" 다리를 건너 리다르홀멘 섬에 있는 구시가지 감라스탄으로 와서 왕궁에서 약간 떨어진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왕궁 안뜰에는 줄이 쳐 있는 바깥으로 사람들이 벌써 빽빽하게 서 있다. 잠시 후 하얀 제복을 입은 군악대가 팡파르를 울리며 발을 맞추어 들어오자 카메라는 일제히 그쪽을 향해 사격을 시작한다. 그런데 제일 앞에 선 대장이 여자다. 우리나라에도 여군이 있지만 여자 근위병은 처음 본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한술 더 떠 2015년부터 여자의 군복무가 의무화 된다.
북유럽은 인구밀도가 낮아 여성의 사회 참여 필요성에 의해 육아와 노인 돌보기를 국가가 맡으면서 여성이 직장을 갖는 경우가 80%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게 되어 여자의 지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일찍부터 높았고, 양성평등교육이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 남자가 아기를 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왕궁 바로 옆에 있는 대성당을 잠시 구경하고, 지금은 원색의 카페들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스톡홀름 대학살이 일어났던 곳, 대광장을 거쳐 상점이 많은 거리로 들어서자 조금 전, 왕궁에 있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두 왔는지 좁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는 여러 가지 색깔을 입은 목각 말, 인형, 달라 홀스(Dala Horse)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 북유럽은 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기념품으로 목각 공예품이 유명하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니 핀란드로 가는 배를 타러 가야 할 시간이다.
핀란드
바이킹 라인 타고 핀란드로 향하다
핀란드는 숲과 호수의 나라, 사우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낮고 평평한 지형으로 국토의 70%이상이 삼림이고 10%가 18만 개의 호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토의 3분의 1이 북극권에 위치한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에서 1917년 독립하여 지금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다.
핀란드 헬싱키를 향해 배가 서서히 가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 사이를 운행하는 배는 실야 라인과 바이킹 라인이 있는데 실야가 조금 더 크고 시설이 약간 좋은 데 비해 바이킹은 가격이 조금 더 싸고 식사가 좋다고 하여 바이킹을 예약했었다. 해산물, 고기, 빵, 와인, 맥주 등 뷔페 차림이 근사하다. 뷔페는 바이킹이 약탈을 하거나 전투에서 이겼을 때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널빤지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먹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바이킹의 나라에서 그들 전통 상차림인 뷔페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배는 천천히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다. 유리창 너머 바다는 한밤중이지만 아직 훤하고, 작은 섬이 가까이 다가왔다 사라지고, 구름이 나타났다 멀어지고 마치 천천히 돌아가는 무성영화를 보는 듯하다.
독특한 현대 건축물을 자랑하는 디자인 도시 헬싱키
헬싱키 중심지에 가까워지자 해안가에 많은 배들이 우리를 맞아주고, 언덕 위에 붉은색 벽과 녹색 지붕의 화려한 건물이 눈에 확 뜨인다. 관광안내책자를 뒤져 보니 우스페스킨 성당(Uspensky Cathedral)이다. 핀란드가 러시아 지배하에 있을 때 건축된 러시아 정교 교회이기 때문에 다른 유럽 지역에서 많이 보아온 교회와 모양이 달라 색다른 멋이 있다.
수오멘린나 요새(Fortress of Suomenlinna)로 가기 위해 가까이 있는 선착장으로 이동하니 바로 옆의 마켓광장에서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을 많이 팔고 있다. 배는 거의 15분마다 있어 별로 기다리지 않고 탔다. 15분 정도 지나 도착한 요새는 굉장히 넓다. 관광안내소에 들러 지도를 보니 요새는 5개의 섬이 다리로 이어져 있다. 현재 요새 안에는 200개가량의 건축물이 있고 85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수오멘린나 요새는 핀란드가 스웨덴의 통치하에 있을 때 러시아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100년간의 러시아 통치하에 있을 때는 러시아군이 이곳을 점령하기도 했다. 수오멘린나는 핀란드어로 무장해제란 뜻이다. 18세기의 군사 시설을 보여주는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무시무시한 대포는 아이들이 올라타고 노는 놀이기구가 되었고, 벙커 위 풀밭은 바다를 바라보며 쉬는 휴식처가 되어 요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했다.
다음 날, 헬싱키의 북동쪽 지역을 돌아본다. 시벨리우스 공원(Sibelius Park)에서부터 시작하려 했으나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핀란디아 홀(Finlandia Hall)에 먼저 갔다. 하얀색의 다면체를 모아 둔 듯한 현대 건축물이 쉽게 눈에 띈다. 핀란드의 유명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알바르 알토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예술 공연과 국제회의가 많이 열리는 곳이다.
시벨리우스 공원으로 향해 가는 길의 오른편에는 공원, 왼편에는 호수가 있어 대도시 속에서 핀란드의 자연을 다시 느끼게 해 준다. 시벨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공원 안에는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그의 조각상과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조형물이 서 있다. 핀란드의 국민 음악가, 얀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핀란디아는 핀란드인에게 용기를 주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 주었다.
헬싱키를 마지막으로 북유럽 여행을 마치고 탈린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헬싱키가 멀어져가자 섭섭한 마음에 서로 아무 말 없이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북유럽 여행 동안 어느 한 곳도 떠날 때 아쉽지 않은 곳이 없었다. 우리는 북유럽에 인접해 있는 발트3국을 둘러보고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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