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현 세대 최고의 축구 선수!
우리는 지금 세계 축구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스타 메시를 다각도로 조명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접하여 거물로 성장하기까지 축구밖에 몰랐던 신동 메시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메시의 성장과정부터 최근의 활약상까지를 연대기적으로 기록했다.
메시가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주었던 주요 경기들을 집중 분석해놓은 부분을 따라가다 보면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고 싶은 충동도 생길 것이다. 꿈을 향해 지칠 줄 모르고 정진했던 한 성실한 천재의 모습, 돌출형 천재인 마라도나와 달리 집단과 동료의 가치를 우선하는 겸손한 천재의 모습이 이 책에 잘 담겨 있다.
■ 저자 루카 카이올리
195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2001년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주했다. 30년 이상 활동한 저명한 스포츠 저널리스트이며, 유럽의 여러 축구 매체에 기사와 인터뷰 등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호날두, 메시, 지단, 호나우지뉴 일대기를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축구뿐 아니라 철학과 여행에도 조예가 깊다. 국내 출간된 저서에는 『호날두-완벽을 향한 열정』이 있다.
■ 역자
강세황
국민대학교 국제 통상학과를 졸업하고 다년간 번역을 하였으며 EPL을 즐겨보는 축구 마니아이다.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축구 바이블』이 있다.
김민섭
동국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벤처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컴퓨터와 IT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HTML5 캔버스 완벽 가이드: 그래픽 애니메이션 게임 개발을 위한 캔버스』『아이패드 퍼펙트 매뉴얼: 친절하고 꼼꼼한 사용설명서』『CSS 원리와 이용방법』『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1』『Microsoft XNA 게임 스튜디오 3.0 unleashed』『미래코드, 클라우드 컴퓨팅』『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2』『헬로, 풋볼: 축구의 모든 것』『축구의 메시아 메시: 펠레와 마라도나를 뛰어넘는 축구 영웅』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감수 손병하
2004년 스포츠 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를 거치며 스포츠 관련 글을 썼고, 2006 월드컵과 2007 아시안컵 등 굵직한 국제 대회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2009년부터는 4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 전문지 베스트 일레븐으로 옮긴 후 지금까지 축구 따라잡기에 열중하고 있다.
■ 차례
01 어린 시절
02 빨강과 검정의 유니폼
03 대서양을 건너
04 데뷔
05 비디오테이프
06 드라마 같은 이야기
07 단 일 분도 뛰지 못한 레오
08 메시와 마라도나
09 실망
10 동메달과 은메달
11 금메달을 위한 여행
12 행복
13 행운의 세 번째
14 눈물의 홍수
15 놀라운 소식
16 세계 최고의 선수
17 좌절된 꿈
18 대회 최우수 선수
19 3관왕
20 기록
21 메시 의존증
22 인터뷰
메시 : 축구의 신
어린 시절
1987년 6월 24일 로사리오 종합병원에서 호르헤 메시와 셀리아 메시의 셋째 아들인 리오넬 메시가 탄생했다. 오전 6시를 몇 분 남겨둔 이른 아침이었다. 정식명은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 리오넬의 첫 돌잔치가 열렸을 때 그의 이모와 삼촌은 뉴웰스 올드 보이스 팀의 축구 셔츠를 선물로 사주었다. 벌써부터 리오넬은 그가 뛸 미래의 팀을 응원하고 있었던 셈이다.
메시의 첫 번째 축구 선생님은 아파리치오 씨다. "레오는 1987년생이지만 1986년생 팀에서 경기를 했어. 가장 어린 선수였고 몸집도 가장 작았지. 하지만 녀석은 가장 눈에 띄는 선수였다네. 녀석은 마치 본능적으로 어떻게 경기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지. 레오가 공을 가지면 아무도 그 녀석을 막을 수 없었어." 아파리치오 씨는 진한 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어린소년의 사진 한 장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너무 커서 헐렁거리는 셔츠를 입고 아주 짧은 다리를 가진 이 아이는 한 손에 자신의 키만 한 트로피를 쥐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리오넬 메시 생애 최초의 우승컵이었다.
레오는 어렸을 때 자신의 발로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게임이든지 즐겼고 그것들이 그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공부하는 것만큼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음을 그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1학년부터 3학년 때 까지 담임을 맡았던 모니카 도미나 선생님이 이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네, 레오는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어요. 레오는 얌전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어요. 로사리오시의 학교 대항 축구 경기가 열리면 레오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과 축구 시합을 하면서 트로피나 메달을 따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때에도 레오는 자기가 축구를 얼마나 잘하는지, 골을 어떻게 넣었는지 일절 자랑하는 법이 없었어요."
데뷔
2003년 11월 16일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아름다운 드라가오 스타디움의 개장식이 있었다. 리오넬 메시는 경기 시작 74분에 교체되어 드디어 데뷔 무대를 가졌다. 세 번째 대기 선수였던 그는 이날의 경기로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청소년 팀이 과연 프로 1군 선수들과 함께 선발 출장이 가능할지 그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참여한 것이다. 레오는 나바로와 교체 투입되어 등번호 14번을 달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는 단 15분 동안 두 골을 성공시켰다. 종료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마무리 되었을 때 리즈칼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말 재능이 많은 소년이며 미래의 스타다."
메시는 겨우 한 시즌 만에 B팀에서 A팀으로 승급하여 바르셀로나 3부 리그인 바르셀로나 C팀에서 2부 리그 바르셀로나 B팀으로 투입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뛰었던 첫 번째 팀에서의 짧았던 영광의 순간을 잊지 않고 가끔 청소년 리그에 출전하여 이전 팀 동료들을 도왔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
라리가의 2005~2006 시즌은 8월 26일에 시작되었다. 7월 8일, 스페인 축구협회는 귀화선수에 대한 조항을 수정했다. 스페인 클럽의 유소년 팀을 거쳐 선발된 17세에서 19세의 비유럽 선수가 리그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규정에 대해 다른 클럽들은 바르셀로나와 레오에 대한 특혜 규정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프로 자격증과 최종적인 결론이 문서화되기 전까지 레오는 경기를 뛸 수 없었다. 왜 그는 스페인에 2년이나 있었으면서 이중 국적을 신청하거나 귀화하지 않았을까?
9월 26일 오후 1시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 쿠치티니는 시민권 등록을 주재하는 페르난도 알베르티 베치노 판사 앞에 섰다. 판사는 판결을 선언했다. "아르헨티나 국적을 그대로 인정하며 동시에 스페인 국왕에게 충성을 선언하고 스페인의 법에 따를 것을 맹세하며 카탈루냐의 시민권과 스페인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레오는 스페인 국적을 얻었고 유럽의 시민이 되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스포츠지를 장식했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스페인 축구협회는 10월 18일에 메시가 귀화했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으로서 당연히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는 첫 번째 결정을 내렸다. 11월 19일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레오는 경기에 복귀했다. 그리고 12월 14일 누 캄프 경기장에서 골든보이상을 수상한다. 적절한 시기에 받은 이 상으로 메시는 또다시 자신의 인지도를 높였다.
메시와 마라도나
웹 사이트, 텔레비전 방송국, 신문사는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여론 조사에서는 메시와 마라도나의 득점을 비교하는 질문들이 주를 이루었다. 예를 들면, 어떤 득점이 더 극적이었습니까? 메시의 골? 아니면 마라도나의 골?이나 어떤 선수의 득점이 더 멋있습니까?라든지 개인적으로 어떤 득점이 더 낫다고 봅니까? 등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두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1997년 마라도나가 은퇴한 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마도나의 후임자를 찾아 헤맸다. 이런 현상은 슈퍼스타가 은퇴하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우선 영웅이 전설 속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온다. 이 시기가 지나면, 영웅의 뒤를 이어받을 후계자를 찾을 시기가 온다. 사람들은 후계자를 찾게 되면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을 뿐 아니라 기억 속에서 축구에 대한 향수를 일으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새로운 펠레라든지 새로운 마라도나라는 수식어를 젊은 선수에게 사용하면 모든 사람이 공통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시는 마라도나와 겹치는 우연의 일치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다. 예를 들어 메시와 마라도나는 작은 키에 왼발잡이였으며, 뉴웰스에서 성장했고, U-20 청소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마라도나처럼 헝가리를 상대로 국제 대회 데뷔전을 치렀다.
"메시는 세계에서 뛰어난 선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고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때 일수록 받은 것 이상의 것을 보여야 할 차례입니다. 그러다 보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것입니다." 이렇듯 방송에서 메시를 후계자로서 인정하고 앞날을 축복했지만 마라도나는 최고의 자리를 내준다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명예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금메달을 위한 여행
"아르헨티나를 위해 올림픽에서 뛰고 싶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대표 팀 선발 생각만으로도 흥분됩니다. 물론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선수 경력에도 좋은 기회입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나갈 생각입니다. 올림픽 출전 때문에 소속 클럽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요? 그럴 리 없습니다. 클럽도 저의 이런 입장을 이해할 것이니 올림픽 출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한 바르셀로나 관계자들은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을 치르는 동안 메시의 부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들은 메시의 올림픽 출전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7월 2일, 올림픽 대표 팀의 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은 18명으로 구성된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최종 명단을 발표했다. 리오넬 메시를 명단에 포함하며 논쟁의 종말을 알렸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의 훌리오 그론도나 회장도 메시의 참여를 적극 추천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측에서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 미국 투어를 마치고 챔피언스리그 예선 1차전을 치르기 전까지 선수 차출을 기다려 달라는 내용을 전했다. 메시는 올림픽 예선 1차전 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다. 메시는 준준결승전부터나 출전할 수 있었다. 이런 힘겨루기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은 메시였다.
8월 7일, 라포르타 회장과 베기리스타인 기술이사는 메시의 올림픽 출전에 관해 결정된 사항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모든 상황이 일단락되며 메시는 등번호 15가 새겨진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코트디부아르전에 출전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4년 만에 다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메시가 딴 금메달은 메시의 올림픽 참가를 반대한 사람들과 법정 공방까지 가는 상황 속에서 일궈낸 값진 메달이었다. 이제 메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여기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행운의 세 번째
메시의 소원대로 이번에는 그의 차례였다. 옛말처럼 세 번 만에 이뤄진 것이다. 2007년 3위, 2008년 2위를 한 리오넬 메시는 결국 2009년 프랑스 풋볼에서 선정한 발롱도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메시에게 투표한 이유를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기자 헨리 윈터는 프랑스 풋볼에 이렇게 게재했다. "메시와 공 사이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늘 창조적인 플레이로 득점에 성공하며 끊임없이 팀을 위해 움직이는 그에게 천재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메시가 시상식을 즐기는 동안 바르셀로나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했다.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을 확정 지을 우크라이나의 디나모 키예프와의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는 바르셀로나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메시는 정말 위급한 순간이 아니면 절대로 출전시키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바르셀로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메시뿐이었기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53분에 메시를 교체 투입했다. 바르셀로나는 세계 정상에 올라섰다. 그리고 12월 21일 월요일, 눈에 뒤덮인 취리히에서 메시가 세계 최고의 선수임이 증명됐다.
"국제축구연맹이 선정한 2009년도 올해의 선수는…… 리오넬 메시!" 메시는 2007년과 2008년, 연속으로 2위를 수상하며 아쉬움을 삼켰지만 2009년, 세 번 만에 1위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여섯 대회에서 우승컵을 손에 쥐며 세계를 정복한 메시에게도 아직 정복해야 할 나라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였다. 왜냐하면 아르헨티나 대표 팀이 남아공 월드컵 예선을 어렵게 통과했지만 그 당시 다른 대회에 출전한 메시가 아르헨티나 대표 팀에서 충분히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문제가 메시가 아니라 팀에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메시가 아르헨티나의 모든 국민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에스투디안테스의 우승을 저지하는 등 바르셀로나에서나 유럽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여섯 대회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는 이유로, 메시를 외국인처럼 대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메시를 아르헨티나 국민이 아니라고 할 때마다 메시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메시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저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그런 말을 합니까?"라고 외치는 것밖에 없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이 끝난 후의 레오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메시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의견이 같았다. 이번만큼은 영국 언론과 아르헨티나 언론 모두 메시를 묘사하면서 왕이란 수식어를 사용했다. 메시는 축구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섬세하고 열정적이며 적극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메시는 팀 플레이어였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포메이션을 강화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략을 와해시키기 위해 수비수 사이로 움직이며 공간을 찾았다. 메시는 재빠른 움직임, 상대 선수를 제치기 위한 터치라인부터의 패스, 도움, 슈팅 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능력을 보였다. 경기가 끝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인정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메시를 완벽하게 저지하지 못해서 경고를 받았습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공격을 차단할 정도로 미드필드 지역을 견고하게 수비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바르셀로나를 이끌 수 있는 선수는 메시밖에 없다. 메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2002~2003 시즌에 네덜란드 출신의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세운 것과 같은 기록인 12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메시는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23살의 나이로 세 번째로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오른 메시는 다른 14개의 타이틀은 언급하지 않았다. 결승전이 끝난 후 과르디올라 감독은 메시는 지금껏 보아온 선수 중 최고의 선수입니다라고 했다.
좌절된 꿈
7월 6일 수요일 아르헨티나는 산타페에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싶었지만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아르헨티나의 투지가 부족하여 콜롬비아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메시는 경기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 메시는 콜롬비아 골키퍼 마르티네스 정면에 있던 라베치에게 멋진 패스를 한 번 한 것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메시와 니콜라스 부르디소 사이에 실랑이가 두 번 벌어졌다. 그리고 이 다툼은 탈의실까지 이어졌다. 경기가 끝난 후 아르헨티나가 퇴장할 때 관중들은 호각을 불고 야유를 퍼부으며 모욕을 주었다. 언론은 방향성이 없는 팀에 대한 글을 게재했다.
결론 없는 논쟁을 주고받는 사이에 7월 11일 코르도바에서 코스타리카와의 중요한 경기가 열렸다. 관중들은 대표 팀에 대한 불만을 제쳐놓고 대표 팀을 위해, 특히 메시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응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2007년 코파 아메리카 준결승에서 멕시코와 만난 메시는 환상적인 골을 넣은 후 4년이 지난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조별 경기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메시는 환상적인 실력을 발휘하여 지금까지 알비셀레스테와 함께한 경기 중에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메시와 아르헨티나 사이의 불협화음은 서서히 사라졌다. 마침내 메시는 자신이 바라던 것, 이미 바르셀로나에서는 갖고 있던 것, 즉 지원과 애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꿈은 우루과이와의 경기를 끝으로 산산이 조각났기 때문에 고작 다섯 달 지속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누구도 예선전의 메시를 비난할 수 없었다. 로사리오에서 가족과 함께 지난 며칠 동안 메시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던 것은 팬들의 애정이었다. 한 플래카드에는 메시+국가대표 팀+팬=2014년 월드컵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문구는 메시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것이다.
기록
11월 2일 금요일 오후 5시 14분, 캄프 누 스타디움 근처에 있는 USP 덱세우스 병원에서 메시의 아들 티아고가 탄생했다. 메시는 드디어 아버지가 되었다. 오후 6시 20분, 리오넬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오늘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 아들이 무사히 태어난 것과 이런 선물을 주신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힘이 되어준 가족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립니다."
12월 9일 일요일 메시는 세비야에서 열린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경기에서 메시는 두 골을 넣으며 레알 베티스를 격파하며 뮐러의 기록을 깼다. 하지만 공을 집에 가져가거나 소란 피우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경기장을 떠났다. 나중에 메시는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기록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뻤습니다. 기록을 깬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지만 다른 팀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가 계속 득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12월 18일, 바르셀로나는 메시와 재계약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벼룩과의 이전 계약은 2016년에 만료되지만 메시는 31살이 되는 2018년까지 재계약 했다. 그리고 메시의 연봉은 약 1600만 유로로 인상되었다.
특히 2013년 1월 7일 취리히, 리오넬 메시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인 발롱도르를 네 번이나 수상하는 축구 역사상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메시는 요한 크루이프, 마르코 판 바스턴, 미셸 플라티니 등 발롱도르를 세 번 수상한 전설적인 선수들을 능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메시가 기록한 91골이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라리가와 슈퍼컵에서 우승한 것이나 이니에스타가 스페인 국가대표 팀과 함께 UEFA 유로 2012년에서 우승한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것이다.
인터뷰
A.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MESSI: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으로 이주할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고향, 친구, 친척이 모두 아르헨티나에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주하고 몇 년 동안은 저와 아버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살았고 나머지 가족은 로사리오에 있었는데 가족이 보고 싶어 집에서 많이 울곤 했어요. 아버지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몰래 숨어서 울었습니다."
A. 공을 다룰 때 보면 굉장히 부드럽고 자신감 있게 다루던데 어떻게 익히신 건가요? 그리고 경기 중에 놀라운 기술을 보여 주시던데 방법에 관련해서도 말씀 부탁드려요.
MESSI: "특별한 방법은 없고 그냥 매 순간 축구공과 함께 있으면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온종일 공을 차며 놀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호나우지뉴처럼 완벽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기술에 대해 배워본 적은 없습니다. 그냥 상황에 맞춰서 몸이 하는 대로 따라서 움직일 뿐입니다."
A. 메시 선수는 지금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불리는데 여기까지 오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MESSI: "거의 모든 아이들은 축구선수를 꿈꾸지만 그 꿈을 실현시키려면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힘듭니다. 많은 희생도 필요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바르셀로나로 이주한 것을 들 수 있겠군요. 하지만 저는 그때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스 아카데미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A. 지금부터 15년이나 20년 후의 메시 선수를 생각해 보면 어떤 모습일 것 같습니까?
MESSI: "가족과 함께 로사리오에서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가까이 살고 싶거든요."
A. 현재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MESSI: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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