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게 될 거야

   
고빈
ǻ
담소
   
13800
2012�� 02��



■ 책 소개
힘들고 외롭고 지친 오늘 당신도 마주하게 될 겁니다
행복의순간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모습과 순수한 동물들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사진작가 고빈(이종선)의 첫 포토에세이. 인도와 티베트 등의 관광객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만을 찾아그곳 현지인들의 삶과 순수를 카메라를 통해 담아냈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국적인 모습이 아닌 그들을 끈기 있게 관찰하고 그들과 어우러지지않으면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이기에 사진마다 담아낸 이야기 또한 입가에 절로 미소가 띄워지게 만든다. 순수하고 신비한 순간의 감동이 가득 담긴사진들로 현재를 살아가며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행복을 전해준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자리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모른채 지내는 삭막한 우리에게 위로의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책에 담긴 에세이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은은한 감동과 함께 낯선 곳이지만 우리의 삶과닮아 있는 이야기를 통해 행복의 순간과 마주하길 바란다.

■ 저자 고빈
열일곱 살 때부터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사진 찍기를 시작했다. 중앙대학교사진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나왔으며,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출판과 광고 분야에서 사진가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자신이 좋아하는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으며, 1999년 인도를 여행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지금과 같은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인도를 중심으로 네팔, 티베트, 파키스탄 등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자연과 동물 그리고 인간의 조화로운 모습을 사진에담아내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10여 차례의 개인 전시회를 가졌다.

■ 차례
여는 글

1. 자유, 그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다 
힌두쿠시 계곡에서 만난 당나귀 이야기
묶여버린 발 | 고집불통 당나귀 
여행의 동반자 | 서로 다른 자유를 꿈꾸며 

2. 사랑, 길들이기와 길들여지기에 대하여 
푸리 해변의 시봄과 베나레스강변의 차멜리 이야기 
서로의 의미 | 두 개의 수레바퀴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 이별 여행

3. 자연,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하여
히말라야 계곡의 염소족과 물소족 이야기 
집시의 후예, 염소족 | 오체불만족, 현지인과 외지인 
히말라야의목자, 물소족 

4. 유혹, 그 비밀스런끌림에 대하여 
타르 사막에서 만난 파란소와 망고 피클 이야기 
밀레가, 만나게 될 거야 | 닐가이 | 카르마

5. 세상의 중심에서, 마음의 소리를듣다 
우주의 마음이라 불리는 티베트의 호숫가 이야기 
스와스티카卍 | 돌고 도는 것 
빛과 어둠의 사이 |마음 호수에 뜬 별





만나게 될 거야


자유, 그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다

힌두쿠시 계곡에서 만난 당나귀 이야기

서로 다른 자유를 꿈꾸며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가야할 길을 가늠해보았다. 찻길을 따라 멀리 돌아가는 길과 지름길이 보였다. 나는 가파른 지름길을 선택했다. 막상 길에 접어드니 보기와는 달리 중간 중간에 눈이 녹아 질퍽하니 무척 미끄러웠다. 네 발로 걷는 당나귀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고 내려갔지만 나는 몇 차례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신기하고도 기특한 것은 그럴 때마다 당나귀가 멈춰 서서 나를 기다려 준 것이다.


가파른 지름길을 힘겹게 내려오고 나서부터는 조금 멀더라도 찻길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단착오로 시간이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완만한 경사의 찻길로 접어들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평온한 마음은 얼마가지 않았다. 당나귀가 또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제 먹던 비스킷을 꺼내 당나귀에게 주었다. 비스킷의 힘은 또다시 당나귀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이미 꾀가 났는지 더 자주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점심을 먹고 길을 재촉했다. 당나귀는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꿀을 입술에 발라주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비스킷을 내놓으라며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힘겨운 비탈길이 끝나자 너른 초지가 펼쳐졌다. 나는 펼쳐진 풍경과 짐을 가득 진 당나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당나귀는 새순이 내뿜는 향기에 조금 흥분되어 있는 듯 했다. 나는 당나귀의 등에서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에 물린 재갈과 몸통에 매어진 마구들도 풀어놓았다. 당나귀를 풀어주기로 맘먹은 것이다.


나는 부드러운 당나귀의 콧등을 어루만지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네 맘껏 먹고 맘껏 쉬며 자유롭게 살아라!" 당나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풀 향기에 취해 정신없이 풀을 뜯기 시작했다.


완만한 경사길을 내려와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는 차이카나 같은 숙소도 없었다. 대신 마을 공회당 앞에 작은 상점에서 방 한 칸을 빌려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떠들썩함에 밖으로 나가보니 어제 풀어준 당나귀가 공회당 앞에 떡하니 성 있는 것이었다. 양치기 소년이 초원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을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나서서 내가 주인이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나는 이미 당나귀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주인이 아니었다. 그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상점 주인에게 물었다.


"만약, 주인이 안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요?"

"저 양치기 소년이 데리고 왔으니 소년이 데리고 가지 않겠어요?"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바에는 착해 보이는 양치기 소년과 함께 있는 것이 당나귀에게도 더 좋을 것 같았다.


누구나 영원히 함께일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당나귀가 내 것이 되었고, 또 그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 당나귀가 이젠 소년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와 당나귀가 만남에 비해 너무 허술하게 헤어졌다는 생각이 되었다. 나는 상점에서 초콜릿 비스킷을 사서 당나귀 입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녀석의 부드러운 콧잔등을 다시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달콤한 작별 선물이 되기를 기대하며.


살구꽃

신기하다. 소녀의 천진하고 맑은 웃음이 살구꽃과 닮았다. 깔깔대며 활짝 웃다가도 수줍어 고개를 숙이는 모양까지 꼭 닮았다. 살구꽃은 소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힌두쿠시 계곡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고 흩날린다.


우리나라에서 벚꽃이 한참 피어날 무렵인 4월과 5월 사이, 힌두쿠시 계곡에는 살구꽃이 피어난다. 살구꽃은 언뜻 보면 벚꽃 같이 생겼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꽃이 더 크고 풍성하다. 살구꽃은 벚꽃보다 더 오랫동안 피어있고 비바람도 잘 견뎌낸다. 이 꽃이 저물면 곧 여름이 시작된다. 그리고 꽃 한 송이가 피었던 자리마다 어느덧 살구가 익어간다.




사랑, 길들이기와 길들여지기에 대하여

푸리 해변의 시봄과 베나레스 강변의 차멜리 이야기

두 개의 수레바퀴

삼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태양 사원이 있었다. 피라미드 모양의 커다란 건축물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꼭 한 번 가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태양 사원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나는 서둘러 채비를 했다.


집을 나서는데 시봄과 마주쳤다. 시봄은 나를 보더니 늘 그렇듯이 내 뒤를 따라왔다. 중간에 버스를 타야 해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버스를 타지 않더라도 문제였다. 그 전에도 개와 함께 여행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다른 개들과 영역 다툼이 벌어지는 바람에 골치가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봄은 내가 돌아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따라왔다.


신전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왠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동물은 안 된다더니 신전 앞 시원한 돌바닥에는 배를 깔고 낮잠을 자는 개들이 지천이었다. 그 옆으로는 소와 염소들이 한가롭게 풀까지 뜯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주위를 돌아보는데 사원을 둘러싼 울타리에 커다란 구멍들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구멍으로 사람들과 소, 개, 당나귀 등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어쩐지 너무나 인도다운 광경이라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시봄과 나는 거대한 수레바퀴 조각 앞에 걸음을 멈췄다. 삼사라라고 하는 이 조각은 윤회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 수레바퀴 앞에 서면 전생을 볼 수 있다는 설도 있었다. 나는 시봄과 함께 수레바퀴 앞에서 우리의 인연을 생각했다. 나와 시봄이 각각 하나의 수레바퀴였다.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구르며 생을 거듭한다. 그러다 나와 시봄이 만났고, 다음 생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또 서로에게 이끌릴 것이다. 그것은 멈추지 않고 굴러가는 둥그런 수레바퀴의 형상,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이 다 설명되는 것 같았다.


태양 사원에 다녀온 후로 시봄은 더욱 성숙해졌다. 사람들의 관계나 다른 개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았다. 내가 따로 먹이를 챙겨 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는 법도 터득했다. 동네 사람들은 시봄을 특별한 개로 여겼다. 앞으로 시봄은 해변의 개들 사이에서 새로운 리더가 될 게 틀림없다고들 했다. 그리고 시봄도 내게 길들여지는 것보다는 이곳 바닷가에 길들여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게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다른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다음 목적지는 베나레스(바라나시)였다. 항상 순례자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로 넘쳐나는 곳, 그곳은 인도 최고의 성지였다. 나는 시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녀서 헤어짐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별은 항상 어색하기만 했다. 짐을 들고 나서는데 여전히 시봄이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시봄에게 함께 갈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이번에는 시봄이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우두커니 멈춰 서서 떠나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사이클릭샤에 올라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개, 시봄은 뒤에 남았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여행지로 향하며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말없이 다짐했다.


신의 윙크

여행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 마음 한 편이 텅 빈 것만 같았다. 사진도 여행도 삶도 사랑도 모두 덧없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인도를 떠나기로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짐을 꾸려놓고 마지막으로 갠지스 강변을 걸었다.


"아저씨, 사진 찍어주세요!"

"그래, 저 흰 개와 같이 찍자꾸나."

 

소년이 개를 데리고 와서 포즈를 취했다. 맑은 눈빛을 지닌 소년이었다.

찰칵!- 수동카메라(SLR 카메라)는 사진이 찍히는 순간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진을 현상했다. "하하, 이 사진 재미있네요. 개가 외눈박이인가 보군요?" 현상소 직원이 말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 개는 분명 외눈박이가 아니었다. 아마도 사진이 찍히는 순간, 눈에 먼지가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 한쪽 눈을 감았던 것일까?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모든 순간, 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매 순간들이 신의 윙크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하여

히말라야 계곡의 염소족과 물소족 이야기

히말라야의 목자, 물소족

마을에는 격주마다 하루씩 장이 섰다. 장터 구경을 하다 숲에서 본 바카르왈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의 이름은 야신이었다. 야신은 구자르 족인 그롬센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롬센이 사촌 매형이라고 했다. 이렇게 두 부족이 결혼으로 맺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했다.


그날 나는 야신과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그롬센과 그의 아내 그리고 짐꾼으로 데리고 온 노새도 함께였다.


그롬센의 집 근처에는 여섯 가구가 모여살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가축이 집 안에서 같이 산다는 점이었다. 물론 같은 방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이 집은 현관에 들어섰을 때 사람은 왼쪽 방, 동물은 오른쪽 방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방에는 물소와 개, 닭을 재운다고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왜 동물을 집 안에서 키우죠?"

그롬센은 잠시 뜸을 들였다.

"추위 때문이에요. 하지만 단순히 추위 때문이라고 말하기 힘든 긴 역사가 있어요."

나는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구자르 족은 원래 태양신을 숭배하는 아시아 북방의 떠돌이 유목민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가뭄 때문에 초지가 메말라버리자 가축들을 데리고 물을 찾아 세상 여러 곳으로 떠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구자르의 한 부족이 물을 찾아 인도에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구자르 족은 인도에 정착해 수백 년 동안 물소를 키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인도에도 가뭄이 찾아왔다. 그들은 다시 동물들을 데리고 물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물소를 데리고 히말라야로 향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거대한 만년설을 만났다. 만년설은 봄과 여름철에 조금씩 자기의 몸을 녹여 대지를 적셨다. 겨울이 오면 눈이 내려 만년설 위에는 더 많은 눈이 쌓였고, 다시 봄이 오면 그 눈이 조금씩 녹아 계곡을 적셨다. 그들은 그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구자르 족이 히말라야에서 물소를 키우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들을 물소만큼이나 미련하다고 손가락질 했다. 그래도 구자르 족은 물소들을 데리고 히말라야로 향했다. 히말라야에 겨울이 오자 물소들이 얼어서 죽어갔다. 보다 못한 구자르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오두막 안에 물소를 들여 놓았다. 사람들이 구자르 족이 물소를 집 안에서 키운다며 더러운 부족이라고 놀려댔다. 그래도 구자르 족은 상관하지 않았다. 물소는 따뜻해서 좋았고, 사람들은 겨울 내내 물소 젖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얼어붙은 땅에선 풀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물소는 겨울 동안 나뭇잎을 먹었다.


그롬센의 집에 묵으면서 나는 이상한 광경을 또 하나 목격했다. 그 집엔 쌀독이 하나 있었다. 그롬센과 그의 아내, 아이들까지 합세해 아침과 저녁으로 쌀독에 대고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롬센, 왜 당신 가족들은 쌀독에 대고 기도를 하지요?"

"아, 이건 자아드 풍크예요."


그가 설명해준 자아드 풍크는 치유를 위한 일종의 마술적인 의식이었다. 동물이 병들면 주인은 개울가에 가서 눈을 감고 손에 잡히는 돌멩이 하나를 집는다. 그 돌멩이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쌀독 속에 넣어둔다. 그리고 매일 병이 치유되게 해 달라고 쌀독에 대고 기도를 한다. 만약 동물의 병이 나으면 쌀독에 들어있는 쌀로 신성한 음식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러한 마술적인 의식은 동물뿐 아니라 주로 어린아이가 아플 때 행해진다고 했다.


그들은 자아드 풍크와 같은 마술적 방식에 천연 약재를 더불어 사용하는 치료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과학적인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자연에서 살며 얻은 삶의 지혜 같은 것이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삶은 늘 고단하다. 하지만 이곳 구자르와 바카르왈 사람들은 그것을 고단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자체가 그냥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카슈미르와 숲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숲의 밤은 함부로 할 수 없는 높고 엄숙함으로 고요해져 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따듯하게 불을 지핀 오두막에서 물소가 바스락 바스락 마른 나뭇잎을 씹는 소리처럼 정겹게도 깊어가고 있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마음의 소리를 듣다

우주의 마음이라 불리는 티베트의 호숫가 이야기

마음 호수에 뜬 별

사원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동물들과 함께 보냈다. 내가 언덕 위에서 무심히 마나사로바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동물들은 슬그머니 내 곁에 다가와 나와 함께 호수를 바라보곤 했다. 그들은 내가 심심하지 않도록 항상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내가 동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도 이곳을 다녀 온 다음부터였다. 그들과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영혼의 무게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여행이었다.


티베트 하늘에 밤이 오면 나는 호숫가로 나가 별을 바라보았다. 동자승은 내가 별을 보러 나가는 것을 알고는 내게 와서 주의를 주었다. "밤에는 늑대가 나와요. 멀리 가지 마세요."


그날 이후, 별을 보러 나갈 때면 사원의 개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마치 나와 동자승의 이야기를 듣고 뜻까지 다 알아들은 것 같은 행동이었다. 정말 이상하고도 신통한 일이었다. 우리는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면 호숫가 저 멀리까지 가서 별을 바라보곤 했다. 늑대가 나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개들이 나를 지켜 주리라는 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 생겨버린 까닭이다.


나는 호숫가에서 별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우리 인간도 그리고 개와 염소와 당나귀들도 모두 별이라는 것을. 영혼을 지닌 모든 것은 결국, 별에서 와서 별이 되어 돌아간다는 것을.


내가 티베트로 여행을 온 것은 오지탐험을 하기 위해서도,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순전히 별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내가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바로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늘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것은 때론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때론 헤어진 연인에 대한 서운함이기도 했고 때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누구이고 우주는 무엇인가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학적인 물음들이기도 했다.


나는 이 먼 곳으로 별을 보러 와서 정작 별은 보고 있지도 않았다. 깊이도 철학도 없는 철학적 질문을 앞세우고, 별을 보고 있지 않는 별 보는 나의 모습에 심취된 것뿐이었다. 그리고 진짜 별이 거기에 있음을 느꼈다. 나는 처음인 것처럼 다시 별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별을 보고 있다는 그 사실조차 잊었다. 그러자 내가 거대한 호수가 되어 하늘의 저 수많은 별들을 품은 것 같았다. 또한 그 무수한 별들처럼 나도 하나의 별이 된 것 같았다.


사라진 치즈


라다크 지방을 여행할 때였다. 내가 도착한 곳은 고작 세 가구만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잿빛 고양이 한 마리도 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양이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들판에는 꽃들이 활짝 피어있었고, 아이들은 사진을 찍으며 마냥 즐거워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르고 붙들려온 고양이는 처음부터 계속 심통 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아마도 꽃가루 때문인 것 같았다. 사진을 여러 장 찍었지만 고양이 표정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착하지? 우리 한번 멋지게 찍어보자."


내 말을 알아들었던 것일까? 고양이는 이렇게 멋진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비상식량으로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치즈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