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닷가 길을 걷다

   
신정일
ǻ
부엔리브로
   
15000
2010�� 08��



■ 책 소개
부산-고성-두만강녹둔도-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되는 동해 바닷가 길, 
그 길에 발을 디뎌 호흡하자.


■ 저자신정일
문화사학자. 도보여행가. 1980년대 중반부터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1989년부터 문화유산 답사를 기획 진행하여,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한국 10대 강을 도보 답사하였고, 우리의 옛길인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그리고400여 개의 산을 발로 호흡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우리땅걷기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차례
첫 번째 구간
첫째 날 해운대 → 임랑해수욕장
둘째 날 임랑해수욕장 →방어진항
셋째 날 방어진항 → 경주 입성
넷째 날 경주 양남면 → 포항시 대섬
다섯째 날 포항시 장기현 → 포항호미곶
여섯째 날 포항 호미곶 → 두호동 포항창
일곱째 날 포항 흥해 → 영덕 원척리
여덟째 날 영덕 원척리 →대진해수욕장
아홉째 날 대진해수욕장 → 고래불해수욕장

두 번째 구간
열째 날 경북 울진 → 덕신리
열하루째 날 산포리 신망양정 → 강원도삼척
열두째 날 삼척 갈남리 → 동막리 대진항

세 번째 구간
열셋째 날 삼척 죽서루 → 묵호항
열넷째 날 묵호항 → 강릉경포대
열다섯째 날 강릉 경포대 → 쌍한정

네 번째 구간
열여섯째 날 주문진항 → 양양
열일곱째 날 속초 설악산 → 고성송지호
열여덟째 날 고성 화진포 → 통일전망대

걸어가고픈 땅, 북녘
고성, 화담 서경덕의 자취를 더듬다 | 해금강, 바다에서 만나는 만물상| 삼일포, 신선의 발길을 3일이나 묶어 놓은 선경 | 금강산, 산의 재자才子일만이천 봉 | 단발령, 금강산 전경을 마주하고 있는 고개 |시중호, 모래톱에 피는 해당화 | 통천, 인어를 낚던 바다마을 | 안변 학포, 아름다움으로 중국 절강(浙江)의 서호(西湖)에 견줄 만하다 |원산, 관북지방 해륙 교통의 요충지 | 명사십리(明沙十里), 붉은 해당화 꽃주단 | 영흥만, 설화와 전설로 생명을 얻다 | 영흥군, 여진족방어를 위해 축성한 삼관문 | 광포,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 | 흥남부두, 흥남철수작전지 | 홍원, 땅이 궁벽져 구름과 연기가 고색 짙다| 북청, 인재를 배출하고 품어 준 땅 | 이원군, 진흥왕순수비인 마운령비 | 학사대, 만 권의 책을 쌓은 듯한 기암괴석 | 마운령, 관북의관문 | 길주, 고구려 땅을 점령했던 여진을 정벌하다 | 칠보산, 개심사를 품은 함북의 금강산 | 경성, 동해안 최북단 항구 도시 | 경흥군,한반도 동해 트레일 종착지 | 두만강,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어 흐르는 강 | 녹둔도, 이제는 러시아에 귀속된 국토 최북단 모래섬 | 너무아름다워 슬픈 길, 여정을 끝내




동해 바닷가 길을 묻다


첫 번째 구간

해운대 → 임랑해수욕장

마포에서 일정을 마치고 서울역으로 향하는데 비가 내린다. 어느새 2월도 스무 날을 넘겨 봄이 멀지 않다. 역사적인 <동해 트레일> 출발을 축하라도 하듯 비가 반가워, 가는 빗줄기를 맞으며 잠시 걸어본다.


부산으로 가는 KTX, 처음으로 타는 것이어서인지 어색하다. 좌석과 좌석 사이가 비좁은 데다 좌석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히기도 편치 않다. 2월 22일 밤 8시 40분. 정시에 출발한 기차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 열차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 시간 사십 분 소요됩니다."


부산역에 내려 십 분 늦게 도착하는 임효진 씨를 기다려 숙소인 해운대 한화 콘도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리에 들었으나 깊이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어느덧 새벽이다.


해운대, 고운 최치원의 유상터

동해바다를 따라 가는 동해 트레일, 발길 머무는 곳마다 그곳에 터잡고 사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바닷가 삶이 쉽지 않았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결코 상상하기 어려운 만남들을.


부산시 해운대구 동백섬 해운대. 그곳 해운대 끝자락을 따라 달맞이고개를 넘었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와우산에 올라 해월정(海月亭)에 서니 시야가 탁 틔어 바다 조망하기가 좋았다. 그곳에서 과자 몇 봉과 소주 한 병으로 조촐한 즉석 고사를 올렸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통일전망대를 지나 두만강까지 가게 될 우리 일행의 발길을 그 땅 위에 들여놓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허락해 주십사……. 그리고 이 길에서 시작하여 해안가를 따라가는 동해 트레일, 우리의 이 여정이 "마음만 맞으면 삶은 도토리 한 알로도 시장을 면한다"는 옛말을 증명할 수 있게 되기를 발원에 설풋 올려 본다. 처음 발길을 모았던 그 마음, 마지막 발걸음 올려놓는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기를……. 하지만 사람의 마음만큼 예측할 수 없는 대상이 있던가. 기대는 그저 기대일 뿐,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길 수밖에.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다 보면 마음도 몸도 가뿐해지는 순간을 맞지 않을까? 간밤에 내리던 비도 멎고 바람도 잠잠하다. "봄바람은 품안으로 기어드는 처녀바람이다"라는 속담처럼 부드럽게 휘감겨드는 바람을 격려 삼아 출발한다. 누구도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길을. 오직 두 발로 전달되는 땅의 호흡을 느끼며 통일전망대를 넘고 두만강을 넘어 녹둔도에 도착하리라. 총 네 구간으로 나누어 첫 구간은 아흐레를 연달아 걷고 사흘씩 세 구간을 더하여 총 18일에 걸쳐 통일전망대에 이르고 그곳에서는 뜬눈으로 꿈길 따라 두만강까지 더듬어 가리라.


총 아흐레로 예정된 첫 구간 첫 일정을 산뜻하게 시작한다.


경주 양남면 → 포항시 대섬

어느 날이라고 다를 리 없겠지만 특히 도보 답사에서 하루의 시작은 이를수록 좋다. 그래야만 하루를 길게 활용할 수 있고, 어느 지역 풍광을 막론하고 아침에 만나는 풍경이 유난하며, 또 하루를 일찍 마감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른 아침부터 걷기 시작하여 수렴리를 지나니 양남면 소재지인 하서리다.


부근에 4일, 9일 장이 섰던 장태마을이 있고, 하서 동남쪽 진리마을 앞으로 하서나리가 있었다. 이제는 이곳 하서장도 대부분 시골장이 그렇듯 오전에만 반짝 섰다 점심 전에 파장을 맞는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해안길이 끊겨 산길로 들어서다

양남면 소재지에서 31번 국도와 904번 국도로 나뉜다. 하서리와 읍천리 경계에 있는 화전대만딩이라는 높이 72미터가량의 등성이는 예전 화전 놀이터였다고 한다. 읍천리에 이르자 시작된 빗줄기가 소나무 숲 울창한 나아리에 도착하니 더욱 거세어진다. 설상가상으로 길은 산길로 접어든다. 바닷가에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 빗속 도보 답사의 어려움은 중간중간 길바닥에 지친 두 다리를 쭈욱 뻗고 앉아 쉴 수 없다는 데 있다. 한 시간쯤 걷고 10여 분쯤 쉬면서 맛보는 휴식의 달콤함도 없이 비옷을 입은 채 겨울 빗속을 계속 줄기차게 걷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산길이라니.


"봄비는 기름과 같이 귀하지만 길 가는 나그네는 그 진창을 싫어한다."는 옛말이 아니어도 봄비가 농사에는 좋지만 우리같이 길 걷는 사람에게는 고통에 고통을 더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리. 그래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1960년대 새마을운동 구호와 같은 말로 서로를 격려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31번 국도 아래 펼쳐진 나산리는 아아리에 연한 산 밑 마을이다. 큰말 동쪽으로 터앞마을과 새말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새말 서북쪽으로 신라 말 경순왕이 피난했다는 보덕암(普德庵)이 있다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비는 진눈깨비로 변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 일행의 모습이 마치 행군하는 러시아 병사 같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고생이라면 원망을 하거나 욕설이라도 퍼부을 것이나, 저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여정이니 불평조차 할 수 없다. "걸을 만 한가요?" 일행에게 말을 건네니 "너무 좋은데요." 라고 대답한다. 어쩌면 걷기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당연한 대답일 것이다. "가자,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김수영 시인의 시 구절이 동병상련의 정을 일으킨다.


영덕 원척리 → 대진해수욕장

강구항, 영덕대게와 흰 테 두른 은어에 입 안 가득 고인 침을 주체 못하다

아침에 일어나 달력을 보니 벌써 여드레째 삼월 초하루다. 지도를 펼쳐 보니 일주일 사이에 제법 먼 거리를 걸었다. 내가! 지도로 확인해 보아도 이렇게 먼 거리를 한발 한발 걸어왔다니! 생각할수록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한심하기도 하다. "나그네에게 유일한 즐거움이 있나니 참고 견디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의 한 구절처럼 그렇게 참고 견디어 왔다. 그렇게 일 주일을 걸어 3월 첫날.


2월 마지막 밤에서 3월 첫 아침까지 우리 일행이 머무른 삼시랑리, 시랑 벼슬을 지낸 세 사람이 숨어들어 살았다고 붙은 지명이다. 바닷가로 나가니 붉게 떠오르는 해에 눈이 부시다. 바다 건너 강구항은 조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몇 척의 배만이 유유히 항해할 뿐 그저 고즈넉하다. 느린 걸음으로 강구대교를 건너 강구리에 이른다. 강구항에서 오십천을 따라 올라간 오포리에 조선시대 수군만호가 지키던 오포영이 있었다. 본래 소월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옮겨 갔다는데, 오포영이 있던 자리는 지세가 세다고 집짓기를 꺼려 지금은 밭으로 남아 있다.


이곳 오십천에서 잡히는 흰 테 두른 은어는 맛이 좋아 조선시대 궁중에 올리는 일등 진상품이었다. 그리고 강구항 일대에서 많이 산출되는 노가리는 남쪽 바다에서 알을 깨고 나온 명태가 성어가 되기 위해 한류를 따라 북쪽에서 올라가던 길목에서 잡힌 새끼 명태이다. 영덕 지방에서 가장 큰 항구인 강구항은 경치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영덕대게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 이어지는 대게 철에는 수많은 대게잡이 배들이 항구로 집결하고 대게 위판장이 운영되며, 일명 대게거리라는 식당가도 3킬로미터나 이어져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더하면서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두 번째 구간

경북 울진 → 덕신리

후포, 후한 지역 인심이 지명이 되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새 두 번째 구간을 걷기 위해 약속된 날이다. 4월 11일 밤, 우리는 후포에서 다시 만났다. 후포항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들었다. 서로 술 한 잔을 건네어 재회의 회포를 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언제나처럼 바다는 붉은 태양으로 하루를 연다. 후포항의 아침은 일찍부터 대게를 쪄내는 손길로 부산하다. 이른 아침을 먹고 부두에 들르니 곳곳에 싱싱한 생선들이 질펀하게 널려 있다. 본래 평해군 남면 지역으로 후리포라고도 불렀던 후포항. 지금은 울진군에 속하여 그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 중부 해역의 주요 어항으로 꽁치/오징어/고등어/대게/가자미 등 동해에서 잡히는 모든 어종의 집산지다. 후리포란 교통이 불편했던 1960년대까지도 만선으로 돌아온 어선들이 부근 수요자에게 팔고 남은 고기를 거져 누구라도 가져가게 할 정도로 인심이 후한 어촌이었다. 그래서 후포라는 지명을 얻었다는데, 후포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대구까지 거리가 219.4킬로미터나 되는 데다 냉동 시설조차 변변치 않았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삼척 갈남리 → 동막리 대진항

7번 국도, 바다가 그림처럼 뒤따르는 길을 걷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월트 휘트먼의 시, 「아담처럼」을 읊조리며 다리부터 점검한다. 걷기 여정에 튼실한 다리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던가. 다리만 아프지 않다면 천리 길, 만리 길도 거뜬할 터이니…… 내 다리는 괜찮은가? 꼼꼼히 만져 가며 살펴본다. 별 이상은 없다.


바다를 따라 이어지던 길이 호산리에 이르러 끊긴다. 어쩔 수 없이 완만한 오르막길로 연결된 7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옛날 죽령현의 터였다는 옥원리로 이어지는 그 길을 지나자 노곡리다. 관동대로는 노곡리에서 괴목고개 안쪽 길곡마을을 통해 임원리 절골로 이어진다. 까치나루, 노곡나루, 비화진을 먼 발치로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해 나간다. 멀리 임원항이 보인다. 삼척군 원덕읍 임원리는 조선 시대에 임원산 봉수가 있어 붙은 지명이다. 높이 114미터인 임원산봉수는 북으로 초곡산, 남으로 가곡산의 봉수에 응하였다.


제법 규모가 큰 임원항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우리는 다시 7번 국도 위에 섰다. 저 멀리 바다가 그림처럼 뒤따르는 길을 걷는다. 휘돌고 휘도는 길을 얼마쯤 걸었을까. 우리나라 국토 형상을 닮은 바위, 화암(꽃바위)에 닿는다. 신남 서남쪽에 있는 이 바위에는 움푹 패인 자국이 있는데, 진나라를 통일한 진시황이 유람차 이곳을 지나다가 어떤 승려를 만나 바위를 때린 흔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곳에서 갈남리가 지척이다. 갈남리 신남마을 가는 길에 하늘을 향해 꽃처럼 활짝 핀 두릅을 만났다. 하나 둘, 몇 개를 딴다. 봄날 잃었던 미각을 되살리기엔 두릅만 한 게 없다.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밀가루와 계란 옷을 가볍게 입혀 지져 내는 두릅전은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좋다.


부드럽게 양 볼을 스쳐 가는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리막길을 걷는다. 바다가 마을을 끌어안은 듯, 혹은 울타리를 두른 듯한 형상을 하여 섶너머 또는 섶여울로 불리는 원덕읍 갈남리 신남마을에 이른다.


동막리 대진항, 그 길에 서면 사람도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궁촌리에서 동막리로 넘어가는 바닷길, 나그네의 모습마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만들어 줄 그 길은 아직 완전히 개통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길을 따라 여정을 재촉하여 동막리 대진항에 이른다. 그곳에서 부남리가 멀지 않다. 부남진 바다에도 바우들이 많다. 용이 살았다는 용굴바우, 당머릿 바우, 촛대처럼 삐쭉하게 생긴 촛대바우, 장사바우가 있다.


우리의 두 번째 여정은 이곳에서 막을 내린다. 『공자가어』에 "백 리를 걸어온 노고가 하루의 즐거움이다"라는 글도 있지만, 이미 백 리를 훨씬 넘어 이백 리도 넘는 길을 걸어온 도반들의 얼굴마다 행복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도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맺음과 헤어짐이 있던가. 얼핏 서운한 표정도 내비치며 우리는 각자의 집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갔다.



세 번째 구간

삼척 죽서루 → 묵호항

삼척, 보보유경

그리운 얼굴들이 삼척으로 모였다. 불과 몇 년 전 길을 걷고 있으면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어디를 그렇게 서둘러 가시오?" "예, 옛길을 따라 서울까지 가고 있습니다." "누가 돈 주요?" "아닌데요." "돈 안 주면 걷지 마소."


그런데 천지가 개벽을 했다. 하루 몇 십 킬로미터씩을 걷겠다고 자비를 들여 서울, 하동, 용인, 전주에서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이 먼 곳으로 오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신기하다 신기해 햇빛 쏟아지는 저 벌판"이라고 노래했던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힘 또는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건강과 웰빙 또는 스스로를 찾기 위한 간절한 열망을 품기도 했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보보유경(步步遊景), 즉 내딛는 발걸음마다 기분 좋은 감동을 새긴다.는 날아오를 듯한 그 감흥을 터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 자리에 눕고 보니 10시가 훨씬 지났다.


이른 아침을 먹고 남암포로 향했다. 한산한 포구 아침, 간혹 날아오르는 갈매기와 파도소리가 큰 울림을 만든다. 포구에 동화된 모습이 주민인 듯한 몇 사람이 서성인다. 어느새 우리 일행들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포구의 여백을 채워 가고 있었다.


묵호항 → 강릉 경포대

경포대, 멋과 맛을 안겨 주는 관동제일루

강릉시 저동, 운정동, 초당동의 경포호수 북쪽, 경포대해수욕장 가까이에 누각 경포대가 있다. 경포대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은 많아도,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경포호수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경포대까지 발길을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해 뜨는 이른 아침이나 달 밝은 가을밤에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를 굽어보거나 호수 너머 동해의 푸른 바다를 대하면 속세는 간데없이 온통 선경이요.라는 옛 사람의 시에 젖게 만드는 주변에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이 알맞게 어우러져 운치어린 경관을 만들어 내는 경포대에서 강릉사람들은 일찍이 경포팔경을 만났다고 한다.


해돋이와 낙조 그리고 달맞이, 고기잡이배의 야경, 노송에 들어앉은 강문동, 초당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라는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여덟 개의 비경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모두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비경이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경포대에서 만나는 경포호, 거울처럼 맑다고 이름 붙은 그곳에는 네 개의 달이 뜬다고 한다. 하늘에 뜬 달이 하나요,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그리고 술잔에 뜬 달이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기도 한다. 하늘, 바다, 호수, 술잔, 그리고 마주 앉은 이의 눈동자에 걸리는 또 하나의 달까지. 이렇듯 비경을 만들어 내는 경포호는 사람에게 유익함을 준다고 하여 군자호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조선 초기 청백리 황희도 시가로 찬탄하였다.


옛 사람들의 풍류에 함께 젖어 잠시 시절을 잊을 수 있을 강릉 경포는 경치만 빼어난 것이 아니다. 이곳 경포대에 들러 경포 잉어회와 초당 두부를 먹지 않고 가는 사람은 멋은 알아도 맛은 알지 못한다고 할 정도라니 식도락의 즐거움도 누려 봐야겠다.


강릉 경포대 → 쌍한정

쌍한정, 박공달과 박수량이 관직을 버리고 시주詩酒로써 즐기다

이곳 사천면 미노리에 연산군 시절 효자로 알려진 삼가 박수량의 무덤인 삼가묘(三可墓)가 있으며, 미노리 동쪽 해변가 작은 산봉우리 아래 쌍한정이 있다. 박수량과 병조좌랑을 지낸 사휴 박공달이 낙향하여 함께 세운 정자로 그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한가로이 여생을 보냈다 한다. 그곳 쌍한정 옆에 연산군 때의 효자인 삼가 박수량을 추모하여 그 후손들이 약 140여 년 전에 지은 정자, 삼가정이 있다.


조선시대의 동덕역

여정은 사천면을 지나 연곡면 동덕리에 이른다. 지명에 조선시대 대창도에 딸렸던 동덕역의 자취를 읽는다. 연곡천을 가로지른 영진교를 건너 영진리에 이른다. 동해 바닷가 마을 영진 남쪽으로 마산이 있다. 조선시대 동덕역에서 관리하던 말이 죽으면 사체를 그 산에 묻었다고 한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우리는 영진 교회를 지나 주문진읍에 당도하였다. 먼발치로 주문진이 보이는 영진해수욕장, 낮게 날아오르는 갈매기와 파도의 일렁임이 조응한다. 멀리 주문진등대가 보이는 이곳에서 우리의 세 번째 구간 답사를 마무리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올 것이다. 대관령 넘어 돌아갔다가 다시 대관령 넘어 돌아오는 그날, 지금 먼발치로 건너다보는 주문진 항구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줄까.



네 번째 구간

주문진항 → 양양

전주에서 강릉으로 가서 차를 갈아타고 주문진에 도착하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주문진항, 각기 다른 지역에서 모인 일행과 숙소에 들었다. 일찍 눈을 뜬 우리는 아침밥은 걷다가 먹기로 하고 곧바로 도보 답사를 시작하였다.


양양 휴휴암, 팔만사천 번뇌 망상을 모두 내려놓고 몸도 마음도 쉬어 가자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큰 나루가 있어 광나루라고도 하는 그곳은 군사 지역으로 접근이 쉽지 않았던 구간이 개방되면서 숨겨져 있던 동해 비경들이 세상에 알려지고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그곳에 휴휴암(休休庵)이 있다. 그곳 해변에 해수면이 낮아질 때면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관세음보살바위가 있다. 휴휴암 묘적전 법당이 올려다보이는 해변에 낮은 절벽을 만들고 있는 바위가 있고, 그 아래에 바닷물이 들고나는 돌무덤 가운데에 길이 13미터의 바위, 들여다보면서 볼수록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관세음보살 모습을 닮았다. 뿐만 아니라 바닷가 주변에서 관세음보살과 똑같은 신기로운 형상을 이룬 바위를 비롯해 선명한 발가락 모습 등 온갖 기이한 형상을 이룬 바위들을 발견할 수 있다.


휴휴암, 몸도 쉬고 마음도 쉬어 팔만사천 번뇌 망상을 모두 내려놓고 쉬고 또 쉰다. 쉰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그런데도 그 말이 주는 설레임은 그저 설레임으로 남겨 둔 채 결코 멈추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라니……. 새삼 번뇌망상을 모두 내려놓고 오래도록 쉬고 싶지만, 가야 할 길……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까지 마음을 두어 일어난 이 번뇌를 떨치지 못하고 발길을 옮긴다.



걸어가고픈 땅, 북녘

너무 아름다워 슬픈 길, 여정을 끝내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두 발을 내딛어 국토 남단을 흐르는 동해를 바라보며 걸어 온 우리의 여정은 38선을 앞에 두고 발이 묶였다. 그리고 꿈결을 더듬듯 마음의 길을 열어 38선 이북의 동해길을 추적하여 국토 최북단 녹둔도에 이르렀다. 이제는 러시아로 귀속된 녹둔도에서 러시아 해변을 따라가다 보면 유럽에 닿을 것이고, 길은 유럽에서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우리 국토 해안 길을 따라 시작한 동해 트레일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장거리 도보여행이 되지 않을까.


멀고도 먼 길, 아름다운 산천 경관을 배경 삼아 펼쳐진 망망한 바다를 따라 걸어온 길, 그 길이 너무 아름다워 슬펐다. 모든 감정의 원천은 하나임을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느꼈다. 지극한 절경에 경탄하는 순간 가슴 저 밑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아릿한 슬픔을 함께 느꼈으니. 너무 아름다워 슬픈 길, 그 길을 다리가 아플 만큼 마음껏 걷고 싶다.


"욕심은 눈을 멀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한 번 걸으면 눈이 멀어도 좋을 길, 여한이 없는 길, 그 길이 바로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대륙으로 가는 동해 트레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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