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아름다운 기다림

   
최정은, 김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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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7��



■ 책 소개
파티의 시작 샴페인부터고급스러운 보르도 와인까지 와인 총망라!

지역별, 와인별포도 품종을 비롯해 포도 재배부터 블렌딩, 숙성까지 만드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술인 와인을가장 맛있게 마시는 방법이나 와인별 어울리는 요리를 통해 풀밭에서 가볍게 마시는 와인부터 성에서나 어울리는 고급 와인의 식문화를 공개하고 있다.그 외에도 와인을 즐기다 보면 반드시 접하게 되는 코르크나 글라스 등에 대한 정보도 소개되어 있다.

■ 저자 
최정은
1990년대 프랑스 문학을공부하면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포도주 수입 업체에서 홍보 마케팅을 했다. 그러다 와인 공부를 위해 무작정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프랑스 보르도2 국립대학에서 테스팅 디플로마(D.U.A.D) 과정을 졸업한 후, 샤또 브라네르 뒤크뤼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한국인으로선 최초로그랑 크뤼 클라세 포도원에서 포도재배와 양조기술을 배웠으며, 2004 Concours General Agricole Paris 와인부문심사위원을 지냈다. 현재,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와인학을 전공하며 보르도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포도주 전문 수입업체 크리스탈 와인컬렉션에서 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다.

김민송
영문학 출판사와 어린이 출판사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프랑스 보르도 국립대학에서 프랑스어공부를 하면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WSA의 INTERMIDATE 과정을 수료했으며, 와인 관련 책을 번역했다. 현재, 어린이 책의 출판기획 및 집필과, 다양한 장르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역사인물과 함께하는 교과서 원리캠프: 10. 미술』 등이, 옮긴 책으로『돈키호테: 구스타브 도레의 그림과 함께 읽는』『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천재들의 위대한 발견』『엄마 할머니가 이상해요』『몽키비즈니스』『굿 리더십』 등이 있다.

■차례
1부 여행의 시작을 도도하게 축하하는 샴페인의 고장, 샹빠뉴
2부 소외된 화이트 와인의 재발견,알자스
3부 농부들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와인 산지, 부르고뉴
4부 정열과 자유 그리고 무형식의 와인 벨트, 론에서프로방스까지
5부 와인의 기본을 지키는 고장, 보르도
6부 세상 모든 와인이 꿈꾸는 무대, 파리style=BACKGROUND-COLOR: #ffffff>





와인, 아름다운 기다림


여행의 시작을 도도하게 축하하는 샴페인의 고장, 샹빠뉴

샹빠뉴, 축하 인사의 영광을 독차지한 주산지

썅빠뉴!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시골. 이쯤에서 눈치 빠른 사람들이라면 이 지역을 설명할 아주 정확한 단어를 생각해냈을지도 모른다. 바로 샴페인이다. 사람들은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부터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리에 오르는 순간까지, 무언가를 기념할 만한 곳에서는 샴페인잔을 높이 든다. 그러니 샴페인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독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성급한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로 요약하면, 썅빠뉴는 샴페인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가까운 사람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 잔씩 마실 만큼 우리 생활에도 깊숙이 들어온 샴페인이 바로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샴페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비슷한 맛을 낸다 해도 썅빠뉴 지방이 아닌 곳에서 생산되면 샴페인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샴페인, 너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

샴페인과 함께 식사를

우리는 와인을 마실라치면 그와 어울리는 음식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한다. 교과서 공식처럼 머리에 박혀 버린 상식도 있다.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 육류에는 레드 와인! 너무나 정형화된 논리를 외우고 있는 우리에게 여행 중에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그들은 와인을 고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도, 식사에 맞춰 와인을 바꿔 마시지도 않았다. 한 종류의 와인으로 식사 내내 다양한 음식들과 즐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다양한 요리와 어울리는 무난한 스타일의 와인들이 시장에 나온 탓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바쁜 현대인들에게 와인을 골라 마시는 여유는 오히려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도 예전 같지 않게 식사가 간편해지고 있다.


샴페인도 식전부터 식후까지 전 식사에 걸쳐 마실 수 있는 와인이다. 샴페인은 식전에 마시는 술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샴페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기 바란다. 샴페인의 기포만큼 다양한 매력들에 홀딱 반하게 될 것이니!


신비하고 아름다운 지하 까브를 찾아서

세계에서 처음 샴페인 회사가 생기다

썅빠뉴 지방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얹고 있는 샴페인을 생산하는 회사는 에뻬르네, 랭스 등지에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지하 까브가 아주 아름답다고 알려진 뤼나르를 방문하기 위해 랭스 역에 내렸다. 뤼나르는 1729년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샴페인 회사다. 이렇게 일찍 샴페인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유명한 철학자 티에리 뤼나르였다. 샴페인의 아버지 동 빼리뇽과 수도원 생활을 같이 한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샴페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아봤고, 샴페인의 밝은 미래를 그의 가문이 열어가길 바랐다. 그의 선각자적인 정신을 이어받아 조카 니콜라 뤼나르가 이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이후 뤼나르 가문에서 생산된 샴페인은 세상 어느 철학보다 심오한 맛과 향으로 명성을 얹었다. 또한 뤼나르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까브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았다.


땅속 깊은 곳에서의 시간 여행

이 까브는 24m를 파 내려간 1차 까브와 34m를 더 내려가야 하는 2차 까브로 이어져 있는데 주로 2차 까브에서 저장 숙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원래 이 까브는 와인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석회암을 캐내면서 형성된 동굴들을 서로 연결시킨 것이다. 이 공간 안에서 시간은 광포함을 휘두르지 않았다. 할퀴거나 찢거나 부러뜨리지 않고 모든 것을 고요하게 잠재워 놓았다. 땅속으로 깊이 내려왔으니 썩은 냄새를 가득 피울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샴페인 시음의 달콤함

시음을 위한 방에 들어서자 18세기부터 사용한 병이 진열된 것이 보인다. 우리나라 사대부 가정에 곱게 드리워진 마나님의 12폭 치마폭이 생각났다. 보르도의 병보다는 뚱뚱하고 둔해 보였지만 깊은 위엄이 느껴졌다. 병을 입으로 불어서 만들 당시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병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뤼나르에서 최고로 자랑하는 4가지의 샴페인을 맛볼 수 있었다. 블랑 드 블랑 뤼나르는 밝은 황금빛 색깔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작고 섬세한 기포 하나하나가 톡톡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으로 마신 뤼나르 로제 샴페인은 얇게 슬라이스한 연어 색을 띠고 있었다. 사랑 고백을 받고 콩콩 뛰는 어린 아가씨의 수줍은 마음을 연상하게 할 만큼 풋풋함이 느껴지는 향과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10여 년의 세월을 기다려온 뤼나르 로제 1996년산과 동 뤼나르 1996년산의 병이 열렸다. 1996년은 프랑스 전 지역의 포도 작황이 우수한 해였다. 모든 썅빠뉴의 샴페인이 그렇듯이, 뤼나르 역시 여러 해에 걸쳐 만들어진 샴페인을 섞어 만든다. 그러나 1996년에는 그 해 포도만으로 빈티지 샴페인을 탄생시켰다. 좀 전에 다녀온 지하 셀러의 감동이 한 잔의 샴페인으로 이어졌다. 1996년산 동 뤼나르 로제는 기품 있는 샴페인의 맛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치 명장의 손길에서 나온 귀한 요리를 맛본 듯 긴 여운을 주었다.



소외된 화이트 와인의 재발견, 알자스

동화 마을 리끄위르, 역사를 살다

알자스 언덕에는 포도밭이 있다

알자스 지방의 가장 유명한 와인 마을 리끄위르, 그곳에서 우리는 오래 품어 왔던 알자스에 대한 이미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푸른 벌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는 빨간 지붕을 얹은 너무나도 예쁜 집들이 푸른 언덕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성당에서는 시간마다 긴 여운을 남기는 종소리를 울렸다. 그런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단 하나 있었다. 푸른 언덕을 뒤덮고 있는 것이 포도나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지평선 너머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까마득히 먼 그곳에서도 굵은 포도알들이 익어가고 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만큼 포도밭은 광활했다. 그 끝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규모에 대한 상상은 한없이 부풀어 올라 현기증이 났다. 누구의 손이 닿아 이 거대한 밭을 일구고, 포도 수확을 할지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혹시 저 아래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작품일까?


화이트 와인 좋아하세요?

화이트 와인, 이럴 때 마셔라!

붉은 레드 와인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글라스와 캉캉 춤을 추는 아름다운 아가씨의 치마처럼 겹겹이 다른 맛과 향을 내는 레드 와인의 매력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화이트 와인 또한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있다. 무엇을 해도 꼬이고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불을 뿜으며 한판 싸움을 벌일 것 같다. 그럼 알자스의 리슬링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마실 것을 권한다. 간단한 음식과 먹어도 좋겠지만, 상큼하고 달콤한 화이트 와인은 그냥 마셔도 아주 좋다. 한 모금의 와인이 입술을 적시고 목을 타고 내려갈 때면 우울했던 기분을 모두 잊게 될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너무나 알자스적인 것들

오래된 것들은 스스로 빛을 낸다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야 했던 우리는 하나라도 더 눈에 박아두고 싶어서 이 동화 같은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그때 은은한 불빛이 퍼지는 한 식당에 아주 커다란 창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 테이블에는 노부부가 창틀에 손을 얹고 알자스의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불빛 때문이었을까, 편안해 보이는 부부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늦은 오후의 한 순간을 그 앞에 있었던 것뿐인데 아주 길고 긴 이야기를 들은 느낌이 들었다.


카메라 셔터를 서너 차례 누른다. 찰칵, 찰칵, 찰칵!


"어르신, 식사를 하시는데 카메라를 불쑥 내밀어 죄송합니다."

"아니죠, 고마운 건 저희지요, 이렇게 사진을 찍어 주고……."


노부부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너무 정겨워 마음이 짠하다. 낯선 이의 카메라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람의 고결함이 느껴진다. 그때 부부가 앉아 있는 반대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낡은 농기구들이 보인다. 바로 저것들이었구나!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전해 준 것은 수백 년 동안 농부의 손에서 그 아들의 손으로 이어져 온 농기구들이었다. 때로는 거친 자연과, 때로는 험난한 역사와 맞서 알자스의 포도밭을 지킨 저 농기구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잡은 것이다.


피와 땀으로 와인을 지켜내고 그것을 겸허하게 즐기는 알자스의 오늘을 보여 주는 이 장면이 가슴에 걸려 두고두고 내려가지 않는다.



농부들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와인 산지, 부르고뉴

땀방울을 포도송이로 바꾸는 부르고뉴

프랑스에는 와인과 연결을 짓기 전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지역이 있다. 바로 보르도와 부르고뉴이다. 보르도는 프랑스 서부를, 그리고 부르고뉴는 동부를 굳건히 지키며 프랑스를 와인의 나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 두 지역은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기로 유명하다. 와인의 품종은 물론이거니와 토양, 그리고 포도원의 규모까지 무엇 하나 비슷하게 맺어줄 만한 것이 없다. 비교적 대규모의 와인을 생산하는 샤또와 협동조합 중심으로 와인을 생산하면서 전문적인 유통망을 통해 와인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보르도와는 달리 아직도 부르고뉴는 땅 한 뼘 크기의 포도밭을 직접 가꾸며 수백 년을 이어오는 가족 중심 생산자들이 많다. 보르도의 포도밭이 대귀족의 땅이라면, 부르고뉴는 농부의 땅인 것이다.


그래서 부르고뉴는 농부들이 수확을 거두는 가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다. 꼬뜨 도르(황금의 언덕)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포도밭이 노랗게 물든 모습이 장관을 이루며, 피땀 흘린 농부들의 거친 손에서 굵은 포도알들이 하나씩 수확되는 순간은 무한한 감동을 준다.


황제 와인의 땅을 찾아서

부르고뉴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샤블리라는 마을에서 시작하여 섬세하면서도 힘찬 그랑 크뤼 와인이 생산되는 꼬뜨 드 뉘, 석회질과 화석이 풍부하여 고급 샤르도네 생산에 좋은 꼬뜨 드 본, 깔끔하고 신선한 레드와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는 꼬뜨 샬로네즈와 마꼬네, 이렇게 다섯 개의 주요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자동차를 타고 포도밭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지중해와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광활하게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예전엔 이곳이 진짜 바다였는데, 포도 바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래서 흙을 갈다 보면 아직도 굴, 조개류의 화석 등이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샤르도네의 고장, 샤블리

샤블리 마을에서는 샤르도네라는 한 가지 품종만 가지고, 샤블리라는 이름의 와인을 만든다. 샤블리 와인은 생굴과 환상의 궁합을 이루는데, 자연의 재료와 어우러지는 순수한 샤블리의 매력은 어떤 고급 요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다음 여행길엔 샤블리 언덕에 가방을 내려놓고 생굴과 시원한 샤블리네 한잔을 꼭 마시리라.


부르고뉴의 샹젤리제, 꼬뜨 드 뉘

부르고뉴는 와인 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황제의 와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황제의 와인을 만드는 품종이 바로 피노 누아다. 꼬뜨 드 뉘 지역은 바로 이 피노 누아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와인 로마네 꽁띠도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세계를 호령한 나폴레옹이 사랑한 샹베르땡의 와인도 이곳의 마을에서 생산된다. 피노 누아! 포도의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정찬과 어울리는 1순위 와인 산지, 꼬뜨 드 본

꼬뜨 드 본은 화이트 와인의 생산으로 명성이 높은 지역이다.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생산지로는 깊고 우아한 매력의 몽라쉐와 파워풀한 향과 묵직한 맛의 뫼르소, 그리고 품위가 느껴지는 꼬르똥 샤를르마뉴를 들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생선이나 닭, 돼지고기로 만든 다양한 음식들과 잘 어울려 정찬 요리에 1순위로 꼽히고 있다.


부르고뉴의 등급 체계

프랑스나 이탈리아, 독일 같은 유럽의 포도밭은 지방마다, 마을마다 심지어는 마을 안의 작은 밭고랑 하나 사이를 두고도 미세하게 기후나 토양이 다르다. 이런 작은 차이는 포도 품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포도나무를 기르기 위한 토양과 기후 조건 등 모든 자연 환경을 한 마디로 떼루아라고 부른다. 물론 와인의 품질은 사람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포도 재매에 얼마나 적합한 떼루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부르고뉴의 와인 등급 체계는 이 떼루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포도나무가 자라는 자연적 환경에 기본을 두는 것이다. 바둑판처럼 나뉘어진 부르고뉴 산지를 나누어 등급 체계를 주었는데, 1861년 꼬뜨 도르 지역에서 지금의 등급 체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다소 복잡한 부르고뉴 등급 체계를 우리의 농작물 산지에 빗대어 설명하면 이렇다. 경상북도는 사과가 아주 유명한 고장이다. 그중에서도 대구 지역의 사과가 맛이 더 좋다. 특히 대구 달서구의 김씨네 과수원 사과가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김씨가 농사를 잘 지은 탓도 있겠지만 김씨네 과수원은 배수가 잘 되어 비가 좀 많이 와도 뿌리가 썩지 않고 건강하게 열매가 잘 열리고 햇볕도 잘 들어 사과가 골고루 잘 익는 지형적 특성이 있다. 그렇다면 같은 대구 지역 사과라도 김씨네 사과 밭에서 나온 사과가 상위의 등급을 받아야 할 것이다. 부르고뉴의 와인 등급 체계도 이와 비슷하다. 좋은 와인일수록 좀 더 좁은 단위의 마을 이름이 레이블에 붙게 되는 것이다.



와인의 기본을 지키는 고장, 보르도

포도 향 가득한 성지 보르도로 가다

보르도 와인이 더 고급스러워야 하는 이유

와인은 사치품이라는 생각을 뿌리 깊게 심어놓은 것은 보르도 와인이다. 보르도 와인의 라벨을 고급스럽게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샤또의 모습은 함부로 근접하지 못할 세계라는 경외감을 갖게 만든다. 또한 보르도 와인은 요란한 장식으로 자신을 쳐다봐 달라고, 또 선택해 달라고 조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웬만한 사람들의 관심은 귀찮다는 듯이 작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오롯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도도한 와인 앞에서 그만 기가 죽고 만다.


일부 성급한 사람들은 얘기한다. 보르도의 명성과 영화는 이제 끝났다고. 막대한 투자를 하는 미국과 호주, 칠레 와인에 밀려 골방 할아버지 신세가 됐다고. 더 결정적으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빛이 나는 보르도 와인의 진가를 알아보기에는 세상에 너무 빨리 흐른다고…….  그렇지만 아직 와인이라는 문화를 접해 본 사람보다는 와인을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더구나 보르도 와인을 벌써 놓아 버리기에는 우리가 마신 세월은 너무 짧다. 시인 뽈 베를렌은 "우리 앞에 놓인 와인들은 저마다의 풍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기구, 과학적인 연구가 만들어 낸 이상적인 와인일지라도 보르도 와인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보르도! 보르도라는 단어만으로도 애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사람들이 많다. 가격이 높고 낮건 보르도라는 이름이 주는 믿음과 순수함, 향수 같은 것들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보르도 와인은 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다른 절대적 기준을 끌어와 비유할 필요가 없다. 태양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던가. 보르도 와인은 어떤 것 덕분에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체 발광한다. 그러나 이 같은 선입관 때문에 놓쳐 버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보르도 와인이야말로 와인의 기본이라는 사실이다. 전례 없이 요동치는 와인의 세계에서도 유행을 타지 않으며 그 중심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쓰러지지 않는다. 보르도 와인이 더 고급스러워야 하는 이유, 여기 있는 것은 아닐까.


보르도 시내에는 와인이 없다

비행기로 처음 보르도 공항에 도착하면 아담한 여자 키 높이만한 모형 와인병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다지 촌스러울것도 세련될 것도 없는 그저 와인병 그대로다. 그래도 그 병을 보면 여기가 포도주가 생산되는 지역이구나 하고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시내에 들어가면 그 마저도 없다. 프랑스에서 구멍가게를 칭하는 따박이라는 가게에 들어가야 그제야 포도밭 풍경을 담은 기념품과 엽서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보르도를 생각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시내를 걸어 보아도 와인 모양의 어떤 구조물도, 화려한 와인 가게도 없다. 어쩌면 이게 바로 이들 삶 속에 녹아 있는 와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드러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채로 늘 그들 삶과 함께 있었던 것!


세계의 중심으로 서다

보르도가 세계 와인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 것은 오랜 경험의 농부들과 중간상인인 네고시앙의 노력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보르도만이 지닌 천혜의 자연 조건을 빼놓을 수 없다. 행정구역상 아끼뗀느에 속하는 보르도는 북위 45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포도나무 재배에 가장 이상적인 위도라고 한다. 서쪽으로는 대서양이 있고 맥시코 만류에 의해 온화한 기후를 형성하고 남쪽으로는 랑드라는 거대한 숲과 유럽에서 가장 높은 자연 모래언덕 뒨느 삘라가 있어 강한 바람을 막아 주는 안전지대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하류의 지롱드 강, 상류의 가론 강과 도르도뉴 강은 자동적인 온도 조절 장치의 역할을 하여 포도밭의 급격한 온도 변화를 막아 준다.


그러고 보니 보르도의 포도나무를 품고 있는 토양 또한 궁금하다. 만약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땅, 흙의 색깔을 그려보라 하면 거의 비슷하게 색깔을 넣을 듯 싶다. 황토색, 우리가 생각하는 땅의 색깔이다. 그런데 만약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어린아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회색부터 황토색, 검붉은색 등 다양한 색깔이 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메독 지역은 굵은 자갈밭에 석회-점토질이 섞여 있어 희끗희끗 석회질이 눈에 띄일 정도이고 생떼밀리옹 지역은 점토질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메독 지역과는 육안으로도 확연히 구분됨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토양의 색깔만 보아도 지역 구분이 확실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토양 자체가 다양하니 포도의 맛 또한 다양하고 어떠한 토양에 어떠한 포도 품종이 맞을지를 오랜 경험으로 찾아내게 되었다. 보통 레드 품종으로는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과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을, 화이트 품종으로는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 뮈스까델을 주 품종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르도는 크게 메독과 그라브, 생떼밀리옹과 뽀므롤 그리고 프롱삭, 이렇게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밖에 달콤한 와인이 나오는 소떼른과 바르삭 지역이 있다. 이외의 일반급 지역들은 보르도와 보르도 슈페리어와 꼬뜨 드 보르도 같은 가론 강과 도르도뉴 강 우안을 따라 늘어서 있는 꼬드 지역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식탁에 오르는 포도의 종류도 거봉이나 머루 포도냐에 따라 맛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듯이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종류에 따라 와인의 스타일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와인을 고를 때 만들어진 품종을 우선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에서 전통적으로 만든 와인들은 보통 레이블에 포도 품종에 대한 표기를 하지 않으나 프랑스 남부의 와인들과 알자스 지역, 신대륙의 미국, 호주, 칠레 등지의 생산자들은 레이블에 포도주를 만든 품종을 명기하여 소비자들에게 친절한 안내를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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