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걷다

   
박원순
ǻ
하루헌
   
15000
2013�� 01��



■ 책 소개
성공한 사회운동가에서 시민의지지를 받는 서울특별시장으로 변신한 박원순 시장. 정치와 벽을 쌓고 살던 그는 어떻게 마음을 바꿨을까. 정치부기자들조차 충격으로 받아들인 그의변신에는 백두대간을 걷는 힘겨운 여정이 있었다. 2011년 7월 19일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꼬박 49일간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박원순 시장은 자신앞에 놓인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단조롭고 험하며 꼬박 장맛비를 맞고 모기에 뜯기며 걸었던 쉽지 않은 길. 박 시장은 자신의 삶이 백두대간종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고백했다. 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꿈꾼다는 백두대간 종주, 그러나 아무나 이룰 수 없다는 그 험한 장정속에서 그가 보고 느끼고 마음에 새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 저자 박원순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사회계열에 진학했으나 학생 운동 연루 혐의로 제적되었다.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대학 시절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 인권 변호사로 늘 약자편에 서서 갈등과 아픔이 있는 곳을 지켰으며, 인간이 꿈꾸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셜 디자이너로 각종 사회 운동에 헌신했다.남이 닦은 길을 가기보다 늘 새로운 길을 열고 사람들이 함께 역사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앞장섰다. ‘역사문제연구소’, ‘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을 세워 시민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06년 만해상과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하여시민운동과 인권 관련 상을 다수 받았다. 

2011년,심한 평발이라는 악조건을 무릅쓰고 무모하게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 49일간의 기도와 같은 산행을 통해 자신 앞에 놓인 역사적 소명을 깨닫고,하산 즉시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나서 제35대 서울시장에 취임했다. 지금은 인간 중심의 ‘희망 서울’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계속하고 있다.&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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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박원순과 함께 “희망을 걷다” 한승헌(변호사) - 한 소셜 디자이너의 아름다운 결단
책을 펴내며 - 백두대간이 준 축복과 재앙 
프롤로그 - 한 걸음 한 걸음 희망을 품고 걷는다
희망일기 1 무식한 자가 일을저지른다 
희망일기 2 감동의 지리산 
희망일기 3 무거운 짐에 녹아난다 
희망일기 4 세상을 만드는 작은 이야기
희망일기 5 뒤에서 함께 걷는 사람들 
희망일기 6 꼴찌 경쟁 
희망일기 7 왜 여기에? 
희망일기 8 천천히 가야보이는 세상 
희망일기 9 놓아 버릴 때 찾아오는 행복 
희망일기 10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희망일기 11시시포스(sisyphos), 그 운명의 길 
희망일기 12 물을 만나면 백두대간이 아니다
희망일기 13 산꾼이 백두대간 타는 법
희망일기 14 문명 세상과 결별하다 
희망일기 15 다람쥐야, 너라도 보렴
희망일기 16 아직도 어설픈 초보 종주단
희망일기 17 힘들어도 전진 
희망일기 18 탈진 
희망일기 19 나무도 전설이 된다
희망일기 20 백두대간 ‘궁상’
희망일기 21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온다 
희망일기 22 이것은 눈물이다 
희망일기 23 많아지는 방문객
희망일기 24 고향 같은 숲으로 돌아오다
희망일기 25 산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희망일기 26 함께 가면 수월하다
희망일기 27 고통스럽지만 돌아서 가다
희망일기 28 속죄가 필요한 시대 
희망일기 29 백두대간의 참맛 
희망일기 30길을 연 사람들 
희망일기 31 만산의 왕 
희망일기 32 인생의 낙오자? 
희망일기 33 기록하고 또 기록하라 
희망일기34 부쇠봉에서 누리는 호사 
희망일기 35 높다고 주봉은 아니다 
희망일기 36 태양은 추위를 물리치다 
희망일기 37자랑거리 많은 백전리 
희망일기 38 길에서 정의를 만나다 
희망일기 39 쌀 사만 섬이 사라진다
희망일기 40 잠 못 이루는이기령의 밤
희망일기 41 정치의 바다로 
희망일기 42 산이 사라졌다 
희망일기 43 숲이 희망이다? 
희망일기 44개발로 몸살을 앓는 산하 
희망일기 45 선자령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 
희망일기 46 산행의 정적이 깨지다 
희망일기 47 꼭꼭숨은 오대산 
희망일기 48 백두대간 끝에서
희망일기 49 미지의 세상으로 

원순 씨와 함께 한 백두대간 종주 
꿈을 확인하는 백두대간 - 신충섭(보급 대장) 
원순 씨와 함께한 희망대종주 - 석락희(대장) 
백두대간이 내게 준 선물 - 박우형(부대장)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김홍석(네 번째 손가락)
나를 키워 준 백두대간 - 홍명근(다섯 번째 손가락)





희망을 걷다


프롤로그 - 한 걸음 한 걸음 희망을 품고 걷는다

언제부턴가 삶에 대한 질문도 늘어 갔다. 지금 나는 진실로 잘 살고 있는 걸까?, 타성에 젖어 구태의연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 일도 잦아졌다. 지금까지 멈추고 지난 일을 되짚어 볼 여유가 없었다. 빼곡한 일정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삶에 대한 반추도 미래에 대한 깊은 사유도 없이 살아왔다는 반성이 일었다. 늘 그래 왔듯이 이제 지난 5년을 바쳐 헌신했고, 이제 자립이 가능한 희망제작소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앞으로 무엇을 할까? 그래서 산으로 가기로 했다. 발은 평발이고, 무릎도 시원치 않다. 그렇게 좋아하는 산을 최근에는 거의 못 밟았다. 종주 중에 어쩌면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해답을 찾기 위해 떠난다. 우리 조상들이 삶을 의탁해 왔던 이 땅의 등줄기, 백두대간을 향해.


백두대간의 길을 걷는 동안 새로운 삶과 일과 미래를 구상하려 한다. 그리고 이제껏 해 온 일을 뒤로 두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백두대간을 걷기로 했다.


한 발자국도 내 발이 아닌 남의 발로는 갈 수 없는 백두대간을 걷을 것이다.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걷는 동안 이 땅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것이다. 그에 앞서 내 삶부터 돌아볼 것이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미명, 해 지는 노을, 피어오르는 안개와 쏟아지는 폭우, 아름다운 자연과 육신의 고통, 이 모두와 함께 할 것이다.


모험과 같은 이 여정에는 다섯 명의 동반자가 함께 한다. 석락희 대장, 박우형 부대장, 김흥석 대원, 홍명근 대원 그리고 신충섭 보급대장. 이들이 함께 하기에 겁도 없이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희망일기 - 무식한 자가 일을 저지른다

하늘이 노랗다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도착한 지리산 입구 중산리.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하얀 뭉게구름과 짙은 숲은 도시의 삶에 지친 나에게 한줄기 시원한 바람 같았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원지로, 원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중산리로. 드디어 대망의 백두대간 연속 종주를 시작한다. 오늘은 로타리대피소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 아침에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예정이다.


꿈은 현실이 되는 법!

"세상은 꿈꾸는 사람의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꿈은 언제나 현실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세상 사람들에게도 진정 원하는 일은 저지르라!고 부추겼다. 마음속으로 되뇌는 바가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백두대간 종주도 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사실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두 달간이나 시간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 수첩에는 30분 단위로 스케줄이 잡혀 있다. 살인적인 일정이다. 사람들은 나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내가 두 달 동안 시간을 내어 산으로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상식에 굽히지 않는 성격이라 가능했다. 무슨 일이든 일단 저지르고 본다. 아니 일을 벌이기 전에 소문부터 낸다. 나중에 도저히 안 할 수 없게 미리 소문을 내 버린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내가 가는 길은 분명했고, 의지가 뚜렷했기에 결정은 단호한 것이 되고 말았다.



희망일기 - 천천히 가야 보이는 세상

작고 아름다운 세상에 눈을 뜨다

하루 종일 걸으며 숲의 내밀한 모습을 본다. 파란 애벌레가 올록볼록 배를 내밀며 기어간다. 세상에! 참으로 빠알간 애벌레도 있다. 하늘색 꼬리를 가진 까만색 나비도 있다. 두더지가 곳곳에 숭숭 파 놓은 구멍이 도처에 깔렸다. 여치와 방아깨비도 내 길 앞에 튀어 나온다. 갈색 사마귀 새끼도 보인다. 산초나무에는 나비가 꼬였다.


마주치는 이 숲의 주인이 참으로 많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놈들이 스스로를 선보이고는 사라진다. 참 대단한 생태계다. 신기하고 신비로운 세계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원리가 이 숲을 움직여 가는 것 같다.


오직 목표 지점만 염두에 두면 정신없이 걷게 된다. 걷는다기보다는 마구 달리게 된다. 내 곁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세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달리는 백두대간, 나중에 걸었다는 사실 외에 뭐가 남을까?


문득 인생도 주마간산으로 건성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 정작 보아야 할 소중한 가치, 진심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살았다. 속도전에 떠밀려 살아왔다. 이제 삶의 숲도 찬찬히 보고 듣고 느끼며 가야겠다.



희망일기 - 놓아 버릴 때 찾아오는 행복

산림청장님, 초도순시를 산으로 오세요

중재를 지나 2.9킬로미터 지점에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 이미 중고개재를 지난 지도 거의 1킬로미터나 된다. 그런데도 그 표지판에는 수기로 중재 0.9킬로미터, 백운산 1.8킬로미터라고 쓰여 있다.


"산림청장님, 초도순시를 사무실로 가시지 말고 산으로 오십시오."라고 말하고 싶다. 산림청장이라면 백두대간을 타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산맥을, 산과 숲을 걸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산림청장을 잘 할 수 있을까. 현장에 와 보지 않고 어떻게 산림을 잘 챙기겠는가. 그야말로 탁상행정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산림청장이 백두대간 몇 구간만 종주해도 전체가 확 달라질 것이다. 가지 않는 곳까지, 공무원들이 지적 사항이 없도록 대비할 것이다. 언제 청장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현장으로 가는 기관장, 발로 뛰는 기관장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희망일기 - 아직도 어설픈 초보 종주단

왕초보 다섯손가락 종주단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거치는 단계가 있다고 한다. 대개 주말을 이용해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을 오르다 등산객이 되고, 그 다음엔 지방에 있는 명산을 찾아 산행을 하고, 그 다음에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하고, 자신감이 생기면 소구간을 타고, 그 다음에 백두대간 연속 종주에 도전을 한다고 한다.


이번에 구성된 다섯손가락 종주단은 그런 과정 없이 바로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했다. 그것도 연속 종주라는 최고 단계에 도전할 것이다. 석 대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한다. 석 대장은 종주를 해 본 경험이 있고, 박우형 부대장은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몇 차례 해 보았다고 한다. 나와 두 청년은 백두대간은 말로만 들어본 왕초보들이다. 배낭 싸는 것부터 배우고 있다.


대원들이 초보들이니 대장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방향을 확인도 해야 하고, 먼저 산장에 도착해서 야영장도 확보하고, 물도 뜨러 다닌다. 특히 명근 군과 나는 뒤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허겁지겁한다. 그래도 아직 도망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오늘로 183킬로미터나 걸었다고 한다. 4분의 1을 훨씬 넘었다고 한다. 내가 대견하다. 우리 대원들이 대견하다!



희망일기 - 힘들어도 전진

열 가지 즐거움

힘겹게 백두대간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산을 타다 잠깐 쉬는 그 맛을 느껴본 사람만이 아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넘어설 때 불어오는 바람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늘 땀을 뻘뻘 흘리는 홍석 군은 바람을 만나면 가슴을 열어젖히고 쉬곤 한다. 혹시 이 글을 보고 누군가가 백두대간 종주의 꿈을 포기할까 두려워 사족을 붙인다. 고통스러운 여정이지만 이 길에서 만나는 즐거움도 많다.



희망일기 - 속죄가 필요한 시대

어느새 가을!!!

아침에 일어나니 완연히 가을이다. 귀뚜라미를 비롯해서 가을벌레들이 울고 있다. 산은 어느새 가을 기운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낮엔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이미 가을을 알리는 여러 징후는 역력하다. 산속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훨씬 빨리 체감한다. 침낭이 무겁다고 놓고 온 것이 후회가 된다. 새벽에는 너무 서늘해 춥기까지 했다. 찬 기운이 몸에 사무친다. 다음 인편에 침낭을 부탁해야겠다.


대속을 생각하다

문득 대속에 대해 생각을 했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십자가형으로 대신 속죄했다고 믿는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가장 모독적인 방법으로 극형에 처해진 예수의 삶과 실천, 그 최후는 모든 인간을 죄스럽게 만든다.


속리산 이후 계속 생각에 잠겼다. 이 시대의 고민, 이 시대 사람들이 처한 고난, 유린되는 국토, 악화되는 삶의 질, 무너지는 경제와 더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 좌우 갈등과 사회적 대결, 소모적 공쟁, 공직자들과 사회적 리더들의 거짓말과 무책임, 퇴행하는 정치와 민주주의, 시대의 향방에 대한 무지와 편견 - 이 모든 것들을 곱씹어 보았다. 그것들을 한 지게에 짊어지고 그 어딘가 갖다 버릴 곳이 있다면 감히 그 지게를 한번 져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희망일기 - 기록하고 또 기록하라

도전의 경험을 공유하라

도래기재에 막 내려서려는데 김경재 이사와 양한모 씨가 마중을 나왔다. 백두대간 중에는 기름기를 많이 섭취해야 한다면서 오리고기를 준비해 왔다. 밥을 먹는 순간에도 김경재 이사는 대원들에게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나누어 준다. 산행에 서툴고 미숙한 우리들에게는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내용이다.


한편, 두 젊은이에게 기록을 하라고 당부를 한다. 다섯손가락 종주단 공식 보고서도 만들라고 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기록하고 메모를 하라는 조언도 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우리 대원들에게 특히 두 젊은이에게 강조를 했던 부분이다. 동영상을 맡은 김흥석 군, 사진을 맡은 홍명근 군, 두 사람은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한편 끊임없이 메모해서 나중에 책을 만들라고 했다.


사실 대학생 가운데 백두대간 연속 종주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험한 백두대간을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 만난 사람들에 대해 정리를 한다면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인내의 경험을 공유한다면 이 길을 걸어 보지 못한 많은 젊은이에게도 도전의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희망일기 - 잠 못 이루는 이기령의 밤

결단의 시간 앞에서

자다가 일어나 소변을 보러 나갔다. 잠깐 별이 보이기도 했다. 내일은 날씨가 맑기를 빌어 본다. 전전반측, 잠이 오지 않는다. 고단하면 오히려 잠이 잘 올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 고등학교 동창이자 오랜 친구인 김수진 교수가 이 깊은 산중까지 찾아오기로 했다.


그동안 무상 급식에 대한 주민 투표,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임, 그리고 곽노현 교육감의 비리 의혹 등에 관한 뉴스들이 이 산중에도 계속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이 없지만 젊은 대원들과 석락희 대장은 핸드폰으로 가끔은 실황 중계를 해 주었다. 문제는 뉴스가 뉴스로 끝나지 않고, 나와 연결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 새로운 사회 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또 다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가장 깊었고 실제로도 사회적 기업의 유통 사업인 희망수레 사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동시에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정치 투신에 대한 고민을 정리하는 것이다.


시대가 70년대나 80년대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과연 나만 혼자 깨끗하게 살아도 되는지, 내가 역사와 민족, 시대에 대해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닌지 고뇌가 깊어졌다.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할 때, 이미 이 점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걷는 걸음 하나, 보는 나무 하나, 딛는 돌 하나에도 나의 고민은 담겨 있었다.



희망일기 - 정치의 바다로

마침내 물속으로 뛰어든다

문득 어릴 때 멱 감고 놀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소 먹이러 가면 소는 산에 풀어 주고 아이들은 못에서 멱을 감으며 놀았다. 한번은 물이 얕은 곳에서 손으로 물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던 나를 동네 형들이 갑자기 깊은 곳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물을 엄청 먹었다. 익사 직전까지 갔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때 비로소 수영을 배웠다. 물론 개헤엄이다. 용기 있게 뛰어들어야 수영을 배울 수 있는 것을 동네 형들이 가르쳐 주었다.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은 어쩌면 죽을 각오가 필요한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정치의 바다에 첨벙 뛰어든다. 아니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며칠 밤낮으로 고민을 했다. 퇴로가 없다. 더 이상 고통 받는 대중의 삶을, 퇴행하는 시대를 그대로 보고 두지 말라는 내면의 소리를 거부할 수 없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수없이 거쳐 간 나무와 돌과 땅과 하늘이 험한 길로 나를 이끌었다. 천지신명이 명하는 대로 나는 나아간다. 하나의 제물과 희생이 되고자 한다. 기꺼이 응하련다.

 


희망일기 - 개발로 몸살을 앓는 산하

백두대간이 살아남을까?

닭목령에서 오전 9시경 출발했다. 30분이 채 안 돼 눈을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개발지였다.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저 아래 크고 작은 한옥이니 건물들이 보인다. 주변은 밭이다. 산등성이에서 진행 중인 공사 규모를 보자니 대형 건물이 들어설 모양이다.


이 산맥 한가운데 도대체 무슨 용도로 이런 개발이 이루어지는지 알 길이 없다. 그 개발지를 빙 둘러 백두대간 길이 나 있다. 앞으로 사람들은 산이나 숲이 아니라 그 건물들을 보면서 걸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주변조차 큰 나무들을 베어 버려 키 큰 관목들이 자라는 지역으로 변해 있다. 아마도 이곳마저 앞으로 밭이 되고 더 나아가 개발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관령 일대는 이미 목장들이나 밭투성이다.


대간 길이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



희망일기 - 산행의 정적이 깨지다

안철수 교수와 이메일을 주고받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 출마가 나에게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제 만난(萬難)이 앞을 가려도 갈 수밖에 없다.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백두대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듯이 이 선거에서 후퇴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안철수 교수도 이번 선거에 출마한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여야 정당 후보가 누구인지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나 안철수 교수는 좀 다르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유사한 우리가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은 상상이 안 가는 일이다. 어떡하든 서로 함께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묵고 있는 산장에서 이메일을 보냈다.


안 교수가 처한 여러 상황이나 본인의 생각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서로 협의는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메일을 보냈는데 바로 당일 답신이 왔다. 그동안 적지 않은 고민을 해 왔으며 귀경을 하면 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평정을

이제 조용히 앉아 지난 산행 일기를 쓰는 일도, 우리 다섯손가락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일도, 숙소 주변의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는 일도 불가능해졌다. 내면으로의 조용한 침잠도 이제는 과거지사가 되었다. 시끌벅적한 장터가 되었다.


태풍마저 온다는데 벌써 바람이 세게 분다. 빗방울은 굵다. 일정도 많이 바뀌었다. 원래 계획했던 코스보다는 조금 단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원래 입산 금지 구역과 그 주변을 과감히 빼고 오대산과 설악산까지 산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상황을 안 일행도 기꺼이 동조해주었다. 이미 우리는 운명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희망일기 - 미지의 세상으로

낙엽 하나

금강굴을 올라간다. 여러 차례 설악동으로 하산해 보았지만 오늘 처음으로 금강굴을 본다. 절벽 한가운데 어떻게 인간은 동굴을 만들고 거기에 이르는 길을 만들었을까? 비록 자연 동굴이라 하지만 그곳을 확장하고 사다리를 놓은 것은 인간이다.


어느 순간부터 개울이 흐르더니 한순간 큰 계곡으로 변한다. 물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계곡을 건널 때 보니 때 이른 낙엽이 흘러가고 있다. 낙엽 하나를 줍는다. 지난 봄 하나의 생명으로 생겨나 저 아래 뿌리로부터 흡입된 물을 마시며 자라나 따가운 여름 햇볕을 받으며 성숙하다가 이제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낙엽. 다른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이름으로 낙엽을 추모한다. 모든 생명은 존귀하며 모든 자연은 역할이 있는 법이다.


이제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모든 산과 나무들과 풀, 벌레들, 그 지독했던 비와 안개와 헤어져야 할 순간이다.


서울로 가는 길

비선대로 내려오니 희망제작소 유시주 소장, 윤석인 부소장을 비롯해 간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환영 플랜카드까지 만들고 대대적으로 환영식을 하겠다는 것을 말렸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 출마 결정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해도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비밀 작전을 방불하게 한다. 조용히 서울로 가야 한다.


종주단은 하산을 해 간단하게 씻고 속초항에서 함께 저녁을 했다. 이제 종주단 단원들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김흥석 군은 오늘 여기서 쉰 다음 바로 남쪽을 향해 걷는다고 한다. 나머지 다섯손가락은 바로 서울로 올라간다. 거기서 다시 김용삼 선생은 춘천으로, 박우형 부대장은 대전으로 내려갈 것이다.


산속에서 밤낮으로 함께 했던 동지들이다. 우리는 하나였다. 서로 돕고 의지했다. 그 힘으로 아무 사고 없이, 장마철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랑스럽다. 그리고 고맙다.


나는 일행과 헤어져 별도 차량으로 서울로 향한다. 차속에서 눈을 감아 보지만 잠 대신에 산속에서 지냈던 지난 49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어떤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쩌면 내 인생은 백두대간 종주 이전과 이후로 삶을 나누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삶, 스스로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불안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백두대간에서 만난 만산을 마음으로 오르내리면 불안조차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결정한 행로에서 닥칠 만난을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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